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번 과제를 위해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를 두 번 보아야 했다. 처음 영화를 보기 전, 영화에 대한 평론가들의 극찬을 인터넷에서 하도 많이 봐서 기대가 컸다. 하지만 기대를 크게 한 만큼 다 보고 난 뒤의 실망 또한 컸다. 이상하게도 영화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왠지 나는 둘의 사이를 사랑이라 칭하는 것이 불결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생각이 들자 감상문을 쓰는 것이 힘들어졌다. 이해를 하지 못했는데 쓸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래서 시간차를 두고 한 번 더 보게 되었다. 노트북을 켜기 직전까지 영화를 보기 싫었던 것이 무색할 만큼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집중해서 보았다. 심지어 후반부에 가서는 열심히 울면서까지 봤다. 분명 같은 영화인데도 두 번째 볼 때는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 보이지 않았던 한나와 마이클의 사랑이 너무나도 세차게 다가왔다. 여기서 내가 세차게 다가왔다고 표현한 이유는 그들의 사랑으로 인해 내 마음이 따뜻해진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아팠기 때문이다. 시작점이 달랐던 그들의 사랑은 단 한 번도 서로 제대로 마주보지 못하고 끝내 으스러져 버렸다.마이클의 사랑은 한나를 만난 순간 시작된다. 성홍열에 걸린 마이클은 집에 가던 중 전차에서 몸의 이상을 느끼고 아무 골목에서 내려 주저앉아 구토를 한다. 그런 마이클을 한나가 발견하고 바닥에 있는 토를 치우고 몸을 떨고 있는 그를 꼭 껴안아주며 괜찮다고 토닥여준다. 그런 한나의 행동은 따뜻함과 동시에 무척 단단한 어른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한나는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의사가 마이클을 진단한 뒤 전염이 되는 병이라 말하자마자 바로 뒷걸음질 치고 마는 어머니의 약한 모습과 대조된다. 아마 마이클은 자신이 세계에서 유일했던 여성인 어머니와 대조적인 한나의 모습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한나와의 관계가 시작되기가 무섭게 마이클은 그녀에게 속수무책으로 빠진다. 이렇게 마이클이 치열하고 격정적인 감정에 허덕일 때 안타깝게도 한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지 않다. 마이클이 울며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한나에게 묻는 장면에서 그녀는 아무 표정 없이 느릿하게 고개를 주억거리지만 영화를 보는 우리는 모두가 그녀가 거짓을 말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그렇다면 그녀는 왜 마이클과 관계를 가진 것일까? 한나는 문맹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문맹임을 인정하고 극복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배우고 싶다는 욕구를 무의식의 저변에 숨겨버린 채 살아왔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무의식에 의해 강한 지배를 받는다. 즉 무의식이 인간의 행동을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무의식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꿈을 해석하거나 상대방이 어떤 것에 강한 저항을 보이는지를 분석해야한다. 우리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녀의 행동을 통해 무의식에 접근한다. 마이클이 한나에게 성홍열을 앓는 동안 ‘책을 읽는 것도 지겨워졌다.’라고 말한다. 그때, 마이클을 향해 줄곧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전과 달리 마이클을 똑바로 응시한다. 여기서 한나가 ‘책을 읽는다.’는 것에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짐작하는 것이다. 후에 한나가 마이클에게 관계를 갖기 전 책을 읽어 달라 요구를 하는 것과 그녀가 사무직으로 승진되었을 때 불안해하는 모습을 통해 한나가 문맹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결국 한나는 자신의 무의식에 잠재되어있는 글에 대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마이클을 이용한 것이다. 사무직으로 승진이 되고 도망치듯 그 도시를 떠나는 행위는 문맹인 것을 밝히기 두려워하는 한나의 무의식이 초래한 것이다. 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마이클은 한나가 떠난 집에서 며칠이나 그녀를 기다리는 안타까움을 보여준다. 이러한 경험은 마이클에게 상처가 되고 그 역시 상처를 극복하기보다는 한나에 대한 기억을 무의식에 넣어버리는 모습을 보인다.한나와 마이클이 다시 만났을 때 영화에서 긴장감은 극도로 치닫는다. 그들이 재회한 장소는 전범재판소. 마이클은 법조인을 꿈꾸는 학생으로, 한나는 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유태인을 관리 감독했던 여자 관리자의 신분이자, 전범의 신분으로 독일 법정에 선다. 재판관이 “당신의 이름이 한나 슈미츠가 맞습니까?”라고 물어보는 장면은 마이클과 더불어 보는 관객들에게도 큰 충격을 선사한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이름이 불리고 보고 싶었던 얼굴을 보았지만 그녀는 끔찍한 전쟁의 가해자가 되어있다. 그녀를 피고인으로 지목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피해자는 그녀가 다른 경비원들과는 달리 어린 소녀들을 친절히 보살피고 책을 읽게 하였다고 진술하며 그 뒤 그 소녀들을 죽음으로 내몬 행동에서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마이클은 자신이 그 소녀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음을 알고 더 큰 상처를 받는다.그제야 그는 당시 한나가 글에 대해 보였던 태도들을 이해하게 된다. 동시에 그녀가 자신이 문맹인 것을 남들로부터 숨기고 싶어 한다는 것도 느낀다. 이 사실을 안 뒤 마이클은 극도로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안나 프로이트의 이론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마이클은 본능(id), 자아(ego), 초자아(super ego) 사이에서 갈등을 겪어야했다. 그녀를 구하고 싶다는 본능과 도덕적인 관념을 바탕으로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행동을 하도록 하는 초자아 사이에서 자아를 어떻게 발현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자아가 균형을 잘 잡아 교수님께 진실을 털어놓고 도움을 청하든, 한나를 직접 만나 설득을 했어야 했지만 한나로 받은 상처가 다른 사람 앞에서 한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막고 그녀를 만나러 가는 발걸음을 되돌리게 한다. 한나와 마찬가지로 그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상처가 그의 행동을 지배한 것이다. 본능과 초자아 사이에서 균형을 못 맞춘 마이클의 자아는 여기서 야기된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여자를 안음으로써 도피를 한다. 결국 한나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마이클의 눈물범벅 된 모습을 마지막으로 시간은 훌쩍 지난다.
목 차Ⅰ 서론1.연구의 목적Ⅱ 본론1. 청계천 복원사업의 추진 배경 및 목적2. 청계천 복원사업의 추진 과정(1) 전반적인 추진과정(2) 추친 과정의 긍정적 측면(3) 추진 과정의 부정적 측면3. 완료된 복원사업에 대한 평가(1) 경관적 측면(2) 환경적 측면(3) 사회경제적 측면(4) 공간적 측면Ⅲ 결론전체적인 보고서의 결론 요약 및 청계천 사전 답사 후의 느낀 점※ 참고문헌 ※Ⅰ. 서론1. 연구의 목적본 연구는 본격적인 청계천 답사를 가기 전, 사전에 청계천에 대해 잘 알고 무엇에 중점을 두고 본 답사 때 관찰을 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 진행하였다. 사전 답사를 하며 청계천 복원 사업이 진행되기 전 청계천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보고 복원 사업이 진행 된 후 경관을 비교해 보았다. 사전 답사를 마친 뒤에 본 답사 때 청계천의 어느 위치에서 어떤 경관을 유심히 관찰해야 하며 어떤 사고를 갖고 연구에 임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 보고서를 작성하였다.Ⅱ. 본론1. 청계천 복원사업의 추진배경 및 목적청계천 복원사업의 실행 주체인 청계천 복원추진본부는 청계천 복원사업의 추진배경과 목적을 안전, 환경, 문화, 경제 이 네 가지 측면에서 제시한다.우선 안전 측면으로선, 1999년에 정밀 안전진단 결과,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은 30년 간 사용으로 많이 노후 되어서 도시생활환경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서울시는 안전 문제를 해결을 하기 위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을 보수 보강해야 한다고 판단되자 2002년부터 2년 10개월 동안 1천억 원을 투자해 청계고가도로를 전면 보수공사 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청계천 복개구조물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20억 원 이상이 든다는 것을 고려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겠다고 판단하였다. 즉 청계천 복개구조물을 전면 철거를 해야겠다고 판단한 것이다.두 번째로 환경적 측면에선, 청계고가와 주변의 노후 건물들이 대기오염 및 소음공해를 유발하고 주변 하수관로가 제대로 정비 되지 않아 하수가 역류하는 바람에 심한 냄새를 풍귀는 등 생활환경성화 되는 데에 걸림돌이 되었다. 따라서 청계천 복원 사업을 통해 발전이 정체 된 청계천 중심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도시 성장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세우게 되었다. 더 나아가 강남과 강북간의 지역격차를 완화하는 것 또한 목표로 잡았다.2. 청계천 복원사업의 추진 과정(1) 전반적인 추진과정청계천 복원 추진 과정을 복원사업의 진행과정을 중점으로 4차례에 나누어 설명을 하겠다. 이 4차례는 2002년 서울시장선거기간에서부터 청계천 복원 사업의 본격적 추진 이후까지를 범위로 한다.① 청계천 포럼 결성 ~ 이명박 시장으로 당선청계천 복원 사업은 2000년 9월 청계천 살리기 연구회(청계천 포럼)이 결성되고 활동을 하면서 본격적인 정책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하였다.그 당시 청계천의 안전문제, 환경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대두되어 서울시는 청계천을 전면 보수하는 계획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청계천 포럼은 청계천을 복원하자는 상반된 입장을 주장하였다. 그 때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경선 과정에 있던 이명박이 2002년 2월 21일 기자 간담회에서 ‘청정 환경 유지를 위한 청계천 복개도로 원상회복’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청계천 복원문제가 서울시장선거에서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이 되었다. 결국 2002년 시장선거에서 이명박이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다.② 이명박 서울 시장 취임한 뒤- 청계천 복원사업 추진체제를 구성함서울시장에 당선된 이명박은 취임식 당일부터 청계천 복원 사업을 즉각적으로 추진하였다. 취임 당일인 2002년 7월 1일에 ‘청계천복원추진본부’를 설치하고 7월 2일에는 ‘청계천복원지원단’을 구정한 뒤 그에 이어 9월 18일에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청계천상권수호대책위원회가 반발함청계천 주변 상인들은 복원사업이 본격화 되자 반대를 하기위해 조직화를 하려고 하였고 8월 12일, 그들은 청계천상권수호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들은 청계천 주변상인들의 생존권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무모한 계획이라고 주장하며 12월에 복원공사추진의 중단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서울시에으로 청계천원형복원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서울시는 ‘홍수방지, 교통처리의 어려움’이라는 이유를 들며 요구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1월 5일 시민위는 복원추진본부장의 직위해제를 공식요구하며 시민위의 활동을 전면 중단하였다. 시민위는 복원공사가 오히려 문화유적·유물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공사를 중단 할 것을 요구하였다. 3월 6일에는 시민위가 이명박 서울시장을 문화재 훼손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한편 시민단체들은 법원에 공사 중지가처분을 신청하였다.서울시는 복원사업을 일시 중단하고 문화재청의 요구를 수용하여 3월 11일 ‘청계천문화재보전전문가위원회’를 구성하였다. 하지만 갈등은 해결되지 못하였고 결국 문화재청이 청계천 복원사업과 관련한 정책결정을 하게 되었다.마침내 2005년 9월 30일 청계천 복원 공사가 완공되고 10월 1일 청계천복원사업 준공식을 함으로서 청계천복원사업과정이 끝난다.청계천 복원하기 전의 모습청계천 복원 사업 기공식청계천 복원을 반대하는 시위 하는 모습( 왼쪽부터 투쟁위, 시민위)청계천 복원 사업 완공식청계천 복원 후 현재 모습(2) 추진 과정의 긍정적 측면우선, 과정에 앞서 정책 자체가 더 나은 환경조성과 문화의 복원이라는 상징성과 환경적, 경제적, 문화적, 안전성의 면으로 나누어 목적을 뚜렷이 했기 때문에 복원의 당위성을 시민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었다.서울시는 청계천 복원사업 초기에 노후화로 인한 청계고가도로 및 복개도로의 안전문제와 혐오감을 부각시켰다. 그러면서 전면보수를 해도 안전할 불분명하며 유지비가 많이 든다는 것을 강조하며 보수의 한계를 드러냈다. 또한 환경문제도 언급하며 하천바닥이 중금속으로 오염되어 있으며 복개도로 지하공간의 유해가스가 구조물의 부식을 촉진한다는 것을 내세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한편 청계천을 복원하는 것이 이러한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복원사업이 가져 올 긍정적인 결과나 이미지를 부각하려고 노력하였다. 한겨례 등 언론에서 각종 슬로건이나 기고문, 관련었다.이렇듯이 서울시는 복원사업 과정 중에 강제적으로 밀어붙이려고만 하지 않고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등의 민주적인 방법으로 사업을 진행하였다. 또한 이해관계인인 문제를 제기하고 불평을 할 때 임시방편으로 보상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예를 들면 복원사업에 따른 청계고가와 복개도로의 철거로 인한 교통난의 문제가 제기되자 서울시는 도심 및 청계천 주변지역의 불법 주정차 단속, 일반통행로의 확대, 중앙차로제의 확대, 승용차 자율 5부제 등을 통해 승용차의 운행을 줄이는 방향으로 교통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이러한 철저한 사전작업과 주변 이해관계들과의 원활하고 빠른 소통 덕분에 청계천 복원사업은 대규모 국책사업임에도 불구하고 2003년 7월 1일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되기까지 1년 남짓이라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 갈등을 해소하고 계획대로 복원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즉 정부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청계천 지역의 영업상인, 지역주민, 시민단체, 결국 시민들과 갈등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며 사업이 추진된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3) 추진 과정의 부정적 측면앞서 언급한 추진 과정의 긍정적인 요소들이 살짝만 뒤집으면 부정적인 요소들이 된다. 우선 청계천복원사업 전 언론과 정부에서 복원사업의 긍정적인 면만 너무 부가시켰다. 이는 시민들이 올바르고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한다. 특히 언론이 너무 복원사업에 대해 옹호를 하였다. 언론은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하는데 이는 옳지 못한 방법이었다.이번에는 이해관계인들과의 소통문제인데, 그 전에 정부가 진행했던 사업들의 과정에 비해서는 확실히 소통이 원활하고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려고 했다는 것에서는 수긍한다. 하지만 이해관계인들의 의견과 주장을 듣기만 했을 뿐 정작 수렴한 것은 얼마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수렴하려고 노력은 하였지만 실제로 정책에 많이 반영이 되지는 못한 것이다. 결국 소통은 많이 했으나 원안과 바뀐 사항은 거의 없었다으로 줄여서 진행하였다. 본격적인 사업이 진행되기 전 1년 동안 사업 전 일들을 다 마무리 지었는데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환경적 측면이나 문화적 측면이나 안정성 측면에서 더 따져보고 알아보고 최선의 방법으로 사업을 추진해야 했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였다. 시간을 오래잡지 못하고 번개에 콩 구워먹듯 모든 과정을 빠르게만 진행한 것이 아쉽다.보상 문제에서도 불평이 많이 쏟아졌다. 특히 실질적인 상인대책이 없어 상인들은 막대한 손해를 보았다. 복원사업을 시행하기 전 영세 상인들에게 15만평 규모의 ‘동남권 유통단지 및 청계천 상가이주단지조성사업’등의 이주 대책은 실효성이 없다. 그것뿐만 아니라 영세상인과 중소기업에 경영안정자금과 시설자금 명목으로 업체당 각각 최대 5천만 원과 1억 원을 연리 4.5%의 저리로 특별융자해주는 방안을 내걸었지만 자격요건을 까다롭게 만들어 혜택을 받는 이들이 거의 없다. 이는 서울시에서 근본적인 대책인 것처럼 내놓았던 방안들이 결국에는 실효성이 없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상인들 달래기’, ‘요식행위’ 등 상징적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마지막으로 문화재문제가 있다. 시민위나 시민단체 등 복원사업을 중단하기를 요구했던 집단들은 하나같이 문화재이유를 댔다. 서울시는 복원을 위한 사전 정밀조사 없이 헐어내어 반출하거나 반출하기 위해 훼손을 하면서 공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역사문화계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일방적인 자료만을 가지고 독단적으로 진행하였다. 문화를 부흥시킨다는 모토를 내건 것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전 서울시장 이명박은 ‘문화재 보호법 위방’으로 형사 고발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사업은 중단되지 않은 채 계속 되었다.복원 사업을 하면서 발견 된 문화재를 아무렇게나 쌓아둔 모습3. 완료된 복원사업에 대한 평가(1) 경관적 측면경관적 측면에서는 복원사업전의 청계천보다 복원 후의 지금의 청계천이 훨씬 아름답다. 그 전에는 콘크리트에 둘러싸이고 다리 밑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