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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의 마지막 시간(역대상 29장 10-19절 설교문)
    “Finish Well”(역대상 29장 10-19절)저는 가끔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생각해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제게 주셨던 시간들, 인생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잘 마무리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인생이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삶의 과정은 화려했고 멋졌는데, 마지막이 초라해지고 실패한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인생을 멋지게 마무리를 하고 싶은 저의 기대와 소망은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잘 살아야 할 이유와 목적이 됩니다.여러분은 어떻게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으신가요? 그래서 그 준비를 어떻게 하면서 살아가십니까?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사람은 다윗입니다. 다윗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께 은혜와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누구보다 큰 죄를 지었습니다. 성적인 범죄를 했고, 살인을 교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마지막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평가입니다.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법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영원한 가치, 하나님에 속한 가치들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갈망하면서 살아가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다윗의 삶이 바로 그것을 잘 보여주기에 귀합니다.요즘 여러분의 마음을 강렬하게 사로잡는 것, 꺼지지 않는 갈망이 무엇인가요?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은 평소에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인가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다윗의 삶은 하나님 없이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의 삶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한 삶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의 모습입니다.저는 오늘 역대상 29장을 묵상하면서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저도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서 살다가 주님께 가고 싶습니다. 저의 인생이 이렇게 복되고 아름답게 마무리되게 해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 역시 다 이와 같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본문은 다윗이 왜 인생의 마지막에 영적인 사을 얻길 원합니다.첫째, 하나님을 인정하는 예배자의 삶을 살았습니다(10~12절)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인정하는 삶을 한 마디로 예배라고 말합니다. 예배의 영어단어 worship은 ‘합당하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을 의미하는 worth라는 단어에서 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이 지금 이 자리에 계셔도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다윗의 삶은 하나의 예배였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인정하고 산 인생이었죠. 물론 그가 범죄 했던 그 때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인정되지 않을 때, 우리가 하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범죄가 가르쳐주는 교훈입니다.하나님이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니라면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으며,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살 것입니까? 돈이 여러분의 하나님이라면, 명예와 자존심이 여러분의 하나님이라면, 성공이 여러분의 하나님이라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그 하나님을 위해서 인생의 시간을 남김없이 드릴 것이며, 그것을 얻기 위해서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다윗에게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왕이 될 것이라는 사무엘 선지자의 예언과 기름부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이었습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하나님으로 만족해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역대상 29장 11, 12절입니다.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이것은 다윗 자신의 말로 하나님에 대하여 고백한 것입니다. 자신의 영토의 광대함이나 왕위의 권능이나 전쟁의 승리들, 이 모든 것이 자기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이것들은 다 하나님께 속한 것들이며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들이고, 자기에게 주어진 은혜입니다. 풍요와 존귀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는 것이고, 사람을 크게 하고 높이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다윗은 자기의 힘으로 왕이 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 이것이 다윗이 보여주는 삶이고, 예배입니다.사랑하는 여러분,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어떻게 느끼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그 동안 여러분이 얻은 수익과 손해들을 생각해보십시오. 잘 될 때만이 아니라, 실패할 때에도 여전히 여러분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사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에서 하나님으로 인정받으시고 예배를 받으시기에 너무나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결코 우리들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실패하고 좋지 않은 어떤 일들로 인해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반대로 일어나는 좋은 일들을 마치 자기의 능력으로 얻은 양 우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삶입니다. 우리 인생에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는 찬송가의 고백은 바로 신실한 성도들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할 때 고백하게 되는 값진 예배입니다.둘째, 하나님께 감사로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13-14절)역대상 29장 13-14절입니다.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다윗의 기도는 감사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적 통치와 능력을 노래한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무엇을 감사하느냐 하면, 드릴 수 있는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예물도 하나님의 것이고 드릴 수 있는 마음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면서 감사의 행진을 계속해 가는 것입니다.사랑하는 여러분,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고백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거나 헌신을 하게 될 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까? 이 말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모르는 사람은 결코 최고의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없다.” 그렇습니다.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지 못하고 자기 힘과 자기 능력으로 이룬 것이라고 여길 때, 그는 자기 것을 하나님께 드리게 됩니다.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은 자기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해서 헌금이 힘들고 이것을 알지 못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 봉양을 해드리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결국은 불신앙이요,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를 뒤바꾸는 반역 행위입니다.여러분, 여러분의 영적 형편이 어디에 있든지 생각해보십시오.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하는 믿음,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주시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그냥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이 나를 사랑해서 독생자를 세상에 주셨다는 것에 대한 동의가 구원하는 믿음입니까? 여러분이 주님 알지 못하다가 주를 알게 되었을 때, 복음을 머리로만 알다가 가슴으로 알게 되었을 때, 성령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일어난 변화가 무엇이었습니까? 내 생명, 재산, 건강, 자녀, 내게 속한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내게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는 생소한 이야기로 들리십니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지 못하고서 어떻게 인간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겠습니까? 구원하는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근거합니다.다윗은 자기가 이렇게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릴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큰 은혜라고 하면서 감격해 합니다. 왜냐하면 주의 손에서 받은 것을 주께 드에서 계산하는 자리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결코 헌금을 더 많이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를 받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절박하게 은혜를 사모해야 하는 이유입니다.마게도냐 교회가 보여준 사례를 생각해보십시오. 고린도후서 8장 2절입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환난과 넘치는 기쁨, 극한 가난과 풍성한 연보, 결코 어울리지 않습니다. 쉽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은혜가 만들어낸 역사입니다. 마게도냐 사람들은 가난했지만 교회는 그들의 연보로 풍성하게 흘러넘쳤고, 선교의 사명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와 비슷한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마음과 헌신에 감동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성전 건축을 위하여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드린 헌금의 액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역대상 29장 6-7절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그러자 족장들과 이스라엘 각 지파의 지도자들과 군 지휘관들과 왕의 행정 장관들이 기쁜 마음으로 여호와께 예물을 드렸다. 그들이 드린 예물은 금 170톤과 8.4그램의 금화 10,000개, 은 340톤, 동 610톤, 그리고 철 3,400톤 이었다.여러분, 이것은 참으로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 그들이 귀족들이고 부자들이어서 그렇게 드렸다고 성경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쁜 마음으로 드렸다는 것이 바로 믿음으로 드렸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다윗은 참으로 감사하고 심히 기뻤습니다. 그 결과, 백성들의 마음도 감동이 되어 그들도 기쁨으로 하나님께 드리게 됩니다.이것이 역대상 29장 9절입니다. 백성들이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으니 곧 그들이 성심으로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다윗 왕도 심히 기뻐하니라하나님께서 주목하시는 것은 우리가 드리는 물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자원하여 기쁨으로 드릴 수 있는 마음이요, 믿음입니다. 이러한 복된 믿음을 소유하.
    독후감/창작| 2022.02.18| 6페이지| 3,000원| 조회(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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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효과적인 예화 사용에 관한 연구
    설교에서 효과적인 예화 사용에 관한 연구Ⅰ. 들어가는 말Ⅱ. 설교 예화의 종류1. 성경적인 예화2. 경험적인 예화3. 전기적인 예화4. 역사적인 예화5. 과학적인 예화6. 문학적인 예화7. 실물활용 예화Ⅲ. 설교 예화의 효과적인 활용방안1. 예화 사용 시 주의사항2. 효과적인 예화 사용법Ⅳ. 나가는 말Ⅰ. 들어가는 말신학공부를 처음하거나 설교경험이 적을 때는 예화에 대한 중요성을 충분히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설교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전하는 것인데 꼭 예화가 필요하단 말인가? 진리의 복음을 그대로 설명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의 이야기로 진리 설명을 대체할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목회현장을 경험할수록 더욱 절실하게 깨닫는 것이 예화와 적용의 필요성이다. 목회적인 마음이 깊을수록 본문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청중에 대한 관심과 배려도 깊어지며 무엇을 전할 것인가 고민하는 만큼, 어떻게 가장 쉽고도 호소력 있게 전할 것인가의 관심도 늘어나게 된다. 물론 예화를 사용하지 않고 진리는 얼마든지 선포되고 설명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예화는 진리를 설명하고 전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해돈 로빈슨(Haddon W. Robinson)은 예화를 사용하면 관념을 실제 경험과 연결시켜 줌으로써, 반복하고 설명하고 증명하고 적용하는 데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의 기억 속에 진실이라는 못을 박기 위해서는 이를 여러 번 때려 줄 필요가 있는데, 예화를 사용하면 청중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같은 진리를 다시 한 번 전달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예화는 마치 텔레비전 화면과 같이 설교자가 하는 이야기를 보다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보여주는 것이다.”류응렬은 적절한 예화로 청중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한다. “설교에서의 예화는 본문과 현실을 이어주는 창이다. 적절한 예화 하나는 신학적인 변증이나 화려한 수사학적 설명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설교를 전달하게 한다.”라고 말한다. 이런 필요성을 볼 때 예화는 효과적이고 능력 있는 설교를 위한 필원천이 된다는 말씀이다. 단, 주의 할 것은 성경의 예화를 사용할 때 뻔한 예화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청중에게 신선함을 주기 위해 현대적인 색깔을 입히는 지혜가 필요하다.2. 경험적인 예화예화 가운데 생동감이 있고 실제적인 예화는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을 예화로 사용하는 것이다. 존 오트버그(John Ortberg)는 자신의 경험 이야기를 예화로 사용하면서 설교자가 청중들과 같은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란 것을 알려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예화의 가장 큰 재료는 사람들 자체라고 한다. 사람들에게는 삶이 있고 이야기가 있어서 깊이 있는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 경험적 설교는 다른 사람의 경험으로부터 가져올 수도 있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과장된 이야기나 타인의 인격을 무시하는 등의 행위이다. 그러므로 타인의 경험을 말할 때는 그 사람의 사전 허락이 우선되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목적에서 사용하려고 할지라도 관련된 사람이 개인 사생활을 이유로 예화에 사용되어지는 것을 꺼려한다면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경험적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만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Robinson도 자신의 경험을 예화로 들 때 세 가지 일반적 법칙을 주의해서 따라야 한다고 제시한다. 첫째, 이용되는 예화들은 사실이어야 한다. 둘째, 이를 전달하는 태도는 겸손한 것이어야 한다. 셋째, 항상 설교자가 영웅처럼 묘사된 예화들은 교인들이 일반적으로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는 설교자 자신의 예화를 들 되, 결코 자신을 영웅화시키거나 교만히 자신의 자랑을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시사한다.3. 전기적인 예화전기적 예화는 설교의 메시지를 청중의 구체적인 삶 속에 적용시키고 결단하기 위한 방법으로 효과가 크다. 인간의 이야기이며 실제 생활 속에서 있었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김광웅은 청중은 한 개인의 실제 경험 속에서 나타난 한 사람의 삶에 대해 큰 감명을 받는다고 한다. 어떤 한 인생의 경험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때로는 그 개인적인 삶이 혀 다른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는 방법과 오히려 과학은 성경의 사실을 증명해 주는 도구로 보는 방법으로 양분된다. 따라서 과학을 예화로 사용할 때에는 성경의 진실과 과학이 배치되지 않는다는 전제를 분명히 해야 한다. 과학계에는 여러 계통의 일들이 있을 수 있다. 천문학, 식물학, 화학, 지질학, 물리학 그밖에 자연과학 속에도 많은 과학적 예화들을 들 수 있다. 특히 우주과학의 급진전을 보고 있는 현대 속에서 이들 과학을 잘 살피면 성경 예언의 성취가 너무 많이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과학은 성경의 진실을 명백히 해 주는 도구라는 전제에서 출발할 때, 과학적 예화는 초 신자들 또는 지식인들에게 큰 설득력이 있다.6. 문학적인 예화사람들은 때로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흥분하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소망을 가지기도 한다. 문학 작품은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삶의 모습과 인간의 내면세계를 잘 그려내어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감동을 받는 도구가 된다. 문학작품을 통해 타인의 경험을 대신하여 나눔으로써 인간 본성과의 친분을 확장시킨다. 특히 소설은 인생을 매우 생생한 표현하고 있다. 설교자는 문학 작품을 통해 좋은 예화를 전달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좋은 문학 작품을 읽고 그 책을 통해 예화를 발굴하여 전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목회자는 책을 읽어야 한다. 목회자가 책을 읽는 것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 사항이다. 우리는 혼자 해낼 수 없다. 우리의 성경 연구는 성경의 단락들을 우리보다 많이 연구한 학자들의 통찰력을 통해 풍성해져야 한다. 게으른 자들이나 어리석은 자들만이 설교를 준비할 때 주석을 무시한다. 그러나 우리는 설교와 직접 관련이 없는 책도 읽음으로써 더 넓은 시각을 가져야 한다. Robinson은 “독서를 할 때 설교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료들이 발견되면 그때그때 기록하기 위해 항상 펜과 종이를 주위에 준비해 두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고 말하며 독서는 설교를 위한 무한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고 밝혔다.7. 실물활용 예화실 분명한지를 꼭 확인해야 한다. 예수님은 예화를 사용하실 때 항상 사실에 바탕을 두셨다. 예화를 인용할 때 설교자는 청중에게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 만큼 자세한 것들까지도 아는지 확인해 보아야 한다. 허위나 믿을 수 없는 예화는 조심해야 한다. 사실이 아닌 사건을 사실처럼 이야기하고 싶은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신빙성이 없는 예화는 오히려 설교의 진가를 떨어뜨린다. 남의 경험을 자기의 것 같이 이야기한다든지 만든 이야기를 실화처럼 이야기하면 안 된다.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화 사용에 있어서 사실성은 예화의 생명과 같다. 강단을 망치는 예화는 거짓되고 과장된 예화이다. 예화를 인용할 때 출처를 분명히 하고 예화 자체의 흥미와 관심을 위하여 내용을 과장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진실하신 하나님을 증거 하는 설교자는 진실해야 한다. 진짜이야기를 전하자.2) 단순성적절한 예화는 간결하고 선명한 예화이다. 너무 길고 많은 예화를 사용해서 본문의 핵심 메시지를 가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예화의 개수가 적당해야 한다. 적당한 수의 예화는 메시지 전달의 효율을 높여주지만 지나치게 많은 예화는 오히려 설교에 부담을 준다. 예화의 길이도 적당해야 한다. 너무 길어서 본 메시지보다 예화가 터줏대감 노릇을 하게 해서는 곤란하다. 본 경기보다 오픈 게임이 더 긴 격이다. 과도하게 긴 예화는 메시지를 위축시킨다.그러므로 설교의 예화는 단순하면서도 그 본문에 가장 적절한 예화이어야 설교의 효과가 극대화된다. 간결하고도 바른 기능을 하는 예화가 좋은 예화이다. 설교를 할 때 무분별하게 예화를 남발해서는 안 된다. 한 예화로 한 가지 것만 예시해야 한다. 예화는 복합적인 포인트를 갖지 않는 것이 좋다. 즉 설명이 필요한 예화는 피하라는 것이다. 어떤 것을 설명하기 위해 예화를 들었는데 그 예화가 이해하기 어려워 또 설명을 해야 한다면 곤란하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남용하면 해로운 것처럼 아무리 좋은 예화라도 한 편의 설교에서 너무 많이 사용하게 되면 않으며, 적실성이 없는 예화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 말씀을 청중에게 전달하는 신령한 지혜가 필요하다.2. 효과적인 예화 사용법설교에서 예화 사용 시 주의할 점을 살펴보면서 이제는 예화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바람직한 예화 사용의 원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적절한 예화의 효과적인 사용을 통해 강단에서 청중에게 들리는 설교를 할 뿐 아니라, 말씀의 적용과 실천을 통해 청중의 변화를 가져오는 설교로 나아갈 수 있다.1) 구체적인 예화를 사용하라설교에서 구체성은 중요하다.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듯이 구체적으로 말할 때 선명하게 다가온다.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것보다 구체적인 표현이 청중의 귀에 들리게 한다. 구체적으로 사용하라는 것을 예를 들면, ‘무기’라고 하기보다 ‘권총’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자동차라고 하기보다 89년형 토러스라고, 죄라고 하기보다는 간음이라고, 그리스도의 고난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리스도의 손바닥을 관통한 못이라고, 경찰이라고 하기보다는 손 등에 상처 자국이 있는 45세의 몸집이 큰 시카고 로버트 형사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이야기할수록 예화 사용에 효과적이다.라슨(Lason)은 구체성은 청중들로 하여금 사물을 더 잘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파괴력이 있으며 구체성은 청중을 유혹하는 동시에 그들의 집중을 유도한다.라고 말한다. 설교자가 예화를 사용할 때도 청중이 경험하는 사건에 기반을 둔 것을 채택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보통 교인들에게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성인들 얘기나 고전 문학의 인용과 같이 청중과 설교자의 삶의 영역에서 벗어난 설교보다는 설교자의 삶의 일화나 모본이 더 효과적이며, 가능하면 설교자와 청중이 함께 경험했거나 겪을 수 있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생활 얘기를 구체적으로 예시하는 것이 좋다. 그것은 청중들이 그리스도의 인도하심 아래서 자신들도 이런 문제를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길 수 있는 여지를 주고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통제 안으로다.
    인문/어학| 2022.02.18| 11페이지| 6,000원| 조회(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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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편 13편 설교문
    시편 13편☆ 설교 개요:본문 : 시편 13편 1-6절제목 : 어둠의 터널에서도 소망을 노래하라!메인 아이디어 : 영적 번민이 지속될 때 신앙에서 승리하는 법서브 아이디어 : 절망과 소망 사이에는 기도의 다리가 있다!1. 절망 : “주님, 언제까지이니까?”(13:1-2).2. 기도 : “구원의 빛을 비추소서!”(13:3-4).3. 소망 : “내가 주님을 노래하리라!(13:5-6).◇ 전개 방식:_ 도입 : 영원히 고난이 지속될 것만 같은 두려움이 때로는 우리 영혼을 짓누른다._ 문제 제기 : 고난의 끝이 언제일지 모를 때, 얼마나 답답하고 힘겨운가?_ 본문 해석 : 영적 번민과 신앙의 승리_ 대지 : 영적 번민이 지속될 때 기도를 통해 신앙의 승리를 확신한다.1. 시험이 오래 계속될 때 하나님께 호소하십시오(1-2절).2. 절박한 위험에서 도움을 위해 기도하십시오(3-4절).3. 여호와의 사랑을 의지하며 신앙의 승리를 확신하십시오(5-6절)._ 결론 : 영적 번민이 지속될 때, 여호와의 사랑을 의지하며 신앙의 승리를 확신한다.◇ 기대하는 청중과 효과적인 설교 전략:① 삶의 갈등과 고난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확신을 잃어버린 성도들에게 다시금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로 나아가도록 격려한다.② 고난 중에 경험하는 하나님의 침묵과 부재는 신앙의 뿌리를 흔들 만큼 강력하다. 그럴 때라도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지 말씀을 통해 깨닫도록 돕는다.◇ 본문 관찰:◆ 비탄 시, 애가에 속하는 시편 13편은 3연으로 구성된다. 1-2절은 의문문이고, 3-4절은 명령형이며, 5-6절은 직설법 및 의지를 나타낸다. 이 시에서 다윗은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질문(1-2절)으로부터 시작해서 구체적인 간구(3-4절)로 진행하다가 변함없는 신앙에 대한 확신(5-6절)으로 흐름을 이어간다.◆ 이와 같은 사고의 흐름을 명확히 이해하고 나면 시인의 사상을 질문과 간구, 그리고 확신을 세 가지 관점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 내용을 ‘다윗의 번민과 신앙적 두려움이 우리를 짓누른다. 시인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련 앞에 처해 있다. 하지만 끝까지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겠다고 고백한다. 시인은 극심한 고통과 박해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그의 도움을 구함으로써 위로와 힘을 얻는다. 자신의 고통을 넋두리처럼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에 호소함으로 절망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신뢰와 소망으로 나아간다.◇ 본문 내용 분석1절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어느 때까지니이까’(How long)라는 질문은 시편에서 자주 보이는 전형적인 탄식의 표현이다.(6:3;89:46;90:13;94:3). 이런 탄식의 표현은 하나님께서 시인 자신을 속히 구원해 달라는 단순한 애원이나 절규가 아니며,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로는 잠시로도 지낼 수 없는 존재라는 고백을 배경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갈망하는 표현이며 얼마나 원수들의 핍박이 심한지 짐작할 수 있다.‘주의 얼굴’ 하나님의 얼굴은 인간과 달리 육체를 지니지 않은 순수한 영이신 하나님을 인간과 유사한 모습 또는 인간의 품성을 지닌 것처럼 묘사한 신인동형동성론적 표현이다. 얼굴은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관심, 사랑을 나타낸다. 따라서 하나님이 얼굴을 숨기신다는 것은 시인을 향하여 아무런 관심과 은총을 베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서 실제로 시인에게 그렇게 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시인이 마치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것 같이 느낄 정도로 곤고한 지경에 처해 있음을 호소하면서 긍휼하심을 간구하고 있다.2절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나의 영혼이 번민하고’라는 말은 너무 심한 고통으로 인하여 머리속이 너무나 복잡하고 혼란한 상황이 된 것을 뜻한다. 그 이유는 원수들이 득세한 가운데 시인을 괴롭히며 핍박하며 비웃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3절 여호관계가 단절된 상태, 곧 영적인 죽음의 상태를 말한다. 시인은 여호와의 구원이 없으면 자신이 원수에게 육적 죽임을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 여호와께 신앙을 잃고 원수들에게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시인은 넘어지겠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지 않도록 주님께 붙들어달라는 호소를 하고 있다.4절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여기에서 시인은 원수들이 승리하는 것은 한 개인에 대한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반대되는 불의한 승리인 것을 강조하고 있다. 즉 불의한 자들이 승리를 노래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므로, 다윗은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께 속히 구원을 베풀어 주실 것을 강하게 호소한다. 이처럼 성도는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제일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간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함을 교훈한다.5절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주의 사랑(헤세드:???)’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은총을 가리킨다. 성경에서 이 용어는 종종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신 것, 또는 그 언약에 대해 신실히 이행하시는 것을 나타낸다. 이때 하나님의 약속 이행은 그 약속에 대한 의무 이행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자기 백성이 먼저 그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지켜야 할 하등의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로 약속을 지켜주시는 것이 ‘헤세드’이다. 시인이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다는 것은 은총으로 끝까지 구원의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께 대한 절대 신뢰의 고백이다. 그리고 그의 기쁨은 이 같은 신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여호와를 진실로 신뢰하는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다.6절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은덕을 베풀다(가말:???)’는 ‘갚다, 보상하다’는 뜻이다. 시인이 자신의 기 만큼 강력하다. 그럴 때라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지 오늘 본문이 보여준다.절망 : 시인이 절망 가운데서 하나님을 향해 갈급하게 부르짖고 있다(1-2절).원수들이 믿음의 사람들을 계속 억누르기 때문이다. 고통당하는 자의 비탄한 심정은 “어느 때까지” 기다려야 하느냐고 하나님께 네 번이나 묻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절규의 강도가 점점 강해진다. 여호와로부터는 아무런 도움도 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의지하는 다윗의 믿음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마음이 무겁고 여호와가 그 얼굴을 숨기시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여호와 앞에 더욱 더 그 사정을 아뢰는 것이 믿는 자의 태도이며, 이것이 거룩한 훈련이다.기도 : 시인이 하나님께 간절히 매어 달린다(3-4절).탄식이 마침내 기도로 이어지며 주님을 향해 세 가지 기도를 올린다. 나를 생각하소서, 응답하소서, 나의 눈을 밝히소서이다. 이것은 번민하고 근심함으로 인해 쇠약해진 자신을 회복시켜 달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망의 잠, 곧 죽음을 방불케 하는 고통가운데 빠지게 될 것이다. 이는 육적으로나 영적으로 한계점에 다 달았음을 아뢰고 있다. 시인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것은 원수들이 “우리가 너를 이겼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시인은 주님을 향해 그런 상황에 이르지 못하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자신이 넘어진 것, 곧 겉으로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듯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원수들이 의기양양하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것이다.소망 :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회복되었음을 보여준다(5-6절).시인은 앞서 죽음의 공포에서 구원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지만, 이제는 그 공포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리라는 확신으로 가득 차 그 구원을 기뻐한다. “내가 한결같은 주의 사랑을 의지하고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라” 과거에 구원을 베푸셨던 하나님이 앞으로도 구원을 베푸시리 라는 확신은 큰 위안이 되는 동시에 소망을 갖게 한다. 시인의 기쁨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완전히 회복함에서 오는 기쁨이다. 원수들의두 번 좌절하다가 점점 모든 일에 자신감이 없어집니다. 더 이상 용기가 나지 않아요.나름 예수님을 잘 믿는 것 같은데도 답답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나 홀로 암흑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 같습니다. 육신은 피곤하고 영혼조차 지쳐갑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신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다 하게 됩니다. 언제까지 이래야하는지를 모른다는 게 우릴 더 숨 막히게 합니다.오늘 본문 시편 13편은 다윗의 비탄(悲歎)시입니다. 이 시를 지은 시기와 구체적인 상황은 알 수 없으나, 다윗 역시 이런 위기 가운데 있습니다. 다윗은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사울 왕으로부터, 왕위에 오른 후에는 대내외의 정적들로부터, 노년에는 친아들 압살롬으로부터 끝없는 핍박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이런 생의 극심한 핍박과 고난 속에서 결국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본문 말씀을 통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먼저,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합니다.1-2절을 읽겠습니다.여호와여 어느 때까지이니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1절과 2절에서 반복되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바로 ‘어느 때까지’라는 말을 4번이나 반복됩니다. 반복은 강조의 의미가 있죠. 새 번역이나 공동번역에서는 “언제까지”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기한이 언제까지 입니까? 하고 정보를 직접적으로 묻는 말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누구를 보고 “너는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래?” 라고 말을 하면 그러고 있지 말라는 말이죠. 마찬가지로 어느 때까지 입니까? 하는 것은 이 고통을 속히 없애 달라는 한탄의 목소리를 강조합니다. 지금 시인의 감정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잊으신 것 같다고 불안해하고 있습니다.민수기 6장 24-26절에서 제사장의 축복기도를 보면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독후감/창작| 2022.02.18| 9페이지| 3,000원| 조회(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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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은 누구와 동행하십니까(역대하 18장 28절-19장 3절 설교문) 평가B괜찮아요
    설교문당신은 누구와 동행하십니까?(대하 18;28-19:3)인생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보다 누구와 동행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잠언에는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동행하면 해를 얻는다’고 하죠. 다시 말해서 우리 인생의 수많은 문제들이 무수히 다가올 때, 그것을 ‘어떻게 푸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문제를 ‘누구와 함께 푸느냐’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죠. 연말을 보내며 코로나 팬데믹으로 혼란스러운 위드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는 더 절실한 문제입니다.죄로 물들고 어리석은 인생은 어떻습니까?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경향이 있지요. 죄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져 있는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이 더욱 심합니다. 죄인들은 자기가 듣기에 달콤한 말은 다 하나님의 말씀이요 진리라고 생각하고, 반대로 자기 마음에 거슬리는 말은 사기꾼의 말이고 거짓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지극히 어리석은 것입니다. 오늘은 이처럼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다가 파멸한 아합의 모습을 통해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지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또한 여호사밧의 실책을 반면교사 삼아 과연 우리 인생을 누구와 동행하며 살 것인지 결단하며 마음을 새롭게 하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역대하 17-20장까지는 남 유다 여호사밧 왕에 대한 내용으로, 역대기에서 히스기야 왕 다음으로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합니다. 이처럼 여호사밧에 대해 많이 다루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역대기의 주제를 잘 드러내는 인물이 바로 여호사밧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사밧은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다”라는 귀한 이름의 뜻을 가지고 있어요. 여호와를 전심으로 섬겼던 여호사밧이 시간이 지날수록 초심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18장 28절에 보면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니라 라고 시작합니다.선대 왕 때까지만 해도 원수처럼 싸우고 대치하던 유다와 이스라엘이 어떻게 갑자기 화해 모드로 바뀌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사돈지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 왕 아합의 딸 아달랴가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과 결혼합니다. 사실 이것은 엄밀히 말해 정략결혼이죠.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혼인을 통한 동맹과 협력은 힘을 합쳐 외세의 침략에 대처한다는 점에서는 바람직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세상 논리로 보입니다. 잔머리를 굴리며 정치적 계산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살펴야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를 보면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사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좋은 왕입니다. 왕위에 오르자마자 거룩한 개혁을 단행했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군사력, 경제력으로 큰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치명적인 실수는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동시에 우상 숭배자이며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악한 아합과 사돈 관계를 맺고 동맹을 합니다. 결국 이것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의 불씨가 된 것이죠.시편 1편1절에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한다고 하였고, 잠언 24장1절에는 “너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기도 원하지 말지어다”고 하였습니다.사랑하는 여러분,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복음 전파를 위해 불신자와도 평화의 관계를 유지해야 하겠지만, 불신자와 함께 깊이 교제하고 그와 짝하여 악한 일을 도모하고 연합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태도의 비참한 결과를 오늘 본문에서 정확히 보여줍니다. 참 선지자 미가야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아합과 여호사밧의 연합군은 길르앗 라못으로 나아가죠. 미가야의 예언은 예상했던 대로 아합에게 통하지 않았습니다. 아합 왕은 미가야가 언제나 자신에게 부정적인 말을 하는 선지자로 여기며 그의 말을 애써 외면합니다. 그를 감옥에 투옥시키는 것으로 일단락을 짓고 길르앗 라못을 공격하기 위하여 올라갑니다.아합은 욕망이라는 전차를 이끄는 선봉장 입니다. 아합이 길르앗 라못과의 전쟁에 참여한 것은 예고된 수순이죠.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아합도 실제 전쟁에 들어가니까 미가야의 예언이 자꾸 마음에 걸렸던 것 같습니다. 18장 2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는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이스라엘의 왕이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니라유다 왕 여호사밧에게는 그대로 왕복을 입게 하고 아합 자신은 마치 왕이 아닌 것처럼 일반 병사 복장으로 변장하여 병사들 틈에 숨어 들어갑니다. 자신을 위장하고 신분을 깜쪽 같이 감추면 죽음을 면할 수 있겠다는 얄팍한 생각에 사로 잡혔습니다. 사실 옛날부터 전쟁이 수세에 몰리면 충신들이 왕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옷을 서로 바꿔 입고 적을 유인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자기가 살겠다고 전쟁이 시작도 하기 전에 왕이 먼저 옷을 바꿔 입으면서 행동하는 것은 참으로 보기에도 민망하고 비겁합니다.아합의 마치 눈 가리고 아웅하는 행동을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스스로 살아보기 위해 온갖 힘을 다 쓰는 죄로 물든 어리석은 인간의 실체를 발견하게 됩니다. 30절에 보면, 이제 전투가 시작되니까 아합의 예상대로 아람 왕은 지휘관들에게 오직 이스라엘 왕만 찾아 집중 공격하라고 합니다. 아합을 찾던 아람 군대는 여호사밧의 왕복을 보고 공격하러 달려 들었는데, 여호사밧이 소리를 치니까 그 소리를 듣고 아합이 아닌 것을 알고 돌이켜 다른 데로 갑니다. 사람의 눈은 잠시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하나님의 섭리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상황을 감찰하시며 죄를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믿으십니까?18장 33절을 읽겠습니다.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쏜지라 왕이 그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려 나를 진중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아람의 군인 한 명이 무심코, 우연히 활을 당겨 쏜 것이 일반병사로 위장한 아합의 갑옷 솔기, 즉 갑옷 중에서 가장 취약한 이음새 부분에 명중합니다. 이곳을 정통으로 맞추는 것은 거의 기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무심코”라는 말을 주목해서 보십시오. 아람 군사는 아합 왕을 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쏜 것인데,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아합은 변장까지 하면서 살려고 버둥거리며 최선의 노력했지만, 불꽃같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사랑하는 여러분,위험 중에 진정한 대비책은 민낯으로 엎드려 순종하는 것이지 자신을 감추며 변장하여 속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파멸로 달려가는 지름길입니다. 그 어떤 인간의 보호 장치도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결코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아직 주어져 있을 때, 빨리 마음을 돌이켜 회개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한편, 이 전쟁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여호사밧이 깨달아 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정확한 뜻을 물어야 한다며 아합에게 제안한 사람이 바로 여호사밧입니다. 또한 미가야의 선포를 통하여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사밧이 아합과 함께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은 쉽게 이해가되지 않는 대목입니다.필시 아합의 권고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북 이스라엘 보다는 남 유다의 힘이 약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선택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결코 신앙적인 선택이 아니죠.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살려달라고 부르짖습니다. 위기 중에 빛을 발한 간절한 간구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3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병거의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이르되 이가 이스라엘 왕이라 하고 돌아서서 그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매 여호와께서 그를 도우시며 하나님이 그들을 감동시키사 그를 떠나게 하신지라여호사밧의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셔서 그의 목숨을 구해주십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 죄 가운데 마땅히 죽을 목숨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인해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 무조건적인 은혜입니다.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여호사밧을 기다린 건 선견자 예후의 꾸중이며 그것이 19장 1절-3절의 내용입니다.
    독후감/창작| 2022.02.18| 5페이지| 3,000원| 조회(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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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희천목사 "내가 사랑한 성경" 소감문
    성경을 사랑하니 인생의 길이 보이더라- 박희천 「내가 사랑한 성경」을 읽고 -우선 「내가 사랑한 성경」이라는 책 제목만 봐도 저자에게 성경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오롯이 드러난다. 이 책의 저자인 박희천 목사님을 처음 뵌 건 신학대학원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느 채플 시간이었다. 영적 성숙을 위해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피상적인 권면이 아니라,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목사님의 간절한 외침이 지금도 귓가에 또렷하다. “신학생 여러분들, 최소한 하루에 구약 3장, 신약 1장은 보아야 합니다. 신학교 3년 마치면 자동적으로 성경 전문가가 된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그리 알다가는 큰일 납니다. 신학교 졸업하고 목사고시 마친 다음날부터 당신들은 성경 유치원에 재입학해야 합니다. 그때부터 목숨 걸고 성경을 따로 연구해야 합니다.”그 당시에는 박목사님의 권면대로 죽을힘을 다해 성경을 읽어야지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요즘에는 그런 결심이 너무나 희미해지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담임목사님을 통해 박목사님의 자서전을 소개받고 단숨에 읽게 되었다. 마치 신대원 졸업을 앞둔 마음으로 책 속으로 들어갔다. 이 책을 통해 깨닫고, 느낀 점을 몇 가지 정리해보고자 한다.첫째, 성경은 어둠을 밝히는 빛이요, 인생의 길이다.1920-60년은 우리나라가 지독한 암흑기를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그 차갑고 어두운 시절에 한 줄기 빛처럼 또한 인생의 길이 되어준 성경을 저자는 본문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성경 덕분에 목숨을 건졌으니, 성경에 목숨을 거는 게 당연하다.” 그는 피난길에 성경을 가지려고 다시 집으로 향했던 12초로 인해 순경의 눈을 피하게 되어 목숨을 건지게 된다. 순전히 성경 덕분에 살아난 것이다. 그 후에도 아홉 번의 기적이 연달아 그를 밀어내면서 북한을 탈출해 삶의 기반이 전혀 없던 남한에서 말씀 사역자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 할 수 있게 된다.이것은 비단 그 시대뿐만 아니라,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르는 지금 상황에서도 적용된다.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영적 피난민처럼 갈 길을 몰라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내면에서 “이 길이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라는 질문을 마주할 때, 혹은 누군가 우리에게 길을 찾는 질문할 때 오직 성경만이 빛이요 인생의 길임이 답임을 다시 한 번 확신케 해주었다.둘째, 성경은 먹는 만큼 줄 수 있다.이 시대는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근(암8:11)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말씀 사역자로써 어떻게 하면 양 떼에게 영의 양식을 먹일 수 있을까 늘 고민하고 찾게 된다. 이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너무나 명쾌하고 성경적이다. “성경을 먹어야 성경이 나옵니다.” 이것은 심은 대로 거둔다(갈6:7,8) 라는 성경의 원리와 동일하다. 평신도뿐만 아니라 영혼의 책임을 맡은 목회자일수록 이 준엄한 원리를 바로 알고 실천하는 지혜와 능력이 요구된다. 더 나아가 저자는 “성경공부에는 한 방이 없다”라고 강조하면서 성경연구는 마치 뜨개질과 같다고 말했다. 한 코 한 코 통과하지 않고는 늘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 내용을 깊이 묵상하면서 인스턴트 간식 위주의 영적 식습관에서 벗어나 주식 즉 성경에 충실해야 할 것을 다짐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로부터 영적 배부름이 시작되고 흘러가야할 책임감이 있음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셋째, 성경 사랑은 영혼사랑으로 이어진다.저자의 성경 사랑은 양 떼를 위한 지극한 사랑으로 이어졌고, 한국교회 목회자들을 일으키는 귀한 초석이 되었다. 이것은 책의 여러 곳에서 생생한 간증으로 이어진다. 본문에서 저자는 "심방, 특히 대심방 때 목사의 할 일은 마치 왕진 가는 의사와 같다"고 밝힌다. 아픈 환자에게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듯 대심방 때 목사는 성도들의 집과 사정과 형편이 어떠한가를 정확히 알아 성도의 심령을 치료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내용을 중심으로 저자의 청년기와 내수동교회 목회 여정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유익했다. 이는 한국교회 역사의 계보를 잇는 큰 물줄기이다. 지금의 삼일교회 못지않게 청년부흥의 시발점이 된 내수동교회 부흥의 중심에는 말씀의 강력한 능력이 있었음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성경 사랑, 영혼사랑으로 심어진 한 알의 밀알이 푸르른 의의 나무가 되어 한국교회를 살리고 세우는 든든한 기둥이 된 것이다.
    독후감/창작| 2021.05.18| 2페이지| 2,000원| 조회(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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