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의철학적이해 REPORT김성희 교수님2012.11.7.水.경영대학 경영학부 2012025275 김영민2010년 5월 21일 벤터(John Craig Venter) 박사의 연구팀은 과학학술지 를 통해 화학물질과 효모 등을 이용하여 ‘마이코플라즈마 마이코이즈’ 박테리아 유전자를 제작한 후, 다른 박테리아(마이코플라즈마 카프리콜룸)에 삽입해 번식하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유전자를 조작한 수준이 아니라 ‘제조’했다는 점에서 생명공학 연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임과 동시에, 신의 영역으로 간주되며 신성시 되어왔던 ‘창조’가, 인간에 의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현대 과학 기술의 영향력이, 인간을 신과 대등한 위치에 서게 할 정도가 된 것이다.하지만, 과학 기술의 영향력이 이렇게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정도로 커지면서, 그에 따른 사회의 우려 또한 커지고 있다. 생명 공학과 윤리 문제는 이러한 우려의 대표적인 예이다. 실제로 벤터 박사는 자신의 연구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윤리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인공생명체’ 대신 ‘인공 세포’를 합성했다고 주장하면서, 생명체든 세포든 “신약이나 바이오연료 또는 다른 유용한 물질을 만드는 데 이용할 수 있다”고 역설하기도 했다.에단 호크와 주드 로가 열연한 영화 )는, 벤터 박사의 연구와 같은 현대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생명 공학과 윤리 문제에 대해 함의하는 바가 크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그리고 있는 의 세계는 인간 유전자의 비밀이 모두 밝혀진 세계이다. 인류는 유전자 코드만으로 인간의 특성을 분석할 수 있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는 운영된다. 유전자로 인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존재하지만, 사회의 모든 중요한 일은 인공수정을 통해 부모의 가장 우수한 유전자만을 물려받은, 완벽한 신인류만의 몫이며, 상대적으로 열등한 형질을 가질 수밖에 없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태어난 아이들은, 미래 사회에서 그들은 '사회 부적격자'로 낙인찍혀 사회에서 배제된 채로 살아간다. 영화는 제도를 통해 모든 가능성을 배제해 버린 극도로 통제된 사회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부적격자’라는 운명을 부정하고, 유전자 코드의 해석대로라면 불가능한 꿈을 이루어 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준다.우생학을 통한 인류의 ‘개선’과, 하등한 인간을 이끌어 줄 초인의 등장을 보여주는 는, 얼핏 보기에 우생학의 아버지 프랜시스 골턴이 꿈 꿨던 이상적인 세계 같다. 그러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영화는 꿈의 세계의 부조리한 면을 면밀히 파헤친다. 폭력적 성향의 유전자 코드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적격자가 무자비한 살인범으로 밝혀지고, 월등한 신체 능력을 지니고 태어난 신인류가 부적격자인 주인공과의 수영 시합에서 패하기도 한다. 후천적인 요인을 무시할 만큼 유전자의 힘은 절대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영화 외에서도 종종 비슷한 사례들을 접한다. 베토벤은 청력을 잃고 나서 오히려 그의 가장 깊은 통찰이 담긴 최고의 걸작이라 평가되는 역작들을 남겼으며, 고흐는 정신적 질환으로 고통 받으면서도 미술사에 큰 획을 그었다. 반면, 누구보다도 우수한 지능 지수를 가지고 있었던 빅터 세리브리아코프)는 환경의 규정에 의해 긴 세월을 ‘바보’로서 살아가야 하기도 했다.그렇다고 해도 우생학의 유혹은 떨쳐버리기 쉽지 않다. 영화 속의 살인범은 폭력적 성향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지 않았지만, 유전자 코드에서 폭력성을 지우는 일은 결론적으로 사회 전체의 폭력을 줄일 것이고, 동일한 노력이 있었다면 월등한 신체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신인류가 수영 시합에서 질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의 주인공이 우수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다면, 조금 더 쉽게 그의 꿈을 이룰 수 있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 또한 누구나 해볼 수 있다. 베토벤과 고흐의 경우 ‘천재’라고 불릴 정도로 아주 드문 경우이고, 그들이 장애를 앓지 않았다면 더욱 위대한 거장으로 기록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빅터 세리브리아코프는 교육과 교육자의 실패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더군다나 아이가 보다 좋은 형질을 타고 나기를 부모가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지 않은가.우생학이 그것의 은혜를 입지 못한 사회의 소외 계층을 배제한다면, 그들의 존재를 지워버리면 된다. 과거 나치의 만행을 되풀이하자는 것이 아니다. 와 같이 아이가 부모의 우열한 형질만을 물려받을 수 있게 된다면, 제도의 도움을 통해 신인류만이 태어나도록 제한할 수 있다. 경제적·사회적 지원은 이를 보다 원활히 할 것이다. 과도기를 거치며 현인류와 신인류는 갈등하겠지만, 시간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고, 이것은 인류의 위대한 발걸음을 위한 작은 희생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