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방청기.수원지방법원에 교양과목 레포트를 작성하기 위해 방문했다. 나에게 법원이란 드라마 같은 방송에서나 보았던 내 인생과는 무관한 곳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방청한 재판은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재판 내용은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재판으로, 한국인이 설립한 외국의 국제학교 재학생 보호자가 인터넷에 학교에 대한 악의적인 글을 올려, 학교 명예가 훼손되어 설립자가 보호자를 고소한 사건이었다. 증인이자 원고인 학교의 설립자는, 학교가 교육 기관으로 써 인증받은 우수한 평판의 본인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피고인의 악의적인 글(아이들이 학교에서 강제 노동을 하고 기부를 강요 받았다는 주장)에 학교와 가문의 명예를 실추 시켰다고 주장했다. 증인의 기고만장한 목소리에 나는 이런 대단한 학교에 악의적인 글을 유포하다니..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고있던 찰나, 증인이 운동장의 벽돌을 나르게 했음을 인정했고, 돈에 대한 판단력이 없는 아이들이라 학부모로부터 받은 돈을 아이들에게 알리지 않고 자기들이 관리하고 있었다고 인정은 했지만 악의는 없었다고 주장하였다. 아주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생각보다 재판은 짧고 간결했다. 법원을 처음 방문하여서 인지 모르겠지만 방송에서의 차갑고 무거운 이미지와는 조금 달랐다. 생각보다 검사와 변호사는 적극적이었고 서류가 증거로 큰 역할들을 하였다. 사실 변호사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지만 딱딱하던 tv 안에서의 목소리와는 다르게 호소력있는 목소리였다. 판사도 마찬가지로 tv의 이미지와는 달랐다. 냉철하고 카리스마 있는 판사의 모습을 생각했지만, 실제로 판사는 그렇게 차갑지 않았고 인간미가 느껴졌다.짧은 방청으로 한국의 대체적인 법원 분위기를 모두 알 수는 없다. 너무 적은 표본을 일반화 시키는 것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본 검사 변호사 판사는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이미지보다 훨씬 더 좋았다. 검사는 막무가내로 피고를 몰아붙이지 않았고, 변호사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으며, 판사는 권위의식에 찌들어있지 않았다. 검사는 매너있었고, 변호사는 진실되었으며, 판사는 인간미가 느껴졌다.(사실 어려운 말들을 사용하여 잘난 척 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법원이란 곳은 한국인이라면 언제든지 방문할 확률이 있고 방문을 한다면,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닐것이다. 그 앞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사고’를 대비하여 법원을 한번쯤은 방문해 보고 싶었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tv드라마나 변호사들이 출연하는 쇼 프로그램등을 즐겨보는 나로써는 범죄와 형벌이라는 과목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수강신청을 하여 듣게 된 과목에서 평소에 해보고싶었던 법원 방청을 하게되어 뿌듯하고 왠지 등록금을 뽑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아주 좋았다.
인간발달의이해(11/25)인생은 아름다워 영화평 (선의의 거짓말)감상을 말하기 전에 이 영화의 제작 배경과 시대적 배경을 먼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영화를 잘 이해하고 감독이 말하는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함이다.제작 비화이 영화의 감독 로베르토 베니니는 이탈리아의 찰리채플린 이라고 불린다. 영화의 슬랩스틱이나 코믹스러운 부분이 사뭇 닮았다. 이 영화는 베니니의 개인적인 아픔, 영사적 진실, 그리고 베니니 자신만의 독창적인 상상력이 결합되어 탄생되었다. 그의 인생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이영화는 2차 대전 말기 농부였던 아버지가 유대인으로 오인 받아 나치 수용소에서 겪은 일을 모티브로 따왔다고 한다. 베니니는 이런 개인적인 아픔 때문에 이탈리아에 관한 글을 쓰거나 영화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혁명가 트로츠키의 가슴을 울리는 글을 본 후 생각이 바뀐다. 트로츠키는 스탈린이 보낸 암살자들이 자신에게 방아쇠를 당기기만 기다리고 있다. 오직 공포만이 존재하는 그 순간에도 트로츠키는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고 말했다. 죽음에 직면한 상황에서 트로츠키가 보여준 특별한 인생의 우수와 비애에 관하여 생각에 빠진 베니니는 가장 극악한 상황에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 사랑과 기쁨의 힘에 관한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다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영화의 배경은 1930년 말 이탈리아다. 유태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끌려가 죽어야했던 참혹한 시대다. 33년부터 45년까지 12년에 걸쳐 시행된 나치스의 유태인 차별 정책이 한창 진행중인 시대다. 독일정부가 유태인들은 공립학교를 비롯한 모든 공공시설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시켰으며, 사업과 토지 거래를 금지시켰다. 거주 이전의 자유를 빼앗고, 게토라 불리우는 특정 지역 이내에서만 살게하였으며, 유태인들에게 ‘다윗의 별’이라는 뱃지를 달게하였다. 이는 유럽의 다른국가에서도 매우 인기를 얻어, 급속히 퍼져나갔다. 점차 유럽의 전체의 유태인들이 이 같은 차별대우 속에서 숨져갔고, 독일이 군사적으로 유럽을 점령함에 따라 그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영화가 주는 메시지이에 이어 공대생인 나는 사실 영화를 교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고찰해 본적이 없다. 한번 영화가 주는 메시지에 대하여 고민해보도록 하겠다.영화의 전반부는 마치 한 편의 로맨틱 코미디만큼 달콤하고 아름답다. 잔혹한 학살의 현장을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 개인의 역사를 따라가고 있다. 영상이 보여주는 귀도라는 한 개인의 인생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되면서, 귀도에게 깊은 호감과 감정몰입을 느낀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객은 귀도가족의 아픔과 절망을 통해 이 홀로코스트란 사건이 얼마나 한 가족을 비극으로 몰아넣었으며, 많은 것을 잃게 햇는가를 공감한다. 이 영화는 단 한번도 죽음의 모습을 화면 에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죽음을 암시할 뿐 직접 사람이 죽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엘레시오가 샤워실에 들어가는 장면이 비춰지고 그 이후에 여성유태인들의 대화를 통하여 샤워실에서 가스를 틀어놓아 사람을 죽인다는 정보를 얻을뿐이다 이 극적인 상황에서 함께 살아남은 귀도의 아들 ‘조슈아’를 통해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인생이 참혹한 현실로 인한 비탄에 허덕일지라도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가슴에 희망을 품고 살아가야 한다. 마지막까지 그 희망이 남아있을때,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나의 인생과 인생은 아름다워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는 여러가지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만큼 예술성을 인정받은 영화이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하였다. 작품성은 인정한다. 그리고 작품성 뿐만 아니라 상업성에서도 성공을 했다는점도 주목할만 하다. 이영화의 작품성을 논할 때, 휴머니즘을 많이 이야기한다. 이 영화는 가족을 향한 가장의 가족애를 그려냈으며, 전쟁을 희극화 시켰다. 난 어떤 것이 잘 만들어진지 모르기에 이해가 안간다.전쟁은 오늘날 한국인으로써 그리고 대한민국 예비군으로써 항상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며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은 휴전 된지 수십년이 지났으며 대한민국 내에서 전쟁을 경험한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내 인생과 접목시키기 위한 초점을 맞추자면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고난’ 중 하나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주인공 귀도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상황 중 하나에서 아들을 위해 긍정적인 상황인척 연출한다.나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견해와는 좀 다르다. 다른 이들은 주인공 귀도라는 사람이 전쟁의 극박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의 제목만큼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 생각엔 귀도는 아들을 위해 즐거움을 ‘연출’ 했을뿐 아내와 아들 그리고 자신 가족 전부가 죽음의 위기에 봉착한 상황에서 절대 인생은 아름답다고 생각 했을리 없다. 등장인물 중에 가장 고통스러웠을 것이며 수용소로 끌려간 후 줄곧 불안감과 초조함을 느꼈을 것이다. 실제로 영화중에 아들과 함께있는 씬을 제외한 모든 씬에서 주인공의 좋지 않은 마음이 느껴졌다. 이는 아들을 대할때의 즐거운 게임 연출할 정도의 밝은면은 100% 거짓말임을 알 수 있다.작가는 영화를 만든 계기가 트로츠키의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생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마인드에 감명받은 일 이지만, 영화 내용은 극박한 상황에서 전혀 행복한 상황을 연출하지 않았다.그렇다면 작가가 말하는 인생은 아름다워는 어떤 의미일까? 주인공의 가족은 모두 수용소에 수용되었다. 원래대로라면 모두가 죽을 위기였으나 결론적으로는 주인공을 제외한 2명의 가족이 살아남았다. 최악의 경우에서 가끔 터지는 행운에 간간히 살아남았다. 이는 마치 한국의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는 한국의 속담과 같은 의미인것 같다.그런 의미로 생각하면 이 영화의 교훈은 상당히 값져진다. 실제로 어떠한 위기가 닥쳤을때 그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손해를 본적이 있다. 그 당시엔 그 위기를 극복할 방법이나 대안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후일 지인과 이야기하거나 혼자 생각해보면 답은 늘 있었다. 단지 내가 그 대책을 못찾았을 뿐이다. 늘 일이 터져 고통을 맛본 후에 후회하던 나에게 이 영화는 재미를 떠나서 강한 교훈을 준다.사람의 성향은 모두 다르다. 한국에 사람이 5천만이 있다면 5천만개의 ‘행복의 기준’이 있으며, ‘아름다움의 기준’이 있다. 어떤 영화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으면 똑 같은 영화를 보고 ‘저게 아름다워?’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다. 개인적으로 ‘노트북’ 이라는 영화가 있다 아주 아름다운 영화로 유명한데, 단순히 불륜미화 영화로 보는사람이 많은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지만 ‘항상 최선은 있다’는 변하지 않는 불변의 법칙이다. 어떤 안좋은 상황에서도 최선은 있으며 최선이 안된다면 차선이 있다. 이는 변하지 않을 뿐더러 기준또한 없다. 완벽한 진리이다.대기업에 떨어지고 있으니 중견을 지원하고 중견이 안되면 마지막 보루인 중소기업…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