한국 문학에서의 여성-여성 작가와 여성 소설을 중심으로-목차Ⅰ. 들어가며Ⅱ. 시기 별 한국문학에 투영된 여성의 모습Ⅲ. 식민지 시대 소설 속의 여성Ⅳ. 식민지 시기 여성 작가들Ⅴ. 소설 속 하위주체로서의 여성Ⅰ. 들어가며비록 사회는 남성에 의해 이끌어졌지만, 문학은 개인의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므로 여성의 섬세한 시선과 개성은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1920년대부터 한국 여성 작가들은 식민지시기를 거쳐 오늘날까지 많은 여성 소설 작품들을 낳았고 소설들은 각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며 소설 속에서 이에 대응한다. 사회와 소설은 항상 결부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회변동과 그에 따른 개인의 의식의 변화는 소설의 주제와 형식을 결정짓게 된다. 지금부터 한국 소설사에서는 사회변동에 따른 여성의식의 변모와 그녀들의 대응 방법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비롯해 한국 문학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모습들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Ⅱ. 시기 별 한국문학에 투영된 여성의 모습1920년, 식민지시대 작가인 나혜석의 단편소설인 『경희』는 여성도 결혼해서 순종적인 삶이 아닌 사회에서 남성 못지않게 능력을 발휘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녀의 글은 계몽주의적 성격을 띰으로써 여성의 자각을 부추긴다. 반면 1930년대 강경애의 글은 강렬한 사회개혁의 요소를 지닌다. 그녀의 소설은 일제 식민지 상황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착취당하는 민중의 삶을 담아, 자본주의와 지주의 횡포에 저항하는 모습을 우회적으로 그려낸다. 강경애는 단편소설『그 여자』를 통해 민중과 하나 될 수 없는 지배계급의 우월의식을 비판한다. 또한 소설 『소금』에서는 여러 지배 권력들에 의해 밑바닥의 삶에서 끈질기게 사는 여성을 보여준다.나혜석과 강경애가 각각 반대편에서 여성의 자각을 부추긴다면, 최정희는 그 중간에 있다. 식민지시대, 그녀의 작품에는 정치적인 저항의식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녀의 소설 『인맥』,『지맥』,그리고『천맥』에서는 개인의 빗나가는 열정과 그것을 다스리려는 이성의 갈등을 통해 그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맥』에서도 여자 주인공이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고통을 겪으며 이를 통해 타인이 자식들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기까지 한다.해방 이후 1940년대의 최정희의 작품들은 지주와 불쌍한 소작인들의 관계를 다루며 좀 더 적극적으로 사회개혁을 암시한다. 그리고 1950년대 전후 문학은 남녀의 사랑, 질투, 정욕, 타인과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등으로 인해 내향적 감수성이 각광받았고, 이 때 많은 여성 작가들이 나오게 된다. 1950년대 임옥인의 작품들에선 사치와 허영에 들뜬 수동적이고 전통적인 여성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현실을 개척해나가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현실도피』라는 소설에서는 여주인공이 어느 한 가지에 만족하지 못하고 전전하다가 파멸하는 모습을 통해 부정적인 모습으로 긍정적인 여성상을 암시한다. 임옥인의 여성상은 주로 자아 계발이나 극복의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사회적, 정치적 문제로는 확장되지 못하는데, 이는 순수문학의 한계라고 할 수도 있으며, 당대 작가인 손소희의 문학 역시 이러한 경향을 띤다.1960년대에 들어서 사회가 변하면서 여성문학도 이런 사회변동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최정희의 『인간사』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해방, 전쟁, 휴전 후까지의 상황을 담고 이를 사랑과 우정, 이념과 용기, 배반과 회한이 얽힌 감동적인 서사로 풀어나간다. 강신재의 『임진강의 민들레』는 전쟁이 시작되는 1950년 6월 25일 아침부터 서울 탈환이라는 짧은 기간을 한가족의 흩어짐이라는 주제로 그리고 있으며, 박경리의 『시장과 전장』은 전쟁 직전부터 시작해 전쟁만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급속한 산업사회로의 변화로 시민들은 혼란을 겪게 된다. 이시기 작가들인 오정희, 서영은, 그리고 강석경은 그들의 작품 속에서 사회나 역사의식보다는 인간의 내면이나 본질을 탐구한다. 오정희의 작품에서의 여성성은 남성중심주의에 억압되고, 모순으로 뒤덮힌 삶의 실체를 보여준다. 그리고 여주인공들은 이렇작품들은 산업사회에 직접 대응하는 대신 소외계층의 여성이 스스로를 어떻게 지켜 가는가를 우회적으로 보여주며, 강성경은 혼돈 그 자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여성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1980년대에는 논리와 이성의 중심주의 하에서 억압된 여성성의 귀환 외에 광주항쟁과 독재에 대응하는 문학이 등장한다. 윤정모는 『바람벽의 딸들』과 『가자 우리들의 둥지로』에서 국적 없는 삶이 한 가족을 어떻게 붕괴시키는지와, 우리민족이 너무 쉽게 저질의 외국문화에 물들어버리는 상황을 반성적인 시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양귀자는 독재의 폭력과 더불어 산업사회에 내재된 폭력, 산업화로 인해 무기력해진 소시민의 저항을 그린다.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까지의 여성문학은 계속해서 여성성의 추구나 여성이 억압에 저항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점점 더 문학의 주제와 양식이 다양해져 간다.지금까지 여성작가를 중심으로 식민지 시대 이후 한국 사회의 변동과 그것에 대응하는 여성의 의식에 대해 살펴보았다. 소설은 늘 다양한 사회현상과 변화에 대응해 왔고, 여성소설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여성은 개인의 감성으로 억압에 저항해 왔기 때문에 남성의 대응에 비해 정치성이나 사회성보다는 섬세하고 우회적인 경향이 강한 부분이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Ⅲ. 식민지 시대 소설 속의 여성식민지 시대 속에서 1930년대는 문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그러므로 식민지 시기의 소설에 대해 더 알아 가보도록 하겠다. 이 시기에는 식민지라는 사회구조 속에서 한국 여성들은 식민지 사회라는 규제와, 가부장적 봉건사회라는 두 가지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과도기적인 변화 속에서 여성들의 사회의식에도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여성들은 소위 ‘신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정치나 경제, 사회, 언론 등 사회전반에 점차 가담하게 되었다. 염상섭의 『삼대』, 채만식의 『태평천하』, 김남천의『대하』에서 나오는 여성 인물들을 통해 당시 여성들의 강인한 성격과 사회 참여의식에 대해 알 수 있다.봉건세대인 제 1세대를 대표하는 수원집은 윤씨와 같이 수동적이거나 순종적이지 않고 자신의 집념을 실현시키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작품 속에서 수원집은 노골적이고 음모적이지만 윤씨는 수줍고 여성적이다. 수원집은 뻔뻔스럽게 더 큰소리로 떠드는데 익숙해져 있으며, 자신의 물욕을 위해 어떤 일도 감행한다. 그러나 윤씨는 오히려 아들보다 더 부끄러워하고 자신의 권리와 주장을 펼칠 의지가 없다. 이것이 제1세대에 속한 봉건세대로서의 적극적인 수원집과 당대의 여느 여인들과 같이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윤씨의 모습이다.개화기 세대인 제2세대에서 대표적인 인물은『삼대』에 등장하는 홍경애이다. 그녀는 30년대의 진보적인 여성인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고뇌하는 신여성’의 대표주자이다. 홍경애는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도 비굴해지거나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주관과 민족주의적 신념을 실천해 나간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서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윤씨 등의 인물과 차별성을 보인다. 대게의 여성들은 당시 완고한 봉건의식과 남성우월주의가 만연한 사회 속에서 위축되어 있었지만, 홍경애와 같은 신여성의 이러한 행동들은 여성사적인 측면에서 시대적, 역사적 의미를 가지며, 30년대 개척자로 신여성의 상징적인 인물이 된다.3세대, 민족수난기 세대의 대표적인 여성 인물은 『삼대』에 등장하는 이필순이라는 여성이다. 그녀 역시 식민지 시기, 여성 인물의 상징적인 존재이다. 『삼대』에서는 홍경애, 김의경, 이필순의 순서대로 사회의식과 여성의식에 있어서 주관적인 의지를 보여주는 여성인물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즉 『삼대』에서는 여성의식을 뚜렷이 보여주며, 당시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해 제시해주고 있다.Ⅳ. 식민지 시기 여성 작가들식민지 조선에서 신여성의 위치는 매우 낮았다. 남성 지식인들은 신여성들의 능력이나 사회적 활동보단 개인적인 연애사나 가십거리에만 주목하였으며 그녀들의 작품에 대한 평가보다는 그들의 삶에 더욱 주목하였다. 당시 여성들의 삶은 불안정했으며 1세대 여성 작가들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프가 몰락하는 시점에 사회주의자 남편과 이혼하고 부르주아와 재혼을 하거나 조선을 떠나는 등의 방법이었다. 강경애는 만주에 거주하면서 경성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상황의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그녀의 이데올로기 지향을 유지하였다. 그리고 최정희는 편집자와 재혼하면서 그녀의 작가로서의 지위를 튼튼하게 다질 수 있었으며, 박화성은 계급의식이 드러나는 작품에서 벗어나, 재혼한 남편의 경제적인 지지로 식민지 말기를 보낸 후, 다시 문인 활동을 시작하였다.또한 당시의 여성작가들의 성공 방법에는 남성들의 기대에 근접한 작품을 생산해내는 것이 있었다. 당시 그녀들은 자유연애나 결혼의 굴레를 비판하는 글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남성 지식인들의 기대에 부흥하는 소설을 내보였다. 예를 들어,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거나, 좌익계열의 사상이 드러나는 소설보다는 가족문제에 치중하는 소설이 남성들의 긍정적인 관심을 샀다. 또한 당시 여성 작가들은 남성들로부터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한다고 기대되기도 하였다. 최정희는 한 때 좌익 계열의 작가였음에도, 결국 민족주의 계열로 돌아선 후 결혼 생활의 문제와 과부의 경험 등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식민지 시기, 남다른 능력을 가진 여성 작가들만이 문학의 장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그곳에서 마저도 그녀들은 차별을 받아야 했다. 2세대 여성 작가들은 비록 자신의 사상을 변화시키고, 한정된 소설의 주제의 한계에 부딪혔지만 1세대 작가들과 같은 비참한 경험은 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1세대의 실패한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결국 여자로서, 그리고 작가로서 사회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살아남고 싶다면 급진적인 페미니스트의 주장을 펼치지 말고, 이상적인 현모양처에 근접한 재현을 해내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 작가, 여성 시인 등 여성 문인들과 그들의 작품이 우리 사회에서 인정받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아직도 어딘가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여류문학으로 차별하며 여성 문인의 등단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중국문학과 낭만 李白君不見 黃河之水天上來,奔流到海不復回?君不見 高堂明鏡悲白髮,朝如?絲暮成雪?人生得意須盡歡,莫使金樽空對月 天生我材必有用,千金散盡還復來。烹羊宰牛且?樂,會須一?三百杯 岑夫子,丹丘生, 將進酒, 君莫停與君歌一曲, 請君?我側耳聽 鐘鼓饌玉不足貴, 但願長醉不願醒古來聖賢皆寂寞, 惟有?者留其名 陳王昔時宴平樂, 斗酒十千恣?謔主人何?言少錢, 徑須沽取對君酌 五花馬,千金?, 呼兒將出換美酒 與爾同消萬古愁 李白 (4수中 제1수)花間一壺酒 獨酌無相親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月旣不解飮 影徒隨我身 暫伴月將影 行樂須及春我歌月徘徊 我舞影零亂 醒時同交歡 醉後各分散永結無情遊 相期邈雲漢 鄧麗君??我??有多深, 我??有?分我的情也?, 我的?也?, 月亮代表我的心??我??有多深, 我??有?分我的情不移, 我的?不?, 月亮代表我的心??的一?吻, 已?打?我的心深深的一段情, 叫我思念到如今??我??有多深, 我??有?分?去想一想, ?去看一看, 月亮代表我的心감상:와 는 이백의 ‘술’을 중심으로 다룬 시이다. 이백은 낭만주의 시인으로 대표된다. 그에게는 봉건사회가 극성한 시기에 기득권 세력에게 반항하고 세속적인 것을 버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시를 쓰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자유에 대한 추구가 그의 낭만주의 정신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이백은 풍부한 상상력과 비유, 은유 등의 수사법으로 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수업 때 배운 내용을 인용하자면 중국의 도가적인 無爲와 任自然의 사상은 바로 이러한 인위적인 속박과 구속을 거부하는, 자유롭고 역동적인 상상력과 풍부한 환상에 기반을 둔다. 즉, 도가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이백은 자연과 구속받지 않는 인생을 주제로 하는 낭만시를 쓴 것이다.이백의 두 시에서는 모두 달과 술이 나오는데 대체로 음주는 모든 근심과 고민을 떨쳐버리고 즐거움을 누리자는 의미에서 행해진다. 에서는 다양한 은유와 비유법을 사용하며 인생이 무상함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달빛 아래 홀로 술을 마시다 하는 뜻의 에서 그는 홀로 술을 마시지만 달과 자신의 그림자가 있으니 세 명이서 마신다고 말한다. 그러나 달과 그림자는 술을 마실 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덧붙인다. 어찌 보면 이백도 자신의 신세와 세상을 탓하기 위해 술을 마시고 취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시에서 비판의식을 보이기보다는 이 세상에 대한 미련 한 점 남기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백은 정말 멋진 선비이자 시인이지만 만약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태어났다면 어떠했을지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속세에 찌들어 살고, 어디에든 경쟁이라는 것이 항상 존재하는 치열한 이 사회에서 이백과 같은 시인이 있었다면, 우리와 같이 속세에 물들었을까, 우리와 다른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취급받았을까? 나는 차라리 이미 요즘 시대 사람들에게서 낭만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적어도 그들이 낭만 속의 취해 사는 이백과 같은 사람을 비정상이 아닌 부러움의 시선으로라도 인식 수 있는 여유를 찾아 갔으면 한다.마지막으로 는 영화 ‘첨밀밀’에 나온 鄧麗君이 부른 노래이다. 이 노래는 가히 대단한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이 노래를 내가 처음 들은 건 초등학교 저학년 때 어머니께서 집에서 이 노래를 따라 부르실 때였다. 나는 영화를 본적도 없고 한 번도 직접 찾아 들은 적도 없지만 몇 번 안 듣고도 귀에 익어 가사를 외울 정도이다. 그만큼 이 노래는 인상이 강했던 것이다. 이 노래의 가사 속에 묘사된 사랑은 정말 아름답고,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사랑이라고 생각된다. 게다가 가사에 사용된 언어들이나 발음, 말투가 무겁지 않고, 달빛을 인용하는 등의 수사법을 사용하여 최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그 힘을 더하는 것 같다. 당신을 얼마나 사랑 하냐는 물음에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할 것이라고 표현할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싶은 마음도 든다. 그리고 세 작품에 공통적으로 나온 ‘달’을 보며 ‘달이 정말 아름다운 것이구나.’하고 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도 있었다. 鄧麗君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그녀의 노래는 금지곡이 되었던 적도 있다. 그리고 그 시절엔 남녀의 사랑을 다룬 작품이 보편화 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사랑 노래가 결국엔 중국의 대표적인 노래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만 보아도 이 노래의 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울증우울증은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머리로는 이성적인 사고를 한다고 해도 몸이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상태가 바로 우울증이기 때문이다.우울증에는 약물치료와 더불어 정신 치료를 함께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방법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요즘에는 전기 경련 요법이나 광선 치료들이 활용되고 있지만, 가장 대표적이고 중요한 약물 치료와 정신 치료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다. 약물은 최소 4-6주 정도는 복용한다면 증상이 호전되는 경우가 많다.정신치료에서는 환자의 말을 긍정해주거나 지지해주고, 불쾌하거나 불편한 감정을 말로 표현하게 해 감정의 환기를 돕는 역할을 한다. 또한 환자의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정신과 치료에서도 전문의와의 치료적 신뢰를 전제로 하여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증상이 좋아진 후에도 재발방지를 위해 최소 6개월 이상 약물 유지 요법을 행해야 한다.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우울증에 대한 치료계획은 세 가지의 단계로 구성된다. 1단계 급성기 치료는 6-8주 정도 지속되는데 이 때는 항우울제 치요, 전기 충격 요법 등의 신체적 치료와 다양한 정신적 치료를 병행하며 증상의 완화를 목표로 한다.2단계 지속기 치료는 16-20주 정도인데 우울증을 빠르게 치료 한 후 치료를 중단하면 재발을 가져올 수 있다. 재발의 위험성은 증상이 사라지고 난 후 첫 2달 동안 가장 높다. 그러므로 환자는 적어도 4-5개월 동안 동일한 약물 복용을 하고 의사를 방문하는 횟수를 점차적으로 줄여가며 재발을 방지하여야 한다.3단계 유지기 치료 기간은 환자에 따라 다양하다. 이는 차후의 다른 주요 우울 삽화로부터의 예방적 보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치료이다.약물치료와 정신과 치료 이외에도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우울증 치료 방법이 있다.우선 규칙적인 운동은 뇌를 활발하게 하고 혈액순환을 촉진시키므로 우울증 치료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매일 아침 햇빛을 쬐면 행복감을 주는 신경물질인 세로토닌이라는 성분이 활성화 된다고 한다. 행복감과 편안함을 주는 물질인 세로토닌을 억지로라도 나오게 하는 것은 우울증 해소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두번째로 부정적인 마음과 행동은 스스로를 더 우울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항상 밝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관점의 차이가 불행과 행복을 만들게 된다. 예를 들자면, 놀다가 다리를 다쳤는데 이 때 왜 조심성 없이 안 가도 될 병원을 가야 하냐고 생각하는 것과, 아니면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뼈는 부러지지 않아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의 차이인 것이다. 내 얘기를 잠깐 해보자면 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항상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데 전에 레포트를 몇 시간 동안 정말 힘들게 작성했는데 저장 과정에서 실수를 해 썼던 레포트가 다 날아갔던 적이 있다. 순간적으로 너무 화가 나서 컴퓨터를 부수고 싶은 충동까지 일었지만, 지금 내가 화내서 변할게 무엇인가, 아직 마감 시간까지 다시 쓸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해서 그나마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던 경험이 있다.세번째로 스스로의 우울함과 고민들을 가슴 속에 묻어두지 말고. 사람들과 그 고민을 나누고 소통하며 함께 해결해 나간다면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감사 치료법이라는 새로운 우울증 치료법이 있다고 한다. 이는 아침에 일어나 감사할 내용들을 생각하고, 하루를 마무리 할 때 오늘 잘 한 일을 생각해내는 것이다.우울증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하면 시야가 좁아져 눈 앞에 닥친 문제와 어려움들 밖에 보이지 않기 마련이다. 그러나 감사를 하면 시야가 넓어져 눈 앞의 어려운 일보다 인생의 즐거운 일을 발견하기가 쉬워진다.실제로 한 사례를 들자면, 한 여자는 딸과 사별을 하고 남편까지 직장에서 해고를 당한 뒤 정서적, 경제적 피해가 막대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우울증이 찾아와 그 고통은 더욱 심해졌는데 주위의 권유로 인해 감사일기를 작성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감사일기를 쓰다 보니 마음의 안정을 찾고 환경을 극복해나갈 수 있었으며, 감사가 감사를 사는 것을 경험 했다고 한다. 나는 이것이 사소한 것부터 감사하기 시작하면 감사할 것이 늘어나며 그로 인해 마음이 편안해지니 여러 인생 문제들까지 해결되는 선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마지막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대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타인을 배려하거나 타인과의 관계를 너무 많이 의식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신경 써할 것들이 넘치다 보니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자기 자신에게 우울감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 우울증세가 있다면 잠시나마 남보다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 먼저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잠시 타인을 제쳐두고 나의 행복을 먼저 추구하여 스스로가 행복해진다면 타인과의 관계도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희극지왕』을 보고-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을 아는 주성치-Ⅰ. 감독 소개영화배우 겸 감독을 맡고 있는 주성치는 1988년도에 영화 ‘벽력선봉’으로 영화계에 진출한다. 이 후 그는 소자병법, 부시맨, 희극지왕, 소림축구, 쿵푸허슬 등을 비롯해 수많은 성공작들을 거두게 된다. 마냥 웃기려고 하는 것 같지만 그 속에 뼈가 있고 감동이 있다는 것이 주성치 영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Ⅱ. 줄거리배우가 꿈인 사우(주성치)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대사 한 마디 없는 엑스트라이다. 그마저도 시체역할이나 불에 타죽는 역할이 다지만, 계속되는 실수로 촬영장에서 무능력한 존재로 낙인찍혀 버린다. 사우는 그래도 굴하지 않고 마을복지회관에 무료연기학교를 열어 사람들에게 자신의 연기를 보여주려 한다. 어느 날 사우는 술집 여자인 피우(장백지)의 연기 교육을 맡게 된다. 둘 사이에는 점점 사랑이 싹트게 되고, 사우는 부망(막문위)이라는 여배우에게 발탁돼 주연을 맡는 행운을 얻게 되지만, 그 행운은 얼마 못가고 다시 보잘 것 없는 사우로 되돌아온다. 이 때 사우에게는 원수와도 같은 도시락을 관리하던 아저씨가 절망에 빠진 사우를 부르고, 그 도시락 아저씨의 정체가 스파이 경찰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사우는 그와 함께 스파이 연기를 하며 연기 혼을 불태우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에 그는 사랑도 얻고 인기도 얻게 된다.중국영화 2014. 06. 04Ⅲ. 인물 성격-사우: 자신의 연기에 대한 관념이 매우 강하고 연기에 대한 고집이 세지만, 이는 그의 마냥 순진하고 바보 같은 성격 탓이다. 그는 항상 연기 이론을 연구하며, 자신은 ‘배우’라는 자신감 하나로 남들에게 누가 봐도 어설픈 연기를 가르친다. 그러나 그의 연기에 대한 열정 하나만큼은 따라갈 자가 없다.-피우: 겉으로는 거칠고 강한 척하지만 속은 매우 여린 인물이다. 감정표현에 서툴고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스파이 경찰 마오: 영화 전반에 걸쳐 촬영장에서 도시락을 담당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아무도 그에게 어떠한 이야기를 해주는 장면이 나오지는 않지만, 사우가 남들에게 연기를 가르치고, 이론을 따지고, 조직원에게 나쁜 짓을 시킨다는 것, 그리고 심지어는 사우가 맡은 역의 대사가 몇 마디인지까지 다 알고 있는 인물이다.Ⅳ. 사우와 피우의 러브라인엑스트라 배우인 사우와 호스티스인 피우의 러브라인은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로 구분지어볼 수 있다. 1. 발단: 처음엔 사우에게 적대적이었던 피우는 사우의 가르침으로 인해 큰 덕을 보고 정식으로 사우에게 연기를 배우러 찾아온다. 이 때 사우는 피우를 다시 보게 되고 예쁜 옷과 넥타이를 골라 입는 등의 행동을 하며 연기를 가르치는 도중에도 무언가 다른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2. 전개: 사우를 찾아온 피우와 사우는 바닷가에 단 둘이 남게 된다. 감정 표현에 서툰 피우는 입이 튼 사람이 제일 싫다며 사우에게 입을 맞추고 사우도 이를 어설프게 받아주다가 결국엔 같이 밤을 보내게 된다. 3. 위기: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사우는 멀리서 피우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본인에게는 과한 여인이라고 생각했는지 최고의 호스티스와 하룻밤을 보낸 값을 지불하기 위해 전 재산을 꺼내 놓고 잠든 척 한다. 피우는 이를 보고 화가나 똑같이 사우에게 그저 일적 상대 취급을 하고 떠난다. 사우는 떠나는 피우를 바라보다 끝내 먹여 살릴 테니 출근하지 말라고 하지만 피우는 결국 떠나고 가는 택시 안에서 울음을 터뜨린다. 이 때 사우가 아끼는 ‘연기자의 자아수양’이라는 책을 피우가 챙겨온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마치 사우를 마음속 한편에 간직하고픈 피우의 마음을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4. 절정: 사우는 유명 여배우 부망에 의해 영화 주연 자리에 캐스팅 되게 된다. 사우는 캐스팅이 된 후 부망과 함께 호화를 누리는데, 이때 피우가 술집에서 일을 하는 장면이 교차 된다. 사랑을 하게 된 것 같다며 사랑을 위해 돈을 포기하겠다는 피우, 여자 친구는 없다며 영화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사우, 사장님에게 맞아 아파하는 피우, 춤을 추다 실수로 발을 밟혀 아파하는 부망을 챙겨주는 사우, 계속해서 맞기만 하는 피우,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춤을 즐기는 사우의 모습이 연속적으로 교차되는데, 이 부분은 내가 영화를 보며 가장 마음 아파했던 장면이다. 5. 결말: 다음 날, 피우는 사우를 찾아 왔다가 사우와 부망이 같은 영화에 출현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피우는 사우와 한마디라도 더 나누기 위해 어떤 얘기라도 꺼내보지만 사우와 부망이 다정하게 사적인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곤 할 말이 없어진다. 이러한 피우의 모습은 계속해서 보는 이의 마음조차 힘들게 만든다. 그렇게 사우는 책을 돌려주러온 피우로부터 책을 받고 떠난다. 그러나 떠나는 사우의 뒷모습에 던진 진짜 자신을 먹여 살릴 것이냐는 피우의 용기 있는 질문에 이내 사우는 그렇다고 대답하며 둘의 사랑은 확실해진다.이들의 사랑이야기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라는 전형적인 스토리의 구성단계를 띠고 있지만 이 이야기로 인해 기쁘다가도, 한없이 슬퍼지고, 마음이 아프다가도 행복해지는 감정의 변화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 이 영화는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을 아는 주성치’라는 나의 부제에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든다.Ⅴ. 유희적 요소주성치의 영화에 ‘코믹’이 빠질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의 중간 중간에 이해가 되지 않는 뜬금없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이들을 유희적 요소로 분리해보았다.-초라한 모습의 자신을 개똥에 비유한 개똥 노래-영화에 총 세 번 등장하는 벌거벗은 남자 아이-사우의 실수로 인해 부망이 비현실적으로 요란하게 창밖으로 떨어지는 장면-동네 불량소년의 부하라고 불리는 소년에게 웃지 말고 울라며 다 같이 뺨을 때리는 장면-부망의 연기테스트에서 콧물을 길게 늘어뜨리며 흘리는 사우
‘여자니까’가 아닌 ‘여자라도’‘부부유별’,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들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도 모를 만큼 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남성과 여성을 구분 지었다. 물론 그 구분은 차별로 이어졌고, 남성은 항상 우위에 있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가부장적 성격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우리나라 사회에서 남성의 권력은 여자 앞에서 언제나 그 힘을 발한다. 그러나 이제는 ‘커리어 우먼’이라는 말이 나오는 만큼 여성이 남성만의 공간으로 인식되었던 사회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렇듯 이제는 우리사회에서는 많은 남성이 주부를 자처하는 만큼 남녀를 어떠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으로 구분 짓는 일이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은연중에 남아있는, 이 전 시대까지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일들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 해보겠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차별 받았다. 남자아이를 기다리던 어른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며 태어나고, 여성이 공부를 하면 욕을 먹기 일쑤였다. 그리하여 여성에게 있어서 사회에 진출하여 개인적인 경제적 능력을 확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이에 반해 남성은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직업을 찾아야만 했다. 이러한 외적인 능력의 차이는 그들의 성격 또는 관념으로도 이어진다. 능력이 없는 여성들은 능력이 좋고 지식이 풍부한 남성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복잡한 문제부터 사소한 일들까지, 심지어는 전구하나를 가는 일도 여성들은 ‘나는 할 수 없겠지’라는 생각으로 남성들에게 부탁하곤 한다. 그 대신 여성은 식사나 빨래와 같은 살아가는 데 기본적인 요소들에 있어서 남성의 몫까지 챙겨주어야 하는 것이고, 이것이 여성의 위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듯이, 여성들은 이제 사회적 위치를 당당히 차지할만한 능력을 가질 수 있다. 한국 여성들은 이제 남성들에게 의지해야 한다는 무의식중의 고정관념을 버려야할 때가 온 것이다.나는 개인적으로 30대 초반에 결혼하기를 희망한다. 평균적으로 봤을 때 그리 이른 편은 아니지만, 이것에 대한 이유는 하나이다. 내가 직장을 얻고 자리를 잡아 배우자가 없어도 내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여유를 차지한 후 결혼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물론 그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남편에게 의지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나의 부모님, 친척들은 모두들 내가 재벌 집 아들과 결혼하기를 원하신다. 아직 20대 초반인 나에게 부모님은 종종 능력 좋은 남자만나서 시집 잘 가야된다는 소리를 하신다. 내가 남자친구라도 생기면 무슨 학교를 다니는지, 혹은 어떤 일을 하는지, 부모님은 다 계신지 등을 물어보신다. 친척들도 가끔 얼굴을 볼 때 마다 같은 이야기를 하신다. 이것이 20대에 갓 들어선 내가 가장 스트레스 받는 부분이다. 나는 어른들이 흔히 이야기 하시는 ‘시집을 잘 가는 것’은 주위 사람이 보기에 행복한 결혼이 아니라 내가 행복한 결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미 결혼 경험이 있고, 사회를 겪을 만큼 겪어본 어른들이 남자의 경제력을 따지시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둘이서 행복할 수 있을 정도로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아무리 스스로 경제적인 여유를 확보한다고 해도 남성이 그만하지 못하면 다 소용없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이 역시도 우리 사회에서 남성이 동등한 위치에 있는 여성보다 더 영향력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내가 결혼을 생각하는 10년 후쯤에는 이러한 인식이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선 현재 사회적인 활동이 활발한 20-30대 여성들의 마음가짐과 행동부터 바뀌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나의 꿈은 아나운서이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꿈이 몇 번 바뀌었다. 처음엔 스튜어디스, 그 다음엔 호텔리어, 그리고 지금은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 꿈이 이렇게 계속 바뀌게 된 이유는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는 스튜어디스나 호텔리어를 여성에게 있어서 하위 직종으로 취급하며 내게 교사나 동시통역사, 외교관 등이 되기를 원하셨다. 그리고 물론 지금도 아나운서는 수명이 짧은 직업이라며 여자가 대중에게 가장 아름다워 보일 나이인 30대 초반이 지나면 아나운서의 수명은 끝날 것이라고 하시고, 국회공무원이나 교사를 추천하곤 하신다. 한번은 나도 몇 번 뵌 적이 있는 아버지 친구 분으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문자에는 아나운서는 인식도 좋지 않으니 안정적이고 인정받을 수 있는 교사를 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가족의 지지가 절실한 나에게 항상 반대표만 던지시는 아버지 때문에 많이 힘들기도 했지만 이제 나는 내가 정말 원하는 직업을 찾았고 더 이상 내 꿈을 아버지의 뜻에 맞추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어릴 적부터 책상에 앉아 컴퓨터만 두드리는 사무직은 절대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취미가 컴퓨터를 두드리는 일이 아닌 이상 가만히 앉아서만 업무를 보는 것이 참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인생의 얼마나 많은 날들을 내 직업에 소비할지 모르는데, 이왕이면 정말 즐겁게,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고민한 끝에 말하는 것을 즐기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택했다. 지금보다도 어릴 때는 돈 많이 버는 직업이 무엇일까를 자주 생각했다. 그러나 아나운서라면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나이가 많이 들 때까지 안정적이지 못해도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나운서라면 갖은 이유로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힘든 것조차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내가 돈을 많이 벌지 못하거나 나의 직장으로 인해 힘들어한다면 경제적으로 성공했으면 하시는 부모님은 매우 안 좋아 하실 것이다. 그러나 직장도 위에서 말한 결혼과 같이 남이 보기에 성공한 것 같은 것이 아닌 내가 행복하고 내가 성공적이라고 생각해야 정말로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