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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속의 일본문화 - 한국 장례문화의 일본식 화장, 납골
    한국 장례문화의 일본식 화장火葬 ? 납골納骨 유입본 보고서에서는 대한민국에서 매장과 함께 보편적인 장법으로 선택되는 화장의 유례를 일본식 화장과 납골의 유입으로 바라보고, 화장을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일본의 장례문화와 그 유입과 자리매김 과정을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 내용 전반은 김시덕의 ‘한국 장묘문화에 있어 일본식 화장?납골의 영향과 그 문제점’에서 필요부분을 발췌, 요약하였다.한반도에서는 이미 선사시대에 화장(火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고, 불교전래 이후 삼국과 고려시대에는 매장(埋葬)과 함께 보편적인 장례방식이 되었다. 이후 고려 말에 유입된 “가례(家禮)”는 새로운 국가체제를 정립하기 위한 의례생활의 기본적인 이데올로기로 작용하였는데, 임진왜란 이후 초토화된 한반도에 성리학적 이데올로기에 입각하여 사회문화적 재편을 이루기 위한 훌륭한 도구가 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가례는 한민족의 의례문화를 구축하는 전통의 근간으로 자리매김 되었고, 장례법으로 규정한 정법인 매장은 한민족의 문화적 전통이라는 지위를 획득한다. 그 결과 고려시대까지 성행했던 화장은 불교와 함께 배척 대상이 된다. 화장이 재부상한 것은 19세기 말로, 일본거류민단에 의해 납골을 전제로 하는 일본식 화장이 비공시적으로 유입된다. 이후 일제강점기(1910-1945), 1912년 “묘지, 화장장, 매장 및 화장단속규칙”과 1934년 “의례준칙”을 통해 화장은 식민지 총독이 인정하는 공식적인 장법이 된다. 따라서 전통적인 화장이 이어진 것이 아니라 일본식 화장이 주류를 이루었다.화장은 그 유골에 최소 한 차례 이상의 처리를 가하는 복차장?이중장제의 특징이 있다. 크게 봉안 또는 장골하는 방법과 분골하여 자연에 뿌리는 산골로 나뉜다. 일본에서는 납골이 주된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화장 이후 납골묘로써 탑이나 당을 세우로 추모시설로 사용하기에 조상숭배라는 문화적인 전통을 실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화장은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처음에는 시신에 대한 부정관념으로 인해 마을과 도시 주변에 시신을 버렸다고 한다. 이것을 본 승려가 시신을 화장하여 깨끗하게 정화하는 일을 큰 공덕으로 여겼다고 기록되었다. 이 때 이루어진 화장은 분골을 강이나 산에 뿌리는 산골의 형태로 납골을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일본의 화장은 이미 에도시대(1603-1867)부터 존재했었고, 묘지가 일반화 된 것은 17세기 이후의 일이며, 화장 후 납골을 하는 묘제는 신도의 국교화가 이루어진 메이지 시대(1868-1912)의 일이다. 일본의 조상숭배관념과 신도가 결합하여 납골하는 묘를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일본의 석탑형 묘는 ? 인도의 솔도파(率堵婆)를 모방한 것이다 ? 전통적인 묘제인 양묘제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양묘제란 ‘시신을 매장하는 우메바카(埋墓)’와 ‘고인의 공양을 위헤 세운 마이리바가(參墓)’가 나뉘어진 형태로, 고인 한 사람에 대하여 2개의 묘가 존재한다. 이런 특이한 양태는 ‘사(死)의 부정(不淨)’에서 비롯되며, 고대와 중세에 존재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는 시신으로부터 유족들이 거리를 두고 청정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기게 했다. 하지만 조상은 숭배의 대상으로, 참배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집안의 부쓰단(?壇)과 함께 청정한 장소라고 생각되는 곳에 별도로 묘를 설치하게 되었다. 이처럼 양묘제는 영육 이중구조의 관념이 복합되어 나타난 것으로 일본 고유 신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메이지 6년(1873)에 이르러, 신도의 국교화정책은 화장을 금지했는데 당대의 반대가 심하여 메이지 8년(1875)에 이를 해제한다. 이 일은 화장 촉진의 계기가 되었다. 메이지 정부는 국가를 집의 연장선상에서 확대된 것으로 상정하고, 집의 안정화가 국가의 안정화로 이어진다는 의식을 만들어간다. 따라서 조상을 모시는 곳인 ‘불단’과 조상숭배의 실천을 위한 ‘참배묘’가 이에(家)의 계승을 위해 중요하게 여겨졌다. 따라서 화장 후 뼈단지를 납골하는 형태로 화장문화가 발달하게 되었고, ‘OO집의 묘’라는 공양묘가 전형화 되기에 이르렀다. 이후로도 ‘2개의 묘 전통’은 그 맥을 이어나갔고, 가족 등이 고인의 뼈를 나누어 가지는 분골 관습이나 형제간에 위패를 나누어 모시는 이하이와께(位牌分け) 등은 화장 후 납골문화 발전에 일조한 것으로 생각된다.다음으로 근대 이후 일본식 화장과 납골이 유입된 경로와 그 전개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우선 근대 이후의 화장이 조선시대에 단절되었던 우리의 전통이 부활하였다고 바라보는 시선이 가능하나, 전통적인 화장은 이미 조선시대 성리학적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매장에 밀려 완전히 단절되었고 근현대의 화장은 일본식 화장이 여과 없이 유입된 것이기 때문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일제강점기 하, 조선총독부는 1912년 6월 부령 제 123로 ‘묘지, 화장장, 매장 및 화장단속규칙’을 발표하였고, 묘지와 공동묘지라는 새로운 단어가 일본식 화장법과 함께 공식적으로 등장한다. 또한 1934년 ‘의례준칙’의 발포는 화장을 한국 상례의 한 요소로 인정하여 전통적인 상례와 장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전자의 경우, 외형적으로는 근대적인 법제의 효시, 시신의 위생적 처리, 오장방지 등을 목적하였으나 실제로는 우리 민족의 문화적 맥락과 전통을 의도적으로 말살한 것이라 반발이 심했으며, 그 결과 1920년 9월 조선총독부령 152호로 규칙을 대폭 개정하게 된다. 하지만 이 규칙으로 풍수지리적 명당을 찾는 등 개인묘지 선택권을 사라졌으며, 공동묘지 매장을 강요당한다. 따라서 불교신자들은 차라리 화장하여 산골하거나, 낮에는 공동묘지에 장사하고 밤에는 이장을 하는 등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한반도에서의 초기 화장은 주로 일본인 자신에 의해 이루어졌다.화장의 도입에는 재한 일본거류민단의 영향이 존재한다. 초기 약 20년 동안은 화장장이 없어 양화진, 한강 제방등에서 노천화장을 하였다고 하며, 그 후 거류민단을 위해 1902년 고양군 한지면 신당리 수구문 밖 송림에 최초로 일본식 화장장 - 신당동 화장장 - 이 건립된다. 일본식 납골시설 또한 일본 거류민단에 의해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1900년대 초 갈월리, 신당리, 아현히, 홍제동 묘지는 일본인들을 위한 것으로 매장과 납골을 위한 묘지사 혼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이미 메이지시대 보편화된 일보의 석탑형 묘는 대부분 납골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 극소수 도서지역에서는 매장을 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일본의 묘는 세키도우(石塔) 또는 세키히(石碑)라고 하는 돌탑형태의 묘석 기단에 유골을 안치할 수 있는 납골합이 설치된 납골묘이다.이렇게 일본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화장장과 그 방식은 그대로 답습하였고 현대 일본식 화장기술과 납골의 도입으로 한국의 화장문화는 일본식 화장법으로 전개된다.서울시를 중심으로 그 실제 기록은 다음과 같다. 1955년 7월 3일자로 ‘서울특별시 묘지 및 장재장 사용료 징수조례’를 개정하면서 ‘납골당 사용료’가 명시되어 있어, 홍제동 화장장에 봉안당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법령으로는 1961년 ‘매장등 및 묘지등에 관한 법률’에 ‘납골당’이라는 조문이 등장하며, 1981년 개정법률에서 사설 납골당의 설치, 폐지 등에 대한 본격적인 조문이 나타난다. 납골묘과 납골당 등의 납골시설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은 2000년도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서 본격적으로 규정된다.
    인문/어학| 2014.06.12| 2페이지| 1,500원| 조회(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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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딱소리 실험
    딱소리 실험의 설명1. 실험자 : Fodor Bever (MIT 심리실험실 ,1966) 2. 실험목표 : 문장을 감지할 때 ‘ 구절구성 단위와 경계선 ’ 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 [ Click experiment 의 개요 ] ☆ 문장을 단어의 결합체가 아닌 계층단위 Hierarchical units 으로 구성된 ‘ 구조적 결합 ’ 으로 이해 . ‘ 지각단위 ’ 는 다른 요소의 방해를 저지하며 통합성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형태심리학의 가설에 기반을 두고 있음 .That the girl was happy was evident from the way she laughed. 1. 실험자는 헤드폰을 통해 다음과 같은 문장을 듣게 됩니다 . 2. 문장은 한쪽 귀에서만 들리며 , 다른 쪽으로는 Click 음이 무작위로 발생합니다 . 3. 청취 후 , 실험자는 자신이 들은 문장과 Click 음의 위치를 기억하여 기록합니다 . [ Click experiment 의 실험방식 ]That the girl was happy was evident from the way she laughed. 2 . 별표시한 위치에서 Click 음이 발생할 경우 , 오답률이 낮아졌다 . [ Click experiment 의 결과 ] 1. 실험자들은 Click 음의 위치를 별표시한 위치로 편향하여 기억하였다 .[ Click experiment 결과의 해석 ] ‘Fodor Bever 의 가정 ’ 사람들은 문장을 들을 때 , 문장을 이해하기 위한 언어감지단위가 존재할 것이다 .That the girl was happy was evident from the way she laughed. That the girl was happy was eviden t from the way she laughed. 그녀가 행복했다는 것은 그녀가 웃는 것을 보아 분명했다 . [ Click experiment 결과의 해석 ] 1. 주어진 문장은 하나였으나 , 의미상의 분절이 존재한다 .[ Click experiment 결과의 해석 ] That the girl was happy was evident from the way she laughed. 3 . 사람들은 문장을 주요한 절 Major clause ; 구절을 단위로 인지하며 , 문장에 존재하는 절의 구분은 ‘ 문장인지를 방해하는 요소 ’ 를 저해한다 . 즉 , 언어감지단위는 절을 단위로 하고 있으며 실험결과는 언어감지단위가 구절의 구성요소에 일치된 것을 보여준 실례 . 4 . Click 음이 발생하면 문장을 인지 , 즉 절의 존재를 지각하는 수준에 따라 Click 음의 위치에 대한 오답이 나타나게 된다 . 2 . 실험자들은 Click 음을 ‘ 구절성분 부분 ’ 으로 편향하여 듣는 경향이 있었다 .[ Click experiment 결과의 해석 ] 사람들은 언어감지단위로써 구절구성요소인 절을 구분한다 .[ Click experiment 의 한계 ] That the girl was happy was evident from the way she laughed. 이후 Garrett 와 함께 구절구성 구분점을 표시하는 음향적 단서가 없음을 보여주는 유사실험을 행함 . 실험결과에서 중요한 주요구문단위가 “ 휴지 Pause” 즉 , 청각적인 음향 신호에 의한 것이 아닌가에 대한 의문 .자료출처 Linguistics : an introduction to language and communication, Akmajian , Adrian Psychology of language : an introduction to psycholinguistics and generative grammar, Fodor, Jerry, T.G. Bever , and M.F. Garrett, New York: McGraw-Hill, 1974. 심리언어학 , 박경자 , 고려대학교 출판부 , 1983.{nameOfApplication=Show}
    인문/어학| 2014.03.19| 10페이지| 1,000원| 조회(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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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가지 형질에 대한 4성잡종교배에 대한 유전자형 계산
    ? 사성잡종교배에 대한 유전자형·표현형을Punnett square 로 나타내고 각각의 분리비를 구하여라.임의의 4가지 형질에 대한 대립유전자에 대하여, 각각 A와 a, B와 b, C와 c, D와 d 로 명명하고 인공교배에 대한 도식을 아래와 같이 나타내었다.PAABBCCDDABCD?aabbccddabcdP의 배우자?F1AaBbCcDdF1의 배우자ABCD ABCd ABcD ABcd AbCD AbCd AbcD AbcdaBCD aBCd aBcD aBcd abCD abCd abcD abcd● F1의 대립유전자와 분리비 (갈퀴살 방법)● F2의 표현형 의 기대 분리비ABCDA_B_C_D_???=dA_B_C_dd???=cDA_B_ccD_???=dA_B_ccdd???=bCDA_bbC_D_???=dA_bbC_dd???=cDA_bbccD_???=dA_bbccdd???=aBCDaaB_C_D_???=daaB_C_dd???=cDaaB_ccD_???=daaB_ccdd???=bCDaabbC_D_???=daabbC_dd???=cDaabbccD_???=daabbccdd???=* 사성유전은 결국 “4가지 단성잡종교배”이므로, 각 대립형질은 우성·열성형질이 3:1의 분리비를 가진다.위의 내용을 통해 F2의 유전자형를 Punnett Square 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정세포ABCDABCdABcDABcdAbCDAbCdAbcDAbcdaBCDaBCdaBcDaBcdabCDabCdabcDabcd난세포 .ABCDAABBCCDDAABBCCDdAABBCcDDAABBCcDdAABbCCDDAABbCCDdAABbCcDDAABbCcDdAaBBCCDDAaBBCCDdAaBBCcDDAaBBCcDdAaBbCCDDAaBbCCDdAaBbCcDDAaBbCcDdABCdAABBCCDdAABBCCddAABBCcDdAABBCcddAABbCCDdAABbCCddAABbCcDdAABbCcddAaBBCCDdAaBBCCddAaBBCcDdAaBBCcddAaBbCCDdAaBbCCddAaBbCcDdAaBbCcddABcDAABBCcDDAABBCcDdaabbccdd하지만 위의 기대분리비와 Punnett Square 는 매우 이론적인 것으로, 실제 인공교배실험에서 위와 같은 ‘즉각적인’ 결과를 얻지 못한다. 잡종교배를 통해 얻어지는 자손세대는 1차적으로 표현형만을 알 수 있다.(또한 위의 결과는 교차 등의 유전 과정상의 유전자배열의 변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고스란히 자손에게 전해지고 각 형질의 우성, 열성 구분이 확실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즉, AABBCCDD 같은 유전자형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우성형질 뒤에 가려진 열성형질의 존재 여부 등을 바로 알 수가 없다.이론적인 4성잡종교배 실험은 ‘순계’인 부모형질의 교배를 통해 자손 세대를 얻고 이를 자가수정 시키는 것이나, 우리가 실험장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순계라 기대되는’ A_B_C_D_ 의 표현형을 지닌 개체와 aabbccdd 의 표현형을 가진 개체 간의 교배이므로 이를 통해 얻어진 자손 세대의 유전자형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F1 의 유전자형은 결국 배우자형의 종류와 비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므로 원치 않는 유전자형을 가진 F1 의 자가수정은 의미가 없다.따라서 F1 의 유전자형을 확인하기 위한 검정교배가 필요하다.● F1의 검정교배실제 표현형(기대 유전자형)aabbccdd?A_B_C_D_(AaBbCcDd)* 열성순계의 유전자형은 명확하다.?정세포ABCDABCdABcDABcdAbCDAbCdAbcDAbcd난세포A_B_C_D_(AaBbCcDd)A_B_C_dd(AaBbCcdd)A_B_ccD_(AaBbccDd)A_B_ccdd(AaBbccdd)A_bbC_D_(AabbCcDd)A_bbC_dd(AabbCcdd)A_bbccD_(AabbccDd)A_bbccdd(Aabbccdd)abcd정세포aBCDaBCdaBcDaBcdabCDabCdabcDabcd난세포aaB_C_D_(aaBbCcDd)aaB_C_dd(aaBbCcdd)aaB_ccD_(aaBbccDd)aaB_ccdd(aaBbccdd)aabbC_D_(aabbCcDd)aabbC_dd(aabbCcdd)aabbccD_(a_D_A_B_C_D_A_B_C_D_A_B_C_D_A_B_C_D_A_B_C_D_aaB_C_D_aaB_C_D_aaB_C_D_aaB_C_D_aaB_C_D_aaB_C_D_aaB_C_D_aaB_C_D_aBCdA_B_C_D_A_B_C_ddA_B_C_D_A_B_C_ddA_B_C_D_A_B_C_ddA_B_C_D_A_B_C_ddaaB_C_D_aaB_C_ddaaB_C_D_aaB_C_ddaaB_C_D_aaB_C_ddaaB_C_D_aaB_C_ddaBcDA_B_C_D_A_B_C_D_A_B_ccD_A_B_ccD_A_B_C_D_A_B_C_D_A_B_ccD_A_B_ccD_aaB_C_D_aaB_C_D_aaB_ccD_aaB_ccD_aaB_C_D_aaB_C_D_aaB_ccD_aaB_ccD_aBcdA_B_C_D_A_B_C_ddA_B_ccD_A_B_ccddA_B_C_D_A_B_C_ddA_B_ccD_A_B_ccddaaB_C_D_aaB_C_ddaaB_ccD_aaB_ccddaaB_C_D_aaB_C_ddaaB_ccD_aaB_ccddabCDA_B_C_D_A_B_C_D_A_B_C_D_A_B_C_D_A_bbC_D_A_bbC_D_A_bbC_D_A_bbC_D_aaB_C_D_aaB_C_D_aaB_C_D_aaB_C_D_aabbC_D_aabbC_D_aabbC_D_aabbC_D_abCdA_B_C_D_A_B_C_ddA_B_C_D_A_B_C_ddA_bbC_D_A_bbC_ddA_bbC_D_A_bbC_ddaaB_C_D_aaB_C_ddaaB_C_D_aaB_C_ddaabbC_D_aabbC_ddaabbC_D_aabbC_ddabcDA_B_C_D_A_B_C_D_A_B_ccD_A_B_ccD_A_bbC_D_A_bbC_D_A_bbccD_A_bbccD_aaB_C_D_aaB_C_D_aaB_ccD_aaB_ccD_aabbC_D_aabbC_D_aabbccD_aabbccD_abcdA_B_C_D_A_B_C_ddA_B_ccD_A_B_ccddA_bbC_D_A_bbC_ddA_bbccD_A_bbccddaaB_C_D_aaB_C_ddaaB_ccD_aaB_ccdda : 12 : 4 : 2= 1 : 2 : 1AABbCCDd AABbCcDd AABbccDdAaBbCCDd AaBbCcDd AaBbccDdaaBbCCDd aaBbCcDd aaBbccDd4 : 8 : 4= 1 : 2 : 18 : 16 : 8= 1 : 2 : 14 : 8 : 4= 1 : 2 : 1AABbCCdd AABbCcdd AABbccddAaBbCCdd AaBbCcdd AaBbccddaaBbCCdd aaBbCcdd aaBbccdd2 : 4 : 2= 1 : 2 : 14 : 8 : 4= 1 : 2 : 12 : 4 : 2= 1 : 2 : 1AAbbCCDD AAbbCcDD AAbbccDDAabbCCDD AabbCcDD AabbccDDaabbCCDD aabbCcDD aabbccDD1 : 2 : 12 : 4 : 2= 1 : 2 : 11 : 2 : 1AAbbCCDd AAbbCcDd AAbbccDdAabbCCDd AabbCcDd AabbccDdaabbCCDd aabbCcDd aabbccDd2 : 4 : 2= 1 : 2 : 14 : 8 : 4= 1 : 2 : 12 : 4 : 2= 1 : 2 : 1AAbbCCdd AAbbCcdd AAbbccddAabbCCdd AabbCcdd AabbccddaabbCCdd aabbCcdd aabbccdd1 : 2 : 12 : 4 : 2= 1 : 2 : 11 : 2 : 1? A와 C 는 B, D와 무관히 1:2:1 의 분리비를 가진다. 즉, A와 C는 B와 D에 무관히 서로 독립적으로 분리된다.AABBCCDD AABBCCDd AABBCCddAaBBCCDD AaBBCCDd AaBBCCddaaBBCCDD aaBBCCDd aaBBCCdd1 : 2 : 12 : 4 : 2= 1 : 2 : 11 : 2 : 1AABBCcDD AABBCcDd AABBCcddAaBBCcDD AaBBCcDd AaBBCcddaaBBCcDD aaBBCcDd aaBBCcdd2 : 4 : 2= 1 : 2 : 14 : 8 : 4= 1 : 2 : 12 : 4 : 2= 1 : 2 : 1AABBcaabbccDD1 : 2 : 12 : 4 : 2= 1 : 2 : 11 : 2 : 1aaBBCCDd aaBBCcDd aaBBccDdaaBbCCDd aaBbCcDd aaBbccDdaabbCCDd aabbCcDd aabbccDd2 : 4 : 2= 1 : 2 : 14 : 8 : 4= 1 : 2 : 12 : 4 : 2= 1 : 2 : 1aaBBCCdd aaBBCcdd aaBBccddaaBbCCdd aaBbCcdd aaBbccddaabbCCdd aabbCcdd aabbccdd1 : 2 : 12 : 4 : 2= 1 : 2 : 11 : 2 : 1? B와 C 는 A, D와 무관히 1:2:1 의 분리비를 가진다. 즉, B와 C는 A와 D에 무관히 서로 독립적으로 분리된다.AABBCCDD AABBCCDd AABBCCddAABbCCDD AABbCCDd AABbCCddAAbbCCDD AAbbCCDd AAbbCCdd1 : 2 : 12 : 4 : 2= 1 : 2 : 11 : 2 : 1AABBCcDD AABBCcDd AABBCcddAABbCcDD AABbCcDd AABbCcddAAbbCcDD AAbbCcDd AAbbCcdd2 : 4 : 2= 1 : 2 : 14 : 8 : 4= 1 : 2 : 12 : 4 : 2= 1 : 2 : 1AABBccDD AABBccDd AABBccddAABbccDD AABbccDd AABbccddAAbbccDD AAbbccDd AAbbccdd1 : 2 : 12 : 4 : 2= 1 : 2 : 11 : 2 : 1AaBBCCDD AaBBCCDd AaBBCCddAaBbCCDD AaBbCCDd AaBbCCddAabbCCDD AabbCCDd AabbCCdd2 : 4 : 2= 1 : 2 : 14 : 8 : 4= 1 : 2 : 12 : 4 : 2= 1 : 2 : 1AaBBCcDD AaBBCcDd AaBBCcddAaBbCcDD AaBbCcDd AaBbCcddAabbCcDD AabbCcDd AabbCcdd4 : 8 : 4= 1 : 2 : 18 : 16 : 8= 1 : 2 : 14 :
    자연과학| 2013.02.07| 10페이지| 1,500원| 조회(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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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타카와 유전자결정론
    [ 영화 ‘가타카 Gattaca’ 와 유전자결정론 ]우주항공회사 가타카는 유전적으로 완벽한 사람만을 우주비행사로 선발하고 있다. 가장 우수한 인력으로 손꼽히는 제롬 머로우는 사실 유전적으로 심장질환과 범죄자의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는 빈센트 프리만이다. 그는 동생 안톤과는 달리 부모 사이에서 ‘비정상적으로’ 태어난 사람이다. 빈센트는 가타카의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해 우월한 형질의 유전자를 가졌지만 사고로 불구의 몸을 지닌 유진 머로우의 인생을 빌려 입어 제롬 머로우라는 위장 신분을 탄생시킨다. 그는 자신의 유전적 신분이 알려지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자신을 제어하고,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한 강도 높은 훈련들을 견뎌낸다. 그러던 중 누군가 가타카 내에 열성 유전자를 지닌 사람이 숨어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영화 ‘가타카’는 개인의 인생이 유전적으로 완벽하게 결정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상을 그리고 있다. 극적 효과를 위해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으나,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서 소재만으로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유전자조작’ 이라는 기술에 대한 모종의 불안감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특정 유전자를 지닌다는 것은 그 유전자가 지니고 있는 특정 형질에 대한 정보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로, 그 발현여부는 형질이나 유전자의 종류, 개인이 처한 그리고 살아갈 환경의 영향에 크게 달라진다. 유전자결정론의 실질적인 문제는 유전자조작 기술을 통해 인간의 의지대로 완벽한 형질발현을 조절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기술을 과연 인간을 대상으로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는 가하는 것이다.이 점에 관련하여 마이클 센델은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에서, 고의적으로 자녀에게 자신들과 동일한 장애를 유발시킨 청각장애인 레즈비언 커플과 우월한 형질을 지닌 사람들로부터 정자나 난자를 구매하는 불임부부의 사례를 비교한다.1) 그는 일반 사람들이 장애의 고의적 유발에 분노하면서 불임부부 사례에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모습을 통해, 유전형질의 고의적, 선택적 발현을 포용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만약 우월한 유전형질의 선택이 올바르지 않은 일로 받아들여진다면, 우리는 공여된 정자와 난자를 무작위로 불임부부에게 제공해야 할 것이다. 또한 두 사례 모두 부모가 자녀의 유전형질을 조작하여 자녀에게 자신들의 그림자 인생을 살아가게 한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하지만 센델은 그 누구도 자신의 유전적 형질을 선택하여 태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2) 즉, 우리 모두는 우연에 의하여 부모의 수많은 유전적 조합 중 한 가지를 얻었으며, 여기에는 선택의 자율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율성의 파괴를 운운하는 것은 불가하다.또한 사회적 형평성도 큰 문제요소이다. 센델은 인간에게 적용하는 유전기술을 치료와 강화의 범주로 구분하여, 우리가 불편함을 느끼는 상황이 강화 범주에 속한 일임을 거론한다. 질병을 가진 사람에게 치료를 가하는 일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다. 살고자 하는 의지는 모든 생명체의 본능이며 이를 위해 노력하고 힘쓰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강화의 경우는 다르다. 더 강하고 아름다운 몸을, 더 월등하고 우수한 능력을 가지려는 시도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시도를 사회구성원 모두가 누릴 수 없을뿐더러, 상위 구성원 자신들이 이러한 차등적 권리를 바라기 때문이다. 모두가 180cm 까지 자랄 수 있는 유전적 형질을 가지고 태어난다면 더 이상 키는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돈을 들여 유전형질을 사들인 사람들에게도 경제적인 손해지만, 여유가 없어 175cm의 키를 지닌 사람들에게는 집단적인 자기모순으로 나타나 상대적으로 작은 사람의 굴레가 씌워지게 된다.3) 유전적 강화의 이면에는 이러한 사회적 차등을 바라는 개인의 욕망이 숨어있다. ‘가타카’에서 주인공이 역경을 겪은 것은 영화 속 가상사회가 유전자보유를 근거로 개개인의 가치를 판단하고 선택과 권리에 한계를 드리웠기 때문이다. 이익을 얻는 것은 해당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상위의 사람들이다. 위의 상황은 유전자 조작의 문제라기보다 그를 이용해 특정 집단이 이익을 얻는 사회시스템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유전공학 기술의 적용이 가지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센델은 인간의 프로메테우스적인 과도한 주체성을 원인으로 삼는다. 즉, 우리는 끊임없이 완벽을 지향하며 그것을 위해 지나치게 열성적이 돼서 치료를 위해 계발했던 유전공학 기술의 부수적인 산물인 강화의 결과마저도 우리의 의지대로 통제하려 하는데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완벽에 대한 열망의 뒤엔 정복과 지배, 차등과 차별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있다. 센델은 ‘인간의 삶’을 [선물] 로 받아들이자는 제안을 한다.4) 두려움에 쫓긴 완벽에 대한 열망과 충동을 자제하고 겸손하게 자신이 가진 것을 품에 안는 법을 먼저 배우자는 것이다. 강화에 따른 소모적인 경쟁은 삶을 더 윤택하게 하기보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또 다른 삶의 굴레와 기준들로 우리를 둘러쌀 것이다.
    독후감/창작| 2013.02.07| 2페이지| 1,000원| 조회(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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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 미술관에 간 화학자, 전창림 평가A+최고예요
    미술관에 간 화학자전창림미술은 인간이 바라보는, 인간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세상에 구현하려는 시도이다. 미술가들은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연구하고 화폭에 자신들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기법을 연마하였고, 시대에 따라 선도되는 미술사조가 구분되면서 빛과 색의 표현에는 서로 다른 의미와 상징이 덧씌워지기도 했다. 예를 들어, 파란색은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면서 색이 지닌 상징이 변한다. 당시 파란색을 표현할 수 있었던 염료는 ‘인디고’ 라고 불리는 인도에서 수입한 염료였다. 무역을 통해 들여왔던 인디고 Indigo 는 매우 귀한 염료였기 때문에 화가들은 쉽게 파란색을 사용할 수 없었다.1) 파란색은 다른 색을 혼합하여 만들 수 없는 일차색이기 때문에, 때때로 파란색을 표현해야하는 경우 녹색으로 대체하기도 했다. 중세에 이르러 파란색은 종교적으로 천박하고 불길한 색이라는 의미가 덧씌워서 부정적인 상징에 표현되었다. 르네상스 시대, 파란색의 상징은 전복되어, 기독교회화에서 파란색은 예수와 마리아와 같은 종교적으로 경외 받는 상징에 사용되었으며, 마리아의 색으로 분류되기도 했다.2)염료는 색의 표현을 한정하거나 한계를 넓히면서 미술사에 영향을 준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염료의 발달이 화학발달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미술에 대한 염료의 작용을 화학과 미술 사이의 교량으로써 바라보고자 한다. 화학과 염료, 미술 사이의 상관관계에는 크게 3가지 키워드가 있다.첫 번째는 키워드는 [수명] 이다. 미술작품은 염료의 사용에 따라 그 수명이 달라진다.‘레오나르도 다빈치 Leonardo da Vinci’ 의 ‘최후의 만찬 The last supper’ 와 ‘얀 반 에이크 Jan Van Eyck’ 의 ‘지오반니 아르놀피니와 그의 부인의 초상 The Arnolfini Portrait’를 놓고 본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전자를 훨씬 오래된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는 에이크의 작품이 다빈치의 것보다 50년가량 앞선 작품이다 ? 아르놀피니 초상화가 1434년 작, 최후의 만찬이 1497년 작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놀랍도록 선명한 색채를 유지하고 있는 에이크의 작품과 달리 최후의 만찬이 이렇게 망가져버린 이유는 무엇인가?그것은 다빈치가 두 가지 염료를 혼합하여 사용했기 때문이다. 다빈치와 에이크의 시대인 1400년대에는 수많은 천연염료를 사용했는데 주된 방식으로 템페라와 유화가 일반적으로 미술에 사용되었다.유화물감 Oil Painting 은 주로 호두, 양귀비, 아마씨에서 추출한 식물성 기름을 착색제로 이용한 방법으로 베네치아를 필두로 하여 다른 이탈리아 지방과 유럽전역에 퍼져 쓰였다. 얀 반 에이크 등의 플랑드르 화풍의 화가들에게 이젤을 사용한 그림, 특히 초상화를 그릴 때 가장 탁월한 소재라는 평가를 받았다. 유화물감의 장점은 그 강도와 유연성에 있는데, 테레빈유와 혼합하여 얇고 투명한 표현에서부터 두꺼운 채색까지 다양한 표현이 가능했다. 마르기 전까지 얼마든지 화가 나름의 기법을 활용해 미묘하게 섞이는 효과를 주거나 여러 번 덧칠 할 수 있다.3)템페라 Tempera 는 색소와 물을 달걀노른자에 섞어서 사용하는 안료로 화가들이 벽판에 그림을 그릴 때 사용했다. 유화물감이 등장하기 전까지 주로 사용되던 채색재료였는데, 건조가 빠른 반면 채색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석회 성분의 제소 gesso를 여러 번 발라 매끄럽게 준비한 벽판에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색을 칠했다. 색의 농담 표현은 물감을 주의 깊게 천천히 여러 번 칠해야 가능했다.4)에이크가 유화만을 사용해서 그림을 그린 데에 반해, 다빈치는 이 두 가지를 함께 사용하여 최후의 만찬을 그렸다. 템페라는 그 성분 상 수분을 50% 이상 함유하고 있는 에멀전 Emulsion 인데, 기름을 주된 원료로 삼은 유화물감과 쉽게 섞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섞인 염료들은 화폭위에서 수지균형이 깨져 상 분리가 일어났고,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그의 생전부터 심한 박락 ? 채색 층이 균열되어 떨어지는 현상 ? 이 일어나 수명이 크게 단축되었다.5) 현대에 남아있는 최후의 만찬은 이전부터 수차례의 복원작업을 거친 것으로 과연 이것이 최초 다빈치의 그림과 같은 모습일까, 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이것은 천연염료의 성분들 사이에 어떠한 화학적인 작용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사전 지식의 부제로 생긴 일화이다.두 번째 키워드는 [변색] 이다. 염료가 지닌 색과 빛은 영원하지 않다.렘브란트 Rembrandt 의 대표작 야경 The Nightwatch 은 그림이 그려진 1642년 당시의 이름이 아니다. 이것은 100여 년이 흐른 뒤 렘브란트의 화풍이 재조명되면서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추측하여 붙인 이름이다. 심지어, 그림은 본래 밤이 아닌 낮을 그린 그림이었다. 사람들이 그림을 밤으로 생각한 것은 전반적으로 매우 어두운 색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렘브란트가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한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라는 회화기법은 전체적으로 어둡게 처리하고 중심과 강조점만을 밝게 처리하는 기법이었기 때문에 본래의 그림이 여타 다른 그림과 같이 밝은 톤은 아니었지만, 이 그림은 렘브란트가 사용한 염료의 작용으로 초기와 전혀 다른 명암을 지니게 되었다.6)렘브란트는 다른 화가들에 비해 염화물 계통의 염료를 즐겨 사용했는데, 흰색의 실버화이트(연백 Lead white)과 노란색의 연화안티몬(Lead antimoniate)의 화학식을 살펴보면 2PbCO3 ? Pb(OH)2, Pb(SbO3)2 / Pb3(Sb3O4)2 으로 공통적으로 납이 포함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염료들과 함께 사용한 선홍색의 버밀리온 vermilion 은 황화수은 HgS를 포함하고 있는데, 황과 납은 서로 반응하여 황화납 PbS 의 검은색 앙금을 형성한다. 즉, 렘브란트의 야경은 염료들 간의 화학작용으로 흑변 현상이 일어나 명암이 대폭 낮아진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장 프랑수아 밀레 Jean-Francois Millet 의 만종 L'Angelus 에서도 나타난다.또한 우리는 1700년대 사람들이 보았던 것보다 더 어두운 야경을 보고 있을 확률이 크다. 그것은 야경이 산업혁명의 시대를 지나왔기 때문이다. 산업혁명기, 급격한 발달로 인해 공장들이 급속히 늘어났고 이로 인해 대기에는 황산화물의 함량이 늘어났다. 현대와 같이 매우 밀폐된 환경 속에서 보관되지 못했던 두 작품은 대기 속의 황과 반응하여 추가적인 흑변 현상이 일어났으리라 예측할 수 있다.7)세 번째 키워드는 [강조] 이다. 더 나은 염료는 더 강렬한 색과 빛을 지녀 새로운 표현을 가능하게 했다.1800년대 말부터 1900년대 초, 예술사에는 인상주의 Impressionism 이 나타난다. 인상주의는 클루드 모네 Claude Monet 의 1872년 작 인상(해돋이) Impression : Sunrise 을 기점으로 한다. 인상주의는 단지 미술사조의 관점에서만 보기에 문제가 있는데, 이는 어떤 특정한 기법, 화풍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당시 미술계와 기성 화단에 만연했던 아카데미즘을 탈피하려는 젊은 화가들의 운동이었기 때문이다.8) 그들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개성과 표현을 시도했는데, 모네는 빛에 대한 표현에 주 관심을 두었다.또한 1666년 뉴턴 Isaac Newton 이 처음으로 프리즘을 이용한 태양광선의 가시스펙트럼 분광실험 으로 빛은 하나가 아닌 여러 파장이 함께 뭉쳐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가 바라보는 물체의 모습에 고유한 색은 없으며 그 빛의 작용과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인식의 변화가 생겼다. (빛의 스펙트럼 관찰은 1666년의 일이지만 관련 내용이 책으로 출간 된 것은 1672년 왕립협회에 제출된 ‘빛과 색의 신이론’, 1704년 ‘광학’, 사후 1729년 케임브리지 대학의 광학에 관한 강의 내용을 담은 ‘광학강의’ 가 있다. 이중 대중에게 어떤 책이 매개체가 되어 사람들에게 빛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퍼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렘브란트가 살던 시기 빛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전해졌음은 알 수 있다.)
    독후감/창작| 2013.02.07| 4페이지| 2,000원| 조회(2,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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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20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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