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체제는 1971년12월6일의 국가비상사태 선언에 이어 1972년10월17일 비상계엄 선포(10월 유신)로 시작해 1979년10월26일 박정희 살해사건까지 이어진 국가의 제도 변형 및 강압적인 지배체제이며, 72년 말 유신헌법의 제안 및 선포로 성립된 국가체제를 말한다.지도이념은 국력의 배양 가속화, 능률의 극대화, 민주주의의 토착화 (한국적 민주주의)이다. 특징은 박정희 1인 중심의 지배체제이며, 안보위기를 명분으로 이용, 국정의 능률을 극대화, 국력배양을 가속화를 추구, 경제 성장을 위주로 한 정치였다.박 정권은 어떤 이유에서 유신체제를 선택했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우선 데탕트외교를 체제위기로 인식하였다. 둘째, 공업주도 경제성장으로 지역간,산업간,계층 간의 문제가 있었다. 셋째, 공화당 내 세력 간의 갈등으로 당의 이미지가 퇴색되었다. 넷째, 박 대통령은 자신의 당대에 완전한 경제개발 이룩 의도를 가지고 있었고, 재계나 기업가는 정권유착 속에서 생긴 기득권과 이익의 보전이라는 동기로 현상유지를 희망했다.유신체제의 성립과정은 1972년 5월 초 중앙정보부 중심으로 헌법제정, 시기, 방법을 연구했으며, 1972년10월17일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국회해산, 정당,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새 헌법’안을 공고한 뒤 국민투표에 부쳐 91.5%가 찬성하여 유신체제가 성립이 되었다. 12월23일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박정희가 당선되었고, 12월27일 유신헌법을 공포하여 제 4공화국이 출범했다.유신헌법의 주요내용은 이와 같다. 우선 통일주체 국민회의를 대통령 선출권 허용, 통일을 위한 주권적 수임기관으로 설치했다. 다음은 대통령의 권한으로 임기6년, 중임제한 규정 폐지(영구장기집권 가능), 국회해산권, 국회의원 1/3선임권, 긴급조치권을 가진다. 셋째, 사법부의 독립성을 제약했다. 넷째,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소선거구제에서 중선거구제(2인 선출)로 변화시켰다. 총체적으로 권위주위가 한국사회의 정치, 사회체계를 조직하는 구성원리로서 체계화, 명문화, 제도화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