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문화유산답사 기행(유럽 배낭여행 계획)담당과목 : 유럽 문화유산답사 기행담당교수 :학과 :학번 :이름 :제출날짜 :1.목차① 테마의 목적 ‥‥‥‥‥‥‥‥‥‥‥‥‥‥3쪽② 목적지에 대한 사전정보2-1. 여행일정 ‥‥‥‥‥‥‥‥‥‥‥‥‥‥ 4~5쪽2-2. 경비(숙박비, 항공비, 입장료비 등) ‥‥‥‥‥ 6쪽2-3. 준비물 ‥‥‥‥‥‥‥‥‥‥‥‥‥‥‥ 7,8쪽2-4. 숙박 ‥‥‥‥‥‥‥‥‥‥‥‥‥‥‥‥9쪽③ 나라별 정보3-1. 프랑크푸르트 ‥‥‥‥‥‥‥‥‥‥‥‥10, 11쪽3-2. 뮌헨 ‥‥‥‥‥‥‥‥‥‥‥‥‥‥‥‥12. 13쪽3-3. 퓌센 ‥‥‥‥‥‥‥‥‥‥‥‥‥‥‥‥14쪽3-4. 프라하 ‥‥‥‥‥‥‥‥‥‥‥‥‥‥ 15, 16쪽3-5. 빈 ‥‥‥‥‥‥‥‥‥‥‥‥‥‥‥ 17, 18쪽3-6. 베네치아 ‥‥‥‥‥‥‥‥‥‥‥‥‥‥19, 20쪽3-7. 피렌체 ‥‥‥‥‥‥‥‥‥‥‥‥‥‥ 21, 22쪽3-8. 피사 ‥‥‥‥‥‥‥‥‥‥‥‥‥‥‥‥ 23쪽3-9. 로마 ‥‥‥‥‥‥‥‥‥‥‥‥‥‥‥‥ 24, 25쪽3-10. 남부(나폴리, 폼페이, 소렌토) ‥‥‥‥‥ 26,27쪽3-11. 아말피 ‥‥‥‥‥‥‥‥‥‥‥‥‥‥‥ 28쪽3-12. 밀라노 ‥‥‥‥‥‥‥‥‥‥‥‥‥‥‥ 29쪽3-13. 취리히 ‥‥‥‥‥‥‥‥‥‥‥‥‥‥‥ 30, 31쪽3-14. 인터라켄(알프스) ‥‥‥‥‥‥‥‥‥‥‥ 32쪽3-15. 제네바 ‥‥‥‥‥‥‥‥‥‥‥‥‥‥‥ 33, 34쪽3-16. 바로셀로나 ‥‥‥‥‥‥‥‥‥‥‥‥‥‥ 35, 36쪽3-17. 파리 ‥‥‥‥‥‥‥‥‥‥‥‥‥‥‥‥ 37~41쪽3-18. 런던 ‥‥‥‥‥‥‥‥‥‥‥‥‥‥‥‥ 42쪽3-19. 맨체스터 ‥‥‥‥‥‥‥‥‥‥‥‥‥‥ 43쪽3-20. 글라스톤베리 ‥‥‥‥‥‥‥‥‥‥‥‥ 43쪽④ 여행 시 주의사항 ‥‥‥‥‥‥‥‥‥‥‥‥‥‥‥ 44쪽1. 테마의 목적이번 여행의 테마와 목적은 배낭여행, 맨체스터유나이티드 홈구장 방문, 락 페스티벌 입니다. 4학년인 현재 취업을 한 후에 직장인이 되어서는 시간이 없어 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항상 들었습니다입장료가 무료이다.②호프브로이 하우스바이에른 왕실의 지정 양조장이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 홀이다. 1589년 빌헬름 5세에 의해 설립되었고, 1830년부터 일반인들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대표적인 상품은 델리케이터라고 하는 독한 맥주이며, 하루에 팔리는 맥주의 양이 1만 리터나 된다고 한다. 히틀러가 나치스의 전신인 독일 노동자 집회를 이 맥주 홀에서 열었으며, 직접 연설을 했다고 한다. 1층은 독일식 전통 맥주 하우스로, 또한 2층은 저녁 식사를 겸해서 일반인들이 사교춤을 출수 있는 무도회장으로 각각 이용되고 있다. 무대에서는 바이에른 여성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폴카춤을 추기도 하고, 국적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함께 흥에 겨워 노래를 합창하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③뮌헨 신 시청사높이는 85m에 이른다. 시내의 중심인 마리엔 광장에 위치한다. 지붕 한가운데에 가늘고 높은 시계탑이 솟아 있는 신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다. 세련되고 예술적인 감각이 돋보인다. 겉모습만 봐서는 수백 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것 같지만 실제로는 100여 년의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신 시청사 탑에서는 뮌헨의 아름다운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중앙의 종루에는 독일 최대의 특수 장치 인형 시계인 글로켄슈필이 매일 오전 11시에 10분간 작동하며, 5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는 정오 12시와 오후 5시에도 볼 수 있다. 사람 크기만한 인형들이 출연하는데 처음에는 빌헬름 5세의 결혼식 가운데 실감나는 기마전이 한바탕 벌어지고, 다음에는 1517년 페스트가 만연해 외출금지되었을 당시 페스트가 없어짐을 알리고 사람들이 이를 기뻐하며 신나게 춤추는 모습 등을 아주 실감나게 묘사해서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④님펜부르크 궁루트비히 3세에 의해 베르사유 궁전을 본따 건립된 독일 최대의 궁전으로, 1918년 왕권이 붕괴되기 전까지 바이에른 왕이 여름 별궁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분수를 중심으로 좌우 대칭으로 꾸며 놓아 바로크 건축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루이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이 이 지역의 일부분을 파괴하자, 1818년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2세가 개인정원 조성을 지시하였다. 총설계는 루드비히 레미(Ludwig Remy)가 맡았으며, 궁정정원사인 프란츠 안토이네가 집행하여 1819년 완성하였다. 1919년까지는 일반에 개방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빈 시내의 호프부르크 왕궁과 국립오페라극장 사이에 있으며, 총면적은 3만 8000㎡이다. 호프부르크 왕궁, 국립오페라극장, 링(Ring) 순환도로쪽으로 각각 문이 나 있다. 도심 한복판에 시골 느낌이 나는 정원이 자리잡고 있다고 하여 도심 속 오아시스로 표현된다.괴테상(像)과 모차르트·프란츠 2세·프란츠 요제프 1세의 기념비 등이 있는데, 모차르트 기념비 앞에는 파란 잔디 위에 빨간 꽃으로 심은 높은 음자리표가 있으며 그 앞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항상 기다리고 있다. 정원 안에는 1901년 문을 연 커피집 버터플라이하우스가 있는데, 수백 마리의 열대나비들이 열대기후와 똑같은 환경 속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다.3-6. 베네치아①곤돌라곤돌라는 이탈리아말로 ‘흔들리다’라는 뜻을 가진다. 길이 10m 이내, 너비 1.2∼1.6m이다. 관광객 유람용으로 이용되는 곤돌라는 고대의 배 모양을 본떠 만들었는데, 배의 앞과 끝이 휘어져 올라가 있다. 중앙의 지붕이 낮은 객실에 5∼6명을 태우고, 선수와 선미에서 두 사람의 뱃사공이 3m 정도의 긴 노를 젓는다. 베네치아시는 운하가 도로의 역할을 하는 수상도시이어서 곤돌라는 11세기경부터 시내의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사용되었다. 16세기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야채와 식료품 등도 운반하였으며, 그 수는 약 1만 척에 달하였다. 배의 색채는 1562년 베네치아 시령(市令)에 따라 검은색으로 통일되었다. 오늘날은 모터 보트의 보급으로 겨우 수백 척 정도가 남아 있다.②산마르코 대성당2명의 상인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가져온 성마르코 유골의 납골당(納骨堂)으로 세워진 것(829~832)이다. 그 후 성마르코는 베네에서 따온 여러 장면들을 새겨 놓았다. 신랑 천장에는 갈릴레이가 '진자의 법칙'을 발견하는 계기를 얻었다는 램프가 걸려 있다.종탑은 1173년 착공하여 14세기 중반 완성하였으며 바깥 둘레의 지름 17m, 높이 55m이다. 원통 모양으로서 탑 안쪽은 비어 있다. 맨 위층에는 종을 매달아 놓았으며, 층마다 원기둥으로 된 콜로네이드 회랑이 둘러싸고 있다. 착공 직후부터 지반 침하로 기울어지기 시작하여 1993년 납과 강철 케이블로 보강해 놓았다.1153년 건설한 둥근 모양의 세례당은 바깥벽 전체를 대리암으로 된 콜로네이드로 장식해 놓았다. 이곳에 있는 6각 모양의 설교단은 대리암 원기둥 7개가 받치고 있으며, 각 면에 수태고지를 묘사한 부조가 새겨져 있다. 광장 북쪽에는 1278년 세운 고딕양식의 네모꼴 무덤과 대주교관, 칼리타의료원 등이 있다. 1987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3-9. 로마①콜로세움정식으로는 ‘플라비우스 원형극장’이라고 한다. 플라비우스 황제 때 세워진 것으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하여 80년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에 완성하였다. 중세에는 ‘거대한 건축물’이란 뜻으로 쓰였다. 제정기(帝政期) 로마의 복받은 로마 시민의 오락시설로서, 여기에서는 글라디아토르(劍鬪士)의 시합, 맹수연기(猛獸演技) 등이 시행되었다. 직경의 긴 쪽은 188m, 짧은 쪽은 156m, 둘레는 527m의 타원형이고, 외벽(外壁)은 높이 48m로 4층이며, 하단으로부터 도리스식(式)·이오니아식·코린트식의 원주(圓柱)가 아치를 끼고 늘어서 있다. 내부는 약 5만 명을 수용하는 계단식 관람석이 방사상(放射狀)으로 설치되어 있다. 콜로세움의 명칭은 근처에 네로의 거상(巨像:colossus)이 있었던 데에 유래한다.②콘스탄티누스개선문로마의 포룸 로마눔 근처에 있는 기념문으로 312년 콘스탄티누스 1세의 서로마 통일을 기념하여 원로원이 건조하여 315년 봉헌하였다. 높이 21m, 너비 25.7m, 안길이 7.4m로, 본체는감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②산타마리아델레그라치에성당르네상스양식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대표하는 건축물로서 성마리아성당이라고도 한다. 1463년 기니포르테 솔라리가 도미니크수도회의 지원을 받아 건설하였으며, 1492년 밀라노공작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의뢰로 도나토 브라만테가 증축과 개축을 하였다. 성당의 대식당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최후의 만찬》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브라만테는 성당에 삼각 모양의 박공벽이 있는 창을 내고, 위쪽에는 아치가 있는 바깥 회랑을 갖춘 둥근 천장을 얹었다. 반달 모양의 후진(後陣)이 있는 성당 성소 옆에는 아치가 있는 르네상스양식의 대회랑을 설치하였는데, 이 회랑은 솔라리가 만든 소회랑과 이어져 있다.수도사들의 대식당 북쪽 벽에는 가로 9.1m, 세로 4.2m 크기에, 예수를 둘러싼 12명의 제자를 그린 《최후의 만찬》이 그려져 있다. 이 벽화는 1498년 완성된 뒤 많은 부분이 심하게 훼손되었으나 20세기 이후 복원작업이 진행되었다. 1980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③브레라 미술관브레라가(街)에 면한 전통 있는 미술학교 건물의 상층에 설치되어 있으며, 1809년에 설립되었다. 건물은 17세기 중엽, 건축가 리키니의 설계로 만들어졌으며, 르네상스로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작품을 수장(收藏)하고 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성모자(聖母子)》, 라파엘로의 《성모의 결혼》, 베르니니의 《피에타》, 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 등은 특히 명성이 높다.④암브로시아나 미술관밀라노 대주교 페데리코 볼로메 추기경이 그의 수집품을 기초로 도서관과 함께 1618년에 창설하였다. 그 후 기증이나 구입으로 현재에 이른다.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그의 제자들의 작품을 모아 놓은 전시실이 유명하다. 레오나르도의 《코디체 아트란티코》를 중심으로 그의 작품으로 일컬어지는 《프란체스코 가프리노의 초상》, 제자 암브로조 데 프레디스의 《베아트리체 데스테의 초상》을 비롯하여 루이니의 《성(聖)안나》,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