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아마겟돈인터넷을 비롯한 IT기술들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우리의 삶은 여러모로 편해졌다. 직접 은행이나 마트에 가지 않고 인터넷을 이용해 거래를 하고,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더 이상 전문서적을 빌려서 읽지 않아도 된다. 또한, 인터넷을 통해 방송을 보고 쇼핑도 하며 사이버 강의를 듣기도 한다. 이렇듯 인터넷은 사회, 문화, 경제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에게 편리성을 제공하지만 그 뒤에는 무시무시한 위험성이 감추어져 있다. 그것은 바로 해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이버 공격을 하려는 자와 이를 막으려는 자 간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내가 초등학교 때에는 친구들끼리 e-메일을 주고받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래서 그때 당시 수상한 e-메일은 열어보지 말라고 교육을 받았었던 것 같다. 그 메일 속에 포함된 안 좋은 프로그램들을 설치하는 순간 내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침투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어렸을 적의 나에게는 생소한 내용임과 동시에 컴퓨터가 고장이 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항상 조심해왔다. 물론 지금은 메일을 거의 쓸 일이 없기에 괜찮겠거니 안일하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웜 바이러스는 이제 더 이상 기존의 디스켓이나 메일에 업혀 이동하는 방식이 아닌, 인터넷을 통해 스스로 길을 찾아다니는 방식을 취하며 자기복제를 통해 확산되어 나가는 하나의 생명체 같은 모습을 띄고 있다니 끔찍하지 않을 수가 없다.또한, 지금 현재에도 좀비PC를 이용한 DDos공격이 우리나라의 기업이나 기관에 하루에도 수천건에 이른다고 한다. DDos 공격은 여러 대의 컴퓨터를 일제히 동작하여 특정 사이트를 공격하는 방식이다. 즉, 한 전화번호에 집중적으로 전화가 걸려오면 일시 불통이 되는 것처럼 목표 사이트의 컴퓨터 시스템이 처리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접속으로 시스템이 과부하가 걸려서 정상 고객들이 접속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또한, 최근에는 빈번히 발생하는 웜 바이러스에 DDos 공격 프로그램이 내장되어 특정 웹사이트를 공격하기도 한다.2009년 7.7대란 때 이용된 좀비 PC의 수는 11만 5천 여대 라고 한다. 일반적인 DDos 공격은 해커가 내린 명령이 지령 서버를 통해 좀비 PC들에게 전달되는 방식으로 진행 되었다. 그래서 지령 서버를 찾아 루트를 끊으면 공격을 중단시킬 수 있다. 하지만 7.7대란 때는 이러한 대응이 통하지 않았다. 악성코드 안에 공격 시나리오가 이미 탑재되어 주기적으로 자동 갱신되어서 명령을 내리는 사이트가 없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시나리오의 마지막에는 좀비PC의 하드디스크가 자폭되는 프로그램도 설정되어 있었다. 공격자가 누구인지, 또 어떤 목적을 갖고 이런 일을 하였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제 2의 공격을 하기 위한 사전단계라고 생각해보면 아마 사회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컴퓨터 사용자건 아니건, 인터넷을 하루 10시간을 이용하건 1시간도 이용하지 않던 간에 이미 우리 삶은 인터넷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전력과 가스, 수질 및 발전소 관리, 교통과 금융거래는 물론 행정과 군사망에 이르기까지 주요한 사회기반 서비스는 상당 부분이 이미 원격제어가 가능한 컴퓨터 시스템으로 통제되고 있다. 이러한 원격 감시제어 시스템을 스카다(SCADA) 시스템이라고 한다. 스카다 시스템을 사용하는 관계 기관들은 사이버 공격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인터넷망은 전 세계 어디와도 연결되어 있지만, 기업이나 관공서의 중요한 내부정보는 방화벽이라는 높은 벽 너머 내부망 안에서만 공유될 뿐만 아니라 주요 기반 시설의 제어 시스템인 스카다 같은 경우는 내부망에서도 접근하기 어려운 비밀 구역처럼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컴퓨터에 악성코드를 직접 입력하여 스카다 시스템을 파괴하는 수동적인 공격이었다면, 이제는 악성코드가 담긴 USB 메모리를 컴퓨터에 단지 꽂기만 하는 단순한 행위만으로도 그 모든 통제권을 가져 올 수 있다. 현재 폐쇄형 스카다에서 개방형 스카다로 변이되는 추세이다. 그러면 지금까지는 폐쇄형 스카다였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쳐도 개방형 스카다로 가면 위험성은 굉장히 심해지는데 과거에 안주해서 문제없다는 식의 태도는 몹시 곤란하다.1991년에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유럽의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는 세계에서 제일 빠르게 삶의 모든 영역을 인터넷 망으로 연결해 가고 있다. 국민 모두에게 전자 신분증을 발부해 이를 이용하여 은행업무도 보고 로그인을 하거나 전자서명 같은 작업에 사용할 수 있다. 또한, 화상회의가 이미 상용화 되어있고 투표소에 가지 않고도 선거에 참여할 수도 있다. 그런데 누군가가 에스토니아의 전산망에 침투해 2주동안 씩이나 은행 업무를 비롯한 모든 네트워크들이 마비가 되었다. 이것은 러시아의 민족사상을 침해했다는 것에 대해 에스토니아 정부의 행동이 옳지 않았음을 경고하고자 한 청년 애국단체에서 벌인 해킹 행위 때문이었다. 이것을 보고 느낀 것은 총이나 무기만 없지, 한 국가를 완전히 마비시키는 전쟁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전문가들은 해킹은 특정 경우가 아닌 이상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연예인이나 국회의원 등 공인의 SNS가 해킹을 당하는 등의 일은 물론 개인에게는 큰 명예 손실이나 사생활 침해가 될수는 있으나 일종의 해프닝 정도로 지나칠 수 있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한 국가의 사회 기반 서비스를 해킹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그 예로, 2008년 폴란드 우츠시에서 도심을 가로질러 다니는 대표적인 대중교통인 트램 두 대가 충돌해 1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이 있었다. 이것은 고작 14살의 어린이가 TV 리모콘을 개조해서 벌린 일이라고 한다. 평소 트램의 시스템에 관심을 가져 그 시스템을 해킹한 것이다. 물론, 여러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기 위한 테러의 목적으로 시작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위험한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사리분별이 떨어지는 14살 소년에게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렇듯 국가의 중요한 시스템이 쉽게 해킹을 당한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그러나 해커가 항상 나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순수하게 공부와 학업을 목적으로 해킹을 하는 화이트 해커가 있다. 정보보안 전문가이기도 하며, 개인적인 목적을 노려 악의적으로 해킹하는 블랙 해커와는 구분된다. 이들은 서버의 취약점을 연구해 해킹 방어전략을 구상한다. 그러나 처음에는 재미나 호기심으로 해킹을 시작해, 기술을 알아냈다는 것에 대한 자기 과시로 발전하고 나면 돈벌이나 군사, 정치적인 목적으로 해킹을 시도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해커들은 새로운 기술을 알아냈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는 순수한 사람들이다. 즉, 악의적인 목적으로 기술을 사용하는 크래커와 달리 컴퓨터를 즐기고, 관련 기술을 깊게 파는 사람들이란 의미가 더 강하다.계속해서 우리 사회는 디지털화 되고 있고 앞으로도 인터넷이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만큼 급증하고 있는 해킹에 대한 사건들은 보안에 대한 인식의 부재와 보안장비의 낮은 기술 수준이 그 원인일 것이다. EBS나 NATE, 옥션 등의 대규모 사이트들도 이미 해킹을 당했던 전적이 있다. 우선, 대규모의 사이트들은 해킹을 당했을 경우 이에 대한 비난과 파장을 우려하여 해커에게 돈을 건네고 해킹 사실을 무마하려 하면 안되고 사이트의 회원들에게 이를 적극 알려서 바람직한 방안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앞으로도 7.7대란 같은 일들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사실 국내 사이트 중에서 DDos 공격에 버틸만한 사이트는 거의 없다는 것이 암울한 현실이다. 사이버 아마겟돈을 보고 나 역시 안일했던 나의 태도에 다시 한번 반성했다. 나 같은 경우도 회원가입을 한 사이트가 10개는 훌쩍 넘는데, 비밀번호를 하나하나 외우기 힘든데다가 귀찮다는 이유로 비밀번호 설정에 별로 큰 중요성을 두지 않았다. 또한 백신 프로그램 등의 보안 프로그램들의 업데이트 역시 귀찮은데 나중에 하자는 마음으로 넘어간 적도 많다. 이런 게으름이 계속 지속된다면 아마 내 컴퓨터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좀비 PC가 되어있을 것이다. ‘모든 일에는 힘, 지혜, 의지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정보 보호도 마찬가지로 정보 보호를 위한 힘, 지혜, 의지가 필요한 것 같다. 개인 PC 사용자로서 나는 의지가 무엇보다도 부족했던 것 같다. 앞으로는 좀 더 컴퓨터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겠다.
추상화를 이용한 프로그래밍: 객체 지향■ 목차서론본문객체 지향의 등장 배경과 개념객체 지향의 추상화객체 지향과 절차 지향의 차이결론1. 서론하드웨어 기술은 기존의 절차 지향 방식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발전해 왔다. 이러한 소프트웨어 생산성의 위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자구책 중의 하나로 객체 지향의 개념이 출현하였다. 객체 지향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추상화(Abstraction)이다. 단지 추상적으로 그런 것이 있고, 또 어떤 행위가 중요할 것인지를 가정하여 컴퓨터에서 사용하기 위한 하나의 묶음으로 만들어 필요할 때마다 가져와 사용하기 때문에 재사용성이 높다. 그러나 절차 지향 방식이던 객체 지향 방식이던 간에 코드에 의존적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사용이 더욱 용이하도록 코드의 추상화 역시 필요하다.2. 본론2.1 . 객체 지향(Object-Oriented)의 등장 배경과 개념객체 지향이라는 개념이 나오게 된 배경으로는 소프트웨어 생산성의 위기라는 측면을 꼽을 수 있다. 기존의 절차 지향 방식(Procedural Method)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을 순차적으로 설계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든 과정을 일일이 순차적인 명령어로 나타내야만 했다. 하드웨어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음에 비해 개발자들의 생산 속도는 예전 수준 그대로를 유지하기도 어려워져서 결국 사용자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게 되었고, 하드웨어의 발전을 지원해 주어야 할 소프트웨어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소프트웨어 생산성의 위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객체 지향 개념이다.객체(Object)란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사람, 동물, 물건, 그리고 그 외의 모든것들이 모두 객체가 될 수 있다. 객체는 정적인 속성과 동적인 행동들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핸드폰’이라는 객체를 설정한다면 전원 버튼, 숫자 버튼, 볼륨 버튼 등의 정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고, 전화를 걸다, 전원을 끄다, 볼륨을 올린다 등의 동적인 행동 역시 지니고 있다. 클래스(Class) 역시 마찬가지로 속성과 이를 다루는 행동들의 집합인데 객체지향에서 클래스와 객체는 꼭 구분하고 사용하여야 한다. 클래스는 개념이고 정의이며 객체는 클래스의 실체(인스턴스)이기 때문이다. 즉, 클래스는 객체들의 공통된 개념을 표현하고 정의하는 객체의 틀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객체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객체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다른 객체와 구분된다는 것이다. 즉 객체 하나하나가 각각의 상태와 행동을 가진다.객체 지향 방식에서는 구현자가 요구사항을 담은 메시지를 객체에게 보내주면 객체가 그 메시지를 처리하고 그 결과를 전달한다. 우리는 객체가 내부적으로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지는 알 수 없으며 알 필요도 없다. 이것이 정보 은닉이다. 정보은닉은 객체의 불필요한 세세한 내용은 객체 사용자에게 노출시키지 않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으며 객체 지향과 긴밀히 연관된 개념이기도 하다.2.2. 객체 지향의 추상화객체 지향 방식은 앞에서 언급한 클래스를 통해 추상화를 지원한다. 우선 객체 지향적 설계는 객체를 설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설정한 객체와 관련된 수많은 정보들 중에서 내가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사용할 특징들만 잘 간추리는 추상화 단계를 거친다.(그림 1) 객체 추상화이 단계는 아주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데, 이는 추상화를 잘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추상화의 수준이 곧 좋은 프로그램이냐 나쁜 프로그램이냐 하는 문제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또한 주어진 상황과 문제에 따라 얼마든지 추상화의 결과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추상화 단계에서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추상화는 어렵고도 중요하다.추상화의 대표적인 속성으로는 일반성(Generality)을 들 수 있다. 이는 특수한 경우를 무시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필요할 것처럼 보이는 작업만 정의하고 어느 한 사람이 필요로 하는 특정 목적의 작업은 정의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특정한 목적을 배제함으로써 해당 작업의 범용성(General Usability)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2.3. 객체 지향과 절차 지향의 차이절차 지향이란 프로그램을 작성할 때 실행 순서를 지정하게 되는 방식이다. 절차 지향과 객체 지향의 가장 뚜렷한 차이점은 클래스와 객체가 있느냐 없느냐 이다.(그림 2) 절차지향과 객체지향절차 지향 방식을 따르는 기존의 프로그램에서는 동작과 절차를 중시하고 실체는 종속적으로 취급하였으나, 객체 지향 프로그램에서는 실체와 동작을 객체로 정의하고 객체 간의 메시지 교환에 주안점을 두어 정보를 처리한다. 즉, 객체 지향은 과정을 중시하는 절차 중심의 설계가 아니고, 실체를 중시하는 설계이다. 객체 지향 프로그램의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공통의 성질을 갖는 객체들은 그들이 받는 메시지에 대하여 비슷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또한 객체 지향은 시스템의 모듈화, 캡슐화를 촉진하여 복잡화, 거대화 되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기 쉽고, 작성하기 쉬우며, 유지 보수하기 쉬운 방향으로 재구축하는 새로운 기법으로 각광받고 있다.3. 결론프로그램을 설계할 때 절차 지향 방식이 더 우수하다, 혹은 객체 지향이 더 우수하다 단정을 지을수는 없다. 다만 객체 지향 방식이 절차 지향 방식에 비해 추상화 과정이 더 명확할 뿐, 절차 지향 언어로도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절차 지향 방식이던 객체 지향 방식이던 결국에는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데에 있어서 코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객체 지향이 추상화 단계를 거쳐 필요한 점 만을 간추려서 묶어 놓았다고 하더라도 초보자의 입장에서는 코드적인 면에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객체 지향에서의 추상화는 객체를 설정한 후 그 객체의 속성이나 행동 중 필요한 부분만을 선택해 내는 추상화 단계를 거쳤다면, 이번에는 코드적인 면에서 한번 더 추상화가 필요하다. 초보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코드를 처음 보았을 때 어떤 의미인지를 쉽게 알 수 있게 하고 사용에 용이하게 함과 동시에, 객체 지향은 정보 은닉의 특성을 갖기 때문에 사람들은 프로그램 내부의 매커니즘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보완적인 면에서도 안전하다고 본다.
노이즈 음악에 대한 실험적인 시도와 인식의 현주소목차서론 4. 노이즈 뮤지션노이즈의 개념과 범위 5. 노이즈 음악에 대한 인식등장 배경 6. 결론서 론우리는 일상 생활 속에서 여러가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가령 길을 걸으면서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도 있을 수 있고, 자동차의 시끄러운 경적 소리나 공사현장의 날카로운 기계 소리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소리라는 영역에 포함되어 있는 음악 또한 우리 생활과 긴밀한 연관을 가진다. 누군가는 음악을 통해 기쁜 감정을 표현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슬픈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만큼 음악은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간단히 생각해보면 음악은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주파수 영역의 소리를 배제한, 가청 영역의 소리에 포함되는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그림 1) 소리와 음악의 상관관계그런데 이 그림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 외 소음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노이즈란 사람과 짐승의 삶에 있어서 행복과 활동을 혼란하게 만드는 불쾌한 소리를 말한다. 즉, 듣기 좋은 소리, 그 중에서도 특히 음악과는 전혀 상반되는 개념이다. 그런데 이 두 개념이 함께 어우러져서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시도는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고 그 결과 노이즈 음악(Noise music)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탄생시켰다. 파격적인 음색과 방법으로 음악가들은 큰 기대를 걸었지만 돌아온 것은 기대와는 달리 냉담한 반응이었다.노이즈의 개념과 범위노이즈(noise)라는 개념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하자면, 쉽게 말해서 시끄러워서 불쾌함을 느끼게 만드는 소리이다. 그런데 이 노이즈의 특징은 듣는 사람에 따라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각자의 현재 상태라던가 주위 환경에 따라서 어떠한 소리던 노이즈로 받아들일 수 있다. 즉 주관적인 감각에 의한 것으로서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소리로 들리더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노이즈가 될 수 있다. 노이즈의 발생 원인은 주로 자동차, 철도, 비행기와 같은 교통 수단의 이동에서 나오는 노이즈나 념인 전자음악이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1960년대 전·후로 많은 작곡가들이 전자음악 혹은 더욱 정확한 표현으로 일렉트로닉(Electronic) 음악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다양하고 독특한 실험적인 시도들로 음악가들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만들어냈고 그 중에서도 노이즈 음악이라는 장르도 나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기존의 아날로그적인 소리로 음악을 해왔던 음악가들이 전자음악에 새로이 눈뜰 수 있었던 것은 아날로그 음악의 부족한 부분을 일렉트로닉 음악이 완전히 보완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첫째, 새로운 음색에 대한 활용도가 높기 때문이다. 기존에 존재하는 악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음원의 소리인 아날로그 사운드(Analog Sound)와는 다르게, 이 아날로그 사운드에 전기적 에너지를 가하여 본래의 소리를 변형시킴으로써 새로운 음색을 창출하고 활용이 가능하다. 게다가 악기 소리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나 동물의 음성, 생활 주변에서 얻어지는 소리 모두가 포함된다. 이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소리들로, 신선한 충격을 가져왔다.둘째, 음원의 무제한 활용이 가능하다. 기존에 존재하던 음원은 일반적인 악기들을 통해 얻은 소리로 대체로 12음만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제한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이러한 한계점을 넘어서 소리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이는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음원을 창출하는 원천에 대해 딱히 제한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마지막으로, 일렉트로닉 음악은 창작 작업의 완성도 측면에서 강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존의 방식에서는, 창작을 하였을 때 완성 후 반드시 연주자를 통해 청중에게 전달되는 패턴을 따른다. 다시 말해서 청중에게 좋은 작품이 소개되기 위해서 작곡가는 훌륭한 연주자를 만나야 하고 연주자는 좋은 작품을 기량껏 발휘해야만 청중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그림 2) 작곡가·연주자·청중의 삼각관계그러나 이러한 상관관계는 늘 완벽할 수 없어서 작곡가 입장에서는 늘 고 후에 독일의 작곡가이자 이론가인 카를하인츠 스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은 아방가르드의 대표 주자로 전자 음악 분야를 개척하였고 물리적 공간을 음악에 새로이 적용하여 생·전자음악 연주를 지향하였다. 또, 존 케이지(John Cage)는 그의 ‘4분 33초’에서 연주자를 4분 33초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게 함으로써 연주자의 침묵과 관객의 웅성거림을 함께 연주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한 예술성을 보여주었다. 이는 또한 관객의 역할을 ‘듣기’에 머무르는 청자에서 ‘경청’에 이르는 적극적인 청자로의 변화를 촉구했다. 이러한 아방가르드 예술은 고전 예술의 범위를 파괴하여 확장시켰으며, 기존의 예술이 갖고 있던 형식과 법칙들을 거부하고 뒤바꾸어 놓았다. 이에 더 나아가서 노이즈를 사용하여 우리의 귀를 자극하는 음악을 행하는 예술가로는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알바 노토(Alva Noto)노이즈 음악의 처음 발생지가 독일인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독일은 실험적인 사운드의 메카이다. 알바 노토(Alva Noto)는 이런 독일의 노이즈 사운드를 대표하는 사운드 아트의 거장이다. 이 사람의 특징은 음악과 영상과 수학이 만나는 공연을 하는 것인데 쉽게 말해서 단순히 음악만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수학적인 원리에 따라서 음악을 만들고 동시에 영상 이미지로 표현해내는 방식으로 공연을 한다. 소리의 선이 그리는 직선들이 각각 x와 y좌표 선상에서 가로와 세로축을 그리는 영상과 함께 소리와 영상이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서로 각 요소들끼리 통제되는 점을 이용한다. 알바 노토는 수학적인 접근을 시도한 뮤지션으로 높이 평가되고 이는 알바 노토만의 독특한 작품의 색깔이다. 또한 그는 작품의 이름에서도 그 것의 성격과 의미를 유추할 수 있게 한다.그의 작품 중 제록스(Xerrox)의 경우 미국에서 ‘복사’의 대명사로 쓰이는 Xerox라는 회사와 한 글자만 다르다. 마치 의도적인 에러처럼 느껴지는데, 이는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쉬운 멜로디의 음악이나 광고음악kowski)는 폴란드 출신의 현대음악 작곡가이자 컴퓨터 음악가, 사운드 아티스트 그리고 노이즈 뮤지션이다. 이와 같이 여러 분야를 넘나들면서 활동하며 카셀 도큐멘타(KASSEL DOCUMENTA), 아르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등의 세계적인 컴퓨터 및 전자음악 페스티벌 등에서 활발한 퍼포먼스를 하는 아티스트이다.그는 좋은 소리라는 것과 나쁜 소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소리는 단지 진동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 가령 유리가 깨지는 소리나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와 같은 음악이 아닌 외적인 소리에 대해 노이즈로 규정 지으며 소위 말하는 좋은 소리와의 구분을 가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노이즈로 규정한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구분에 불과한 것이며 실제로 모든 소리의 실재는 진동에 불과하다. 독일의 매체이론가 프리드리히 키틀러(Friedrich A. Kittler)는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축음기의 발명을 들고 있는데, 축음기라는 매체의 발명은 단순한 기계의 발명과 기술의 발전으로만 생각할 수 없으며, 보다 근원적으로 현대음악의 발전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고대부터 근대 시대까지는 화성학이 고도화된 학문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음이 란 질서 잡힌 수학적 간격의 체계이자 조화의 세계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었고 일상의 노이즈는 악보로 표기되는 일정한 간격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음악으로 수용될 수 없었다. 이러한 패러다임 속에서 악보 없이 즉흥적으로 연주를 하는 서민들의 음악은 진정한 예술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예술은 교양 있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영역으로 간주되어 왔다. 하지만 소리의 실재가 악보로 표기되는 간격이 아닌 진동으로 인식되면서 일상의 소리들 역시 음악의 영역으로 확장되었고, 낭만주의자들이 믿었던 음성은 내면의 정신을 담은 영혼의 소리이자 의미 있는 소리라는 생각을 파괴했다. 이러한 음성이 물리적인 소리일 뿐이라는 사실이 극적으로 드러난 축음기의 발명은 기존 음악가들에게 있어서 소리 자체에 대한 패러다임 그래서 그의 공연은 청각적인 면과 시각적인 면 모두에서 다양한 느낌을 준다.노이즈 음악에 대한 인식이런 노이즈 음악이 처음부터 대중들에게 하나의 자연스러운 장르로 받아들여졌던 것은 아니며 지금 역시 마찬가지이다. 노이즈 사운드나 노이즈 음악이라는 개념은 받아들여졌어도 노이즈 음악을 감상하는 데에 있어서는 아직도 어려움이 남아있다. 특히 음악의 어떤 부분에 박자를 맞추고 리듬을 실어야 할지, 몇 번 혹은 몇 마디를 들어보면 감이 오는 대중음악에 많이 노출된 사람일수록 노이즈 사운드로 구성된 음악에 나 자신을 동기화시키기가 어렵다.대체로 연주자들은 청중의 시선을 끌기 위해 기획된 곡을 연주한다. 실제 한 예로, 한 연주회에서 연주자가 풍선을 터뜨리는 등 여러 가지 해볼 것을 다 해봤지만 청중은 의외로 전혀 동요되지 않았다. 따라서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고 기대했던 주최측에서는 결국 이 실험적인 작품의 재연주를 포기했다. 이런 극적인 시도가 설사 유명한 작곡가에 의해 쓰여진다고 할지라도 거의 지속되기 어렵고 성공작으로 남는 것은 쉽지 않다. 1968년 카를하인츠 스톡하우젠이 같은 방법으로 거듭 진보한 시도를 해봤지만 청중으로부터 시원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즈비그뉴 칼콥스키의 경우에는 2009년 9월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공연을 했었는데, 이 때 연주한 의 경우 당시 공연장 안을 가득 메운 관객의 3분의 1정도가 연주를 시작한지 1분도 채 안 되어서 도망을 나오는 일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공연을 관람한 후 대형 스피커에서 터져나오는 소음이 거의 물리적 고문 수준으로 귀를 압박해 왔다고 평가를 하기도 했다. 심지어 인천 스페이스 빔에서의 공연은 신고하겠다고 하면서 빨리 공연을 끝내라고 항의하는 주민들의 신고와 경찰의 출동으로 중단되었다.이처럼 이미 인간의 생활에 익숙해진 대중음악 속에서 노이즈 음악이 설 자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도시화된 생활 속에서 노이즈란 것은 이미 듣기 싫고 스트레스를 주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 역시 이에 한 몫을 한다.2008
당신은 이름없는 작은 무덤의 주인을 알고 있는가?김인영누구나 한번쯤은 간접경험을 통해 기아에 대한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딸로서 먹을 것에 대한 고민이 전무했던 나에게 그들의 모습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심지어 연민을 느끼며 그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친구의 생일 혹은 중간고사라도 다가오면 기아들에 대한 이러한 생각들은 이미 내 머릿속에서 또다시 사라지고 만다. 마음 아픈 일인 것은 분명히 맞지만 직접 내게 닥친 일이 아니라 그런 것일까? 우리가 온갖 사소한 일로 투덜대는 동안 같은 시각 지구의 다른 쪽에서는 하루하루 끼니조차 해결하기 힘든 이들이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은 얼마 살아보지도 못하고 안타깝게도 숨을 거둔 아이들의 이야기였다.통계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1명씩 굶어 죽어가고 있으며, 비타민A 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사람이 3분에 1명 꼴이라고 한다. 게다가 세계 인구의 7분의 1에 이르는 8억 5,000만 명이 심각한 만성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고 한다.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가 무심코 물 한 모금 마시는 짧은 시간에 지금 이 땅 어딘가에서는 또 한 명의 아이가 굶주림의 고통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브라질의 한 마을에는 ‘이름도 없는 작은 이들의 묘’가 있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아 배고픔과 설사, 탈수 등으로 숨진 아이들의 무덤이다. 게다가 이 어린 생명들의 부모는 출생신고에 드는 1~2레알의 비용조차 낼 형편이 되지 못해 이 아이들은 법적인 이름조차 갖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심지어 프랑스의 철학자 레지 드브레(Regis Debray)는 이들을 가리켜 “나면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힌 아이들”이라고 표현했다. 과연 이 아이들의 죄가 무엇이길래 단 한번도 배불리 먹어보지 못하고 짧은 생을 마감해야 하는 것일까?날 때부터 시작된 설사가 멈추지 않는다는 아슈라프는 얼굴이 창백하고 수세미처럼 숱 없는 머리카락에 뼈와 가죽만 남아 꼭 미라 같다. 엄마가 먹은 것이 없으니 젖이 나올 리 없다. 이 아기는 태어나서부터 그냥 물만 먹고 살았던 거다. 저 조그만 몸뚱이가 얼마나 괴로울까? 언제까지 견뎌줄까?지금 당장 내가 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은 매달 내 통장에서 빠져 나가는 5,000원의 기부금과 힘내라는 마음의 응원뿐이라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같은 지구라는 별 안에서 어느 한쪽의 아이들은 비만이라는 병과 함께 온 성인병과 싸우고 있고 다른 한 쪽의 아이들은 독성이 있는 풀을 뜯어다가 삶아 먹을 정도로 지독한 굶주림과 싸우고 있다. 참 모순이 아닐 수가 없다. 게다가 선진국에서는 자연도태설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설로 그들의 권력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름없는 작은 무덤 속 아이들이 듣는다면 얼마나 슬퍼할 노릇일까.답답했다. 120억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들은 죽어가고 있으며 선진국에서는 풀을 뜯어먹는 소에게 옥수수와 같은 곡물들을 먹이고 있다는 사실이. 십시일반(十匙一飯)이란 말이 있듯이, 우리가 조금씩만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준다면 이 땅에 고통 받는 아이들이 훨씬 줄어들 텐데 그러기엔 우리가 너무 이기적인 것일까.◇ 참고문헌한비야,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 푸른숲, 2005.나초스, 황재옥 옮김, 『북한의 기아』 , 다할미디어, 2003.라즈 파텔, 유지훈 옮김, 『식량전쟁』 , 영림카디널, 2008.로저 서로우, 이순주 옮김, 『기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 에이지21, 2010.
양심적 병역거부, 합당한 거부인가?2010년 3월 사회당 당원 김영배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선언을 하고 감옥살이를 선택한 데에 뒤이어 2010년 11월 9일, 사회당 당원이자 그의 후배인 이태준 역시 ‘평화와 공존을 위한 선택’이라는 이름의 기자회견을 진행하여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을 하였다. 또한 최근에는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징병 대신 감옥을 선택하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 사례가 알려지면서 양심적 병역거부의 문제가 대두되었다.평화와 공존의 의무를 수행하겠습니다. 참혹한 전쟁으로 죽어간 무고한 생명, 빈곤과 차별이 상식처럼 벌어지고 있는 현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의무는 그 현실에 달려가 고통 받는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지금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총과 칼, 적대와 전쟁을 준비하는 예비적 무력의 확산이 아니라 고통 받고 죽어가는 민중에게 달려가는 겸손한 마음과 평화와 공존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의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무기와 폭력, 그것이 전제되는 의무가 아닌, 평화와 공존이 실현될 수 있는 의무를 말입니다.미리 말하자면 나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하여 강한 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 위에 제시된 이태준의 소견서같이 자신의 개인적인 신념 때문에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종교적인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서의 평화사랑 정신과 로마군 복무를 거부한 초기 기독교인들의 생활을 따르기 위해 총과 같은 모든 종류의 살상용 무기 사용을 부인한다는 이들의 교리(敎理)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고 실제로 1년 6개월이 넘는 감옥살이를 하고 나오기도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代替服務制) 둘 모두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는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병역을 거부하는 것은 사회 위화감(違和感)을 조성하고 국민의 통합을 저해하는 반 사회, 반 국가적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 한반도는 한국전쟁 발발(勃發) 이후 1953년에 체결된 휴전협정 이후 실질적인 전투는 하지 않지만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기에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의 허용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하는 한 사례가 생기면 고의적으로 치아발치를 하고 수술을 함으로써 무릎 연골을 도려내는 등의 병역비리가 판을 치는 마당에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너도 나도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생겨날 것인데 이들 중에서 진정한 양심적 병역 거부자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과연 이들 중에 군복무를 피해서 신자로 사칭하는 사람들이 단 한 명이라도 없을까? 양심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라서 설령 양심을 객관적 그리고 시각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있다면 양심적 병역거부가 합리적으로 인정될 수도 있을 테지만 이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병역기피의 도구로 남용될 가능성이 다분하다.양심적인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그 당당한 양심의 정의가 진정한 양심인지 의문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비겁함이라면 몰라도 나는 그것이 양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누구에게나 종교의 자유는 있고 또 자신이 속해 있는 종교의 교리를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먼저 국가의 의무를 지켜야 한다고 본다. 어느 한 나라 안에서 살면서 자신이 마땅히 이행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권리 또한 주장할 수 없고 주장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대한민국 헌법은 국민의 평등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종교인들에게만 군 면제나 대체복무와 같은 특수한 상황을 허용하는 것은 위에서 보장한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고 종교적 중립성도 훼손될 것이다. 간혹 어떤 이들은 종교의 자유를 내세워 반박하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종교의 자유라는 것이 종교를 믿고 안 믿고의 자유이지, 군대를 가고 안 가고의 자유는 아니다..휴전상태가 무너지면서 갑자기 전쟁이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았을 때 과연 자신의 굳센 신념을 지키기 위하여 가족이나 친구 등등의 소중한 사람들을 포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여부가 나에게는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있다. 이들은 그들의 행위를 합리화 시킬 그들의 말 한마디로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힘든 훈련을 받고 있는 60만 장병들을 폭력적이며 비양심적이고 비겁한 사람으로 매도(罵倒)해 버리고 정작 그들 자신은 용기 있고 양심적인 사람으로 미화시키고 있다. 이런 면에서 그들의 선택이 결코 지혜롭지 않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그들도 깨달았으면 한다.이러한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라는 의견과 큰 관련이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와 우리나라의 5대 의무 중 하나인 국방의 의무 사이의 충돌은 오래 전부터 지속되어 왔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민감한 문제인 만큼 정부의 조심스럽고 형평성 있는 해결 방안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아직까지도 자신의 자유를 보장해달라고 주장하며 양심적인 병역거부를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의식의 개혁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참고 문헌 ◇문희동,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에 관한 연구, 동국대 행정대학원 석사논문, 2002유영우,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한 연구, 건국대 대학원 석사논문,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