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Bronze개인인증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27
검색어 입력폼
  • 박지원 광문자전 레포트 평가A좋아요
    한국 문학의 이해 발표문친절한 광문씨과목 한국문학의 이해교수님 박 성순교수님학번 2012113337이름 김 영진1. 작품소개 ..........12. 인물소개 ..........13. 줄거리 .............24. 이해와 감상.......31) 등장인물의 사람됨...........32) 광문자전의 근대적 성격....53) 근대적 인간형 제시..........54) 양반 사회에 대한 풍자......55) 사실적 묘사....56) 작가가 광문이라는 인물을 통해강조한 인간상은 무엇인가.......67) 이 작품을 쓴 작가의 의도는 무엇인가..............65. 결론 ................71. 작품소개광대달문의 본래 제목은 '광문자전'으로 조선후기 연암 박지원의 매우 짧은 전기체 단문 소설이다. 박지원의 소설의 특징 중 하나가 평민층의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포착하는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유명했는데 '광문자전'역시 고귀한 혈통이나 비범한 능력을 가지지 않은 광문(이달문이라고도 불림)이 주인공이다. 오히려 광문은 거지라는 천한 신분을 가지고 있다. 광문은 거렁뱅이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착해 항상 주위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사람이다. 이러한 인물형을 통해 새로운 시대에는 신분이나 지위보다는 성실하고, 신의가 있고, 인간의 가치를 통찰하는, 남의 어려움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도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박지원의 인식이 엿보인다. 또한 박지원은 광문을 통해서 양반들의 허위를 비판하기도 한다.배경 : 조선후기 서울종로갈래 : 한문소, 비판적, 사실주의적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주제 : 참다운 인간성을 잃고 권모술수가 판을 치던 당시의 세태(양반사회)에 대한 풍자한 소설이고, 신의 있고 정직한 삶의 태도를 칭송함.2. 인물소개광문 : 주인공. 종로의 거지. 인정 많고 정직하며 신의가 있다. 담보 없이 남의 보증을 서주며, 남의 어려움을 내 일처럼 생각한다. 유머러스한 면이 있어서 그를 보면 싸우던 사람들도 싸움을 그치고 웃는다. 재물 욕심이 없고, 남녀평등 인식을 가지고 있다. 분수를 지키며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성격이다.주인 영감 : 사람의 정직함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지고 있다. 광문을 약방 부자에게 추천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남을 돕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다.약방 부자 : 사려 깊고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안다.운심이 : 기생. 춤추기를 권해도 춤을 추지 않는, 자존심이 센 여자다. 그러나 광문이 콧노래로 장단을 맞추자 이내 춤을 춘다. 광문의 인간됨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다.3. 줄거리광문이라는 거지가 있었다. 광문은 땅굴 속에서 앓고 있는 어린 거지를 보고 밥을 빌어다 먹이려고 나갔다. 하지만 돌아오니 아이는 죽어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광문을 의심하고는 끝내 광문을 죽이려 했다. 광문은 땅굴에 나와 도망쳤고 약방영감네 집에 머문다. 영감은 광문이 죽은 거지들을 공동묘지에 묻어주는 것을 보고 감격해 자신의 집에 계속 머물게 하였다. 어느 날 영감이 출타 후 집에 오자 돈이 조금 없어졌다. 영감은 내심 광문을 의심하지만 자신의 친척이 돈을 빌려감을 알고 잠시나마 광문을 의심한 자신을 반성한다. 그 후 광문은 의리있는 사람이라고 소문이 들고 광문은 유명해졌다. 광문이 마흔살이 되어도 자신은 못생겼으며 가진것이 없으니 장가는 가지 않겠다고 한다.당시 기생들은 노래를 잘하긴 했지만 광문의 목소리가 아니면 한 푼의 돈도 만지지 못했다. 이유는 이러하다. 운심이라는 가희로 이름난 기생이 궁궐의 잔치에서 비파를 연주했는데 춤추는 것을 벼슬아치의 노리개로 쓰이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광문은 다짜고짜 상좌로 가서 앉아 무릎장단을 치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모두들 어이없어 하는 가운데 운심은 춤을 취기 시작한다. 이는 광문을 위한 춤이었다.[발단] 광문에게 위기와 기회가 찾아옴거지 두목 광문은 동료중 아이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집단에서 쫓겨난다. 동료 거지들을 피해 남의 집에 들어갔다가발각된 광문은 도둑으로 몰리지만 그의 사람됨을 알게 된 주인이광문을 받아주고 나아가 약방부자에게 약방 점원으로 추천한다.[전개] 광문의 인품이 알려짐어느날 약방에서 돈이 없어지는 사건이 벌어지자 광문은 의심을 받지만,진범이 잡힌 뒤에 오히려 그의 거짓이 없고 순수한 인품이 사람들 사이에서유명해지고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게 된다.[결말] 모든 사람들이 광문을 칭찬함운심은 춤을 추지 않는 기생으로 유명한데, 어느 날 광문이 콧노래로장단을 맞추자 비로소 춤을 추기 시작한다.이에 사람들은 광문과 친구가 되기를 원하고 그를 칭송하며 존경한다.4. 광문자전의 이해와 감상연암 박지원은 주인공 광문을 인정 있고 정직하며 소탈한 근대적 인간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는 못생긴 거지이지만 착하고 신의가 있으며 남의 어려움을 내 일처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 해학과 기지로써 사람 사이의 분쟁을 무마시키기도 하고 하지만, 재물에 대한 욕심은 없다. 특히, 남녀가 평등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근대적 인간이다.이 작품은 주인공의 성격에서도 그렇지만, 그 구성에 있어서도 근대적 성격을 갖추고 있다. 고귀하거나 비범한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대부분의 고전소설과 달리 최하층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점이 그렇고, 하층민이면서도 성실한 마음과 신의 있는 행동으로 장안의 명사가 되었다는 점이 그렇다.이 작품에서 작가는 여항인의 기이한 일을 끌어 와서 풍속을 교화하는 데에 쓰려고 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인정 있고 정직하고 소탈한 새로운 인간상을 부각시키려고 하였는데,, 작가가 살고 있던 당시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묘사한 사실주의 과 어느 면에서 상통하며, 판소리계 소설인 과도 통하는 바가 있다. 한편 이유원의 『춘명일사』에 나오는 과도 통하여 당시에 이런 유형의 이야기가 민간에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1) 등장인물의 사람됨(1) 거지 아이들이 시체 하나를 끌고 수표교(水標橋)에 와서 그 시체를 다리 밑으로 던져 버리는데, 광문이 숨어 있다가 떨어진 거적으로 그 시체를 싸서 가만히 짊어지고 가, 서쪽 교외 공동묘지에다 묻고서 울다가 중얼거리다가 하는 것이었다.-광문의 따뜻한 마음씨, 측은지심(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2) 만석희(曼碩戱)를 잘하고 철괴무(鐵拐舞)를 잘 추었다.-광문이 광대로서의 재주가 뛰어남(3) 광문이 길을 가다가 싸우는 사람을 만나면 그도 역시 옷을 훌훌 벗고 싸움판에 뛰어들어, 뭐라고 시부렁대면서 땅에 금을 그어 마치 누가 바르고 누가 틀리다는 것을 판정이라도 하는 듯한 시늉을 하니, 온 저자 사람들이 다 웃어 대고 싸우던 자도 웃음이 터져, 어느새 싸움을 풀고 가 버렸다.-광문의 재치 있는 모습??(4) “잘생긴 얼굴은 누구나 좋아하는 법이다. 그러나 사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비록 여자라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나는 본래 못생겨서 아예 용모를 꾸밀 생각을 하지 않는다.”-광문: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할 줄 암. 역지사지. 남녀 평등 의식(5) “나는 부모도 형제도 처자도 없는데 집을 가져 무엇하리. 더구나 나는 아침이면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며 저자에 들어갔다가, 저물면 부귀한 집 문간에서 자는 게 보통인데, 서울 안에 집 호수가 자그마치 팔만 호다. 내가 날마다 자리를 바꾼다 해도 내 평생에는 다 못 자게 된다.”-광문: 안분지족, 욕심 없는 삶?(6) 광문이 비록 해진 옷을 입었으나 행동에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의기가 양양하였다. 눈가는 짓무르고 눈곱이 끼었으며 취한 척 게욱질을 해 대고, 헝클어진 머리로 북상투를 튼 채였다.-광문: 허위나 가식에 얽매이지 않음(7) 집주인이 내심 광문을 의롭게 여겨, 데리고 집에 돌아와 의복을 주며 됨을 중시하는 인물(8) 운심은 유명한 기생이었다. 대청에서 술자리를 벌이고 가야금을 타면서 운심더러 춤을 추라고 재촉해도, 운심은 일부러 늑장을 부리며 선뜻 추지를 않았다. 광문이 더욱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치며 곡조에 맞춰 높으락낮으락 콧노래를 부르자, 운심이 곧바로 일어나 옷을 바꿔 입고 광문을 위하여 칼춤을 한바탕 추었다.-운심: 자존심이 강하고 도도하다. 사람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있다 .?2) 광문자전의 근대적 성격-못생긴 거지를 소설의 주인공으로 설정함. → 새로운 시대의 인간형 제시-거지이지만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받음. → 인격을 인간의 평가 기준으로 삼음.-남성과 여성의 사랑에 대한 관점이 동일하다는 점을 밝힘. → 남녀 평등의 가치관을 지님.광문의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도둑으로 오해함. → 신분이 낮으면 일단 무시하고보는 양반 사회를 간접적으로 비판3) 근대적 인간형 제시다른 고전 작품과 달리 재자가인(才子佳人)형의 영웅적 인물이 아닌 거지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있다. 부나 권력을 지닌 인간이 아닌, 성실하고 신의 있는 인간형이 새로운 시대의 인간형임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 ‘이 시대에는 어떤 인간형이 필요한가’에 대한 답을 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근대적 인간형 : 신분이나 지위보다는 성실과 신의를 중시하고 인정이 많은 사람4) 양반 사회에 대한 풍자광문의 거짓 없는 모습을 통해 권모술수가 판치던 당시의 위선적인 양반 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비천한 거지이지만 정직한 인품을 지닌 광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속임수가 판치던 양반 사회를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5) 사실적 묘사조선 후기 사회상과 서울의 빈곤한 서민층의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6) 작가가 광문이라는 인물을 통해 강조한 인간상은 무엇인가.광문은 미남도 영웅도 아니다. 그저 못생긴 거지에 불과하다. 어쩌다 거지들의 두목이 되지만, 그 자리를 오래 지키지 못하고 쫓겨난다. 하지만 천성이 선하고 신의가 있으며,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다. 남 알고,
    인문/어학| 2015.12.18| 8페이지| 1,500원| 조회(980)
    미리보기
  • ETF PPT
    ETF ETN - 경제환경의 변화와 투자21 ETF 개념과 특징 2 ETN 개념과 특징 3 ETF / ETN 통한 투자전략 목차Chapter 1 ETF 개념1-1 5 ETF 사전적 정의 ETF 'Exchange Traded Funds‘ 의 약자 ' 상장지수펀드 ’ 라는 의미 상장지수펀드로 특정지수를 모방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여 산출된 가격을 상장시킴으로써 주식처럼 자유롭게 거래되도록 설계된 지수상품1-1 6 ETF 개념 상장 된 지수펀드 지수펀드란 ? INDEX FUND? 선정된 목표지수와 같은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하는 펀드 인덱스펀드는 각 업종의 대표종목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서 일정 비율로 투자하는 펀드 KOSPI 또는 S P500 등의 정해진 지수의 수익률과 유사한 수익을 실현할 수 있도록 운용 주가지수의 수익률만큼 수익을 추구하는 상품으로 , 주가지수 상승만큼 수익이 오르고 하락만큼 떨어진다1-2 7 ETF 장점 1) 실시간 조회와 매매 가능 2) 가격변동 파악과 투자 판단 용이 3) 일반 펀드나 주식보다 낮은 변동성 ! 4) 매도금액의 0.3% 인 거래세 면제 5) 낮은 펀드 수수료와 보수 6) 공개성 + 투명성1-3 8 ETF 상품1-2 9 ETF 종류 1) 시장지수 ETF 2) 주식테마 ETF 3) 주식섹터 ETF 4) 채권 ETF 5) 해외 주식 ETF 6 ) 실물자산 ETF 7 ) 합성 ETF1-3 10 ETF 종류 1) 시장 지수 ETF1-3 11 ETF 종류 2) 주식테마 ETF1-3 12 ETF 종류 3) 섹터 ETF 4) 채권 ETF1-3 13 ETF 종류 4) 해외주식 ETF1-3 14 ETF 종류 6) 실물자산 ETF1-3 15 ETF 종류 7) 합성 ETFChapter 2 ETN 개념2-1 17 ETN 사전적 정의 ETN 'Exchange Traded Note‘ 의 약자 ‘ 상장지수증권 ’ 이라고 부름 . 상장지수증권은 기초지수 변동과 수익률이 연동되도록 증권회사가 발행하는 파생결합증권으로서 주식처럼 거래소에 상장되어 거래되는 증권이다 .2-1 18 ETN 기본 개념 ETN 'Exchange Traded Note‘ 주가지수 , 개별 종목 주가만 기초지수로 삼는 상장지수펀드 (ETF) 를 보완하기 위한 증권으로 장기간 안정적인 투자를 하는 사람에게 적합 . ETN 은 상장지수펀드 (ETF) 와 마찬가지로 거래소에 상장돼 손쉽게 사고 팔 수 있는 채권으로 , 상장지수채권이라고도 한다 . 특정지수의 수익을 오차 없이 보장하는 채권 으로 금융회사가 자기신용으로 발행하고 , 투자자는 시장에서 ETN 을 자유롭게 사고 팔거나 만기까지 보유해도 무관 .2-1 19 ETN 기본 개념 한국거래소 (KRX) www.krx.co.kr2-2 20 ETN ETF 와의 비교 한국거래소 (KRX) www.krx.co.kr2-3 21 ETN 장점 1) 다양한 기초자산에의 접근성 2) 추적오차 미발생 3) 지수연동형 상품으로 투자 용이성 4) 주식투자와 동일한 환금성2-4 22 ETN 상품 삼성증권 www.samsungpop.com2-4 23 ETN 상품 삼성증권 www.samsungpop.com2-4 24 ETN 상품Chapter 3 ETF / ETN 투자전략3 263 27 안전하게 정배당 ?- 인버스 옥수수 선물 ETN 남자라면 역배당 ? – 옥수수 , 콩 선물 ETN28 5 일만에 진도 0.5 상승 그러면 오늘은 ? 추가 지진 피해 예상시 – 일본 인버스 지진 미 발생 예상시 – 일본 노멀 or 레버리지 329 한국만 테마주가 있는가 ?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 당선 예상시 – 옥수수 선물 ETN 출처 sbs cnbc 330 금 값이 오를 것 같은데 금괴는 무슨 돈으로 사는가 ? 금 값이 떨어질 것 같은데 이걸로 돈 버는 방법은 없나 ? 331 경제의 지표 구리를 이용해서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양화 332 출처 연합뉴스 / 이데일리 카슨이 낙마하고 힐러리가 만일 난민을 받아 들이기로 한다면 ? 333 달러를 어디서 사겠다고 달러투자 타령이니 ? 이따 소주나 한잔 하자 . 오빠가 그러니까 평생 흙수저인거야 … 이 오빠랑은 연애만 해야겠다 . 달러를 꼭 사야만 투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 달러 ETF 상품은 심지어 인버스에도 레버리지 존재 .참고 문헌 남길남 , ‘ETN 시장의 특징과 시사점 ’, 자본시장연구원 , 2014 김영도 , ‘ETF 관련 주요 이슈 및 발전사항 ’, 한국금융연구원 , 2013 Ferri , Richard A, ‘ 현명한 ETF 투자자 : 상장지수펀드의 모든 것 ’, 리딩리더 , 2012 삼성증권 (www.samsungpop.com) 한국거래소 (http://etn.krx.co.kr/) POPTV(http://www.popetv.co.kr/Fnetv/) 네이버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TF)THANK YOU Q A{nameOfApplication=Show}
    경영/경제| 2015.12.18| 35페이지| 2,000원| 조회(491)
    미리보기
  •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토론
    7조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발표문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0. 목차서론인물·배경 소개쇄국이냐 개화냐 선택의 기로에 놓인 두 사람누구의 개혁이 더 합리적이었는가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발버둥인가결론7. 참고자료서론구한말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같으나 뜻을 달리한 두 정치인이 있다. 한 사람은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의 며느리 명성황후이다. 두 사람 모두 살아생전 굴곡 없는 평탄한 인생을 살지 못했다. 대원군이 민치록(閔致祿)의 딸 민자영을 왕비로 간택할 때 훗날 그녀가 자신을 없애려 들것임을 몰랐던 것을 보면 인간사가 얼마나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인지 허무함마저 느껴진다. 조국에 폭풍이 몰아치는 상황 속에서 서로에게 칼을 겨눌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의 일대기는 우리 사이에 드라마나 영화로 잘 알려져 있다. 이렇게 대립된 입장을 보인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이지만 ‘배경’이 없어서 권력을 쟁취할 수 있었던 점이나 혼란 속에 열강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등 유사한 점이 많다.불과 1세기 전의 일이지만 두 사람에 대한 현대의 해석은 여러 갈래로 엇갈린다. 흥선대원군은 기득권층의 부패로 망해가던 조선을 개혁하고 외세의 침탈로부터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평가되기도 하는 반면 일부 학자들은 무리한 개혁정책으로 조선의 파멸을 오히려 앞당겼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또 명성황후는 드라마나 뮤지컬 등에서 여러 열강의 세력을 이용해 정국을 운영한 뛰어난 외교가이자 여걸로 묘사되기도 하는 반면에 외세를 끌어들여 나라를 파멸의 길로 인도한 악녀로 평가되기도 한다.본 발표문에서는 개항기의 열강의 각축장 속에서 나라를 운영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두 인물의 대립과 더 나아가 두 인물로 대표되는 쇄국과 개화 두 진영의 대립을 다양한 시각에서 토론하고자 한다.2. 인물·배경 소개1)인물 소개(1)흥선대원군1820(순조 20)∼1898. 조선 말기의 왕족·정치가. [네이버 지식백과] 이하응 [李昰應]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자는 시백(時伯), 호는 석파(石坡). 라던가, 아니면 명문가인 친정을 등에 업고 왕을 뒤에서 조종하는 방법을 통해서였다. 명성황후는 이전의 왕비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녀는 지아비인 고종이 국정을 의논하는 가장 가까운 상대였으며, 외국의 세력들이 고종보다도 더 예의주시했던 권력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었다. 그녀는 명문가 친정의 도움으로 왕비 자리에 오르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이 왕비가 되어 정치적 필요에 의해 친정세력을 키웠다. 살아 있는 왕보다도 더 주목받으면서 사실상 왕과 권력을 나눠 가졌다고도 보이는 명성황후의 존재는 당시 망국으로 치닫는 조선의 특수상황을 고려하고 생각하여도 매우 특이하고도 경이롭다. [네이버 캐스트] 명성황후 항목2)배경소개19세기 중엽의 조선은 세도정치의 폐단이 극심해 온 나라가 고통을 받던 시기였다. 과거시험부터 지방 일개 고을직까지 부패하지 않은 곳이 없었으며 돈으로 관직을 매수한 자는 그것을 메꾸기 위해 더욱 백성들을 괴롭혔다. 나라 밖으로는 조선 주변의 국가들이 모두 개화 정책을 단행하는 시기였다. 청나라는 아편전쟁의 패배로 인해 강제로 문호를 개방할 수밖에 없었으며 1860년에는 영·프 연합군에 의해 베이징이 함락하는 상황에 이른다. 이에 청은 양무운동 [네이버 지식백과] 양무운동 [洋務運動] (두산백과)을 실시하여 서구 문물을 수용하는 등 근대화를 위해 노력했다. 반면 일본은 서구의 함포외교에 강제로 개항했고 미국 이후 영국, 러시아, 네덜란드, 프랑스와 차례로 통상조약을 맺으며 막부정권의 몰락과 함께 메이지유신 [네이버 지식백과] 메이지유신 [明治維新(명치유신)(두산백과)이 실시된다. 이러한 주변국의 정세 속에 흥선대원군은 통상수교거부정책을 표방하며 전국에 척화비를 세웠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은 일본 정치계에 정한론을 강화시켜 훗날 운요호 사건을 일으키게 하는 촉진제가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한론 [征韓論] (두산백과)흥선대원군이 조선의 문을 걸어 잠그고 집안 내의 외세를 탄압하게 된 계기는 러시아의 남하에 대비해 프랑스 선교사들과 접촉을 시도한 사건으은(金銀)·주옥(珠玉)은 원래 우리나라에서 나지 않는 것이고 미속(米粟)과 포백(布帛)은 넉넉했던 적이 없으니, 국내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국내의 소비도 감당할 수 없는데 만약 다시 다른 나라와 유통하여 나라 안을 고갈시킨다면 이 조그만한 강토는 틀림없이 위기에 빠져 보존되지 못할 것입니다. 더구나 나라의 풍속이 검박하고 기술이 조잡하여 한 가지 물건도 다른 나라와 교역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절대로 교역할 수 없음이 이와 같고 외국 장사치들이 이득 볼 것이 없음이 또한 이와 같습니다. 그런데 매번 통상할 의사를 가지는 것은 대체로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똑똑히 알지 못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 高宗 8卷, 8年(1871 辛未 / 청 동치(同治) 10年) 2月 21日(辛巳) 2번째 기사신미년 당시 어전회의 기록을 살펴보면 고종이 미리견(미국)은 어떤 나라냐고 묻는 질문에 영의정 김병학이 해적들이 모여 사는 촌락 정도의 마을이라고 묘사했을 정도니 위 자문과 함께 당시 조정이 국제정세와 교역 등에 얼마나 무지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사실 당시 베트남이 프랑스와 어설프게 접촉을 시도하다가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되는 참사를 당한 사례를 보면 흥선대원군이 쇄국 정책을 편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 오히려 조선을 하나의 먹잇감 정도로 생각했던 당시 서구 열강들에게 적절한 조치라고 판단된다. 실제로 1973년 대원군이 실각 한 이후 겨우 2년이 지나 일어난 운요호 사건(1875)이 단지 측량을 구실로 한 22명 위키백과, ‘운요호 사건’ 항목의 일본 수군에 의해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게 된 것을 보면 대원군의 정치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당시에도 대원군이 집정하고 있었다면 운요호의 침략에 강력대응은 물론이거니와 애초에 일본이 개항을 목적으로 시비를 걸 의지조차 없었을지 모른다.3. 쇄국이냐 개화냐(1)흥선대원군 병약한 조선에 아직 쇄국은 이르다19세기 중엽의 조선은 세도정치로 인해 온 나라가 썩어 들어본떠 화륜선을 만드는 등 군사기술의 발전 노력을 보인다. 실제로 지금의 방탄복에 해당되는 면제배갑 제작, 서양식 포가 도입, 수뢰포 등이 제작되어 실전배치 되었다.(2)명성황후 시대적 흐름에 문호 개방이 맞아반면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책으로 개화가 늦어져 일제의 식민 지배를 부추겼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있다. 프랑스와 미국의 두 차례의 큼지막한 외세의 침략을 ‘난’이 아닌 ‘요’로 격하시켜 현실을 외면하고 척화비를 세워 외세를 배척하여 조선의 발전이 늦어졌다는 평가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차례의 양요와 오페르트 도굴 사건 등에서 보인 서구 열강의 위협적인 모습들은 흥선대원군의 그들에 대한 반감에 쐐기를 박는 사건이었다. 1868년에 오페르트를 포함한 140여명이 조선과의 수교를 핑계로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파헤치려 시도가 있었는데 이는 대원군이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1873년 흥선대원군이 권력에서 물러나고 명성황후는 자신의 일가친척과 개화파를 대거 등용했다. 명성황후는 1875년 운요호 사건 이후 대원군 집권기의 두 차례 양요 때의 강경 대응과 달리 온건개화노선을 취한다. 이에 1876년 조선의 최초의 근대적 조약으로 불리는 조일수호조규를 체결하고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는 등 개화파인 김홍집, 어윤중, 김윤식 등을 지원하였다.또한 이 당시 국제 정세를 살펴보면 대원군의 개혁이 얼마나 시대의 흐름의 역행하고 있는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청나라는 1840년 영국과의 아편전쟁을 통해 서구 열강의 힘에 굴복하게 되었고 이후 북경이 영국과 프랑스군에 의해 점령당하면서 개화가 시작된다. 이것은 청 내부에서의 중체서용을 바탕으로 전개된 양무운동으로 이어졌다. 일본은 미국이 대통령의 개국요구 국서를 일본에 가져온 것에서부터 개화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 대내적으로 일본은 메이지 천황을 중심으로 내각이 구성되고, 1868년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또한 러시아는 남하정책을 펼치며 연해주를 점령해 조선과 국경이 접하게 되었고,며 의정부와 삼군부를 부활시켰다. 임용한, 《난세에 길을 묻다》 (시공사, 2009) 287이는 모두 세도가문의 세력을 축출하기 위함이었는데 이는 당시 민중의 지지를 받으며 성공적으로 시행되지만 양반들에게 큰 불만을 사며 만동묘 폐쇄나 서원 철폐, 경복궁 재건사업과 함께 후일 최익현을 비롯한 일부 유생들에게 대원군 탄핵 운동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2) 명성황후 대원군의 개혁은 전근대적인 조치 문제 많아호포제와 서원 철폐는 기존에 존재하는 의견들이었고, 사창제 실시나 의정부, 삼군부 설치는 이미 있던 전근대적 제도를 그대로 부활시킨 것이다. 흥선대원군의 개혁은 왕권 강화 등 과거 지향적 정책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문제점이 많다. 흥선대원군 비판 여론이 거세지게 된 계기는 무리한 경복궁 재건 추진 사업 때문이었다. 국유림에서 벌목해놓은 경복궁 중건 재료들이 1866년 방화로 추정되는 불에 박은식, 《한국통사》 (김승일 역, 범우사. 1997) 77모두 소실되자 흥선대원군은 원납전, 당백전과 함께 4대문 통행료, 한강 도선료, 결두전 토지에 붙는 추가적인 세금등 온갖 품목에 세를 붙여 백성들을 괴롭혔다. 특히 실질화폐가 쓰이던 구한말에 무분별하게 유통된 저급의 명목화폐 당백전은 인플레이션 현상을 발생시켰고 이를 완화하는 과정에서 민간에 밀수품인 청전 당시 공식 화폐이던 상평통보의 1/3 가치의 밀수 화폐등이 돌며 백성들의 불만을 더 자극시켰다. 결국 이는 부메랑처럼 조선정부에 돌아와 재정파탄이라는 결과를 낳게 하였다.한편 명상황후는 고종의 정치에 간섭하며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고, 대원군이 부활시켰던 삼군부를 폐지했으며, 일본에 영선사와 신사유람단을 파견했다. 두 사절단은 일본에서 공업이나 무기제조법등을 학습하여 돌아왔다. 그녀는 김홍집이 수신사로 일본에 방문했을 때 가져온 황쭌셴의 《사의조선책략》을 보고 연미론(聯美論)을 접했다. 이에 1881년 김윤식과 이동인이 각각 청과 일본에 갈 때 밀명을 내려 청나라에 한·미 수교를 도와 달라 청했다. 책의 핵심내용이 ‘친다.
    인문/어학| 2015.05.28| 7페이지| 2,500원| 조회(453)
    미리보기
  • 라이벙 정도전과 이방원
    이방원(李芳遠)과 정도전(鄭道傳)-이상적 유교정치를 구현하기 위한 방법론적 차이에 대하여--목차-Ⅰ. 서론Ⅱ. 이방원의 왕권중심주의Ⅱ-ⅰ) 시대적 상황Ⅱ-ⅱ) 왕권중심주의의 필요성Ⅲ. 정도전의 재상중심주의Ⅲ-ⅰ) 정도전의 기본이념Ⅲ-ⅱ) 재상중심정치의 필요성Ⅳ. 결론Ⅰ. 서론여말선초(麗末鮮初)라는 미증유(未曾有)의 난세는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탄생시켰다. 공민왕(恭愍王, 1330~1374)의 반원(反元)개혁운동부터 이방원(1367~1422)이 왕권을 안정화시키기까지,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일어난 수많은 일들은 사극과 소설의 주요 소재로 쓰이기도 하였다. 1392년, 5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려(高麗)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이성계(李成桂, 1335~1408)의 ‘조선(朝鮮)’이 한반도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장하였다.조선은 이성계로 대표되는 신흥무인세력과 정도전으로 대표되는 신진사대부들이 힘을 합쳐 이룩한 나라이다. 즉, 성리학 사대부들의 머리로 무인세력의 힘을 이용하여 역성혁명에 성공한 것이다. 신진사대부들은 숭유억불(崇儒抑佛), 친명사대(親明事大)를 국가의 기본 방향으로 잡아 국가를 운영하였고, 그 중심에는 삼봉(三峰) 정도전( 1342~1398)이 있었다. 그는 전제개혁 당시에 모든 농민에게 모든 토지를 균등하게 무상분배하자는 계민수전(計民授田)과 노예해방을 주장하는 등, 현시점에서 봐도 급진적인 개혁을 주장하였다. 이방원은 신의왕후 한씨의 다섯째 아들로, 고려 멸망 전에 이성계의 세력을 모조리 숙청하려 하였던 정몽주(鄭夢周)를 기습적으로 참살하며, 조선 건국에 가장 공이 크다고 평가되는 인물이다. 이후 그는 제1, 2차 왕자의 난을 거쳐 제3대 왕 태종(太宗)으로 즉위하게 된다.이방원과 정도전의 갈등이 가장 표면으로 드러났던 시기는, 이성계가 신덕왕후 강씨의 막내아들인 이방석(李芳碩)을 세자로 지목했던 때였다. 이성계의 장자였던 이방우(李芳雨)가 조선 건국 1년 후에 사망하였으므로 장자 승계의 원칙이 불가능해졌고, 따라서 가장 공이 큰 아무런 공도 없는 이방석을 세자로 세웠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이에 대해 이성계의 설득으로 인한 정도전의 묵인 혹은 찬성이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하는데, 재상중심제를 이상적인 국가체제로 생각하는 정도전으로서는 강력한 절대왕정체제를 주장하는 이방원을 배척하고자 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방원은 결국 1398년, 기습적으로 경복궁을 점령해 정도전, 남은(南誾), 이방석 등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이방원과 정도전은 유교정치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뜻을 같이 하였으나,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주장하는 바가 달랐다. 이방원이 강력한 왕권을 전제로 하는 왕권중심의 체제를 주장하였다면, 정도전은 재상중심의 체제를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론에서는 이방원의 왕권중심주의를 효율성, 시대적 상황의 특수성의 측면에서 살펴볼 것이다. 이후 정도전의 재상중심주의를 그의 기본이념과 재상중심주의의 필요성의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따라서 이방원과 정도전이라는 두 인물로 대표되는 왕권중심주의, 재상중심주의 국가체제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주목할 것이다.Ⅱ. 이방원의 왕권중심주의Ⅱ-ⅰ) 시대적 상황이방원이 왕권중심의 정치를 주장하는 이유에 시대적·사회적 배경을 제외하고서 이를 논할 수 없다. 당시 ‘여말선초’의 시대적 상황에서, 고려의 주요한 종교였던 불교(佛敎)는 권문세족과 함께 타락해서 올바른 길로 나아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왕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였고, 이러한 체제를 뒤엎은 것이 이성계였다. 그렇기에 당시 혼란스럽던 시대가 원하는 정치상은 왕이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혁신적인 정책을 펴는 것이었다.이렇게 혼란한 시기에 권력을 잡은 이방원에게 가장 중요한 과업은 국가를 안정시키는 것이었다. 민심을 수습하고, 국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강력한 왕권을 중심으로 나라를 하나로 통합해야했고, 권력이 임금에게 집중되지 않고 신하에게 분산되면 그중에 반드시 간신이 나와 사회가 혼란스러워진다는 것이 이방원의 생각이었다. 따라서 나라의 기틀을 확립하는 게 무엇보다 우선이었던 조선 초에 정치체제를 채택하게 될 경우, 가장 큰 장점은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하나의 개체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시발점이자 종착점이 된다. 따라서 왕권중심제는 재상중심의 정치와 같이 여러 명의 재상이 문제를 가지고서 이에 대해 논하고 결정을 내려, 그것을 최종 관리자인 왕에게 승인을 받아야하는 체계보다 시스템이 돌아가는 효율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또한 정도전이 재상중심의 정치를 주장했던 핵심적인 이유는 ‘모든 국정의 운영이 왕이라는 한 개인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자질이 우수하지 못한 군주가 나와 독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이것은 분명 왕권중심의 정치에서 나올 수 있는 치명적인 단점이지만, 정도전의 재상중심의 정치 역시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우선 정도전이 주장하는 재상중심의 정치를 보면, ‘재상은 나라의 작은 일까지 모두 도맡아서 처리하면서도 어디까지나 임금을 받들고 보좌하는데 그칠 뿐이며, 무거운 책임이 부여되면서도 자신의 공을 내세울 수 없는 존재이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재상권이 강해지면 편을 나누고, 더 많은 권력을 획득하려는 사람들은 많았어도 정도전의 주장처럼 왕을 보좌하는 역할만을 자처하는 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정도전의 재상중심주의에 가장 부합했던 재상은 정도전 자신이었으며, 이는 그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이론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재상중심의 정치 또한 현실화하기 힘들뿐더러, 한 사람의 재상에게 많은 것들을 일임해야하기 때문에 그 한계를 가진다.Ⅲ. 정도전의 재상중심주의Ⅲ-ⅰ) 정도전의 기본이념고려의 멸망의 핵심적인 이유는 권문세족과 지방호족들의 부정부패와 수탈로 인한 것이다. 따라서 조선왕조로의 교체는 그 어느 때보다 자연스레 진행이 되었고 고려왕조의 유산도 대부분 계승하였다. 동시에 고려시대의 문제점도 자연스럽게 새로운 조선왕조가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숙제였을 것이다. 이전 왕조에 대해서 정통성과 명분을 가지고 차별화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문제점들을 해결하적 성취를 위한 노력과 함께 일반 백성들의 고통도 체험하였다. 바로 이 경험들이 그의 정치사상을 성립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정도전의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의 상권 치전을 보면 ‘인군(人君)은 하늘의 직무를 대신하여 하늘의 백성을 다스린다’고 나와 있다. 또한 주례(周禮) 를 인용한 삼봉집(三峯集) 에서는 ‘임금이 백성의 숫자가 기록된 문서를 받을 때 절하면서 받는 것은 그 하늘을 중히 여기는 까닭’이라 나와있다. 즉, 정도전은 백성이 군주의 소유물이 아닌 ‘하늘의 백성’이며, 이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군주가 하늘을 대신하여 한다는 것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 말은 왕권을 제한하고 정치적인 균형을 달성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으로써, 정도전이 주목한 맹자(孟子)의 민본사상(民本思想)과도 연결이 된다. 다시 말해서 정도전은 국가와 정치가 사적인 영역이나 활동이 아닌 공공의 영역임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정도전의 사상은 재상을 정점으로 하는 ‘재상중심체제’라는 국가관으로 귀결되었다.A-1) “재상은 위로는 임금을 받들고, 아래로는 모든 관리를 통솔하며 만민을 다스린다. 따라서 그 직책의 권한이 매우 크다. 임금의 자질에는 어리석은 자질도 있고, 현명한 자질도 있으며, 강력한 자질도 있고, 유약한 자질도 있어서 한결같지가 않다. 재상은 임금의 아름다운 점은 따르고 나쁜 점은 바로잡으며, 옳은 일을 받들고 옳지 않은 것은 막아서, 임금으로 하여금 균형을 잡도록 해야 한다.”『조선경국전』 ‘총서’A-1를 보면, 재상은 위계상으로 왕의 바로 아래에 있는 제 2인자로서 위로는 왕을 보필하고 아래로는 백관(百官)을 통솔하고 만민을 다스리는 사람이다. 여기서 왕을 도와준다는 것은 왕의 명령과 의지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왕의 옳은 일은 적극 행하되 옳지 않은 일은 끝까지 거부하여 막음으로써 왕을 옳은 길로 인도해야함을 뜻한다. 그러므로 재상이 모든 일을 단독으로 처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의 성격에 따라 대부분의 사안은 재상이 결정할 수 있게 된다..세운 숙청 등은 조선 전기의 정치적 안정을 가져왔고, 세종시대에 조선이 전성기를 누릴 수 있도록 한 기반을 마련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왕조 체제에서는 정치적 권력에 왕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에 왕의 자질에 크게 의존되는 경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기본적으로 왕은 직계(直系)뿐만 아니라 방계(傍系)에서도 나올 수가 있는데, 방계를 활용한 왕권강화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중동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극소수의 왕국들처럼 방계까지 정치활동에 적극적이라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검증을 받아 선발된 인물들과의 능력이나 모집단의 범위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그리고 위의 사례는, 유목민족 국가의 특성상 쉽게 와해되고 지속성이 약하기 때문에 왕조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 나온 것으로써, 조선과 같은 정착민 국가의 현실에는 맞지 않는 것이다. 동서양의 구분 없이 다른 정착민 국가에서도 방계는 주로 직계와 달리 차별대우를 받았는데, 왜냐하면 이들이 왕권강화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왕권중심의 정치를 위해 직계만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에는, 그 모집단의 범위는 더 좁아질 수밖에 없는 한계점을 안고 있다.또한 근본적으로 이방원 개인의 능력이 출중했기 때문에 왕권중심의 정치가 가능했던 것인데, 이러한 체제는 이방원과 같은 인물이 계속해서 왕으로 나올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 가장 큰 한계이다. 왕이란 세습되는 지위이기 때문에 개인의 자질에 따라 국정운영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좋은 왕이 나올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왕이 나올 수도 있고, 최악의 상황에는 폭군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왕권중심체제가 왕으로부터 직계로 일이 처리되어 효율적일 수 있지만 그 권한이 암군(暗君)이나 폭군에게 주어진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이렇게 동서양과 시대를 막론하고 무능력하거나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는 왕이 나왔을 때의 폐단은, 항상 국가의 위기였으며 국가의 존속마저도 위태롭게 하였다. 조선도 기본적으로 왕이 존재하는 이다.
    인문/어학| 2015.05.07| 6페이지| 2,000원| 조회(379)
    미리보기
  • 정몽주와 정도전 토론ppt
    ..PAGE:1고려냐, 조선이냐..PAGE:2정몽주는(1337~1392) 경상도 영천에서 태어났습니다.그는 과거의 삼장에 이어 장원을 차지하여 이름을 떨치고 학자 이색의 문하로 정도전과 수학했습니다.스승 이색은 정몽주를 평가하기를 "학문에서 어느 누구보다 더 부지런했으며, 가장 뛰어났고 그의 논설은 이치에 맞았다" 라고 칭찬하면서 우리나라 성리학의 창시자로 평가하였습니다.다섯 살 아래의 후배인 정도전도 존경의 마음을 표했으나, 역사의 선택은 그들을 서로에게 칼 끝을 겨누게 되는 적으로 만들어버리게 됩니다.정몽주 그는 누구인가?..PAGE:3정몽주는 고려에 들어온 성리학을 빠르게 이해하고 소화한 학자이기도 하지만, 명나라나 왜국의 외교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한 외교가이기도 합니다.친명 노선이었던 공민왕이 갑작스럽게 시해된 뒤 친원파들이 명나라 사신들을 죽이는 사건까지 일어나게 되자 명나라와의 관계에 문제가 발생했을 당시 정몽주는 정확한 해명을 하여 두 나라의 신뢰를 회복하고자 하는 주장을 펴 전란의 위기를 해소하게 됩니다.정몽주 그는 누구인가?..PAGE:4정몽주는 명나라와 전쟁을 주장하는 최영파와 외교적으로 해결하자는 이성계파가 나뉘었을 때 이성계와 의견을 함께 하였습니다.그러나, 이성계를 왕으로 세우려고 하는 움직임이 분명해지자 더는 같은 길을 갈 수 없다고 판단합니다. 고려왕조는 지켜야 한다는 게 정몽주의 신념이었습니다. 역성 혁명을 꿈꾸는 이성계와 정도전은 이제 정몽주의 적이 됩니다.정몽주 그는 누구인가?..PAGE:5정도전은 22살 때 충주사록에 임명되며 관직 생활을 시작합니다.그러나 공민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시련이 다가오게 됩니다.공민왕 이후 우왕이 즉위하게 되는데, 우왕은 정도전과 정치적 성향이 달랐고 결국 원나라 사신의 마중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유배 생활을 합니다.정도전 그는 누구인가?..PAGE:6유배생활 중 관직에 다시 등용된 정도전은 이성계의 추천으로 인해 성균대사성으로 임명됩니다.위화도회군으로 이성계가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하게 되며 정도전의 야망은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 때 정몽주를 중심으로 한 온건세력,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개혁세력이 있었습니다. 이성계는 이미 개혁세력이 되어 있었습니다.그리고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피살되면서 이성계의 시대가 오게 됩니다.
    인문/어학| 2015.04.30| 9페이지| 2,000원| 조회(867)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4
4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1
  • A좋아요
    3
  • B괜찮아요
    0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05일 화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8:29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