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신경숙 작가가 펴낸 ‘엄마를 부탁해’ 라는 책은 그 명성을 익히 들은바가 있었기에 진작부터 관심이 있었고, 늘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도서였다. 그러던 중 지난 방학 시작무렵, 우연한 기회에 내 지인으로부터 이 책을 선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로도 한참을 가지고만 있다가 어느 잠이 오지 않는 새벽, 이 책이 문득 떠올라 몇 장만 읽다 잠들 요량으로 꺼내들었던것이 도저히 멈출 수가 없는 것이었다.그도 그럴것이 우선은 딱딱하지 않은 스토리 전개에, 어느 날 갑작스럽게 지하철역에서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설정과, 한 사건을 바라보는 여러 인물들의 시각에서의 접근이 재미있었고, 신선했으며,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다.언제나 이와 유사한 장르의 도서나 영화를 접할때면, 처음부터 ‘이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도록 의도된 내용일 것이다.’ 라는 생각을 저변에 깔고 시작했기 때문에 ‘얼마나 슬플까?’ 하는 정도의 심플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엄마를 부탁해’ 는 보는 내내 긴장감이 있었다. 다음 소제목으로 넘어갈때마다 ‘길을 잃은 엄마가 험한 상황을 겪게되면 어쩌나.’,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가족들과의 추억이 어린 장소들을 떠돌아다니고 있으니, 가족들이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소설을 읽는 일일 뿐인데도 불구하고, 조금은 걱정되는 마음에 다음 장으로 넘기기가 떨리는 순간도 간혹가다 있었던 것 같다.엄마를 부탁한다는 말...... 많이 낯선 말이다. 생각해보면 언제나 부탁하는 쪽은 엄마였지않은가? “우리 oo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몇 번 들어본 기억이 있는 말이다. 하지만 난 한번도 우리 엄마를 누군가에게 부탁해본 적이 없었다. 만약 어떤 상황이던간에 그런 말을 해야할 일이 생긴다고하면 굉장히 슬플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주변 어르신들께서 젊은이들에게 흔히 해주시는 말씀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부모님 계실 때 잘해야 한다.” 한번도 가슴 깊이 와닿은적은 없었던 말이다. 그런데 ‘예기치도 못하게 찾아온 엄마의 실종’ 이라는 설정이 어르신들의 그 말씀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내가 영화를 좋아하고 또 즐겨본다고는 하지만, 정작 영화의 역사에 있어서 근간이 되는 작품들은 접해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전함 포템킨’의 감상은 이러한 내게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감상하기 전 간략하게나마 ‘전함 포템킨’에 대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던 나로서는, ‘대체 무성영화라는 것이 어떠한 방식으로 그 배경과 스토리를 전달하고 전개해나갈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기술의 눈부신 발전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현대의 작품과는 큰 차이가 있을 이 작품이, 당대의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과, 그것이 뿜어낼 매력에 대해 큰 기대를 하며 영화를 감상하였다.‘전함 포템킨’은 시대적으로 의미가 큰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제1차 러시아혁명 20주년을 기념하여 민중의 계급의식을 고취시키는 교육과 선동의 장치로서 영화가 제작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속에서 일어난 포템킨에서의 혁명은 러시아 혁명을 의미하고, 함장과 장교들은 당시 브루주아 계층을 의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처음 접해보는 무성영화가 자칫 지루하고, 생소하게만 느껴질 수 있었는데, 이러한 역사적,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고 저변에 둔 채 영화를 감상하다보니,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좀 더 쉽게 파악할 수 있어서 비교적 나는 흥미롭게 영화를 접할 수 있었던 것 같다.또 한가지, 영화를 보는 내내 그 동안 내가 접했던 수 많은 영화들과 크게 다른 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특별히 주인공이라고 지칭할 만한 인물이 없다.’ 는 점이었다. 내가 생각해보건대, 감독 에이젠슈테인이 영화에 표현하고자 했던 그것, 바로 ‘혁명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계급 투쟁과 전투적 민중의 전형’을 표현하는 최고의 방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특정 주인공이 아닌, 여러 집단의 성원으로서, 그 전형들을 표현한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해석을 해보았다.‘전함 포템킨’ 하면 ‘몽타주기법’ , ‘몽타주기법’ 하면 ‘전함 포템킨’ 이라고 말할 정도로, 이 영화에 있어서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몽타주 기법’ 이다.몽타주 기법이란, 프랑스어로 ‘조립하는 것’을 뜻하며, 영화 기법으로서, 샷과 샷이 충돌해 제3의 의미를 만들어내는것. 즉, 각각의 장면을 적절하게 이어 붙여서 스토리가 있는 하나의 내용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의 몽타주 기법은 오데사 계단의 학살장면에서 나타나는데, 내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충격을 받았던 장면이기도 했다. 오데사의 계단을 러시아 제국 군대가 내려가며 죄 없는 군중을 학살하는 만행을 묘사한 이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장면으로, 아기가 타고 있는 유모차가 계단을 타고 굴러 떨어져내리는 등의 강렬한 영상을 포함하여, 몽타주 기법을 아주 잘 표현해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일련의 장면들을 교차적으로,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충격적인 감정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고, 나약한 시민들과 위협적인 분위기의 군대를 병치하여, 비판의식을 강화하는 효과를 나타내었다. 나 또한, 피 흘리고 있는 아이를 안은 채, 군인들에게 대항하려다 무참히 죽임을 당한 여인의 처참한 모습이나, 도망치던 중 총살당하여 쓰러진 사람들 위를 밟고 지나가는 절박한 시민들의 모습을 보며, 무방비 상황에서 힘 없이 당하는 약자와 공포감을 조성하는 군대의 대립적인 이미지가 뜨거운 무언가를 끓어오르게 만드는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대립된, 양분된 장면의 구성이 군대와 시민들의 적대감을 두드러지게 만들고, 감정의 고조를 넘어 관객들에게 단호한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나는 애초에 가지고있던 영화의 의도가 아주 잘 드러나는 테크니컬한 형식주의를 면모가 잘 살아있는 장면이었다는 평을 내리고 싶다.
코쿤족왜 이들은 사회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공간에 자신을 가두고, 즉 표류할 수 밖에 없었는가.남자 김씨의 경우에는 무능함과 신용불량자라는 딱지를 안고서 한강 투신 자살을 선택하지만, 다음날 깨보니 밤섬에 떠내려오게 된다. 죽는 건 언제든지 죽을 수 있기에, 이 김씨는 밤섬에서(사회에서 떨어진 채로) 자신만의 삶을 지속해보자는 선택을 하게 된다.여자 김씨의 경우에는 어렸을 적 따돌림 당했던 경험과 두드러기 난 얼굴 때문에 자신의 방 안에서 표류 생활을 결정하게 되었다. 이 여자의 일상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의 싸이월드 사진들로 자신의 싸이월드를 꾸미는 일이다. 즉, 사이버 공간에서 내가 아닌 것들로 나를 만드는 일을 한다.어느 날, 남자는 이 여자에게 묻는다. "Who are you?" 넌 누구니? 이 질문을 받은 여자는 그에게 대답해 줄 대답을 찾아서 다른 사람들의 싸이월드를 찾게 되고(내가 아닌 것들을 찾게 되고), 그 어떤 대답도 자신이 아니기에 이 남자에게 답장을 보내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이 영화를 통해서 지적하고 싶은 문제점은, 왜 이들은 자신이 누구냐는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었는가이다.이들에게는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해야될 필요성이 없었다. 밤섬에서 혼자 생활하게 된 남자 김씨는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외투 안주머니에 깊숙이 넣어둔다. 여자 김씨 또한 가상 공간에서 자신을 형성할 필요는 있지만, 진짜 자신을 소개할 필요는 없다.그렇다면 왜 이들은 자발적 사회 격리(?)를 선택했는가. 선택은 개인이 했지만, 그 선택을 강요한 것은 이들이 처한 환경, 사회이다. 한국의 근대성은 산업 사회의 발달과 함께 물질주의 사고의 발달과 외모지상주의를 안겨왔다. 남자 김씨의 경우에 사람의 가치마저 물질주의로 판단을 하게 된 사회가 이 남자를 무능한 자, 신용불량자로 규정하면서 사회에서 격리시켜 버린다. 여자 김씨의 경우에도 외모만을 중시하는 사회의 분위기가 이 여자에게 따돌림이라는 아픈 상처를 안게 해줬고, 그럼으로 인해서 사회에서 격리된 후 사이버 공간 내에서 거짓된 자아에 집착하게 된다. 즉, 사회가 이들을 격리시킨 것이다.이 영화의 제목은 '김씨 표류기'이다. 김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성씨이다. 약 870만에 달하는 사람들의 성씨가 김씨라고 한다.(여기에는 경주김씨, 김해김씨 등 모든 김씨가 포함된다.)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의 성이 김씨인 것은 우리 사회에서 이들과 같이 표류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지는 않을까 예상해 본다. 사회 내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듯 하지만 "Who are you?" 라는 질문에 제대로된 대답도 못할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감히 예상해 본다.배우 정재영 흥미로운 스토리만큼, 웃음이 끊이지 않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볼 수 있었던 영화, . 이 영화에 대한 간단한 리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참신한 소재에 대해 호평을 아낌없이 쏟아 부었으며 눈물에서 웃음을, 절망에서 희망을 찾아내는 감독의 따뜻한 시선에 찬사를 보냈다.소재나 줄거리 선택 역시 탁월했던 것 같다. 영화 자체의 한정적인 공간적 배경 때문에 관객들이 단순함을 느낄 수 있다. 또 현실성 없는 줄거리 토대 때문에 영화를 조금만 잘못 이끌어 나가도 의도치 못한 방향으로 영화가 흘러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한정적인 공간적 배경 내에서 엉뚱한 에피소드들을 계속 이어가면서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재밌게 이어갈 수 있었고, 이해준 감독 특유의 과장법을 통해 비현실적 스토리조차 희화화하면서, 관객들이 유쾌함을 얻어갈 수 있도록 하였다.사회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을 주제로 하면서도, 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결코 잃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감독은 희망과 경쾌함 또한 놓지 않으면서,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예전에 마이클 온다치의 ‘잉글리시 페이션트’ 를 친구로부터 추천 받은 적이 있었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이번에서야 읽게되었는데, 책 전면에 있는 한 여인의 눈이 왠지 모르게 슬픔을 가득 담고있는 듯 하여, ‘이 책을 다 읽고나면 여운이 길게 남겠구나.’ 하는 예상을 하면서 독서를 시작할 수가 있었다.먼저, ‘잉글리시 페이션트’ 를 쓴 작가 마이클 온다치에 대해서 알아보면, 마이클 온다치는 1943년 12월 9일, 스리랑카의 콜롬보에서 출생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시를 좋아하고 연극학교를 운영하던 어머니에게서 문학적인 영향을 받았다. 부모의 이혼 후 어머니와 함께 영국으로 건너가 학교를 다녔고, 이후 캐나다의 비숍 대학을 다니면서 문학과 시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토론토 대학에서 학부를 마쳤고, 이때 엡스타인상 시 부문에서 수상했다. 그는 퀸즈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거친 후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글렌든 대학으로 옮겨서 현재 캐나다와 미국 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1978년, 25년만에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뿌리를 만나게 되었고, 이 경험을 ‘Running in the Family’(1982)라는 책으로 펴냈다. ‘In the Skin of a Lion’(1987)에는 사막에 추락한 남자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이 ‘잉글리시 페이션트’ 의 모태가 되었다. ‘잉글리시 페이션트’ 는 1992년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을 수상했고, 전 세계 30여 개국에 소개되었으며, 소설을 각색한 앤서니 망겔라 감독의 동명 영화는 1997년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한 아카데미 9개 부문을 수상했다.‘잉글리시 페이션트’ 의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이탈리아 북부의 한 수도원에서, 심한 화상으로 죽어가는 영국인 환자, 그를 돌보는 캐나다인 간호사 해나, 그녀의 아버지의 친구이면서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연합군 스파이로 활동했던 전직 도둑 카라바지오, 영국 군대에서 폭탄처리 전문가로 일하는 인도인 공병 킵이 모여 사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죽음을 눈앞에 둔 영국인 환자는 아름답지만 슬픈 러브스토리를 킵과 카라바지오와 한나에게 들려준다.남자의 이름은 헝가리인 탐험가 알마시다. 그에겐 사하라 사막에 묻어둔 캐서린과의 가슴 아픈 사랑의 기억이 있다. 국제 지리학회 팀의 일원으로 아프리카 북부 사막 지대의 지형을 조사해 지도로 작성하는 일을 하던 알마시는 영국인 귀족 부부 제프리와 캐서린 클리프턴을 만나게 된다. 알마시는 처음 본 순간 캐서린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느낀다. 두 사람의 사랑은 곧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고, 관계를 눈치 챈 캐서린의 남편 제프리는 배신감으로 치를 떤다. 제프리는 캐서린을 경비행기에 태운 채 탐사에 열중하고 있는 알마시에게 돌진한다. 알마시는 목숨을 구했으나, 제프리는 목숨을 잃고 캐서린은 심한 부상을 입는다. 캐서린을 사막 한가운데 있는 동굴로 옮긴 알마시. 어두운 동굴을 비추는 작은 손전등과 헤로도투스의 책,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캐서린에게 남겨둔 채 알마시는 구원을 요청하러 떠난다.그러나 사흘 밤낮을 걸어 도착한 연합군의 기지에서 알마시는 신원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도움을 거절당하고, 설상가상으로 군인을 폭행하여 갇히는 신세가 된다. 절망하던 알마시는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이송 열차에서 탈출한다. 그리고 사막 지도를 독일군에게 넘긴 대가로 비행기 연료를 얻어 동굴에 돌아오지만, 그곳엔 이미 싸늘히 식어버린 캐서린의 시신과 그녀가 남긴 편지만이 알마시를 기다리고 있다.카라바지오는 그 환자가 영국인이 아니라는 의심을 갖고 있다. 그는 제프리 클리프턴이 영국인 스파이였다는 사실, 알마시와 캐서린이 서로 사랑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는 또한, 알마시가 독일에 협조했다는 것 역시 알았다.알마시가 그의 과거를 밝혀나가는 동안, 킵은 해나와 가까워진다. 킵은 일찍부터 서구 세계를 믿지 못했던 형을 대신해 영국 군대에 입대했다. 그는 공병으로 훈련받았고, 폭탄 처리 전문가가 되었다. 그를 가르쳤던 서퍽 경이 폭탄을 해체하다가 죽은 후 킵은 영국을 떠났고, 이탈리아에서 폭탄을 해체하는 일을 시작했다.킵은 해나와 낭만적인 사랑을 나누면서 점차 인간성을 회복해 간다. 그는 다시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고, 연인의 편안한 감정을 느낀다. 그런 후 일본에 떨어진 핵폭탄 소식을 듣고, 격분한다. 그는 자신이 동조했던 서방 세계에 배신감을 느끼고, 영국인 환자를 죽이겠다고 위협하다가, 결국 빌라를 떠나게 된다.그가 떠나간 후 해나는 킵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킵은 결코 답장을 보내지 않는다. 몇 년 후, 킵은 의사가 되었고 가정을 꾸렸지만, 여전히 가끔씩 해나를 생각한다.이 책은 전쟁의 황폐함 속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상실’ 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한 수도원에서 젊은 간호사 해나, 얼굴이 불타 버린 영국인 환자, 불구가 된 도둑 카라바지오, 용의주도한 인도인 용병 킵이 만나게 되는데, 네 사람의 사랑 이야기와 각자가 겪은 전쟁 이야기로 스토리가 그려져 있다.이 네사람에겐 공통점이 존재한다. 영국인 환자 알마시는 이름과 기억과 국적을 잃었고, 카라바지오는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어 몸의 일부를 잃었고, 해나는 아버지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고, 킵은 나라를 잃었다. 전쟁이라는 황폐함 속에서 각자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상처와 공허함을 간직하고 있는 네 사람을 한 공간과 한 시대에 모아놓은 것이다. 책을 다 읽고나서야 느낀 사실이지만, 이들은 그곳에서 상실을 겪은 과거를 딛고 새로운 현실을 살고자 몸부림치며 전쟁으로 황폐해진 세계를 다시 이으려 애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치르는 전쟁은 상처이자 동시에 치유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마이클 온다치의 ‘잉글리시 페이션트’ 는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알레고리이자 비판을 담은 작품으로서, 전쟁을 소재로 다루었기 때문에 전쟁 문학이며, 남녀 간의 이루어지기 힘든 연애를 담은 로맨스 소설이자, 그 로맨스를 추리구조로 풀어낸 추리 소설로도 읽히고, 모험과 미스터리도 함께 공존한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나로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로맨스적인 요소와 내용전개에 있어 가장 중점을 두고 집중을 하게 되었다.킵과 해나의 천진난만한 사랑 이야기도 물론 좋았지만, 나는 알마시와 캐서린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부상 당한 그녀를 동굴에 두고 삼일 밤낮을 오로지 그녀를 구해내겠다는 일념 하에 걷고 또 걸었지만, 너무 오랜 시간을 허비한 나머지 결국 그녀는 죽고만다. 그는 자신이 그녀를 죽인 것이라는 생각을 지닌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그녀와 함께했던 행복하고도 가슴 아픈 기억은 또한 그를 하루하루 살게하는 힘이 되어주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캐서린의 남편 제프리가 가엾은 생각도 들었다. 배신감에 치를 떨고 결국은 세사람 모두가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아델라 : 로니의 약혼녀로 아직 가치관의 변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영국인 여성이다. 아델라는 인도에서 치안판사로 일하는 약혼자 로니를 만나러 인도에 왔으며, 호기심 많은 아델라는 아지즈에게 찬드라포어 인근의 유명한 마라바 동굴을 구경하고 싶다고 한다. 가슴속에 인도에 대한 기대를 끌어 안고 인도에 왔지만 막상 오고나서 보니 인도에 대해 참 모습을 이해 할 수 없음에 안타까워 하며, 그녀도 무어부인과 함께 인도에 대해 차별을 하지 않고, 참 모습을 보고자 한다. 그리고 나중에 법정에 섰을 때 사실을 고백할 수 있는 양심 있는 영국인이다.아지즈 : 영국유학으로 신식 교육을 받은 인도인 의사로 문학적인 능력도 고루 갖춘 감성적인 인물이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고 양복을 즐겨 입을 정도로 영국에 대해 호의적인 인물이다. 영국인을 좋아하고, 찬양하는 마음씨 착하고 순수한 인도 의사인 그는 인도의 참모습을 알고자하는 무어부인과 아델라에게 인도에 대해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자신이 인도인과 견주기에는 너무나 보잘것 없고, 가난하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무어부인 : 로니의 어머니로, 자국의 식민지로서 존재하는 인도를 무시하는 다른 영국인들과는 달리, 인도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을 무시하지 않고, 참모습을 이해하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이다.로니 : 무어부인의 아들이다. 하지만 무어부인과는 달리 영국에 온 목적이 단순히 재판관으로서만 온 것이며, 자신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영국인이라는 권위의식과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