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운영관리 과제1.단명 할 수밖에 없었던 스베누2.장수 제품 국민제과 오리온 초코파이짧은 시간 유명세를 타다가 망하게 된 브랜드가 있다. 그건 바로 스베누라는 기업이다. 스베누는 인터넷 방송국인 아프리카Tv에서 유명 bj인 황효진씨가 만든 국내 브랜드로서,신발, 의상, 악세서리 등을 제품으로 판매하는 국내 캐쥬얼 브랜드 기업이다.스베누는 10,20대를 타겟으로 하여 젊은 층이 좋아할 만 한 디자인의 신발을 제품으로 선보였으며 페이스북을 비롯한 인터넷 sns을 통해 활발한 마케팅을 할 뿐만 아니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같은 유명 스포츠 구단을 지원하고, 국내외 유명 연예인들의 협찬등을 통한 마케팅으로 점차 인지도를 늘려가기 시작했다. 시내에는 스베누 점포가 점점 늘어나며 한국의 새로운 캐쥬얼 브랜드로 점차 자리 잡는 것 같았다.하지만 문제점이 들어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구매후기로 신발에 색이 빠진다거나 품질이 저품질 이라는 등 제품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난 것이다. 스베누의 신발가격은 나이키나 아이다스,리복 등 유명 해외브랜드 신발과 비슷했고 그에 비해 품질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 이었다. 한편 스베누의 제품이 다른 브랜드의 디자인을 대부분 카피하며, 동일 품질의 신발보다 2배나 비싸다는 사실 또한 밝혀졌다. 결국 스베누의 품질문제로 소비자들은 불만을 폭로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tv에서 조차 스베누제품의 품질과, 납품업체에게 대금을 미지급하는 등의 행태를 주제로 다룬 것이 방송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스베누의 이미지는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지기 시작했고, 가격만 높고 품질은 저품질 이라는 인식이 소비자들에게 박혀 매출은 점점 하락했으며, 재고는 팔리지 않아 점점 쌓여가기만 시작했다. 그리고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제품들을 가격을 낮췄으나 이미 부정적인 이미지가 박힌 탓에 제품은 팔리지 않았고 울며겨자 먹기로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 제품을 떨이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사실상 부도의 상황을 맞게 되었다.스베누의 문제점을 짚어보자면, 일단 스베누의 기업이념을 보면 애매하고 무엇을 지향하는지 나타내지 않았다, 기업의 정체성을 표면적으로 나타내는 브랜드로고 조차 표절 한 것을 봐도 그렇다. 또한 사업전략의 3대 형태인 저원가전략, 차별화전략, 집중화전략은 스베누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오히려 저품질을 고가에 팔고있는 엉터리 형태를 취하고 있다.기업은 제품에 대한 대가를 받고 좋은 품질의 제품을 소비자에게 제공할 의무가 있고 그것이 기본이 되어야한다 . 제품이 기본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품을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고 과도한 마케팅으로 소비자들에게 어필 하려고 한 것이다.제품이 기본바탕이 되고 다른 브랜드의 제품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때 기능별 전략이 필요한 것인데, 스베누는 그것을 무시하고 기능별 전략인 마케팅에만 중점을 두었으니 그러한 기업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스베누의 전략을 보면 그저 거액의 자본을 마케팅에 쏟아 부어 소비자들을 현혹시켜 저품질의 제품을 고가에 사도록 한 것이다. 이런 전략은 단순 눈속임에 불과하며 곧 들통 나고 그것이 기업을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이 이번 사례를 통해 확실해졌다.한국에서 정말 오래되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장수 제품을 한 가지 꼽으라면 나는 당연히 오리온 초코파이를 꼽을 것이다.오리온 초코파이는 1974년에 출시되어 33년간 꾸준히 국민들의 간식거리로 사랑 받고 있다.초코파이는 처음 출시 될 때 한국의 생활양식이 서구화되는 트랜드에 맞춰 오리온이 최초로 한국에 초코파이를 출시한 것이다.오리온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면 쉽게 기업이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리온은 ‘사람이 먹는 음식만큼은 가장 정직한 마음으로 만들어야 한다.’라는 것을 업의 본질로 삼고 있으며, 정직한 마음으로 만든 건강하고 좋은 제품으로 고객의 삶에 행복을 더한 다는 것을 기업이념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기업이념을 바탕으로 하여 저원가전략과 차별화전략을 세워 제과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그들의 이러한 전략은 충분히 잘 실행되고 있다는 것은 오리온 초코파이를 먹어 봤다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회사의 초코파이와는 다르게 오리온 초코파이는 더 쫀득한 마쉬멜로우와 부드러운 식감의 품질을 자랑한다. 오리온은 일관된 품질을 유지 하는 것 뿐 아니라, 초코파이의 크기 더욱 크게 하고 더욱 맛좋은 식감을 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똑같은 가격에 향상된 품질의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또한 품질 뿐만이 아니라 오리온 情이라는 상표를 사용하면서 다른 초코파이 제품과의 차별화를 시도하였고 그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인공지능의 발달은 우리가 업무를 수행하는데 높은 효율성과 효과성을 거둘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의견에는 아무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인공지능은 높은 효율성을 달성하도록 스스로 업무를 할 것이고 스스로 자기 업무결과를 피드백 하여 더 높은 효율성을 달성 할 것이다.인간이 더 이상 어떻게 높은 효율성을 달성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대는 없어질 것이다.왜냐면 인공지능은 인간이 엄두도 낼 수 없을 만큼 많은 경우의 수를 단기간 내에 생각 할 것 이며 그중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업무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인공지능의 테스트에 불과한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보아도, 단순 노동, 단순 사무업 뿐만 아니라 미래엔 복잡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는 업무들도 곧 인공지능으로 대체 될 것은 자명하다.과학이 발달 할수록 인간의 조직행동은 더욱 약해진다고 볼 수 있다.21세기 이전의 시기에는 개인이 할 수 있는 행동 반경은 좁았고 사람들은 그 반경 내에서 서로 의지하며 일생을 살았고 그렇기에 그들만의 조직행동을 했다. 옛 농경 생활에서 있었던 두레나 품앗이와 같은 관습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 인터넷과 교통수단의 발달로 그 행동 반경은 비약적으로 넓어졌다.컴퓨터가 발달하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 조차 모른다.인간은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도구들이 발달함에 따라 서로에게 의지 할 필요가 없어졌고,그에 따라 인간의 조직적인 행동은 줄어 들어갔다. 결국에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의 발달이 조직행동을 할 필요성을 줄이는 것이다.이제까지의 과학의 발달만을 보아도 과학의 발달이 인간의 조직행위에 많은 영향을 미친 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렇다면 먼 미래에 실현될 것으로 예상하던 인공지능이 현실화 된다면 조직행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것인가?인공지능이 상용화 되지 않은 현재까지는 기업의 조직행동의 분석과 조직행위를 하는 것은 높은 효율성 달성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긴 하지만인공지능이 업무를 대체함에 따라 더 이상 조직행동을 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왜냐하면 모든 것은 인공지능이 대체할 것이며 그 인공지능을 관리 할 소수의 관리자만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관리자조차 필요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징기스칸에 대한 나의 논평징기스칸의 본명은 테무진이다.테무진은 1162년에 몽골 오논강 상부지역에서 아버지인 예수게이와 어머니 허엘룬 사이에서 태어났다. 징기스칸이 태어난 당시에는 케레이트족, 타타르족, 나이만족, 메르키드족, 몽골족 이 5개의 부족들과 크고 작은 씨족들이 대립 하던 시기였다.당시 몽골 초원지대는 수십 개 부족과 씨족들이 전투, 사냥, 유목, 약탈, 납치, 교역 등으로 생존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머니인 하엘룬은 아버지 예수게이가 메르키트 부족의 전사의 아내를 납치하여 자신의 처로 삼은 것이다. 테무친은 태어날 때 한손에 핏덩어리를 쥐고 있었는데,그걸 본 사람들은 테무진이 몽골을 통일할 인물로 예견했다.테무친이 어릴적 자신의 아버지인 예수게이가 타타르족에게 독살을 당하는 시련을 겪는다.테무진은 예수게이의 장남이였다.아버지인 예수게이가 사망후 실권을 잡은 타이치우드 씨족에게 징기스칸과 그의가족은 버림받았다.그 후, 그와 그의 가족은 들쥐,물고기,야생화 그리고 소로부터 갓짜낸 우유로 연명하였다.설상가상으로 징기스칸의 복수가 두려웠던 타이치우드 씨족의 추적으로 징기스칸의 가족은 목숨을 위협받았다.징기스칸은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장남으로써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고 시련을 이겨내며 그는 자기의 사람을 보호하는것과 보살피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으면서 왕으로서의 자질을 조금씩 갖추게 되었다.그리고 10년뒤 그는 가족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이끌게되었다.대초원에서 작은부족을 이끌게된 테무진은 살아남기 위해 다른부족과 연합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다른 부족의 여자와 혼인을 했다.그리고 자신의 의형제 자무카,자신의 아버지와 의형제 였던 케레이트족의 토그릴 옹칸과 연합하여 자신의 세력을 키웠다. 그러던 중 메르키트족의 기습으로 자신의 아내가 납치당하고 자신의 사람들이 다쳤다.그리고 복수를 위해 어릴적 친구 자무카와 함께 메르키트 부족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복수를 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는 20살 밖에 되지 않았다.그리고 1181년 자무카와 결별하고 독자적인 세력을 키운후 케레이트 부족의 옹 칸과 연합하여 타타르족,메레키트족을 제압하였다.그러나 점점 세력이 커져가는 몽골 부족에 위협을 느낀 케레이트 부족의 배반으로 케레이트-몽골연합은 깨지게 되었고 몽골은 배반한 케레이트 부족을 제압한 후 ,나이만족 까지 제압하였다.나머지 적대적인 씨족들을 제압하면서 태무진의 몽골족은 통일을 이루게 된다.징기스 칸(전 세계의 군주라는 뜻)의 연호가 선포되면서 징기스 칸의 전설적인 정복역사가 시작되었다.징기스 칸은 부족간 납치와 몽골인을 노예로 삼는 행위를 금지하고 그 어느 종교를 섬기던지 상관없는 자유를 선포했으며 칸의 위엄보다 선포한 법이 더 우선한다는 것을 선언한다. 그는 자신의 복속 부족들을 친 인척에게 나누어 관리하게 하는 중세 봉건제도와 유사한 통치 방식을 채택했으며 이는 오늘날 몽골지역의 유목생활을 하는 시골지방에까지 이어져 내려온다.그의 군대는 10진법 체계로 엄격한 기강을 유지했고, 사령관들은 징기스 칸의 아들이나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 자들로 구성되었다.몽골초원을 통합한 징기스칸은 이에 만족하지않고 세계정복을 꿈꾸며 자신을 더욱 채찍질 하였다.그 결과 징기스칸이 세운 몽골 제국은 세계의 절반을 정복 했다.이는 역사상 두 번째로 큰 제국의 탄생 이였다.몇 몇의 역사학자들은 징기스칸을 유라시아 대륙을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피로 물들인 야만적인 침략자라고 생각하며 인정하지 않으려 든다.과연 징기스칸은 그저 야만적인 침략자에 불과했을까?과거 몽골에게 피해를 받은 국가들의 관점에서 보면 그럴지도 모른다.하지만 나는 징기스칸이라는 인물의 잔인함이 침략과 약탈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유목민족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러므로 우리는 징기스칸을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 볼 필요가 있다.사람들은 몽골제국의 창시자인 징기스칸을 위대하다고 말한다.그 이유는 조그만 부족연맹체를 이끌고 유라시아 대륙을 통합하여 넓은 땅을 정복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그것이 주된 이유긴 하지만 유라시아 대륙의 통합과정에서 징기스칸의 위대함은 더욱 두드러 진다.징기스칸이 어떻게 그 넓은 땅을 정복했으며 무엇이 그를 위대하게 만들었는지 알아보자.징기스칸에게는 세계정복 이라는 비젼이 명확 했다.그는 몽골초원을 통합한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그 비젼을 향해 끝없이 구성원들에게 공동의 목표를 제시하였다.만약 징기스칸의 비젼이 몽골초원 통합에 그쳤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자기의 목적을 이룬 후 나태해지고 현실에 안주하며 사치를 즐기다가 다시 부족간에 내분이 생겨서 또 다시 세력이 나눠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징기스칸은 무자비한 침략으로 인해 독재적이고 권력을 남용하는 인물로 생각되기 쉬운데 부하에 대한 신뢰성과 백성에 대한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있었다.징기스칸은 끝없이 이동하는 유목민의 전통과는 반대로 몽골초원의 카라쿠룸에 영구적인 수도를 세웠고 무역과 문화의 중심지가 되어 백성들이 정복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했다.기록에 따르면 ‘나는 백성들이 부드러운 고기를 먹고 아름다운 천막에 살고 비옥한 땅에서 말을 기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이 기록에서 백성을 아끼는 징기스칸의 마음이 느껴진다.그는 정복한 넓은 땅에 현지의 왕을 임명하였고,그 왕에게 인접한 나라와의 전쟁을 포함해 거의 모든 권리를 부여했다.그리고 현지의 왕은 그 땅의 지리적 환경을 잘 파악하여 정복한 땅을 효율적으로 운영 할 수 있었다.이렇게 징기스칸은 자신의 부하에게 신뢰를 줌으로써 부하의 충성 또한 받을 수 있었는것 같다.징기스칸은 남루하고 비효율을 유도하는 관습을 타파하고 실력위주의 인재를 등용했다.징기스칸이 한 명언 중에 ‘전사는 태어 날 때 정해지는게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여기서 파악 할 수 있듯이 징기스칸은 태어날 때 정해지는 신분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 하지 않았다.그 사람의 능력과 충성심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자격을 부여했다.신분을 따지지 않고 오직 실력만으로 인재를 평가하고 등용한다는 것은 당시 사회적으로는 용납되지 않는 일이였다.나는 징기스칸이 시대를 앞서나가 현대적인 자신만의 철학을 내세우며 광활한 영토를 정복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유능한 장군들을 발굴 하며 유라시아 대륙을 통합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