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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끼전 페미니즘 비평의 시각
    1. ‘장끼전’에 나타나는 문화적, 사회 이데올로기(1) 유교적 문화와 억압구조‘장끼전’의 배경 당시는 유교문화가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작동하던 시대였다. 유교는 곧 공자의 사상이다. 모든 것은 하늘의 뜻을 따른다는 천명사상이다. 천명사상은 도덕성과 역사의식에 근거를 두고 인간관의 ‘仁’사상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윤리적, 정치적, 교육적, 법률적, 제도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요인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유교는 현세적, 실용적인 세계관을 반영하는 능동적인 사회질서의 원리로 중앙집권적 통치에 활용되어 왔다. 조선왕조는 고려의 숭불정책을 배격하고 유교를 바탕으로 하는 진정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추구하였고,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유교이념은 극도로 신성시되고 교조화 되었다. 조선왕조에 있어 유교이념은 정사를 도모하는데 뿐만 아니라 일반 민중의 생활관습을 형성시키는 일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개체와 집단의 조화를 추구하는데 있어서도 세속적인 개인적 욕망을 추구하지 않는 특성으로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장끼전’에는 유교와 관련이 되거나 영향을 받은 수많은 고사, 한자성어, 고대인물 및 제도 관습 등이 나타나고 있다.장끼의 꿈 해몽에서,춘당대 알성과에 문관 장원 참례하여 어사화 두 가지를 머리위에 숙여 꽂고 장안 대도 상에 왕래할 꿈이로다.(62면)라는 말은 왕이 친림하여 알성하고 보이던 과거에 급제하여, 임금께서 친히 내려주시는 가화를 받는다는 뜻으로 유교에서 비롯된 과거제도를 말하고 있다. 또한 까마귀의 청혼에 대한 까투리가,운종룡하고 풍종호하며 여필종부라 하였으니...(72면)라고 대답하는데 이 때에도 ‘구름이 용을 따르고, 바람이 범을 따르는 것처럼 여자는 필이 남편을 따라야 한다.’는 뜻으로 전형적인 유교사상이 발편되고 있다. 이에 대한 까마귀의 반박에서도,너 같은 미물이 수절이 당할손가. 자고로 까투리 열녀정문 못 보았네.(72면)라는 말에서 ‘수절’은 바로 조선조 여성의 유교적 이념이고 ‘열녀정문’은 그 유교적 이념을 지킨 여성에게 내리는 유교제도에서 비롯된 국가적인 포상이다.유교문화의 이데올로기는 그 교조주의적 해석과 실행, 친족조직과 부계혈연적 권위체계로 여성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교사상의 천지, 음양, 남녀, 건곤과 같은 이분법의 상하구분은 순리이자 진리였다. 위의 예문에 나타나는 ‘여필종부’, ‘수절’, ‘열녀정문’과 같은 말을 여성의 성적 속박을 직접적으로 강요하는 유교의 윤리적 이념을, 오륜 중에서 ‘부부유별’과 같은 말은 여성의 성적 차별을 주장하는 유교의 권위적인 도덕관을 표출하고 있는 말이다. 이러한 문화 이데올로기는 신분제와 혈연체계의 교묘한 결탁으로 조선조의 가부장적 사회 이데올로기로 나타나게 된다.(2) 가부장적 사회와 완고한마디로 가부장제란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를 말한다. 남성지배의 양상은 문화적 이데올로기를 기제로 하여 사회제도 차원으로 나타난다. 조선조 사회는 집약 농업적 생산양식의 경제적 특성을 갖게 된다. 집약 농경사회는 원시농경에 비해 많은 노동력이 요구됨으로 남성의 참여도가 크게 증가하게 된다. 이 시대의 사회는 성에 따른 분업을 최대한 활용하며 주로 부계 혈통 중심의 조직화와 남녀유별의 관습을 통하여 남성지배적인 체제의 구축, 즉 가부장적인 사회를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물론 위에서 언급한바와 같은 유교문화의 인륜도덕 이데올로기가 그 기제가 되고 있음은 자명하다. 그것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이 추구하여야 할 보편적 외관은 이른바 삼강오륜, 삼종지도, 부위부강, 열녀부경이부와 같은 유교적 이념의 이론적 표명에 다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여성주의 문학 비평가는 여성의 ‘차이와 주변화’에 깊게 관여한다. 따라서 여성주의 비평가들은 작품에서 여성이 문화와 사회적으로 어떻게 속박을 당하는가를 탐구하게 된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의 여성에 대한 ‘차이와 주변화’의 의식은 정당한 논리의 대결이 아닌 폭언과 힘으로의 억압으로 나타난다.‘장끼전’ 전반부의 까투리와 장끼의 논쟁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여실히 나타난다. 즉 ㄲㆍ투리가 계명시의 꿈을 해몽하며 논리적인 설득을 하는데 대하여 장끼는 ‘대노하여 두 발로 이리 차고 저리 차며’ 욕설로 대답을 하는 경우이다.화용월태 저 간나위년 기둥서방 마다하고, 다른 남자 즐기다가 ... 뒷죽지 결박해서... 북치며 조리돌리고, 삼모장과 치도곤으로 난장 맞을 꿈이로세. 그 따위 꿈 얘기란 다시 말라. 앞정강이 꺾어 놓을 테다.(64면)이는 결코 논리적인 논쟁이 아니다 ‘이리 차고 저리 차고’는 폭력이요, ‘다른 남자 즐기다’는 누명을 씌우는 것이며, ‘결박해서’, ‘조리 돌리고’, ‘난장 맞’는 다는 것은 폭언이며, ‘간나위 년’은 쌍 욕설이고, ‘앞정강이 ㄲ?ㄲ어 놓’겠다는 것은 협박이다. 이런 가부장적 횡포의 현상은 계속된다. ㄲㆍ투리가 염치의 고사를 인용하며 만류할 때도,네 말이 무식하다. 예절을 모르거든 염치를 내 알소냐.(64면)사리 깊은 아내의 말에 ‘무식하다’고 면박을 주는 정도를 넘어, 예절도 모르는데 무슨 염치까지 알겠느냐고 비꼬아대며 뱃장을 부린다. 그래도 까투리가 고집에 대한 고사를 들며 간절히 설득하자,콩 먹고 다 죽을ㄲㆍ. 고서를 볼작시면 콩 태자 든 이마다 오래 살고 귀히 되니라.(65면)라고 아내를 무시하며 오기를 부린다. 결국 자기 분수를 모르고 엉뚱한 호기를 부리던 장끼는 콩을 먹고 죽음을 맞게 되는데 마지막ㄲㆍ지도 그의 가부장적인 권위의 발악은 멈추지 않는다. 슬피 우는 까투리에게,에라, 이년 요란하다. 후환을 미리 알면 산에 같이 뉘 있으랴.(67면)죽어가면서도 장끼는 끝까지 자기 행동을 뉘우치지 않고 오히려,상부 잦은 네 가문에 장가가기 내 실수라.(68면)고 하며 자기의 죽음을 아내의 탓으로 돌린다, 그리고 까투리의 수절을 당부하며 ‘네 아무리 설워하나 죽는 나만 불쌍하다.’며 끝까지 이기심을 나타내고 있다. 당시 남존여비 사상으로 철저히 젖어있는 가부장적 남편의 전형적인 모습을 장끼는 작품 전반부 내내 일관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3) 정절과 저항여성주의자들은 우리의 문화가 가부장제적 문화, 즉 남성의 이익을 위해 조직된 문화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여성주의 문학 비평가들은 이와 같은 문화에서 야기된 세력 불균형이 어떻게 작품 속에서 반영되고 도전받는지를 탐구한다.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대표적인 것이 정절 이데올로기이다. 정절 이데올로기는 가부장제적 사회 이데올로기의 하부 개념으로 간주 될 수 있다. 그러나 유교문화적인 조선시대에서 정절 이데올로기는 여성을 억압하는 핵심사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삼종지도, 출가외인 이데올로기도 당시의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을 통제하는 중요한 이념이지만 대부분의 문학작품에 구현되는 성적 차별의 양상은 소위 열녀관, 개가금지로 나타나는 정절 이데올로기가 주류를 이룬다.조선왕조에서 수절과 정절은 여성의 행위를 규제하는 핵심적 사상이다. 그중에서도 과부의 재가 금지는 정절 이데올로기의 핵을 이루는데 이러한 관습은 지배층 남성의 기득권 투쟁의 과정에서 강조되게 되었다. 즉 기득권을 보지하고 있는 권력층의 가정에 유교적 실천 윤리에 벗어나는 행위, 특히 여성의 훼절은 가문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중요한 약점이 됨으로 부녀자의 행실을 극도로 통제하게 되었다.정절 이데올로기는 수절 뿐 아니라 외츨규제, 복장규제, 내외 등의 실천적 규범에 의해 뒷받침 되었는데 성종때는 ‘再嫁女子孫禁錮法’이 제정되어 벚제적 통제까지 뒷받침 되었다. 재가 자체를 금하지는 않지만 재가녀의 자손이 관직에 나가는 것을 금하였음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을 얻는 것이 신분 유지와 생계의 수단이었던 사족들에게 이 법은 가장 철저한 정절 이데올로기를 고수하는 조치가 되었던 것이다.‘장끼전’에는 이미 위의 인용문들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많은 정절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어휘들이 나타난다. 또한 까투리가 뭇 조류들의 청혼에 대해서도 ‘삼년상’이라든가 ‘여필종부’ 혹은 ‘궁합’등의 이유로 거절하는 것도 정절 이데올로기의 무의식적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처음 조문객인 까마귀가 청혼을 했을 때 까투리는 스스로 미물임을 자처하고 ‘아무리 미물인들’ 삼년상도 마치기 전에 개가할 수는 없고 여필종부인데 아무나 따를 수는 없다고 거절하는데 이는 미물도 따를 수 밖에 없는 유교의 실천적 윤리인 정절의식을 확인케 해주는 대목이다.‘장끼전’에서 남성위주 정절사상의 핵심을 보여주는 장면은 장끼가 죽으면서 아무 거리낌도 없이 아내에게 하는 당부이다.내 얼굴 못보아 설워 말고 자네 몸 수절하여 정렬부인 되옵소서.(69면)아내의 연이은 간곡한 만류를 왜곡과 트집, 폭언으로 묵살하고, 그 결과 죽음에 이른 장끼가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것은 다시 시집가지 말고 정절을 지키라는 것이다. 장끼에 있어서 수절을 하라는 당부는 아주 당연시 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가부장제적 횡포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인문/어학| 2012.12.06| 5페이지| 1,000원| 조회(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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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인성 포스트 모더니즘 작품 연구
    이인성의 ‘낯선 시간속으로’,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포스트 모더니즘 작품 분석1. ‘포스트 모더니즘’20세기 예술의 원리를 ‘모더니즘’이라 한다면 현 시대를 지배하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 할 수 있다. 현 시대를 지배하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 할 수 있다.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논쟁이 계속되던 198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논의되기 시작한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용어 자체에 ‘포스트리얼리즘’이라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어, 20세기의 대표적 문학 양식인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한계를 동시에 극복하는 새로운 문학양식이다. 이에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는 1960년대에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에 반발하여 새롭게 시작되어 70년대에 명명하면서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은 아직까지 그것의 정확한 개념과 ‘모더니즘’과의 차이에 대한 인식이 파악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에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모두 주관성과 상대성에 기초하고 있으며,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볼 때 둘 다 비역사적, 비참여젹, 비정치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는 점을 들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동일선상에 놓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포스트모더니즘’과 비정치적이라는 ‘리얼리즘’의 비판이 꼭 정당하다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오히려 ‘모더니즘’에 반발하여 새롭게 일어난 사조이며, ‘모더니즘’의 연장이라는 뜻을 내포하는 것이 아니라 포스트모던시대의 사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포스트모더니즘’은 다원주의적, 상대주의적, 민주 지향적이다. 즉, ‘모더니즘’이나 ‘리얼리즘’과는 다른, ‘포스트모더니즘’은 ‘열린 시대’의 ‘열린 사조’인 것이다. 그 예를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 중의 하나인 ‘패러디’에서 찾아볼 수 있다. 패러디는 기존의 어떤 것에 대한 흉내를 통해 그것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거나, 또는 그것이 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을 이인성’현행 문학상황에 대해 의심하고 회의하는 눈초리들이 만만치 않다. ‘문학의 위기’니 하는 담론들은 풍문 이상의 것으로 떠돌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글쓰기에 대한 진정한 자의식 앞에서면, 모든 위기의 담론들은 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작가 이인성을 주목하게 된다. 중편 ‘낯선 시간속으로’를 발표한 1980년대 이후, 결코 많지 않은 글쓰기를 통해, 그는 줄곳 소설 형식과 소설 언어의 전위적인 실험을 통해 매우 독특한 응시의 눈을 마련하였으며, 그 눈을 통해 새롭고 다성적인 의미 형성의 가능성을 시도하였다. 그의 필체, 그의 문체, 그가 쓴 글들의 짜임새, 그 어느 것을 보아도 그의 친밀한 자기 성찰은 확연하게 드러난다. 마치 섬세한 천을 짜듯 한 치의 간극도 없이, 혹은 말린 멍석을 깔 듯 물샐틈없이 이어 나가는 그의 글쓰기는 의식이 자신을 도피할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 세우는 참담한 과정인 것이다.우리가 그의 글을 읽고 고통스러운 것은 그의 의식이 자신의 고통을 담보로 하여 우리의 의식에까지 그 고통을 전이시켰기 때문인 듯 하다.그의 고통은 다만 이상적인 자기학대의 소산일까. 옛 사람의 가르침처럼 모든 악덕과 어리석음의 근원이 자포자기에 있다면, 그의 치열한 자기 반성은 자기를 포기하지 않기 위한 피나는 노력일 것이며, 허약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그의 문학의 세계는 ‘관계의 욕망학’ 혹은 ‘욕망의 관계학’이라 불림직한 것이다.첫 작품집 ‘낯선 시간 속으로’(1983)는 주로 ‘나’의 고통과 방황의 여정이다.물론 ‘나’는 과거라는 긴 상처를 헤치면서 방황하는 가운데 현존 상황과 어떤 관계 맺기의 가능성을 묻는다. 두 번째 ‘한없이 낮은 숨결’(1989)에서의 ‘나’는 ‘나’를 넘어 ‘너’, ‘그’, ‘우리’의 새로운 관계를 찾아가는 상상적 해체 재구성의 여행을 시도한다. 또한, 중편 ‘마지막 연애의 상상’(1991)은 닫힌 관계를 풀어 낼 수 있는 주체의 자유로운 다중 분열 양상과 그 분열된 여러 ‘나’들 사이의 자유로 매 실존의 순간들이 그 순간만의 독특한 어법과 형식으로 짜여져 있을 것이라는 판단 떄문일 것이다. 이에, 관계 욕망학은 이전처럼 관계들 속에서 인간의 진정한 삶을 반성적으로 성찰하고자 한 욕망의 산물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3. ‘이인성의 작품 분석’(1) 소설집 ‘낯선 시간 속으로’이인성의 첫 번째 소설집 ‘낯선 시간 속으로’는 네 개의 중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속에서 다루어지는 사건의 연대에 따라, ‘길 한 이십년(1973년 겨울- 1947년 봄)’, ‘그 세월의 무덤(1974년 여름)’, ‘지금 그가 내 앞에서(1974년 겨울)’, ‘낯선 시간속으로 (1974년 겨울)’로 배열되어 있다. 이 소설집은 네 개의 중편소설이 하나의 나 ?그가 자살의 유혹을 이겨내기에 이르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는 성장 소설이다.이 소설집은 하나의 행위가 각각의 소설을 핵을 이루고 있는데 그 행위들이란 다음과 같다.1) 아버지가 죽자, 군 복부 중이던 나 ? 그는 의가사 제대를 하여 서울로 돌아온다.2) 나 ? 그는 아버지의 무덤에 간다.3) 나 ? 그는 아버지를 자기가 죽였다는 느낌에 시달린다.4) 자살을 하려고 대구시에 갔다가, 새로운 활력을 얻고 서울로 되돌아오려했다.라는 행위들이다. 이런 핵심이 되는 행위들 주변에 그 행위의 의미를 밝혀줄 수 있는, 그러나 명확히 밝혀주지 않는 사건들이 겹치고 있는데, 이러한 사건들을 끊임없이 떠올려, 그것의 의미를 분석하고 해명하려고 하는 나-그의 초조함의 근거를 밝히는 것이 이인성의 소설집의 근거를 밝히는 것과 맞먹는다.사건만을 따라가자면, 이 소설집의 핵심단위를 이루고 있는 네 개의 행위를 계속적으로 쫓아가게 하는 수수께끼의 기능을 맡고 있는 것은, 왜 나-그는 서울로 되돌아 오는 것에 대해 그토록 초조해 하는가 하는 의문이다. 그 의문은 이 소설집의 거의 끝에 가서야 그 해답을 얻는다.나-그는 그가 군대에 있을 때 그를 버리고 그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 여자 때문에, 서울에 되돌아가는 것을 그토록 초조해한다. 그 밝힘의 과정라는 연극무대 위에서 한 번 더 되살리고 싶다는 반성적인 꿈이다. 의식있는 대학생의 한 전형처럼 행동하던 나-그는 결국 사랑의 상실이 자기에게 반성적인 꿈을 꾸게 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며, 또 할아버지에 반항한 아버지처럼 자기도 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자기의 삶의 방식을 이끌어 나가려 했다는 것도 받아들이게 된다.나는 당신들에 대한 반항을 통해서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그러나 그 반항은 반항이 아니라, 그들의 의연함을 자기식으로 담아내려한 욕망의 왜곡된 표현이다. 그 욕망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죽음으로 지나치게 빨리 충족되지만, 그 충족은 막막함을 동반한 충족이다. 욕망의 뿌리는 어머니의 자궁으로의 회귀 욕망임을 이인성은,그와 나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무덤에 다가간다. 즉 무덤은 위 아래로 나란히 숨죽인 어머니의 젖처럼 자리잡고 있다,라고 암시적으로 묘사한다. 어머니의 자궁으로 되돌아가려 해도 그곳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는 인식이 바로 나-그의 상처이며, 그 상처에서 나-그의 병이 생긴다. 그 병은 아버지에 대한 반항, 그리고 사랑의 상실로 이어진다. 그 병의 치유를 위해 나-그 자신의 삶을 살아 가겠다고 결심함으로써 나-그의 삶은 보다 깊고 넓어진다.(2)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이인성의 새 소설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에서도 그 나름의 소설실험은 계속된다. 이 소설에서 ‘너’, ‘나’, ‘그’가 각각 과거, 현재, 미래 시제로 등장한다. 즉, ‘너’는 과거의 나이고, ‘나’는 현재를 살아가는 실존적 ‘나’이며, ‘그’는 상상된 미래의 나이다. 과거의 나이기에 비교적 객관화된 ‘너’는 상처의 흔적 속에서 갑갑하게 갇혀 있다. 현재의 ‘나’는 실존적 조건속에서 미칠 것 같은, 그래서 미쳐버리고 싶어하는 욕망을 지닌, 그러나 미쳐지지 않는, 그래서 슬픔에 빠져있다. ‘그’에서는 사정이 많이 개선된다. 비교적 과거의 ‘너’나 현재의 ‘나’로부터 자유롭다. 상상 속의 ‘나’이기에 자유롭게 변신의 가면을 쓸 수 있다. 욕망은 적극적와 나의 너에게는 현재나 미래도 과거 시제와 맞는 것처럼, 나? 나에겐, 과거나 미래도 결국 현재?같은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서로의 살을 틈내고 들어가면서 스미고 융섭된다.과거의 ‘너’는 상처의 흔적들, 혹은 ‘이름 붙일 수 없는 늪의 체험들’ 때문에 고통스러운 존재이다. 그를 에워싼 실존적 조건들은 그를 감금하는 쪽으로 가능했다. 미친 여자의 전화는 그것의 상징태이다. 미친 여자가 자꾸 과거의 ‘너’에게 전화를 걸어와 회사마저 때려치고 시쓰기 마저 작폐한 채 잠적한 것으로 되어 있다. 관계로부터 잠적은 곧 일탈이다. 일탈은 가면을 쓰고 변신한다. 그 변신은 현재의 ‘나’일 수도 있고, 미래의 ‘나’일 수도 있다.미래의 ‘그’는 이제 더 이상 갇혀 있지 않고 ‘치열한 외출’의 여로를 감행한다. 그런데 욕망으로 가는 길은 어슷어슷하게 ‘비껴 비껴’가야 한다.또 비껴 비껴가기? 치열한 비껴 나아가기? 비껴서 가기에 치열한 외출, 그 여로? 그러자 이곳을 통과하지 못하면 비껴가면, 비껴나가서 마주치는 그곳은 정면으로 다가와 있는 것이 아닐까? 그곳도 가로지르지 않으려 다시 비낀 방향으로 방향을 틀면, 또 다른 저곳이? 그러면 또 다시 비끼도록 비껴가야 한단 말인가, 끝없이? 한없이 비껴 비끼기만 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정녕 가능할까? 결국은 한복판으로 넘어서야 하는 곳이 있지 않을까? 암담한 검은 삼낙같은 곳이?욕망의 충족은 부단히 유예되거나 지연되는 것이면서 동시에 끊임없는 침묵의 유혹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비껴-비껴’가더라도 욕망은 욕망을 쉼없이 되새기면서 욕망의 행로를 욕망하게 마련이다.현재의 ‘나’는 객관체로 존재하는 과거의 ‘너’와 욕망과 상상의 형태로 존재하는 미래의 ‘그’ 사이에서 ‘선택할 수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없는, 미칠 수도 미치지 않을 수도 없는 자는 결핍의 경계만을 한없이 따라가’는 존재이다. 과거의 ‘너’는 이미 말한 대로 미친 여자로부터 오는 전화 때문에 관계 속에서 감금된 상태였다. 반면 현재의 ‘나’는 비좁은 여관방 속에
    인문/어학| 2012.12.06| 5페이지| 1,000원| 조회(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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