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 만나는 새로운 삶을 읽고24시간 후에 내가 죽는다면개요·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의 마음을 생각해본다.· 죽음이란 것을 깨닫고 그에 대한 자세를 키워 내가 원하는 죽음을 제시한다.· 삶과 죽음에 있어서의 네 가지 과제를 읽고 죽음에 대해 준비한다.주장어리다고해서 죽음을 망각하고 살아선 안 된다.“안타깝게도 xxx 씨는 오래 살지 못 할 것입니다.”라고 의사가 나의 죽음을 알려주었다. ‘살 수 없다.’이것은 즉 죽는다는 것이다. 물론 가정이지만, 죽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또 그 말을 들었을 나는 어떤 기분이 들까? 2가지로 나뉠 것이다. 이미 죽음이 다가왔다고 생각하여 처연히 그 말을 기다리고 있는 것과 온갖 슬픔을 참지 못하고 좌절에 빠져 심신이 더욱 더 약하지는 것이다. 아마 나는 전자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 아직 내가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거나 나와는 거리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엄청난 충격과 슬픔이 내 몸과 마음을 지배하여 나를 더욱 더 일으키지 못 하게 할 것인데, 이미 죽음을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무엇부터 준비해 나가야할 지 엄두도 못 낼 것이다. ‘내 인생을 한 번 돌아볼까?’, ‘모든 친지들과 인사를 나누어야 하나?’, ‘내가 지금 가진 것은 무엇이 있는가?’등등 온갖 생각이 내 머리 속에서 맴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간에도 난 죽어가고 있고, 내 몸은 여전히 아프며, 정신은 극도의 불만에 휩싸여 있을 것이다.여기서 난 나의 ‘죽음 길’이라는 길을 만들어야만 한다.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의 죽음을 이끌어 가야할 지 생각해야 하는데, 그 중 가장 우선시 되는 공사는 바로 괴로움 속에서 긍정적인 방향을 찾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 만나는 새로운 삶」에 나타나 있는 문구 중 ‘우리는 삶 자체를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에 대한 우리의 태도나 반응을 통제할 수 있다’가 있다. 이 긍정적인 마음이 죽음이라는 알 수 없는 두려움까지도 깨닫게 해주는 힘을 만들어 줄 수 있고, 내가 살았던 이 세상에 대한 소중함을 한 층 더 느끼고,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로써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을 조금씩 버리며 ‘좋은 아침’을 바라고 내 영혼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막상 영혼이라 하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개념이 애매모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어려운 대상인 영혼을 쉽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명상’이다. 처음에 명상이라는 단어를 책에서 보고는 단순히 심호흡하고 편안하고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매일 매일 하라고 책에서는 나타내는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 명상이 개인의 인생 전체를 안정되고 활기차게 해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 그리하여 제대로 된 명상의 개념을 느끼고 나서 조금이나마 죽음에 대한 명상의 이해를 가질 수 있었고, 당장 내일 죽는다고 하더라도 나 자신은 괴롭지 않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런 마음이 바로 ‘열린 마음‘인데, 참된 나를 보여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 ’참된 나‘를 알아야 죽음에 두려워하지 않고 내 신체와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바라는 죽음이지만 사실 막상 이렇게 책 내용을 읽고 무언가 깨달은 척 적는 것으로 죽음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막연한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실제로 주변사람들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이 내일 내가 죽는다 하더라도 조금이나마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앞으로 정신없이 세상을 향해 뛰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인생을 살아가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진정한 내 자신에 대한 사랑과 내 주변에 있는 타인에 대한 사랑이 가장 중요히 느껴졌고, ‘내가 나와 내 주변사람들에게 잘해줬나’는 의구심도 들었다. 사실 내 주변에서는 20살이 되기 전에 죽은 친구들이 많다. 오토바이를 타다가 죽은 친구들이 3명이나 있고, 차 사고로 죽은 친구들이 2명이나 있다. 또 일찍이 암에 걸려 먼저 떠난 친구도 있다. 정작 그들에게 내가 해준 것이라고는 간간히 찾은 병문안과 그들이 죽은 후 참여한 장례식 정도가 전부이다. 그들의 부모님과 아픔을 같이 나눈 것은 있어도 환자인 친구들의 아픔은 진정 함께 느끼지 못했다. 결국 내가 내일 죽는다는 가정에서, 나의 아픔을 아무도 느끼지 못할 것이고, 단순히 내가 죽었다는 사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도만이 전부일 것이다. 그리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남들의 죽음과 괴로움에 진심으로 다가가 그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치유해주고 도움을 주어야 나의 죽음이 다가왔을 때에도 홀로 외로움을 씹지 않고 먼저 간 친구들의 영혼과도 교감하며 편히 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곳에서 영혼이라는 개념이 쉽게 받아들여지고 가장 잘 느껴진다.
벨킨 이야기를 읽고19세기 러시아 청년의 모습과 나의 모습 비교개요· 실비오와 나의 비교를 통해 19세기 러시아 청년들을 살핀다.· 부르민의 행동을 통해 나의 성격과 결혼관을 집어본다.· 아드리안, 두냐, 게르만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19세기 러시아 청년과 나를 비교하고 그들의 특징을 발견한다.· 알렉세이의 사상과 현대 사회에 사는 나의 사상을 비교하고 그를 통해 19세기 러시아 청년의 전반적인 모습과 나의 모습을 평가한다.주제 : 그들과 나는 한 가지를 제외한 나머지는 비슷한 열정이 가득한 청년이다.본문「벨킨 이야기」를 읽으면서 19세기 러시아 청년들을 볼 수 있었고, 그 속에 있는 몇몇 인물들에 대해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다른 인생을 살았지만 공통점이 많은데, 그것은 자유와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다.‘결투’의 실비오는 자존심이 강하고, 지기 싫어하는 모습, 그리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모습이 나와 비슷하다. 그러나 나는 그와 같이 목숨을 걸면서까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대담한 행동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결정적인 순간에 소시민이 되는 나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고, 그래서인지 ‘결투’의 실비오는 전형적인 낭만주의 러시아 청년이다.‘눈보라’에서 눈보라로 인해 마리야를 만나게 되는 부르민, 그는 눈앞에 있는 미녀를 가만히 두지 않고 운명의 장난을 치게 된다. 사랑하지 않는 여인을 단지 예쁘단 이유로 혼인을 맹세하는 것을 굳이 이해하라면 하겠지만 너무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19세기 러시아에서의 결혼은 신분에 따라 다양하지만 귀족은 귀족끼리 평민은 평민끼리, 그리고 귀족 안에서도 비슷한 상대가 아니고서는 원하는 상대와 이루어질 수도 없었고, 정략 결혼이 흔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로운 연애와 정열적인 사랑을 원했던 19세기 러시아 청년들의 행동은 본능에 충실한 것이다. 그런 본능이 나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고, 그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또 하나의 이유인 것이다. 그러나 그 본능을 추구함으로써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서는 자신의 안락한 삶을 위해 고객의 죽음을 바라는 장의사 아드리안, 자신의 사랑과 지위상승을 위해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아버지를 버린 역참지기의 딸 두냐, 자신의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노 백작과 리자를 희생시킨 게르만, 이 세 사람이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이 이기적인 모습은 나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자유와 욕구를 위해서 행하는 것은 같다. 그러나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루어내는 능력을 가졌지만 추상적이고 소극적인 나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말괄량이 아가씨’의 남 주인공인 알렉세이는 푸쉬킨이 표현한 인물 중 가장 이상적인 모습과 사상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귀족임에도 농부처녀와 사랑에 빠지는 개방적인 인물이며, 귀족들의 가증스러운 모습에 부정적인 표현을 한다. 또 그는 좋고 싫음이 분명한 얼굴의 소유자인데, 그와 내가 비슷하다고 느끼는 부분이고 또 그는 싫은데 좋은 척 해야 하는 상황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와 내가 비슷한 것이 솔직함이라면, 차이점은 사랑에 대한 열정도이다. 개인적으로 그가 실제로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이루길 바랐지만, 작가의 인식도 그 정도는 아니라 주인공 설정을 귀족아가씨로 한 것이라 예상한다. 실제로 당시 사회에서 귀족이 농부와의 결혼을 원하면 평민 신분으로 전락했고, 이후의 삶은 엄청나게 가혹했다. 나는 신분이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어서인지, 그런 것을 느낀 적이 없어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다. 알렉세이는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 비해 사랑에 대한 열정이 강하게 있다.
명이대방록을 읽고황종희의 머릿속을 읽고 생각하는 한국의 현재개요· 황종희가 생각하는 군주의 모습과 내가 생각하는 군주의 모습을 비교한다.· 제 2장에 나오는 ‘신하란 무엇인가’를 읽고 한국의 국회의원을 생각해본다.· 한국이 풀어야 할 과제를 「명이대방록」을 통해 제시해본다.주제 : 실용(實用)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현혹하는 현재 한국의 정치상황처음 「명이대방록」을 접했을 때의 느낌은 아직 잊지 못한다. ‘아 어렵다.’, ‘난 이걸 다 읽고 무엇을 느꼈지?’ 이런 생각이 들면서 답답한 심정이 밀려왔고, 그 답답함 때문에 몇 번이고 읽어 보았지만 느낀 것 이라고는 단순히 황종희라는 사람은 망해가는 조국이 실수 하고 있는 것과 어떻게 해야 좋은 나라가 되는 건지 서술한 것,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경세치용이라는 실학사상은 가까이에 있는 우리 역사 조선시대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고, 현대사회가 말하는 빠르고 정확한 일 처리가 생각이 났다. 즉 시대가 엄청나게 변했지만 그의 사상과 현대의 사상이 비슷한 부분도 많다는 것이다. 황종희는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 즉 성악설을 지지한다. 하지만 백성들의 공리를 추구하는 사람이어야 하는 군주는 이기적일 수 없다. 하지만 황종희는 그 당시 군주가 그랬기 때문에 ‘군주란 무엇인가’를 적었다고 느낀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또한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인간은 이기적이고 그런 인간 중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을 선출한다. 그러므로 자기중심적으로 정책을 운영하고 자신의 주변인들에게만 이익이 되는 정책을 국민들을 속이면서 배후에서 진행하게 된다. 그렇게 때문에 대통령은 국민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다 줄 뿐만 아니라, 임기 후 항상 법원에서 비리에 관한 조사를 받고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된다. 황종희가 생각하는 군주란 유능하고 도덕성을 두루 갖춘 재상을 한 사람을 두고, 그 재상으로 하여금 또 유능한 신하들을 등용하게 한다. 국정 운영을 신하들이 주로 하고 군주는 그 것을 최후에 받아들일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인지를 판단한다. 현 시대로 앞의 문장을 이해하자면 소위 말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것과 같다. 의미는 다르지만 신하는 한국으로 보자면 국회의원이고, 군주는 대통령이다. 국정 운영은 행정부에서 최소한의 간섭을 하고, 다른 기초적인 질서유지, 국민의 안전보장만을 생각하는 완전한 3권 분립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니 ‘시대를 앞서나갔다.’ ‘동양의 루소다.’ 이런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군주는 국민에게 권리를 부여받고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므로 원칙적으로 국민의 안전과 평화를 유지해주고 그 다음 세부적인 국정 운영에 간섭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는데, 현재 정부는 유능하다는 사람들이 모여서 한다는 것이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것과 자신의 이익을 어떻게 하면 더 크게 부풀릴지를 생각하고 있다. 즉 권력쟁취만을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갈등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모든 국민의 마음에 드는 정책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군주라는 존재는 영원하지 않으므로 그런 갈등을 조금씩 줄여가면서 다음 군주에게 모범이 되고, 또 그것이 계속 전승되는 현상이 발생해야 좋은 사회가 될 수 있다.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훌륭한 신하가 뒷받침을 해주어야 한다. 그가 「명이대방록」에 쓴 말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이 신하는 군주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만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인데 마음에 든다고 표현한 이유는 현재 한국에서 정치하는 국회의원을 보면 그렇다. 그들의 정당에서 대통령이 선출되면 그 대통령을 지지했던 의원들은 바로 장관직이나 높은 특정직 공무원이 된다. 유능함은 뒷전이고 측근이었다는 이유가 가장 큰 것이다. 물론 측근이기 때문에 소통도 잘 되고 원활한 국정 운영이 될지도 모른다. 허나 지금의 상황을 보면 부정적인 대답밖에 나오지 않는다. 황종희는 ‘신하가 천하를 위해 일한다면 군주의 스승이나 벗이다. 그러나 천하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면, 그는 군주의 노예이다.’고 말한다. 천하를 위해 일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군주가 진심으로 백성을 위하고 나라의 평안을 유지할 수 있게 바른 말을 하는 것이 천하를 위한 일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군주에게 잘 보이는 것이 천하를 위하지 않는 일이다. 당시에는 천자의 자손이 황제가 되어 현명하지 않더라도 나라를 이끌어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바른 말을 했다가 목이 날아가는 신하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는데도, 좋은 정치를, 국민과 나라의 평화를 실현 할 수 있는데도 나라를 위한 신하인 국회의원, 공무원 등의 사람들은 그런 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진정 나라를 위해 그런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면 윤리의식이 남들과 달라야 하고, 그런 쪽의 과목시험도 강화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