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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루넬레스키의돔 독후감
    브루넬리스키의 돔을 읽고...-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Filippo Brunelleschi)- 출생-사망 : 1377 ~ 1446. 4. 15- 국적 : 이탈리아- 활동분야 : 건축, 조각- 주요작품 : 피렌체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대성당의 돔1377년 피렌체에서 출생하였다. 15세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건축양식 창시자의 한 사람이다. 아버지는 공증인이었고 어머니는 귀족 출신이었다. 차남인 그는 아버지의 직업을 계승하는 대신 금속 공예의 기술을 익혀 조각가가 되려고 하였다. 1401년 피렌체세례당 출입문의 양각(陽刻) 콩쿠르에 응모하여 L.로렌초 기베르티의 작품과 끝까지 경쟁한 결과, 결국 기베르티의 작품이 최종안이 선정되었다. 그러나 현존하는 당시 시작품(試作品) 《이삭의 희생》(피렌체 바르젤로미술관 소장)은 하나하나의 조각상이 매스로서 정확하게 파악되어 있고, 또 그것들이 극적으로 힘차게 구성되어 있어서 산타마리아노벨라성당의 목각상 《그리스도의 책형(?刑)》(1409?)과 더불어 브루넬리스키는 조각가로서의 뛰어난 자질을 보여주고 있었다.콩쿠르에 낙선한 이후 브루넬레스키는 로마로 건너가 고대 로마건축을 연구하면서 건축가로서의 활동에 전념하였다. 그가 다시 유명해진 것은 피렌체로 돌아와 피렌체의 산타마리아델피오레대성당의 커다란 돔(1436 낙성식) 제작을 의뢰받고, 이를 성공적으로 건축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하였다. 고대 로마의 판테온의 가구(架構) 기술을 도입하여 전통을 중요시하면서도 새로운 구성미를 만들어내었으며 피렌체에 새로운 미술을 기운을 북돋는 데 역할을 하였다. 또한 그는 피렌체의 첫 사회시설인 오스페달레 델리 인노첸티(고아양육원: 1421∼1444)에서는 9단의 계단 위에 연속된 아케이드의 전망 효과를 노리고 있으며, 명쾌하고 새로운 율동감을 주고 있다. 또한 산로렌초성당(1418 이후)과 산토 스피리토성당(1436 이후)에서는 저마다 질서 있고 지적(知的)인 공간구성이 특색이다. 후자의 본당에서는 집중식 형태에 대한 관심이 엿보이는데 이는 산로렌초성당의 성기실(聖器室: 1428), 파치가(家)의 예배당(1429 기공), 산타마리아 델리 안젤리성당(1434 기공) 등에서 실현되고 있다. 특히 산타마리아 델리 안젤리성당은 순전히 집중식 형태를 노려서 건립된 것으로 그의 건축양식에 대한 한 가지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었는데, 불행히도 1437년에 공사가 중지되어 지금은 1층 벽면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의 위대성은 전통에서 계승한 구조방식을 여러 군데에 수시로 활용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에 적응한 구축(構築)의 미적 법칙을 거기에서 이끌어내고 실현한 점에 있다. 부르넬레스키는 이런한 건축의 업적이외도 회화에서 원근법(perspective)의 발명자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미술의 발전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이제 책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면 처음 시작에서 산타마리아 대성당의 돔 공사 현상설계가 진행되고 거기서 필로포 브루넬리스키의 안이 당선된다. 당시에는 생각도 할수 없었던 이중 쉘 구조라는 생소한 구조와 목조틀을 대지 않고 시공한다는 그 자체 만으로 많은 놀라움을 가져다준 안을 제시하여 놀라움을 알겨주었다고 한다. 브루넬리스키는 공증인 양아버지 밑에서 자라 십오세때에 공방에 들어가게된다. 물런 아버지는 공증인으로 크길 바랬지만 브루넬리스키가 공방에 들어가길 바랬다고 한다.금 세공사로 일하다 이름을 알리게 될즈음 로렌초 기베르티를 만나게 된다. 그와는 라이벌 관계로 죽을때까지 싸우게 된다. 그들의 인연은 산타마리아 대성당 앞의 세례당 문의 조각을 세공하는 공모전에서 공동 우승을 하면서 부터이다. 이후 부루넬레스키와 조금은 다른 길을 걷지만 이 사람이 없었다면 브루넬리스키를 자극해줄 만한 사람들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든다.브루넬리스키는 흑사병으로 고통받는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여행을 다니기도 했는데 그곳에서 판테온을 보고 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그 후 다시 피렌체로 필리포가 돌아오게 된 계기가 된 것은 바로 산타마리아 대성당의 돔 현상설계 였다. 다시 돌아와 대성당의 돔을 맡게된 브루넬리스키는 5등분 첨두 아치를 이용하여 반구형 돔보다 높고 큰 돔을 만들게 된다. 브루넬리스키는 수학,역학에도 관심이 많이 돔 공사중에 권양기,기중기를 새롭게 발명해 효율을 높이기도 하였다. 브루넬리스키의 권양기와 기중기는 기존의 것보다 훨씬 적은 힘으로 많은 일들을 하게되었다. 브루넬리스키는 목재, 석재등 재료에도 많은 관심을 쏟았다. 그렇기에 그 큰돔을 지을수 있었다고 생각이 든다. 목재를 기다리다 2년의 세월이 흐르기도 하고 석재를 강을 통하여 옮기다 자신이 설계한 배가 가라 앉기도 했다. 석재는 대리석으로 산타마리아 대성당의 외부 마감재였다. 그것이 강에 수장되면서 브루넬리스키에게 많은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철저한 재료를 골라냄으로서 더욱 견고한 모습의 돔이 나왔으리라 생각이 든다.대리석의 수장으로 인해 공사가 지연되고 또 그쯤하여 피렌체는 전쟁을 치르게 되는데 거기서 브루넬리스키의 활약을 기대해 보지만 계속되는 불운인지 그만 크게 패하고 만다. 브루넬리스키는 전쟁에 군사작전을 계획하는 사람으로 참가하게 된다. 그 당시엔 그런것까지 건축가가 했다고 한다. 운이 좋지 않아서 인지 아니면 그 고집때문인지 브루넬리스키의 전략이 크게 실패하고 그 뒤 피렌체는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빠진다. 당연히 그로 인해 산타마리아 대성당의 돔 공사는 더욱 더 더디게 진행되어졌고 인부들의 삯도 많은 부분 삭감되어졌다. 브루넬리스키도 말할 것이 없었다.
    독후감/창작| 2013.12.12| 4페이지| 1,000원| 조회(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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