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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사카(大阪) 의 문화 (일본지역문화 A+)
    [일본지역문화]오사카()- 目 次 -1. 오사카란? (지리적 특성)2. 오사카의 역사3. 오사카의 매력ㄱ. 오사카의 명물, 명소들ㄴ. 오사카벤) (大阪弁)ㄷ. 오사카의 마츠리4. 오사카의 재일교포 관련 문제5. 오사카를 통해서 본 한국1. 오사카란? )?에마치 대지[上町臺地]와 요도가와강[淀川]의 삼각주로 이루어져 있다.?‘물의 도시' -운하가 많이 굴착되어 있어 시역의 11.2%가 수역(水域)?'다리의 도시' -약 840개?방조제(防潮堤)를 축조-삼각주 지대에 공장이 다수 존재해서, 공업용수를 쓰기위한 과도 한 지하수 개발로 지반이 침하?기온- 1월 평균 4.5℃, 8월 평균 28℃, 연평균 15.6℃로 겨울에도 온난?연강수량- 1,390mm로 일본에서는 적은 편?풍향- 서풍이 많이 불어 임해공업지대로부터의 매연에 의한 공해?지명변화고대에는 나니와[難波], 중세 이후에는 오사카[大坂] 또는 고사카[小坂]로 부르다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후 현재의 지명.인구882만2,241명 (2006년10월 1일)수출액6조8,607억엔(2005년도)공업통계조사사업소 수(종업원4명 이상)2만4,822사무소면적약1,894.31km2수입액7조1,781억엔(2005년도)종업자 수53만407명세대 수370만1,077세대(2006년10월 1일)상업통계조사상점 수상점수 12만342점(2004년 6월 1일)제조품 출하액 등15조9,611억엔(2004년)한사람당부민소득303.9만엔(2004년도)종업자 수97만6,734명(2004년 6월 1일)부내 총생산(명목)38조6,797억엔 (2004년도)연간 판매액60조969억엔(2003년)*아스카시대[飛鳥時代:6세기 말∼7세기 중엽]: 세토나이카이와 수도 아스카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을 이루어, 한반도를 비롯한 대륙문화를 받아들이는 문호로서 발전.*중세: 시텐노사[四天王寺]·이시야마혼간사[石山本願寺] 등의 문전(門前)도시로서의 명맥 만을 유지*1583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오사카성(城)을 구축함으로써 급속한 발전.*도요토미 정권 멸망f)그 당시 우에마치 대지 끝에 있었던 오사카(小坂)라고 하는 지명이 '오사카(大阪)'의 어원*우에마치 대지- 오다 노부나가曰 "무엇보다 오사카는 일본에서 가장 좋은 자리로구나"야마토강과 요도가와 강 덕분에 수운도 발달했고, 오래된 국제교류의 역사도 있 었기 때문에 이 곳을 장악한다는 것은 일본 국내는 물론 세계를 장악하는 일과 같은 의미>>>뛰어난 요새?아즈찌·모모야마 시대(1574 ~ 1600)*1580년-이시야마혼간지 절의 제11대 종주(宗主)인 겐뇨가 혼간지의 땅을 오다 노부나가에게 내어줌.*도요토미 히데요시-오다노부나가 사망후 오사카를 거점으로 천하통일. 이시야마혼간지 절 터에 오사카성을 건설하고 이 성을 중심으로 오사카를 발전.*수운거점으로 발전- 히가시요코보리가와 운하, 니시요코보리가와 운하, 아와보리가와 운하 등을 개통. 또 각지에서 상인들을 이주시켜 목면, 기름, 한약, 금속가공업 등 산업을 집중 적으로 발전, 상인들이 동남아시아까지 진출하는 등 해외교역 주력.*1614~1615 -겨울 전쟁과 잇따른여름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에도 시대(1601 ~ 1867)*'천하의 부엌'- 전국에서 물자가 들어오고 또 출하되어 가는 '유통거점'이 되고 국제무역에도 연결된 국내 최대의 경제도시로 번성. 특히 쌀은 도지마 쌀시장의 시세가 전국 쌀 시세의 기준이 되었음.*서민들의 문화융성-상업이 발달함에 따라 그 주체이었던 서민들의 문화도 융성해져 타케모토 기다유를 중심으로 한 닌교조루리가 지카마츠 몬자에몬과 손을 잡아 대성공을 거두고 그 이외에도 이하라 사이카쿠, 우에다 아키나리 등의 문예문화도 화려하게 전개*'가이토쿠도','데키주쿠'- '가이토쿠도'와 '데키주쿠'가 개설됨에 따라 학술 교육문화가 크게 발전? 메이지∼다이쇼(1868 ~ 1926)*급속한 공업발전-메이지유신후, '가와구치'에 외국인거류지가 만들어져서 문명개화의 창구가 되었지만 새정부의 잇따른 새로운 정책에 의해 금융·유통은 정체상태에 빠져 예전 같은 성황은 사라짐. 그 바람에 그 때까지의 상업·금기술을 공개하는 '몬스터 메이크업'등의 어트랙션과 45개에 달하는 각종 음식시설 및 물품 판매시설이 자리하고 있다.)오사카의 명물, 오사카 성(大阪城:오사카죠).오사카의 역사와 문화, 관광의 상징이며 시민들의 마음의 고향이기도 한 오사카성은 1931년에 재건되어 1997년 봄 새롭게 정비하여 인기를 모으고 있다.계절을 대표하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들과 나무로 둘러싸인 공원과 함께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이고 많은 시민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3년의 공사를 걸쳐서 완성한 오사카성은 그 당시의 그의 권력을 한 눈에 느낄 수 있다. 성의 정문을 들어서면 성인의 키를 넘는 거대한 바위로 성의 벽을 만든 것을 볼 수 있다. 또 오사카성의 덴슈카쿠(천수각)는 일본의 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 위로 올라가는 동안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생애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역사 교육으로서도 중요한 장소로 여겨지고 있다. 맨 최상층인 8층에 올라가면 오사카공원이 한눈에 보이며, 먼 곳을 전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외부와는 다른 현대식 시설들이 조금은 어울리지 않지만, 여기서 일본사람들의 상업적이면서 관광자원을 여러모로 최대한 활용하는 지혜를 엿볼 수가 있다. 우리나라의 성과는 많이 다른 일본 성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신사이바시 >)도쿄에 하라주쿠가 있다면 오사카에는 신사이바시가 있다.1970년대 중반부터 미국 직수입의 옷과 잡화를 판매하는 상점들이 발달해온 아메리카 무라와 부티크와 오래된 레스토랑, 패션빌딩 등으로 유럽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유럽 무라 등의 거리가 있다. 젊음의 열기와 색색가지의 화려함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일본 젊은이들의 유행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자그마한 카페를 비롯해서 다양한 이국적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과 비슷하지만 거대한 건물과 건물사이를 이어지는 아케이트 사이로 작고 세련된 상점들과 오락시설들이 많이 갖춰져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Pocky도 만들었다.이 런닝맨의 모델은 카나구리 시소우(金栗 四三)인데, 카나구리 시소우라는 사람이 올림픽에 출전한 것은 메이지(明治)시대로 1912년 스웨덴 스톡홀름 올림픽이다. 이것이 일본 올림픽 첫 참가로 일본의 큰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카나구리 시소우씨는 33,3km 부근에서 의식불명으로 낙오했다. 그는 일사병으로 의식을 잃고 부근 농가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 농가에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레이스가 끝난 다음 날 아침이었다. 그러나 그의 레이스 도중기권 사실은 잘못 전달되어 "기권"이란 보고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아, "행방불명"으로 취급이 되었다. 그는 그 뒤로 후진양성으로 일본 마라톤의 발전에 힘썼다. 그 뒤로 일본의 "마라톤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 그는,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 올림픽 기권이었으나, 그가 만년이 되었을 때인 1967년3월 스웨덴 올림픽 위원회로부터 "스웨덴 올림픽 개최 55주년 기념행사"에 초대되었다.초대장에는, "당신은 마라톤 경기에서 행방불명이 되었으므로, 골인하러 와주시기 바랍니다." 올림픽 기록에는 "기권"은 있어도, "행방불명"은 없기 때문에 이루어진 조치였다. 그러한 카나구리씨를 기념 식전에서 골인을 시키기로 하였으며, 스웨덴 경기장에서는 골 테이프를 준비했다. 그러한 순수한 의도에 대답하기 위해 카나구리씨는 염원이었던 감격의 골인을 드디어 달성했다. 이때 그의 나이 75세에, 54년8개월6일5시간32분20초3로 골인했다.그는, 오사카 중앙구 도우톤보리 하천에 걸쳐있는 에비스 다리 옆에 있는 西일본 최대크기를 자랑하는 에자키 글리코(江崎グリコ, Ezaki Glico) 제과회사의 네온사인의 광고모델이 되었다. 초대 네온사인은 1935년 점등 개시하여, 지금의 네온사인은1998년 점등 개시한 5대째의 네온사인이다. 그리고 오늘 밤도 내일 밤도 오사카의 번화가를 밝히고 있다.ㄴ. 오사카벤 (大阪弁)) (=오사카 사투리)일본에는 보케(ボケ)와 츳코미(ツッコミ))라는 개그 만담 문화가 있다. 보 육지뿐만 아니라 강에서 함께 축제를 즐기는 점이 매력적이다.오사카에서 9월 달에 행해지는 축제이다. 활기차게 단지리 수레를 끌고 행진하는 호쾌하고 용장한 이 축제는 "싸움 축제"라는 별명도 있어 일본 국내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커다란 단지리(:장식수레)를 끌고 다니는 마츠리이다. 단지리마츠리는 1703년 당시 기시와다의 번주인 오카베 나가야스 공이 교토의 伏見?荷(후시미이나리) 신을 성 내에 모시고 쌀과 보리, 콩, 조, 피 등 5개의 곡물을 많이 수확할 수 있도록 오곡풍양을 기원하며 행한 이나리마츠리가 그 기원이라고 전해지고 있다.마츠리가 아침 6시에 시작되면 “소-랴, 소-랴”라는 용맹스런 소리와 함께 남자들이 올라탄 단지리가 골목길을 빠르게 달려 지나간다. 좁은 골목길을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가기 때문에 관람객과 부딪혀 사고가 나는 일도 빈번하다. 단지리는 높이 약 4미터, 무게가 4톤이나 나가는 어마어마한 크기이다. 앞 뒤로 몇십명이 붙어 온 몸에 땀을 흘리며 끌고 미는 동시에, 위에서는 大工方(다이쿠가타)라고 불리는 지휘자가 북 리듬에 맞춰 뛰어 날아다닌다. 보기에 아찔하지만, 동시에 신이 저절로 나는 광경이다. 교차점을 전속으로 돌기라도 하면 관람객들에게서 큰 박수갈채가 이어진다. 시내를 돈 후에는 세 신사(岸城神社, 岸和田天神宮, ??神社)에서 참배하는「宮入り(미야이리)」를 한다.2일간 약 40만명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단지리마츠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흐르는 “지역”을 묶어주는 하나의 정신으로 지금도 쭉 이어지고 있다.일본 축제중 제일을 자랑하는 기시와다 단지리 마쯔리는 연령별로 역할을 정해서 각자 조직과 운영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통제가 잡힌 축제는 전국에서도 그 예를 찾아 볼 수 없다. 전부 느티나무로 만든 단지리는 약 무게가 4톤, 높이가3.8m, 길이가4m, 폭이2.5m 이다. 또, 로프의 길이는100~200m, 끄는 손은500~1000명이다.< 시텐노지(四天王寺) 왓소(ワッソ) 마쯔리 >)시텐노지(四天王寺) 왓소(ワッソ)마쯔리는 고대 동다.
    인문/어학| 2012.09.05| 12페이지| 2,000원| 조회(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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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마다 요지(山田洋次) - 황혼의 사무라이(たそがれ淸兵衛) - A+
    황혼의 사무라이(たそがれ淸兵衛, 2002))목 차1. 감독소개 ‘야마다 요지’· 필모그래피· 인터뷰2. 황혼의 사무라이· 제목소개 및 수상경력· 원작소개· 영화 속 등장인물소개· 영화 속의 시대상3. 영화 속의 일본문화1. 감독소개야마다 요지(山田洋次)1931년 9월13일에 태어나, 오사카부 도요나카시(大阪府豊中 市) 출신으로 만주 철도 기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2세에 만주로 이동해 소년기를 보냈다. 전쟁이 끝난 후 1947년에 일본으로 돌아와 야마구치(山口)현에 거주했다. 이 때의 만 주에서의 영향이 작품 속 방랑자나 사회의 일탈자, 노동자를 그리는 것에 나타나있다.)그는 도쿄대학 법학과를 들어간 최고 엘리트였지만 “도쿄대 가 일본을 망쳤다”며 엘리트주의를 깊게 혐오했고, 이는 그 가 감독이 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학생 대부분의 목적 이 관료가 되는 것에 있었고, 이들은 고급 공무원 시험에 합 격하면 엘리베이터처럼 일직선으로 올라간다. 이런 사회는 이상하다고 생각해, 일찌감치 자유로운 직업을 갖고자 노력 했다.”)그는 졸업 후 쇼치쿠(松竹) 영화사에 조감독으로 채용되어 1961년에 『2층의 타인(二階の他人)』이란 작품으로 감독에 데뷔한다. 이후 쇼치쿠의 전통적인 인정극의 뒤를 잇는『시가의 태양(下町の太陽)』(1963), 『바보 드러내기(馬鹿まるだし)』(1964), 『바보가 전차를 타고 온다(馬鹿が車でやって?る)』(1964), 『불면 날아갈 듯한 남자이지만(吹けば飛ぶよな男だが)』(1968) 등의 작품을 차례로 발표하였으며, 1969년 『남자는 괴로워(男はつらいよ))』시리즈를 시작하였다. 이 작품은 경이적인 히트를 기록하여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일본영화사상 최고의 작가로서 거장반열에 들어서게 된다. 그 외에도 심각한 가족문제와 사회문제를 비판한 휴먼 드라마인 『가족(家族)』(1970), 『고향(故?)』(1972),『행복의 노란 손수건(幸福の?色いハンカチ)』(1977),『아득한 산너머에서 부르는 소리(遙かなる山の呼び?)』(1980),『아들(息子)』(199아들 (1991)9. 남자는 괴로워 - 토라, 스님이 되다 (1983)10. 남자는 괴로워 - 토라의 수국꽃 사랑 (1982)11. 남자는 괴로워 - 토라의 석양과 일출 (1976)12. 남자는 괴로워 - 토라, 여가수를 다시 만나다 (1975)13. 남자는 괴로워 - 토라의 셋방 (1972)14. 남자는 괴로워 - 토라의 꿈은 이루어진다 (1972)15. 남자는 괴로워 - 토라의 연가 (1971)16. 남자는 괴로워 (1969)17. 속 남자는 괴로워 (1969)18. 안개 깃발 (1965)19. 바보가 전차를 타고 온다 (1964)-각본-1. 남동생 (2010)2. 카아베에 (2008)3. 낚시바보일지 18 (2007)4. 무사의 체통 (2006)5. 낚시바보일지 17 (2006)6. 출구 없는 바다 (2006)7. 황혼의 사무라이 (2002)8. 낚시광의 일기12 (2001)9. 아들 (1991)10. 바보가 전차를 타고 온다 (1964)Q : 당신은 종종 '천부적인 재능이 없으면 영화 감독이 될 수 없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실제로 100여편 이상, 거의 매년 3편 정도의 페이스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A : 예전부터 음악이나 미술 등의 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도 누구보다 영화를 좋아해서가 아닐까.Q : 평소 영화는 오락이라고 즐겨 말한다. 오락으로서의 영화는 당신에게 어떤 것인가?A : 먼저 오락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오락 영화를 만든다고 해서 무조건 비하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오락 영화도 결국에는 하나의 예술로 평가 받을 수 있는 것이다.Q : 90년대 들어 당신의 영화는 70~80년대의 영화는 다소 다르다. 당신에게 90년대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A : 일본의 가족은 점점 붕괴되어 가고 있다. 예를 들어 1970년대 만들어진 이란 영화는 결국 가족이 모두 흩어져 아버지 혼자 남게 된다는 내용의 드라마였다. 하지만 지금의 시점에서 새로운 가족상을 만든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솔직우주연상 미야자와 리에제26회 일본 아카데미상 (2003) 최우수 남우조연상 다나카 민제26회 일본 아카데미상 (2003) 우수 남우조연상 코바야시 넨지제26회 일본 아카데미상 (2003) 우수 여우조연상 키시 케이코제26회 일본 아카데미상 (2003) 신인배우상 다나카 민제26회 일본 아카데미상 (2003) 최우수 음악상 토미타 이사오제26회 일본 아카데미상 (2003) 최우수 촬영상 나가누마 무츠오제26회 일본 아카데미상 (2003) 최우수 조명상 겐곤 나카오카제26회 일본 아카데미상 (2003) 최우수 미술상 데가와 미츠오 외1명제26회 일본 아카데미상 (2003) 최우수 편집상 이시이 이와오제26회 일본 아카데미상 (2003) 최우수 녹음상 카즈미 키시아제6회 우디네 극동영화제 (2004) 관객상 야마다 요지제23회 홍콩금상장영화제 (2004) 아시아영화상 야마다 요지 외· 원작소개단편집 『타소가레 세이베이(たそがれ淸兵衛. tasogare seibei)』에 수록된 첫 번째 타이틀 작품. 표제작「타소가레 세이베이」를 비롯해 총 여덟 편이 수록되어 있는 이 단편집은 주인공의 외모나 성격, 혹은 가정환경을 소재로 쓰여진 일련의 연작이라고 할 수 있다. 각 단편은 ‘~하는 누구’라는 형태의 타이틀을 취하고 있으며, 이때 ‘~하는’이 주인공을 특징 지어주는 키워드로 작용한다. 이미 70~80년대에 걸쳐 비검 시리즈를 연재하며 인기를 모았던 후지사와 슈헤이(藤澤周平))의 연작 단편소설의 완결판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으로, 1983년에서 1988년까지 『소설신조(小說新潮)』를 통해 발표되었다.『たそがれ淸兵衛 (타소가레 세이베이)』 줄거리: 출세욕이나 재물욕과는 무관하게 매일매일 소소하게 살아가는 주인공 이구치 세이베이. 가난한 살림살이와 병든 아내를 돌보기 위해 해가 질 무렵이면 칼처럼 퇴근하다고 해서 ‘타소가레(たそがれ. 황혼녘)’라는 별명이 붙어있을 정도로 소시민에 불과한 그이지만, 검술에 있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달인이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세이베이의 모습은 시대적인 명예보다는 개인적인 안위와 가정적인 평온함을 선택하는 인물이다.2. 가장으로서의 세이베이-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황혼녘이 되기만 하면 퇴근한다고 하여 ‘칼퇴근 세이베이’라고 놀림을 당해도, 꾀죄죄하고 씻지도 않는 불청결한 행색 때문에 주군에게 혼나더라도 그에게 힘을 낼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준 것은 두 딸이었다. 그는 항상 두 딸과 노망난 어머니를 보살피기 위해 일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간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생활에 보탬이 되려고 사무라이임에도 상자를 만들며 부업을 하고, 닳고 허름한 옷도 개의치 않는다. 자신을 생각하기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가는 세이베이의 모습에서 이 시대의 아버지 모습을 볼 수 있다.3. 남자로서의 세이베이- 세이베이는 어릴 적에 같이 놀았던 토모에에게 호감을 느끼고 재회를 했을 때에도 토모에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속으로는 토모에를 좋아하고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도 못하고, 옆에서 도와주는 걸로만 만족하였다. 그는 가난이라는 벽에 부딪혀서 자신이 정말 마음에 두고 있었던 여자를 포기하고 자신의 처지에 맞는 여자와 혼인을 했다. 아내가 죽은 후 토모에를 다시 만났을 때에도 토모에를 좋아하고 있다는 자신의 마음을 외면한 채 지냈지만 결투에 가기 전 결국 고백을 하게 된다.※ 정리- 세 가지 측면에서 바라본 세이베이는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사회의 규율과 내면의 의지가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억압되어있는 현실에 맞서 시련 앞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헤쳐 나가는 세이베이의 행동에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비추어지고 있다. 세이베이가 짊어지고 가야 할 현실을 과장 없이 있는 그대로 비춤으로써 그는 현시대의 아버지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이상향을 가지고 있지만 어쩔 수없이 현실에 순응해야만 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에 관객들로 하여금 큰 공감대를 형성하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스토리텔링 기법 : 단어, 이미지, 소리를 통해 사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노미야 성(宇都宮城)전투 · 이치카와 후나바시(市川?船橋)전쟁 · 고이(五井)전투 · 우에노(上野)전쟁 · 호쿠에쓰(北越)전쟁 · 핫초오키(八丁沖)전투 · 아이즈(?津)전쟁 · 시라카와(白川)입구 전쟁 · 이와키(磐城)전투 · 니혼마쓰(二本松)전투 · 보나리 고개(母成峠)전투 · 하타마키 고개(旗?峠) 전투 · 아키타(秋田)전쟁 · 미야코 만(宮古?)해전 · 하코다테(函館) 전쟁 · 후타마타(二股) 입구 전투 · 하코다테(函館?)해전]- 우나사카 번(海坂藩)우나사카 번은 후지모토 슈헤이의 시대소설에 등장하는 가공의 번이다.황혼의 사무라이의 원작자 후지모토 슈헤이가 만든 가공의 번으로 후지모토 슈헤이가 살았던 번인 쇼나이 번 츠루오카 시가 모티브가 되어 그의 소설의 무대로 자주 등장한다.영화 속에서는 우나사카 번의 번주 타다토모를 등에 업고 권세를 누리던 개혁파가 타다토모가 죽으면서 실각하고 새롭게 권력을 잡은 호리 쇼겐으로 대표되는 막부파가 집권하면서 이야기의 전환점을 가져온다.-시대의 흐름과 사무라이영화의 배경은 1868년 무진전쟁 발발 3년 전인 1865년으로 막부말기에 해당한다.사무라이는 말 그대로 무사계급으로, 전국시대라면 영주의 밑에서 무공을 세워 승진하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평화시대의 에도막부 시대에서는 그런 것도 불가능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막부 말에는 서양의 신식 무기들이 들어오며, 근대화 전술을 배운다. 그리고 이후의 메이지유신 이후에는 사무라이의 법과 전통은 사라지는 것인데(물론 의식 깊은 곳에는 오늘날까지도 남아있지만) 황혼의 사무라이는 그 사이에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3. 영화 속의 일본문화1) 사무라이① 사무라이 (侍)원래 사무라이는 귀인(貴人)을 가까이에서 모시며 이를 경호하는 사람을 말하며 한자로 侍(시)라고 쓴다. 헤이안시대(平安時代) 이후 무사계급이 성장하면서 경호를 위해 무사를 채용하자 점차 특수한 집단으로 세력과 신분이 상승하게 되었다.1192년 가마쿠라(鎌倉)막부가 들어선 뒤 사무라이는다.
    인문/어학| 2012.09.05| 12페이지| 2,000원| 조회(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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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대중문화- TV방송 (A+)
    한국에 있어서의 일본대중문화TV방송목차1. 서론2. 본론① 일본과 한국의 방송 비교- 일본방송 표절 사례들② 일본과 한국의 드라마 비교- 한국과 일본의 공통점-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3. 결론일본대중문화가 한국에게 미친 영향1.서론오늘날 한국에 있어서 일본대중문화는 더 이상 배척의 대상이 아닌, 우리의 생활에 뿌리를 내린 깊은 관계의 문화이다. 일드(일본드라마), J-POP, 일본애니메이션, 일본만화 등 일본대중문화는 물밀듯이 넘쳐흘러 들어와 우리나라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이런 대중문화의 힘이란 어마어마한 것이여서, 일본 하면 무조건 반(反)일이었던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마저 변화시킬 정도이다. 또 대중문화 속에 담긴 메시지들은 일본을 더욱 더 세계로 뻗어나가게 하면서 일본이 문화강국임을 재확인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일본과 가까우면서 애증과 증오의 관계인 우리나라는 특히 큰 영향을 받고 있다.영향을 끼치는 많은 일본의 문화들 가운데서도 이 글에서는 일본의 TV방송을 중점적으로 보고 한국과 비교해서, 그들이 끼친 영향을 알고자 하는데 목표가 있다. 내용은 일본TV방송부분과 일본드라마부분으로 나누어서 각자 비교를 해 보도록 하겠다.2. 본론① 일본과 한국의 방송 비교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방송산업은 시장 규모에서 9조 7,199억원 수준인 한국보다 4배나 큰 4조 278억 엔에 달하고 콘텐츠 생산력이나 경제력과 같은 펀더멘탈에서 앞서 있어 거시지표상 한국보다 경쟁력이 앞서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 콘텐츠인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의 편성량을 살펴보면, 드라마는 한국이, 애니메이션은 일본 쪽의 생산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나는 등 분야별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드라마 제작 프로덕션은 일본이 49개사, 한국은 63개(신고업체 기준)로 오히려 한국이 많은 것으로 추정됐으며, 지난 해 8월(한국)과 10월(일본) 기준 드라마 편성 타이틀은 일본 쪽이 한국보다 6개가 많았으나 일본은 주1회 드라마가 26개나 되어 실제 제작량은 한국 측이 훨씬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반면, 일본의 경우 2005년에 지상파TV를 통해 방송된 신작 애니메이션 수는 250편 이상이며, 2006년 봄 프로그램 개편기에는 103편이나 방송되었으나 한국의 경우 2006년 방송 4사를 통해 소개된 신규 국산애니메이션은 45편에 불과해 애니메이션 제작역량에 있어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한일 양국 간의 자본과 콘텐츠 상호진출을 살펴보면 한국은 주로 드라마 편성의 한국어 전문채널(3개)을 중심으로, 일본은 애니메이션 전문채널(2개)을 중심으로 자본을 출자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한국자본이 출자된 일본 현지 채널은 KNTV, mnet재팬, KBS월드, MBCO(일본의 위성DMB) 등이며, 일본자본이 유입된 채널은 애니맥스, 대원디지털방송, CJ미디어, 티브로드 폭스 코리아, tu미디어, 아카넷티비 등이다.보고서는 이와 더불어 제도적 근거가 취약한 일본방송개방 요구수위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미개방 상태인 지상파TV에서의 일본드라마 허용, 버라이어티 등의 오락프로그램 전면 개방은 일본방송전체에 대한 인지도를 높여 ‘일류’ 전반에 대한 상승효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이에 따라 보고서는 향후 한일간에 FTA 타결 등으로 시장이 확대되면 애니메이션 강국 일본은 경쟁력을 앞세워 자체 애니메이션 전문채널의 한국 진출을 확대해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보고서는 또 한일간의 저작권 문제도 철저하게 대비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포맷이나 음악표절, 인터넷상의 불법 다운로드 등에 대해 일본 측으로부터 클레임의 강도가 세지고 있으므로 저작권 시장이 개방될 경우를 대비해 이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만전의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본방송 표절 사례들위에서 보다시피 일본의 방송이 점차적으로 한국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면서, 이에 일본방송을 표절하는 우리나라 방송이 생겨나게 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논란이 된 사건들.(왼: 스타킹 '3분출근법' 오른: TBS '5분출근법')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건 한국에서 알아주는 프로그램에서 대놓고 똑같이 표절을 했기 때문에 사건이 더 커졌는데, 이에 스타킹 측에서는 표절을 인정하고 방송 징계를 먹었다.(왼: '놀라움의 아라시' 오른: EBS '과학실험 사이펀')사진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실험 방식에서부터 대사까지도 비슷하게 만들어졌다.더욱 놀라운 건 이 방송이 우리나라 교육방송의 최고를 달리는 EBS에서 제작 되었기 때문에 그 여파 또한 컸다. 이 프로그램은 위에 사진 외에도 많은 일본판 실험을 그대로 베껴와 국민들에게서 표절시위로 논란이 불거졌던 사건들이다.일본대중문화가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지만, 이렇게 불법적으로 표절해서 국민들에게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방송을 따라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② 일본과 한국의 드라마 비교1. 방송 시기한국 :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고 앞선 드라마의 종영에 이어 시작됨.일본 : 1년을 4분기로 끊어, 1,4,7,10월에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됨. (한 드라마 당 3개월 정도 방송)2. 분량한국 : 16부작 미니시리즈부터 100회가 넘는 대하드라마까지 다양함. 대체로 호흡이 긴 편.일본 : 대부분 약 11회 정도의 분량(대하드라마 예외). 매 회 에피소드 형식의 전개.'아내의 유혹'(한국)은 무려 129부로 종영됨.?3. 방송 길이한국 : 일주일에 2화를 방영, 70분 정도 방송.일본 : 일주일에 1화를 방영, 중간에 광고가 있어 드라마 자체 길이는 45분 정도.?중간광고 뿐 아니라 스폰서 소개도 있음.4. 소재한국 : 사랑 이야기가 주류. 점점 다양화되어 가는 추세.일본 : 추리, 미스터리, 판타지, 학원물 등 매우 다양함. (다양한 소재로 큰 인기를 얻음)5. 가족한국 :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이야기의 바탕이 됨.일본 : 가족은 드라마의 전개에 부수적인 역할을 할 뿐. 등장하지 않는 경우도 다수.(쿠로사기) (트릭 - 비현실적 미스테리)6. 현실성한국 : 어느 정도의 현실성을 전제로 함.일본 : 인기 만화를 극화하는 경우가 많아 비현실성이 두드러짐.?7. 시청자의 반응 수용한국 : 시청자의 반응이 드라마의 전개에 영향을 미치기도 함.일본 : 시청자의 반응이 영향을 끼치기 어려움.시청자의 외면으로 조기종영 된 드라마 '맨땅에 헤딩'(한국)8. OST한국 : 드라마를 위한 음악이 제작.일본 : 드라마 OST이자 그 가수의 활동곡이 됨.- 한국과 일본의 공통점└ 집단을 중요시 함일본과 한국 모두 역사적으로 불교와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아 왔다.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 나 등으로 이어지는 현대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족에서의 서열 구조가 명확했다. 그러나 한국과 같이 사회가 발전 하면서, 요즘은 그런 개념이 많이 없어졌다. 그렇지만 월드컵이나 올림픽이 열리면 한국인 누구나 할 것 없이 이유를 불문하고 한국이 이기기를 기원한다. 대부분의 국민이 한국의 승리에 기뻐하고, 패배에 슬퍼 한다. 이는 일본 국민도 마찬가지이며, 국가체제를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가 강한 편이다. 이건 당연한게 아닌가 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는 유교문화의 영향이 많은 아시아권 국가가 유럽이나 남미 국가의 국민들 보다 특히 성향이 강하다. 유럽의 경우, 단일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이 희박하며, 미국의 경우는 국가 주의이긴 하지만 단일 민족에 대한 의식은 희박하다.└ 유사한 사회 제도한국과 일본은 유사한 제도가 많았다. 우리가 다니고 있는 학교 제도 역시 사실 일본의 제도를 모방한 경우가 많다. 부모님 세대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치뤘던 대학 본고사 등은 일본 임시 시험과 매우 유사하다. 고등학생들이 많이 보는 수학의 정석이나 성문종합영어등도 실은 일본의 서적을 그대로 모방한 경우이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한국 역시 70~80년대만 해도 엘리트 관료, 즉 공무원이 사회를 관리하고 이끌어 나갔다. 유명한 일본의 소니나 도요타가 대기업으로 성장하기 까지 일본의 관료들의 역할이 컸다면 한국의 삼성이나 LG등이 이렇게 커지기 까지 관료의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한국이나 일본 모두 국가 관료의 힘은 큰 편이다.└ 비슷한 말의 구조같은 한자를 사용하며 일본어와 한국어의 순서가 같다. 또 조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 수 있다. 실제로 영어와 중국어, 프랑스어등 유럽의 언어는 조사의 역할이 크지 않다. 그러나 한국어와 일본어는 주어 목적어 동사의 기본 구조를 같으며, 동시에 조사가 중요하게 사용 된다.
    생활/환경| 2012.09.05| 8페이지| 2,000원| 조회(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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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생활문화] 스모(相撲,すもう) - A+
    [일본생활문화]근대 이전의 일본생활문화주제 : 스모(相撲,すもう))- 목 차 -1. 스모(相撲)의 기원 및 역사- 나라시대- 가마쿠라 막부시대- 에도시대2. 스모(相撲)에 대한 설명ㄱ. 스모(相撲)의 용어ㄴ. 계급 순위3. 씨름과 스모(相撲)4. 스모(相撲)와 천황제- 1 -1. 스모(相撲)의 기원 및 역사)스모는 도효(土俵)라 부르는 씨름판 위에서 리키시(力士)라 부르는 프로 씨름꾼들이 승부를 가르는 스포츠이다. 어원적으로는 다투다, 서로 겨루다 등을 뜻하는 일본어 동사인 스마우(すまう)에서 비롯되었다. 전통적 스모의 기원에 대하여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한국의 씨름과 같은 원류인 몽골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수메르 인과 아리아 인의 일부가 일본으로 이주해서 전해졌다는 설이 있다. 또한「古事記)」에는 다케미카즈치신(建御雷神)과 다케미나카타신(建御名方神)이라는 두 신의 힘 겨루기 설도 나와있다. 또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인 「日本書紀」(720)에는 서기 642년에 일본 왕이 백제에서 온 사신을 환대하기 위하여 병사들 가운데 장사를 뽑아 궁궐 안에서 스모(相撲)를 공연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8세기 초에 편찬된「古事記」와「日本書紀」에 스모에 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스모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현재 통상적으로 알려진 바로는 스모의 유래는 민간에서 행해지던 자연발생적인 힘 겨루기 놀이라고 한다. 그 후 스모는 궁중의례가 되었고, 한때에는 실전무술로도 인식이 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면서 스모는 흥행과 결탁이 되어 스포츠로서의 길을 가게 되었다.? 스모의 역사- 나라시대 (奈良時代)) : 조정행사→왕권의 힘의 과시스모(相撲)는 궁중에서 정기적인 의례로 행해지게 되었다. 중앙집권의 강화를 위해서 왕은 신하를 불러서 세치에(節會,せちえ)라는 잔치를 하였는데, 이 세치에(節會,せちえ)중의 하나가 스모세치에(相撲節會)였다. 이런 스모세치에를 개최하는 목적은 중앙정부의 권력을 과시하는데 있었다. 따라서 중앙정부의 권력이 지방까지 미치는 시기에는 스모세치에가 잘 되었지만, 왕권의 쇠퇴와 더불어서 쇠퇴하게 되었다. 이처럼 나라시대에는 스모를 조정의 행사 때나 볼 수 있었다.- 가마쿠라 (鎌倉,かまくら)막부시기) : 실전무술용→전문적으로 발전중세에 이르러 권력이 조정으로부터 무사들에게로 넘어가자 중앙집권적 힘의 상징이던 스모(相撲)도 그 성격이 달라지게 된다. 이 시기의 스모는 무사들의 전쟁을 위한 연습이나 일상적 신체단련 등 실용적인 의미가 강조되었다. 전국시대에는 영주가 스모를 장려하였으며 무사들의 필수무술로 인식되었다. 이와 같이 영주가 스모를 장려되면서 전문적으로 직업적으로 스모를 하려는 사람들도 등장하였다.- 2 -- 에도시대 (江戶,えど時代)) : 대중오락→직업 리키시(力士)가 등장전국시대가 끝나자 무사들의 일이 많지 않았다.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많은 무사들을 중심으로 칸진스모(勸進相撲,かんじんすもう))라는 간판을 내걸고 직업적으로 스모(相撲)를 하는 집단이 생겨났다. 이 당시의 스모(相撲)는 전쟁이 끝난 후였으므로 전국시대와 같은 전쟁을 위한 실전용에서 그 성격이 변화하게 된다. 경기 진행에 제한을 두어 점차 실전무술에서 스포츠의 의미가 가미되어 대중오락으로 변신하게 되었다.2. 스모(相撲)에 대한 설명ㄱ. 스모(相撲)의 용어- 도효이리(土俵入り) : 선수들이 도효에 등장하는 의식. 몸의 깨끗함을 나타내거나 씨름판의 신에게 정정당당하게 싸울 것을 맹세하거나 하는 의미로, 오즈모에서는 쥬료(十?) 이상의 선수는 경기 전에 도효이리(土俵入り)라고 하는 의식을 치른다.- 도효(土俵)) : 스모 경기를 하는 장소이자신성한 구역. 이것은 흙(土)을 담은 가마니(俵)를바닥에 둥그렇게 둘러 놓은 공간으로, 한 면이6.7m 정사각형 흙을 쌓아 올려 단을 만들어굳히고, 그 위에 지름이 4.5m가 되도록 장내 경계선을 만든 것이다.- 마와시(廻し) : 우리 씨름의 샅바와 같은 것으로 리키시(力士)의 계급에 따라 토리마와시(取り回し)와 케쇼마와시(化粧回し))의 두 종류가 있다.- 키요메노시오(淸めのしお) : 리키시(力士)가 도효에 등장해서 뿌리는 소금으로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소금이 부정을 막아준다고 하여, 소금을 허공에 뿌리는 것은 부정을 막고 선수가 부상을 당하지 않도록 기원하며 맑은 기(氣)로 채운다는 의미이다.)- 3 -- 치카라미즈(力水) : 도효 모서리에 놓여진 물. 이를 국자로 퍼서 리키시(力士)가 도효에 나오기 전에 입을 헹구는데 기력을 왕성하게 하고 몸을 깨끗이 한다는 의미가 있다.- 치카라가미(力紙) : 일본 전통종이를 반으로 접은 것으로 리키시(力士)가 시합에 들어가기 전 이것으로 몸을 닦늗데 , 이것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의미이다.- 시코(四股) : 한자로 네 개의 넓적다리라는 뜻으로, 씨름판에 나온 선수들이 시합을 하기 전에 각자 좌우 양다리를 서로 번갈아 들어 올렸다가 힘껏 내디디는 등의 독특한 동작을 취하는 행동이다. 시코는 선수들의 준비운동이자 상대에게 힘을 과시하는 것이기도 하며, 땅에 있는 나쁜 악귀를 물러내고, 지신(地神)에게 경기를 알리는 것을 의미한다.- 교우지(行司) : 스모경기의 심판.- 스모마게(相撲まげ) : 리키시(力士)의 특이한 머리모양을 가리키는 말로 시대에 따라 그 명칭과 모양이 조금씩 바뀌었다. 스모마게는 리키시의 품격을 높이고 스모의 독특한 전통을 전하는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반즈케(番付け) : 리키시의 순위표. 순위가 높을수록 윗부분에 큰 글씨로 성명이 적힌다.ㄴ. 계급 순위)1. 요코즈나(橫綱) : 우리나라의 천하장사와 같은 최고의 위치2. 오제키(大關) : 요코즈나 다음으로 2번째 지위3. 세키와케(關脇)) : 오제키 아래의 지위이 외에 순서대로 코무스비(小結), 마에사기라(前頭), 쥬료(十兩), 마쿠시다(幕下), 산단메(三段目), 죠니단(序二段), 죠노구치(序ノ口)가 있다.입문 단계인 조노구치에서 출발해 수많은 경기를 거쳐 한 걸음씩 위로 올라가는 스모의 세계는 일본 전통사회의 계급구조를 잘 투영하고 있다.- 4 -? 스모의 개최시기 및 명칭)- 혼바쇼(本場所) : 프로 선수들에 의해 1년에 6차례 15일씩 개최되는 시합.- 오즈모(大相撲) : 프로 선수들에 의해 혼바쇼에서 개최되는 수준 높은 경기.* 1일 경기는 15회, 년간 90회를 경기한다.3. 씨름과 스모(相撲)씨름이 5판 3승으로 승자를 가리는 데 비해 스모는 단판 승부이다. 게다가 씨름은 백두급, 한라급 등 이렇게 체급의 차이가 있지만 스모에서는 덩치가 크든 작든 이를 인정하지 않고 강자만이 살아남는다. 또한 스모에 있어 심판은 절대적인 존재이다. 설사 그릇된 판정이 내려지는 한이 있더라도 불만 없이 따라야 한다. 그리고 스모 선수들은 이기든 지든 감정을 엄격히 통제해야 하므로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다. 씨름에서의 승자는 승리의 기쁨을 포효하는데 반해서 말이다. 뿐만 아니라 씨름과 스모는 의식의 유무도 크게 다르다. 스모는 두 선수가 맞붙는 시간보다 시합 전의 의식에 들어가는 시간이 훨씬 길다. 스모에는 제의적인 요소가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우리나라의 씨름과 일본 스모의 가장 큰 차이점은 우리나라 씨름은 민중 속에 터전을 잡고 성장하면서 자유를 갈구하는 민중 의식을 표현한데 반하여 일본은 황실의 비호아래 철저한 규율과 형식의 틀 속에서 배양됐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일본의 스모는 천황제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일본에 깊게 뿌리내려있다. 이렇게 일본에서는 현재까지도 스모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의 씨름은 점점 잊혀져가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현대에 스모를 이끌어나가는 일본의 자세를 배워서, 우리의 전통 스포츠인 씨름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생활/환경| 2012.09.05| 5페이지| 2,000원| 조회(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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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주(住)생활 - A+ 주(住)로 알아보는 일본생활문화
    [일본생활문화]일본 현지답사 보고서주제 : 주(住)로 알아보는 일본생활문화- 目 次 -1. 현지답사의 목적2. 일본의 주(住)생활3. 한·일 주(住)특징 비교4. 현지답사를 통해 느낀 점1. 현지답사의 목적답사라고 하는 것에는 목적이 필요하다. 뚜렷한 목적 없이 현지답사를 간다면 많은 시간들을 낭비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 2조는 이번 현지답사의 목적을 일본의 주(住)생활로 정했다. 사람에게 필요한 의식주 중에서 주(住)생활만큼 그 곳의 생활과 문화를 알려주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주(住)생활을 큰 의미적으로 다뤄서, 보다 다양하게 일본생활문화를 바라보고자 하였다.일본은 우리에게 있어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또한 일본과의 교류가 증대하다보니 일본의 대중문화나 생활에 관심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증가되는 일본에 대한 관심의 홍수 속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활 문화, 그 중에서도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필수적인 요소인 주거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보통 ‘집’이라는 단어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단순한 건물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가족관계나 사회생활을 하기위한 쉼터 등 사람이 살아가는데 정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뿐만 아니라 교육, 오락, 친교, 육아 등 모든 생활에 집과 관련되지 않은 부분은 찾기 힘들다. 이처럼 중요한 주거문화를 알아봄으로써 일본인들의 생활상을 이해하고, 우리와 비교해서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2. 일본의 주(住)생활1. 일본의 자연환경일본은 일본열도라고 불릴 만큼 많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다양한 수만큼 다양한 기후를 갖고 있다. 즉, 북쪽지방은 약 반년이나 눈에 갇힌 생활을 하는 데 비하여 남쪽지방은 항상 여름과 같은 생활을 하기 때문에 일본인의 주거는 각각의 지역적 풍토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게 된다.그 예로 심설한랭지구에서는 처마 밑까지 쌓이는 2미터 이상의 눈에 대비하기 위해 특별히 집의 바닥을 높게 하거나 처마높이를 2층 정도로 높택환경의 특징1) 여름형 주거(개방형)일본은 고온다습한 해양성기후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 개방적인 주택 구조가 특징을 여름형 주택이라고 할 수 있다. 비교적 온난한 지방이 많은 일본에서는 겨울보다도 여름철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것을 상당히 중요시하여 개방적이고 통풍이 잘되도록 창문이 크고 많은 주택을 추구하였다. 또한 습기를 피하기 위해 건물을 높게 짓는다. 그래서 일본주택의 실내는 온화한 외기와 소통이 되도록 열린 공간으로 형성되는 것이 특징이지만, 추운 겨울철에는 부적합한 구조라 할 수 있다.2) 지진에 대비한 주거(목재형)일본은 주택을 지을 때 주로 목재를 사용하며 낮은 건물들을 만들곤 하는데 이는 지진에 대비했기 때문이다. 즉 지진이 많은 일본에 맞추어 건물을 낮게 지음으로써 지진으로 인해 건물이 무너질 확률을 줄이고, 콘크리트보다는 목재로 지은 건물이 흔들림에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현재도 고층맨션을 제외한 일반주택은 대부분 목재를 사용해 짓는다. 하지만 이렇게 목재를 사용해 주택을 짓다보니 화재에 취약하고 또한 공동주택의 경우에는 방음이 제대로 되지 않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한 예로 1995년의 고베대지진 때 사망자의 절반이상이 목조건물의 화재에 의한 인명피해라고 한다. 또한 대학가의 오래된 목조 아파트에서는 이웃 간의 소음에 의한 피해와 그로 인한 마찰이 자주 일어나는 경우도 볼 수 있다.3) 좌식문화대체로 일본 주택에는 소파와 침대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거실격인 작은 공간에는 낮은 좌탁이 놓여 있어 손님접대를 비롯하여 다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흔히 일식 집에서 복수 있는 방석의자는 서양의 입식가구인 등받이 의자를 좌식생활에 적용시킨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일본인들의 주거는 ‘토끼장’이라는 다분히 경멸적인 표현으로 불린다. 하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조그마한 자투리 공간을 알뜰하게 활용하는 재능을 보여줌과 동시에 좌식문화의 구조와 특성을 제대로 살린 공간구성을 지켜나가는 것이다.3. 주택의 종류1) 단독주택일본에서는 예부동주택인 아파트보다는 잇코다테(一?建て)라고 부르는 단독주택을 선호한다. 특히 콘크리트 단독 주택이 아닌 목조 가옥 단독 주택을 매우 선호하며 서민층 주부들은 손바닥만한 정원이라도 있어서 꽃나무 몇 그루쯤 가꾸며 살기를 소망한다.2) 공동주택 (임대주택)일본의 공동주택은 인구가 도시로 집중된 결과 나온 것이다. 에도시대(1603~1868)에 이미 몇몇 거대도시가 등장하였고, 그 뒷골목에는 초라한 셋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나가야(長屋)’라고 불린 공동주택이 그것이다. 회반죽을 바른 2층집인 나가야 형식의 공동주택으로, 각 층에는 몇 개에서 수 십 가구가 들어서 있다. 그리고 1950년대에 들어 공영 공동주택인 소위 단지아파트가 각지에 들어섰다. 그러나 고도경제성장을 거치며 주거이외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이에 따라 단지아파트 생활에 대한 불만들이 쏟아져 나왔다. 단지아파트는 한정된 공간을 최대한으로 이용하기 위해 방은 벽으로 나뉘었고, 이에 따라 일본 전통가옥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다다미 방의 전용성이나 융통성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또한 그러다 보니 같은 아파트 내의 집들은 하나같이 같은 장소에 같은 가구가 놓이게 되는 획일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한편 고액소득자를 위한 ‘맨션’이라는 명칭의 고급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3)아파트(アパ―ト)와 맨션(マンション)일본의 아파트와 맨션의 구분은 한국과는 전혀 다르다.일본에서의 아파트는 목조건물로 지어진 2층 이하의 건물로 대개 화장실, 욕실, 부엌을 공동 사용하며, 집세는 가장 싸다. 서민층 이하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는 뉘앙스가 강하며, 집합 주택을 의미한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맨션은 한국의 아파트와 동일한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목조건물인 아파트와 달리 맨션은 철근건물이다. 또한 맨션은 아파트보다 좋지 않은 맨션부터 최고급 맨션까지 범위가 다양하다. 대부분 층수가 높을수록 좋은 맨션이라고 한다.아파트)와 맨션은 하나의 건물을 여러 가구의 주거로 각기 나누어진 집한 주택이다. 일반적으로 2 하는 나무로 된 바닥에 접을 수 있는 깔개를 깔았던 것으로 유래하며, ‘접는다’, ‘포개어 겹친다’는 뜻에서 파생되었다. 일반적으로 일본에서는 방의 크기를 한국처럼 몇 평으로 나타내지 않고 다다미 수로 나타낸다. 즉 방의 넓이를 잴 때 이 다다미를 단위로 하여 몇 장짜리냐에 따라 방의 크기를 가늠하는 것이다.② 고타츠炬?(こたつ)고타츠는 상 밑에 방열기구를 넣고 그 위에 이불을 덮은 형태의 겨울철 난방기구로 일본의 유일한 난방도구라 할 수 있다. 한국과 같은 온돌장치가 없는 일본에서는 겨울나기에 잇어 없어서는 안될 필수 품목이 바로 고타츠이다. 매우 경제적이어서 서민 가정에서 특히 사랑받는다. 고타츠는 식구들이 둘러 앉아 식탁이나 책상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공동의 생활공간으로 겨울철 가족생활의 구심점이 되기도 한다.③ 정원일본 집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정원이다. 일본인은 정원을 나무, 풀은 물론 산, 연꽃, 폭포, 식물 등을 장식하여 소우주를 만든다. 우리나라의 마당과 달리 일본의 정원은 휴식하는 공간이자 미술품처럼 정서를 일으키며, 감상의 대상이 되는 문화적인 특징이 있다. 정원을 만들 때 인간의 정서의 움직임을 전제로 하여만들며, 자연에 인공을 가하여 만든다는 기본적인 과정을 지니기 때문에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가 여러모로 반영된다.정원의 종류에는 지센식 정원, 가레산스이식 정원, 로지식 정원 으로 나뉘고, 지센식 정원에는 주유식, 회유식, 차경식 정원으로 나뉜다.④ 부츠단 ?壇(ぶつ?だん)일반가정에서 불상이나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곳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반가정에 반드시 부쓰단이 있었다. 옷장이 당연히 있는 가구인 것처럼 부쓰단 역시 당연히 존재하는 가구의 하나였다. 하지만 집값의 상승, 신앙심과 조상경배사상의 상실로 인해 부쓰단이 있는 가정은 격감했다. 그렇다 해도 아직 노인층에는 부쓰단을 모시는 집이 많다. 식사 전 새 밥을 먼저 조상에게 올리기도 하고, 외출 전에 하루를 무사히 보내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곳이다.3. 한·일 주(住:집세)②나중에 방을 뺄 때 집 상태에 따라 일부 돌려받을 수 있는 시키킹(보증금):단위는 계약한 집의 월세 한 달 치로 계산되는데 시키킹1 이라고 써 있으면 한 달 치 집세, 시키킹2라고 되어있으면 집세의 두 달 치를 지불해야 한다.그리고 시키킹은 위에 나와있는 것처럼 나중에 방을 뺄 때 방의 상태에 따라 돌려받을 수 있는 금액이 달라지는데(청소비나 수리비 등을 빼기도 한다.) 집주인이 청소비나 수리비 등을 과다 청구하는 경우도 있으니 조심하길 바란다.③집주인에게 집을 빌려 주어서 고맙다는 표시로 내는 레이킹(사례금):시키킹과 마찬가지로 단위는 계약한 집의 한 달 치 집세이며 레이킹1은 한 달 분, 레이킹2는 두 달분의 집세를 지불해야 한다.(레이킹은 후에 돌려받을 수 없다.)④ 부동산에 지불해야 하는 수수료:수수료 역시 한 달 분 집세와 금액이 동일하다.이처럼 일본에서 방을 구할 때는 총 네가지 항목에 대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경기에 따라서는 시키킹이나 레이킹이 증감하는 경우도 있다. 요즘 같이 경기가 좋지 않을 경우에는 레이킹이 1개월 분 또는 제로인 경우도 있다. 시키킹의 경우에는 퇴거 시 큰 문제가 없을 경우 돌려받을 수는 있지만, 전액을 돌려받은 경우는 드문 일이다. 집세를 연체했다거나, 또는 집 수리, 청소 등의 비용을 제하는 경우가 그렇다. 반면, 세입자의 권리도 상식선에서 보장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보통 계약 기간은 2년 이지만 갑자기 집세를 대폭 올린다던가 입주자가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계약 갱신을 거부한다던가 하는 일은 거의 없고, 만일 집세 지불이 늦어졌다고 해도 함부로 세입자를 대할 수가 없다. 집주인도 이런 사항이 있기 때문에 입주 시 까다롭게 따지는 경우가 여기서 발생한다. 연대 보증인을 세워도 거기에다 입주심사를 강제하는 곳도 있다. 그래서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더욱 어렵다.)짚으로 지붕을 올리고 목재를 주를 이루는 한국 가옥은 일본 가옥과의 공통점이 더 많아 보인다. 또 좌식문화를 공통으로 갖는 한국과 일본의 가옥구조가 더 이다.
    생활/환경| 2012.09.05| 8페이지| 2,000원| 조회(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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