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이슬람 사원을 다녀와서1. 이슬람교이슬람교는 그리스도교·불교와 함께 세계 3대 종교의 하나이다.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알라의 가르침이 대천사(大天使) 가브리엘을 통하여 무함마드에게 계시되었으며, 이슬람교는 유대교·그리스도교 등 유대계의 여러 종교를 완성시킨 유일신 종교임을 자처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창시자의 이름을 따서 무함마드교라고 하며, 중국에서는 위구르족[回紇族]을 통하여 전래되었으므로 회회교(回回敎) 또는 청진교(淸眞敎)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이슬람교 또는 회교(回敎)로 불리고 있다.)이슬람에는 기본적으로 여섯 가지 믿음이 있는데 하나님에 대한 믿음, 천사들에 대한 믿음,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성서들에 대한 믿음,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들에 대한 믿음, 심판의 날에 대한 믿음, 하나님의 정명에 대한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토대로 신앙의 증언(샤하-다), 예배(쌀라), 희사(자카), 단식(씨얌), 성지순례(핫즈)라는 다섯 가지 실천 기둥을 가지고 있다.2. 한국의 이슬람교, 이슬람 사원이슬람은 한국에서 아직까지 생소한 종교에 속한다. 한국의 이슬람교 신도의 수는 대략 13만 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중에서 외국인을 제외한 한국인 신도가 약 3만 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는 13억 명의 신도를 가지고 있는 세계3대 종교 중 하나이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소수 종교일 뿐이고 이슬람교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이슬람교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이태원역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이슬람 사원을 방문했다. 약도를 뽑아갔지만, 타고난 길치(?)라서 상당시간 헤매다 겨우 도착하게 되었다. 사원 입구에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무함마드는 그 분의 사도입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이슬람교가 유일신 종교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구절이었다. 사진을 찍고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나에게 큰 재앙이 닥쳤다. 따로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고, 휴대폰으로 사진 찍을 생각으로 갔는데 휴대폰 액정이 갑자기 꺼지더니 끝내 액정이 수명을 다하고 말았다. 이대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중에, 다행히 휴대폰이 전원은 들어오는데 화면만 나오지 않는 것이어서 감으로 막 사진을 찍어댔다. 증거사진도 찍어야 하기 때문에, 대충 각을 잡고 혼자 사진을 찍는데 무척 민망했다. 집에 와서 컴퓨터로 확인해보니 다행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는 사진이 찍힌 것 같았다. 이슬람이란 종교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상태로 사원을 방문해서, 이런 시련이 찾아왔다는 쓸모없는(?) 생각을 하면서 안쪽으로 들어갔다.이 서울에 있는 이슬람 사원은 한국정부에서 토지를 기부하고, 전 세계 이슬람교 국가들이 건축 및 운영 경비를 지원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한국인 이슬람교도들도 많이 방문한다고 하지만, 주로 국내에 거주하는 서남아시아나 북아프리카 이슬람교 신자들이 찾아와 예배하고 정보를 교환한다고 한다. 이슬람 사원만 있는 줄 알고 찾아갔지만, 막상 가보니 이슬람 사원 외에도 한국이슬람 문화연구소, 아랍어 연수원, 한국무슬림 학생회 등의 건물이 위치하고 있었다. 이 사원은 돔과 아라베스크를 절충한 이슬람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1층엔 사무실과 회의실, 2층엔 남자 예배실, 3층엔 여자 예배실이 위치하고 있었다.)사원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이슬람에 대해 소개해놓은 글귀들이 눈에 띄었다. 예언자들에 대한 소개, 여섯 가지 기본 믿음, 다섯 가지 실천 기둥에 대해 간략히 설명되어져 있었다. 또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비교해놓은 표도 있었다. 사원 구석구석을 살펴보다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보통 교회나 성당을 가보면, 예수를 그린 초상화나 동상 등이 있기 마련인데 이 이슬람 사원에는 무함마드를 그린 초상화나 동상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보통 믿는 대상을 기념하거나 기리기 위해서 초상화나 동상 등을 남기기 마련인데, 이것이 없다는 점이 매우 특이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무함마드는 초상화 등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한 것이지, 자신의 모습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랬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인상 깊은 내용이었다. 이곳에서는 하루 다섯 번의 예배를 보며 예배시간은 한번 볼 때마다 10∼15분 정도라고 한다. 합동예배는 금요일 오후 1시에 열리며, 일요일에는 어린이들에게 코란을 강의하며, 이 중에서 합동예배는 이슬람교도에게는 필수적인 예배라고 한다.)예배를 드리는 곳으로 가보니, 네모난 카펫들이 바닥에 깔려있었다. 이슬람은 네모난 카펫 위에서 기도도 드리고 하는데, 이 네모난 카펫이 바로 신분을 나누지 않는, 평등사상을 대변한다고 한다.이슬람 사원도 굉장히 인상 깊게 구경했지만, 이슬람 사원 주변의 거리와 상점들도 굉장히 특이했다. 마치 한국 속의 작은 외국을 보는 느낌이었다. 한국인보다는 외국인들이 더 많았으며, 아랍어로 쓰인 간판들도 존재했고, 쉽게 맛볼 수 없는 독특한 음식들을 파는 식당도 존재하였다. 방문 기념으로 간단한 기념품을 사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3. 이슬람교에 대한 '색안경'앞에서도 잠깐 서술했듯이, 나는 이슬람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채로 이슬람 사원을 방문했다. 내가 특정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슬람교에 대해서는 일종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작은 시련(?)도 겪었지만, 기존의 내 생각들은 잘못된 것이었다는 걸 이번 답사를 통해 깨달았다.가장 놀랐던 것은, 이슬람교도 기독교나 천주교에서 말하는 똑같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었다. 단지 그 하나님을 이슬람 신도들은 알라(Allah)라고 부르는 것뿐이었다. 나는 이슬람은 천주교나 기독교와는 다른 신을 믿는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내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무슬림은 코란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모든 말씀을 믿는다고 한다. 즉, 모세, 다윗, 예수, 무함마드 모두 하나님이라는 신의 사자이고 이들이 저술한 '오경', '시편', '복음', '코란' 모두 하나님이 신의 사자를 통해 계시하신 말씀이므로 전부 믿는다는 것이다. 최근 일부 기독교 신자들이 불교를 우상숭배로 비하하면서, 소위 말하는 '봉은사 땅 밟기'로 기독교와 불교간 종교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비록 하나님이 하신 말씀만을 믿는다는 것에서 한계가 느껴지기는 하지만, 코란뿐만 아니라 다른 경전들도 믿는다는 점에서 이슬람의 이런 사상은 수용하여 확장시켜야 하고, 또 충분히 수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껴졌다.또 흔히 이슬람 하면 떠오르는 여성 차별도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코란에 나와 있는 내용 중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여러분 중 가장 훌륭한 자는 아내에게 친절한 사람이다.”“천국은 어머니의 발 밑에 있다.”이 구절만 보더라도, 이슬람이 남녀를 차별하고 여성을 무시한다는 말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또한 이슬람의 '히잡(hijab)'은 대표적인 이슬람의 여성탄압의 상징물로 여겨지는데, 사실 이것도 왜곡된 경향이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천주교의 수녀님들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은 수녀복을 입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녀님은 하나님을 위해서 자기를 바치는 존경받는 신앙인으로 대접받고, '히잡'을 두른 무슬림 여성은 억압받는 여인으로 대우받는다. 즉, 달리 생각하면 '히잡'이라는 것도 여성들을 억압하는 존재가 아니라 수녀복과 마찬가지로 정체성을 표현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의복에 해당하는 것이다. '히잡'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니, 무슬림 여성들도 '히잡'의 착용을 강요당하지 않는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나는 '히잡'은 대표적인 여성탄압의 상징물이라는 기존의 이미지를 아무런 비판 없이 수용했던 것 같다. 이슬람은 사실 여성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구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외에 이슬람하면 떠오르는 테러리스트, 종교의 강제, 가부장적인 일부다처제 역시 상당부분 잘못된 부분이 있어서 바로잡아야 하며, 실상을 살펴보면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보니 왜곡된 것이다.
불교와 기독교간의 대화1.들어가며불교는 인도에서 석가모니가 처음 만든 종교로, 동양의 대표적 종교이다. 그리고 기독교(그리스도교)는 서양의 대표적 종교로, 현재는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동양의 대표적 종교인 불교와, 서양의 대표적 종교인 기독교를 이번 논문을 통해서 비교?대조하려고 한다. 불교와 기독교에 대해서는 이미 한국에 널리 퍼져있을 뿐만 아니라, 이에 관한 서적과 언론매체의 보도도 많기 때문에 나도 이에 관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특정 배경지식에 치우쳐서 논문을 작성하기 보다는, 성경과 숫타니파타 자체만을 가지고 기독교와 불교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난 후,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바탕으로 논문을 쓰려고 한다.2.종교 비교2.1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점사실 불교는 동양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발생된 종교이고, 기독교는 서양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발생된 종교이기 때문에 차이점이 있는 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성경과 숫타니파타 속에서는 불교와 기독교의 어떤 차이점들을 발견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정리해보고자 한다.먼저 불교와 기독교는 각각 석가모니와 하느님을 따르는 종교이지만, 그 방식에 있어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숫타니파타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엇에 대해서 집착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집의 가정생활 등에 집착하지 말고, 출가하여 숲속에서 수행하라고 말하고 있다(220, 221)) 즉, 무언가에 인위적으로 집착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자연의 이치에 따라 수행을 함으로써 이상적 인간상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불교는 인위적이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것을 추구하는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성경에서는 믿음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특히 1장 13절을 보면 율법보다 믿음을 더 중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믿음을 강조하는 것은 성경에서 하느님을 농부, 예수는 포도나무, 사람을 포도나무 가지로 비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열매를 맺지 않는 포도나무 가지를 농부가 잘라버리고, 열매를 맺은 포도나무 가지만을 농부가 손질하고 다듬듯이, 기독교교에서는 믿음이 없는 사람은 예수에게 머물 수 없고, 믿음이 있는 자만이 예수에게 머물 수 있다는 것이다. 집착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게 수행하는 것을 추구하는 불교와 달리, 기독교는 예수라는 포도나무 가지에 믿음을 가지고 인위적으로 매달려야만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이러한 불교의 자연성과 기독교의 인위성은 죽음과 부활에 대한 사상 차이로 명확해진다. 숫타니파타를 보면, 자신의 몸은 언젠가는 시체가 될 것이기 때문에 육체의 욕망을 떠나라고 말하고 있다(203, 204) 즉, 죽음이라는 것은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생멸(生滅)하는 자연의 질서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삶에 집착하고 죽음을 피하고자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성경의 4장 17절을 보면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는 존재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6장 10절에서는 죽음은 죄에 대한 단번의 죽음이고, 살음은 하나님에 대한 살음이라고 하고 있다. 이렇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예수의 ‘부활’이라는 인위적 장치가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예수가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했다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불교의 자연 질서에는 전혀 맞지 않는 것으로, ‘기독교’라는 신앙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이처럼 불교는 자연성을 가지고 기독교는 인위성을 가지기 때문에, 불교는 자연스럽게 떠돌아다니는 자연적 특성을 가진 수행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고, 기독교는 십자가라는 역설적인 죽음과 자기포기를 통해서, 새로운 생명을 전환한다는 인위적 특성을 가진 개념을 가지고 있다.그리고 불교는 진리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한 학문적 특성이 강한 데 반해, 기독교는 신앙을 바탕으로 한 종교적 특성이 더 강하다는 차이점이 있다. 즉, 불교의 예배의 대상인 석가모니는 진리를 깨우친 선구자적인 면모, 기독교의 예배의 대상인 예수는 종교적 구원자의 모습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숫타니파타에서는 진리와 지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학문을 닦아서 진정한 깨달음을 얻기를 요구하고 있다(55, 70, 92, 184). 반면에 예수의 탄생과 부활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존재는 하나의 종교적 사건이자 신비였던 것이다. 그가 내려온 이유(1장 10절)가 하느님의 구원 의지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유가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확증(5장 8절)하기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는 더 분명해진다.이러한 차이점은 물을 대하는 예수의 태도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성경에는 예수가 바람과 호수를 꾸짖자 조용해졌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와 같은 예수의 행위는 천지의 조화를 거스르는 인위적인 행위인 것이다. 반면에 석가모니의 수행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행위라는 측면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불교의 자연성과 기독교의 인위성을 드러내다. 이 뿐만 아니라 이 예화를 통해서 현실을 지향하고 깨달음을 중시하는 학문적인 불교와 현실 너머의 세계를 지향하고 신앙을 중시하는 종교적인 기독교의 차이점을 알 수 있었다.또한 윤리적 관점에서도 두 경전은 차이점을 보인다. 태초의 인간의 특성에 대해서 서로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경에 보면, 사람은 다 거짓되고 원죄를 가지고 있다고 서술되어 있다(3장 4절). 반면 숫타니파타에는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며, 다만 특정 행위들에 의해서 천해지는 것이라고 되어있다.(142)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태초부터 가지고 있는 죄를 씻어내기 위하여, 하느님이라는 신적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는 것이고 불교에서는 잘못된 행위들을 하지 않기 위하여 수행하는 행위를 하라고 하는 것이다. 잘못된(나쁜) 인간에 대한 태도에서도 두 경전은 차이점을 보인다. 성경에는 잘못된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 대한 아가페적 사랑(1장 15절)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숫타니파타에서는 나쁜 사람은 멀리 하라고 되어있기 때문이다(57).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하느님을 믿음으로써 모두 속죄할 수 있고 '대속(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으로써 만민의 죄를 대신 속죄(贖罪)하였음을 의미하는 신학 용어)'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만, 숫타니파타에서는 불결한 사람은 깨끗해지기 어렵고 어떤 업도 그대로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임자에게 돌아온다고 말하는 것이다(279, 666).2.2 공통점 속에 숨겨진 불교와 기독교의 차이점사실 이 책을 읽다보면 교훈적 측면이 아닌 사상적 측면에서도 불교와 기독교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만한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자세히 분석하다보면 이러한 공통점 속에 엄연한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사실 숫타니파타나 성경이나 모두 진리는 인간 안에서 만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도착점은 같다고 할지라도 출발점(경험적 측면)은 서로 다르다. 불교는 탐욕과 집착 등을 없애는 자기 자신의 수행, 즉 인간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기독교는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믿음, 즉 하느님이라는 신적 존재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점이 위에서도 말했듯이, 기독교를 신앙적 특성이 강한 종교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한편 불교와 기독교 모두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한 성실한 삶을 강조했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불교와 기독교에서는 이 용어의 개념 자체가 서로 다르다. 숫타니파타를 보면 확고한 신념이란 자신의 철학자의 논쟁을 초월한 진정한 깨달음을 뜻하고(55), 기독교에서 확고한 신념이란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뜻한다. 또한 성실한 삶이라는 것도 불교에서는 자신의 내면을 끊임없이 수행하며, 놀지 않고 내 힘으로 살아가는 삶을 의미(24)하고, 성경에서는 자아의 성실성을 바탕으로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용어의 개념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수행을 하고, 도덕적 영속성에 다가가라고 하는 반면, 기독교에서는 종말론적 상황에 대비해 확고한 신념체계를 가지라고 하는 것이다.또 숫타니파타와 성경 모두 신이라는 존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성경에서의 신은 절대자이자 무한한 존재이지만(9장 14절) 숫타니파타에서는 신도 집착에 얽매여 무언가를 갖고자 하는 존재이자 유한한 존재로 나타난다(333).2.3 불교와 기독교의 교훈적 측면에서의 공통점앞에서 살펴봤듯이, 불교와 기독교를 사상적 측면에서 분석해봤을 때에는 질적으로 다른 종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인에게 주는 교훈적 내용에서는 두 종교가 공통적인 내용을 전달해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Immanuel Kant, Benjamin Franklin, 흥부전, 무정-1.들어가며수업 초반에 강의 소개를 듣고, 한국에 대한 자기 생각을 간단하게 서술한 다음에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처음에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을 서술한 다음에 작품들과 텍스트들을 분석하다 보니, 작품들과 텍스트들을 통해서 한국사회의 문제점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강의 전반부에 수업한 내용들이 각기 따로따로 떨어진 내용이 아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작품들과 텍스트들을 확인하면서 서술하기로 하겠다.2.Immanuel Kant-What is Enlightenment?문학작품들을 분석하기에 앞서서, 먼저 칸트의 계몽에 대한 생각이 담긴 논문을 살펴보았다. 칸트는 이 논문에서 계몽에 대한 자기 생각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는데, 계몽은 자신의 과오로 인한 미성숙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계몽의 구호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Sapere aude(Think there)! 네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즉, 스스로의 비판적 검토와 숙고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서 사고의 자율성을 획득하여야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의 자율성을 얻지 못하고 미성숙한 상태로 있는 이유로 칸트는 게으름과 비겁함을 제시한다. 칸트는 만약 나에게 나를 대신하여 지성을 가지고 있는 책이 있고, 나를 대신하여 양심을 가지고 있는 목사가 있고, 나를 대신해서 음식을 준비하는 의사가 있다면, 나는 조금도 수고로울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하고 있다. 이처럼 미성숙한 상태로 머무르는 것은 매우 편안하기 때문에 사고의 자율성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이러한 칸트의 계몽에 대한 생각을 수업 첫 시간에 한 것은 이 '문학과 사회' 강의의 중점이 작품에 대한 독자적이고 창조적인 해석에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수험생시절을 겪은 대부분의 학생들은 문학작품을 분석할 때 스스로 분석하려고 하기 보다는 문학평론가들이나 선생님들이 분석해놓은 것을 그대로 수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렇게 하는 것이 문학작품을 더 쉽고 빨리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상태가 칸트의 말을 인용해보자면 '미성숙한 상태'인 것이다. 그렇지만 계몽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미성숙한 상태로부터 벗어나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만의 시각으로 문학작품을 분석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것이 칸트가 말한 '사고의 자율성'을 획득하려고 하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3.흥부전칸트의 계몽에 관한 논문을 독해한 후에, 흥부전에 관한 발표와 수업이 진행되었다. 나도 흥부전에 대해서 글을 작성하였기 때문에, 발표자가 말하는 것에 더욱 집중하며 내 생각과 비교해 보았다. 발표자는 먼저 이 흥부전이라는 작품이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려고 하나 이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하였다. 흥부전에서 흥부는 제비가 가져다 준 '박'을 통해서 엄청난 부를 가지게 되었다. 즉, 흥부가 잘되는 결말을 맺기 위하여 '박'이라는 소재를 도입하였는데, 이것은 현대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로또에 당첨되는 것과 같이 현실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박'이라는 소재와 로또 모두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로또와 박은 그것들을 추구하는 인간의 동기 측면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로또를 쫓는 사람들은 동기 자체가, 그것을 통해서 순식간에 엄청난 부를 소유하기 위해서이다. 반면에 이 작품에서 흥부는 박을 엄청난 부를 가질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있지 않다. 또한 그것을 기대하고 제비의 부러진 다리를 고쳐준 것도 아니다. 흥부와 달리 놀부는 박을 기대하는 심리가 로또를 기대하는 현대인의 심리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놀부는 이미 상당한 부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을 통하여 지금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하려 하고 있다. 그렇지만 놀부가 박으로 인하여 패가망신을 하는 것을 보면, 놀부가 추구하는 박 역시도 로또와는 차이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놀부는 부를 얻을 것을 기대하고 박을 타지만, 박으로 얻게 되는 것은 부의 상실이다. 로또의 경우는 당첨이 되지 않더라도 입는 손실이 그렇게 크지 않은데 반해, 도박의 경우는 다르다. 판돈이 큰 도박일 경우에는 잘못될 경우 도박에 실패했을 때 입는 물질적 손해가 엄청나다. 그래서 로또로 가산을 탕진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반면, 도박으로 인해 가산을 탕진하는 사람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놀부의 박은 로또보다 도박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그리고 발표자는 착함과 경쟁에서의 승리(부의 획득)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였다. 즉, 착하고 나쁘다는 것은 물질적 배분기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착하다고 해서 능력 있다고 인정받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경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남을 패배시키고 자신이 좋은 위치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착한 심성을 가진 것은 경쟁에서 불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융통성과 욕심이 필요한 경쟁사회에서 흥부는 도태될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착한 것만으로는 경쟁사회에서 승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흥부전을 읽으면서 흥부가 부를 당연히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을 토대로 봤을 때 우리는 흥부전의 결말을 너무 당연시 여기는 경향이 있다.정리해보면, 착한 사람은 보통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착한사람이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현실에서 약간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착한 사람이 돈을 많이 갖게 되는 것에 대한 염원과 바람을 토대로 이 소설을 쓴 것인데, 그 실현 과정에서 '제비와 박'이라는 비현실적인 소재가 등장했기 때문에 이 작품에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이런 비현실적인 방법보다는, 차라리 '파이'를 키워서 흥부를 잘살게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현대의 '생산적 복지'라는 개념과도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생산적 복지'는 정부에서 퍼주는 식의 복지 제도가 아니라, 정부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창출해줘서 그 일자리를 통하여 스스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주는 복지 제도이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흥부가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욕망에 너무 집착하지 않도록 하는 의식적인 개혁도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상호 호혜적인 경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4.Benjamin Franklin-Advice to a Young Tradesman이 자료는 벤자민 프랭클린이 젊은 상인에게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충고하고 조언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여기서 벤자민이 중시하는 것은 신뢰와 시간이다. 만약 신뢰도가 높고, 시간을 잘 지킨다면 그는 다름 사람 지갑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반면 약속된 시간을 지키지 않고 신뢰감도 주지 못한다면, 그는 다른 사람의 지갑을 영원히 닫게 만들 것이라고 하고 있다. 즉, 만약 채무자가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일해서 채권자에게 신뢰를 주면, 채권자는 그 모습을 보고, 갚아야 하는 기간을 늘려줄 수 도 있다는 것이다. 반면 채무자가 일은 열심히 하지 않고 술이나 마시고 있으면 채권자는 그에 대한 신뢰가 사라질 것이고, 계속해서 돈을 갚으라고 요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과 신뢰를 낭비하지 않고 최대한 사용하는 것이 근면과 검소라고 할 수 있으며, 이 근면과 검소가 지켜져야 부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부를 획득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프랭클린의 생각을 앞에서 살펴본 흥부전이라는 작품과 비교해보면서 경쟁사회에서 승리(부를 획득)하는 것에 대한 고찰을 해볼 수 있기 때문에 이 텍스트를 수업시간에 다뤘던 것 같다.5.무정흥부전에 이은 두 번째 작품으로 무정을 수업시간에 다뤘다. '문학과 사회' 강의의 수업목표 중 하나가 한국사회가 20세기 초 이래 이룩한 근대화 과정을 이론적이며 실존적으로 성찰하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고, 문학의 고유한 사회성은 바로 세계와 인간의 변동에 따른 새 해석과 존재가능성을 탐구하고 제공하는 데 있다고 강의 계획서에 서술되어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봤을 때, 이 무정이라는 작품은 이 강의의 목표와 어느 정도 부합된다고 생각한다. 무정이 한국사회의 변동이 일어나고 근대화 과정이 이루어지던 시기에 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발표자는 이러한 초점을 잘 파악하고 무정이라는 작품을 '사상의 충돌에 대한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요약하였다. 작품을 살펴보면 근대화가 이루어지면서 남녀 가리지 않고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구호가 등장하고 있는 반면에, 사회제도의 변화는 미흡하여 가부장적 사고가 여전히 한국사회에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이라는 위치가 혼란을 겪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 혼란을 겪는 대상으로 작품에서는 기생인 영채와 월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조선사회에서는 기생이라는 존재가 모순에 가까운 존재였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아왔다. 하지만 근대화의 혼란 속에서 영채와 월화는 보통 여성과 같은 지적 수준을 소유하게 되었고, 이런 인물들은 앞에서 말한 모순과 충돌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시기의 가운데에 놓여있는 기생이라는 존재를 통하여 작가는 근대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Employee Compesation:Theory, Practice, and Evidence6주차 요약 과제조직은 적은 사원으로 더 많은 성과를 얻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적자원에 대한 효과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인사보상은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사원과 고용주 모두에게 중요하다. 보상은 고용주의 능력과 사원의 일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 보상은 조직의 형태에 따라서 차이가 있다.전략적 급여 관점급여는 현금이나 이익의 형태이다. 대부분 현금이지만 건강관련도 최근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급여의 수준이 문제가 되는데, 이를 위해서 조직은 시장조사를 한다. 단순히 노동 비용만을 고려해서는 안되고, 수익, 판매 등도 고려해야 한다.노동 비용과 생산성은 중요한 요소인데, 이를 위해서 기업은 인건비가 저렴한 곳에 공장을 짓기도 한다. 그러나 노동집약적 생산을 제외하고는 노동 비용은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다. 노동비용은 줄어드는 추세고 노동의 질이 중시되고 있다. 또한 구조가 급여 차이를 설명한다. 구조의 또 다른 측면은 사원에게 지급되는 시점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빠른 급여인상인 반면 어떤 사람에게는 급여비율이 낮다. 급여 시스템은 또한 차이가 나는데, 장점 성장이 중요해지고 있다. 급여는 그리고 다른 조직들에서 다르게 등록된다. 의사소통 역시 관리의 또 다른 측면이다. 실제 효과는 지불 계획이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냐에 달려있다.이 논문에서는 현금보상과 급여 복합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룰 것이다.급여 결정의 결과 : 이론들급여 체계의 효과는 기업 전략, 문화, 경쟁 환경 등의 요소에 달려있는데, 상대적인 중요성은 조직에 따라 다르다.강화이론은 보상에 대한 응답은 미래에도 반복된다고 한다. 실제로 경험한 보상을 중시하는 것이다. 기대이론 역시 보상과 행동의 연관성을 중시한다. 동기에 의해서도 보상 시스템은 달라지는데, 사실 보상 시스템은 여러 수단들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공평이론은 사원의 조직에 대한 기여와 기여에 대한 보상 비율에 대한 인지가 보상의 공평성을 결정한다고 한다. 사례들이 있는데, 이 사례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의사소통이 사원의 행동과 태도에 대해서 독립적이고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그리고 보상이 남보다 낮다면, 자신의 노력을 줄이려고 한다는 것이다.대리인 이론은 주주의 이해와 목표와 보상 방식이 동일한 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대린인 비용을 줄이는 것이 핵심인데, 이것을 계약을 통해서 해결하자고 한다. 처음엔 결과 중심의 계약, 그리고 행동 중심의 계약이 해결책으로 제시되었지만, 지금은 위험 회피, 결과 불확실성, 직업 프로그래밍, 직업 결과 측정, 지불할 능력, 전통에 따라서 계약이 달라진다고 보고 있다. 그 외 전략과 보상 프로그램 역시 중요한 요소이다.급여 프로그램변동급여정책을 회사에서 최근 많이 채택하고 있다. 그리고 이 변동급여는 개인성과보다 회사 전체의 성과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이런 변동급여는 사원들에게 메시지가 될 수 있다. 팀 기반의 조직, 자격의 제거 등이 그 예이다. 변동급여에서 그룹의 크기는 핵심적인 요소인데, 이런 차원에서 수익배분제가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수익배분제는 회사가 돈을 잃었을 때 문제가 된다. TQM의 증가 역시 변동급여 성장의 원인이다.전통적인 방식은 직업의 가치는 직업평가에 근거한다. 그러나 직업 기반제도는 너무 관료적이고 시장비교가 부족해서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비평이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조직은 경영 단계를 줄이고 급여 등급과 일치시키는 방법이 있다. 목표는 의사소통 성장과 빠른 결정이다. 그리고 기술과 연결된 급여 대신 직무내용에 따르는 것이 또 다른 대안이다.이러한 최근의 변화는 여러 사실로부터 알 수 있다. 한 기업가는 인센티브 보상 프로그램과 판매 목표는 실수가 발생하는 환경에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조직 측면에서 보면 단기간의 보너스와 장기간의 인센티브는 회사의 높은 수익성과 연결된다. 수익공유 계획은 사실 회사 평균보다 높은 생산성을 나타낸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게다가 이 계획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아마 중단될 것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수익배분제는 수익이나 주식성과보다 가치, 판매, 생산, 시간절약 등 사원들이 통제할 수 있는 요소들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리고 일련의 연구에서 수익배분제가 다른 여러 제도들보다 높은 생산성을 가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한 수익배분제는 무임승차를 줄일 수 있어서 적은 사원의 숫자를 극복할 수 있고, 이것은 계획 성공의 잠재적인 요소이다. 그렇지만 수익배분제가 생산성이 좋다고 해서 계속 사용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다른 부서의 사원이 불공평하다고 느껴서 수익배분제가 중단된 사례가 있다. 또 다른 증거는 돈을 절약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계획이 반드시 오래 살아남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한 연구에서 수익배분제가 효율성 개선 측면에서 별 효과를 나타내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왔다.많은 조직들은 단체, 조직 변동급여 계획으로 옮기고 있다. 전통적인 장점 급여 계획 등에서 실패를 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좋은 성과자와 나쁜 성과자 사이에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기 떄문에, 개인적 장점 급여가 별 효과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실제로 급여 차이가 적고 이것은 성과에 대한 동기부여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반면에 높은 성과를 내는 사람은 더욱 촉진될 것이고, 높은 보상성장을 받을 것이라는 점을 간과했다. 성과 급여의 일부인데 실제로는 이처럼 잘 소통되지 않는다.능력별 사원 분류의 효과에 대한 경험적인 증거는 기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기술기반의 급여에 대한 연구가 단지 나타날 뿐이다. 대부분의 조사 응답자들은 기술기반의 급여가 유동성과 적응력, 팀에 대한 기여력 측면에서 성공적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노동비용을 많이 줄이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높은 노동비용이 유동성, 적응력, 팀제 등의 이점으로 극복될 수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신화 재조명 오제연 교수님1.들어가며문화일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TNS에 의뢰, 만 20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국부형성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한민국 건국 이후 국부형성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을 생각나는 대로 말해 달라’는 설문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76.7%로 1위를 하였다. 뿐만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한 독재자라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그가 이루어낸 경제 성장과 강력한 정책 추진력은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경제발전의 상징이 되어버린 박정희 전 대통령의 화려한 경제성과에 그림자는 없는지, 지나치게 과장된 부분은 없는지 검토해볼 필요성이 있다. 오늘날 경제상황은 그 단면이 밝은 면이든 어두운 면이든 지난 반세기에 걸쳐 이룬 개발과 경제성장의 역사적 귀결이면서 그 산물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2.박정희의 경제적 성과에 대한 의문사실 지금까지 박정희 정권의 경제정책은 철저한 계획 아래 단계적으로 시행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의 수출지향형 공업화 정책은 내포적 공업화 전략이 좌절된 후에 잔여적으로 선택된 귀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계기를 통해서,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정책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고찰해보고자 한다. 먼저 박정희 정권이 이룩해 낸 경제지표에 대해서 분석을 해보자.2.1. 과장된 경제지표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때 등장하는 것이 1인당 국민 총소득이다. 1인당 국민총소득이 82달러정도였던 우리나라를 이 정도의 경제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지도자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재의 우리가 단순히 생각하는 수치인 82달러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 당시 일본이 500달러 수준이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현대에 쓰이는 1인당 국민총소득의 숫자 개념으로 당시의 수치를 저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당시의 82달러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여러 선진국과 비교하였을 때 낮은 수치였음은 분명하지만, 어느 정도 현재의 경제 수준까지 도약하기 위한 기반은 존재했던 것이다. 또한 당시 물가상승률도 고려해야 한다. 1961년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82달러였고,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함으로써 정권에서 물러난 1979년에는 1,676달러를 기록하였다. 이는 20.56배 증가한 것으로 연평균 18%가량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치로만 보면 놀라운 정도의 성장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1인당 국민총소득은 명목상의 값이므로 물가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맹점을 지니고 있다. 2000년도의 물가수준을 100으로 상정한 소비자물가지수)를 보면 1961년에는 2.18560, 1979년에는 25.796를 나타내고 있다. 즉, 18년 사이에 물가가 약 11.8배(연평균 15%) 증가한 것이다. 물론 이 수치도 낮은 수치는 아니지만, 박정희 대통령 집권 당시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 등으로 인해 빈부격차, 도농격차 등이 심화되어 분배가 상당히 악화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서민들의 실질소득은 상당히 작은 폭으로 증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물가상승률뿐만 아니라 당시 환율도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60년까지는 65원/달러였던 환율이 61년에는 130원/달러로 대폭 상승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곧 달러로 표시된 61년도의 각종 수치들이 저평가된 수치라는 점을 시사한다. 또한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할 당시 환율은 485원/달러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었지만 바로 다음해인 80년 말에는 700원/달러 수준까지 상승한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즉 평가 절하된 환율로 인해 집권 말기 각종 달러 표시 수치들이 고평가되어있었고, 이는 경제성과가 상당부분 과장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1인당 국민 총소득과 함께 등장하는 것이 수출액이다. 1961년에는 5천만달러정도였던 수출액이 1979년에는 약 150억 달러를 기록 했으니 300배가량 증가한 것이므로 엄청난 성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수입액을 고려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집권기간 동안 총 수출액은 638억 달러인 반면 총수입액은 871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즉 18년간 233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셈이다. 특히 마지막 해인 79년에는 150억 달러의 수출액과 203억 달러의 수입액이 발생하여 한 해에만 53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였다. 이는 수많은 국가로부터 차관을 도입하고 원자재를 구입하였지만, 집권 말기로 갈수록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손해를 보았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대규모 무역적자를 뒤로하고 수출액의 증가만으로 경제 발전을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2.2. 외부적 요인의 영향박정희 정권을 평가할 때 경제개발정책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집권을 시작할 무렵, 패배감에 젖어있던 국민들에게 ‘하면 된다.’라는 식의 리더십으로 오늘날의 경제발전을 이룩했다는 견해에도 일면 타당한 점이 있지만, 여기서 보다 중점을 둘 부분은 경제개발에 보다 큰 영향을 준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이 아니라 여러 국내외 상황이 아니었나 하는 의문이다.먼저 경제개발계획에 대해 살펴보자. 사실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기 전인, 1960년에 「경제개발 3개년 계획(1960~1962)」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4?19혁명으로 인한 정권교체로 인해 실시되지는 못했고, 이후의 장면 정부에 의해서도 본격적인 5개년 계획이 작성되어져 있었다. 즉, 박정희 정권은 경제개발정책을 시행했을 뿐이지, 그것의 시작에 관여했던 것은 아니다. 다음으로 국제적 요인에 대해 살펴보자. 당시의 저개발국의 경제개발정책이 인도,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으로 확산, 실시된 배경에는 미국의 저개발국 경제원조정책이 큰 몫을 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미국의 원조당국에 의해 개발정책이 시작되었고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당시의 경제개발정책을 추진했던 국가들은 대부분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나타냈다). 이러한 저개발 국가들의 경제개발정책에 따른 전반적 성장세와 더불어 국제적인 호황상태는 수출을 중심으로 하던 당시의 경제정책의 전략과 적절히 들어맞았다. 특히 당시의 선진국들은 이미 탈경공업화가 이루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이 수출지향적 경공업화는 호기를 맞게 되었다). 당시의 고도 경제성장은 이렇듯 국제 환경에 의해 좌우되었던 면이 크다. 이런 국제적 요인과 함께 당시의 국내적 요인도 경제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제강점기를 벗어나자마자 이어지는 정치적 혼란과 전쟁의 여파 때문에 국민들은 무엇보다 ‘잘 살고 싶다’는 열망이 컸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또한 저렴한 비용으로 풍부한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었으며, 기존의 정권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전쟁의 피해가 복구되어 가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국내적으로도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기에 적절한 시기였다.정리하자면, 박정희 정권이 집권하기 전 이미 여러 차례 경제개발계획안의 작성과 추진시도가 있었다. 또한 국제적으로는 미국의 원조를 받으며 경제개발정책을 수립 및 시행할 수 있었고 이는 세계적인 경제호황과 맞물린 시기였다. 더불어 국내적으로 전후복구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던 것과 함께 국민들의 경제성장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는 것은 당시의 고도 경제성장이 박정희 대통령의 역량 이외의 요인에 의해 크게 좌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