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경력기술서입사지원서에 기술한 직무관련 경험 및 경력사항에 대해 담당업무, 활동, 역할 등에 대해 상세히 기술해 주십시오.(350~500자)글자수 500 / 500 자졸업과 동시에 입사 후 제철소 인사담당자로 재직하면서 채용부터 퇴직까지 인사 전반에 대한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주로 내부 직원을 응대할 일이 많았는데, 매월 보직 조정과 징계 업무 추진 시 직원 불만이 많아 힘든 부분이 있었습니다. 상대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면서도 원칙에 입각한 정확한 업무 처리를 추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7개월 후 부서 내부 인력 부족에 따라 외주사 계약담당자로 순환 근무하게 되었고, 제철소 관련 주요 외주사 100여 개사의 계약 관리를 담당하였습니다. 당시 외주사와 계약 업무를 추진하며, B/S 과제 정착, 원 단위 계약 수행을 통한 원가 절감 등의 성과를 나타냈습니다.퇴사 후 중소기업을 위한 정책을 펴는 공공기관에 입사하여, 현재는 약 3년간 정책자금을 집행하고 있습니다. 상담 후 기업진단, 평가를 거쳐 대출을 실행하는 업무입니다. 주요 업무 이외에도 수출바우처 평가, 인력양성, 컨설팅 사업 등을 전개하며,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업무를 수행 중입니다.해당 경험, 경력이 부산교통공사 입사 후 업무수행에 어떠한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기술해 주십시오.(350~500자)글자수 500 / 500 자저는 대기업에서 약 2년 1개월, 공공기관에서 약 2년 10개월 근무하였습니다. 총 경력이 약 5년인데, 이 기간에 다양한 업무를 전담하며 능력 향상이 이뤄진 부분이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먼저, 고객 대응 업무에 강점이 생겼습니다. 고객의 마음을 파악하고, 원하는 바를 명확히 이해하고 응대하는 역량이 강화되었습니다. 특히, 악성 민원 업무에 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입사 초기에는 화를 내거나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고객 대응 시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민원인들을 상대하는 데 자신감이 있습니다.다음으로, 각종 업무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대기업과 공공기관에서 각 2년 이상 근무하며, 기안문을 작성할 일이 많았습니다. 보고서 작성 능력 향상뿐만 아니라 매뉴얼 숙지를 통한 업무 프로세스 이해도 역시 높은 편입니다.악성 민원인을 상대하는 노하우와 사무 분야의 종합적 역량을 갖춘 부분은 향후 부산교통공사 운영직 근무 시 다각도에서 도움이 되리라 확신합니다.자기소개서 (출신지역, 출신학교명, 가족관계 등에 대한 내용 기재금지)1. 부산교통공사에 지원한 동기와 본인이 공사의 인재상에 부합하는 이유를 기술하시오.(350~500자)글자수 500 / 500 자부산교통공사에 지원한 동기는 크게 2가지며, 인재상 중 애사인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첫째, 부산교통공사가 부산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광양, 포항, 서울 등을 순환하면서 많은 애로 사항을 느꼈습니다. 순환 근무에 따라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 생기는데, 많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지속해서 부산에 정착할 수 있는 부분이 가장 큰 장점으로 느껴졌습니다.둘째, 부산교통공사 현직자의 만족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이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현직자 친구와 선·후배를 만나 얘기를 나누었는데, 모두 회사에 대한 강한 애착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5년간 근무하며 더불어 사는 삶을 추구하고, 조직과 함께 융화된 삶을 원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이런 분위기에서라면 제 신념을 이룰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이렇듯 제 가치관이 조직과 함께 상생할 수 있는 삶을 원하기 때문에 인재상 중 애사인에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2. 부산교통공사에 입사하기 위해 준비한 과정과 그 과정을 통해 본인이 갖게 된 경쟁력은 무엇인지 기술하시오.(350~500자)글자수 500 / 500 자부산교통공사에 지원하기 위해 크게 두 가지를 노력하였습니다.먼저, 부산교통공사와 관련된 많은 뉴스를 접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사업 추진 방향, 각종 이슈 사항 등을 보면서 부산교통공사가 정확히 어떤 사업을 수행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비수도권 최초로 도입되는 급행열차 도입 관련 사항과 베트남 호찌민 도시철도 사업 추진 사항 등을 접하였고, 이러한 사업을 살피며 미래에 대한 비전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다음으로, 강연회를 보러 다니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는 그 자체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다양한 강연을 접할 경우, 평상시에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향후 기획 직군에서 근무하기를 희망하고 있어서 강연회 참석이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이렇듯 입사 후 다양한 정보 획득 노력을 통해, 추진 사업 관련 지식을 충분히 쌓아왔기 때문에 업무 수행 시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3. 부산교통공사에서 추진(또는 운영)중인 사업 중 입사 후 본인이 가장 자신있게 담당할 수 있을 것 같은 사업과 역할, 이유에 대해 기술하시오.(350~500자)글자수 500 / 500 자역세권 개발, 복합환승센터 개발 등의 사업에 자신이 있습니다. 해당 부분에 사전 조사 및 데이터 분석 능력이 요구될 것으로 보이는데, 사업환경 분석에 대한 업무를 다년간 수행하여 이러한 기획 업무를 수행하는 데 강점이 있습니다. 과거 대기업 본사 재직 시절부터 많은 사업 기획을 추진한 경력을 갖고 있으며, 공공기관에 재직 중인 현재도 주무를 담당 중입니다.저는 현재 중소기업 정책 자금 지원을 위한 사업성 평가를 수행 중이며, 평가를 위해서 자료 수집 및 재무 분석은 필수적입니다. 국내·외 시장 조사와 중·장기적 관점에서 지원 효과 예측이 선행되기 때문에, 자료 수집 능력과 데이터 분석력에 충분한 역량을 길러왔습니다.따라서 해당 사업에 대한 업무 지식과 노하우를 갖추고 있으므로 신입사원임에도 불구하고 조기 전력화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입사 후 사업계획 수립부터 예산 관리, 투자 효과 예측 등 현재까지 대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수행해온 업무 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하겠습니다.4. 지원분야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예상되는 직무상 어려움은 어떤 것이 있을지 한 가지 사례를 제시하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기술하시오.(350~500자)글자수 500 / 500 자교통공사 특성상 사회복무요원들이 많은데, 다수의 사회복무요원과 조화롭게 지내는 부분이 어려울 것입니다. 실제로 교통공사 재직 중인 운영직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었을 때 불성실한 사회복무요원들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82년생 김지영(2019)을 보고 - 영화감상문경영학과 201400000이 영화를 보기 전에 많은 고민을 했다. 혹시나 이걸 보고 여자친구와 싸우지는 않을까?역시 불행한 예측은 빗나간 적이 없었다.여자친구의 적극적인 권유로 책도 정독했고, 영화도 책을 옮겨놓은 내용이었지만 졸지 않고 집중해서 봤다.그 날은 컨디션도 좋지 않아 의도적으로 대화를 피해서 별다른 싸움은 없었지만, 다음날 괜찮아졌다 싶어서 꺼낸 영화 얘기에 2시간 넘게 싸움을 하게 되었다.솔직히, 나는 ‘82년생’ 김지영에 대해서 절반만 공감했다. 왜 ‘솔직히’라는 말을 붙였냐면 이렇게 말하는 거조차 큰 용기를 내서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우리 부모님 세대, 즉 5~60년대생들의 경우 자라나면서 김지영과 같은 차별을 많이 겪어왔다. 남자 아이의 경우 부모의 손 아래 많은 혜택을 보며 자라왔고, 여자아이는 상대적으로 많은 불이익을 감당하며 자라왔다. 공부 잘해도 대학을 못가고, 취직을 하며 일해야 했던 사람이 많았다.그런데, 당시 농업이 주를 이루던 60년대 이후, 70년대부터는 전국적으로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고, 각종 산업화로 인해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1차 산업(농업) 중심이던 국내 산업은 2차 산업(제조업) 중심으로 변모되었고, 특히 신발, 섬유 위주의 경공업보다 제철/자동차 산업 등 중공업 발전이 많이 되었다.그리고 이와 함께 정부 주도로 강력한 인구 억제가 시작되어 ‘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등의 산아 제한 정책이 시현되던 시기이기도 했다.이러한 상황에서 시작된 80년대는 민주화 운동을 거쳐 90년대로 진입하였고, 90년대부터는 대중문화가 많이 발달됨과 동시에 책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99년 여성가족부’가 출범하는 등 여권 신장도 많이 이루어졌다.내가 영화를 보고 이렇게 길게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언급한 이유는 실제 차별을 받고 울분을 털어놓아야할 사람은 ‘62년생 김지영’이 되어야지, 적어도 현재 30대인 ‘82년생 김지영’들이 할 소리는 아니라는 것이다.그들은 오히려 이전 여성 세대가 겪어왔던 차별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은 메리트를 누리고 살고 있다. 여성일 경우 공공기관 채용에 5~10% 가점을 주기도 하고, 각종 승진 시 여성의 역량이 다른 남자들에 미달할지라도 승진을 시키는 등 사회가 많이 변화되었다.혹자는 그런다. 그게 당연한거 아니냐고.나도 동의한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루어진 것은 맞다고. 그런데 왜 자신만 고통스럽게 살아왔다고 남에게 공감을 강요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 정상화가 된 이후의 ‘82년생’들이 말이다.김지영을 쓴 작가와 유사하게 그 시대 남자들의 일생을 적은 댓글을 본적이 있다. 얼마나 그 작성 기법의 비약이 심한지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요약하면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어릴 때 여자들에게 ‘무조건 져줘야 한다.’라는 말을 부모님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고, 더러운 화장실청소나 각종 힘쓰는 일들은 남자들만 도맡아서 했다. 체벌 및 구타를 당하는 것도 남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사실이었고, 군대를 가기 위해 머리를 깎을 때 여자동기들은 해외유학 티켓을 가거나 시험 준비를 시작하는 것을 보며 많은 자괴감을 느꼈다. 우리 때는 군대에서도 참 많이 맞았고, 자살하거나 탈영하는 후임들도 많이 보았다. 그렇게 전역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하니 군가산점제도는 폐지되었고, 여자동기는 여자라는 이유로 사회적인 약자 가산점을 받아 공공기관에 입사하였다. 지금 나는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고, 아내는 전업주부다. 일이 끝나면 예전 아버지 세대처럼 누워 쉬는 거는 꿈도 꿀 수 없고, 육아/음식물쓰레기/각종 청소 등을 분담하고 있다.오죽하면 이런 내용들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을까?심한 남녀 차별을 받으며 자라왔다는 게 과연 맞는 소리일까?영화를 보며, 공감을 받을만한 부분도 물론 있었다.전업주부들이 편하다는 거 아니라는 거, 육아도 힘들도, 가사일도 쉽지 않고..또, 며느리로서 명절에 집에도 빨리 못가고, 각종 음식은 여자가 하고 있고..그렇지만 공감을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너무 심한 차별을 받고, 정신병까지 걸리게 되었다는 것. 상대적으로 여자이기 때문에 아까 댓글이 말했던 혜택도 있었는데, 피해 사실만 침소봉대하는 것. 그게 과연 합리적인 사고인가?일을 너무 하고 싶어하는 것. 그 일만 하면 마치 행복한 일상이 시작될 것처럼 느낌을 전하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그런 사람들이 남자 여자를 떠나서 몇 명이나 될까?나는 솔직히 김지영 보다 공유가 불쌍하게 느껴졌다.일은 일대로, 가정에 와서는 가사 스트레스로 고생하는 와이프를 보며 짜증을 다 받아주고, 육아도 같이 하고, 눈치보며 사는 요즘 세대의 남자들이..아니 유치하게 누가 더 불쌍하니, 마니 이런 얘기를 할 게 아닌데
영화 조커(Joker, 2019)를 보고 - 영화감상문경영학과 201900000'조커'라는 캐릭터가 갖는 강렬한 인상때문에 이 영화를 찾게 된 사람이 많은 것 같지만,실제로는 '조커'의 내면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현대 사회에 많다는 부분 때문에이 영화가 많은 화제가 되고 있는 것 같다.과거 일본, 대만 등에서만 존재한 묻지마 살인, 폭력 등의 범죄가국내에서도 다수 발생되며 많은 충격을 가져왔고, 나 역시도 그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그러나, 김성수, 장대호 등의 인물은 각각의 이름을 딴 '홀리워터', '빅타이거' 등의 닉네임까지 생겨날 정도로 사회적 약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되고 있다.그렇다면 과연 그들은 왜 이토록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범죄에 박수 갈채를 보내는 것일까?생각건대, 그들은 힘이 없어서 상상 속에서만 벌였던 폭력 행위가모르는 누군가에 의해 실제 현실에 나타나게되자 일종의 '대리만족'을 얻게된 것으로 보인다.김성수, 장대호 등의 인물은 '찐따'의 대표성을 갖게 되었고,현실에서 무시 받던 이른 바 '찐따'들은자신들도 자신을 놓는 순간 '조커'와 같은 무서운 존재로 대중들에게 나올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된 것이다.그러자 어떻게 보면 음지에 있던 '찐따'의 특징이 인터넷 상에서 많이 나돌고 있고, '찐따'를 괴롭히면 살인 등의 큰 일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며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이는 장난이라고 할 지라도 일반적인 대중들에게는 굉장히 무서운 상황이라고 생각한다.이유야 어떻든 간에 살인은 정당화 될 수 없고,그런 무서운 범죄를 희화화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사회적 분위기가 올바르게 조성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이러한 것은 아직까지 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한 청소년기 아동들,그 중에서도 왕따와 같은 따돌림을 받는 학생이 무시무시한 범죄를 저지르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82년생 김지영 ? 독서 감상문경영학과 201900000인터넷 검색창에 페미니즘을 치면 연관검색어로 82년생 김지영이 나온다.페미니즘의 뜻도 정확히 모르고 책을 읽어보지도 않았을 때 나는 무언가의 편견에 사로잡혀 책을 읽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곤 시간이 지나 책이 출간된지 약 3년만에 영화로 개봉된다는 소식에 책으로 읽고 싶어졌다.80년생 뿐만 아니라 50년대 아니 그전 시대의 모든 대다수의 여성들이 이책을 읽고 공감과 답답함, 그리고 사회에 대한 분노 여러 가지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90년생인 나또한 그랬다. 주인공이 놓여있는 상황과 똑같은 상황들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 처해있던 그 상황에서 김지영은 의문을 느끼지만 나는 그조차도 생각이 없었다.내가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하고 난 후부터 가게를 운영 하시던 엄마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보다 3살많은 오빠에게 밥을 차려주라고 했다. 그러면 밥을 차려줬고 오빠는 밥을 먹었다. 그리곤 오빠는 안방에 누워 티비를 보면 나는 엄마가 오시기 전에 설거지를 했다.오빠는 어렸을 때부터 학습지를 많이 했다. 나는 어리다는 이유로 학습지를 하지 못했고, 일주일에 한번씩 학습지 선생님이 오시면 오빠가 싫어해도 그옆에 꼭 앉아 수업을 몰래 엿듣고 오빠와 같이 학습지를 풀었다. 운이 좋게도 학습지 선생님이 하나 둘 내 학습지를 챙겨주시기 시작했고 무료로 강의해준 학습지 선생님에게 보답하고자 정말 열심히 문제를 풀었다.공부를 꾸준히 했던 나는, 꽤 모범생이었고 오빠보다 공부를 더 잘했다. 서울로 유학간 오빠와 비교해 집안 사정을 생각해 학비가 비교적 저렴한 지방거점국립대에 들어가게 되었고, 재학중 편입을 준비해 약학대학에 들어갔다. 형편이 좋지않던 우리집 을 걱정하시던 할머니는 여자애가 무슨 공부를 그렇게 오래하냐며 대학빨리 졸업해서 취업이나 하지 .. 축하한마디도 없이 나를 다그치셨다.차별받는 사람은 그것을 너무 잘 느끼지만 그반대 사람은 이상황을 말해주지 않으면 전혀 알지 못한다. 김지영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일들이 잘못된 차별이였다는 것을 찝어 말해준다. 가슴이 뜨끔 하도록 말이다.그리고 모순적인 것은 차별하는 사람은 그들의 행동을 오히려 명확히 알고있는 경우가 많다.엄마, 할머니께 최근들어 그때 왜그랬었어? 라고 물어보면 그땐 우리도 잘 몰랐지.. 장남이니까 오빠가 잘되면 너도 좋잖니.. 이정도로 얼버무리며 얼굴을 붉히신다.지금 우리 사회에 페미니즘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 책의 영화를 찍은 배우들에게도 수많은 악플과, 책을 읽은 유명인들에게 악플이 달리고 있다. 페미니즘. 그이유에서다. 그들에게 너희들은 페미니즘의 뜻을 정확히 알고 있는가 ? 너희들은 이 책을 읽어 보았는가? 라고 묻고싶다.사실 이 책을 남자친구가 사줬다. 처음에 내가 이책을 그에게 선물해 달라고 했을 때 탐탁치 않아했던 그의 말투가 기억난다. 내가 왜그러냐고 하니 그의 말인 즉슨 ‘그것은 페미니즘들이 읽는 책이야. 내가 잠시잠깐 보니까 내용이 남녀편을 나누고 있어.’ 가 이유였다. 그런 얘기를 듣고 책을 읽어서 그런지 책을 읽는 순간순간 괜히 그에게 짜증이 났고, 내가 조금 더 빨리 이책을 알고 그것들의 뜻을 알았다면 그가 저런말을 했을 때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할수 있었을 텐데 라고 후회도 했다.페미니즘은 남녀편을 나누것도, 차별도 아니고 여성 우월주의도 아니다. 여성의 권리와 주체성을 확장시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17 년 포스코그룹 신입사원교육 감상문 회사명 : 포스코 성 명 : 가나 다 1. 전체소감 : 본인이 느낀 전체적인 소감에 대해 작성한다 . 2 . [1 화 ~28 화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 ‘ 제철보국 , 오늘이 있기까지 ’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또는 에피소드와 에피소드에서 느낀 점은 무엇인지 작성한다 . 3. [29 화 ~46 화 ] 존경인물 및 닮고싶은 점 : ‘ 포스코의 초석이 된 사람들 ’ 중 롤모델로 삼고싶은 사람은 누구인지 또한 어떠한 점이 닮고싶은지 작성한다 . 4. 앞으로의 다짐 : 도서를 통해 학습한 내용을 기반으로 포스코그룹에서의 나의 다짐를 작성한다 . 쇳물에 흐르는 푸른 청춘들 (7) – 차관 도입의 뒤안길 한국 전쟁 이후 황무지로 변해버린 땅에서 일관제철소를 짓는다는 것은 KISA 를 필두로 한 세계 여러 단체의 행보에서 볼 수 있듯이 불가능한 일로 간주되었다 . 중공업이 아닌 경공업 중심의 국가를 만들자고 주장한 정치인이 있었던 시대상황이 반증하듯이 당시에는 먹고 사는 게 절박한 문제였다 . 포항 제철소 건설 1 기 당시에는 기사에서 볼 수 있듯 한일국교 정상화를 통한 차관을 도입한 이른바 ‘ 조상의 혈세 ’ 로 해결하였다 . 하지만 그 이후인 2 기 건설부터 문제가 되었고 , 박태준 초대 회장을 비롯한 당시 포항제철 관계자들은 고초를 겪게 되었다 . ‘ 무에서 유 ’ 를 창조한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도박으로 보였겠지만 우리에게는 절박한 일이었다 . 그러나 그들의 절박한 눈물과 땀으로 이루어진 노고 덕분에 우리는 결국 차관 도입에 성공하고 한국에는 철을 생산하는 일관제철소가 완성됨에 따라 1970 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경제 성장의 발판이 된다 . ‘ 꿈이 간절하면 그 꿈은 현실이 된다 ’ 라는 나의 좌우명과 부합하는 주제여서 기억에 남는다 . 쇳물에 흐르는 푸른 청춘들 (46) – 마지막회 현재의 POSCO 가 있기까지 수많은 선배님들께서 고생해주셨지만 제가 이원희 선배님을 꼽은 이유는 창설요원으로서 당시 거대한 문제였던 외자사업에서 막중한 역할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 선배님은 미국 유학 중에 습득한 영어 실력을 밑천으로 다소 불리했던 협상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자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합의를 도출하였고 , 중간에 서양인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도나 라틴어까지 자유롭게 활용하며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었습니다 . 저는 이 부분에서 정말로 놀라고 말았습니다 . 선배님이 1930 년 생이면 저랑 정확히 60 년 차이가 나는 굉장히 옛날 분이신데 , 그 때 당시에 높은 문화적 이해도와 영어를 비롯한 제 2 외국어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저의 부족함을 일깨워주기도 하였습니다 . 지금이야 글로벌 시대라는 말이 POSCO 에서도 화두가 된지 10 년이 지났지만 , 50 년 전에는 그런 분들이 흔치 않았을 것입니다 . 이원희 선배님과 같은 분들께서 POSCO 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협상에서 강한 힘을 발휘하여 주셨기 때문에 , 대한민국을 대표한 세계적인 회사 POSCO 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 저도 앞으로 그런 인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 쇳물에 흐르는 푸른 청춘들 ’ 이라는 기고를 읽기 전에 이미 ‘POSCO 35 주년 사 ’ 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 그래서 제가 몰랐던 혹은 잘못 알았던 부분들에 대해서 유념해서 읽어보았습니다 . 그리고 실제로 알게 된 내용이 많이 생겼습니다 . POSCO 가 창립 당시 굉장히 어려움을 겪었던 사실은 알았지만 , 그 때 당시 고초를 겪었던 분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어서 좋은 기회가 되었으며 , POSCO 가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회사라는 데 굉장한 자부심과 애사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평소에도 주변 지인들이 왜 POSCO 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는지 , 특히 나이 지긋하신 60 대 이상의 어르신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는 기업인지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6 · 25 전쟁 이후 ‘ 한강의 기적 ’ 을 이룩하게 만든 나의 기업 , 그리고 한국의 기업 , 나아가서 세계의 기업으로 나가는 POSCO 가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 감상문을 쓰고 있는 지금의 감회가 굉장히 새롭습니다 . 왜냐하면 정확히 2 년 전 오늘은 제가 산학장학생으로 선발되어 POSCO 의 일원으로 성장할 기회가 생겼던 날이기 때문입니다 . 그 날부터 회사에 대해서 굉장히 큰 애사심과 자부심을 가지고 학교 생활을 해왔습니다 . 선배님들의 기고를 읽으면서 그런 감정은 더욱 고조되었고 , 벌써부터 POSCO 의 일원으로 생활하게될 저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 앞으로 저의 첫 번째 다짐은 이렇게 대단하신 선배님들이 쌓아놓은 업적에 누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 ‘ 과유불급 ’ 이라는 말이 있듯이 너무 처음부터 의욕만 가지고 생활하여 신중하지 못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겠습니다 . 또 다른 저의 다짐은 글로벌을 지향하는 POSCO 의 현재 목표와 부합하는 영어 실력과 제 2 외국어 실력을 겸비하는 인재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 이 두 가지는 앞으로 저의 생활을 이끌 것입니다 .{nameOfApplication=S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