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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활과 과학 윤혜경 교수님 개인발표
    안녕하세요. 제가 궁금했던 것은 기차에는 왜 안전벨트가 없는가였습니다.여러분은 혹시 여기에 궁금증을 가져보신 적 없나요? 저는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우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해하기 위해선 뉴턴의 3가지 운동 법칙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뉴턴의 운동법칙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뉴턴의 제 1법칙이 있습니다. 관성의 법칙이라고도 합니다. ‘관성’은 정지해 있던 물체는 계속해서 정지해 있으려고 하고, 운동 하고 있던 물체는 계속해서 운동하려는 성질을 말합니다. 이 성질이 바로 관성의 법칙입니다. 우리는 테니스공과 농구공이 굴러 올 때 테니스공을 반대 방향으로 차는 것보다 농구공을 차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예들은 모두 물체의 질량이 더 클수록 관성도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뉴턴은 물체의 관성의 크기를 ‘질량’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 날 과학에서 사용하는 ‘질량’의 의미입니다.두 번째로 뉴턴의 제 2법칙은 가속도의 법칙이라고도 불립니다. 뉴턴은 물체에 가해진 힘의 크기와 물체의 속도 변화량, 즉 가속도는 비례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힘을 F, 가속도를 a라 하면 F∝a 라고 쓸 수 있습니다. 뉴턴은 여기에 들어갈 비례 상수를 물체의 ‘질량’ 이라고 불렀고, 너무나도 유명한 공식인 F=ma는 이렇게 탄생 되었습니다.세 번째로 뉴턴의 제 3법칙이 있습니다. 작용-반작용의 법칙이라고도 합니다. 어느 물체가 다른 물체에 힘을 가하면, 자신도 그 힘과 크기는 같고 방향은 반대인 힘을 그 물체로부터 받게 된다는 법칙입니다. 이 운동법칙은 실생활에서 많이 접해 보셨을 것 같습니다. 손바닥 치기 게임을 하다보면 자신보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과 했을 때 자신이 상대방의 손바닥을 친 것인데 상대편은 뒤로 별로 안 밀리고, 나만 뒤로 밀리는 경험을 모두 해보셨을 겁니다. 이것은 바로 자신이 준 힘만큼 자신도 그 힘을 받았기 때문입니다.마지막으로 운동량과 충격량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운동량은 운동하는 물체가 가지는 물리량을 의미합니다. '운동하는 물체가 가지는 관성의 크기' 라는 의미로 알아두시면 될 것같습니다. 운동량은 질량이 일정할 때 속도에 비례하며, 속도가 일정할 때 질량에 비례합니다. 따라서 운동량은 질량(m)과 속도(v)의 곱으로 표현됩니다. 다시 말하면, 질량 또는 속도가 클수록 물체가 가지는 관성의 크기도 커지기 때문에 물체의 운동을 변화시기기 위해선 충격을 가하는 힘의 크기도 커야 한다는 뜻입니다. 충격량은 물체가 받은 충격의 정도를 말합니다. 충격의 정도는 물체가 받은 힘의 크기와 힘을 받는 데 걸린 시간(t)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 두 가지 식을 미분 또는 적분을 이용하면 충격량은 운동량의 변화량과 같다고 나오는데, 저희는 미분과 적분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냥 충격량은 운동량의 변화량이라고 알아두시면 될 것 같습니다.지금까지의 내용을 종합해서 기차에는 왜 안전벨트가 없는지 생각해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이유는 ‘질량’에 있습니다. 기차 이전에, 대형차와 소형차가 부딪힌다고 생각해 보면 뉴턴의 작용-반작용 법칙에 따라 차의 크기나 무게에 관계없이 두 대의 차가 받는 힘의 크기는 같고 방향은 서로 반대입니다. 따라서 충돌할 때의 충격량은 두 차가 모두 같습니다. 충격량은 운동량의 변화량과 같다고 했었죠? 대형차와 소형차의 운동량의 변화량은 같지만 대형차는 질량이 크기 때문에 속도의 변화량이 소형차에 비해 작고, 반대로 소형차는 질량이 작기 때문에 속도의 변화량이 대형차에 비해 크게 됩니다. 속도의 변화량은 곧 가속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형차와 소형차가 충돌할 경우 대형차에 타고 있던 사람은 소형차에 타고 있던 사람보다 작은 가속도를 느끼게 됩니다. 충돌 시 대형차가 소형차보다 작은 가속도를 겪는다는 것은, 대형차는 충돌하고 나서도 속도가 별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사고현장을 떠올리면 대형차는 속도만 좀 줄어든 채 진행 방향으로 운동하는 반면 소형차는 진행방향과는 반대로 밀리는 장면을 쉽게 떠올리실 수 있을겁니다.
    생활/환경| 2013.07.02| 2페이지| 1,000원| 조회(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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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 mission 감상문
    The mission 감상문오늘 장성모 교수님께서 The mission 이란 영화를 보여주셨다. 처음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강의가 끝난 후 보는 영화라 장성모 교수님의 교육관을 드러내는 영화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의 표면에서 보여지는 것은 The mission이라는 영화는 두나라의 영토분쟁과, 한 나라에 의해서 희생되는 원주민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니 이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였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영토 분쟁을 하였고, 협상 결과 과라니족이 살고 있는 지역은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정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과라니족이 살고 있는 지역에는 선교사들이 와서 과라니족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고 있었다. 하지만 포르투갈은 가톨릭의 나라였고 노예제를 합법화 하는 나라였기 때문에 선교사들은 과라니족의 안전을 걱정하며 그 지역을 떠날 것을 권하였다. 하지만 과라니족은 그 지역을 떠나기를 거부하며 선교사와 함께 하느님의 뜻에 따라 무기없이 포르투갈 부대를 맞서며 과라니족의 파멸로 이야기가 끝이 난다. 죽음의 위기에도 한 선교사는 God is Love를 말하며 무력으로 명예로운 죽음을 받아들였다. 결국 과라니족의 파멸로 영화는 끝을 냈지만 그것이 기독교로 인한 파멸인가? 그렇다면 기독교는 과라니족에게 있어서 부정적인 대상인가? 정답은 아니다 이다. 과라니족은 선교사들에 의해서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고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배웠다. 선교사들과 함께 교회를 세워 기독교인으로써 활동하였고 그들은 하느님의 형제였기 때문에 그러한 이유로 말살당하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선교사들의 뜻에 따라 그렇게 죽음앞에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죽은 선교사들과 과라니족은 죽은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라는 부분이 나레이션으로 흘러나왔다. 이 부분에서도 과라니족을 파멸로 이끈 기독교라기 보다는 정신적으로 남아있는 기독교의 긍정적인 부분이 어필되었다.이 영화를 보다가 문득 교수님께서 했던 수업 내용의 일부가 생각이 났다. God is education. 교수님께서는 기독교의 교리와 교육은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다른 부분도 존재 한다. 기독교는 헌신하면서까지 남을 사랑하는 것이 교리이지만 교육은 헌신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좋아서 교육을 행하는 것이다. 교수님께서는 교사라는 위치에 대해 성직과 비슷하다고도 하셨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성직의 특성을 내비치는 것들은 직업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교사 또한 교육의 입장에서 성직으로 비추어본다면 직업교사라는 단어는 좋은 단어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직업교사는 단지 돈벌이를 위해 직업의 수단으로 교사를 택한 것의 늬앙스가 강하기 때문이다. 교사란 자신이 원해서 자신이 하고 싶어서 교육을 행하는 사람으로 삶 자체가 교육이다.
    독후감/창작| 2013.07.02| 1페이지| 1,000원| 조회(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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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성모 교수님 교육과정과 수업 학기말 보고서
    학기말 보고서벌써 한 학기가 지나가고 교육과정 수업의 학기말 보고서를 쓰고 있다. 열 번 정도 되는 수업에서 내가 교수님께서 찾아낸 발견은 무엇이 있을까? 나는 교수님께 얼마나 기만당하였는가? 처음 수업부터 몇 번의 수업을 듣기 까지 나는 교수님에게 대부분 반대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그랬기에 소견서에도 교수님의 의견에 반대하는 말을 많이 써 놓았다. 그러나 한번도 교수님에게 나의 반대 의견을 피력해 본 적이 없다. 그냥 나와 다른 생각의 교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그리고 나의 무조건 배타적 생각의 변화가 나타난 것은 눈높이 7주차 수업에서였다. 교수님께서는 우리 중 대부분이 기만 당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리고 지난 주의 편애에 대한 시각과 연관지어 교수님께서는 기만 당하고자 하는 자를 편애하신다고 하셨다. 기만당하고자 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이해 할 수 있는 것만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잘못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배척하려고 한다. 그 동안의 내가 딱 기만당하지 않으려는 학생이었다. 소견서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어떤 날은 ‘교수님의 의견에 동감한다, 또 어떤 날은 교수님의 이러한 생각은 맞지 않는 것 같다’ 의 글을 썼다. 이것은 내가 교수님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한 것도 내가 기만 당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의 것을 이해 했기 때문에 교수님의 의견에 동의한 것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 수업 이후로 나는 교수님께 기만당하고자 하였다. 교수님의 편애 대상이 되는 학생이 되어보고자 한 것이다. 그 동안 기만당하고자 하지 않았을 때의 수업은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라며 배척한 것이 많을 것이다. 그렇기에 교수님의 강의를 1주차부터 다시 되돌려 살펴보면서 기만당한 학생의 입장에서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았다.첫 번째로 3주차 수업에서 다루었던 교사의 입장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교사는 공무원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직장을 원해서 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들이 직업으로써 교사의교직의 일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교사는 겉과 속이 다를 수가 없다. 학교 밖에서는 행실이 단정하지 못하며 타락하였지만 학교 안에서는 아이들에게 최선의 교사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진정한 교사라면 그렇게 이중적인 모습을 나타낼 수가 없다. 타락했다는 것 자체가 교사라고 불릴 수 있는 자격에서 박탈 되는 것이다.두 번째로 생각해볼 것은 교육이다. 나는 교수님의 수업을 듣기 전까지는 교육은 교과지식의 전달과 인성의 두 부분으로 나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인성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학생들이 탈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또 교과지식만을 온전히 이해한 학생은 인성이 부족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교육은 교과지식이 전부라고 하셨다. 우리가 흔히 이분적으로 나누어 생각하였던 것이 실은 교과지식 안에 전부 포함되는 것이다. 인성의 깊이는 우리가 얼마나 교과지식을 깊이 이해 하였는가 이다. 처음 이 수업을 들었을 때는 그럼 교과 성적은 우수하지만 비행을 저지르는 청소년들은 어떻게 설명되는 거지? 하고 의아해했으나 지금은 명백히 알 수 있다. 그 학생들은 교과지식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는 못한 것이다. 수박 겉 핥기 식으로 교과지식을 아주 살짝 맛보았을 뿐인 것이다. 만약 그 학생들이 교사가 전달하는 교과지식을 깊이 이해했다면 그 자체로 올바른 인성이 함양되는 것이다. 국어,수학,사회 등은 일반적인 단순한 교과지식, 도덕,슬기로운 생활에서 배우는 것은 인성 교육이라고 구분 짓는 것은 정말 옳지 못한 생각이며 이 어구는 교과지식을 단순화 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교과지식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깊이있게 이해한다면 그 무엇보다도 인성의 깊이를 더욱 깊게 해줄 중요하고도 귀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교사의 역할은 교과지식의 전달자 역할만 하면 된다. 이것은 충분하다. 교과지식의 온전한 전달자가 된다면 그것으로 교사의 존재가치는 빛을 발하는 것이다. 교과지식의 전달자로써의 바람직한 교사상을 가져야 할 것이다.세 번째로 생각는 생각은 접어두어야 한다. 교사는 적극적으로 편애해야 한다. 편애는 학생 개인이 아닌 학생 전체에 대한 봉사다. 편애라는 것이 다른 학생들은 그냥 평범한 학생일 뿐이고 편애받는 대상만이 관심의 대상인데 어찌 이것이 전체 학생을 위한 봉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은 편애받는 학생으로부터 수업을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할 지 교사가 판단 할 수 있고, 교사라는 것이 원래 교사가 좋아서 하는 것인데 자신이 편애하는 학생이 있다면 더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편애를 받지 못하는 학생으로부터의 적극적인 노력을 기대할 수 도 있다. 하지만 편애를 해야 하는 것이 그 효과를 노리는 것은 아니다. 편애가 주는 효과에 관계없이 편애는 교사만의 권리로써 편애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편애의 대상은 어떻게 기준 지어질까? 기만당하고자 하는 사람이 편애의 대상이다. 교수님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옳지 않은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이 아닌 자신과의 생각이 달라도 들으려고 하는 그런 기만당하는 자 말이다. 학생은 기만당하고자 하고 교사는 그러한 학생들을 편애하고자 하는 것이 바른 교실의 모습이다.네 번째로 생각해 본것은 눈높이 교육에 대한 교수님의 입장이다. 눈높이 교육의 장점은 학생 개개인의 수준별에 맞추어서 수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이나 이를 위해서는 개개인의 수준 파악이 필수적이며,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단점으로 남는다. 교수님께서는 이러한 눈높이 교육에 대해 혐오하신다. 그리고 교수님께서는 그러한 수업을 우리 교육과정 수업에 적용하고 계신다. 수업시간에 주위를 둘러보면 나와 마찬가지로 수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은 표정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나는 거의 대부분의 교수님의 말씀을 바로 바로 이해하지는 못한다. 내 수준보다는 어려운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이야기를 어렵다고, 이해할 수 없다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배움을 하는 학생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배우기에 어렵다고 하여 배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교사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적재적소에 적용하고 활용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업에는 방법이 있다. 그러므로 방법에 초점을 둔 눈높이 교육은 진정한 교육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교사는 수업에 있어 그냥 수업을 행할 뿐이다. 그것을 보고 수업의 방법을 따지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교사가 칠판에 판서를 한다고 판서법, 수업시간에 학생에게 질문을 한다고 질문법, 토론형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고 토론법 이라고 이름 붙이면 안되는 것이다. 수업은 방법이 아닌 존재방식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확연히 다른 차이가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런데도 어째서 교육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져봤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업에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교사는 자신이 수업을 만들어나간다. 존재의 방식이다. 칠판에 판서를 하고 학생에게 질문을 하고 이들은 방법이 아닌 교사의 존재방식이다. 하지만 우리 대학을 살펴보면 이번 학기에는 대부분 수업에서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혼란에서 어떻게 해야할까? 교수님께서는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그러한 방법론적인 것들에 대해 배워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야 교사가 되는 시험에 합격할 수 있고 진정한 교사로 발걸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속이고 방법에 대해 생각하지 않지만 방법을 배우고 교사가 되라고 하셨다. 하지만 교사가된 이후에는 수업을 방법이 아닌 존재방식으로 생각하라고 하셨다. 교수님 덕분에 많은 부분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를 쉽게 알 수 있었다.다섯 번째로 생각한 것은 교육에서의 상담 , 심리의 영역이다. 우리는 교육의 일환으로 상담에 대해서 배우고 있지만 실은 상담과 교육은 분리되어야 하는 영역이다. 상담이라 하면 정상에서 벗어난 학생의 수치를 정상으로 이끌기 위해서 하는 것으로 치료에 그 목적이 있다. 하지만 내가 상담시간는 학생들이고 그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주는 것에 목적이 있다. 상담과 교육은 그 대상도 다르고 목적도 다르기에 하나로 묶어서는 안되고, 교육은 교사가 상담은 상담가가 해야 하는 것이다. 교사는 반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을 상담가에게 보내고 나머지 학생들을 대상으로 멋진 정신세계를 보여주면 된다. 상담은 꼭 필요한 영역이기는 하나 교사의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다. 교사는 교사의 영역과 역할에 맞지 않는 상담이라는 영역에 발 담을 필요가 없다. 교육이란 것과 상담이란 것의 차이를 명확히 이해한다는 이 말은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교사는 교사로써의 역할만 다하면 된다. 상담은 상담가에 맡겨야 한다.여섯 번째로 생각해 본것은 카스트제도였다. 다른 개념들과 마찬가지로 교수님의 수업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좁은 생각안에 갇혀 있었다. 수업을 듣기 얼마 전에 카스트 제도 안에서 희생당하는 하위계층에 대한 뉴스 기사를 읽어서 더욱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내가 살아가는 지금 이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로 사회 내에 불평등이 숨어있긴 하지만 우리는 불평등의 가치에 대해 미워하고 평등을 강조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자라와 나는 평등함이라는 단 하나의 편협한 시각으로 카스트 제도를 바라보았고 그 결과 카스트 제도는 나쁘다 라는 단 하나의 결과만을 생각하였다. 교수님께서 카스트제도를 신봉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시는 것은 불평등, 평등의 개념에서의 생각이 아니다. 교수님께서는 카스트제도에서의 브라만의 열정이 지금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브라만과 같이 살라고 하시며 카스트 제도에 대해 칭찬한것이다. 우리는 대학생으로써 지식을 갈구하며 지식을 탐구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에 브라만 처럼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현실의 대다수의 대학생들은 고등학교의 억압된 환경에서 벗어난 자유를 만끽하느라 대학생으로써의 진정한 삶을 찾지 못한다. 이러한 점에서 카스트제도는 더욱 의미 있는 것이다. 카스트제도의 불합리한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어떤 것의 가치를 판단할 때 그 가치를 .
    교육학| 2013.07.02| 5페이지| 1,000원| 조회(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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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업의 예술을 읽고
    초등학교교실,예술의현장수업의 예술, 새 학기 첫 수업시간에 과제로 받아들게 된 책의 이름이다. 처음 독후감에 대한 과제를 받아들었을 땐 메모만 해놨을 뿐 그 책이 어떠한 책인지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 그 책의 이름도 얼마 지나지 않아 기억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과제 제출 시기의 일주일전, 과제를 위해 급히 책을 찾았다. 책의 표지는 너무나 딱딱하게 생겨 평소 책을 잘 읽지 않는 나에게 수면제와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부터 앞서게 만들었다. 머리말에 써있는 글은 다소 어려워 정말 내 예상대로인 책이구나 했었고 언제 이것을 다 읽게 될지 이해는 할 수 있을지 막막하였다. 그러나 수 십개의 챕터로 나누워진 본문의 글을 접하고는 몇 시간이 채 되지 않아 다 읽어 내리게 되었다. 전공서 같이 재미없고 어려운 글이 아니라 현장에 있는 교사들이 자신의 수업과정 일부를 책에 실은 것이라 흥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챕터별로 수업의 소재는 다양했지만 수업이 교사에게서 학생으로의 일방적방향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 간 쌍방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 챕터간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얼마 전 나는 초등도덕교육 과목에서 소크라테스에 대해 발표했었다. 그의 교육방법인 산파술에 대한 발표를 준비하고 발표가 끝날때까지도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건지 확신이 서지 않았는데 이 책이 산파술의 예시가 되었고 나의 지식에 명확함을 더해주었다. 산파술이란 스승이 제자에게 지식의 습득을 강요하는 교수법이 아니라 제자에게 내재되어 있는 지식을 대화를 통해 이끌어 내주는 교수법으로 산모의 옆에서 출산을 돕는 산파와 역할이 비슷하다 하여 플라톤이 이름 붙였다. 소크라테스의 이러한 산파술은 아직 언어능력과 지적능력이 온전히 발달하지 못한 초등학생 저학년에게는 다소 어려움이 있을 것이란 판단으로 전문가들에 의해 비추천적이란 소리를 듣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과도 교사가 어려움 없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학생의 수준에 맞게 쉬운 단어로 이야기를 풀어나 것이다.이 책을 읽으면서 교사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교수님과 함께 강의 중에 나누었던 진정한 교사에 대한 의미와 역할이 얼마나 중요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책을 통해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에 나온 교사들이야말로 참된 교사이며 훌륭한 교사이다. 이들은 교사가 곧 자신의 삶이며, 자신을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한다. 초등학교 교실 현장에서 이러한 생각을 가진 진정한 교사는 얼마나 될까? 초등학교를 6년 다니는 동안 한번이라도 그러한 선생님을 만났다면 그것은 행운이다. 그만큼 진정한 의미를 가지고 교사에 뜻을 두는 사람은 적고 현실적인 이유나 직업의 안정성 등으로 교사의 길을 택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내 초등학교 시절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두 분이시다. 한분은 교사에 별 뜻이 없어 보이시는 직업교사셨고, 또 다른 한분은 아직까지도 그 선생님을 떠올리면 행복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교사셨다. 전자의 선생님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만났었다. 수업시간은 오로지 교과지식의 전달 수준에 그쳤으며 그것은 일방적인 것이었고 학생의 이해수준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나마도 부족했다. 제대로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아이들이 공부를 하기 싫어하고 따분해 할 땐 자유를 주었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임이며 방치의 수준이었다. 모르는 문제를 선생님께 물어봤을 때도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선생님은 5학년 때 만나게 된 선생님이었다. 이 선생님께서는 우리 학생들 하나하나에 관심을 주셨고 일 년 동안 학급을 이끌어갈 규칙을 만들었고 이것을 지킬 수 있게 도와주셨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일기장 같은 것을 만들어 선생님과 소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업도 선생님의 일방적인 수업이 아닌 학생들과 함께 이끌어 나가는 재미있는 수업을 꾸려주셨다. 이 선생님과 함께 하는 일 년 동안 아이들은 규칙으로 만들어진 욕설 금지를 잘 지켰었고 그 일 년 동안 우리 반에는 욕을 하는 친구들이 아무도 없었다. 나온 교사들도 이러한 교사같다.작년 2학기 수업 중 김은주 교수님께 교직과 교사라는 강의를 들었었다. 이 수업에서는 교사가 하는 일이나 수업을 하며 아이들을 대하는 방법 등을 배웠었고 교수님의 강의를 책에 받아 적으며 시험은 책에 있는 이론을 외우는 것으로 보았다. 이 때 배운 이론들은 지금 내가 장성모 교수님의 수업을 이해하는 밑바탕이 되어주는 것 같다. 저번 학기엔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며 이론을 정립했다면 이번 장성모 교수님과의 수업에서는 대화로 이론보다 와닿는 무언가를 정립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그 당시에는 그 수업이 얼마나 나에게 도움이 되고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잘 서지 않았고 그냥 학점을 위해서만 수업을 듣고 시험을 봤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에서도 이렇게 의미를 느끼고 있다니 내가 직접 교사가 됐을 당시에는 이러한 수업, 그곳에서 내가 쌓았던 지식들이 얼마나 더 큰 의미를 가지며 빛을 발할지가 기대된다.이 책에 수업내용을 보면 아이들은 정말 순수하다. 자신의 생각이 확실하지 않아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우물쭈물하더라도 부족한 생각이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조금 더 나이가 많아진다면 주변의 눈치를 보고 자신의 확실하지 않은 생각은 자신의 마음속으로 숨기는 아이들이 많아질 것이다. 나도 그랬다. 초등학생 때에는 내 이야기를 말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고 모르고 부족한 것은 물어보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대학생이 될수록 나의 확실하지 않은 대답은 그냥 마음속으로 삼키는 일이 많아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렸을 때의 그 순수했던 마음과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모습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러한 아이들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았다.나는 작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우리 고향 집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수업을 하고 상담을 해주는 일을 했다. 이것은 나에게 아르바이트와 같은 존재였다. 시간당 돈을 주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이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나에게 진정 전날은 내가 교사를 하기 위해 태어난 것 마냥 마음이 들 떠 전날에 고등학교 시절 이후 앉아본 적 없던 내방의 책상에 앉아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줘야할지 골똘히 생각하며 몇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수업을 한 지 몇일만에 나는 ‘빨리 일이 끝나고 돈을 받았으면 좋겠다, 이 돈을 받으면 옷을 사야지, 화장품을 사야지’ 이런 생각만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수업준비는 점차 하지 않게 되었으며 그냥 가서 보이는대로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곤 했었다. 내가 아직 덜 성숙하고 진정한 마음가짐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부족한 선생님이었고 미안한 선생님이었다. 아이들 앞에서는 웃고 열심히 가르쳐 주는 척하면서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쉬자고 하고 아이들이랑 같이 앉아서 의미 없는 잡담이나 하려고 했다. 그러고도 나는 가끔씩 내가 이 일을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나에게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다. 수업 시간에 진정한 교사는 학교에서의 삶과 그 밖에서의 삶이 다르지 않다고 일체된 삶을 산다고 한것이 생각난다. 나는 아직 부족했고 그 당시는 교수님의 수업을 접하기 전이라 마음속에 그릇된 생각이 자리 잡고 있어도 아이들에게 티가 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으며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교사라고 생각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빵점 선생님이었다. 그런데도 작년 여름방학 때 만났던 한 초등학교의 아이들은 아직까지도 나에게 문자로 연락을 하며 안부를 묻는다. 수업시간에 아이들과 수업이 절반 잡담이 절반이라 그랬는지 아이들은 나를 많이 편안하게 생각했고 친구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나 자신의 관심사 등을 나와 나누며 즐거워했다. 이렇게 나를 좋아해주던 아이들인데 내 속마음은 아이들처럼 하얗지가 않고 뒤로는 새까만 마음을 가지고 있는 내가 너무나 미안하다. 이번 여름방학에도 또 그 학교로 아이들을 만나러 가게 될 것 같은데 이번엔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겠다. 물론 내가 마음먹는다고 마음이 생기는 어떤 모습이 진짜 나던 그 진짜의 내가 아이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비출 수 있도록 교수님과의 수업에서 배워나갈 것이다.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많은 생각을 나게 한 부분은 아버지를 업은 아이라는 챕터였다. 이 장에서는 효도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있다. 처음 아이들은 효에 대해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그냥 올바르고 좋은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님, 그리고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인 조상님의 존재를 이해하며,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할 수 있도록 해준 부모님에 대한 효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마무리는 우리나라는 어렸을 때부터 효도는 당연한 것이라고 배워왔고 효도 없는 삶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나라라고 마무리 짓고 있다. 요즘 뉴스에서는 엇나간 청소년기를 보내는 중고생들이 자신의 부모님을 폭행하는 일이 많이 나오고 있다. 만약 그 학생들도 어렸을 때 효에 대한 제대로 된 개념을 심을 수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 질 수 있었을까? 아직 가치관이 성립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이 좋은 선생님을 만나 이렇게 효에 대한 충분한 개념을 심었다면 그러한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또 한번 교사라는 존재의 의미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중고등학생으로 자라 사회에 나가는 어른이 되기 까지, 다 자랐다고 생각하며 어렸을 때 받았던 교육이 영향을 안미치고 있는 것 같지만 우리는 초등학교 때 교육받았던 내용을 아직까지 몸에서 기억하고 있다. 하나의 가르침이라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교사의 역할을 몇 년 뒷면 내가 하게 될 것이다. 이에 충분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교사를 단순한 돈벌이 수단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며 1년전 내가 초등학교에서 아르바이트 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던 그때와 마음가짐이 같아서는 절대 안된다. 앞으로 남은 교대 3년동안 여러 훌륭하신 교수님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나를 훈련시키고 깨어나게 하며 진정한 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해야한다. 모자다.
    독후감/창작| 2013.07.02| 5페이지| 1,000원| 조회(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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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관 리움 보고서
    리움에 다녀와서미술 과제를 통해서 삼성 리움 미술관에 다녀오게 되었다. 밖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돌같은 것들이 철사안에 묶여져있던 구조물이다.나중에 안 것인데 이런 것들은 리움이 주택가에 있기 때문에 높이 제한이 있어 지하에도 만들었기 때문에 지반을 파고 나온 돌덩이들을 버리지 않고 구조물에 사용했던 것이라고 한다.리움은 세명의 유명한 건축가들이 합동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첫 번째로는 고대 미술관을 구경했는데 이 곳은 마리오보타라는 건축가가 만든 곳이다. 마리오보타는 빨간벽돌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가장 먼저 본 작품은 고려시대의 것이다. 고려시대는 불교와 귀족문화가 흥행했던 시기로 작품에도 이시기상이 반영되었다. 예를 들어 고려청자에는 연꽃이 많이 사용되었다. 고려청자는 비색과 상감기법이 특징이다. 자기의 이름을 만드는 원리는 청자/백자구분+기법+자기에쓰인무늬+전체적모양 이다. 청자진사연화문형주자 이 자기는 청자이며 진사라는 기법을 사용했고 연꽃모양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이 자기는 손잡이에 개구리가 달려있는데 섬세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청자양각죽절문병은 색이 참 특이했다. 지금도 만들 수가 없는 색이라고 한다. 이 병은 둘레가 대나무 모양으로 둘러져 있다. 그리고 밑부분이 병의 입구보다 둥글고 크므로 안정감이 느껴진다. 대나무가 붙여진곳과 그 틈 사이는 색깔이 다른데 일부러 그랬다기 보다는 굽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부분과 아닌 부분에서 차이가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 가지고 싶을 정도로 색과 모양이 예뻤다. 청자상감문학모란국화군매병은 매병이라는 것에서 꽃병으로 추측을 했었으나 신한앞바다에서 배가 침몰했을 때 이 병과 비슷한 모양의 병이 발견 됐을 때 그 안에서 꿀과 술이 가득한 것을 보고 이 병의 용도는 꿀과 술을 담는 병이었다는 새로운 추측을 하게 되었다. 고려 중기 후기로 갈 수록 이것과 비슷한 형태의 병이 많이 만들어졌다.청자상감국모란문신축명벼루는 먹을 가는 곳에는 유약을 바르지 않았다. 먹을 갈려면 꺼끌꺼끌해야 하기 때문에 유약을베게로 생각되나 사람이 잘 때 사용하기 보다는 죽은 사람들을 눕히는데에 사용 되었다. 이 벼루와 두침은 보존상태가 매우 좋다. 설명해주는 분이 어떻게 이렇게 보존이 잘 됐을까요 라는 물음을 했을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덤에서 발굴했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나혼자만 미술에 대해 문외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분청사기철화어문장군은 일반 병들을 만드는 것처럼 만들다가 이것을 굽기 전에 가로로 뉘여서 꼭지를 단후에 만들었다.왜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지 않고 다 만든 후에 눕혀서 구웠는지 의문이었지만 급하게 다음 작품으로 설명이 넘어가는 바람에 물어볼 시기를 놓쳐 안타까웠다. 이 병에는 물고기 문양이 많은데 물고기는 알을 많이 낳는다는 것에서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를 가지며 눈을 뜨고 잔다는 것에서 학문을 열중하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작품은 볼 수 없었지만 덤벙기법이라는 것도 들었는데 이 이름이 붙여지는 이유는 덤벙 담궜다 빼서 자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약간은 지루하던 설명시간에 잠시 웃음이 났던 부분이다.조선의 기본이념은 성리학이였다.그래서 화려함보다는 간소함과 순박함이 작품에 드러났다. 백자가 청자보다 만들기 어렵다고 한다. 백자는 백토(고령토)로 만들어지는데 이것을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1300도가 넘는 온도에서 굽기 때문에 무너지기 쉽기 때문이다. 조선의 초기백자는 백자호이다.색이 설백색이다.그러나 이 색은 중기 후기로 갈 수록 점차 변화하였다. 청화백자운룡문호는 굉장히 화려하며 색은 노란빛을 띄는 백색(유백색)이다.조선후기의 대표색이다.이작품에는 청염료가 사용되는데 조선당시에 청 염료를 구하기가 어려웠다.이슬람에서 중국으로 또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이중수입을 해오는 것이어서 금보다 10배가 비싼가격이었다. 그러므로 왕실에서만 사용되었다. 일반 도공들은 청염료를 사용할 수 없었으며 공식 화원들에 의해서만 쓰였었다. 용은 왕실에서만 쓰일 수 있었다. 조선 중기에서 용의 발톱은 3개였고 이 그림에국가를 선포하면서 발톱을 5개를 그리게 된것이다.그림을 통해 시대상을 파악할 수 있다는 설명은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작품을 통해 볼 수 있게 되니 신기했다. 내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했던 것은 일명 달항아리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 것은 특이하게 위아래를 따로 구워서 붙인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겉으로 볼 땐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 매우 크기 때문에 한번에 구울 수 없어 이렇게 따로 구운것이다. 표면에는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는데 이것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무늬가 아니라 간장이나 동백기름이 섞여들어간 것이라고한다. 현재의 기술로 이 무늬를 없앨 수 있지만 달항아리라는 이름답게 달표면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대로 두고 있다.국립중앙박물관에도 이와 비슷한 크기의 것이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국립중앙박물관에도 들려 달항아리와 비슷한 것을 보고 싶다.2층에서는 그림이 전시되고 있다. 그림은 종이 위에 그려져 온도,습도에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6개월마다 그림이 교체가 된다고 한다. 조선회화가 전시되고 있었는데 이시대의 그림은 크고 화려한 특징을 가진 중국의 영향을 받긴했지만 담백하고 정갈하며 여백의미를 느낄 수 있는 조선의 특징을 볼 수 있다.가장 먼저 본 그림은 정선의 금강전도이다.이그림은 산이 솟는 느낌을 가지고 있어서 역동적이며 정선이 아끼던 그림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그림을 설명을 들을 때 어떤 사람이 낙관은 언제 찍는 것인지 물어봤었다. 이 질문을 통해 화원들은 그림에 낙관을 찍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왕의 소속이므로 자신의 이름의 낙관을 찍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자신의 그린 그림에 낙관도 찍을 수 없다는 것이 약간은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귀거래도라는 작품은 ‘귀거래사’라는 시를 읽고 그려진 그림이다. 매우 간결하며 여백의 미가 넘친다. 이것은 스승 김정희의 ‘먹을 금쪽같이쓰라’라는 가르침을 받은 영향이다. 왜 이런 가르침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부분에서 약간의 웃음이 났다. 먹을 아껴쓰라는 가르침을 받아 작품에서글씨의 배경으로 그려진 그림은 누가 그려진지 밝혀지지 않았으며 글의 내용은 글씨 쓰는 법도에 대해 쓰여졌다.‘노력도 필요하나 역사도 알아야한다’라는 내용도 포함되어있다고 한다.1층에서는 그림이 2점있는데 고려불화 들로 전세계적으로도 많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보존에 매우 힘쓰고있다. 그래서 사람이 많이 오지 않는 평일엔 그림에 센서도 꺼놓는다고 한다. 이 설명을 듣던 중 140여점중 일본에 90여점이 있다는 것을 들었는데 그 설명을 듣던 모든 사람들이 헉 하며 놀랐다.분명 나처럼 일제강점기에 강탈됐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인것 같다.우리의 놀람을 듣고 설명해주던 분이 바로 90여점 대부분이 정식적 절차를 통해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 것이란 설명을 해주셨다. 전시되있던 이 그림은 앞에서 색칠한것이 아닌 뒤에서 칠해서 앞으로 색이 우러나오게 한것이었다. 순금을 갈아 사용하므로써 그림의 가치가 더욱 올라갔다.현대미술관은 프랑스 건축가 장루벨이 건축하였는데 이 사람은 사각형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사각형 모양이 많이 눈에 들어왔다. 미술관 벽은 스테인리스를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스테인리스는 쉽게 녹슬지 않으며 반짝인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장루벨은 일부러 스테인리스를 부식시켜 검정으로 변색시킨 후 이것으로 미술관의 벽을 장식했다.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본 작품은 김환기의 작품이다. 우리나라의 추상화를 연사람이라고 한다. 뉴욕에서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한국적인 점으로 표현했으며 파란색은 신한앞바다의 푸른색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인성의 경주의 산곡에서라는 작품은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이란 생각보단 서양화가의 작품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고갱의 느낌이 많이 난다. 이 화가는 일본에서 유학하였으며 일본 미술대회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 일본 구미에 맞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냐는 질타를 받았지만 그림안에는 분명히 우리의 것이 존재한다. 우리의 땅이 적토인데 이것을 그리면서 표현방식을 서양의 화풍으로 하면서 적절한 조화를 이 이 작품을 보았을 때 질감 때문에 돌가루를 뿌린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김아타라는 사진작가의 사진작품은 뉴욕의 타임스퀘어가 배경이다. 이곳은 새벽에도 사람이 붐빌 정도로 번화가인데 이 작품에서는 한명의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인위적 사진 조작이아닌 여덟시간동안 노출시켜 연속촬영함으로써 움직이는 것들은 남지않고 고정된것만 사진에 남는 것을 이용한 것이라고 한다. 유한하고 덧없이 흘러가는 인생을 표현한것이라고한다. 이 설명을 듣고나니 지금까지 산 내 인생에 대한 생각이 문득 났다.시간은 이렇게 지나가고 대학생활도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는데 나는 아무것도 한게 없는것 같고 공부마저 열심히 하지 않고 내 생활이 알차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뭔가 지나가는 이 시간을 좀 더 알차고 의미있게 써야겠다는 생각을 준 작품이다. 추상화를 둘러봤을땐 이것은 어떻게 유명한 작품이 됐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흔히들 하는 생각처럼 나도 저정도는 만들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런 발상에 의의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이브클렘의 대격전이라는 그림은 큰 컨버스 위에 물감으로 마구 비벼놓은 것 같아 보인다. 이브클렘이 시민들을 앞에 두고 오케스트라를 불러 음악을 만들며 나체의 모델이 파란 물감을 뒤집어쓰고 종이에서 구르게하고 끌면서 그려지게 한 그림이어서 그렇다고 한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거대한 여인이라는 작품은 앙상한 여자의 뼈만이 보인다. 이것은 본질을 중시한 자코메티의 작품관이 드러난 작품이라고 한다. 별거아닌 것으로 보이는 이 작품의 가격을 들었을 때 매우 놀라웠다.가격이정확히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몇백억이었나 몇천이억이었나 내 상상을 완전히 빗겨가는 가격이었다. 돌과 철판이 마주하고 있던 작품이 있었다. 처음 큰 돌을 봤을 때 이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궁금했다.이 작품의 의미는 무생명들과 그사이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대화 ,무생물과 생물의 대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마지막으로 봤던 작품은 선반위에 알약이 수백개 놓여있던 같다.
    독후감/창작| 2013.07.02| 4페이지| 1,000원| 조회(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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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두봉 과 관련하여
    NO.1020×10겨레말의 발판을 닦은 김두봉우리말과 표현 강의를 들으며 나는 한국어와 한글에 대해 갖고 있단 기존의 틀이 깨짐을 느꼈다.그 외에도 여러 가지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그러던 중에 이 과제로 나는 그 흥밋거리와 현실을 이어 역사를 배워가게 되었다.내가 알게 된 역사와 현실의 주역은 바로 김두봉이다.김두봉이라는 인물을 선택한 이유는,,60여년간의 세월을 견딘 의사소통의 비단절때문이었다.북한과 우리나라가 오랜 기간을 떨어져서 지내왔는데 어떻게 의사소통이 여전히 가능한 것일까?이에 대해 온라인으로 검색을 해 본 결과,남과 북의 언어정책이 공통적으로 시행되었기 때문이라는 답을 얻었다.그리고 그 것을 가능하게 한 인물 중 한명인 김두봉을 알게되었다.영화 JSA나 쉬리 등을 봤을 때, 우리가 더욱 공감하고 마음이 아픈 것은 같은 말을 쓰는 같은 민족이 서로를 적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는 특수한 현실 때문이었다.극중에서 두 나라의 차이는 기껏해야 사투리정도일 뿐,그 이념이나 사상체계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같은 말을 사용한다는 자체가 서로의 동질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이럴 정도로 남북 언어의 이질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이런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이다.단지 같은 한글이라는 글자를 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러한 것이 가능한 것일까?로마자를 사용하고 비슷한 언어체계를 사용하는 독일,프랑스, 스위스 등에서도 그 국가공용어가 서로 상이하지 않던가?내가 읽은 책에선 남북의 언어정책을 이끈 최현배와 김두봉이 주시경 선생 아래 동문이었다는 점,그리하여 한글에 대한 여러 생각이 동일하다는 점 등을 언어분단을 막을 수 있었던 이유로 꼽았다.만약 김두봉과 최현배가 언어정책을 확립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도 할 수가 없다.어쩌면 우리는 언어를 표기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한글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을지도 모른다.가깝고 교류를 자주하는 나라의 글자를 사용하고 그러기위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인구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그 둘의 언어정책의 유사성이 높았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북한과 한민족이라는 동질감을 더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3년간의 마음 아픈 전쟁,그 전쟁에는 동정과 연민이 작용할 수는 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원래는 한 나라였기 때문에 통일하자.”는 당위성이 있진 않다.그런데도 전국민의 과반수는 통일을 원하고있다.이것이 바로 언어가 가져온 동질성이다.그리고 그 동질성은 김두봉과 최현배라는 두 거장의 성공적인 문자정책에서 온 것이다.지금 당장 통일이 이루어지기엔 통일비용을 비롯한 현실문제가 너무도 크다. 그렇지만 이는 차차 해결해나가며 이루어질 수 있는 문제이다.그러기위해서는 그 자그마한 동질성이라도 놓치지 않아야 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것이 바로 언어이다.나는 남과 북이 통일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통일의 방법이 결코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흡수되듯이 되거나 그 휘하에 들어가듯이,혹은 무력등에 의한 방법으로 갑작스럽게 되질 원하지 않는다.그 통일의 방법은 평화적이고 상호의 협의하에 충분한 대화를 통하여 서서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러려면 한 쪽이 더 우월하다는 의식을 가져서는 안 된다.쌍방의 문화를 이해해야하며 용어 등에서의 차이를 인정해줄 수 있어야한다.
    독후감/창작| 2013.07.02| 10페이지| 1,000원| 조회(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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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 angry men 을 보고
    법과 생활 - 12 angry men 을 보고오늘 수업시간에 영화 한편을 보았다. 그날은 처음으로 수업자료를 프린트해서 미리 읽어보기도 하고 야심찬 마음으로 수업들을 준비를 하며 강의실로 향했는데 그 날은 영화를 보여준다고 하셔서 기쁜 한편으로 내심 아쉬웠다. 마음의 준비가 다 됐는데 김이 샌 느낌이었다. 교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영화의 제목은 12 angry men이다. 이 영화가 재생됐을 때 색감이나 등장인물의 보여지는 모습이 너무나 오래된 것 같아 보였다. 나는 원래 영화를 잘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최신영화에도 흥미가 잘 가지 않는데 빛바랜 색감의 영화라니 영 나의 흥미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예상외로 매우 흥미있었다. 법에 대해 전혀 배워본적도 없는 나의 몰입을 이끌어냈다.이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한 소년의 아버지 살인사건에 대해 유죄인가 무죄인가를 12명의 배심원들이 판결한다. 이곳에서 유죄판결이 난다면 소년은 사형에 처한다. 그리고 이 판결은 만장일치가 이루어져야만 끝이 나게 된다. 11명의 배심원은 유죄를 선고했지만 한 배심원은 증거와 증인등의 불충분을 이유로 작은 의심이라도 남는다면 이것은 섣불리 유죄를 말할 수 없다고 무죄를 선택한다. 그리고 이를 설득하여 유죄에서 무죄로 배심원들의 마음을 돌린다.이 영화를 보면서 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지금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을지 모르는 흉악범죄, 그리고 그에 대한 처벌. 어느 정도로 행해져야 할까? 요즘 인터넷을 떠들썩 하게 만들고 있는 수원에서 일어난 조선족의 잔인한 살인사건, 그리고 여자친구를 살해한 뒤 사고사로 위장시켜 보험금을 타낸 남자친구의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을 두고 네티즌들은 범인을 사형시켜야지 뭐하러 감옥에서 아까운 세금을 들여가며 살려두고 있냐고 얘기한다. 이러한 정확한 범인이 존재할 때 사형이란 처벌이 가해진다하면 인권위원회에서 사형은 인권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범죄자의 인권에 대한 문제를 제외한다면 우리는 사형이란 제도에 대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만하다. 그렇지만 우리 법에서 저러한 흉악한 범죄를 저질러도 사형으로 그 사람의 목숨값을 받아내지는 않는다. 사형이란 제도가 시행된다면, 경찰의 잘못된 수사결과로 무고한 사람이 희생될 수가 있다.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이란 억울한 형벌을 받을 수 있을 지 모르는 일이다. 오래전에 읽은 기사 중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것 중에 몇십년동안 감옥에서 강력범죄로 복역을 하던 중 실제 범인이 나타나 죄에서 풀려나게 된 사람이 있다. 이러한 사람은 물론 몇십년동안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한것도 억울하겠지만 사형에 처해졌다면 그 억울함은 어디서 해소해야할 것인가? 그리고 이것이 악용되는 사례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자신을 대신할 가짜 범죄자를 만들 수도 있는 노릇이다.법에 대해 많이 들어본 말 중에 ‘10명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한명의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법에 의해 무고한 희생자가 생기게 해서는 안된다. 법을 행하고 다루는 사람은 신중해야 한다. 이 세상 하늘 아래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러한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 법을 다루는 사람은 범죄자로 의심이 될 지라도 마지막까지 범죄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진정한 증거를 찾아내야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그 범죄자를 심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이 영화를 보고 나서 법이란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또 내가 이 교양 수업을 통해 무엇을 얻어갈 것인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처음 이 교양 과목을 선택한 것은 수강신청을 늦게 해서 시간대에 맞는 자리가 이 교양과목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고등학교때 이과였기 때문에 법에 대해 배운것은 중학교때의 공통사회였을때가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난 법에 대해 전혀 몰랐고 처음 듣는단어들에 머리가 복잡하여 시험때가 되면 벼락치기로 암기를 해버리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교양수업을 한주 한주 나가면서도 그냥 내가 수업시간에 강의실에 있다는 확인만 할 뿐 나는 그 자리에 허수아비 같은 존재로 앉아 자리만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나서 마음이 달라졌다. 글을 쓰기 위해 내가 바뀐 것이 아니라 진짜로 마음이 달라졌다. 법이 그렇게 딱딱하고 우리 생활과 멀리 떨어져있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법을 몰라도 살아갈 순 있지만 법을 알고 있으면 더 도움이 될 수 있을거란 생각을 했다. 무엇이든 모르는것 보단 하나라도 더 아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이 수업에서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것을 내 지식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내 계획은 분명 뜻대로 모든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수업시간에 출석체크만 하자는 마음가짐이 아닌 무엇이든 하나라도 받아들이자는 마음가짐이 있기 때문에 수업을 받아들일수 있는 양도 커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그릇을 법이란 지식으로 가득 채워나갈 것이다.
    독후감/창작| 2013.07.02| 2페이지| 1,000원| 조회(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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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과 한국의 미술교육과정 분석
    미국과 한국의 미술교육과정 분석 감상같은 미술교과이지만 나라에 따라서 가르치는 방식이나 미술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를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수업시간에 미국과 우리나라의 미술교육에 대한 차이를 알아보았다. 미국에서는 미술이라는 교과목이 the arts가 아닌 the arts and humanities 이다. 미술이 우리가 생각하는 한정적인 부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닌 인간적인 부분과 많이 결합되어 있었고 우리의 삶 전반에 걸치는 미술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미술교육은 시각적인 예술을 주로 하는 미국에 비하면 좁은 의미의 미술이다 내가 초등학교부터 지금까지 계속 미술을 접하고 있는데 지금도 미술 교육하면 떠오르는 것이 늘 그림 그리는 것, 그린 그림을 색칠하는 것 밖에 떠오르지 않는 것, 그리고 미술이 교과 밖에서 직접 피부로 와닿는다고 느낀적이 얼마 없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미술교육은 삶 전반에 걸친 미술을 가르치지는 못한 것 같고 미술의 폭넓은 영역을 가르치지도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는 교과서 지도서에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어떤 평가기준에 맞추어 평가를 해야 하는지가 다 나와있다. 반면 미국은 교사의 자율에 맡긴다. 이 부분은 우리나라의 미술교육이 미국의 미술교과명처럼 인간과 관련된 것이라던지 우리의 삶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것이 아닌 교과위주의 미술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학교에 다닐 때 어떠한 물체를 똑같이 그려내는 것을 잘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해왔다. 물건을 보고 그것의 특징을 따라서 그리는 표현기법이 중요했고 선생님들도 그런 그림을 칭찬해주셨다. 그리려고 하는 것과 그림이 다르다면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미술교육은 아이들에게 미술에 대한 어려움만을 심어 줄 것이다. 미술은 물체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중심이 아니라 전반적인 삶에서 미술과 함께하는 미술 그 자체의 모습이어야 한다.우리나라 미술 교과서와 미국의 미술 교과서는 준비물의 부분에서도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는 학생이 준비해 와야 할 준비물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그 중에서 사용하지 않는 부분도 많다. 하지만 미국의 교과서의 경우 교사가 대부분의 준비물을 준비하고 학생은 최소한의 준비물만 가져오면 된다. 초등학생인 아이들의 경우 준비물을 많이 챙겨오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학교에서 준비를 대부분하고 최소한으로 아이들에게 준비물을 요구하면 준비물 때문에 수업에 지장이 가는 일이 없을 것이다. 또 아이들이 준비물을 준비할 때 준비물의 생소한 이름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수채용구라는 준비물이 있을 때 아이들은 수채용구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 아이들에게 수업을 위해 필요한 준비물의 양을 줄여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준비물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수채용구는 붓, 팔레트, 물감, 스펀지, 도화지 등으로 명확히 표시해주어야 할 것이다.그리고 또 하나 두 미술 교과서의 차이점을 찾자면 미술 교과서 지도서의 차이이다. 우리나라의 미술 교과 지도서는 미국의 미술 교과 지도서에 비해 구체적인 예시가 부족하다. 예시가 정말 예를 들어주는 예시가 아니라 큰 틀만을 제시하고 있어 교사가 그것을 봐도 예시라고 느낄 수가 없는 부분들이 많다. 예를 들어 여러 가지 표현에 대한 주제에 대해 배운다면 지도서에는 '여러 가지 표현이 나와 있는 그림들을 살펴본다' 라고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교사의 자율성을 존중하며 교사 나름의 생각으로 여러 가지 표현이 나와 있는 그림을 골라서 수업을 이끌어 갈 수 있음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초등 교사들은 미술교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자율로 꾸려나가는 것은 좋은 수업을 만들지 못할 수도 있다. 교사의 자율성을 존중하더라도 지도서에는 구체적인 예시가 있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미국의 교과 지도서의 경우 예시작품으로 무엇이 있는지, 예시로 볼만한 축제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어서 전문적인 미술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지도서를 토대로 미술 수업을 할 수가 있다.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미술 교과서와 미국의 미술 교과서의 차이점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는데 여러 내용면에서는 차이가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와 미국이 미술을 통해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같았다. 미술 교과목은 미술을 통해 전인적인 인간을 육성하는 데에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는 체험, 표현, 감상으로 큰 틀이 나뉘어 지고 미국은 무용 ? 음악 ? 영화 ? 시각예술의 생산과 행위의 전시, 역사적 문화적 맥락, 비판적 반응, 심미적 반응으로 나뉘는데 각각의 이름도 다르고 영역의 개수도 다르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이름과 개수는 달라도 내용으로는 서로 대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체능| 2013.07.02| 2페이지| 1,000원| 조회(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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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소의 도덕 교육이론과 나와 초월적 존재와의 관계
    루소의 도덕 교육 이론에서 ‘나와 초월적 존재와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되며,그 설명이 가지는 의의와 한계는 무엇인가?루소의 사상 기반은 자연주의이다. 루소는 자연을 문화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보고 , 문화에 오염되지 않은 , 본질적, 본래의 것을 중요한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루소의 말 중 루소의 자연주의 사상을 한 문장으로 집약한다면 ‘만물은 창조주의 손에서 나올 때에는 선하다. 만물은 인간의 손 아래서 타락한다.’ 라는 루소의 말을 인용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찾아본 것은 보이지 않는 인간의 세상 외의 어떤 것의 세계가 루소의 사상 아래 깔려 있는 것은 아닌가였다. 인간의 손 아래에서 타락한다면 창조주란 인간이 아닌 것이며, 자연을 지배하는 신적인 존재가 있음을 말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루소의 교육사상을 통해서 내가 생각한 점이 옳은 이야기인가 판단해보기로 했다. 루소의 교육사상은 ‘에밀’이란 저서에서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다.‘에밀’이란 루소의 저서는 루소의 인간에 대한 교육론에 대해 쓰여진 책으로 루소는 에밀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자신의 교육관을 서술한 것이다. 루소의 교육이란 것은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문화에 의해 타락되기 이전의 상태인 본래적 모습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것이며, 자연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이라고 하는 것은 원래 그대로를 의미하기 때문에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학교에서 취하고 있는 교육의 입장인 주입식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아동 스스로가 깨닫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고 선생님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자연이 아동에게 깨달음을 주기 전까지 자연의 보조적인 역할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루소는 아동을 작은 어른으로써, 어른으로 가는 단계의 과정에 놓여있는 과도기적 인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동 자체를 고유한 인격으로, 완전한 존재로 보았다. 그래서 아동의 각 시기마다 행해지는 교육모두를 의미 있는 것이라고 보았고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으로써의 교육이 아닌 그 자체를 목적으로 보았다. 루소의 교육관은 철저하게 자연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이것이 루소의 사상의 핵심이다.루소의 교육사상에 초월적 존재에 대한 개념이 존재하는 것인가? 자연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 자연 상태로 돌아가는 것 이것은 초월적 존재에 대한 힘에 이끌리는 것인가? 루소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잠재적 배경을 두고 그의 사상을 발전시켜나갔을까? 내 생각은 ‘아니다’로 결론지어졌다. ‘만물은 창조주의 손에서 나올 때에는 선하다. 만물은 인간의 손 아래서 타락한다.’ 이 말만을 가지고 루소가 초월적 존재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고 하기에는 논리의 타당성이 떨어진다. 이는 단순히 자연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말이라고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것 외에 다른 부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다른 부분에서 루소의 사상은 초월적 존재를 부정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이론의 핵심과 초월적 존재와의 관계를 살펴보자. 루소의 자연주의에 기반에 둔 교육사상은 자연을 관찰하고 자연이 제시하는 길을 따르는 것이며, 이는 남의 도움을 받아서 수동적으로 아동이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라 아동 스스로가 자연을 관찰하고 탐구하며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배움이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아동 스스로의 힘이지 초월적 존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루소는 교육을 아동이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가는 것으로 보았으므로 아동의 내면,본질,근원을 강조하는 것이며 초월적 존재에 대해 묵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초월적 존재보다는 아동 스스로 잠재되어 있는 힘이 기반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루소가 초월적 존재에 대해 묵살했다고 생각한 또 다른 이유는 초월적 존재의 등장의 이유와 관련이 있다. 나는 초월적 존재라는 것에 대해 생각할 때, 그 초월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 영역과 비슷한 느낌의 초월 ,그리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현실 세상에서 무언가를 뛰어넘게 하는 어떠한 초월로 나누어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적 세상이던 그러한 초월적 존재라는 것이 존재할 때는 어떠한 상황의 어려움이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 나가기 벅찰 때에 나타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루소는 자연으로 부터의 스스로 깨닫는 교육을 가치있게 보았기 때문에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힘든 상황을 가정하고 초월적 존재에 대해 생각했을 리 없다. 그러므로 나는 루소의 자연주의 사상은 초월적 존재와는 동떨어진 인간 스스로의 내적인 면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하지만 현실적 세계에서의 초월적 존재를 생각해 볼 때 루소가 이것을 묵살한 것은 한계점이 느껴진다. 루소의 자연주의 사상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때 우선, 초월적 존재라는 것은 원래 인간 본연이 스스로 찾아낼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뛰어넘게 된 존재를 말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루소의 사상이 아닌 현대적 개념으로 교사에 대해 살펴보면 학생 혼자 생각하면 이르지 못했을 더 훌륭하고 멋진 정신세계로 인도하는, 교육의 주요한 인물이다. 교사라는 존재를 학생의 초월을 도와주는 초월적 존재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루소는 교사라는 입장에 대해 소극적 입장을 취하며 학생 스스로 자연을 통해 깨닫는 것을 강조했지만, 아동이 많은 부분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은 어려운 점이 있다. 아동은 아직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는 능력이 미흡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루소는 아동은 어렸을 때는 아직 이성이 발달되지 않았으며 꽤 나이가 들어야 이성이 발달하게 되므로 그 전까지는 교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 부분에서 루소도 아동의 미흡함을 인지했음을 알 수 있다. 교사를 충분히 잘 활용하면 자신이 직접 깨닫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훌륭한 스승 밑에서 훌륭한 제자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루소는 그러한 교사의 존재를 무시하고 주입식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을 무시함으로써 학생이 얻을 수 있는 교육적 이익을 반감시키고 있다. 그러나 루소의 초월적 존재에 대한 묵살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특성을 가지는데, 이러한 점이 한계가 될 수도 있지만 의의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작고 네모난 교실에서 빽빽히 책걸상이 들어가 있고 그곳에 기계처럼 학생을 가두고 학생이 생각하는 것보단 교사의 주입이 더욱 넘치는 현대의 많은 학교들에게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사상은 경각심을 일깨워 줄 수 있는 것이다. 루소의 사상과 달리 자신의 힘보다는 교사의 힘에 의해 교육이 이끌어지는 지금의 상황에서 루소의 초월적 존재에 대한 묵살은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지나친 주입식 교육의 폐단을 깨닫고 교사의 개입을 조절하며 학생 스스로 생각하는 힘과 관찰하는 힘을 길러야 할 시기이다.
    사회과학| 2013.07.02| 2페이지| 1,000원| 조회(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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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물 실험 컨텐츠 개발
    생물 실험 2가지 개발하기1. 적용학년: 4학년2. 준비물: 당근(감자,고구마 등 싹이 날 수 있는 식물), 물, 흙, 화분으로 쓰일 플라스틱 통, 칼, 햇빛막이(박스로 만든 뚜껑)3. 지도방법: 4학년 1 학기 식물의 한 살이 단원에서는 식물이 자라는 데 있어서 필요한 조건 햇빛, 물 등에 배운다. 식물이 살아가는데 햇빛이 필요하기 때문에 식물은 햇빛이 있는 방향으로 자라게 된다. 아이들이 이러한 것을 쉽게 이해하게 하기 위하여 직접 식물이 햇빛을 향해 자라나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한다. 플라스틱 통에 흙과 당근을 담고 그 위에 햇빛막이를 씌운다. 그리고 햇빛막이의 한쪽에 구멍을 뚫는다. 식물은 왼쪽 끝에 위치하고 햇빛막이의 구멍은 오른쪽에 위치하도록 한다. 식물이 정말 햇빛을 따라서 햇빛막이 구멍을 향해 자라나는지 관찰한다. 물을 줄때는 뚜껑을 열고 주고 다시 덮어두도록 한다.4. 실험결과: 실험결과 당근의 싹은 구멍으로 빠져나올 것이다. 식물이 자라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인 햇빛을 받기 위해 식물은 햇빛 쪽으로 자라나게 된다. 식물을 기를 때는 식물에게 필요한 요소인 햇빛을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주의하자.5. 장/단점: 이 실험은 어려운 점이 없으며 준비물도 간단하다. 하지만 결과를 보는 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려 아이들이 실험의 중간에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아이들이 당근의 싹이 햇빛을 향해 자라나게 하기 위해 꾸준한 관심으로 물을 주며 관찰하도록 해야 한다.6. 위험성: 햇빛막이에 구멍을 낼 때 칼을 사용하지만 4학년 정도면 칼을 이용하여 작은 구멍을 만드는데 큰 위험은 없을 것 같다. 만약 칼 사용에 미숙한 아동이 있다면 교사가 직접 햇빛막이에 구멍을 내주도록 한다.1. 적용학년: 6학년2. 준비물: 수조, 긴 관, 물3. 지도방법: 6학년 1학기에 호흡기관이 하는 일에 대해 배운다. 이 때 호흡기관으로 코, 기관, 기관지, 허파에 대해서 배우고있다. 이 때 우리는 실험 모형등으로 폐가 어떻게 움직이는 지 , 숨을 들이마실 때 어떻게 폐의 모양이 변화하고 있는지도 배우게 된다. 이 실험은 모형이 아닌 자신의 폐로 폐활량을 측정해본다. 큰 수조에 물을 많이 채우고 긴관을 넣는다. 그리고 긴 관을 음료수마시는 것 처럼 빨아당긴다. 관에 눈금을 표시하여 친구와 누가누가 폐활량이 더 큰지 비교해 볼 수 있다.
    자연과학| 2013.07.02| 2페이지| 1,000원| 조회(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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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22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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