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을 읽고..22번 후보생 손윤빈충무공 이순신을 읽고 충무공 이순신장군은 최후자인 아무런 직책이 없이 일개 평민으로 일함을 뜻함)하게 되었다. 그 뒤 전라도 관찰사 이광에게 발탁되어 전라도의 조방장이 되었다. 이후 1589년 선전관과 정읍 현감 등을 거쳐 1591년 류성룡의 천거로 절충장군·진도군수 등을 지냈다. 같은 해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승진한 뒤, 좌수영에 부임하여 군비 확충에 힘썼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에서 일본 수군과 첫 해전을 벌여 30여 척을 격파하였다 (옥포대첩). 이어 사천에서는 거북선을 처음 사용하여 적선 13척을 격파하였다(사천포해전). 또 당포해전과 1차 당항포해전에서 각각 적선 20척과 26척을 격파하는등 전공을 세워 자헌대부로 품계가 올라갔다. 같은 해 7월 한산도대첩에서는 적선 70척을 대파하는 공을 세워 정헌대부에 올랐다. 또 안골포에서 가토 요시아키등이 이끄는 일본 수군을 격파하고(안골포해전), 9월 일본 수군의 근거지인 부산으로 진격하여 적선 100여 척을 무찔렀다(부산포해전). 1593년 다시 부산과 웅천에 있던 일본군을 격파함으로써 남해안 일대의 일본 수군을 완전히 일소한 뒤 한산도로 진영을 옮겨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이듬해 명나라 수군이 합세하자 진영을 죽도로 옮긴 뒤, 장문포해전에서 육군과 합동작전으로 일본군을 격파함으로써 적의 후방을 교란하여 서해안으로 진출하려는 전략에 큰 타격을 가하였다.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 화의가 시작되어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을 때에는 병사들의 훈련을 강화하고 군비를 확충하는 한편, 피난민들의 민생을 돌보고 산업을 장려하는 데 힘썼다. 1597년 일본은 이중간첩으로 하여금 가토 기오마사가 바다를 건너올 것이니 수군을 시켜 생포하도록 하라는 거짓 정보를 흘리는 계략을 꾸몄다. 이를 사실로 믿은 조정의 명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본의 계략임을 간파하여 출동하지 않았다. 가토 기요마사는 이미 여러 날 전에 조선에 상륙해 있었다. 이로 인하여 적장을 놓아주었다는 모함을 받아 파직당하고 서울로 압송되어 투옥되었다. 사형에 처해질 위기에까지 몰렸으나 우의정 정탁의 변호로 죽음을 면하고 도원수 권율의 밑에서 두 번째로 백의종군 하였다. 그의 후임원균은 7월 칠천해전에서 일본군에 참패하고 전사하였다. 이에 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 그는 13척의 함선과 빈약한 병력을 거느리고 명량에서 133척의 적군과 대결하여 31척을 격파하는 대승을 거두었다(명량대첩). 이 승리로 조선은 다시 해상권을 회복하였다. 1598 2월 고금도로 진영을 옮긴 뒤, 11월에 명나라 제독 진린과 연합하여 철수하기 위해 노량에 집결한 일본군과 혼전을 벌이다가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노량해전). 무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시문에도 능하여 와 시조,한시 등 여러 편의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1604년 선무공신 1등이 되고 덕풍부원군에 추봉된 데 이어 좌의정이 추증되었다.1613년 영의정이 더해졌다. 묘소는 아산시 어라산에 있으며, 왕이 직접 지은 비문과 충신문이 건립되었다. 통영 충렬사(사적 제236호), 여수 충민사(사적 제381호), 아산 현충사(사적 제155호) 등에 배향되었다.유품 가운데 《난중일기》가 포함된 《이충무공난중일기부서간첩임진장초》는 국보 제76호로, 장검 등이 포함된 이충무공유물은 보물 제326호로, 명나라 신종이 무공을 기려 하사한 '충무 충렬사 팔사품(통영 충렬사 팔사품)'은 보물 제440호로 지정되었다. 이밖에도 그와 관련하여 많은 유적이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의 삶은 후세의 귀감으로 남아 오늘날에도 문학·영화 등의 예술작품의 소재가 되고 있다.이순신 장군 하면 떠오르는 전쟁은 임진왜란 일 것이다. 임진왜란은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전쟁이다.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대륙침략에 야망을 품고 조선을 침략하였다. 왜군은 4월 부산성의 함락을 시작으로 하여 제1군, 제2군, 제3군을 편성, 서울을 향하여 북상하였다. 함경도까지 침공하였으나 명나라의 지원과 조선 각 지방의 활발한 의병활동으로 퇴각을 시작하였다. 한편 바다에서는 이순신장군이 한산도대첩, 노량대첩, 명량해전에서 크게 승리하였다. 각 지방에서 활발하게 의병활동을 한 사람은 곽재우, 조헌, 김천일, 고경명, 정문부 등이 있다.이순신 장군이 만드신 거북선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보겠다. 현재까지 전해오는 문헌 중에서 ‘거북선[龜船]'이라는 이름이 처음 나타나는 기록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1413년(태종 13) 5월 초에 “왕이 임진강 나루를 지나다가 거북선이 왜선으로 꾸민 배와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였고, 2년 후에는 다시 “거북선이 매우 견고하여 적선이 해치지를 못한다”고 되어 있으나, 어떤 형태와 규모였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적혀 있지 않아서 알 길이 없다. 그 후 180여년 간 거북선에 관한 기록이 보이지 않다가 이순신 장군의 임진년(1592) 일기인 《난중일기(亂中日記)》 2월 8일 기사에 “거북선에 사용할 돛 베(帆布) 29필을 받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난중일기》에 따르면 거북선에 비치한 포(砲)를 처음 발사한 날은 임진년(壬辰年:1592) 3월 27일이며, 처음 해전에 참가한 것은 장계(狀啓)에서 “5월 29일 사천해전(泗川海戰)”이라 기록하고 있다.이순신 장군이 펼치신 대표적인 전법인 학익진은 학이 날개를 펼친 듯 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모양은 반원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는 적을 포위하면서 공격하기 적합하기 때문이다. 최초에는 일렬횡대인 일자진을 취하고 있다가 적군이 공격하게 되면 중앙의 부대가 뒤로 차츰 물러나면서 좌우의 부대가 앞으로 달려 나아가 좌우에서 적군을 포위 공격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중앙에 있는 적군에게 집중적인 공격을 하기에 용이하였다.기본적으로는 육지에서 기동력이 뛰어난 기병들이 행하는 주요한 진형의 하나이지만, 해상에서도 기동력이 뛰어난 전선을 사용한 조선의 수군들이 사용하기도 하였다. 특히 임진왜란 때 한산도 앞바다 전투에서 조선 수군이 사용하여 큰 효과를 보았다. 당시 한산도 전투에서 조선 수군은 일본군의 선단을 가운데 한 곳으로 집결시켜 기동을 제한시키면서 각종 화포에 의한 집중적인 사격을 가하여 고작 13척의 거북선으로 100척이상의 의 일본함대를 격파시키는 대 전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한산도 대첩 : 현재까지 전해오는 문헌 중에서 ‘거북선'이라는 이름이 처음 나타나는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에는 1413년(태종 13) 5월 초에 “왕이 임진강 나루를 지나다가 거북선이 왜선으로 꾸민 배와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였고, 2년 후에는 다시 “거북선이 매우 견고하여 적선이 해치지를 못한다”고 되어 있으나, 어떤 형태와 규모였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적혀 있지 않아서 알 길이 없다. 그 후 180여년 간 거북선에 관한 기록이 보이지 않다가 이순신 장군의 임진년(1592) 일기인 《난중일기》 2월 8일 기사에 “거북선에 사용할 돛 베 29필을 받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난중일기》에 따르면 거북선에 비치한 를 처음 발사한 날은 임진년:1592) 3월 27일이며, 처음 해전에 참가한 것은 장계에서 5월 29일 사천해전이라 기록하고 있다.? 명량 해전 :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수군이 왜선을 격파한 전투.명량은 전남 진도군 군내면에 위치한 목. 정유재란 때 조선수군이 크게 패하고 원균이 전사한 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된 이순신은 1597년 8월 어란포에서 왜선을 격파한 후 왜군과의 전면적인 일전을 준비했다. 전선 및 병력의 부족으로 수군 본부를 진도군 고군면에 우수영으로 옮긴 조선수군은 일본군의 공격에 대비했다. 왜군이 133척의 배로 공세를 취하자 조선수군은 불과 12척의 배로 울돌목의 좁은 수로에서 일자진을 치고 적의 수로 통과를 저지했다. 조류의 방향이 바뀌면서 서로의 진영이 뒤엉키기 시작하자 조선군은 적장 구루시마의 목을 베어 사기를 높이며 총공격을 감행했다. 이에 당황한 왜군은 30여 척의 배를 잃고 퇴각했다. 이 싸움으로 조선군은 다시 제해권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왜군은 수군을 이용해 전라도로 침입하려던 계획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싸움에서 이순신은 피난선 100여 척을 전선으로 위장해 적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철그물을 수로에 쳐서 적선을 전복시켰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리델하트의 전략을 읽고..22번 후보생 손윤빈리델하트의 전략론을 읽고 전체적인 1부의 내용은 B.C 5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전략을 다루고 있다. 시대별로는 그리스, 로마, 비잔틴, 중세, 나폴레옹 시대 등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그리스 전쟁은 3차에 걸친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 그리고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을 다루고 있다. 로마시대는 1, 2차 포에니 전쟁과 시저와 폼페이우스간의 로마내전 등을 말하고 있다. 비잔틴 시대의 전쟁은 동?서로마가 분리된 이후 벨리사리우스와 나르세스의 전쟁을 언급하고 있다. 중세시대의 전쟁은 백년전쟁 및 몽고군과의 전쟁을 다루었지만 자료의 부족 및 신뢰성 저하로 결론 도출에 회의적이다. 17세기의 전쟁은 30년 전쟁, 18세기는 7년 전쟁 등을 주로 다루고 있다. 나폴레옹 시대의 전쟁은 거의 모등 전역을 다루었고 이어서 남북전쟁과 보오, 보불전쟁을 다루었다.고대에서부터 1914년 까지의 전쟁을 분석한 결과 30개 전쟁, 280회 전역에서 6개의 전역을 제외하고 간접접근전략에 의해 결정적 효과를 획득 하였다. 그리고 역사상 24개의 결정적인 전역은 간접접근의 결과이며, 심리적 교란으로서 승리한 전역은 마라톤 등 29개를 도출하였다. 요약 하자면 전쟁사를 통하여 연구한 결과 적을 유인하거나 놀라게 해서 간접접근방식으로 승리를 쟁취하였고 간접접근의 술을 연마하고 배양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알 수 있다.2부는 1914년부터 1918년까지의 1차 세계대전을 지역별로 서부, 동부, 지중해로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으며 1918년 종전직전의 전략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서부전장은 먼저 프랑스의 조프르 계획은 독일의 중심을 직접접근하고 있는 반면에 독일의 슐리펜 계획은 마치 회전문의 원리같은 교묘한 간접접근에 의한 것이라 분석하였다. 그리고 독일과 프랑스간의 국경지대 전투와 마르느전투를 언급하면서 결곡 참호선에 의해 고착된 서부정면에서, 전략은 전술의 시녀로 전략하고, 전술은 절름발이가 되었다고 혹평하고 있다. 동부전장은 러시아군과의 전역으로써 주요 전투분석시, 특히 탄넨베르크 전투를 완벽한 내선작전에 의한 간접접근에 의한 승리라고 분석하였다.지중해 전장은 터키가 주축군으로 참전함으로 인해 영국이 터키를 견제하기 위한 전장이다. 주요전투로 다다넬스 전투를 분석하였으며, 특히 중동에서의 로렌스의 게릴라전을 간접접근전략의 극치라고 호평하였다. 1918년 전략은 구덴돌프가 전술적 승리에 고무되어 전략적인 패인을 이루게 된 내용과 영국의 독일에 대한 해상봉쇄, 그리고 아미앵 전투에서 영국군이 450여대의 전차를 동원한 공격으로 독일군의 심리적인 기습 및 정신적인 교란을 달성한 것을 연합군이 승리한 교훈으로 도출하였다.3부는 2차 세계대전의 전략을 담고 있다. 관점은 히틀러의 전략의 실체로부터 연속되는 승리의 원인과 히틀러의 몰락에 초점을 두고 있다. 히틀러 전략에 대한 리델하트의 평가는 히틀러는 대전략의 최초단계인 모든 형태의 전쟁활동과 적의 의지를 조정할 수 있는 방식은 터득한 반면, 대전략의 고차원적인 전후의 평화상태를 예측한 장기 통찰은 미 터득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히틀러의 능란한 공세전략은 탁월하였지만 방어전략과의 조화에는 부족하여 공세가 확대됨에 따라 점령지가 광범위하여 적에게 탈취되는 기회를 허용함으로써 반독일 세력이 양산되어 위기가 가중되었다고 평가하였다. 히틀러의 연속적인 승리는 전격전 전쟁수행방식에 대한 도입과 공격위주의 전략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서부전역에서의 눈부신 승리가 이것에 대한 실증적인 사례로 거론될수 있다. 히틀러 몰락의 전조는 러시아와의 전쟁을 개시하고 난 이후이다. 리델하트의 소련 전역에 대한 히틀러의 구상은 칸네 전투와 같은 초대형 포위섬멸을 구상하였다고 분석했다. 모스크바로 소련의 예비병력을 집중시키고 양익측의 위험요소인 레닌그라드와 우크라이나를 선점 후 모스크바로 양익포위하여 섬멸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독일의 공격은 상층부의 의견 분열로 인해 여러 방면으로 나뉘어지고 각각의 공격 방향에 대한 보급선의 과다 신장으로 패배를 하게 되며 히틀러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2차 세계대전에 대한 리델하트의 평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독일의 후반기 패배는 히틀러의 반신축적 방어전략에 기인하는데 이는 전반기 공격 방법의 간접적 요인으로 작용 하였다. 그리고 연합국의 대전략 측면에서 직접접근은 전쟁을 장기화하였다. 연합국이 재래적인 방법의 전투준비를 지양하고 전쟁의 기본조건을 이해하고 대비했다면 전쟁기간과 참화는 축소가 가능하였을 것이다.4부는 전략이론 부분으로 간접접근전략의 이론을 설명하고 2차 세계대전 후 간접접근전략의 적용을 분석하였다. 4부에서 리델하트가 언급한 내용 중 전략과 전술에 대하여 핵심적인 요소를 아주 간명하게 정리한 것은 깊이 새겨둘만한 가치가 있다.리델하트는 다음과 같이 전략과 전술의 핵심을 설명하고 있다. 리델하트는 전쟁원칙 중 가장 중요한 원칙은 집중이라고 하였다. 집중이란 “약점에 대한 힘의 집중”을 의미하는데 약점에 대한 힘의 집중은 상대방의 힘의 분산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며, 상대방의 힘의 분산은 또한 아군의 외견상의 분산 및 분산의 부분적인 효과에 따라 발생한다. 반면에 아군측의 분산은 적의 분산을 유도하고 아군측의 집중 등 이러한 결과는 인과관계를 구성하며, 그 하나 하나가 결과로 나타난다. 즉 진정한 집중은 계산된 분산의 결과인 것이다.이러한 전쟁원칙을 실천적 언명으로 해석하면 긍정적인 6개 조항과 부정적인 2개 조항으로 구분하여 설명할 수 있다. 먼저 긍정적인 6개 조항인 “하라”이다. ① 목적을 수단에 상응하게하라. ②항상 목적을 명심하라. ③ 최소 예상선을 선택하라. ④ 최소 저항선을 이용하라. ⑤ 대용 목표를 제공하는 작전선을 취하라. ⑥ 계획 및 배비가 상황에 적합하도록 융통성을 확보하라. 다음은 부정적인 2개 조항인 “하지마라”이다. ⑦ 상대방이 방심하고 있지 않은 동안은 아군의 병력을 투입하지 마라. ⑧ 한번 실패한 후, 동일한 선이나 동일한 방식으로 공격을 재개하지 마라. 이상의 8개 항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이는 나의 능력과 내가 보유한 수단으로 달성 가능한 목적을 설정할 것을 의미한다. 또한, 내가 할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때 신념을 가질 것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목적을 설정할 때 자신의 능력을 과대 평가해도 안되지만 과소 평가도 피할 것을 의미하고 있다. 계획을 수립할 때, 또는 대용목표를 선정할 때 그것이 목적달성에 기여하고 있는가를 항상 고려해야 함을 의미하고 있다. 적의 입장에서 볼 때 아군이 공격할 가능성이 가장 희박한 곳이 어디 인가를 생각하고 그곳으로 지향하라는 의미이다.적의 물리적인 배비가 가장 약한 곳으로 나의 전투력을 지향하되, 그것은 목적에 기여할 수 있는 목표를 지향하는 것이어야 함을 의미한다.이렇게 하면 적을 딜레마의 입장에 몰아넣고, 적의 수비가 가장 약한 목표를 적어도 하나는 공략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할 수 있을 때까지 진출할 수가 있게 되며, 또한 그것을 실마리로 해서 점차로 공략하는 것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예비목표는 우리에게 한 목표공략의 좋은 기회의 확보를 허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일 목표는 적이 아주 열세가 아닌 바에는, 일단 적이 우리목표에 대해서 확실히 알게 되었을 때에는, 우리 쪽이 그 단일목표를 공략하는 것을 확실히 불가능하게 해버린다. 단일한 작전선과 단일목표를 혼동하는 것 만큼 가장 흔히 범해진 과오는 없다. 계획은 성공할 경우나, 실패할 경우, 또는 부분적 성공을 거둔 경우 다음의 행동을 예견하고 그것이 가능토록 배치해야 함을 의미한다. 상대의 전투력이 현격히 열세한 것이 아니라면, 적의 조직이 붕괴되거나 정신적인 면에서 사기의 붕괴가 발생하기 전에는 공격하지 말 것을 의미하고 있다. 나의 공격을 격퇴한 적은 정신적으로 강화되고, 나의 병력 증강만큼 적도 증강할 것이므로 동일한 선으로 재 공격한다면 동일한 결과가 초래될 것임을 의미한다.
이책을 읽으면서 가장먼저 생각한 것은 칭찬의 힘=긍정의 힘 이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옛말도 잇듯이 칭찬은 엄청난 내포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모두들 생각은 하고있을것다. 이책은 우리가 칭찬을 어떻게 해야하고 어떠한 상황에서 해야하며 이러한 칭찬이 주는 효과에 대해서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모두 5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장마다 상황별 칭찬에 대한 이야기와 사랑받는 사람은 어떤 배려를 하는지 그리고 인간관계를 든든하게 만드는 긍정의 말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칭찬은 배려, 존경, 감사가 모두 함께 담겨 있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말은 칭찬을 통해서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비롯한 자신의 마음이 비추어지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칭찬하는 습관을 길러야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커뮤니케이션에서 칭찬은 꼭 하라는 것임을 말하고 있었다. 이것은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사회에 상사나 부하직원 관계에서도 모두 필요하다는 것이고 칭찬을 함으로써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배려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즈니스에 직접 활용하는 상황별 칭찬 언어라는 주제로 연상 남녀, 연하 남녀, 첫 대면에서의 분위기 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충분히 접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대해서 언급하고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된다. 칭찬은 어렵지 않지만 칭찬이 낮선이들에겐 매우 어려운 행동이 될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한번쯤은 칭찬을 받아보았을 것이다. 특히나 나는 칭찬을 받아 먹고 산다. 가장 작은 예로 나를 좋아해준 과목의 선생님의 등급에서는 거의 1등급을 받으며 1등급이 안나온다면 1등급을 받아서 그선생님이 나에게 주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항상 열심히 해당과목을 공부했었던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하게 했다. 여기에서 나오는 저자는 말을 더듬는 버릇 때문에 대인공포증에 시달렸으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면 얼굴이 빨개지는 적면증을 앓기도 했는데. 칭찬을 통해서 이를 극복하고 성공하는 삶을 가지게 되엇고 칭찬의 중요성을 알고 책까지 펼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행동으로 옮기고 좋은생각의 중요성이다. 저자는 하루에 3번 칭찬하기, 칭찬을 의도적으로 하기 등 많은 것을 실천으로 옴기고 칭찬이라는 것을 습관하여 칭찬하는 감각을 키웠다라는 것인데 대수롭게 여기지 않을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경쟁이라는 구조에서 남에게 칭찬이 인색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칭찬으로 우리는 시너지 효과를 받고 더욱더 일에 열중하는 효과를 가져올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의 패러다임안에서 쉬운 습관이 아니라는 것을 느꼇다. 따라서 이러한 책을 읽게된 것을 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느끼고 그안에서 나의 변화를 남에게까지 전달하여 긍정적인 에너지를 남들에게 전파할수 있는 기회로 생각되니 왠지모르게 얼굴에 웃음을 띄게 된다. 내가 지인들에게 책을 추천한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라고 해보고 싶다. 다양한 칭찬표현을 접하면서 칭찬의 기능을 되씹으며 칭찬을 직접 해볼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되니 좋은일이 아닐수가 없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긴 하지만 책을 읽으면 왠지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진짜 어느순간부터 나는 책을 피하기 시작햇다. 유년시절 학창시절의 나는 책을 적게읽는 편은 아니였다. 대학시절에 오면서 책을 많이 기피하는 나를 반성하며 내일은 친구들 선배들 교수님들에게 모두 웃으며 칭찬하며 칭찬이라는 무기를 선물해줘야겠다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는 생각이다.^^
이 책의 앞부분에서 ‘나’의 종형 수암이라는 아이와 ‘나’는 항상 공부는 하고 싶어 하지 않고 둘이서 사고만 치고 다니는 장면들이 여럿 나온다. 아는 이부분을 읽으면서 나의 사촌동생과 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둘도 항상 붙어 다니면서 공부는 뒷전이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고를 치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수암형과 화자가 어렸을때 겪었던 일들을 묘사한 장면에 많은 공감을 했다.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맨 마지막에 화자가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편디를 받은 장면이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의 결말을 독자의 상상에 맡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나기’나 ‘압록강은 흐른다’와 같은 열린 결말의 이야기가 참 좋다.열린 결말의 이야기는 그 뒷부분의 이야기를 내가 마음껏 상상해서 더 꾸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뒷이야기를 직접 지어서 더 써보는 독후 활동도 해보고 재미있는 열린 결말의 이야기들을 더 찾아서 읽어보고 싶었다. 학교 수행평가 때문에 읽게 된 책이긴 하지만 이렇게 좋은 책을 읽게 되어서 좋았다.?압록강이흐른다라는 책은 언뜻보기엔 수필인형식이다 1인칭시점에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하여 자서전 같다라는 느낌을 받게된다. 떄문에 개화기시대와 일제강점기시대의 우리나라의 역사의 흐름과 자세히 표현되는 그당시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책을 읽다가 생긴 의문적인데. 3.1운동을 한탓에 일본경찰에게 수배를 당한후 압록강을 건너가는 부분에 핵심을 주기위해 한것같은데 무슨 내포적인의미를 품고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동기 시대적배경 이책의표현 중요내용장난꾸러기 수암=박성희 독일어로 출판되어 한국어로 변역됨안녕하세요독후감을 쓰다가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인터넷에 검색하던 도중에 독일교과서에 실리고 호평 받은 작품이라고 해서 책을 읽어 보았는데 저의 학창시절에 한번 읽어 봣던 책이 였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가장먼저 이미륵 삼촌?의 1인칭 시점이 마음에 안들면서도 마음에 와 닿았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저자의 입장에서 1인칭 시점을 읽었을때는 수필인줄 알았어요. 하지만 인터넷 검색에는 이상하게 소설이라고 나와있어서 약간의 혼란이왔는데 제 생각에는 삼촌이 자신의 경험을 현실적으로 상세히 표현하고 싶어서 그런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햇어요. 덕분에 우리나라의 일제강점기와 개화기 시대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는것 같았어요. 예를 들면 수암이와 함께 글공부보다는 말썽을피우고 다니는 모습에서 저의 어린시절이 회상되면서 그떄당시의 모습이 그려졌엇거든요. 저도 어렸을때는 꾀나 말썽꾸러기였죠. 이것저것 깨먹고 항상놀이터에서 놀면서 친구들끼리의 다툼도 하면서 말이에요 그떄당시에 삼촌은 꿀을훔쳐먹거나 책으로 연을 만드는등의 장난을 쳤다는 내용을 보면서 이상한 웃음을 띄게 만들었지요. 그리고 삼촌의 파란만장한 학창시절 뭐...예를들자면 한자공부를하던중 아버지가 편찮으셧거나 잦은 이사로 인한 적응 또 청년기떄의 삼촌의 학구열등 많은것을 느꼇지요. 그중에서 인상깊은것은 신학문에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였어요.더정확히 말하자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것이 인상깊었지요. 그리고 또 놀라운건 3.1운동에 참가하였다는 것인데 교과서로 외워야만 햇던 역사적 사실이 소설로 만나게 되니 또다른 느낌으로 저에게 다가오더라구요. 그리고 일본경찰에게 쫒겨 우리나라를 떠나게 되었다는 부분에서는 좀 억울햇어요. 비록 더큰 세계를 경험하면서 학문을 배운다는 긍정적 취지도 있엇겠지만 말이죠. 여러 나라를 건너가면서 막바지에는 누나의 편지를 받앗죠? 그순간 저는 느꼇어요 편찮으신 아버님의 별세일거라는 것을 말이죠. 이렇게 책이 끝나는데. 개인적으로 저어어엉말로 싫었어요. 저는 열린결말 별로 안좋아 하거든요 영화도 막 허무맹랑하게 열린결말로 끝나면 본거같지가 않아요 아무리 재미있었던 내용이라 한들 끝이 별로면 저는 별로 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이것은 문학이기 떄문에 열린결말을 저희에게 줌으로써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식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할꼐요 이후에 열린결말을 심심할땐 생각해보는것도 좋은경험이 될꺼같아요. 좋은책 감사합니다.
처음에 나는 안중근 의사 선생님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위인이라고 만 알고 있엇다. 하지만 이책을 읽으면서 안중근 의사의 여러 가지의 업적을 알게되고 잘못알고 있엇던 사실들을 알게 되는 계기를 가지계 되었다. 이책은 안중근 순국 100주년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책을 엮엇다. 다큐 멘터리를 만드는 PD 누가 생각해도 딱딱하다. 하지만 이책은 그러한 고정관념을 깨고 세가지의 구성으로 나누고 안중근의 소소한 생활과 PD가 촬열햇던 사진들을 나열해서 중고등학생들도 손쉽게 접근할수 있을 정도의 가볍지만 내용은 무겁게 하였다. 여기서는 안중근을 칸트와 같다고 묘사했다. 또한 안중근 의사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어머니인 조마리아 여사의 내용을 담았는데 얼마전 무한도전에서 안중근 의사를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안중근의사가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중일 때 어머니의 편지 내용을 언급하는데. “어미보다 먼저죽은걸 불효라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은은 한사람 것이 아닌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딴맘 먹지 말고 죽으라 아마도 이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네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돼 이세상에 나오거라” 이 편지는 감히 내가 평가할 수 없다. 단지 내가 받은 감명을 표현하자면 그 어떤 어머니보다 대담하며 위엄이 느껴졋다. 소름이 돋는다. 그리고 더 말하자면 자신의 전재산을 쏟아 학교를 일으켰다. 이러한 행동은 아버지에게 받은 천주교 이념에 근거 했다. 훌륭한 부모님 아래 정말 엄청난 아들이다. 2장 마지막엔 김구선생님과의 만남을 써내려 가며 2장을 마치게 된다. 3장에서는 순국하시기 전 안중근 의사께선 하얼빈에 시신을 안치했다 조국의 주권이 회복 되거든 대한민국으로 옮겨 달라고 했지만, 우리는 유해를 찾아오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기록했다. 남북이 의견 일치로 유해 발굴단을 만들어 직접 가서 찾았지만 역부족이었음을 피력하며, 안중근 의사로 인해 남북이 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안중근 의사의 생가는 북위 38도선 근처라 했다. 우리네는 38도하면 휴전선만 생각하게 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강조했다. 또한 38도의 의미는 남북이 중간에 만나 서로 화해하며 인사할 수 있는 쌍방이 마주볼 수 있는 지역적 특수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이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들 우리나라의 어쩌면 부정적인 교육방식 현재 우리나라 국민들의 역사에 대한 인식도 특히 지금 교육받는 학생들 3.1절을 읽어보라 하니 삼점일절? 초등학교 시절 위인책을 많이 읽어 본 나로써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않았다. 이정도였나?싶었다. 같은 한국인으로써 또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교육받는 학생으로써 부끄러웠다. 체육이나 역사를 조금은 등한시 하는 우리나라 교육이 정말 미웠다. 역사를 배우는 같은일을 되풀이하지않기 위함이라 어디선가 본적이 있다. 낮아지는 역사의식을 조상님들이 보시면서 한탄할 모습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시신이 차가운 땅에 묻혀져 있다는 표현을 보면서 마지막 유언인 조국이 국권을 되찾으면 조국에 땅에 묻혀달라는 유언을 못들어 주어서 정말 슬프다. 시신도 찾지 못하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프다. 이 나라를 위해 힘쓰다 돌아가신 위인들을 한번 다시금 되짚어 보아야 되겟다. 비록 자세하게는 아니더라도 게임만 하고 레포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기회를 통해 위인들을 검색해서 공부해 보는 것도 좋은 배움이 될꺼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