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어체계 혹은 경어법은 한국어의 가장 큰 특징이다. 언어의 사회성과 문화와의 상호 교환적 관계를 고려해보면 이러한 경어법의 발달이 한국의 사회적 혹은 문화적 특성에 의해서 발달이 되었고 또다시 경어법의 발달이 한국의 사회와 문화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제시된 고종석과 최봉영의 자료에서는 그러한 영향이 민주주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쳐 한국어 경어법 체계의 지나친 발달이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보고 있다.‘국어 문법에 높임법이 발달한 이유는 상하관계를 중시하는 우리 민족의 사고 방식이 문법 범주에 반영된 것이다’ 라고 고등학교 국어생활 교과서에 명시되어 있듯이 효(孝)와 예(禮)를 중시하는 유교 사상의 영향과 함께 계층화와 서열화의 필요성에 의해서 한국어의 경어체계가 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계층화와 서열화의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한국어의 경어체계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긍정적 기능보다는 고종석의 글처럼 사회적 위계 질서를 위해 태어났고 다시 위계 질서를 공고히 하는 버팀목이라는 부정적 기능을 더 많이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위계 질서는 엄연히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계 질서를 확립하는 요인인 경어체계는 민주주의에 적대적이다 라는 논리는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생각한다.과거 신분제 사회에서 신분이 서열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였다면 신분제가 폐지된 현대 한국 사회는 나이, 직책, 더 나아가서는 성별까지도 위계를 형성하는 요소가 된다. 같은 내용의 대화가 한국어와 영어 혹은 여타 다른 언어로 제시되어 있을 때 굳이 위계 질서라고 표현하지 않더라도 두 사람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 한국어가 훨씬 수월함을 알 수 있다. 하다못해 경어법이 일체 쓰이지 않은 문장에서 조차도 호칭만으로 누가 더 ‘높은’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A : 언니, 밥 먹었어?B : 아니라는 문장을 봤을 때 한국어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B가 A보다 나이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언니, 오빠, 누나, 형 등의 호칭은 한국처럼 의해서든 직분에 의해서든 서열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서열로 정해진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그 친소 관계를 떠나서 서로 동등한 관계라고 인정한 대화와는 형식과 내용 등 모든 면에서 사뭇 다를 수 밖에 없다. 본인은 낮춤말을 사용하지만 상대방은 높임말을 사용하는 관계와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그 두 상대와 갖는 대화 형식과 내용은 물론 그때의 마음가짐과 행동의 차이점이 있을 것이다. 일상적인 생활에서 이러한 점이 불편하거나 어떠한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렇게 설정된 관계의 대화가 조금 더 공식적인 대화의 영역인 토론으로 옮겨 갔을 때는 상황이 달라짐을 알 수 있다.민주주의 절차 과정의 핵심인 토론의 중요성은 높아져가지만 정작 우리 사회에서 토론의 역할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토론의 어려움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 앞에서 꼬박꼬박 반박하는 것이 꼭 대드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혹은 최봉영의 글에서처럼 자유 토론을 제안했던 상급자가 불리한 분위기에서 겁을 주기도 한다거나 수세에 몰린 ‘높은’ 위치의 사람이 토론과는 전혀 관계 없이 말 하는 태도에 대해서 언급하는 경우 등에서 보여지듯이 한 쪽에서는 높임말을, 다른 한 쪽에서는 낮춤말을 사용하는 관계에서 자유로운 토론은 힘든 일처럼 보인다. 반면에 인터넷에서의 토론 형태를 살펴보면, 인터넷 사용의 증가 때문일지는 몰라도, 실제 생활에서 대화를 하는데 필요했던 요인들, 위계 질서를 형성하기 위해 필요했던 요인들 없이 모두 높임말을 쓰거나 모두 낮춤말을 쓰는 인터넷이 보다 활발한 토론의 장임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경어체계는 오히려 자유로운 토론 문화를 형성하는데 걸림돌이 된다고 볼 수 있다. 해외에서 외국인과 격렬한 논쟁을 벌이던 한국인이 대뜸 “How old are you?” 라고 말해 외국인을 당황스럽게 했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을 통해 떠돈 적이 있었다. 실제 사례인지는 알 수 이 경어체계는 우리 생활에서 수직적 관계를 확립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다른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이러한 논리에 대해 몇 가지 의문점이 생기게 된다. 고종석과 최봉영의 자료와 그들의 다른 글에서 나타나듯이 그들은 경어법이 엄격한 한국어를 권위적이고 지배적인 언어로 상정한다. 그로 인해 수직적 관계가 발생하고 언중 간의 연령, 지위와 관계없는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지고, 결국에는 이것이 민주주의 발전을 방해한다고 본다. 자유로운 의견 표출은 분명히 어느 정도 민주주의 발전에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경어법이 엄격하지 않은 언어의 사용이 얼마만큼의 자유로운 의견 표출을 수반할 것인지, 그리고 연령, 지위와 관계없는 의사소통이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관념의 형성에 얼마큼의 영향을 끼치는 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영어는 한국어에 비해서 존칭에 대한 구속이 적다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영어를 사용하는 사회는 탈권위적이고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형성되는 사회이어야 할 것이다. 영어를 사용하는 대표적인 두 나라 영국과 미국이 현재는 탈권위적인 사회라고 한다면 그들이 그러한 사회를 형성한 배경에는 영어 사용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영어의 힘이 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회 내에서도 여전히 권위적이고 지배적인 체제가 존재하며 또한 그 나라가 영어를 사용하며 살아 온 시간 중에서 비민주적이었던 시간이 민주적이었던 시간보다 훨씬 길었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영화를 예로 드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영화가 현실의 단면을 반영한다고 봤을 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The Devil Wears Prada, 2006)’라는 영화에서 그 예가 잘 나타난다. 영화에서 ‘미란다’라는 편집장은 회사 내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며 미란다 아래의 직분에 있는 사람들은 무조건적으로 그녀의 의견을 따라야 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회의 중에도 그녀에게 자신있게 의견을 표출하는 사람은 드물며 일방적으로 그녀의 의견이지 않는 것이 아닌 것이다. 고종석의 자료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들의 민주주의 정도가 들쑥날쑥한 것처럼 한 언어의 경어체계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의 짜임새 사이에 필연적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서양인이 본 한국어 경어법’이라는 글에서 필자는 한국어의 경어법을 결정짓는 사회적 요소를 결속, 지위, 친교, 격식, 공손함 다섯 가지로 꼽았다. 하지만 이 다섯 가지 요소가 꼭 한국어의 경어법에만 해당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 나라 내에서 언어를 통해 실현되는 의사소통 상황에서도, 그리고 한 언어를 배우는 외국인의 입장에서도 이 다섯 가지 요소가 언어 행위에 큰 역할을 한다고 본다. 혹자는 영어에 존댓말이 없다고 하고, 영어에도 존댓말이 당연히 존재한다고 한다. 일본어를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는 일본어가 겸양어를 포함하여 경어법이 한국어보다 더욱 복잡하다고도 한다. 이러한 차이는 위의 다섯 가지 사회적 요소에 의해서 달라지는 언어의 표현을 어떻게 받아들였느냐에 차이가 있다고 본다.예를 들면 영어에서 can/will/may 보다 정중한 표현으로 could/would를 사용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더 정확하게는 각 상황에서 위의 다섯 가지 사회적 요소가 어떻게 반영되느냐에 따라서 could와 would까지도 각기 다른 뉘앙스를 전달해 준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영어는 존댓말이 없다는 말은 틀린 말일 것이다. 단지 한국어처럼 문법화 된 범주로 나타나지 않을 뿐 영어에서도 어휘의 변화 혹은 문장 자체의 변화를 통해서 공손함과 높임법의 표현이 존재한다.A : How long have you been doing this pageant-training thing?B : I’m sorry? What was the question?이 문장을 봤을 때 A의 문장은 잘못된 것 없이 완벽하게 보이는데도 B는 질문의 내용을 재차 확인하고 있다. 물론 이 문장은 ‘미스 에이전트(Miss Congeniality, 2000)’라는 영화의 일부분의 나하나에서 조차도 자신이 남들과 다른 교양인임을 나타낸다. 여기에서 B가 문제 삼고 있는 것은 A의 마지막 단어 thing 이다. 상대방의 직업과 관련된 말을 할 때 thing을 사용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 굉장히 실례가 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장면에서 B는 A가 대답할 때마다 “yeah”라고 대답하는 것을 “yes”라고 정정하며 항상 yes를 사용하고 yeah라는 말을 절대 하지 말 것을 당부하기도 한다. 이와 비슷하게 위에서 예를 들었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영화에서도 미란다 앞에서 그녀의 비서가 일의 진행 과정을 이야기할 때 ‘stuff’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호되게 혼이 나고 그 비서가 자신의 친구들에게 ‘stuff’라고 한 것이 그렇게 잘못한 것이냐며 푸념을 늘어 놓는 장면이 나온다.이렇듯이 문법적으로 체계화 된 경어법 자체가 한 사회 내에서 사용하고 있는 언어 행위에 대해서 무례하다 혹은 그렇지 않다라고 받아들여지는 기준의 절대적인 요소임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즉 언어가 이루어지는 구성 요소보다는 그 구성 요소가 이루어지도록 바탕이 되는 문화적 맥락이 더 큰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어의 경어법이 위계 질서를 확립한다고 보기보다는 위계 질서나 수직적 관계가 흐트러지는 시대 분위기 속에서 무례하지 않다라고 통용되는 범위가 점점 더 넓어질수록 자연스럽게 한국어의 경어법은 지금보다 더 완화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한다. 전자에 가까운 최봉영은 사회 내에서 모두 경어를 쓰는 등의 언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는 반면에 고종석은 언어와 사회 중에서 사회가 먼저라고 보는 입장이다. 하지만 언어 개선 등에 앞서 사회가 변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경어체계가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또 그것에 대해서 무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먼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1. 고종석. 「고종석의 한국어 산책 말들의 풍경」. 개마고원, 2007.2. 고종석. 「코드 훔치기」. 마음산책, 2000.3. 최봉영. 「한국 1 -
연구 주제 선정 및 사전 조사이번 한가위는 우리 가족에게 중요한 의미이자 명절을 지내는 방법에 또 다른 기점이 될 날이었다. 지난 명절까지는 우리 집 안의 가장 큰 어른이신 할머니께서 시골에 계셨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매번 귀성 행렬에 동참하는 것을 시작으로 명절 분위기를 느꼈다. 하지만 몇 달 전, 할머니께서 갑작스레 돌아가셨고 이번 한가위부터는 시골에 가지 않고 우리 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음식 고르는 일부터 한가위를 지낼 때 모든 일을 관장하셨던 할머니께서 계시지 않은 이번 한가위는 우리 가족만의 한가위 전통이 끝남과 동시에 새로운 전통이 시작 되는 날이었다.그러했기에 이번 과제의 주제를 어떻게 선정해야 할지 난감하였다. 할머니께서 계셨던 한가위와 그렇지 않은 이번 한가위를 비교하려니 범위의 폭이 너무 넓었고, 어머니께서는 거의 모든 것을 할머니의 방법을 지키시기 때문에 사실 다른 점이 많아 보이지도 않았다. 또한 이번 한가위 중에서 특별한 점을 살펴보자니 과연 어떤 것이 전통으로 남을지 알 수 없었고 그러한 것들을 전통으로 부를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지난 번 한가위를 기준으로 주제를 선정하려고 하니 이번에는 또 과연 어떤 것이 우리 가족만의 전통이었는지, 전통이라고 할 만큼 다른 가족의 명절과 차이점은 있었는지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처음으로 집에서 맞이한 조촐한 한가위 날, 차례를 지내는 도중에 예전과 확연하게 다른 것 한 가지가 눈에 띄었다. 바로 차례 상 아래 놓여져 있는 술병이었다. 생각해 보니 차례나 제사를 위해서 우리 가족이 술을 산 적은 처음이었다. 언제나 할머니께서 직접 담그신 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명절 때면 어김없이 할머니께서 담그신 술의 맛이 어떤지 맛보기 위해서 마을 동네 분들 모두가 할머니 댁을 찾을 정도였다. 그런 할머니의 술이 올해 차례상에는 없는 것이었다.지난 번 한가위까지 우리 가족의 가장 큰 전통이었던 할머니께서 직접 빚으신 술을 주제로 선정하기로 결정하고 과연 직접 담근 술로 제사나 차례를 지내는 집의 제사 의식을 행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자연신에 대한 제사가 삼국시대를 즈음으로 자신의 조상을 제사 지내는 의례로 왕가에서 먼저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 말에 와서는 성리학의 수입과 더불어 『주자가례』에 따라 가묘를 설치하려는 운동이 사대부 사이에서 활발해졌으나 성리학이 심화되기 시작한 16세기 중엽부터 비로소 양반 사대부 사회에서 『가례』가 정착되고 그에 따른 제사 의례가 정착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제사의 관념은 조선 말기 이후 기독교의 도입으로 변화가 나타나게 되고 또한 일제 침략으로 왕조가 무너지고 양반 계층이 몰락함으로써 제사 역시 가치와 의미를 많이 상실하게 되었다.하지만 실제 예법보다는 많이 간소한 절차의 제사이기는 하나 현재 제사가 보편화되어 있는 것처럼 이러한 유교식 제사가 조선 시대에도 양반 이외의 계층까지 널리 지켰던 ‘전통’이라고 부르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례』는 원래 벼슬하는 사대부 계층의 가정 예법을 확립하기 위해 만든 책이었기 때문에 서민들까지 염두에 두고 만든 책이 아니었으므로 가난한 서민들이 『가례』의 예법을 시행하는데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성호 이익은 서민들을 위한 별도의 가례를 만들어야 한다고도 말하기도 하였다. 즉, 조선 후기까지 실제로 예법을 지키며 제사를 지낸 계층은 20% 내외의 상류층 양반이었으며 신분제의 와해로 양반층이 90%에 달함으로써 『가례』에 명문화되어 있는 제사가 보편화 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제사가 우리의 유구한 전통인가 아닌가를 주제로 삼은 것은 아니니 제사의 유래는 이쯤으로 접어두지만 제사의 유래를 통해서 언제부터 제사를 지낼 때 술을 올렸으며, 왜 올렸는지에 대해서 찾을 수는 없었다.차례를 살펴보자면 명절 등에 간단히 지내는 제사의 의미로 알려진 차례는 사당 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가례』에 의하면 사당에서 정월 초하루, 동지,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참배하는 제사 중 매월 보름에는 술잔을 차리지 않고 찻잔만을 올렸나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부산에 청주 공장을 세우고 ‘정종’이라는 상표로 판매를 하게 되면서 우리나라에서 청주의 이름이 사라지고 ‘사케’ 또는 ‘정종’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그렇다면 우리나라 술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고 전통주의 종류 및 구분과 청주(淸酒)가 만들어지는 방법에 대해서 조사해보고 할머니께서는 어떤 술을 어떻게 빚으셨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했다.우리나라의 술에서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건국담 중에 술이 언급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 술의 역사와 기원을 정확하게 추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곰팡이와 효모의 생육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성하는 알코올을 우연히 맛본 것을 계기로 누룩에 익힌 곡물과 물을 첨가해 직접 술을 빚어 마시는 과정으로 발전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즉 쌀 등의 전분질을 함유하고 있는 곡물을 익힌 뒤, 누룩과 물을 섞고 발효시켜 만드는 과정에서 열을 가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거품을 보고 열(불)을 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난데없이 물(水)에서 불이 난다’는 생각에서 ‘수-불’ 하였을 것이고, 결국 ‘수-불’이 수-블>수-울>수-을>술로 변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그리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삼국시대에 맑은 술인 청주(淸酒)와 흐린 술인 탁주(濁酒)가 구별되는 등 다양한 술 빚기가 이루어졌으며 통일신라시대의 ‘신라주’와 고려시대의 ‘고려주’는 중국의 학자들 사이에 인기가 높을 정도였다. 또한 고려 후기에 이르러서는 몽골로부터 소주 만드는 방법이 도입되어 술의 종류가 한층 다양해졌다. 일본의 식민지 수탈 정책의 일환으로1909년 2월 주세법이 시행되기 이전까지 조선시대의 술의 발전은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제사가 중요시되면서 각 가정의 비법으로 만들어지는 가양주(家釀酒)가 꽃피울 만큼 전통주의 전성기라고 볼 수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강화되었던 일본의 주세법 정책으로 제사, 혼사 등에 사용하기 위해 몰래 빚는 것으로 명맥을 이어왔던 우리나라의 술은 광복 이후 정부의 주세 정책으로 설 자리를 잃어 와 소주에 약재를 넣은 혼성주(混成酒), 곡물에 가향재나 약재를 섞어 발효시킨 뒤 증류한 약용증류주(藥用蒸類酒) 네 가지로 구분한다. 개괄적인 분류는 이러하지만 발효 과정을 몇 번을 거쳤는지, 어떤 재료로 어느 계절에 어떤 제조 과정과 숙성을 거쳤느냐에 따라서 술의 종류는 더욱 세분화되고 맛도 천차만별이 된다.즉, 제사 때 주로 올린다는 청주(淸酒)는 순곡주류(純穀酒類)에서 거르는 방법에 의해 구분된 술임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구분 된 탁주(濁酒)는 쌀을 누룩으로 발효시켜 양조한 술덧을 체로 거칠게 걸러낸 후에 마시기에 적당하도록 물을 타서 알코올 도수를 낮춘 술이며 청주(淸酒)는 이와 달리 발효가 거의 끝날 즈음 술독 윗부분에 맑은 술이 떠오르는데, 술독 윗부분에 싸리나 대오리를 엮어 만든 용수를 박아 그 틈 사이로 고이는 액체를 떠내거나 여과주머니에 술덧을 넣은 다음 힘껏 눌러서 여과시켜서 만든 것이다. 조선시대 무렵부터 이러한 청주(淸酒)를 약주(藥酒)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약주(藥酒)의 호칭이 널리 퍼진 듯 하다. 현재 우리나라 주세법에서는 이러한 고유의 전래 명칭과 상관없이 약주류를 약주와 청주로 나누고 입국으로 빚은 약주를 청주, 그 외의 양조주를 약주로 규정하고 있다.특히 술을 빚는 방법과 확실한 문헌의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시대 후기에 와서 대부분의 집안에서 한가위 차례상에 햅쌀로 빚은 청주(淸酒)를 올렸을 것으로 추측한다. 벼를 수확할 때 쯤이면 한가위이므로, 미리 거둬들인 나락 가운데 가장 실하고 잘 여문 것을 따로 보관하여 두고, 거기에서 얻은 쌀로 가장 맑고 깨끗한 술을 얻어 차례를 지낸 것으로 보인다.현재 전해져 내려오는 청주(淸酒)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경주교동법주(慶州校洞法酒)이다. 또한 근래에는 제사주를 위해서 만든 청주(淸酒)를 포함하여 다양한 청주(淸酒)를 만들고 있는 회사도 있다.할머니의 술아버지께서 기억하시는 어린 시절에서도 이미 할머니께서는 술을 빚으셨다고 하니 할머니께서 술을 빚기 시작하신 것은 그 누룩을 물과 고실고실하게 찐 멥쌀을 배합해서 다시 서늘한 곳에 일주일 정도 발효를 시킨 후에 용수를 넣고 위 부분에 맑을 술을 떠내고 나면 이 술이 바로 청주이고 나머지 아래 쪽은 탁주가 되는 것이다.대략적인 방법은 몇 줄로 요약할 수 있을지 모르나 누룩을 만드는 것으로 술 빚기가 시작되면 누룩의 상태 변화부터 미묘하게 바뀌는 통풍과 온도 차에 반응하는 것까지 술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의 변화를 재빨리 감지하여 때에 따라서 다른 재료를 첨가하는 등의 빠른 조치가 필요하기 때문에 2개월에서 길게는 3개월의 시간 동안 언제나 술의 상태에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은 술 빚는 것을 한 번 해 보고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몇 번의 시행착오를 통한 경험의 축적 결과이며, 더욱 맛있는 술을 얻을 수 있는 필수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통밀, 멥쌀 등의 재료부터 누룩틀과 술독 등의 도구까지 세심하게 선택해야 하므로 술은 ‘정성’으로 빚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그러므로 할머니의 술이 전체적인 방법으로는 여타 다른 술이 빚어지는 방법과 비슷할지는 모르나 미세하게 차이가 나는 부분이 결과적으로는 술의 맛에 큰 차이를 주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할머니의 술과 똑같은 술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세상에서 하나 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술을 한 번도 맛보지 못했다는 것을 이번 과제를 통해서 깨달았다.이번 한가위 차례를 준비하면서 어머니께서는 ‘어머님께 술 만드는 것 좀 배워둘 걸, 조상님들께서 술 바뀌어서 맛 없다고 그러시면 어쩌나’ 라는 말씀을 몇 번이나 하셨다. 지금까지 직접 빚은 술을 올리다가 사온 술을 올리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으신 듯 했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 있었던 할머니의 술을 많이 그리워하시는 듯 했다. 아직까지 가정에서 직접 술을 빚는 집이 얼마나 되는지는 자료 조사를 통해서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우리나라의 술을 계승, 보존하려는 모임이 생기는 등 인위적인 노력이 있는 것을 보면 그 맥이 깊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
처음에 사찰탐방 과제를 받았을 때 떠오른 절은 다름 아닌 서초동 우면산에 위치한 대성사였다. 예술의전당을 찾아갈 때면 바로 뒤편의 우면산을 조금만 올라가보면 있다는 절이 궁금하기는 했지만 선뜻 가 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겸사겸사 친구와 함께 일요일에 대성사를 찾아가 보았다.대성사는 그 역사가 백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절이다. 이후 통일신라시대에는 원효대사, 의상조사, 고려시대에는 보조국사 지눌 등이 머물렀으며 1919년 3·1 운동의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백용성 스님이 주석했던 절이다.아무래도 산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꽤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했지만 절 입구까지 포장도로가 잘 되어 있어서 자동차를 이용하여 방문하기에도 전혀 불편함이 없을 것 같았고, 절 주차장에 꽤 많은 차가 주차되어 있기도 했다. 절에 들어섰을 때 먼저 만난 것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92호인 목불좌상에 대한 안내 표지판이었다. 처음에는 그 표지판 옆에 있는 석상이 목불좌상인 줄 알았는데 이 목불좌상은 바로 대웅전에 있는 아미타여래좌상이었으며 백용성 스님이 대성사에 주석할 때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넓적하고 생동감 없는 얼굴표현이나 법의의 착의법, 단순하고 형식적인 옷 주름의 표현방법 등에서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불상양식을 계승한 근대작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대웅전을 가기 위해서 조금 더 올라가보자 보기에도 맑은 물인 약수가 있어서 절을 찾으시는 분들 혹은 등산객들의 목마른 물을 적셔주고 있는 듯 했다. 약수터를 조금 지나니 약사여래삼층석탑과 대웅전이 한 눈에 들어왔다. 함께 간 친구는 종교가 불교였기 때문인지 성큼성큼 대웅전을 향해 들어가서 절을 올렸지만 대웅전에서 기도를 올리고 계시는 분들의 엄숙함에 괜히 내가 들어가면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섣불리 들어가지 못하고 좀 더 탑을 보고 있을 때 대웅전에서 기도를 올리고 나오는 모녀 두 분이 함께 합장을 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 깊었다. 한 번, 한 번의 합장도 정성스럽게 하는 두 분의 모습에서는 알 수 없는 경건함과 신실함이 느껴지는 듯 했다. 탑 앞에서 합장을 할 때마저도 어떤 마음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서 그 모습을 보는 사람에게 전해지는 마음이 이토록 큰 차이가 있을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대웅전을 둘러본 후에 대성사의 스님을 만나 뵙기 위해서 종무소에 가서 여쭈어보니 때마침 스님께서 기도 중에 계셔서 뵙기 힘들다고 하셨다. 스님을 뵙고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였으니 과제를 했다고 할 수 없겠지만 그 동안 궁금했던 대성사의 모습도 보았고 또 오랜만에 산의 맑은 공기를 덕분에 더 없이 차분해지고 맑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수학여행 등을 통해서 찾아가 본 많은 절들의 그 큰 규모에 비해 대성사는 전체적으로 굉장히 아늑한 느낌을 주는 절이었다.후에 과제를 마무리 짓기 위해서 찾아간 절은 종로에 위치한 조계사였다. 사실 ‘절’하면 목탁, 풍경 소리와 함께 산 속에 자리 잡은 사찰의 모습이 으레 떠오른다. 또 대성사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내가 가 보았던 절의 모습이 모두 그러했고 말이다. 그래서 예전에 중국에 갔을 때 우리나라에 교회가 위치해 있는 것처럼 사찰들이 도로 변에, 건물 사이 사이에 있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라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산이 아닌 길 한복판에, 불교의 가장 큰 종단인 조계종의 중심사찰이 이런 도심 지역에 있는 것을 알고 놀란 것은 둘째치고 나의 무지가 부끄러웠다.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니 조계사 가는 길을 맞이하려는 듯한 많은 불교 용품 상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한쪽에서는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현대인들의 모습이, 그리고 또 한 쪽에서는 마음의 안정을 얻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있는 것 같았다.조계사에 들어서니 스님의 불경 소리가 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알고 보니 수능을 위한 법회가 있었다. 불경 소리가 조계사에 들어서자마자 처음으로 귀를 이끌었다면 조계사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백송이었다. 천연기념물 제9호에 지정되었을 만큼 우리나라에 몇 그루 밖에 없다는 소나무라는 사실보다 소나무 자체에서 근 500년에 달하는 역사의 위엄 혹은 근엄을 뿜어내는 것 같은 느낌이 더욱 강하게 다가왔다. 대웅전의 앞 쪽에 있는 석가여래진신사리탑 쪽에는 탑 주위를 돌며 기도를 올리는 분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절에 꼭 있는 탑이려니 라고 생각하다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인한 탑이라는 안내판을 읽고 나니 갑자기 탑이 신성하고 특별한 것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처음에는 법회 때문에 대웅전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조계사 대웅전에는 평소에도 많은 신도들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평일 오후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절을 찾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조계사의 규모를, 더 나아가서는 우리나라 불교의 규모가 느껴지는 듯 했다.스님께 어떻게 대화를 청해야 할지, 어떤 스님께 말씀을 드려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면서 조계사를 왔다갔다 거닐던 중에 누군가를 기다리고 계시는 듯한 스님께 용기를 내어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말씀을 청해도 되는지 여쭈어보았다. 자초지종을 들으신 후 스님께서는 조계사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이왕이면 조계사에 계시는 스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 뒤 40분 가량 스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스님께서는 해인사에 계신다고 하셨다. 얼마 전 수업 시간에 해인사를 법보 사찰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배웠다고 하니 많이 알고 있다고 하시며 기뻐하셨다. 사실 스님께서 하신 말씀을 녹취를 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꽤 긴 시간 동안 나눈 이야기를 세세하게 기억 하지 못하고, 또한 스님의 말씀 중에는 아직 내 능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있어서 자세하게 기록하지는 못하겠지만 대략 스님과 나눈 이야기의 큰 줄거리는 종교와 진리에 관한 것이었다. 요즘 20대는 종교에 대한 관심이 덜한 것 같다는 말씀에 몇몇 종교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은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하자 특정 종교를 언급할 수는 없겠지만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진리가 나와 다르다고 해서 인정하려 하지 않고 더 나아가서 공격성을 띠고 강하게 반대하고 부정하는 데 과연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행복할까라고 답하셨다. 그러한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았지만 정작 그들이 그런 행동을 통해서 행복을 느꼈는지, 행복을 얻었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아서 그런지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주신 말씀이셨다. 더불어 불교란 것이 바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왜 고통스러우며 이 고통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한 종교라고 하셨다. 또한 불교는 절대자 혹은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기 때문에 절대자(진리)의 존재를 인정하고 더 나아가서 나(我)의 존재를 인정하는 서양과 초기 인도의 관념의 방향과는 달리 교리 내용과 지켜야 할 것들이 훨씬 더 많을 수 밖에 없다고 하셨다. 사실 스님께서 해 주신 말씀의 상당 부분은 진리에 관한 말씀이셨다. 하지만 스님의 깊으신 말씀을 세상에 대한 고민도, 진리에 대한 물음을 가져보지 못한 내가 이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직 이해하기 힘들 거라고 하시면서 지금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비록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무언가의 도구가 되기 위한 공부라 하더라도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매 순간에 행복을 느끼며 열심히 해 보라고 하셨다. 또한 이렇게 만나서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것도 불교의 인연설에 입각할 수 있다고 하시며 조계사를 떠나셨다. 사진을 찍는 것도 강하게 거부하시며 법명도 알려주시지 않고 해인사의 한 스님을 만났다 라고만 기억하면 된다고 하시며 돌아서는 스님의 모습을 보니 문득 첫 번째 절을 갔을 때 스님을 뵙지 못했고 또한 조계사에서 그 순간에 계셨던 많은 스님 분들, 저 스님께 말씀을 드려봐도 괜찮을까 말까 고민만 하고 스쳐 지나갔던 많은 스님 분들 중에서 그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던 사실은 불교를 믿지 않더라도 불교의 인연설이 아닌 다른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1. 광고란 무엇인가넓을 광(廣), 알릴 고(告) 즉, 널리 알린다'라는 뜻.일반적으로 상업적인 목적에 따라 판촉을 위해 메시지를 광범위하게 전달하는 수단영어의 advertising 은 ‘돌아보게 하다’, ‘주위를 돌리다’라는 뜻의 adverter 의 동명사형으로 광고행위 또는 광고 과정 전체를 의미, advertisement 는 낱낱개의 구체적인 광고, 영어에서 광고의 근원적인 의미는 ‘상대의 주의를 자기 쪽으로 끄는 것’CM(commercial message)/CF(commercial film) Advertisement / Ad2. 광고 매체에 따른 분류1) 텔레비전 광고장점 : 다양한 광고 표현이 가능광고의 주목율 높음정보전달이 용이장기적인 접촉 가능단점 : 많은 예산이 필요시청률에 따라 효과가 크게 좌우(시청자들이 광고를 의도적으로 피할 수 있음)효과의 측정 어려움2) 신문 광고장점 : 정보전달이 용이기록성단점 : TV에 비해 주목율 이 낮음.취급 인쇄 면이나 칼라 제한에 따라 전시 효과가 적음3) 잡지 광고장점 : 지역적, 인구 통계적으로 소비자 선별성이 높음신뢰도와 관심이 높음긴 광고 수명단점 : 광고물이 많으므로 눈에 잘 띄지 않을 수 있음(주의를 끌기 어려움)4) 라디오 광고장점 : 제작비용과 매체비용이 저렴단점 : 시각적 효과를 사용하지 못하고 청각적 효과만을 사용함으로 관심을 끌기 어려움5) 옥외 광고장점 : 노출효과와 주목율이 높음.로고, 상표, 심볼 등 단순메시지 전달에 적합단점 : 법적 제한이 많음초기투자비용이 많이 들어감설명적인 광고 표현이 어려움주위 경관에 따라 광고 효과 차이가 많이 남6) 인터넷 광고장점 : 다른 매체에 비하여 텍스트는 물론 오디오, 그래픽, 동영상 등의 멀티미디어적인 요소의 통합 활용이 가능광고 효과의 측정 용이(클릭수, 방문자 수, 체류 시간 등과 같은 인터넷 광고 효과 측정 도구로 즉시 모니터링이 가능)단점 : 인터넷 인구가 아무리 많아졌어도, 대형 포털들 일부를 제외하고는 공중파 방송이나 신문들에 비해 사이트당 방문자 수가 적다(적은 사용자 층)광고 효과 측정에 대한 객관적 수단이 없음(표준화된 광고 효과 측정방법 미비) 노출빈도, 클릭 수 등의 기준을 사용하여 광고효과를 측정하지만 웹 사이트의 주제와 성격이 다양하여 광고를 올리기 위한 적절한 사이트의 선정 및 사이트간 비교가 어렵다.3. 광고언어 사용기법1) 광고언어와 음운론·두운 - 단어나 문장 첫머리에 같은 자음이 반복되는 현상 캐내면 할 수 있습니다. 케토톱열날 때는 부르세요. 부르펜볼 떴는데 불 나가면? (야구토토)·각운 – 문장의 말미에서 음절이나 낱말이 반복되는 현상 IQ, EQ, 헤모큐고객이 OK 할 때까지 OK! SK!기술로 세계를, 품질로 미래를(삼성물산)자녀가 권하고! 부모는 누리고! (한국주택금융곡사)·모운 – 낱말의 모음이 반복되는 현상. 특히 모운은 악센트가 있는 음절의 모음에만 해당되기 때문에 악센트가 불분명한 우리나라의 언어에서는 모운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음 이가탄탄 이가탄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만남, 아시아나 항공두운, 모운, 각운의 음운론적 기법들은 모두 단어의 특정 요소를 반복함으로써 소비자의 주의와 관심을 집중시킨다. 또한, 반복은 반복된 대상에 대한 친밀도를 향상시키며, 향상된 친밀도는 반복된 대상에 대한 호감의 원천이다. 또한 대체로 음운론적인 방법에 따라 광고 효과를 높일 때는 동일한 음운의 반복이 일반적이지만, 그보다는 동일한 음절이나 단어 또는 구를 반복할 때 그 효과가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음운론적 기법들의 역효과 : 초기에는 반복에 의해 친숙함이 증가하게 되어 호감도가 상승하나, 일정 반복 이후에는 싫증이 좀 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어 반복의 증가는 오히려 호감도를 하락시킨다.2) 문장의 종류에 따른 광고언어·의문문 – 광고문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문장, 광고문에서 의문문이 주는 효과는 물음을 통하여 물음의 내용을 이미 정해진 사실로 만든다는 데에 있다, 제품의 우수성이나 차별성을 강조당신의 연금 펀드, 2개의 조건을 가졌나요? (하나UBS자산운용)·평서문 - 말할이의 주관적인 태도가 적게 개입된 중립적인 문장, 있는 그대로 제시하는 객관적인 명제작은 이상 신호가 큰 병의 시작일 수도 있습니다 (기넥신에프)젊은층을 대표하는 ‘나’는 제품에 대한 우월성이나 차별성을 마치 나의 의견, 느낌, 주장인 것처럼 소비자인 ‘나’에게 일대일로 강하게 단정적으로 말하면서 동조해야 한다고 설득한다.내 꿈을 담으려면 i30cw 정도는 돼야 해 (현대자동차)·명령문 – 광고의 주 목적인 설득을 위해서 명령문도 종종 쓰인다.날아라! 나는 법을 잊기 전에 (교보생명)·청유문 - 자기 제품을 선택했을 때 소비자가 얻는 이로움이나 도움, 그리고 소비자에게 부탁 등을 나타낼 때자동차 관리도 Q 마크를 확인하자. 오토큐 (AUTO Q)3) 광고언어의 수사법·중의법 – 희극적 효과세워라! 남성의 자존심!아빠 뭐 시켜줄 건데? 탕수육 (KTF 7살의 Show)·반복법 – 두운, 모운, 각운과 마찬가지의 효과, 익숙, 친근 / 이러한 반복은 소비자들에게 인위적이며 자의적일 수도 있음Super Slim, Super Speed, Super Style Sens S (삼성 센스)좋은 기름과 좋은 서비스로 여러분을 왕처럼 모시겠습니다 (S-Oil)·생략법 – 소비자로 하여금 생략된 부분을 적극적으로 보충하도록 촉구함으로써 소비자의 관여도를 향상시킬 수 있음자연이 좋아하는 기술이 당신이 좋아하는 기술이기에… (LG)·비교법 – 자사제품을 타제품과 비교해서 그 우위를 말할 때 소비자들에게 큰 설득력을 가지고 된다. 특히 새롭게 시장에 처음 선보이는 제품의 경우 기존 제품과의 비교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단시간에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으므로 광고효과가 높은 방법모두가 2009년을 생각할 때 아주대학교는 2013년까지 생각합니다·반어법 – For more information on lung cancer, keep smoking. (폐암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원하신다면, 계속 담배를 피십시오) 캐나다 금연단체의 광고·역설법 – 겨울의 한가운데, 봄을 달리다 (infinity EX)·대구/대조법 – 사람들에겐 1500미터의 물방울, 나에겐 1500리터의 땀방울 (국민은행)모두가 갖고싶어 하는 차. 모두가 탈 수는 없는 차(재규어)·직유법 – 당신 대신 당신처럼 모시겠습니다 (가족봉안묘 시안)·은유법 – 산소 같은 여자·활유/의인법 – 감각…깨어나다. 라세티로부터생활 속 친구 (케어가글)혈당기와 내가 말이 통하기 시작했다 (ONETOUCH)·의성/의태법 – 쫄깃쫄깃 오도동통 (농심 너구리)·대유법 – 눈이 바쁜 현대인! 눈 영양제 아로나민 아이가 필요합니다더 샾에서 아이들의 키만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90년 광학기술을 넘어 당신의 빛이 되겠습니다 (올림푸스)철이 있어 도시도 사람도 더욱 깨끗해집니다 (posco)·과장법 – 전 세계를 열광시킨 슈베르트 스페셜리스트의 음성으로 만나는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천진난만한 소년들의 경이적인 합창력이것이 기적이다·동음이의 – 정원이가 한 거야?(청정원)수사학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광고언어는 소비자에게 숨겨진 의미를 찾도록 한다. 수사적인 표현은 소비자에게 즐거움을 줄 수도 있다광고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와 반응을 일으키게 할 수 있다. 본질적으로 의미의 불완전성을 띠고 있는 수사학적인 표현은 독자에 의해 완성되고 이 과정에서 소비자들은 광고에 대한 기억을 촉진시킬 수 있다.4) 외래어의 사용우리 자신의 고유한 상품이 아니라 주로 외국으로부터 모방하거나 도입한 상품의 광고에서 많이 나타난다. 우리말과 그에 대응하는 외래어 사이에 어감의 차이가 존재할 때외국의 문화가 우월하다는 문화 사대주의 유발, 외국의 문화나 습관을 모방5) 관용적 표현//유행어/비속어를 사용하는 광고언어 및 광고언어의 문법파괴헌 옷 줄게, 새 옷 다오! (PAT)4. 광고언어의 의미광고 언어는 소비자를 설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대중 매체이므로 그 시대의 사회 흐름을 그대로 반영해 주는 살아 있는 언어여러 가지 독특한 모습이 나타나는데, 여기에는 사회적인 순기능과 함께 역기능도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광고 언어는 사회적인 언어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볼 때, 광고 언어의 역기능이 설득을 위한 의도성 때문에 불가피한 것이라고만 할 수 없는 문제점이 있다.광고는 우리 사회의 삶의 방식을 현저하게 드러내 주는 것으로서, 민감하게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으며 언중들의 사고방식을 투영하고 있다. 그리고 광고는 실질적인 사회문화적 표현의 한 형태로서 언중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 현실을 반영한다. 광고의 다양한 언어 표현을 살펴보면 그 의미 구성과 해석의 과정 속에 사회문화적 상황이 연결되어 있으며 그 속에서 송신자와 수신자는 협동적 체계를 이룬다.광고의 언어는 그 목적이 일반 언어와는 달리 소비자들의 관심을 유발하는 데에 있음으로 그를 위해 언어학적으로 문법의 변형을 시도하기도 하고, 예술적으로는 언어와 함께 이미지, 음향과 같은 시각적, 청각적, 극적 장치를 동원하여 광고에 대한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리하여 광고는 문화적으로 우리 사회의 삶의 방식을 현저하게 드러내 주고, 민감하게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으며, 언중들의 사고방식을 투영하고, 더욱이 실질적으로 언중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이처럼 광고는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고 광고주의 마케팅 목표를 달성시키는 일차적인 기능 외에 그 시대의 풍속도라 할 수 있을 만큼 사회의 가치, 규범, 태도와 행동 양식을 규정하는 데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12처설과 18계설1) 12처설불교는 구체적인 현실세계의 관찰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렇다면 그 구체적인 현실세계란 과연 어떤 구조와 성질을 가진 것인가.한 때 생문(生聞)이라는 바라문이 석존을 찾아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일이 있다."일체(一切)라고 하는 그 일체란 도대체 어떤 것입니까?"당시의 인도에서 일체(一切,sarvam)라는 말은 '모든 것(everything)'을 의미하는 말로서 우리들이살고 있는 우주 전체를 가리키는 대명사였다. 세계(世界)나 세간(世間,loka)이라는 말과도 등치시킬 수 있는 개념이다. 이런 일체에 대해서 각 종교는 여러 가지 해석을 내리고 있었던 모양으로, 이제 석존은 그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가를 알아보려는 것이다. 석존은 생문 바라문에게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하고 계신다."바라문이여, 일체는 십이처(十二處)에 포섭되는 것이니, 곧 눈과 색,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촉감, 의지와 법이다. 만일 이 십이처를 떠나 다른 일체를 시설코자 한다면 그것은 다만 언설일 뿐, 물어 봐야 모르고 의혹만 더할 것이다. 왜 그러냐면 그것은 경계(境界)가 아니기 때문이다."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는 일월성신(日月星辰)을 비롯해서 미물에 이르기까지 삼라만상이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열 두 가지에 거뜬히 포섭(包攝)된다는 것이오, 그 열 두 가지 이외의 것은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그 열 두 가지를 모든 것이 그 속에 '들어간다'는 뜻을 취하여 처(處,ayatana)라고 부르고 이 교설을 십이처설(十二處說)이라고 부른다. 십이처설은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세계관이며 일체만유(一切萬有)에 대한 일종의 분류법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종교적 세계관으로서는 너무나도 소박한 것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입장이 선언되는 사상적 배경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첫째로, 우리는 십이처의 구성이 눈, 귀, 코, 혀, 몸, 의지라는 여섯 개의 인식기관(六根)과 색, 소리, 냄새, 맛, 촉감, 법이라는 여섯 개의 인식대상(六境)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모든 존재를 인간의 인식을 중심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에 의해 인식되지 않는 것은 일단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기본적인 입장을 강력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종교에서는 인간의 인식범위를 넘어선 초월적인 실재를 설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그러한 초월적인 실재가 종교적인 수행(修行)을 통해서도 끝내 인간에게 자증되지 않는 것이라면, 그런 것의 실재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십이처설은 그러한 문제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석존은 당시의 바라문들에게 다음과 같이 묻고 계신다."삼명(三明)을 갖춘 바라문으로서 일찍이 한 사람이라도 범천을 본 자가 있는가? 만일 본 일도 없고 볼 수 없는 범천을 믿고 받든다면, 마치 어떤 사람이 한 여인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의 얼굴을 본 일도 없고, 이름도 거처도 모른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요."십이처설에서 우리는 둘째로, 불교는 인간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십이처설에서 인식 주체가 되고 있는 여섯 개의 감관 즉 육근(六根)은 그대로 인간존재를 나타내고, 인식객체가 되고 있는 여섯 개의 대상 즉 육경(六境)은 그러한 인간의 자연환경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주체(主體)적 인간의 특질을 의지(意志,manas)'로 파악하고, 객체적 대상의 특질을 '법(法,dharma)'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크게 주목해야 한다. 의지라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와 능동적인 힘이 있는 것을 의미한다. 법(法)은 어떤 원인이 있으면반드시 그에 상응한 결과를 나타내는 '필연성을 지닌 것'을 가리킨다. 그러한 뜻의 의지와 법이라는 개념으로 인간과 자연의 특질을 규정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라문교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은 창조주인 범(梵)이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存在)는 그 종속적 피조물에 불과하다. 세계를 지배하고 인간에게 길흉화복을 가져오는 것도 범(梵)의 의지에 의한다. 사문(沙門)측의 생활파(生活派)에서도 인간은 생사(生死)의 코스를 바꿀 수 없다는 무작용론(無作用論:決定論)을 펴고 있었다. 이들의 세계관을 염두에 두고 십이처설(十二處說)을 볼 때 우리는 일견 소박한 듯한 그 세계관이 불교의 기본적 입장을 단명한 것이며, 사상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음을 이해할 수가 있다.2) 18계설십팔계설 이란 위의 십이처설이 주로 물질적인 색법(色法)의 분류인데 비하여 십팔계설은 여기에 심법(心法)을 추가하여 색(色)·심(心) 양면을 다 포함하는 일체 만유의 분류법이다. 界라는 말은 종족의 뜻도 있다고 하고 본생의 뜻도 있다고 하는데 먼저 종족의 뜻은 십팔계의 제법(諸法)이 그 자성에 있어서 각각 다르다는 뜻이다. 다음 本生의 뜻은 이들이 곧 모든 심적 활동을 일으키는 요소가 된다는 것이라고 한다.그렇다면 십팔계란 무엇인가. 그것은 위에 말한 십이처에 인식작용의 주체인 육식을 포함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열 여덟 가지를 말한다.안근(眼根), 이근(耳根), 비근(鼻根), 설근(舌根), 신근(身根), 의근(意根) 의 육근(六根)색경(色境), 성경(聲境), 향경(香境), 미경(味境), 촉경(觸境), 법경(法境) 의 육경(六境)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의 육식(六識)우리의 모든 심적 활동은 감각기관인 육근(六根)이 그 대상 경계인 육경(六境)을 대함으로써 일어난다. 그렇다면 육근(六根)이 육경(六境)을 대할 때 '이것은 이렇다 저것은 저렇다'하는 등의 인식작용을 일으키는 주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 육식(六識)이라는 것이다. 실로 우리의 모든 심적 활동은 감각 기관인 육근(六根)과 그의 대상인 육경(六境)과 인식 주체인 육식(六識)과 의 세 가지가 합쳐졌을 때에만 일어난다. 만일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진다면 결코 우리의 심적 활동은 일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육근과 육경은 다른 것이 자명하지만 육식은 과연 어떤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육식(六識)이란 별개의 체(體)가 있는 것이 아니고 일심(一心)이 육근(六根)을 통하여 그 대상 경계인 육경(六境)을 대하여 심적 작용을 일으킬 때 각기 식(識)의 이름을 얻어 육식(六識)이 된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일심(一心)이 눈을 통하여 색경(色境)을 대함으로써 심적 작용을 일으키면 안식(眼識)이 되고, 이근(耳根)을 통하여 성경(聲境)을 대함으로써 심적 작용을 일으키면 이식(耳識)이 되고, 이렇게 하여 육식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관과 객관과의 문제를 놓고 보면 앞의 십이처설 에서는 육근이 주관이요 육경이 객관이었으나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육경도 또한 물질적인 것이라 주관이 될 수 없는 점이 충분히 있다. 그러나 이 십팔계에서는 육식이 더해지므로 육식이 참다운 주관이 되고 육경과 육근은 함께 객관이 된다고 하겠다. 이제 이 식(識)·근(根)·경(境)의 관계를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十 八 界]六識 …> 眼識 - 耳識 - 鼻識 - 舌識 - 身識 - 意識↓ ↓ ↓ ↓ ↓ ↓ ↓六根 …> 眼根 - 耳根 - 鼻根 - 舌根 - 身根 - 意根↓ ↓ ↓ ↓ ↓ ↓ ↓六境 …> 色境 - 聲境 - 香境 - 味境 - 觸境 - 法境이상과 같이 볼 때 앞에 나온 오온설(五蘊說)이 마음(心)에 치우치고 십이처설이 물질(色)에 치우친데 비해 이 십팔계설은 색(色)·심(心) 양면을 고르게 統攝하여 분류한 것으로 가장 보편적인 분류 법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상에 살펴본 바와 같은 오온설, 십이처설, 십팔계설의 셋은 다 같이 우리 인생을 중심으로 한 일체 만유의 분류법으로 흔히 삼과설이라 하여 한데 묶어져 설하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다 같이 인생을 중심으로 한 분류법이 이상과 같이 각각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대비바사론)에는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 교화될 바 유정(有情)에는 둔근기(鈍根機), 중근기(中根機), 이근기(利根機) 가 있으니 둔근자(鈍根者)를 위해서는 십팔계를, 중근자(中根者)를 위해서는 십이처를, 이근자(利根者)를 위해서는 오온(五蘊) 을 설한다.㉡ 교화될 바 유정에는 광(廣)을 좋아하는 자, 중(中)을 좋아하는 자, 약(略)을 좋아하는 자가 있으니 광을 좋아하는 자에 대해서는 십팔계를, 중을 좋아하는 자를 위해서는 십이처를, 약을 좋아하는 자에 대해서는 오온을 설한다.㉢ 교화될 바 유정에는 색심(色心)에 우매한 자, 색(色)에 우매한 자, 심(心)에 우매한 자가 있으니,색심(色心)에 우매한 자를 위해선 십팔계를, 색(色)에 우매한 자를 위해선 십이처를, 심(心)에 우매한 자를 위해 서는 오온을 설한다. 그리고 이 삼과설(三科說)에는 극소한 부분 무위법(無爲法)이 포함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유위법(有爲法)을 중심으로 한 것으로 현상계 만유는 인연의 화합으로 모였다가 인연의 이산(離散)으로 흩어진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의 도리를 밝히는데 그 주안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