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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재 답사 레포트 (창덕궁)
    창덕궁에서 바라본 우리 문화재의 보존과 관리의 중요성-창덕궁 답사기-강좌 : 한국전통문화의이해교수님 : 홍순민 교수님제출일 : 2014. 07. 11목차1.서론2.창덕궁 답사1)창덕궁이란2)창덕궁의 훼손 및 복원 사례3)답사를 통한 창덕궁의 보존 및 관리현황3.결론4.참고문헌 및 자료5.답사사진1.서론현대는 급속한 세계화를 바탕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발전을 거듭함에 따라 국가와 문화 간에 교류도 점점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빠른 경제발전으로 세계화의 정도가 크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세계화로 인해 국가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게 되는데, 그럴수록 자신들의 문화의 정체성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즉, 자신들의 문화를 보존하는 것이 세계화 시대에 대처하는 바람직한 자세인 것이다. 문화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이러한 문화의 정체성은 특히 우리 문화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문화재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하며, 그에 따른 보존과 관리가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앞서 말했듯 우리 문화의 정체성에 있어서 문화재의 보존과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외세의 잦은 침략과 일제강점기의 역사로 문화재의 보존의 어려움을 겪었다. 많은 문화재들이 유출되거나 훼손 되었으며 심지어 소실된 문화재도 다수이다. 뿐만 아니라, 이에 대처하는 국민들의 인식 또한 올바르지 못하다. 국보 1호의 숭례문의 경우 우리나라 국민의 손에 의해 직접 훼손되기까지 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그렇기 때문에 문화재의 관리와 보존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창덕궁을 답사하며, 관리 상태와 보존 상태를 주의깊게 살펴본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지금부터 보존정도가 뛰어나지만, 잦은 화재의 아픔을 겪은 창덕궁을 다루고자 한다. 사전에 조사한 자료들과, 직접 답사하며 눈으로 보고 느낀 관점을 토대로 관리와 보존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다.2. 창덕궁 답사1)창덕궁이란창덕궁(昌德宮)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 있는 조선 시대 궁궐로 동쪽으로 창경궁과 맞닿아 있다. 경복궁의 동쪽에 있어서 조선 시대에는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東闕)이라 불렀다. 창덕궁은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중요한 고궁이며, 특히 창덕궁 후원은 한국의 유일한 궁궐후원이라는 점과 한국의 정원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 1997년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창덕궁은 고려 시대 궁궐의 전통을 이어받았고, 개성의 송악산의 만월대처럼 자연 지형에 맞추어 산자락에 지어졌다. 보통 궁궐은 인위적으로 존엄성과 권위를 드러내도록 건축되지만 창덕궁은 이러한 얽매임 없이 북악산의 줄기인 응봉의 산자락 생긴 모양에 맞추어 적절하게 궁궐의 기능을 배치하였다.창덕궁은 정궁인 경복궁보다 오히려 더 많이 쓰인 궁궐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다시 지어졌고, 1868년 경복궁이 다시 지어질 때까지 경복궁의 역할을 대체하여 임금이 거처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정궁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많은 부분이 의도적으로 훼손되었으나, 조선 후기에 그린 《동궐도》와 1900년에 그려진 《동궐도형》을 참조하여 복원이 진행되었다.2)창덕궁의 훼손 및 복원1592년 임진왜란으로 창덕궁은 서울의 다른 궁궐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불에 타버렸으며 그후 전쟁이 끝나고도 한참 뒤인 1608년에야 인정전 등 주요 전각이 복구되기 시작해 광해군 2년(1610)에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뒤이은 인조반정(1623)으로 외전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다시 소실되고 인조 25년(1647) 재차 중건이 시작되었는데, 이때 광해군 때 인왕산 아래 지어놓은 인경궁(仁慶宮)의 전각을 옮겨 지었기 때문에 5개월 만에 완성을 보았다.그러나 이후에도 창덕궁은 크고 작은 화재와 증축이 이어져 소실과 중건의 역사가 오랫동안 되풀이되었다. 정조 즉위년인 1776년에는 부용지와 규장각을 지었으며, 순조 3년(1803)에 인정전이 다시 소실되어 이듬해 중건하였고, 순조 33년에는 희정당과 대조전 등 내전의 많은 전각이 화재로 사라져버렸다.일제강점기였던 1917년 내전 일대에 대화재가 발생하여 대조전·희정당·경훈각·선정전 등의 전각이 거의 다 불타버린다. 그 후 1926년 순종이 대조전에서 승하한 후 훼손은 더욱 본격화되기 시작해 인정전의 동서 행각과 인정문이 헐려나갔으며 그 자리에는 전시장과 각종 편의시설을 세워놓고 일반인의 관람을 허용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은 광복 이후에도 계속되다가 1976년부터 2년여에 걸친 궁의 정비공사로 안정을 찾기 시작하였다. 1995년에는 인정문과 인정문 서쪽 행각, 그리고 1999년부터 진선문과 숙장문의 복원공사가 이루어져 부족하나마 궁궐의 기본적인 틀을 다시 갖출 수 있게 되었다.3)답사를 통한 장덕궁의 보존과 관리답사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 문화재의 보존 상태와 관리현황을 직접 확인 해볼 수 있었다. 창덕궁은 앞서 말했듯 수많은 훼손과 복원을 반복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존 상태는 뛰어나지만, 여러 훼손의 흔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문화재 훼손을 대비한 안전요소들 역시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창덕궁이 훼손과 복원을 거쳐 현재 어떠한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어떠한 보존관리를 하고 있는지 답사를 하며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그림 1 수라간 내부답사를 하면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이것 이었다. 바로 수라간 내부의 모습이다. 우리 궁궐에서는 볼 수 없는 구조로 서양식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조선시대 궁궐의 모습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조선시대 건축양식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의 관점에서도 창덕궁과는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창덕궁 수라간의 내부 구조가 이러한 모습을 갖추게 된 이후는 다음과 같다. 1917년 일제시대에 대화재로 소실된 전각을 중건할 때 서양식으로 개조하여 수라간으로 사용하였는데, 그 때 이루어진 잘못된 복원으로 인해 이러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수라간 외에도 창덕궁 곳곳에서 이와 같은 건축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그림 2 훼손된 희정당 벽화[출처]연합뉴스그 다음으로 발견한 창덕궁의 훼손된 모습은 바로 희정당의 벽화이다. 사실 희정당의 벽화 훼손은 한 때 이슈가 됐었던 문제로 유명하다. 그것을 사전에 알고 의도적으로 답사중에 확인하였다. 희정당의 벽화는 수라간과는 달리 소방설비를 설치하다 일어난 사고로 인하여 훼손 것이다. 시공업체의 부주의로 이와 같은 문화재의 훼손이 일어난 것이다. 숭례문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부주의로 인해 일어난 문화재 훼손이라는 점에서 가슴아픈 일이었다. 우리 국민들의 문화재에 대한 마음가짐이 다소 소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후감/창작| 2014.07.15| 10페이지| 3,000원| 조회(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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