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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 발표용스크립트,레포트] 정의란 무엇인가 10강 정의와 공공선
    10강 정의와 공동선 발표 -중립을 지키려는 열망과 낙태 논란-ㅁㅁㅁㅁㅁㅁ ---------- ㅁㅁㅁ[자유주의적 중립이란 무엇인가?]196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존F.케네디가 정치에서의 종교의 역할에 대해서 연설을 합니다. 그때까지 가톨릭 신자가 대통령이 된 사례가 없었고, 따라서 가톨릭 신자인 케네디의 곁에는 항상 종교문제가 붉어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입에서 케네디가 공직에 오르면 바티칸에 신세를 지거나 공적인 정책에 가톨릭 교리를 반영하리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것입니다. 이때 케네디가 주장합니다.“대통령이 되어도 종교적 견해는 사적인 문제로 머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되어 산아 제한, 이혼, 검열, 도박 등 어떤 문제가 닥쳐도 외부의 종교적 압력이나 지시에 구애받지 않고, 제 양심에 비추어 국익을 위해 결단을 내릴 것입니다.”케네디의 주장은 정치와 법에서의 도덕적 종교적 중립(자유주의적 중립)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어떻게 그의 양심이 도덕적 종교적 신념에 의해 좌우되지 않을 수 있는지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연설은 성공적이라고 평가되었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케네디의 연설로부터 44년이 흐른 후, 오마바는 2004년 상원의원에 출마할 당시에 케네디와 비슷한 관점에서의 연설을 합니다. 동성애 권리와 낙태 권리를 옹호하던 그가 엄격한 신앙인이자 보수주의자였던 상대 후보에게 ‘오바마는 선량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는 그에게 표를 던지지 않을 것’이라고 비난을 받은 것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연설로 자신을 변론합니다.“나는 일리노이 상원의원에 출마하는 것이지, 일리노이 성직에 출마하는 것이 아닙니다.”하지만 훗날 오바마는 이때의 연설은 적절하지 못했고 그만의 가치와 그만의 믿음으로 인도하는 신앙의 역할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회상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회문제는 도덕적으로 변형해야 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관점을 바꿔 다음과 같은 연설을 합니다.“설교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다보면 하루빨리 해결해야 하는 사회문제에서 가치와 문화의 역할을 간과할 수가 있다.”정치와 법을 집행하는데 있어서 도덕적 종교적 가치 개입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다는 연설이었습니다.이처럼 케네디와 오바마 모두, 미국인을 결집해 시민이 참여하는 새 시대를 열고자 했지만 정치에서의 종교의 역할에 관해서는 자유주의적 중립을 지지하는 견해(케네디)와 도덕적 종교적 가치개입이 불가피하다는(오바마) 양극단의 견해를 보였습니다.종교를 공적인 것이 아닌, 사적인 것으로 보는 케네디의 견해는 공공철학을 반영한 것입니다. 여기서 공공철학이란, 정부는 도덕적 종교적 문제에서 중립을 지켜, 무엇이 좋은 삶인지 개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입니다. (=자유주의적 중립)[중립을 지키려는 열망]케네디와 오바마의 견해가 달랐던 것처럼 미국의 양대 정당도 중립을 주장했지만 그 방식이 달랐습니다.미국의 공화당은 시장경제에서의 중립을 주장합니다. 자유 시장에 정부의 개입을 반대하면서 정부가 공적인 목적을 내세워 경제활동을 규제하거나 납세자의 돈을 쓴다면 국가가 승인하는 공동선을 강요하는 꼴이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정부 지출보다는 세금 감면이 더 바람직하다고 주장합니다.반대로 미국의 민주당은 정부가 경제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사회 문화 분야에서는 중립을 지켜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성적인 문제(동성애, 근친상간)나 출산 결정(낙태) 등에서 도덕을 입법화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그럴 경우 사람들에게 특정한 도덕적 종교적 신념을 강요하게 되기 때문에 정부는 낙태나 동성애처럼 도덕적 논란을 일으킬 문제를 제한하기보다는 중립을 지켜 개인이 알아서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자유주의적 중립)1980년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당시, 공화당에서 그리스도교 보수파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이때 낙태, 성인오락물, 동성애를 법으로 규제하려고 합니다.하지만 존 롤스는 보수주의자들과는 다른 주장을 펼칩니다. ‘정의와 권리를 토론할 때는 개인의 도덕적 종교적 신념은 제쳐두고, 주관적 견해에 좌우되지 않는 ‘정치적 존재’로 보는 시각을 유지해야 한다. 이성적 사고력이 뛰어난 양심적인 사람이 자유로운 토론 뒤에도 똑같은 결론에 이르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John Rawls, Political Liberalism p.58샌댈은 그의 스승인 존 롤스의 주장과는 반대의 주장을 펼칩니다.‘진보주의자들은 더 큰 아량을 베풀고 신앙 친화적인 공적 이성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오바마의 주장은 건전한 정치적 직관을 드러낸다.’ -정의란 무엇인가 p.349'다른 민주당원들과 달리 버락 오바마는 이 갈망을 이해하고 거기에 정치적 목소리를 부여했다. 그가 구사하는 정치 언어에는 자유주의적 중립을 뛰어넘는 도덕적, 영적 차원이 존재했다.' -정의란 무엇인가 p.348지금까지 살펴본 정치에서의 자유주의적 중립을 주장하는 견해와 정치에서의 도덕적 종교적 신념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견해는 구체적인 사항으로 들어갑니다. 문제의 근본인 도덕적, 종교적 입장을 정리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낙태에 관한 문제입니다.[낙태에 관한 논란]어떤 사람은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는 낙태는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지금까지 강의를 통해서 배웠던 칸트의 정언명령이 될 수도 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인 사고관이 될 수도 있습니다.낙태에 찬성하는 주장은 정확히 말하면 낙태에 대한 방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견해입니다. 방관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표현이 부정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조금 순화해서 말한다면, 정부는 중립을 지키고 개인 스스로 낙태를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인간의 생명이 시작되는가에 대한 도덕적, 신학적 논쟁에서 법은 어느 쪽도 편들지 말아야한다는 주장으로 앞서 언급한 자유주의적 중립에 대한 견해입니다.
    인문/어학| 2013.05.22| 3페이지| 1,500원| 조회(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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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 서평,레포트] 당신들의 대한민국 2
    Ⅰ. 들어가는 말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말했듯이 인간은 집단을 만들고 각각의 사회를 구성하며 그 속에서 일생을 보내게 된다. ‘선’이라는 개념을 규정하기 위해서 ‘악’이라는 개념이 필요하듯, 한 인간이 살고 있는 특정한 사회가 하나의 사회로 규정되기 위해서는 ‘그들 사회’와의 구별과 분리가 필요하다.-여기서 ‘그들 사회’가 실제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은지는 중요하지 않다.-구별과 분리로 만들어진 사회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게 되는데 이것은 신이 아닌 어느 누군가의 혹은 어느 특정 집단의 목적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만들어진 이데올로기’가 한 사회를 정당화시키고 지탱해주는 수단이 되기 때문에 필자는 이를 통해서 가장 이득을 볼 수 있는 대상은 사회의 지배층이라 지목하고 이들이 만들었거나 다른 이데올로기의 변형을 통해 차용했다고 생각한다.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인간이 상징계의 언어로 만들어 낸 ‘허구적인 틀’이지만 사람들은 이데올로기가 실재계로 나아가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의심 없이 이를 물신화 하게 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허구적인 틀’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하여도 어찌 해볼 여력이 없다.‘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15세기경 그린 ‘모나리자’를 상상해 보자.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명작이라 불리는 이 명화는 액자라는 틀이 있다. 액자 안에는 또 도화지라는 네 모서리를 가진 틀이 있다. 이 틀이 없다면 의미가 생겨나지 않는 것처럼 반대로 틀이 있기 때문에 모나리자라는 명작이 있다. 틀 속에 있는 내용보다 틀이 작품을 규정하고 우리로 하여금 틀 안의 내용을 욕망의 대상으로 만든다.‘만들어진 이데올로기’는 허구적인 것이지만 우리로 하여금 욕망을 일으키게 만드는 대상(Object A)이기도 하다.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의 사회가 유지되고 지탱되기 위해 한 민족, 한 핏줄, 역사와 신화까지 들먹이며 국가에 귀속시키려는 이러한 ‘만들어진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허구적인 틀했지만, ‘거부감’도 느꼈던 이유는 박노자 교수가 언급한 내용에는 한국 사회에 급진적인 혁명이 필요하고 더 나아가 무정부주의를 지향한다는 주장을 볼 수 있어서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인간이 사회를 만드는 동시에 제도와 법과 이데올로기를 적용시킨다. 그리고 제도와 법과 이데올로기는 위반을 하면 처벌이 수반된다는 점에서 폭력위에 세워진다 말할 수 있다. 물론 폭력을 정당화 하자는 건 아니지만,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형식적인 무정부주의로 나아가든 사회주의로 나아가든 민주주의로 나아가든 결국 이득을 보는 ‘지배계층’은 분명 존재하고 급진적 혁명의 주체가 사회개혁에 성공했다면 그들이 또 다른 ‘지배계층’이 될 테고 이들 역시 새로운 폭력을 행사할거란 점이다.또 박노자 교수가 말한 민중으로의 아래로 부터의 사회 개혁도 진보신당을 중심으로 일으켜야 한다는 주장은 이승만과 박정희처럼 국가의 이익을 위해 피지배계층을 무제한 적으로 희생시켜도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과 별반 다름이 없어 보인다. 개혁에는 국민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국민을 진보신당을 중심으로 일으켜야 하는 개혁을 위한 수단처럼 여기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은가?인간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지배와 착취의 관계가 늘 있어왔다. 그리고 이 지배와 착취의 관계에서 문화가 생겨났고 빼앗으려는 자와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의 관계에서 과학 기술이 발전해 왔다. 지배층이 있다면 피 지배층이 있어야 하듯, 자본주의 시대에 선진국이 가진 부와 일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적어도 굶어 죽지 않는) 복지국가의 존재는 하루 종일 일을 해도 굶어 죽을 수도 있는 제3세계 국가의 결핍이 있음을 증명한다.한정되고도 정해진 자원을 모두 공평하게 가질 수 있다는 공동생산 공동배분의 이념을 표방한 공산주의는 위에 언급한 ‘지배와 착취’의 관계에 보면서 현실 세계에 맞지 않는 이념이다. 어떤 국가가 공산주의를 내세우며 나라의 이념을 세웠다면 공산주의를 이끄는 세력이 지배층이 되고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자들은 피지배층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사유sm)적인 사상일 뿐이다. 물론 필자도 앞에서 이데올로기는 만들어졌다고 언급했듯이 민주주의를 완벽한 사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수결의 원칙이 민주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다수에 의해 소수는 배제된다는 점과 경직되고 굳어진 사고방식으로 이미 만들어진 답을 꼭두각시처럼 따라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자칫 잘못하면 파시즘에 빠져 독일과 같은 반인류적인 전쟁과 학살을 벌일 수 있는 위험도 있다. 단지 현 시대에 그나마 적합한 이데올로기로 생각할 뿐이다. 이러한 위험할 수 도 있는 ‘만들어진 이데올로기’를 견제할 수 있다는 면에서 박노자 교수와 같은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을 해보고 해체해 보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Ⅱ. ‘노동’ 빠뜨린 우리의 역사 왜곡조선이 건국되기 전 고려의 종교였던 불교는 인도 전역에 걸친 계급적인 신분 제도인 카스트제도에 반하는 신분평등을 주장하는 혁명적인 발상으로 생겨났던 종교로 생명의 평등함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조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별이 덜 했을 것이다.박노자 조차도 계급사회의 왜곡된 ‘상식’에 오염된 사람임을 인정했듯이 대한민국 사람들도 국민의 의식 대부분에 영향을 미친 전근대적인 사상인 유교(무교와 유교와 불교가 섞였지만 흔히 말하듯)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성계 왕이 조선을 세울 때 받아들인 유교는 세계에서 유례없이 긴 500년이란 반세기의 역사 속에 조선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했기 때문이다.유교에는 공자와 맹자가 주창한 시원유학과 뒤에 송나라 때 유교, 불교, 선교가 난립 할 때 주자가 새롭게 유학을 통일 정립한 성리학(주자학)이 있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주자를 하늘과 같은 대성인으로 받들게 되는데, “주자뿐 아니라 나도 공맹 유학을 내 나름대로 새롭게 해석 할 수도 있다” 고 주장한 윤휴를 송시열의 문하생들이 ‘사문난적’이라 하며 죽일 듯이 비판한건 주자를 흠모했던 분위기였던 탓이다. 이를테면 당시 주자는 ‘기독교의 바울’과 같이 유학에선 절대적 존재였다.이런 유학(성리학)은 장유유서, 부자유친, 붕우유신, 부부유별 만들었다. 물론 사농공상(士農工商)은 고려시대 때도 있었지만 조선시대에 유교를 받아들이면서 더 명확해 졌고, 학문을 최고로 생각하고 공업과 상업을 천시하는 사회적인 풍토가 아직도 대한민국 국민의 무의식 속에 남아 있다.박노자 교수가 언급한 ‘민족의 자랑’인 에밀레종의 주조를 총관했던 8세기 후반의 뛰어난 주종(鑄鐘) 기술자 대(大)박사 박종일 이라던가 6세기 후반에 일본에 건너가 사찰 건축의 기반을 닦은 백제의 와박사(瓦博士:기와 제조자) 양귀문과 석마제미, 100여 년 전 우리나라 최초로 일본에서 근대적 염직 기술을 배워 온 안형중과 박전선 같은 기술자에 대해서 알 수 없다는 것에 공감도 하면서도 한편으로 21세기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으면서 아직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계급적 유교 이데올로기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낀다.Ⅲ. 유승준을 보는 우리의 일그러진 눈대한민국 군대를 바라보는 시선은 항상 이중적이다. 왜냐하면 군대라는 조직을 밖에서 들여다보면 억압된 규율을 강요하고 불합리한 제도를 따르기 때문이다. 박노자의 말처럼 인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군대에서 억압된 분위기를 이기지 못해 일어난 ‘총기난사사건’과 의문사로 처리되는 젊은이들의 ‘자살’은 개인의 ‘성격적 결함’, ‘적응의 실패’로 보려는 경향이 강하고 피해자가 겪은 인권 유린에 대해서 진지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없다. 폭력을 참지 못하는 자가 비정상인이라는 논리다. 이는 대한민국 군대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 군대라는 집단 모두의 문제로 생각된다.영화 ‘a few good man’은 군대의 폐쇄적이고 불합리한 제도를 파헤치려는 3명의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룬 법정물이다. 두 명의 군인이 상부의 명령에 따라 훈련에 뒤쳐지던 신병을 폭행하고 의도치 않게 신병이 죽었다. 그러나 명령을 내린 상부는 증거를 조작해 두 군인의 개인적인 행동이었고 자신들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한다. 진실을 알리려는 변호사들의 노력은 군의 폐쇄적인 태도와 제셉 대령이라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에 의해 좌과 같이 변호한다.우리는 무장경비와 벽으로 둘러싸인 곳에 살고 있다. 누가 그곳을 지키겠나?내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 자네들은 몰라산티아고를 동정하며 해군들을 욕하겠지그의 죽음은 안된 일이지만 다른 목숨을 살렸어내가 아무리 괴상하고 괴팍해보여도 바로 나 때문에 니 놈들이 안전한거야당신들은 명예, 신조 충성 같은 말들을 장난할 때나 쓰지만, 우린 그게 생명이야!영화에서 보여주는 미국의 해병대는 내부적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신병을 구타하는 내부적인 비합리적인 규율이 존재하고 구성원들로 하여금 ‘공동의 죄’를 만드는 어둠의 법을 사용한다. 의도치 않은 죽음을 당한 신병 ‘산티아고’는 군대의 결속 위한 ‘희생양’이 된 것이고 ‘당신들의 대한민국2’에서 언급한 유승준 희생양 만들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당시 대한민국 국적의 포기 그 자체는 범죄행위가 아니지만, 현역으로 입대하겠다는 그의 약속의 위반이 비도덕적 행위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추방명령을 내린 것은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은 박노자와 같은 생각이지만, 성경과 그리스 신화에서도 볼 수 있듯 문화가 처음 만들어 질 때부터 희생양은 필요했고 존재해 왔다. 당시 여론이 강제추방을 정당화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는 반증이기도하다.미국은 그들이 주장하는 정의와 세계평화를 위해서 이라크의 후세인이라는 악을 지명해 암묵적인 ‘희생양’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지난 미국의 정권의 실세였던 부시가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명했듯 국가의 결속력과 정체성을 강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 처음에 언급한 내집단과 외집단, 나와 그들의 구분을 통해 보이지 않은 경계가 생기고 지도상에 국경선을 그어놓는 것도 희생양 만들기의 문화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만약 제셉 대령이 다시 한 번 똑같은 선택에 기로에 놓여도 그는 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가 정말로 옳은 결정을 내렸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의 시선에서 볼 때 무척이나 합당한, 그리고 정의로운 결정이었다. 왜.
    독후감/창작| 2013.05.22| 5페이지| 2,500원| 조회(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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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 서평,레포트] 언어는 인간만이 지닌 능력인가?
    언어는 인간만이 지닌 능력인가?------- ------- ------- ------- ㅁㅁㅁ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 『성경, 창세기 2장 19절』태초에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최초의 인간인 아담에게 모든 동물들의 이름을 짓게 만든다. 신은 인간에게 세상을 인식하는 틀로써 기표와 기의를 관계시키는 작업을 지시한 것이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작업은-정확히, 언어를 만드는 작업은- 인간만이 신에게서 부여받은 신성한 능력이라 말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성경에서는 아담이 모든 동물들의 이름을 짓기 전의 상황인 신과 인간의 의사소통에 사용된 ‘언어의 기원’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의사소통에 사용되었던 언어가 이미 인간의 창조 이전에 존재하고 있었고, 인간의 존재 이전에 존재했던 언어사용자는 신이었기 때문에 인간의 언어를 ‘신의 언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어찌되었건, 신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는 의심할 여지없이 신에게서 부여받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두산 백과사전에서 언어에 대한 정의를 ‘생각이나 느낌을 나타내거나 전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음성·문자·몸짓 등의 수단 또는 그 사회관습적 체계.’로 요약하면서 본문의 첫 줄에서 ‘언어는 인류를 다른 동물과 구별하여 주는 특징의 하나이다.’라고 설명한다.신학적인 관점과 학문적인 관점을 종합해 보면 ‘언어는 인간만이 지닌 능력’이라는 가설이 세워지게 된다. 그렇다면 ‘왜 언어가 필요한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두산 백과사전에서 등재된 언어의 정의, ‘생각이나 느낌을 나타내거나 전달하기 위하여’라는 언어의 기능적인 측면은 작게는 집단부터 넓게는 국가를 이루며 살아가는 인간들의 원만한 관계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와 ‘세 명이 모이면 정치가 시작된다.’라는 말의 근저에는 인간에게 있어서 언어는 생득적인 것이라고 여기는 관념이 숨어있는 것이다.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겨난다. 지구라는 울타리 안에서 인간만이 집단을 이루고 사느냐하는 문제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동물은 집단을 이루고 살아간다. 뜨거운 아프리카의 사바나 초원을 상상해보자. 수컷 사자 한 마리가 여러 마리의 암컷 사자를 거느리며 그늘 밑에서 쉬고 있다. 그때 암컷 사자 두 마리가 사냥을 위해 얼룩말 무리가 있는 지점으로 천천히 접근하고 있다. 얼룩말 무리 중 한 마리의 얼룩말이 사자를 발견하고 집단의 얼룩말들이 알아차릴 수 있는 신호를 보냈고 모든 얼룩말들이 일제히 사자가 없는 반대편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다른 위치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른 암사자가 튀어나와 얼룩말을 공격한다.물론 동물들의 언어는 인간의 언어처럼 구체적으로 상황을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집단을 이루고 살아가는 이상 몸짓 혹은 울음소리를 이용한 집단 내 개체간의 의사소통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들 나름의 언어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넓은 개념인 의사소통 수단으로서의 언어가 인간만이 지닌 능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오류를 가지고 있다.하지만 좁은 개념으로서 언어를 ‘언어습득 능력’으로 한정짓는다면, 인간의 언어와 동물의 언어습득 능력과 언어사용 능력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정확히 달라지는 지점은 동물과 인간은 욕망의 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을 추구하는 인간은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언제나 미래에 몸을 던지는 존재라면, 현재의 본능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동물들의 욕망은 언제나 현재 혹은 가까운 미래에 머물러 있다. 현재만을 위해 살아가는 동물들에게는 집단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간단한 의사소통이 필요했지만, 미래에 몸을 던진 욕망의 주체인 인간들에게는 체계적인 언어가 필요했다. 인간이 동물들이 만들 수 있었던 집단을 넘어서 넓은 영토를 관할하는 국가의 개념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 역시 ‘언어습득 능력’과 ‘언어사용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독후감/창작| 2013.05.22| 2페이지| 1,500원| 조회(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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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 레포트] 모더니즘의 정치적 역할 분석과 포스트모더니즘 비판
    모더니즘의 정치적 역할 분석과 포스트모더니즘 비판-영화 지옥의 묵시록, 다크나이트를 중심으로----------- --------- ㅇㅇㅇ현대인들은 미디어가 공급하는 이야기와 이미지에서 비롯된 하나의 공통된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미디어는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정체성을 구성할 수 있는 내용들을 제공함으로써, 개인들이 특정 이데올로기를 무의식적으로 따르게 만든다. 그리고 더 이상 미디어가 제공하는 정보를 접하지 않으면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힘든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사회 구성원들에게 미디어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 말할 수 있다. ‘미디어 문화’의 저자 더글라스 켈너는 ‘미디어를 어떻게 읽고 비판할 것이며 미디어 조작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를 배움으로써 사람들은 지배적인 미디어와 문화와의 관계에서 스스로 힘을 키우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미디어가 생산하는 이데올로기를 무작정 따르기 보다는 비판적 텍스트 읽기(비판적 진단)를 함으로써 미디어 내포된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저항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글에서는 구체적으로 영화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 1979)’과 ‘다크나이트(The Dark Knight, 2008)을 중심으로 포스트모더니즘 이데올로기가 사회에 어떻게 대변되고 있으며 사회적 권력의 지배 형태들을 재생산하는지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작품 속에 녹아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력에 대해 분석함으로써 관객들이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에 대한 저항적 시각을 만들어 낼 것이다. 논의를 제시하기에 앞서, 아직은 일관성 있는 사상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을 모더니즘과의 흐름 속에서 규정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한다.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왜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가?’라는 이상한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는 1990년대 한국에서 인기가 높았던 TV 시리즈 X-File의 남자 주인공 멀더 요원과 닮아있었다. X-File 작품의 슬로건, ‘The truth is out there’처럼 뉴턴 역시 진실을 찾는 자(Truth Seeker)였고, 보통 사람들이 사과가 무거우니까 떨어지는 지나치기 쉬운 익숙한 현상의 원인을 찾는다. 뉴턴이 멀더와 달라지는 지점은, 멀더는 진실을 추구하지만 결국 에어리언으로 상정되는 존재를 밝혀내지 못했고, 뉴턴은 만류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는 데 있다. 진실을 밝혀낸 뉴턴은 모더니즘의 영역에 속해지고, 진실을 밝혀내지 못하고 멀더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역에 속해진다.이처럼 근대의 자연과학을 발전시킨 것은 원인과 결과를 밝히려는 모더니즘이다. 그리고 진실을 추구하는 모더니즘적 메커니즘에서는 필연적으로 밝혀지지 않는 존재 혹은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원인이 규정되지 않는 특정 현상의 구현은 모호성으로 표현되고, 다시 모호성은 신의 영역(절대적 선)이나 에어리언의 영역(절대적 악)으로 규정되어 왔다.이러한 메커니즘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는 프란시스 포드 코플라의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 1979)’이다.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은 뛰어난 역량을 가졌지만 미국 군부로부터 통제가 되지 않는, 그래서 미국 군부로부터 악으로 규정된 커츠 대령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은 윌라드 대위의 서사적 여정을 그린다. 군부에게 있어서 통제되지 않는 커츠는 에어리언의 영역으로 규정되고 제거해야 할 존재로 간주된 것이다. 윌라드는 커츠를 만나러 가는 기나긴 여정에서, 함께 동행 하던 정상적이었던 군인들이 점차 전쟁의 광기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며 베트남 전쟁의 이중성과 부당함을 경험하고 점차 미국이 벌이는 전쟁이 의미 없다는 것을 느낀다. 이러한 과정에서 윌라드는 커츠와 점차 동일화되고, 여정을 지속하면 지속할수록 커츠를 악이라고 규정했던 군부가 악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영화의 후반부, 윌라드는 커츠가 머무르는 전쟁의 외부지역에 도달하고 이곳에서 윌라드는 원주민들에게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커츠를 발견한다. 미 군부에서 에어리언으로 규정되 제거의 대상이 된 커츠는 원주민들에게 오히려 신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도로 규정할 수 없는 모호함을 지닌 커츠는 군부가 제거하고 싶었던 대상임과 동시에 원주민들이 경외심을 갖고 신으로 모시는 존재였다. 이처럼 지옥의 묵시록은 동 시대에 상영되었던 ‘람보’, ‘탑건’, ‘다이하드 1’등 다른 영화들과는 다르게 포스트모더니즘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포스트모더니즘이 지닌 정치 이데올로기적 성격과 역할을 추적하기에 앞서서 포스트모더니즘의 근간이 된 모더니즘이 지닌 정치 이데올로기적 성격과 역할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지옥의 묵시록과는 반대로, 동 시대의 영화들이 가진 모더니즘적인 성격은 쉽사리 정치가들의 입맛에 맞게 가공될 수 있었다. 실제로, 할리우드 액션영화나 미국 전쟁영화의 대부분은 작품의 초점이 선을 대표하는 주인공에 집중되어 있다. 적으로 규정한 존재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다. 알 수 없음(모호성)으로 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존재할 뿐이다. 이러한 모더니즘적 정치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영화를 반복적으로 시청한 관객은 특정한 감성을 코드화시킨다. 이데올로기에 감염된 대중의 감성은 국가에서 지목한 적이 왜 적으로 지목되었는지 이유를 묻지 않는 채 현실세계의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모더니즘이 전복된 역사적 배경과 포스트모더니즘이 발생하게 된 배경에는 전쟁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에서 모두 승리를 거둔 후 세계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도에서 절대선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선과 악의 대립, 모더니즘적 구도 속에서 미국은 역사상 최초의 대외전쟁에서 패배를 당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지옥의 묵시록(1979)의 배경이 되었던 베트남 전쟁(1961~1973)이다. 많은 미국인들과 미국을 숭상했던 많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좌절이 시작되었고, 미국이 담당한 절대 선의 개념이 파괴되기 시작했다. 대중의 좌절은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마지막 장면에서 볼 수 있다. 윌라드는 자신과 동일시되는 커츠를 죽인다. 이 장면은 원주민들이 축제를 하며 살아있는 소를 죽이는 장면과 병치되어 커츠의 죽음이 희생양 문화의 한 기제로서 작동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커츠를 죽인 윌라드는 원주민들에게 새로운 신으로 받아들여진다. 군부에 의해 적으로 간주되고 자신이 죽인 적의 자리를 주인공이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장면은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닌 선과 악이 같아지고, 동시에 선과 악의 위치가 뒤바뀌는 역전 현상을 보여준다.
    인문/어학| 2013.05.22| 3페이지| 2,500원| 조회(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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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 서평,레포트] 진실에 대한 담론 :신사임당을 통해 본 허구적 진실
    Kyung Hee University과 목 명 : 패미니즘 이론담당교수 :학 과 :학 번 :성 명 :제출일자 : 2010. 12. 6.진실에 대한 담론-신사임당을 통해 본 허구적 진실-[진실에 대한 담론]신사임당을 통해 본 허구적 진실진실이라 믿어지는 역사적 사건들은 대부분 왜곡되어 있다. 역사는 사실로서의 역사가 아닌 기록으로서의 역사로 남기 때문이다. 어떤 두 세력이 다툼 끝에 승자와 패자로 갈렸다고 가정해 보자. 이 가정 속에서, 역사학자는 승자를 높이 평가해야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겠지만 패자를 높이 평가한다면 부와 명예는 고사하고 목숨까지도 위태로워진다. 이처럼 과거에 일어난 특정 사건은 승자라 여겨지는 세력의 필요에 의해서 구성과 재구성을 통해 진실이라 믿어지는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것이다.진실이 사실을 기초로 구성된 허구적 이야기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진실로 인해 만들어지는 ‘의미’역시 허구적 판타지라는 결론이 나온다. 진실과 의미가 더 이상 절대적인 개념이 아님을 인식하고, 우연적 사건들에 의한 필연적 해석이었다는 인식이 머릿속에 움트기 시작한다면, 현대 사회 속에서 진실이라 믿어왔던 진실들을 해체해 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우리가 진실이라 믿는 것들은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승자(지배층)의 입장에서 구성된 논리이기 때문이다.한국사회는 유교라는 전근대적 사상의 영향력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승자의 입장으로 여성 억압이라는 진실을 만들어 내고 이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의미’를 부여한다. 조선시대에 여성에게 칠거지악이 강요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 한국사회에서는 문화적으로 여성이 본받아야 할 바람직한 이상향을 제시함과 동시에 보이지 않는 억압을 하고 있는 것이다.현대 한국사회의 보이지 않는 여성 억압의 한 기제로 신사임당을 들 수 있다. 율곡이이의 어머니라는 수식어는 사임당을 소개할 때 항상 함께 붙어 다닌다. 사임당을 존재하게 만드는 ‘의미’는 율곡의 어머니였기 때문에 부여받은 것으로 여겨지고, 이러한 사임당의 이미지는 여성에게 어머니의 역할만을 강조하는 억압의 기제로 작동한다.『조선 여성의 일생 / 글항아리』에서 다루는 한 주제는 역사 속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신사임당의 진실에 대한 이미지와 진실이 가져다주는 의미에 대한 다양했던 견해를 소개하며, 이것들에 지닌 절대성에 도전한다. 책에 소개된 사임당에 대한 담론은 세기마다 다른 진실이 요구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16세기의 사임당은 오늘날의 담론에서 보이는 것처럼 현모양처, 겨레의 어머니라는 수식어가 아닌 철저한 화가로 소개되었다. 당시 명성을 떨쳤던 시인 소세양이 사임당의 산수화에 시를 지어 넣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어머니의 역할이 아닌 그녀의 능력에 대해 평가가 이루어 졌던 시기다. 하지만 17세기 중엽에 들어서 정통 유학자였던 송시열은 사임당의 그림은 자신이 느끼기에 비천한 여성의 그림이였지만 자신의 스승 율곡의 어머니였기 때문에 함부로 평을 내릴 수 없었다. 그래서 ‘마지못해 그린 여자의 작품이 아닌 것 같다’며 작품 자체보다는 작품에 담겨있는 정신이나 혼에 대해 언급했다. 그에게 사임당의 그림은 그릇됨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율곡의 존재를 특별히 돋보이게 해 주는 보조물로 치부할 수밖에 없었다. 사임당은 송시열에 의해 처음으로 율곡과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미미하지만 어머니로서의 그녀의 의미가 만들어졌다. 18세기에 이르러 송시열의 학풍을 계승받은 제자들에 의해, 여성은 여성의 역할을 다 하고 난 후에 재능을 발휘한다는 논리로, 사임당의 정체성은 화가보다는 율곡을 길러낸 훌륭한 어머니로 규정된다. 사임당의 예술적 능력은 배제되고 오직 율곡의 존재를 규정하는데 이용되는 도구의 의미로 전락하고 만다. 19세기 사임당의 가문인 평산 신씨들에 의해 사임당의 전락한 의미가 율곡의 효도와 사임당의 모성이라는 담론을 거치게 된다. 사임당의 의미가 율곡이 지녔던 의미와 동일화 되는 가치에 이르렀지만, 이 담론에서 부곽된 것은 그녀의 화가로서의 능력이 아닌 어머니의 역할이었다는 점에 한계가 있다.
    독후감/창작| 2013.05.22| 3페이지| 2,500원| 조회(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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