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학교에 설강된 ‘교육사회학’ 수업을 듣는 우리들은 이 강좌의 제목 그대로 교육사회학에 대한 전반적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우리는 지성을 가진 대학생으로, 구하고자 하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얻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학습하는 것과 필요한 것에 대하여 ‘왜 이것을 공부할까?’ ‘왜 이것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쉽지 않다. 모든 분야의 배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를 왜 배우는 것인지에 대한 이유를 아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피상적 지식의 습득에만 혈안이 된 우리들은 그러한 사실들을 너무나도 쉽게 놓쳐버린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까지 배운 교육사회학의 전반적 내용을 설명하기에 앞서, 교육사회학이란 무엇인지, 그를 왜 배워야 하는지를 먼저 이야기할 것이다.교육사회학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자면 이는 교육에 사회학적 지식을 접목시킨 분야이다. 그렇다면 교육에 사회학적 지식을 도대체 왜 접목시켰을까? 이는 교육과 사회성이 서로에게 있어 필연적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Plato, BC428)은 지금의 교육학습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 파이데이아(Paideia)라는 개념을 통해 선각자는 무지한 사람을 깨우치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각자와 무지한 사람의 관계이다. 오늘날로 치자면 스승과 제자의 입장이다. 스승과 제자는 좁은 의미에서는 학술적 지식을, 넓은 의미에서는 세상에 대한 지식을 서로 교류하므로 이는 이미 사회적이다. 즉 교육 그 자체가 사회적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학적 지식을 교육에 접목시켜 연구하는 학문이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교육사회학은 19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된 학문으로 사실 그 역사가 깊지는 않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21세기 현재까지 역사적으로 매우 많은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감안해볼 때, 우리는 교육사회학이 단순히 하나의 뿌리에서 하나의 줄기로 이어지난날에 있었을 많은 교육사회학적 논쟁을 통해 우리의 교육자적 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정보 또한 쉽게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교육자의 길을 걸으려는 우리는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교육사회학 학습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다.그렇다면 교육사회학의 종류는 무엇이 있는가? 각 이론이 가지는 내용이 서로 중복되기도 하고 상충되기도 하지만 크게 나누어보자면 기능이론(theory of functions)과 갈등이론(conflict theory), 그리고 사회이론(theory of society)을 설명할 수 있다. 기능이론은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 1858)을 대표로 하는 사회유기체론이고, 갈등이론은 칼 맑스(Karl Heinrich Marx, 1818)을 대표로 하는 사회집단간의 갈등을 중시하는 이론이며, 사회이론은 막스 베버(Max Weber, 1864)가 발전시켰다. 우리는 여기서 기능이론과 갈등이론을 핵심 줄기로 보고 교육사회학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알아볼 것이다.먼저 기능이론에 대해 알아보자. 기능이론이란 무엇인가? 기능이론이라고 하면 위에서도 언급했던 플라톤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플라톤은 국가유기체론이라는 이론을 통해 사회는 인간의 몸처럼 여러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체의 각 기관이 각기 고유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해야 유기체를 존속시키고 자체의 생존도 보장받을 수 있듯이 사회도 개인이라는 각 부분의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존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능이론은 이러한 플라톤의 유기체론이 계승되어 구성된 것이다.기능이론은 여러 학자들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속성을 가진다. 첫째, 각 요소들은 서로 상호의존적이다. 둘째, 하나의 요소는 다른 한 요소들의 계속적 작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셋째, 하위에 있는 요소들이 상위에 있는 요소들에 영향을 미친다(Parsons, Talcott, 1902).기능이론은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종류의 사람을 재능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써 유기적 관계 는 개인이 타고난 재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분야에 특화시킴으로써 그 개인의 정신적, 물질적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인다.그러나 우리는 비판적인 입장에서 이를 바라보아야 한다. 기능이론이 말하는 그 재능에 따라 개인의 자리를 선정한다는 것은, 이른바 ‘계층’의 차이를 재능에 따른 단순한 차등적 보상체제의 결과로 보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계층으로 인한 불평등이 사회에 존재한다 하더라도 기능주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계층의 불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본다는 사실은 말 그대로 ‘불평등하다’라는 것을 뛰어넘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이는 바로 기능이론이 계층의 뒤바뀜의 가능성을 배제한 현상유지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뒤르켐이 제창했던 기능이론은 지극히 보수적인 수준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한계를 가진 이론인 것이다.이러한 기능이론에 대해 ‘기능주의적 세계관’이라며 통렬한 비판을 제기했던 사람이 바로 칼 맑스이다. 칼 맑스는 19세기 유럽을 대표하는 사회주의 사상가이자 경제학자로, 29살에 자신의 친구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과 함께 저술한 ?공산당 선언?을 통해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말했다. 또한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계급주의에 의존하므로 혁명은 불가피하며, 이 혁명에서 노동자의 승리가 자명한 것이고 그로인해 국가는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들에 의해 통치될 것이며, 나아가 국가는 소멸될 것이라고 주장했다.칼 맑스가 이러한 주장을 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이 바로 갈등이론의 핵심이다. 간단한 예를 통해 핵심을 짚어보자.지구의 자원은 무한한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당연히 지구의 자원은 유한하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무한하다. 무언가를 얻으면 다른 무언가를 얻으려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지구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는데 인간의 욕구는 무한하니 여기서 모순이 생기게 경쟁이다. 경쟁과 갈등을 통해 남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빼앗고 차지하려는 생각이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갈등이론의 핵심이다.그는 계급의 불평등 해소를 위해 혁명을 이야기한다. 기능이론에서 말하는 여러 요소 중에 가장 하위요소, 맑스의 입장에서 보면 노동자 계급의 사람들이 혁명을 일으키고 이로 인해 계급은 사라지며 공유재산제도의 수립을 통해 유한한 재화를 개인적으로는 아무도 소유하지 않고 공동적으로는 모두가 소유하게 된다. 즉 사회의 갈등을 모두 해소시킬 수 있는 ‘이상 국가’가 실현된다.그렇다면 칼 맑스가 말하는 혁명을 통해 진정한 이상 국가가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그 전에 질문을 하나 던져볼 필요가 있다. 칼 맑스가 주장하는 사회의 불평등이 모두 해소된 공산국가에서는 어떤 이론을 수용할 것인가? 아마도 그가 그토록 질타했던 기능이론을 받아들여야할 것인데, 자신이 주장하는 이론과 반대되는 것을 수용해야하는 상황이 참으로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또, 그가 통렬하게 비판했던 교육의 기능에 대해서도 재고해봐야 한다. 과연 맑스가 주장했던 것처럼 교육이 그저 계층 간의 불평등을 심화하는 수단이었을 뿐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내기 위하여 근대 교육제도, 특히 공교육제도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중세시대와 근대시대를 나누는 기준점은 무엇일까?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부분 1789년 일어난 프랑스 혁명을 그 기점으로 보고 있다.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기존의 절대군주제도가 무너짐과 동시에 시민들에게 권력이 옮겨갔기 때문이다. 교육에 있어서 이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이유는 지식의 개방성에 있다. 중세시대는 한 마디로 신의 시대로서 평민계층의 ‘쓸데없는’ 지식의 소유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즉 성경을 읽고 신앙심을 키우는 일 외의 지식은 철저하게 종교의 지배하에 있었다. 반면 근대에 들어서자 국가가 교육을 장악하게 되고 오늘날과 같은 공교육제도가 자리를 잡게 된다. 영국의 학자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Plus Ultra’가 마침내 실현된 것이다. 이는 기존의 상류층 자재들에게만 허용되었던 교육이 민간에 널리 보급되는 식으로, 즉 사교육이 공교육으로 변화했음을 뜻한다.공교육제도는 기본적으로 국가 관리라는 목적 때문에 보편성과 통일성을 기본으로 하여 출발하였다. 암흑의 시대라고 불리는 중세의 수백 년을 지배해왔던 종교라는 강제적인 틀이 사실상 무너진 상태에서 새로운 시민사회를 형성해야 했던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통일성에 대한 갈증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를 잘 설명한 사람이 바로 푸코(Foucault, Michel, 1926)이다. 그는 학교가 국가가 지향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표준화된 지식과 통일된 가치관을 주입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자연히 ‘다양하고 자유로운’ 교육은 억제될 수밖에 없었다. 국가 존속이라는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고 빙자된 이 억압은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극명히 나타난다.일본은 1905년 이른바 ‘을사조약’이라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불평등 조약을 일방적으로 체결하고 조선에 통감부를 설치한 뒤 온갖 탄압을 자행한다. 1911년에는 조선교육령이란 법을 제정하였는데 그 목적은 한국인을 충성스러운 일본인으로 만들고, 일본어를 비롯한 일본문화의 주입으로 한국의 민족문화를 말살하며, 식민지의 효과적 경영을 위하여 초보적 실업교육을 실시하는 데에 있었다. 일제는 칼을 찬 일본인 교사들을 조선 학교에 배치하여 철저한 식민지 경영에 나선다. 황국신민서사의 강제 암송을 통해 ‘통일된’ 교육을 실시하였고 학생들을 일본인들을 위한 훌륭한 일꾼으로 만들기 위해 ‘획일적인’ 실업교육을 실시하였다.이러한 맹점들을 면밀히 검토해봤을 때 칼 맑스가 주장한 기능주의에 대한 비판이 어느 정도는 타당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뒤르켐의 생각과는 달리 기능주의와 접목된 교육은 개개인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각자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해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재자와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식민정책의 이론적 카드로 쓰였다. 기론일까?
1. 서론 - 칼 맑스의 이론과 시대적 상황‘전 세계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칼 맑스(Karl Marx, 1818)! 아마 누구도 그가 19세기 유럽을 대표하는 사회주의 사상가이자 경제학자라는 말에 이견(異見)을 제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2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대중과 학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공산당선언?, ?자본론?, ?철학의 빈곤? 등을 기술한 훌륭한 경제학자이며, 자본주의에 매료된 학자들을 냉소적인 어조로 신랄하게 비판한 급진 사회주의 사상가이기도 했다.박학다식하고 날카로운 이 독일 태생의 혁명가, 칼 맑스는 사실 자신이 활동하던 시대에 그리 각광받는 사람은 아니었다. 19세기 초반, 역시 당시 유럽을 대표하던 사상가인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조차 그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고, 그의 저서 또한 당시에는 그리 영향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않았다.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왜 칼 맑스를 높이 평가하고, 그에 대해 연구하는 것일까? 그가 살았던 시대로부터 200년이 지난 지금도 그에 대한 논문과 학술지가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혁명가 맑스의 이론, 그 중에서도 교육에 대한 이론을 중심으로 위 논문을 다룰 것이다.칼 맑스는 교육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았을까? 맑스 교육론의 일반적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그의 입장이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어떠한 관련 속에서 이루어졌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맑스의 교육론은 그가 살고 있던 유럽의 교육제도, 내용, 방법 등에 대한 그의 이해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 스스로가 일생을 두고 강조하였듯이 ‘탈맥락적’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이윤미, 칼 마르크스의 교육이론, 2002).그것이 그의 전적인 관심사는 아니었으나, 이렇듯이 맑스가 살아온 모습 속에 교육은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그의 교육론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그의 교육관과 성격, 그에 대하여 필자가 생각하는 관점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한다.2. 본론 - 맑스 교육론사실 맑스와 그의 동 전혀 새로운 문화 개념과 역사 개념, 그리고 사회 및 인간 개념을 도입했다는 데에서 기인한다(김성수, 마르크스 교육사상에 대한 고찰, 1987).맑스가 살았던 시기에는 사회적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맑스가 한창 수학하던 시기에는 제임스 와트(James Watt, 1736)의 증기 기관의 발명을 필두로 하여 자본주의가 한창 발전하고 있었고 자본가 계층, 즉 부르주아 계급의 노동자 계급에 대한 억압이 점차 심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놀랍게도 맑스는 매우 ‘긍정적인’ 노동자관을 보였다. 즉 맑스는 지식인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의 삶의 과정으로부터 이론화할 수 있고 스스로 교육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능력을 발견한 것이었다. 이를 전제로 그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사이에서 노동자들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해 계층은 무너질 것이며 나아가 기능주의적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 이상적 공산국가가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1840년대 후반기에 있었던 노동자들의 정치적 패배를 목격한 맑스는 노동계급에 대한 무한한 낙관에 회의를 가지게 된다. 결국 그의 입장은 변화하기 시작하여 노동계급에 의한 혁명은 권력을 위한 장기적 훈련과 ‘교육’이 이루어지고 난 후에나 가능하며 당시의 상황으로 보았을 때 그것일 이루는 데에는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는 관점을 취하게 되었다. 즉 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자각한 것이다.이러한 면에서도 나타나듯이, 맑스의 사상, 특히 교육사상은 서재에서만 만들어진 추상적이고 잘 다듬어진 ‘념’의 집합체라기보다는 현실에 대응한 ‘실천’속에서 제시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맑스에게 있어 노동자 계층의 혁명은 필연적인 일이었으나 그가 ‘미성숙한’ 노동자들에 의한 혁명까지 긍정적으로 본 것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맑스가 바라본 이상국가의 개념에서 기인한다. 맑스의 입장에서 미래의 사회는 단순히 불평등이 없어진 사회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각성된 인간들의 힘으로 인간 역사의 새로운 영역을 여는 사회를 의미했다. 즉 무분별한 우민들이 아닌 고도로 발달된 지식을 가진 지무정부성은 계획적, 의식적 조직으로 대체된다. ??? 인간을 둘러싸고 지금껏 그들을 지배해온 생활조건이 이제는 인간의 지배와 통제 하에 들어서게 되어 인간은 처음으로 자연에 대한 현실적이며 의식적인 지배자가 된다. ??? 지금까지 역사를 지배하여오던 객관적이며 외적인 힘이 인간 자신의 통제 하에 들어온다. 바로 이 순간부터 비로소 인간에 의하여 움직이는 사회적 제 원인은 인간이 희망하는 결과를 더욱 더 훌륭하게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필연의 왕국으로부터 자유의 왕국으로의 인류의 비약이다.우리는 위에 인용된 글을 통해 맑스가 교육이 지니는 긍정적인 의미를 인지하고, 노동자 계층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자신의 언어를 통해 그가 이해한 교육에 대한 평을 상당수 남겼다는 것을 알았다. 맑스에게 있어 교육이 지니는 긍정적 의미는 그의 역사관과 매우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다시 말해, 교육은 역사적 인간의 형성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있어 노동이라는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는 소외된 형태로 나타나지만, 기본적으로 이는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인간 자신을 형성하는 과정인 것이다. 즉 계급사회에서의 소외된 노동을 탈피하여 자연과의 일치를 회복하는 것과 인간 사회를 외재적으로 규제해온 법칙들, 즉 필연성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인간이 목적의식을 가지고 역사를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과정에서 교육은 필연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이윤미, 칼 마르크스 교육론, 2002). 이렇게 볼 때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 1858)을 필두로 하는 기능주의적 관점, 즉 교육을 통해 개개인을 사회에 맞는 부분에 일치시키고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는 이론은 맑스의 입장에서도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 같다.그러나 칼 맑스의 이론에는, 그가 늘 제창했던 갈등론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불평등’이라는 키워드가 늘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갈등이론과 기능이론이 대치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이유 역시 불평등에서 온다. 맑스에게 있어 19세기에는 이러한 생각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었다. 온갖 사교육을 받으며 지적 유희를 즐겼던 상류층, 즉 자본가 계층과는 대조적으로 노동자 계층은 하루에 빵 두 쪽과 물 한 잔을 가지고 15시간의 살인적인 노동 시간을 채워야 하는 열악한 환경에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이 그들의 자손들을 올바르게 교육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모두를 밝게 해야 하는 교육의 차등적 제공에 맑스는 분개했다.칼 맑스가 무상학교교육론을 주장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는 그가 저술한 ?자본론?에서 기계의 도입으로 나타나게 된 아동노동과 부녀노동의 증가에 주목하면서 그 폐해를 지적하고 있다. 특히, 아동에게 가하는 장시간노동은 노동의 도덕적 한계일 뿐만 아니라 순수한 육체적 한계마저 깨뜨리고 있다고 통렬히 비판하였다. 그가 ?자본론?에서 기술했던 내용을 인용하여 당시의 상황을 이해해보자.자본은 굶주린 이리처럼 끝도 없이 맹목적으로 잉여노동을 좇아 비단 노동일의 도덕적 한계뿐만 아니라 노동일의 순수한 육체적 한계까지도 깨뜨리고 만다. 자본은 인체의 성장, 발육과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시간마저도 침범한다. 자본은 노동자가 공기를 호흡하고 햇빛과 접촉하는 데 필요한 시간도 빼앗아 버린다. ??? 아동들의 노동은 단조롭고 ??? 시력을 많이 낭비하게 된다. 또한 오랫동안 자세를 바꾸지 않고 노동하기 때문에 장기간의 노동이 끝날 땐 마치 조그만 새처럼 몸을 편안히 가누지 못하게 된다. 참으로 노예와 다를 바 없다.이러한 맑스의 입장을 보면 그가 단순히 이념적 혁명에서 그친 게 아니라 인권을 중요시하는 측면도 가지고 있었던 사상가임을 알 수 있다. 맑스는 자본과 관련된 아동의 노동행위는 교육과 결합되지 않고서는 결코 실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수준 높은 교육과 생산노동을 합하여 갖추면 노동자계급은 귀족과 자본가 계급의 수준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향상될 것으로 보았다.3. 결론 - 맑스주의는 과연 타당한가지금까지 우리는 칼 맑스가 살아온 시대의 배경, 그가 제어나서 보자면, 칼 맑스 이론의 기본 골자는 불평등과 그를 해소할 방법에 있다. 맑스는 이렇게 계층으로 구성된 현 사회는 불평등하며 이러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생산수단의 공유, 사유재산제의 폐지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불평등한 교육 기회를 해소하기 위해서 전면적 무상교육을 제창한 것이다.물론 이러한 의견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이슈가 되었던 무상급식과 어느 정도는 연결되어 타당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능이론에 비해 갈등이론이 상대적으로 열등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발전 가능성’에 있다. 자본주의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기능주의는 교육에 있어서의 평등교육정책과 선발제도 등을 통해 그 한계와 비효율적인 부분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즉 기능주의는 발전가능성이 존재한다. 반면 순화되지 않은 맑스주의는 어떠한가? 맑스가 말했듯이 지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좁은 의미에서 보면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여력 자체도 한정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단의 공유화, 즉 교육을 전면적으로 공급한다는 것은 굉장히 비현실적이며 비효율적인 행위이다. 또 그가 주장한 교육이론은 자칫 독재자나 제국주의 국가에서 악용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교육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그의 이론을 예를 들어 살펴보자. 맑스주의에 매료된 소비에트 연방은 ?공산당선언?에 나온 ‘소유권에 대한 전제적인 침해’ 1번 ‘토지에 대한 모든 소유를 폐지하고, 모든 지대를 공공의 목적을 위해 사용한다.’ 와 9번 ‘인구를 전국적으로 좀 더 균등하게 배분함으로써 농촌과 도시의 차이를 점진적으로 줄인다.’ 를 실행하기 위해 1932년에서 1933년의 추운 겨울 동안 농민들을 집단 농장 및 국영 농장에 강제로 편입시켰고 이러한 강제 편입에 대한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수백만의 농민들을 아사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유럽 제패의 꿈을 이루기 위해 무고한 노동자들을 전쟁에 투입시켰고, 10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무려 2,000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 누구도다.
'전 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칼 마르크스! 누구나 그가 19세기 유럽을 대표하는 사회주의 사상가이자 경제학자라는 말에 이견(異見)을 제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는 2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대중과 학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 , 등을 기술한 훌륭한 경제학자이며, 자본주의에 매료된 학자들을 냉소적인 어조로 신랄하게 비판한 급진 사회주의 사상가이기도 했습니다.박학다식하고 날카로운 이 독일 태생의 혁명가, 칼 마르크스는 사실 자신이 활동하던 시대에 그리 각광받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19세기 초반, 역시 당시 유럽을 대표하던 사상가인 존 스튜어트 밀조차 그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고, 그의 저서 또한 당시에는 그리 영향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않았습니다.칼 마르크스, 그는 29살의 다소 어린 나이에 자신의 친구이자 사회주의 사상에 빠져있던 청년인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함께 이라는 책을 공동 집필, 저술하였습니다. 그는 을 통해‘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계급주의에 의존하므로 혁명은 불가피하며, 이 혁명에서 노동자의 승리가 자명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또 노동자의 승리를 통해 국가는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들에 의해 통치될 것이며, 나아가 국가는 소멸될 것이라고 했습니다.그러나 저는 마르크스의 이 주장이 명백히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국가 소멸은 정작 지금까지 어떠한 나라에서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의미가 변질되어 사회주의 국가의 독재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한 예로 소비에트 연방을 들 수 있겠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은 에 나온‘소유권에 대한 전제적인 침해’1번‘토지에 대한 모든 소유를 폐지하고, 모든 지대를 공공의 목적을 위해 사용한다.’와 9번‘인구를 전국적으로 좀 더 균등하게 배분함으로써 농촌과 도시의 차이를 점진적으로 줄인다.’를 실행하기 위해 1932년에서 1933년의 추운 겨울 동안 농민들을 집단 농장 및 국영 농장에 강제로 편입시켰고 이러한 강제 편입에 대한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수백만의 농민들을 아사시켰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유럽 제패의 꿈을 이루기 위해 무고한 노동자들을 전쟁에 투입시켰고, 10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무려 2,000만 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그 누구도 이것을 순수 노동자 계층인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이라고 보진 않을 것이며, 오히려 군부정권에 의한 독재정치에 가깝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이처럼 마르크스가 주장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실재는 스탈린의 정당독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으며 위에 기술한 것처럼 현실성 없는‘이데아’였을 뿐이었습니다.칼 마르크스의 사상이 가지는 또 다른 치명적인 약점은 그가 인간 사유의 무한한 가능성을 경시했다는 사실입니다. 마르크스는‘관념론’을 일체 거부한‘유물론자’였습니다. 그는‘살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먹을 것, 마실 것, 살 곳, 입을 것 등등이 필요하다. 따라서 최초의 역사 행위는 물질적 삶 자체의 생산이다. 이것이 실로 역사 행위이며 모든 역사의 근본적인 조건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실증적인 것을 옹호하고 사유의 가치를 무시했으며, 사유와 관념은 그저 인간이 만들어낸 부수적인 것으로만 인식했습니다.그러나 이것 또한 틀린 주장입니다. 인간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유한 것이므로, 관념, 즉 사유를 통해 행동했다는 것이 옳습니다. 더욱 간단히 설명하자면, 인간은 배고픔, 추움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고 이를‘해결하기 위해’사유하고 또 사유하여 농장을 가꾸고, 옷을 만들어 입은 것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사유를 통해 스스로에게 자기 발전의 동기를 부여했고, 첨단 과학의 대중화를 이룩했으며, 자신들의 삶의 기반이 되는 철학을 만들어냈습니다. 만약 19세기에 생산보다는 분배를 중시하는 사회주의 사상이 유럽 전역에 퍼졌더라면, 현재 우리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여러 특권들을 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전구의 발명도 없었을 것이고, 의학의 무궁한 발전 또한 없었을 것입니다. 즉, 자본주의를 통해 인간의 사유의 힘을 끌어내고자 하는 노력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삶의 수준은 지금보다 훨씬 낮았을 것입니다.물론, 자본주의는 완벽한 이론체계가 아닙니다. 지난 몇 세기동안 세계 경제의 흐름을 좌지우지해온 록펠러 가문과 로스차일드 가문이‘국가가 무슨 정책을 펼치는지에 대해 관심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 그저 국가의 통화량을 조절할 권력만 쥐고 있으면 된다.’라고 말했듯이, 소수 자본가들의 위용이 너무나 막강하여 한 개인은커녕 국가조차 그 검은 세력을 막기는 쉽지 않다는 사실과, 임금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차이, 즉 명백한 계급의 차이가 인간에게 많은 위화감을 조성하고 불안심리와 열등감을 증폭시킨다는 사실은 확실히 자본주의 자유시장체제가 가지는 이면(裏面)입니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사실은 자유주의 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이 상황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해결해야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재화의 생산성을 늘리려는 것과 재화를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 사이에 있는 상충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고, 복지국가정책과 사회보장제도등을 통해 어느 정도 그 단점을 보완했습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가 한계가 있는 현실 불가능한 이론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방증입니다. 반면 마르크스가 주장한 사회주의는 근본적으로‘실현’가능한 이론이 아닙니다. 다원화와 세계화가 이미 대세가 되어버린 지금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통한 재화의 공정한 분배는 18세기 철학자인 장 자크 루소가 말한 소농국가에서나 실현될 수 있는, 현실 불가능한 이론입니다. 그 예로 북한과 중국을 들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회주의 체제 국가인 북한은 사회주의를 통한 인민들의 공동체 사회를 슬로건으로 내세웠지만 70년대 이후로 기아와 가난에 허덕이고 있으며 미국과 주위 국가들을 무기로 위협하여 간신히 그 명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또한 제 1의 경제 대국으로서의 길을 걷기 위한 도움닫기를 하고 있는 중국도 마르크스주의(시대를 거치며 변화수용된 것이지만)의 한계, 자유시장과 자본주의의 가치에 대해 인식하고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등 그 체제를 바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