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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트어만, 예수 왜곡의 역사를 읽고 `역사적 이해, 나를 새롭게 하다!`
    역사적 이해, 나를 새롭게 하다!-바트어만, 『예수 왜곡의 역사』를 읽고-들어가는 말신학은 신앙을 토대로 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한 분야의 ‘학문’으로서 나의 신앙과는 별개로 역사적으로 종교를 해석하기도하고 사회적 측면에서 접근해보기도하고 신학적으로 분석도 해보고 앞서 연구하시고 혹은 삶으로 살아내신 대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수용하거나 비판하기도하는 작업들이 나에게 필요한 것이라 여겼었다. 그러나 야훼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신묘막측하신 하나님이 아니며 심지어 애굽과 바빌론의 신에게 지는 약하고 작은 하나의 부족신에 불과했다는 이론은 나를 매우 힘들게 했다. 앞서 배워온 이론들은 무리 없이 수용할 수 있었는데 이 부분에서 처음으로 역사적 성서 비평으로 인해 시험 들게 된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믿고 의지하고 찬양했던, 이 세상을 지으시고 모든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늘에 계신다는 그 분이 인간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이라는 것인지? 그렇다면 이 세상을 지배하는 하나의 가치관인 기독교적 세계관이 부정되고 이 세계의 본질마저 흔들린다.이러한 상황에서 『예수 왜곡의 역사』를 마주하고 나는 큰 기대를 하였다. 이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할 수 있는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가면서 의문만 더욱 늘어갔다. 나는 이 페이퍼를 통해 저자의 이론(어쩌면 벌써 오랫동안 인정되어온)에 대해 내가 가졌던 의문들을 정리하고자 한다.몸 말1. 신약이해도 더하면 더했지2009년 입학설명회였다. 이덕주 교수님께서 한 학생을 앞으로 부르시고 방석 위에 세우셨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그 방석을 빼버리셨고 학생은 넘어질 뻔하였다. 교수님께서는 이것이 신학교에서 벌어질 일이라고 하셨다. 지금까지 알았던 하나님, 너희들의 신앙이 이렇게 흔들릴 것이라고 하셨다. 중간에 넘어지고 포기하는 학생도 더러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이를 잘 견뎌내고 4학년을 마치고 졸업할 때에는 더욱 견고하고 뜨거운 신앙과 더불어 냉철한 지식 또한 겸비하게 될 것이라고 당부하셨다. 그러나 지금까지 여러 친구들이 신앙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동안 나는 큰 흔들림 없이 앞서가신 선배님들의 이론과 가설을 수용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신앙적으로 흔들리는 친구들과 비교하며 안도하였고, 한편으로는 내가 그들보다 낫다는 얼토당토 않는 자만에 빠져있기도 했다. 그들은 닫힌 신앙을 가졌거나 극히 보수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나는 기독 신앙의 근간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하고 있다. 1,2학년도 아니고 3학년이나 되어서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되니 무척이나 당황스럽다.나의 신앙적 흔들림이 구약이해에서 비롯되었다면 신약을 바탕으로 역사적 예수와 인간의 산물로서의 성서에 대해 말하는 이 책은 나를 소용돌이 가운데로 밀어 넣었다. 저자는 신약의 텍스트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기본 교리까지도 인간적인 목적을 가지고 발달한 결과라고 말한다. 예수의 신성도 후대에 첨가된 것이고 삼위일체 교리도 신약성서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후대 기독교 공동체의 산물임을 밝히고 있다.야훼 하나님도 일개 부족신에 불과하였다는데 예수님조차도 당대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고 그저 다른 신의 아들들처럼 기적이나 행하던 사람이었다는 논리를 접한 나는 마음이 어려웠다. 전 세계를 지배하다시피 하는 이 기독교적 사상이 사실은 전부다 인간의 필요와 목적에 의해 의도되어진 것은 아닌가. 구약에서는 왕정 신학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왕권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할 때, 종교적 이데올로기는 매우 효과적이다. 마찬가지로 박혁거세의 신화처럼 고대 권력자, 큰 인물들과 관련된 신화나 설화는 그 권력의 정당성과 적합성을 주장하기 위한 경우가 다반수이다. 기독교가 신의 존재와 관련 없이 기득권의 이데올로기를 효과적으로 주입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발전되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너무나 허무했다.몸 말2. 교회의 침묵그동안 교회는 왜 발전된 신학적 논의에 대해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일까? 사도바울이 신앙이 약한 자들을 위해 우상 제물을 먹지 말라고 했던 것처럼 믿음이 연약한 자들에 대한 배려차원이었을까? 혹시 종교적 기득권자들에게 필요한 이데올로기를 유지하기 위하여 전통적인 해석과 성서에 대한 신앙적 접근만을 강조해온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공경하고 믿지만 사실 성경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점도 이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자신들의 권위와 정당성을 주장할 때 종교지도자들에게는 성경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자체가 하나님의 책, 계시를 받은 책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또한 세라피온은 정통파의 교리를 가르치면서 사도가 쓴 책을 정경의 기준으로 삼는다. 치열한 논쟁과 분파싸움 가운데 발전되고 정립된 정통파의 교리는 얼마나 정확하게 하나님의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을지 나는 알 수 없다. 본인들의 정당성과 이익을 위해 필요한 부분만 취한 것을 아닐까?교회의 체제와 목회자들의 합리화라는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던 나는 설교준비를 하며 깜짝 놀랐다. 나조차도 어린이들에게 폭력적인 하나님은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홍해에서 애굽 군대를 몰살시킨 이야기를 어떻게 순화시켜서 표현할지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목회자의 주관적인 판단의 삽입은 어쩔 수 없는 문제일까? 발전하는 신학과 전통적인 목회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 저자가 “성경에 그런 식으로 접근해 받아들이고 싶은 구절만 취사선택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것을 위험천만한 짓이라 생각할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운을 떼는데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It's ME!! 정확하게 내 얘기였다. 저자는 이어서 “내 생각에는 이미 모든 사람이 성경에서 받아들이고 싶은 구절만을 취사선택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를 근거로 성경본문의 취사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으나 나는 오히려 그 모든 것이 기독교인들의 잘못된 습관이며 그것에서 비롯된 거대한 그릇된 체제가 자리 잡은 것은 아닌지 고민하고 있었다. 어만은 상황에 따라 더 적합한 메시지가 있기 마련이며 따라서 어떤 메시지를 특별히 선택하는 것을 겁낼 필요는 없다고 말해준다.수많은 학자와 목회자들은 성서를 연구하고 해석하는데 많은 노력을 쏟았다. 그러나 초기문서의 기록부터 정경화에 이르기까지 그러했듯이 이 작업에서도 인간은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완벽한 객관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차피 주관적인 해석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면 교회가 성서를 해석하고 적용할 때에 방향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 쪽을 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은 한 마디로 십자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정의로움, 소명, 가장자리, 나눔, 겸손, 비움 등의 가치와 부합할 것이다. 숨겨진 이데올로기가 있다면 그것은 기득권의 권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치를 담아야 한다. 결국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서야 답을 찾을 수 있었다.몸 말3. 반유대적인 성격, 메시야 때문일까?유대인, 바리새인에 대한 성서 외에 다른 객관적인 자료는 없는 것일까? 신약성서는 그들을 이미 폐한 율법주의자로서 묘사하고 그들을 단죄한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대로 신약성서가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어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쓰인 책이라면 유대인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저자가 언급하듯이 기독교가 등장한 후로 유대교는 타락하고 비뚤어진 종교로 여겨졌다. 기독교 공인 이후에는 유대교에 대한 박해가 암묵적으로 공공연히 이루어졌으며 중세에 이르러서는 유대교에 대해 끔찍한 대학살을 저지른다. 그리고 이 종교전쟁이 중세 기독교의 세력을 확장시키고 부를 축적하는데 일조하였음은 상식이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기독교의 반유대적 성격이 단순히 메시야에 대한 믿음, 그리고 이 믿음과 관련된 교리적 이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유대인을 적대화하기 위한 명목을 위해 지나친 율법주의자로 유대인들을 기술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역사 속에서 똑똑한 지도자들은 내부적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해 외부에 적을 두는 경우를 여럿 발견할 수 있다. 그 예로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유대인 말살 정책, 관동대지진 때의 일제의 한국인 학살이 있다. 기독교의 반유대교적 기술도 이러한 과정의 일부는 아니었을까?몸 말4. 종말론적 예수, 종교적 혁명가인가 불의한 의를 선포하는 자인가나는 요즘 예수와 문선명의 차이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었다. 예수는 구약을 완성하러 왔다고 하였고, 문선명은 구약과 신약의 미완된 계시를 실행하기 위해 자신이 드러났다고 주장한다. 예수는 당대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았던 율법에 대하여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음을 역설하였다. 그것은 혁명이었던 것이다. 예수 또한 그 시대에는 이단이라 평가받기도 하였다. 혹시 문선명의 그 정통성에 대해 후대에 인정받게 되지는 않을까. 최태용, 김교신, 루터, 웨슬리, 예수. 당시에는 이단으로 조롱당하였으나 오늘날 정통성을 인정받는 근거는 무엇일까. 심광섭 교수님께서는 기독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개혁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와 이단을 구분하는 새로운 기준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 기독교의 테두리는 무엇인지, 무엇에 근거하여 정의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는데 있어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뿌옇게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저자의 접근방식과 학자들의 이론은 이론일 뿐 진리가 아니라는 쿨한 태도는 분명 한 층의 구름을 걷어주었다. 이 논의는 기독교라는 종교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접근과 성서에서의 정체성을 고루 염두에 두고 다양한 시각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독후감/창작| 2012.11.30| 4페이지| 1,000원| 조회(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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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기력에 따른 예배와 설교를 읽고
    교회력은 그리스도 중심 예배의 ‘틀’이다『절기력에 따른 예배와 설교』를 읽고[들어가는 말]기독교 예배는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건을 핵심으로 하는 그리스도 중심 예배이다. 구약의 이야기들과 배경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과 십자가의 사랑이 기독교의 독창적이고 근본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그리스도를 통해 선포되고 확증되었다. 요한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의 상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로서 서술한다. 기독교 예배는 예배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자리이다. 예배자들의 의지나 노력이 아닌 성령님의 임재하심으로 말미암아 주관되는 그리스도 중심 예배이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그리스도 중심 예배와 절기력에 따른 예배와 설교의 연관성을 밝히고자 한다.[몸 말 1] 대림절부터 성령강림절까지교회력의 연간주기는 부활절을 기준으로 예수님의 생애를 1년 단위로 기념하는 것이다. 이는 대림절, 성탄절, 주현절, 사순절, 부활절, 성령강림절이 구성하고 있다. 이가 뜻하는 바는 그리스도에 대한 기다림, 탄생, 주현, 사역, 고난, 십자가 죽음, 부활, 승천, 성령강림과 같은 그 분의 생애의 사건들의 순차적 재현이다. 이와 같은 교회력은 초대교회 때부터 시행되었는데 당시에는 부활절을 중심으로 사순절과 오순절이 전부였다. 후에 성탄절과 대강절이 중심이 되는 주현절이 생겨나고 4세기말에서야 오늘날과 같은 구조가 되었다.대림절은 교회력의 출발점이다. 이 기간은 성탄일 4주 전부터 시작되는데 성탄을 앞두고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러나 단순히 이천년 전에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을 기념하는 행사가 아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갈급한 기다림으로 시간을 보내며, 새롭게 주님을 영접하는 기회를 삼는다. 이미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아울러 과거의 사건과 현재적 의미를 함께 생각하여야 한다.성탄절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성탄절과 주현절의 분리는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한 특별한 사건을 매년 기념하려는 초대교회의 바람이 투영된 것이다. 임박한 종말론을 따르던 초대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늦어지는 현실 속에서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아만 가자 그 대안으로 성탄절을 확립하였다. 성탄절은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암묵적으로 담고 있는 절기이다. 따라서 1월 6일인 주현절까지 총 12일간 지키는 ‘절기’이다. 교회는 이 기간을 통해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동시에 재림하실 부활의 주님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시간을 갖는다.주현절은 오순절이나 부활절과는 달리 유대교에 기원을 두지 않는 기독교만의 절기로서 날짜가 고정된 주님의 축일 중 가장 오래된 축일이다. 주현절은 1월 6일이 절기일이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주현절은 교회력에서 일상적인 시간으로 분류되는데 이는 주현절 이후의 주일들과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의 주일들을 통상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주현절기는 1월 6일을 기점으로 사순절까지 5주 동안 지켜진다. 이 절기동안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이후 보이실 부활의 기쁨을 준비하게 된다.사순절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직접적으로 준비하는 기간으로 부활절 전 7번째 주간 참회의 수요일에 시작하여 40일간 지속되는 절기이다. 사순절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없이는 부활의 영광도 없단 초대교회 신앙의 성례전적 표현이다. 따라서 사순절 동안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감당하실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기쁨에 참여할 준비를 해야 한다. 특별히 사순절의 마지막 기간인 고난주간은 참회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화해를 추구함으로 교회의 공동체성이 극대화된다.부활절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부터 7주간을 포함하는 50일간의 절기이다. 이는 유월절에서 유래되었으며 구약에서도 그 역사와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 세상에 새로운 생명과 변혁을 가져왔다. 초대교인들은 이를 기뻐하여 부활절을 단 하루로 끝내지 않고 부활주일 아침부터 시작하여 50일간을 지나 성령강림절까지 축제적인 절기를 지켰다. 지금과 같은 부활절의 모습은 2-3세기에 이르러 세례와 성만찬 등을 강화하면서 발전되었다.성령강림절은 부활절 후 7주간의 시간을 보내고 50일째 되는 날을 기념일로 지키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 의해 실질적으로 적용되고 호가장되기 시작한 출발점이기 때문에 교회는 이 절기를 통하여 예전적인 측면과 더불어 복음에 대한 증거와 확고한 교육에도 중점을 두어 지키는 것이 좋다.[몸 말 2] 한국 교회 예배 현실과 교회력에 따른 예배와 설교의 필요성한국 교회의 예배는 지나치게 설교가 강조된다는 점이 큰 문제로 부각된다. 설교의 비중이 지나치게 커졌고 상대적으로 예배의 다른 요소들은 설 자리를 잃어간다. 이것은 한국교회사적으로 볼 때 선교사들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은 미국의 복음주의적 신앙에 입각하여 선교적인 차원에서 전도방법론에 매진하였다. 우위를 선점하고 복음을 일방적으로 건넨 측면이 없지 않는데, 이러한 경향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자연스럽게 예배자들도 예배 가운데 단지 설교를 듣는 것으로만 만족한다. 이와 같은 설교 지상주의는 한국 교회 예배에서 성례전을 비롯한 다른 예배의 구성요소들을 단지 설교의 보조 수단처럼 여기게 되는 폐해를 낳았다. 초대교회부터 강조되어온 예배의 중심축은 균형 잡힌 말씀과 성만찬의 시행이다. 그러나 설교 중심주의로 인해 성만찬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하다. 예배를 준비하는 임사자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통일성이다. 입례로부터 성만찬, 공중기도, 성가대의 찬양, 설교말씀, 파송의 찬송까지 모든 요소가 하나의 큰 흐름을 이루어야 한다. 예배당 장식과 스톨의 색상마저도 이 흐름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예배에서의 통일성은 예배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초대 가운데 온전히 임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뿐만 아니라 이로 말미암아 점차 설교자의 권위를 인정하게 되고 그리스도 중심 예배가 아닌 설교자 중심 예배로 변이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더욱이 예배 가운데 선포되는 말씀이 그리스도 중심, 복음 중심이 아니라 예배자들의 현실 상황에 맞추거나 설교자들의 자의적 선택에 따른 인본주의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의 현실적인 삶을 돕기 위한 가르침은 분명히 필요하다. 사도바울의 서신들은 그를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사도바울의 서신에서 드러나는 가르침은 명백하게 예수님의 가르침을 토대로 하고 있다. 예배 가운데 설교는 반드시 그리스도를 기초로 하는 복음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설교자 개개인의 결정과 지혜에 맡길 문제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사건을 중심으로 하는 말씀의 균형 잡힌 선포가 요구되는데, 교회력에 따른 예배와 설교를 행한다면 이는 문제없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기초로 하여 성경말씀 전체를 균형 있게 배분한다면 연중 드려지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효과적으로 선포될 수 있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근거로 하여 예배자들의 현실적 문제에 대한 도움도 제시할 수 있다. 더욱이 1년간의 예배 가운데 통일성을 부여하여 물 흐르듯 예배와 교회생활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독후감/창작| 2012.11.30| 3페이지| 1,000원| 조회(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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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 모델 중 사회인류학의 문화진화론적 모델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 사건을 사회학의 구조기능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사회인류학의 문화진화론적 모델[결론]1. 이스라엘 초기 공동체의 형성은 후기 청동기 시대의 도시문명의 파괴에서 시작되어 방대한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축출되고, 이 축출된 그룹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계속적인 정착, 그리고 이들 공동체의 역사적 발전이라는 긴 과정의 산물로 보아야 할 것이다.2. 이스라엘 공동체의 공동체성은 후대에 가서야 종교적인 요인들이 작용하여 비로소 특징있는 공동체가 된다고 보아야 한다. 이스라엘 초기 공동체는 고고학적으로 사회진화적 과정의 관점에서 볼 때 보편적 공동체의 자연발생적 모습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3. 이스라엘 공동체는 사회진화론적 과정의 산물로서 생겨난 복합적 구성원을 지닌 원심성의 공동체였다. 사회진화적 과정 중에 친족중심의 소규모 공동체가 차츰 지역성과 정치중심의 도시국가와 왕국형태의 새로운 조직으로 탈바꿈하였다. 즉 이스라엘 공동체는 친족성을 기초로 한 초기 공동체가 점차 정치적, 경제적 환경에 영향을 받아 분화-융합의 과정을 거친 후에 새롭게 형성된 새로운 공동체였다.[근거]1. 구약성서의 전승: 이는 왕정시대에 근거하여 바벨론 포로기에 최종 편집된 것으로 민족적 정체성의 확립과 고유의 영토 회복의 이념들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이 전승들은 역사적 공동체 재구성의 자료로서는 한계가 있으나, 가나안 정착에 관한 전승들은 조상들에게 계약으로 보장된 약속의 땅에 대한 전쟁을 통한 점령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는 동시에, 열 두 지파의 결속을 계약갱신 의식을 통한 야훼 신앙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이스라엘 초기 공동체의 기원과 형성에 대한 간접적인 정보를 제공한다.⑴ 가나안 정착 전승: 민13-32, 수1-23, 삿1:1-2:5⑵ 정착공동체의 전승: 수24, 삿2:6-삼상82. 시대적 배경: 철기 1기로서 후기 청동기 시대의 안정된 제국과 왕국들이 붕괴된 후 야기된 고대 근동에서의 세력 공백의 혼란기이다. 메르넵타 석비와 바빌론 연대기등 절대연대에 근거하여 B.C.E 1220-1020년 사이로 좁힐 수 있다. 이 시기는 제국간의 정치, 경제, 사회적 역학관계가 깨어져 혼란이 초래되었고 정치적인 공백기의 양상을 보였다. 그래서 이 시기의 고대 근동지역에는 새로운 정치세력들이 많이 등장하였는데, 이스라엘 초기 공동체도 이 시대의 이러한 공동체 중에 하나였다.⑴ 절대연대 근거1. 메르넵타 석비 - 메르넵타의 ‘이스라엘 석비’는 1890년대 이집트 남부의 최대 유적지인 테베의 메르넵타 신전에서 발견되었는데 이 석비에 민족명으로서의 “이스라엘”이 역사상 처음으로 언급되어있다. 이 석비는 서기1220년경 기록된 것이다.⑵ 절대연대 근거2. 바빌론 연대기 - 사울부터 시작되는 이스라엘 왕정의 시작연대는 곧 초기 공동체 배경시대의 종말과 일치한다. 느부갓네살 제19년(왕하25:8)은 시드기야 제11년(왕하25:2)과 일치하며 유다 왕들의 통치 연대를 소급하여 계산하면 사울의 등극 연대는 서기전 1220년 근처가 된다.⑶ 상대연대 근거1. 토기연대 - 가나안의 단순하고 소박한 일상토기들과는 달리 붉은 색과 검은 색으로 무늬를 그리고 광택을 낸 고급토기인 양색토기는 블레셋 민족의 가나안 정착을 결정하는 주요한 단서이다. 람세스3세의 신전 벽화에는 블레셋과 체케르 민족이 이집트 군대와 전투하는 장면이 새겨져있다. 따라서 서기전 1190이후에 블레셋이 가나안에 정착하였음을 알 수 있다.⑷ 상대연대 근거2. 주거층연대 - 어렵다.3. 중심지: 이스라엘 초기 공동체의 중심지는 중앙산악지대이다. 이들은 지리적 주변부인 고지대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고고학적 발굴 자료에 의하면 비교적 주거 분포가 희박했던 산악지대였으며, 성벽이 없는 촌락을 이루고 살았다. 비이스라엘인의 주거지인 블레셋과 네겝지역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네 방집, 곡물저장고, 목이음 항아리 등이 발견되었다. 이를 근거로 이스라엘 공동체의 주거지는 주변 공동체 및 그 이전시대와 문화적인 면에서 단절현상을 보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⑴ 네 방집: 철기 1기 고지대 정착지에서 특징적으로 발견되는 형태로 블레셋과 네겝의 고지대에서도 발견된다. 철기시대의 주요한 건축양식이며 중앙산악지대의 지리적 조건의 영향을 받았다. 둥근 마당을 둘러싼 넓은 방들이 줄지어 배치된 형태이다.⑵ 곡물저장고: 이러한 시설은 정착 초기 사회들의 특징으로 잘 조직된 사회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 곡물저장고는 이스라엘 정착지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⑶ 목이음 항아리: ①고지대의 물질문화적 특징은 기본적인 생활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최소한의 토기들만을 소유한다는 것이다. 이 항아리는 단순하고 소박하며 초기 철기시대를 대표한다. 이러한 토기들은 평야지대의 가나안-블레셋의 토기와는 다르다. 그래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착지를 가려내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데 특히 목이음 항아리는 중앙산악지대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된다. ②목이음 항아리는 요단강 근처의 평원에서도 발견되며 최근에는 이스라엘의 정착지가 아닌 므깃도 등지에서 발견됨에 따라 이스라엘 정차민들은 고유의 토기제작 전통을 갖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4. 형성과정이스라엘 초기 공동체의 형성과정은 [기존 세력의 붕괴 - 민족의 이동 - 새로운 지역에의 정착 - 새로운 민족 공동체로서의 정치적 세력형성]이라는 새로운 공동체의 기원과 형성에 관련된 전형적인 모형을 따른다.이스라엘 초기 공동체의 형성과정은 후기 청동기시대의 사회 붕괴 상황에 다양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각기 그들의 공동체로부터 분화-이주하여 고지대를 중심으로 정착하여 소규모의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공동의 역사적 경험을 기초로 공동체 상호간의 공동의 목적을 위해 결속하였고, 이렇게 규모가 확대된 공동체는 독자적인 자신들의 공동체를 형성하였다.4-1. 분화요인①기후의 변화와 같은 자연적 요인 ②도시국가 간의 분쟁의 결과로 인한 사회적 불안정과 같은 정치, 사회적 요인 ③해양족을 비롯한 외적의 침입이라는 군사적 요인 ④교역관계 파괴와 같은 경제적 요인 등이 있다. 분화-이주는 이와 같은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⑴ 인구압: 인구의 증가현상은 특정지역의 인구 수용한계를 넘어 그 균형이 깨어지게 되고, 이는 전쟁과 유행병, 기근 등을 통한 인구의 감소나 공동체의 분화를 유발한다.
    인문/어학| 2012.11.30| 3페이지| 1,000원| 조회(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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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이해 유연희 교수님 중간고사 예상답안 정리
    *1. 오경의 문서가설과 새 연구 동향에 대해 기술하시오. (“토라의 신학”에서 이영 재의 글 참조)원역사에 나타난 중복기사에 관한 이해 - 최민용전통적으로 모세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율법의 저자로 간주하였다. 신약성서도 모세가 오경을 저술하였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단어나 문체의 차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들, 문맥상 흐름과 맞지 않는 이야기의 삽입, 모순된 사실의 진술, 후대의 일이 기록되었다는 점들에서 새로운 가설이 정립되기 시작한다.학자들은 오경의 일관적이지 않은 성격을 설명하기 위해 연구하고 여러 가지 가설들을 제시하였다. 1. 가장 처음의 가설은 문헌가설이다. 처음에는 역사적 방법론을 통해 오경의 텍스트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였고, 그 결과 J, E 등 성서의 자료였던 문서가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다. 다음은 단편가설로 이것은 오경이 여러 가지 단편을 모아 편집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 가설은 계획된 구조, 오경 전체와 관계 맺고 있는 연대기 등은 설명하기 어렵다. 3. 보충가설. 이것은 하나의 기본문서를 토대로 다른 단편 문서들을 보충하였다는 주장이다. 오경은 전체적인 일관성이 드러나지만 한편으로는 내용상의 차이점이나 상충되는 부분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학자들은 오경의 주요한 설화의 줄거리가 상당한 일치를 보인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들이 문헌비평적 분석을 통해 가려낸 기본문서가 엘로힘 문서인데, 따라서 일관적인 부분은 엘로힘 문서이며 상충되는 부분은 보충된 문서라는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이미 문헌가설에서 엘로힘 본문이 두 개였다는 점에서 보충가설은 설득력을 잃는다. 4. 다음은 후기문헌가설이다. 이 가설은 첫 원자료에서 편집된 것이 J문서이고 여기에 E문서가 더해졌다고 하여 3자료설이 되었다. 이후에 신명기가 독립적인 작품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여 제사장문서(P), 엘로힘문서(E), 야훼문서(J), 신명기문서(D)의 4자료설로 발전된다. 그리고 이후 이 문서들의 연대는 J-E-D-P로 수정된다.이 이후에는 양식사적 연구, 전승사적 연구, 편집사 백성들의 삶의 자리에 주목한다. 궁켈은 이스라엘이 바벌론으로부터 창조전승을 구전으로 받아들였음을 밝혀냈다. 그는 벨하우젠이 제시한 J,E,D,P의 네 자료설을 수용하였고 P자료는 다른 세 자료보다 나중의 것이라는 점도 인정하였다. 이 연구방법은 한 단어나 문장이 아니라 문학단위 자체와 그 형성, 삶과의 관계성이 집중하였다. 또한 이들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문학등과 비교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이전까지 문서설에 국한된 오경연구의 관심이 전승으로 전환되었다. 전승사적 연구는 어떤 전승이 걸어온 역사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이 연구로 인해 전승의 전달과정과 전승 자료에 대한 연구가 확립되었다. 이들은 출애굽 사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감, 족장들에게 한 약속, 광야에서의 인도하심, 시내 산 계시의 다섯가지 주요 주제로 오경을 분석하였다. 이 주제들이 큰 흐름을 주도하고 있으며 다른 작은 이야기들은 이와 관련된 이야기라는 것이다.편집사적 연구는1960년대 이후로 점차 지지를 얻게 되었다. 이 연구는 전승이 어떤 연대에 어떤 순서로 편집되었는지에 관심을 갖는다. 편집자는 전승을 문헌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자료와 의도를 삽입하였다. 이 작업에서 제의를 중요시 하는 점이 드러난다.http://rsjulia.blog.me/120014409090원역사의 창조기사와 홍수설화에 나타난 중복기사에 관해 고대근동의 문헌들과 야훼문서와 제사장 문서의 비교내용을 통해 창세기와 고대근동의 문헌들과의 차이점과 유사점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내용적인 유사성 때문에 고대근동의 설화들이 야훼 종교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지만, 유사점보다는 근본적인 차이점들이..?*2. 오경이 보여주는 고대 이스라엘 여성의 역할과 사회적 위치에 대해 기술하시오. (토라의 신학”에서 유연희의 글 참조)고대 이스라엘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과 종교생활에 관한 연구 - 김맹엽종교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삶의 상황 가운데 이해되어야 한다. 고대 이스라엘 여성의 종교적 위치는 사회적인 위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가 알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다.구약성서에 의하면 이스라엘 여성들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율법과 관습을 따랐다. 또한 법적으로 남성의 지배를 받았다. 남성은 공적인 일과 주요한 일을 담당하고 상대적으로 여성은 한정되고 주변적인 역할을 맡는다. 여성들에게는 주로 가정의 일들이 부과되었다. 가축 떼를 지키고, 밭에서 일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양털로 실을 자아 옷을 짜는 일 등을 주로 했다. 드보는 이것이 여성의 위치를 비천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에 대한 존중심을 일으켜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뛰어난 여성의 경우 지도자로서 활동한 기록도 남아있다. 여성이 정치적으로 최고의 지도자 역할을 했던 경우는 사사시대의 드보라가 유일하다. 미리암의 경우 지도자였다고는 하지만 모세의 권위에 눌려있다.3. 오경의 주요 주제는 무엇이고 그에 대한 나의 성찰은 무엇인가?주요주제에 대한 한문장짜리 코멘트 추가하기오경에는 4가지의 주요 주제가 관통하고 있다. 첫 번째로는 언약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등의 족장들과 언약을 맺으신다.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은 계속해서 반복된다. 그리고 반복 됨을 통하여 출애굽과 가나안땅으로의 여정을 이끌어 낸다. 두 번째로는 출애굽을 볼 수 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성경은 약자들을 친히 찾아주시고 편을 들어주시는 하나님, 해방을 이끄시는 하나님을 나타낸다. 세 번째로는 약속의 땅이다. 성경은 땅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정착이라는 것이 유목민들에게는 중요한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땅으로의 이동하면서,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 공동체 생활을 준비(연습)하게 된다. 광야의 생활과 새로운 법(계명)을 받는 것도 땅을 갖기 전의 준비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법(율법)에 대한 강조이다. 오경은 자체가 토라이며, 토라 자체가 법이다. 하나님에 말씀에 따라 삶을 살 것을 강조한다. 하나님 자신이 곧 토라이시다.출애굽 사건은 바로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이룩한 사회인 애굽의 권력구조를 분쇄하고 공의의 실현을 이동이 아닌 힘과 권력에 지배당하는 삶에서 자유, 평등, 정의와 평화를 구현하는 삶으로의 인도이다. 한국교회는 정의에 대한 하나님의 열정을 기억하고 있는가? 혹시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그들만이 즐기는 축제를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소수의 특권층만을 섬기며 억압의 체제가운데 혼합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4. 고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에 대한 다섯 가지 가설은 무엇이고 나의 평가는 무엇인가?1. 정복설: 성경에서 주장하는 가장 보수적인 가설로 여호수아의 여리고성 정복이 대표적이다. 고고학적으로 아이성과 여리고성 발굴시 당시 사람이 살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짐으로 인해 증거의 불충분으로 거의 믿지 않는 가설이며, 여호수아서에서도 군데군데 부정하는 내용이 있다.2. 혁명설: 가나안 내부에서 지도층에 불만을 품고 있던 사람들과 이집트에서부터 온 히브리사람으로 추정되는 외부인들이 혁명을 일으키고 정착하게 되었다는 가설. 지방총독들이 아켄아텐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아마르나 편지에 하피루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히브리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성서적인 근거가 없고, 하피루는 히브리와 발음의 차이가 크며 부랑자라는 뜻도 있기 때문에 히브리인으로 보기에 무리가 있다.3. 이주설: 유목민들이 산간지대부터 평지로 확장시켜 정착했을 것이라는 가설. 사사기에서 드러나고 있다. 고대 시리아와 팔레스틴 지역은 기후의 리듬이 있었고, 유목민들은 매년 반복되는 날씨와 현상 속에서 목장을 교환하며 이동하는 것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농경지에서 영구히 정착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정착을 위한 노력들이 계속 되면서 유목민들은 초원에서 농경지로 수백년의 시간에 걸쳐서 정착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 가설의 특징은 유목민들이 장기간에 걸쳐서 이동하였고, 결혼이나 좋은 유대관계에 의한 평화적인 이주, 자연의 순환과 맞물려 있고, 원주민의 세력에 성패 가 좌우된다는 것이다.4. 점진적 출현설: 고고학적으로 이스라엘적인 유물로 테있는 항아리와 네방집을 염두에 두고 있다. 후에 발굴작업나안 내부의 사람들이었고, 어느 순간부터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이스라엘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고 보는 가설이다.5. 협력설: 공생의 의미가 더 큰 가설. 떠돌아 다니면서 목축을 하던 사람들이 고지대에 정착하게 되고, 후에 저지대에서 농업을 하던 사람들과 경제적인 협력관계를 이루어 함께 정착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급격한 인구증가의 요인은 다음과 같다. ①이집트 사람들이 강제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고지대에 이주시켰다. ②이집트 사람들이 징세를 심하게 해서 고지대로 도망쳤을 것이다. 모르는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 지역에 이집트를 비롯한 강대국들이 가급적 손을 뻗치면서 세력을 늘 강화시키려고 했다는 것이다.마빈 체이니는 유목민 침투 모델과 정복 모델을 모두 거부한다. 초기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에서 가장 효과적인 이데올로기가 신앙이 아닌 경제라는 사실이 다소 충격적이었다.다른 세 모델에 비해 문화진화론적 모델에 무게를 두고 있었는데 놀의 책을 읽고 더욱 확고히 나의 입장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놀은 “성서의 이야기는 사실이나 역사는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 나도 성서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역사적인 관점으로 접근할 때, 성서적 전승을 근거로 한 정복모델에서는 비상식적인 부분이 발견된다. 오랫동안 유목생활을 한 이스라엘 민족이 굳건한 성벽을 세우고 비옥한 토지에서 풍요롭고 안정적으로 살던 가나안을 정복할 정도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질 수 있었을지에 대한 의문이 그러하다. 뿐만 아니라 정복자로서 여호수아의 성격이 뚜렷하게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 정복과정에 대한 불명확성등 여러반론이 제기되고 있다.문화진화론적 모델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 사건이 일반적인 국가 형성 과정에 부합한다고 본다. 이 모델은 이스라엘 초기 공동체의 형성을 후기 청동기 시대의 도시문명의 파괴에서 시작되어 방대한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축출되고, 이 축출된 그룹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계속적인 정착, 그리고 이들 공동체의 역사적 발전이라는 긴 과정의 산물로 본다. 따라서 이스.
    학교| 2012.11.30| 6페이지| 2,000원| 조회(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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