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보통 사람들에게 교육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은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것으로 대답할 것이다. 무언가를 배우고 익힌다는 정도의 정의도 틀린 것은 아니다. 실제로 학교에서는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과 다양한 기술들을 학습시켜 주기 때문이다.하지만 교육은 단순히 학교 장면에서 이루어지는 학습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부분에 녹아 있다. 예를 들면 가정에서의 밥상머리 교육처럼 교육은 생활지도의 측면도 모두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수업의 형태뿐만 아니라 비공식적 상호작용의 과정에서도 교육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교육은 인간과 인간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이다.Ⅱ. 교육의 본질에 대해실존주의 교육자 otto F.Bolhow는 "만남이 교육을 우선한다."고 말했다. 이는 교육의 본질을 정의함에 있어 단순히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정도의 교육이 이루어지기 전에 선행조건으로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다시 말해 교육의 본질은 인간과 인간의 만남 즉, 인간과 인간의 대화이며 인격과 인격의 만남에 있다. 인간이 인간을 만나는 것처럼 "소중한 것"이 없고, 인간이 인간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만큼 "귀중한 것"이 없다는 말이다.교육의 본질이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 있음을 설명하기 위해 소크라테스의 일화를 이야기 할 수 있다.?어느 날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을 향해 말하였다. ‘여러분과 나의 만남은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자 한 제자가 물었다. ‘그렇다면 스승님께 있어 인생에서 가장 귀중한 시간은 언제입니까.’ 이에 소크라테스는 대답하였다. ‘now(지금)’ 또 다른 제자가 물었다. ‘그렇다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는 어디입니까.’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대답하였다. ‘here(여기)’ 또 다른 제자가 물었다. ‘그렇다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소크라테스는 대답했다. ’you(당신)'.?소크라테스는 이미 인간과 인간이 만난다는 것은 "소중한 것"이며, 인간이 인간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은 대단히 "귀중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을 만나고 있는 지금을 가장 귀중한 시간이라고 대답할 수 있었고, 제자들과 있는 여기를 가장 좋은 장소라고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남이 없었다면 소크라테스는 한낱 늙은이로 남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제자들과의 만남이 있었기에 소크라테스가 소크라테스일 수 있었고, 유능하고 저명한 학자로써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한마디로 교육은 "소중한 만남"으로 정의할 수 있다. 어떤 지식이나 가치들을 단순히 접하는 것에서부터 창조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에는 가장 먼저 인간과 인간의,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예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만남도, 예수와 베드로의 만남도, 단체와 베아트리체의 만남을 생각할 수 있다. 만일 그들의 만남이 없었다면 지식과 철학을 뛰어넘는 많은 가르침들이 지금까지 회자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