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독후감-포숙에게 보내는 편지포숙 씨, 안녕하세요? 저는 어딘지 모르시겠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학생입니다. 포숙 씨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어서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우선 가장 궁금한 것은 관중과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그를 한결같이 믿어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관중은 함께 장사를 할 때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고, 세 번이나 벼슬에서 쫓겨났으며, 전쟁에서 탈영한 것도 세 번이나 되는데 어떻게 그를 변함없이 신뢰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홀어머니를 봉양하는 등 그의 생활형편이 어려웠다는 사정이 있지만, 보통 사람 같으면 그와의 관계를 끊을 만한 이유가 충분한 데도 당신은 절교는 고사하고 그를 상사에게 추천하기까지 했습니다. 아무리 그의 능력이 출중하다 하더라도 보통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당신의 인내심과 그를 향한 믿음, 배려는 과연 관포지교라는 고사성어가 생길 정도의 대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 관포지교라는 고사성어는 당신과 관중의 사귐을 뜻하는 것으로, 영원히 변치 않는 참된 우정을 말합니다.다음으로 궁금한 것은 당시 패권을 다투는 환공과 공자 규, 그 두 세력 중에 당신은 환공을, 관중은 공자 규를 섬기게 된 이유입니다. 왜 굳이 서로 다른 사람을 섬겨야 했는지, 각각 자신이 섬길 사람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혹시 관중이 공자 규가 미래에 패할 것을 알면서도 그동안 고마움을 느껴 당신에게 양보한 것은 아닌지요. 또한 당신은 관중이 공자 규의 사람이라는 이유로 죽을 위기에 처해 있었을 때 환공을 설득하여 관중을 재상의 자리까지 올렸습니다. 환공을 관중보다 더 오래 섬겼음에도 그보다 더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이 불쾌하거나 그를 향한 미움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일들이 얽혀 있었는지 저는 잘 모르지만, 만약 그런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면 당신과 관중이 완전하고 진심어린 우정을 나누었거나 당신이 성인군자가 아닌가 싶습니다.관중은 후에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짧고 간단한 말이지만 관중이 자신을 끝까지 이해하고 인정해준 당신에게 정말 고마워하고 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현 시대는 당신과 포숙 사이의 정신적 유대감, 진정한 우정과 같은 것을 찾아보기 힘든 사회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과 같이 자신을 위해 배려해주고 알아주는 친구를 원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그런 친구가 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상대방을 향한 질투나 미움, 욕심과 같은 감정은 버리기가 참 힘든데 그런 의미에서도 당신은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후대인 지금, 관중의 능력도 훌륭하지만 그보다는 당신의 우정을 더 많이 칭송하고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정뿐만 아니라 당신의 청렴함과 사람을 보는 눈, 정치적 능력 또한 무시할 만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몸소 저희 후손들에게 좋은 교훈을 주시고 귀감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선 말기와 현재의 평행이론- 황현의 『매천야록』처음 이 책을 봤을 때 제목이 ‘매천야록’이어서 잘 알려지지 않은 도청도설들을 모아놓은 책인 줄 알았다. 매천야록은 흥선대원군 집권 시절부터 한일합방조약을 체결하기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이 시기는 조선이 개화와 외세의 침략, 여러 내부적 갈등을 겪으며 서서히 망해가는 과정이다. 이 책은 관찬이 아니라 사찬, 즉 정사가 아닌 야사이기 때문에 동학농민군을 적당으로 칭하는 등 주관적인 시각이 나타나 있지만, 이 책을 통해 재야 지식인 황현의 당시 현실과 세태에 대한 비판적이고 진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또한 글에 주관적인 시각이 내재되어 있을 지라도 권력가들에게 유리하게끔 편향되어 서술되지 않았음이 느껴지고, 한편으로는 더 정확하고 자세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조선 말기와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평행이론처럼 비슷한 부분이 많다. 첫째로, 대원군의 집권 당시에는 경복궁 재건을 위한 세금 징수 등을 포함하여 백성들의 불만이 많았다. 그러나 저자가 “민씨들이 정권을 잡은 뒤로 백성들은 그 착취를 견디지 못해 자주 탄식하며 도리어 운현의 정치를 그리워했다. 이는 후한 백성들이 슬퍼 탄식하면서 망조 시절을 다시 생각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운현의 어진 덕이 남아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50쪽) 라고 한 상황과 같이 지금도 현 정권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이전의 정권을 떠올리며 아쉬워하는 것을 볼 수 있다.다음으로, 피난 간 명성황후가 환궁할 때를 점쳐 준 무당이 있었는데, 저자가 “날마다 총애가 더해지니 무당의 말이라면 들어주지 않는 것이 없었다. 화와 복이 그의 말 한마디에 달렸으니, 수령 방백들이 자주 그의 손에서 나왔다.”(94-95쪽) 라고 할 정도로 황후가 그 무당을 아꼈다. 이와 비슷하게 귀신을 볼 수 있다고 하여 고종의 관심을 받은 사람이 있었다. 저자가 “임금은 황후가 생각날 때마다 반드시 그를 불러들였다. 그는 일 년 만에 협판에 올랐고, 그의 문전은 저자 같았다.” (273쪽) 라고 하였다. 이는 현 정부의 상황과 비슷함을 알 수 있다.셋째로, 아전들이 관노와 사령들을 억압하고 함부로 대하여 그들이 아전들의 집에 불을 낸 사건이 있었다. 이에 저자가 “조정에서 그 실상을 알았으므로 의당 그 죄를 아전들에게 돌려야 했음에도 아전의 무리가 변을 일으킬까 두려워했다. 또 권력자들이 비호해 주어 서둘러 마무리 짓고 주동자 몇 명만 유배 보내는 것으로 그쳤다.”(157쪽) 라고 한 것과 같이 대응하여 권력자들에게 적절한 처벌을 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이 시대의 기득권 세력들이 범법 행위를 하여도 그에 맞는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는 현재의 상황과 같다고 볼 수 있다.그밖에 상황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일본이 황성신문사를 폐지하고 후에 합성신보, 대동공보, 매일신보에도 압력을 가하는 등 언론을 장악하려 한 것이다. 을사조약 이후 저자의 글이 단순해지고 짧아진 것은 그 영향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감추고 싶은 것이 있을수록, 여론을 억지로 안정시키려 할수록 언론을 장악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지는데, 이와 같은 현상이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정부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피해는 일반 백성에게 온다. 그러나 일반 백성들의 삶이 안정되어야 나라가 안정된다. 당시 정치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는 부분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청나라와 일본의 압력에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특히 처벌에 관련된 일은 공정하고 그 크기에 맞게 처리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도리어 무고한 사람이 피해를 받았다. 또한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마음에 새기고 있던 백성에게 단발령을 강제로 시행한 것은 민심을 고려하지 않은 성급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왜놈이라고 무시했던 일본이 5강 16조를 보내어 정치에 대해 권면한 것은 당시 지도층이 마땅히 부끄럽게 여겨야 할 일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것이다. 한 나라의 임금에게 서명을 요구하며 위협했고, 체결을 위한 정식 절차도 거치지 않은 이 조약은 사실상 무효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다음으로 그 때의 정국이 불안정했음을 알 수 있는 근거가 여러 가지 있다. 먼저, ‘서양인들이 아이를 삶아 먹는다.’, ‘왜놈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등등 세간에 여러 근거 없는 소문들이 있었던 것을 보아 민심이 흉흉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난 것 또한 큰 근거가 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미국과 같은 타국의 사람도 우리나라 백성을 불쌍히 여겼다는 기록이 있다.마지막으로, 고종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많다. 이 책의 내용들을 다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지만, 사실이라면 고종의 행적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고, 황현과 같은 당대의 지식인들이 보기에 답답하고 통탄할 노릇이었음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저자는 “임금이 사람을 알아보는 명철함이 없지 않았으나 아첨을 좋아하는 게 흠이었다.”(166쪽) 라고 했다. 이해할 수 없는 고종의 행동들의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유수영 설치, 광대를 가까이 한 것, 명성황후가 죽은 후 엄비를 들인 것, 경운궁을 토목 공사하여 화려하게 수리한 것 등이다. 혼란의 시기일수록 중심을 잡고 나라를 일으키기 위해 힘써야 할 국가의 지도자가 나라를 더 혼란스럽게 만든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처음에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앵무새 죽이기’라는 제목이었다. ‘왜 앵무새를 죽일까?’라는 의문이 책을 읽는 내내 생각났다.이 책은 1930년대의 인종차별을 스카웃이라는 여자 아이의 눈으로 풀어놓았다. 오빠와 함께 남자 아이처럼 놀던 스카웃은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부 래들리를 여러 소문으로 인해 무섭게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의 정체를 알아 실제로 보고 결국 마음을 열게 된다. 또, 흑인을 변호하는 아버지께 여러 가지를 배우며 점점 성장한다.용기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은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새로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낼 때 바로 용기가 있는 거다’였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의 기색이 만연하거나 너무 어렵다고 느끼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도전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자신의 한계를 미리 정해버리곤 한다. 애티커스는 그렇지 않다. 승산이 없는 재판이란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양심에,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감명 깊었다. 애티커스처럼 진정한 용기를 실천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많아졌으면 좋겠다.민주주의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을 말하자면, 스카웃이 민주주의의 정의에 대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권리를 부여해주고, 어느 누구에게도 특권을 주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현재 사회의 가장 밑바탕이 되는 개념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인종차별은 민주주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인종차별은 참 무서운 것이,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흑인들을 핍박하는 것을 일부 백인들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행해왔다는 것이다. 마치 차별을 받으려고 태어난 사람들처럼 고통 받는 것이 안타까웠다. 이 책의 작가도 제목을 정할 때 이런 것들을 고려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앵무새는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즐거움을 주는데도 죽이는 것은 죄라고 하는 것이 나온다. 흑인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으며 똑같은 사람인데도 백인과 평등한 대우를 받지 않고 더럽고 불결한 것처럼 푸대접을 받는 것은 바르지 않다고 이 책은 말한다.애티커스와 모디, 기억에 남는 사람들등장인물들 중에서 본받을 만한 사람들이 몇몇 있다. 우선 아버지 애티커스가 아주 현명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물어보는 것을 성의껏 대답해주고, 무조건 자기 말을 따르라는 것이 아닌 아이와 대화하여 절충안을 찾는 것이 정말 이상적인 아버지로 느껴졌다. 법정 안에서든 밖에서든 똑같다는 것과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여 항상 침착한 것이 정말 본받을만한, 존경받을만한 인간상인 것 같았다. 또, 흑인을 변호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꿋꿋이 흑인 톰을 위로하고, 열심히 변호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버지로서도, 변호사로서도 훌륭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아버지를 닮아 아들인 젬도 공정하고 정당한 변호사가 될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든다.모디 아줌마도 기억에 남는다. 불이 나서 집이 홀라당 타버려도 보통 사람이면 땅을 치며 슬퍼하고 절망했을 것인데,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또,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애티커스를 도와주고, 흑인들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았던 것도 좋았다. 젬과 스카웃을 귀찮아하지 않고 기꺼이 말동무가 되어주며 눈높이를 낮춰 친구가 되어준 것도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런데 캐롤라인 선생님의 교육 방식이 뭔가 우리나라 교육과 닮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스카웃이 아버지 밑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똑똑해서 선생님께 무언가를 여쭤보아도 선생님은 더 이상 아버지한테 배우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이 하라는 대로만 하고, 가르쳐주는 것만 배우라고 강요한다. 전부 다는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우리나라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순종적이고 그저 잘 따라오기를 원하신다. 물론 그런 식의 교육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주입식 교육이 아닌 토론식이나 학생 주체적인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지적수준을 더 높이고, 창의력을 키울 수 있도록 노력하기는커녕 강압적으로 교육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역지사지의 자세흑인 톰이 결국에는 자살하는 부분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어떻게 보면 애티커스가 그렇게 열심히 자신을 위해 노력했는데도 자살을 택한 것이 무책임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기보다 톰은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받아야 했던 비난의 눈초리들과 중압감들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거부감을 갖고, 멸시를 받는다면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죽음을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한번이라도 톰의 입장에서 생각해봤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크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역지사지의 자세가 꼭 필요함을 알 수 있다.
REPORT버거킹(Burger King)의 국제화 과정- 버거의 킹이 되기 위한 버거킹의 노력< 목차 >Ⅰ. 서론 ? 1p.1. 버거킹 선정 이유2. 버거킹 기업소개Ⅱ. 국제화 과정1. 버거킹 탄생(1954) - 1p.2. 프랜차이즈 시작(1959) - 2p.3. 매각과 인수(1967 ~ 2010) - 2p.1) 필스버리1-1) 버거킹 재건 프로젝트2) 그랜드 메트로폴리탄3) TPG 캐피탈4) 3G 캐피탈4. 현재(2010 ~ )1) 팀 호튼과 RBI2) 최근 전략Ⅲ. 결론Ⅰ. 서론1. 버거킹 선정 이유빠르게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패스트푸드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존재가 되었다. 패스트푸드 산업은 한때 웰빙식품 열풍으로 인해 흔들렸지만, 이에 대응하여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며 현대인들의 일상과 생활패턴에 맞는 친숙한 것으로 자리잡았다. 여러 브랜드중에서도 버거킹은 차별화된 햄버거 조리방식과 엄격한 품질관리를 비롯한 다양한 마케팅 전략으로 1,400만 명 이상의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글로벌 브랜드이다. 한국에서는 가장 맛있는 햄버거를 제공하는 프리미엄 QSR 브랜드로 자리매김하여 지난 30여 년간 많은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미국에서 출발한 작은 하나의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이 어떻게 점점 세력을 확장하여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있었는지 분석하고자 한다.2. 버거킹 기업소개버거의 왕이라는 뜻의 ‘버거킹’은 미국의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브랜드로, 햄버거, 치킨, 프렌치프라이, 탄산음료 등을 판매하는 외식 업체이다. 맥도날드의뒤를 이은 세계 2위 햄버거회사이자 세계 5위 퀵서비스레스토랑(QSR)으로, 경쟁기업은 맥도날드, 롯데리아, KFC, 모스버거 등이다. 2014년 기준 전 세계 80여 개 나라에 만 3,0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총 400,000여 명의 종업원이 근무하고 있다. CEO는 대니얼 슈월츠이고, 매출액은 2013년 기준 11억 4,630만 달러이다. 그리고 뉴욕 증권거래소 상장기업이며, 전체 매장의 66%는 미국에, 본사는 플로리다 주 마이었으며, QSR 매거진이 2011년 발표한 글로벌 식음료 프랜차이즈 기업 TOP 30에서는 맥도날드와 KFC에 이어 3위에 오른바 있다.Ⅱ. 국제화 과정1. 버거킹 탄생(1954)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던 매튜 번즈는 맥도날드로부터 영감을 받아 케이스 J. 크래머와 동업하여 1953년에 새로운 레스토랑을 창업하였다. 그 이름은 ‘인스타-버거킹’으로, ‘인스타’는 햄버거 조리 기계 이름에서 가져오고 ‘버거킹’은 버거의 왕이라는 뜻이다. 당시 인스타-버거킹은 지역별로 프랜차이즈 사업권을 팔아서 가맹점주들이 별도의 회사를 설립하여 해당 지역 내에서 자유롭게매장을 늘리거나 시스템을 바꿀 수 있도록 자율권을 주었다. 이를 이용하여 당시 외식 프랜차이즈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던 제임스 맥라모어와 데이비드 에드거턴은 마이애미의 프랜차이즈 사업권을 얻어내고, 1954년 12월 4일 인스타-버거킹 가맹점을 개설했다. 1955년에는 마이애미 본점 간판에 ‘킹’이라는 버거킹의 마스코트를 만들어 친숙한 이미지로 인식되고자 하였다.1957년 제임스 맥라모어는 라이벌 레스토랑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패티가 110g에 달하는 커다란 햄버거를 출시했다. 그 이름도 ‘엄청 큰 것’을 뜻하는 ‘와퍼’라고 지었다. 당시 일반적인 햄버거의 가격이 15~18센트였던 것과 달리 와퍼는 37센트에 판매되었다. 그렇지만 독특한 패티 직화 방식과 햄버거 크기에 소비자들은 매료되었고, 버거킹은 비싸지만 푸짐한 버거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이로 인해 와퍼가 성공을 거두자 버거킹은 1958년부터 캐치프레이즈로 ‘와퍼의 집’을 사용하기 시작했다.2. 프랜차이즈 시작(1959)1959년 케이스 J. 크래머와 매튜 번즈가 운영하는 플로리다의 인스타-버거킹이 경영 악화로 도산 위기에 놓이자, 마이애미 내에서 매장을 열고 운영할 수 있는 사업권만을 갖고 있었던 제임스 맥라모어와 데이비드 에드거턴은 인스타-버거킹 전체를 인수했다. 그 후 회사 전체의 상호를 '인스타-버거킹'에서 '버거킹'으로 바꾸고 쟁업체인 맥도날드보다 4년 앞선 것이었다. 버거킹은 1967년까지 274개의 매장을 확보했고 직원 수는 8,000여 명에 달하는 등 레스토랑 체인으로 성장하였다.3. 매각과 인수(1967~2010)1) 필스버리버거킹이 크게 성장함에 따라 제임스 맥라모어와 데이비드 에드거턴은 1967년 버거킹을 대형 제과회사 필스버리에 1,800만 달러에 매각했다. 그 후 캐나다 온타리오에 최초의 버거킹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고, 차례로 1971년 오세아니아, 1975년 유럽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버거킹의 초기 프랜차이즈 전략은 1970년대 들어 사업 규모가 급속히 확대되면서 문제점을 드러냈다. 창업자들이 초기에 마이애미 지역의 사업권을 사들여 매장을 늘려간 것처럼 다른 지역에서도 자체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점주들이 있었다. 루이지애나의 차트 하우스라는 회사는 1963년부터 루이지애나에서 버거킹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다. 그들은 1970년까지 350개의 매장을 열었고, 그들 자체의 구매 시스템과 교육 프로그램, 품질 관리 시스템을 운용했다. 성장한 차트 하우스는 자신들의 체인을 버거킹으로부터 독립시키는 것을 원했으나 필스버리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1-1) 버거킹 재건 프로젝트이후 시스템 쇄신의 필요성을 느낀 버거킹은 1970년대 중후반에 맥도날드 이사 출신의 새 임원을 영입하여 버거킹의 재건 프로젝트를 통해 변화를 시도했다. 지역 점주들이 자체적으로 체인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고, 규약을 따르지 않으면 퇴출시킬 수 있게 하는 등 본사의 권한을 강화했다. 또한 시장조사를 통해 높은 품질을 위해 가격을 더 지불할 의향이 있는 18~34세 성인들을 주 고객층으로 정했으며, 닭고기나 생선 샌드위치 등의 다양한 메뉴를 출시했다. 그리고 매장의 인테리어를 통일하였고, 영업시간을 앞당겨 아침 메뉴를 판매했다. 마케팅 측면에서는 1977년 영화 '스타워즈' 팀과의 협업을 시도하였다. 스타워즈 개봉에 맞춰 관련 이미지가 들어간 포스터, 유리컵, 스티커 등을 만들어 식사와 함께 제공했다. 이러한 계기가 되었다.또다른 주목할 만한 방안은 'Drive-thru service'와 ‘Have it your way’판매 방식이다. 패스트푸드 체인 처음으로 고객이 매장 안에서도 먹을 수 있도록 하였고, 고객이 차에서 내리지 않고 사 먹을 수 있어 지금까지도 매출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후자는 햄버거를 주문할 때 고객의 취향에 맞게 재료를 주문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런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1979년 버거킹은 15%의 매출 증가율을 기록했다.2) 그랜드 메트로폴리탄이어 1980년대에는 일본, 대만, 싱가포르, 한국에 진출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서 버거킹 가맹점주들이 본사의 유통 독점과 그로 인한 폭리에 대해 크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결국 1991년 버거킹 본사는 점주들의 의견을 전격 수용하고 구매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모든 재료와 인테리어 업체 선정 시 본사는 물론 모든 점주가 한 표를 행사하는 민주적 의사결정과 경쟁시스템을 도입해 관련 비용을 절감하여 내부 시스템의 변화를 꾀했다.한편, 패스트푸드가 건강에 나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자연스럽게 버거킹의 매출은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는 필스버리의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쳤는데, 1989년 주류, 호텔, 부동산 등 다양한 사업양상을 보이는 영국 기업 그랜드 메트로폴리탄이 필스버리에 대한 적대적 M&A를 시도했다. 필스버리는 적극적으로 방어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버거킹은 그랜드 메트로폴리탄의 소유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 과정은 오랜 경영권 혼란의 시작이 되었다. 또한 그동안 저임금 노동인력을 사용해왔던 버거킹은 그에 대한 정부의 압력에 인력부족을 겪을 뿐만 아니라 다른 패스트푸드 체인들과의 심화된 경쟁으로 인해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이외에도 버거킹은 직접적으로 맥도날드를 거론하며 광고를 제작하여 패스트푸드 업계 최초의 비교광고로 논란을 빚었다.1997년 그랜드 메트로폴리탄은 주류회사 기네스와 합병하면서 디아지오로 재탄생했다. 1998년 말 미국 내 맥도날드의 시장 점유율이 43%인 데 반해 버거킹의 점유율은 2주력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버거킹을 매각하기로 결정하고 2000년 버거킹을 그룹에서 분리시켰다. 당시 디아지오 내에서 버거킹이 차지하는 매출 비율은 6%에 불과했다.3) TPG 캐피탈2002년 TPG 캐피탈, 베인캐피털, 골드만삭스가 합자의 형태로 디아지오로부터 버거킹을 인수했다. 새로운 이사회의 경영전략에 따라 2004년에서 2009년까지 영업이익이 발생했다. 또한 유명 광고 회사 CP+B와 계약을 맺고 ‘킹’이 등장하는 새로운 광고를 제작했다. 이 광고는 킹이 가정집에 방문해 대문 앞이나 창문 너머에 서 있다가 햄버거를 건네준다는 컨셉이었는데, 이익 창출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표정 없이 번들거리는 플라스틱 가면 때문에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혹평을 받았다. 그 후 2007년부터 3년간 이어진 세계 금융위기에 버거킹은 침체기로 들어섰다.4) 3G 캐피탈2010년 기업 부채가 7억 달러 이상에 달하자 TPG 캐피탈과 합자회사들은 70% 가량의 버거킹 지분을 브라질의 사모펀드 3G캐피탈에 매각했다. 3G 캐피털에 인수된 이후 버거킹은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수익율 개선을 시도했다. 2010년 이후 3년 만에 마이애미 본사 직원 600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정리해고 되었고, 사무실 공간은 4~6명이 한 테이블에 앉도록 재배치되었다. 이 같은 변화로 운영비용의 30%를 절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햄버거 업계에서 맥도날드에 밀려 ‘만년 2위’로 불리던 버거킹은 2011년 웬디스에 밀려 2위 자리마저 내놓았다. 그간 다른 패스트푸드 햄버거에 비해 큰 사이즈를 제공함으로써 주고객층으로 삼아왔던 젊은 남성들의 실업률이 불황으로 인해 높아진 것이 부진의 이유가 되었다.이에 버거킹은 2012년 샐러드, 과일 스무디, 치킨 스트립 등 신메뉴들을 출시하며 고객층을 다각화하고자 하였다. 2013년에는 커피 메뉴를 새로이 만들었으나 경쟁업체인 맥도날드가 맥카페를 운영해 온 것에 비해 한 발 늦은 시도였다. 하지만 버거킹은 스타벅스의 자회사인 시애틀스 베스트 커피
지나간 기억들과의 조우-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총 12권이다. 1편 스완네 집 쪽으로, 2편 꽃 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3편 게르망트가의 사람들, 4편 소돔과 소모라, 5편 갇힌 여인, 6편 자취 감춘 여인, 7편 되찾은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필자는 사정상 1편을 읽었다. 이 소설은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시절을 묘사하는 것 또는 그의 삶을 단순히 반영하는 것이 아닌 그 안에 형용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들을 내포하고 있다.이 글은 실제로 작가가 속해 있던 사교계와 귀족사회를 배경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자세하고 세밀한 묘사를 통해 독자들이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작가와 동일한 경험을 한 것과 같은 효과를 얻게 한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는 요인도 이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소설 속 ‘나’를 중심으로, 발생하는 일들과 주변 환경에 대한 주인공의 생각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나’와 함께 글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소설의 특징 중 다른 하나는 문장이 대체적으로 길이가 길다는 점이다. 장문이기 때문에 이해하는 데 시간이 소요될 수 있지만, 차분히 읽어가다 보면 그 의미의 깊이와 폭넓음에 감탄하게 된다. “그 새로운 마음의 동요로 인해, 나는 그 순간 나의 뇌리에 있던 모든 것에, 즉 기와지붕의 분홍색 반사광에, 잡초들에, 내가 오래전부터 가고자 열망하던 루쌩빌 마을에, 그곳 숲의 나무들에, 그곳 교회당의 종루에, 가치 하나를 더 부여하였고, 그 새로운 마음의 동요가 그것들을 나에게 단지 더 매력적으로만 보이게 한 것은, 그 동요를 촉발시킨 것이 그것들이라고 내가 믿었기 때문이며, 그 새로운 마음의 동요가 힘차고 생소하며 순조로운 미풍으로 나의 돛을 한껏 부풀릴 때에는, 오직 나를 그것들 쪽으로 더욱 신속히 데려가는 것만을 열망하는 것처럼 보였다.”(261쪽) 라는 문장을 예로 들 수 있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1편은 주인공의 유년 시절 추억을 현재와 교차해가며, 그의 가족과 그가 살던 꽁브레, 꽁브레 이웃들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나’는 꽁브레에서의 유년 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우연히 어머니께서 가져오신 한 잔의 홍차와 마들렌 과자가 꽁브레에서 일요일 아침마다 먹었던 마들렌 과자의 냄새와 맛을 상기시켜 과거의 기억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과거의 집, 건물, 날씨, 산책로, 정원과 도시 전체가 기억 저편에서 웅크리며 기다리다가 마침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과정은 감미로운 희열과 함께 황홀하고 감동적으로 묘사되었다. 이와 같은 회상은 길가의 울타리나 종탑 등 다른 사물을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주위의 사물과 인물들을 분석하는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과, 주인공의 머릿속에 계속해서 무의지적으로 떠오르는 과거의 추억이 겹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기억은 감각으로 기억된다. 붙잡을 수 없는 현재의 시간은 표면적으로 잃어버린 시간이 되지만, 어떠한 감각의 자극으로 인해 예고 없이 우발적으로 떠올라 소멸된 줄 알았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 다시 살아나게 된다. 가변적인 기억이 변질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지속되는 것이다.소설 속에서 ‘나’가 관찰한 꽁브레의 이웃들은 현실적인 인물들이다. 작가가 형용사 등을 사용하여 인물들을 규정하거나 한정하지 않고, 그 인물과 관련된 일화를 서술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인물들을 판단하고 분석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한 인간은 여러 개의 자아를 갖고 있다. 이는 다중인격과 같은 의미가 아니라, 완벽하게 선한 인간 혹은 완벽하게 악한 인간은 없다는 뜻이다. 각자가 대하는 인물에 따라, 또는 그 상황에 따라, 착하고 정직할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이기적이고 교활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하인 프랑수와즈는 자신의 주인과 그 가족에게는 목숨을 아끼지 않을 만큼 충성을 바치지만,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기이할 만큼 냉혹하게 대한다.그리고 소설 속에서 사랑은 중요한 장치로써 기능한다. 작가에게 사랑이란 질투와 유사한 의미임을 알 수 있다. 즉, 질투로부터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다. 스완이라는 인물은 부유하고 세련된 사교계의 일원으로, 오데트라는 여자를 사랑한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녀는 화류계 출신이었다. 또, 주인공은 질베르트라는 여자를 사랑하는데, 그녀가 다른 남자와 동행하는 것을 보고 그녀를 잊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그 남자가 남장을 한 여자였다는 것을 알고 안도한다. 이처럼 인간이 보고 판단하는 모든 것들이 허상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인간의 의식세계가 순간의 감정과 같은 허망하고 변질되는 것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이 결국 변질되고, 모든 감정은 자신에게 강요한 오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특히 사랑이라는 욕망은 수많은 변수에 따라 감각적인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불변하고 무엇이 진리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또한 모든 것이 변한다면, 이 세계는 신뢰할 만한 것 없이 불신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