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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리적모방
    글쓰기 기초 과제(4주차 원리적 모방)52120000 역사학과학생들의 주변에서 벌어진 일을의 원리적 모방을 이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서술하시오늦은 저녁 집에 가는 길에 불 꺼진 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해가 저물어서 깜깜해진 탓인지 상가며, 아파트며 크고 작은 건물들이 모두 전등 빛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다. 간판과 전등이 건물마다 색색 깔로 반짝인다. 이렇게 환하게 밝혀진 건물들 사이에서 불이 들어오지 않은 주택 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집에 아무도 없는 것인지 주변에서 환한 빛을 내뿜고 있는 건물사이에서 홀로 불이 꺼져있다. 주변 건물들이 모두 환하게 전등 빛을 내뿜고 있지만, 오히려 주변이 너무 밝게 빛나고 있어서 인지 불이 꺼져 있는 주택 집이 더 눈에 띈다. 환한 빛을 내뿜는 다른 건물들과는 다르게 불 꺼진 집을 감싸고 있는 어둠이 주변의 빛들을 흡수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오히려 불 꺼진 집이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계속 바라보고 있다 보니 너무 환하게 빛나서 구체적으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 다른 건물들 보다 집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눈에 들어온다.요즘 사람들은 늦은 저녁에 불이 환하게 들어온 건물들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직업을 갖고 싶어 한다.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10년 전 어린이들의 장래희망 1위는 과학자이고, 요즘 어린이들의 장래희망 1위는 연예인이라는 내용의 광고처럼 말이다. 연예인처럼 꼭 반짝반짝 빛나는 스타는 아니더라도 반짝반짝 빛나는 환한 길을 걷고 싶어 한다. 불빛이 환하게 들어와서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확실한 길, 그리고 그 길에 도착하면 확실한 미래가 보장되는 그런 길을 걷고 싶어 한다. 마찬가지로 불이 들어오지 않아 깜깜해서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길은 가고 싶지 않아한다. 하지만 과연 환하게 불이 들어온 길을 가는 것이 생각처럼 확실한 끝을 보여줄까? 오히려 환한 빛이 모이고 모이면 눈이 부셔서 바로 앞을 쳐다 볼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이다. 우리의 진로 선택에서처럼 말이다. 요즘 대학생들은 졸업하기 직전에 원래 생각했던 꿈을 접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방향으로 많이 돌린다고 한다. 물론 공무원이 된다면 환한 빛이 들어오는 건물들처럼 밝게 빛나는 확실한 도착지점과 밝은 길이 펼쳐지겠지만 거기 까지 가는 데에는 그 길을 택한 많은 빛들이 모여 너무 눈부셔서 앞으로 발을 내딛기가 더 힘들 것이다. 물론 불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길을 가는 것이 더 쉽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은 처음에는 더 어려울 것이다. 한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겁이 나고, 그 끝이 어디인지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둠속에 오래 있다 보면 천천히 사물이 보이고 어둠에 적응 되는 것처럼 내가 처음 선택하고 하고 싶었던 꿈을 위해 내딛는 발걸음에 적응이 될 것이다. 그리고 노력 끝에 결국 그 어두운 길의 도착지점에 서게 된다면 그 누구보다 주목받게 될 것이다. 마치 환한 건물들 사이에 홀로 불이 꺼져 눈에 띄는 집처럼! 아니다! 불 꺼진 집이 아니라 어둠속에서 반짝이는 단하나의 빛이 될 것이다.
    독후감/창작| 2014.03.25| 2페이지| 2,000원| 조회(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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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려한 휴가 감상문
    화려한 휴가52120000화려한 휴가는 1980년 5월 광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영화 속에서 광주의 5월은 일상적인 평화로운 분위기로 시작된다. 사람들이 각자의 일을 하며 이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논에서 일을 하는 농부의 머리 위 파란 하늘에 군용 전투기가 지나간다. 그리고 광주의 대학생들은 학생운동을 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그 전투기 안에서 이야기 하는 공수부대대원들의 대화 내용이었다. 그들은 북쪽으로 가서 빨갱이를 처단하는 임무라고 생각하고 전투기에 올라탔는데, 해가 뜨는 방향을 보며 자신들이 남쪽으로 가고 있음을 알게 되는 장면이다. 공수부대대원들도 왜 광주시민들을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시민들을 폭행하고 총을 쏴서 죽이는 장면이 안타까웠다.그리고 이 영화를 보면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5월 광주 시민군들을 어떻게 볼 것인지, 5월 광주를 어떻게 볼 것인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지역감정으로 일어난 사건은 아닌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먼저 5월 광주 시민군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그들이 처음부터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로 나온 것은 아니더라도 내 가족과 내 이웃의 죽음을 보면서 처음에는 가족의 죽음에 울분을 터뜨리며 거리로 뛰어나온 마음이 대한민국이 독재로부터 벗어나서 민주주의가 확립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확장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리고 5월 광주를 어떻게 볼 것인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지역감정으로 일어난 사건은 아닌지에 대한 것은 두 문제를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5월 광주는 전두환 대통령이 독재정권을 정당화하기위한 수단으로 희생된 지역이라고 생각한다. 그것과 같은 맥락으로 5.19 민주화 운동은 그 당시 유력한 정치가였던 김대중을 견제하고 전라도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 지역감정을 일으키기 위해 이용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역감정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지배층의 수단으로 선택되고 지역감정을 일으키기 위해 포장 되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후감/창작| 2014.03.25| 1페이지| 1,500원| 조회(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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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종교관
    한국 종교이야기나의 종교관에 대하여..나는 종교가 없다. 내가 종교가 왜 없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깊게 생각해 본적이 없다. 그것은 아직 내가 종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는 흔히 인생이 고되고, 힘겨울 때 종교에 의지한다는 사람들의 말처럼 아직 내가 내 인생에서 종교에 의지할 만큼 힘든 시기가 오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또한 나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두근두근 내 인생’이라는 책의 주인공처럼 신처럼 완전한 존재가 어떻게 불완전한 인간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 책에서 주인공은 조로증이라는 병에 걸려서 아픈 상태인데, 하느님을 원망해 본 적은 없냐는 질문에 완전한 존재인 신이 어떻게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기도를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이 부분에 아주 공감했다. 또 무엇보다도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적극적으로 종교를 권하지 않은 것도 내가 지금 종교가 없는 이유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하지만 우리나라에 사람들이 갖는 흔한 종교들에 대해 전혀 접해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우리 부모님의 종교인 불교는 가끔씩 가는 절을 통해서 접해 보았다.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간 절은 종교적인 느낌보다는 여행지의 느낌이 더 들었다. 산 속에 위치한 절은 고요한 여행지의 느낌이었고, 석가탄신일 같은 절에서 특별한 날의 절은 축제가 열리는 여행지의 느낌이었다. 또한 불교 신자인 엄마가 보는 불교TV나 책들을 통해서도 접해 보았다. TV속에서 접한 불교는 주로 스님들이 나와서 들려주는 불교이야기나, 불교 경전을 풀이 하는 방송이었다. 주로 엄마가 틀어놓아서 잠깐씩 지나가듯이 들은 것이 다였지만 불교 방송의 내용은 주로 마음공부에 대한 내용이었다.주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교회도 종교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던 초등학생 시절에 접해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것은 동네 친구들 때문이었는데, 초등학생시절 주말마다 교회에 가서 만날 수가 없었던 친구들 때문에 나도 친구들을 따라 교회에 한번 가본 적이 있었다. 물론 모태신앙에서 비롯되어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몇 몇 아이들은 친구를 만나는 놀이방의 느낌으로 교회를 찾았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교회의 풍경은 목사님의 말을 경청하고, 함께 노래 부르고, 기도하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해 보이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활기차고 북적북적한 학교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TV속에서나 보던 십자가에 박힌 예수님의 모습은 어린 나에게 무섭게 다가왔다. 나는 현재 기독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주일에 교회 일정이 어떻게 진행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목사님의 말씀이 끝나고 초등부 친구들과 모여 또 기도를 하는 시간 같은 것이 있었는데, 내가 처음 그 교회를 방문했기 때문에 초등부를 담당하는 선생님이 내 손을 잡고 감사의 기도 같은 것을 해주셨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갔던 기억 속에서 가장 이상하고 무섭게 느껴졌던 경험이었다. 내 손을 잡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로 시작하는 기도를 하는 그 선생님의 모습이 교회를 처음 가보는 나에게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굉장히 이상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무튼 그 날을 마지막으로 나는 한 번도 교회에 가본 적이 없다.내가 만약에 나중에 종교를 갖게 된다면 아마도 불교가 내 종교가 될 것 같다. 어릴 적에 갔었던 교회의 모습에 대해 이상하다고 느낀 기억 때문일 수도, 아니면 우리 부모님의 종교가 불교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종교관과 가장 비슷한 종교가 불교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종교관은 그 신앙을 가진 사람이 너무 자신의 신앙에 맹목적이게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종교도 신자에게 맹목적인 믿음을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종교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모아 힘을 가진 세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종교는 어디서든 중립적인 역할을 하며, 인간을 구원하는 역할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나처럼 종교가 없던 친구에게 왜 종교가 없는지에 대해 물어 본적이 있는데, 그 친구는 종교라는 것 자체가 구원이라는 겉포장으로 믿음을 요구해서 하나의 권력집단이 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래서 진정한 마음의 구원이 아니라 그 목적이 변질되어 버리는 것 같고, 종교라는 틀에 묶이기 싫어서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이처럼 종교가 이렇게 하나의 힘을 가진 집단으로 느껴진다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종교관에 대해 라이프 오브 파이라는 영화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주인공인 파이는 근거를 신봉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중요시하는, 종교에 대한 믿음이 거의 없는 아버지와 종교에 대한 신뢰를 중요하게 여기는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난다. 파이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종교관이 적절하게 배합된 합리적인 종교관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파이의 종교관은 그가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나타난다. 파이가 극한 상황에 마주했을 때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지만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한 영역은 운명, 신에 맡기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파이의 종교관 또한 이상적이고 합리적인 종교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종교관에 가장 부합하는 종교도 불교라고 생각한다. 종교라는 것 자체가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차이라고 하지만 불교는 그런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과 상관없이 ‘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는 종교인 것 같다.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종교라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내가 나의 삶을 주도 한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문제 상황들의 해결책을 내 안에서 찾아야지,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내 안에서 문제의 해답을 찾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닐까? 두근두근 내 인생이라는 책의 주인공의 말처럼 전지전능하고 완전한 신은 나의 고민과 문제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할 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리고 또한 전지전능한, 완전한 신을 내세우지 않는 것 또한 나의 종교관에 부합한다. 누구에게나 불성이 있다는 말이 나타내듯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좀 더 불교를 믿는 사람들을 능동적이게 만드는 것 같다. 물론 내가 불교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막연하게 내 종교관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독후감/창작| 2014.03.25| 3페이지| 1,500원| 조회(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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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과 신화 평가A+최고예요
    테마로 보는 서양철학(인간과 신화)인간은 삶에서 죽음을 묻다길가메시의 전설에는 인간이 죽음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과 죽음에 대한 질문이 등장한다. 또한 다양한 고대문화에서 뱀에 대한 공통적 생각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뱀이 허물을 벗어 자기의 생명을 언제나 새롭게 한다는 것, 그리고 뱀이 영원한 시간의 상징이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이러한 신화적 사고는 실존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접근 방법이었다.영원과 시간신화는 태초에 원초적 무시간적 순간, 신성한 시간에 일어났던 시간들을 이야기한다. 신화를 이야기함으로써, 줄거리에 나오는 사건이 일어났던 신성한 시간을 재현한다. 신화를 이야기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세속적 시간은 상징적으로 소멸된다. 신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세속적 조건, 역사적 상황을 망각할 수 있다. 신화적 시대의 인간에게 신화는 진실한 것이다. 신화는 신성한 것이며, 신성한 존재와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신화를 통해 시간적 조건과 우둔한 자기만족을 초월한다.개미들의 행진브리트라 때문에 살기 어려워진 세상을 보고 인드라가 벼락을 쏟아 부어 악용 브리트라를 없애고 신들이 다시 높은 곳으로 돌아가 다스릴 수 있도록 하였다. 인드라는 이를 보고 자신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인드라는 우주 산으로 올라가 자신을 위한 궁전을 지었다. 인드라는 비쉬바카르만이라는 창조의ㅏ 신을 불러 궁전을 짓도록 했다. 인드라는 점점 더 무리한 요구를 해왔고 비쉬바카르만은 높은 신인 조물주 브라마에게 도움을 청했다. 브라마는 비쉬바카르만에게 평안히 돌아가라고 했다. 다음 날 순례자의 지팡이를 든 바라문 소년이 아이들과 나타났고, 소년은 인드라에게 강론을 했다. 소년은 강론 중 개미들이 행진하는 모습을 보고 인드라에게 행위에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또한 지혜도 가르쳐주었다. 잠시 후 또 다른 형상이 방으로 들어왔다. 나이 많은 그 성자는 자신의 이름이 털보라고 했고, 자신의 모습에 대해 설명하고 인드라에게 다시 한 번 깨달음과 지혜를 주었다. 그 후 털보라는 성자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는 시바자신이었다. 소년도 자취를 감추었다. 인드라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고 생각 끝에 비쉬바카르만을 불러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인드라는 이제 구원을 원했다. 지혜를 얻었으니 자유로워지기를 원한 것이다. 그는 은둔생활을 준비했다. 인드라의 아내인 왕비는 슬픔에 잠겼다. 왕비는 브리하스파티를 찾아갔다. 브리하스파티는 왕비의 말을 듣고 인드라를 설득했고 인드라와 왕비의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해 책을 지었다. 이에 인드라는 야망으로부터 치유되었고, 자기의ㅏ 고유한 역할에 대한 지식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 신화에서는 위대한 신들이 인드라를 훈계함으로써 인간 청중들을 가르친다. 또한 공간과 시간의 무한에 대한 지혜뿐만 아니라 끝없는 연속에 대한 교훈을 준다.존재의 물힌두인의 정신은 일시적이고 항상 변하고 포착하기 어렵고 항상 재발하는 관념들을 ‘비실재, 불멸, 불변의, 확고부동한, 영원한’ 관념들을 ‘실재적인 것’과 연관시킨다. 마야샤크티는 인도의 사상적 목표는 언제나 우리의 의식적 존재를 휩싸고 있는 정서적, 지적 소용돌이 밖에 그리고 아래의 하나의 실재 속으로 관통하는 것이었다. 힌두신화는 마야의 수수께끼를 생생하게 다룬다. 힌두신화에서 나라다는 비쉬누에게 가르침을 받는다. 일단의 성자들이 모자 비아사에게 비쉬누라는 마야의 종지를 밝혀달라고 하자 이야기를 해준다. 그 이야기는 카마다마나 왕자이야기 였는데, 카마다마나가 화신하여 살던 한 때 그의 이름은 수타파스였고 그는 비쉬누에게 귀의해 은총을 받는다. 그는 마야를 이해하도록 해달라고했고 비쉬누는 나라다의 이야기를 해주며 그것처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타파스는 나라다와 마찬가지로 물에 뛰어들었고, 한 소녀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는 다른 인생의 구조 속에 휩싸였다고 한다. 나라다에 관한 두 번째 이야기는 역시 마야의 주술적인 힘에 대해 묻는 나라다에게 고행이 찾아온다. 비쉬누의 부탁으로 물을 구하러간 나라다는 어느 집의 소녀에게 이끌려 비쉬누의 부탁을 잊고 만다. 세월이 흐른 뒤 나라다는 홍수에 가족을 잃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비쉬누와 함께 사막에 있었다. 나라다의 두 이야기에는 모두 물에 의해 야기된다. 물은 비쉬누의 마야의 원초적인 체현으로 이해된다. 신화들의 상징에서 물에 뛰어드는 것은 마야의 신비를 탐구하고 인생의ㅏ 궁극적 비밀을 추구하는 것이다. 물은 만물의 무시무시한 묘역인 동시에 흠없는 원천이기 때문이다.시간과 영원에 관한 인도의 상징인도 신화는 원시 인류의 정신적 창조물의 특정 범주에 속한다. 신화는 어느 나라사람에게나 진실한 것이다. 신화는 신성한 것이며 신성한 존재와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신화를 듣거나 말하면서 시간적 조건과 우둔한 자기만족을 초월한다. 이 자기만족이라는 것은 모든 인간존재가 무지다는 사실 때문에 가지게 된 운명인데, 무지란 우리 자신이라고 착각되는 것,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과 실재성과의 잘못된 동일시이다. 신화는 대 시간을 계속적으로 재현하며, 그럼으로써 청중들이 세속의 개인적 존재의 차원에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실재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초인간적이고 초역사적인 차원으로 사람들을 데려간다. 세속의 시간을 초월하여 신화적 대 시간을 재발견한다는 것은 궁극적 실재의 계시와 같은 가치를 지닌다. 힌두교의 신화에선 매 세계의 주기를 네 개의 유가들 또는 세계의 시대들로 나눈다. 첫 번째, 크리다는 행해진, 만들어진, 성취되어진, 수행되어진이라는 의미이다. 이 시대는 완전한 유가 혹은 3/4등분된 유가이다. 이시기에는 다르마라는 세계의 도덕적인 질서가 성스러운 황소처럼 자기의 네 발로 확고하게 이 시기를 지탱하고 있다. 이 유가의 시대동안 남자들과 여자들은 덕스럽게 태어난다. 그들은 인생을 다르마에 의해 성스럽게 정해진 의무와 책임을 완수하는데 바친다. 그러나 세계 유기체의 생활과정이 타성을 얻을 때 질서는 기초를 잃어버린다. 두 번째 시대인 트레타 유가가 경과하는 동안 인간 사회의 조직체는 물론 전반적인 조직체는 그것이 소유한 전체 미덕의 4/4에 의해서만 지탱된다. 사성계급의 고유한 생활 방식이 쇠퇴하기 시작한다. 드라파가 유가는 불완전한 완전, 암흑과 광명 사이의 위험스러운 균형의 시대이다. 사회의 이상과 반신적인 지위는 파멸되었다. 계시된 가치 체계에 대한 지식은 상실되었다. 정신적인 질서에 대한 이상은 이제 인간의 생활과 전반적인 생활에 활력을 주지 못한다. 최종적으로 칼리 유가, 즉 암흑시대에는 불행하게도 다르마의 모든 힘의 25퍼센트만이 존재한다. 이기주의적이고 게걸스럽고 맹목적이며 무모한 요소들이 득세하여 시대를 지배한다. 칼리는 어느 것의 최악 또한 ‘투쟁, 분쟁, 불화, 전쟁, 전투’를 의미한다. 이 순환을 마하유가, 즉 대유가라고 한다. 1000마하 유가는 브라마의 하루, 1칼파를 이룬다. 신들의 횃수 계산으로 환산하여 이 기간은 1만 2000의 신년들을 포함한다. 그러한 하루는 창조 혹은 진화, 즉 신성하고 선험적이며 현현되지 아니한 실체로부터 한 우주가 유출하기 시작하여 해체와 재 병합, 곧 절대자에게 몰입하여 돌아가는 것으로 끝난다. 매번의 겁파는 열넷의 만반타라들 또는 각기 일흔하나와 나머지 얼마간의 마하 유가를 포함하고 홍수로 끝나는 마누 기간들로 세분된다. 그 기간들은 홍수를 모면한 영웅, 즉 힌두교의 노아라 할 수 있는 마누로부터 이름 붙여졌다. 매 칼파의 진행과 쇠망은 유사하게, 다시 그리고 또다시 찬란히, 서서히 그리고 가차없이 고대하는 순환을 되풀이하는 신화적인 사건들에 의해 표상된다. 매번 칼파에서 여명에 브라마는 비쉬누의 배꼽에서 자라 피어난 연곷으로부터 다시 태어난다. 마야의 우주적 표명인 시작도 끝도 없는 이 주기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신적 자유에 의한 행동뿐이다. 인도의 모든 구제론적 해결책은 우주적 환상으로부터 우선적인 해방과 정신적 자유로 귀결된다. 대시간의 시야에서 보면, 일체의 존재가 덧없고 허무하고 허망하다. 순환하는 무한한 시간의 신화는 시간의 단조로운 리듬인 역사적 시간에 의해서 엮어진 환상을 깨고 세계의 불안정성과 비실재성 그리고 해탈의 길을 우리에게 밝혀준다. 사실 속세를 떠나 고행과 신비술을 행하는 명상적 방법에 의해서 혹은 속세에 몸을 담되 ‘행동의 결실’을 향유하지 않는 능동적 방법에 의해서 마야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느 방법이든 시간 속에서 피고 지는 형태의 실재성만을 믿어서는 안된다. 사물과 존재를 우주적 시간의 차원에 투입시켜 즉각 그 비실재성을 깨닫도록 한다는 의미에서 시간은 인식의 도구가 될 수 있다.시간의 공포전통사회는 인간의 시간적 존재를 어떤 원형과 표본적 행동의 무한한 반복으로서, 또한 ‘영원히 다시 열림’으로 상상한다. 세계는 매우 빠른 리듬으로 태어나서 쇠퇴하고 소멸했다가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혼돈 그리고 새로운 창조에 의해서 이 혼돈에 종말을 고하는 우주 창조가 주기적으로 재연된다. 이 개념은 농경사회이전의 신화에서도 발견되며, 달의 구조 개념을 가지고 있다. 원시인에게 시간은 순환적인 것이고, 세계는 주기적으로 창조되었다가 파괴되며, ‘탄생-죽음-재생’이라는 달의 상징성은 수많은 신화와 의례를 통해서 나타난다. 인도인들에게 영원회귀란 곧 카르마에 지배되는 윤회의 무한한 순환을 의미한다. 헛되고 덧없는 이상, 삼사라의 세계, 고통과 무지의 세계는 시간의 기호 밑에서 전개되는 세계이다. 이승에서의 해방과 구원의 성취는 우주적 시간으로부터의 해방과 같은 의미가 된다.
    독후감/창작| 2014.03.25| 4페이지| 1,500원| 조회(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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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마로 보는 서양철학(에우티프론 요약)플라톤이 저술한 소크라테스의 대화편들은 윤리적 개념을 정의하는 일이나 윤리적 문제와 관련된 것들로 논박의 성격이 강하다. 에우티프론 역시 에우티프론과 소크라테스의 논박을 다룬 내용이다. 에우티프론은 아버지를 살인죄로 고소했고, 소크라테스는 불경죄로 공소당해서 바실레우스에서 만나게 된다. 이들의 우연한 만남으로 대화가 시작된다. 에우티프론은 아버지를 고소한 것이 경건함에 의해 정당하다고 하고 소크라테스는 에우티프론이 생각하는 경건함에 대해 묻는다. 에우티프론은 경건한 것이 율법에 위반되는 살인, 절취 등의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고소하는 것이 경건한 것을 의미 한다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는 경건한 것이게 하는 특성 그 자체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한다. 에우트프론은 신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경건한 것이며 그렇지 않은 것이 경건하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신들의 의견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니지 않냐고 하자 에우티프론은 신들이 모두 사랑하는 것이 경건한 것이고 모든 신이 미워하는 것이 경건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경건한 것은 경건한 것이기 때문에 사랑 받는 것이지 사랑 받기 때문에 경건한 것이 아니고, 신이 사랑하는 것은 신에게 사랑 받으니까 그런 것이지, 그것이 신이 사랑하는 것이니까 사랑 받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즉, 신이 사랑하는 것은 사랑 받으니까 그런 것이고, 경건한 것은 사랑 받을 만하니까 사랑 받는 것이라고 한다.이어 소크라테스는 경건함의 본질을 밝혀달라고 한다. 에우티프론의 소크라테스의 말에 의욕을 상실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단념하지 말라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경건함이 올바름의 한 부분. 즉, 경건한 것이 있는 곳엔 올바른 것이 있다는 것에 에우티프론의 동의를 얻어낸다. 소크라테스는 올바름의 어떤 부분이 경건한지 가르쳐 달라고 한다. 에우티프론은 신들에 대한 섬김과 관련되는 부분이 신들을 공경함이며 경건함이지만 인간들에 대한 보살핌과 관련되는 것이 올바름의 나머지 부분인 것 같다고 말한다. 또한 노예들이 주인들을 섬기는 바로 그런식의 섬김이 경건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그것은 신들에게 하는 일종의 봉사(섬김의)기술인 것 같다고 하며 조선기사들에게 봉사하는 기술은 배를 만들기 위한 것이고 건축가들에게 봉사하는 기술은 집을 짓기 위해서라면 신들에게 봉사하는 기술은 무슨 결실을 맺게 하는데 봉사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에우티프론은 많고도 훌륭한 것들이라고 말하고 소크라테스는 신들이 이루게 되는 많고도 훌륭한 일들의 주된 것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에우티프론은 어떤 사람이 신들에게 기원을 하고 제물을 바치면서 신들에게 만족스런 것들을 말하고 행할 줄 알 경우에 이것들이 경건한 것들이라고 한다고 얘기한다. 소크라테스가 그렇다면 경건은 신들한테 하는 청과 바침에 대한 앎이냐고 묻자 에우티프론은 그렇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그것이 경건이라면 경건은 신들과 인간들 사이의 일종의 거래 기술임을 이야기 한다. 이어 신들이 우리한테서 받게 되는 그 선물들로 해서 신들은 무슨 이득이 되는지를 묻는다. 에우티프론은 신들이 우리에게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자 소크라테스가 우리 쪽에서 신들에게 바치는 이 선물들은 무엇이나고 한다. 에우티프론은 우리 쪽에서 신들한테 바치는 이 선물은 숭배와 그 예물,만족이라고 하자 소크라테스는 경건함은 신들에게 만족스런 것이긴 하나 신들한테 이득이 되는 것도 사랑을 받는것도 아니지 않냐고 한다. 그러자 에우티프론은 경건함은 무엇보다 가장 사랑을 받는 것이라고 하고 소크라테스는 그렇다면 이 경건함은 '신들한테 사랑받는 것'인지 묻는다. 이어 앞서 경건한 것과 신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서로 다른 것임이 밝혀지지 않았냐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이어 방금 동의한 것이 잘못되었거나 그때의 동의가 잘 된 것이라면 주장하고 있는 것이 옳지 못하니 경건함이 무엇인지 처음부터 다시 고찰하자고 한다. 에우티프론은 논의를 다음기회로 미루고 사라진다. 결국 에우티프론의 끝에 이르러도 경건함에 대한 본질은 밝혀지지 않았다.
    독후감/창작| 2014.03.25| 2페이지| 2,000원| 조회(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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