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크테시비오스이 물시계가 작동하는 원리에 대해 서술하시오.고대인들은 시간을 어떻게 구분하였을까 고민해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해시계이다. 해시계로 시간을 알아냈던 것이 최초의 시간 측정이었겠지만 일조량이 많은 이집트 외의 다른 곳에서는 오랫동안 비가 내리거나 밤이 되면 시간을 알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일정한 재료의 성분으로 만든 표준 크기의 양초를 태우거나, 모래시계를 생각해 내었다. 하지만 양초는 공기의 흐름 등의 변수에 따라, 모래시계는 모래가 점점 빠져 나감에 따라 압력에 따른 유출의 속도 차이로 처음 흘러내릴 때와 거의 다 흘러내렸을 때의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에 고안된 것이 바로 물시계이다.다양한 형태의 물시계가 만들어졌다.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는 물이 가득 찬 용기에 구멍을 뚫어 물이 흘러나오게 한 다음 용기 안에 매겨진 눈금을 읽어 남아 있는 물의 높이를 측정해 시간을 쟀다.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크테시비오스가 만든 물시계는 원통에 물이 조금씩 흘러들어 부표를 밀어 올려 부표에 닿는 인형이 시각 눈금을 가리키도록 설계하였다. 흘러드는 수량을 자동적으로 조절하여 일정하게 유지하는 구조와 부정시법에 따라 매달 변하는 시각 눈금을 차례차례 원통에 기입해 두고 이것을 자동적으로 회전시키는 장치를 갖춘 꽤나 정교한 것이다. 이와 같은 설계가 이루어진 시기는 기원전 2세기 무렵이다. 크테시비오스는 이 시기의 대 기술자로써 아르키메데스의 지식과 방법을 실제 문제의 해결에 응용하였다.이 장치는 도관에서 조절 통으로 유입하는 물이 용기에 저장되고, 그 수량이 증가하면 거기서 떠오른 부표가 올라간다. 그 부표 위에 있으면서 12시간을 가리키는 하나의 지시봉을 가진 작은 인형도 상승하게 되어, 회전 원통에 수평으로 곡선을 그리게 되어 시간을 나타낸다. 또한 이 곡선을 가로지르는 가운데의 수직선은 춘분, 추분의 시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 밖의 하지나 동지의 직선 등 모두 12개의 수직선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이 장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압을 일정하게 조절하는 장치인 G인데, 이것은 복원할 때, 추정에 의해 다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물시계는 하루 종일 사용되었다고 할 만큼 정교한 작품이었다.(2) 헤론이 만든 신전의 문이 작동하는 원리에 대해 서술하시오.지금은 이슬람교를 믿지만, 알렉산드리아는 그 당시 신들로부터 지시나 확신을 받는 여러 종교들이 경쟁하는 장소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종교의 존립을 위해 신도들에게 마술과 같은 기적을 보여줄 필요성을 느꼈다. 이때 헤론이 발명한 것은 흔히 ‘37번’이라고 불리는 신전의 자동문이다. 수학자 헤론은 자동으로 움직이는 문을 발명해 로봇 기술의 첫 단추를 끼웠다. 헤론이 만든 자동문의 원리는 간단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제단에 불을 붙이면 자동으로 신전의 문이 열리는 장치로, 따뜻해진 공기의 부피가 커지면서 물통 속에 들어 있는 물을 밀어내 그 압력으로 문이 열리는 방식이다. 헤론의 놀라운 기술력과 발명품은 문헌들을 통해 전해 내려와 지금도 학자들은 그의 기술력을 경탄하며 발명품들을 복원중이다.
정상, 정통, 전통, 고전에 대한 고찰- 낯설게 바라보기Ⅰ. 들어가며· 정상: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상태· 정통: 바른 계통· 전통: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지난 시대에 이미 이루어져 계통을 이루며 전하여 내려오 는 사상ㆍ관습ㆍ행동 따위의 양식· 고전: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 / 예로부터 전하여 내려옴네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 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이 되어 우선, 각각의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사실 위의 네 단어들 모두 수업시간에 듣거나 일상생활에 자주 쓰이는 익숙한 단어들이다. ‘정상’이란 비정상의 반대 즉, 이상하지 않고 그 누가 보기에도 올바른 것이고, ‘정통’이란 올바르게 이어져 내려오는 이다. ‘전통’이란 과거부터 오랫동안 내려오는 생활양식 등이고, ‘고전’이란 옛날부터 내려오는 것 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간단하게 생각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지금부터 각각의 단어들에 대해 낯설게 바라보며 더 깊이 있는 생각을 해보고 이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Ⅱ. 본론신체검사를 할 때 건강하거나 특별한 질병이 없다면 ‘정상’이라고 한다. 어디에 하자가 없거나 비정상적으로 지나치지 않는다면 일반적으로 정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모두의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일반화되고 정형화된 것을 정상적으로 여기도록 어릴 적부터 배워왔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정상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나는 얼마나 무비판적으로 살아왔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정상이란 지금 현재의 내 상태 인 것 같다. 평범한 외모에 어디 특별히 아픈 곳 없고 남들과 비슷한 생활을 하는 20대 대학생인 내 상태 말이다. 현재 21세기의 다원화 사회는 독창적인 것이 살아남고 구태의연한 것들은 살아남지 못하는 경쟁사회이다. 이런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내가 남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의 미래에 도움이 될까하는 의문이 든다. 나는 현대에 있어 더 이상 정상이란 말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개개인의 독창성이 인정되는 현대사회에서는 ‘비정상’ 적인 것이 더 이상 나쁜 것만이 아닌, 참신한 것으로 재평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의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나는 남들과는 다른, 비정상적인 삶을 살기를 원한다.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책을 보면 옳다고 믿고 있던 정상과학이 흔들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여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 과학의 혁명이 일어난다고 토마스 쿤은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과거에 지구는 평평하다고 믿어졌고 이 이론은 다수에게 받아들여졌으며 그 당시에는 ‘정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지구는 구라고 주장하는 소수가 생겨났고 과학적 증거에 따라 다수의 집단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처럼 정상이라는 것은 그 집단에서 다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수적인 것은 그 사회의 모습이나 환경, 문화, 종교, 생활 방식 등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정상이라는 것이 무조건 적으로 다수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틀에 맞게 변화될 수도 있고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옳다고 믿고 왔던 정상과학을 무너뜨리고 과학의 혁명을 일으키는 것처럼 말이다.엄마께서 한식을 전공하셔서 그런지 집에 있는 요리책을 보다 보면 정통 한식요리법, 전통 한식요리 같은 단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단어들인데 그 차이에 초점을 맞추니 새로운 의미가 보였다. 정통 중국요리, 정통 이탈리아 요리 등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정통이라는 말은 원조, 진짜 그대로의 모습을 이어받아 온 것을 말한다. 그와 달리 오래 오래 전해 오거나 우리의 것으로써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을 전통이라고 한다. 전통의 사전적의미를 보면 계승된 과거의 생활양식과 문화, 제도와 이념 등을 말한다. 하지만 전통은 오랜 옛날부터 변하지 않고 이어져온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은 지금까지의 역사적 산물이다.비슷해 보이지만 두 단어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얼마 전에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책에 대해 공부할 때 전통이 의도적으로 만들어지거나 의미가 변형되어 그 나라만의 고유한 전통으로 받아들여지는 예를 보았다. 나는 전통이 만들어진다는 것에 대해 긍정적이며, 앞으로도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진 전통이 얼마든지 생겨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전통은 굳어져 있는 게 아니라 유동적이며 창조될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도 지나면 과거가 된다. 1초전의 순간도 현재의 우리에게 있어선 과거이다. 다시 말해서 현재의 우리에게 의미 있고 계승할만한 생활양식이나 습관들은 어떤 방식으로도 미래에 우리에게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달리 정통이라는 말은 변하지 않고 예전부터 내려오던 그대로의 것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시대가 지나 가치관이 변해도 정통은 그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근래에 만들어진 단어인 정통퓨전을 보아도 새로운 것을 첨가 시키더라도 정통적인 방법은 고수하고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 춘향전 - 신학균본 별춘향가 >춘향전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로 소설의 이본이 120 여종이나 되고, 제목도 이본에 따라 다르다고한다. 춘향의 사랑과 이별, 고난과 그에 대한 보상이란 밝음과 어둠, 어둠과 밝음의 순환되는 교체 속에서 단순한 이야기지만 그 이상의 인간의 삶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다. 이몽룡은 춘향을 보고 한눈에 반해 백년가약을 맺고 잠시 동안의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이몽룡의 아버지를 따라 이몽룡은 춘향을 떠나고 춘향은 이를 기다린다. 하지만 소설에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인 악당격의 변사또가 등장해서 춘향에게 수청을 들라고 강요를 한다. 이를 거부하던 춘향은 끝내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고 소설의 공식처럼 적시에 이몽룡이 나타나서 춘향을 구하고 변사또를 내친다. 그리고 그 둘은 행복하게 살아간다. 이몽룡과 성춘향의 만남으로 시작되어 두 사람의 사랑과 이별, 성춘향의 기다림과 고통 뒤에 오는 이몽룡과의 재회, 그리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일종의 공식같은 소설이다. 오히려 이런 점으로 인해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대표적인 한국 고전 소설인 것 같다. 춘향전에 대한 관심은 고전 소설 춘향전이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 되어지는 연극과 영화, 춘향전을 토대로 새로이 각색된 이야기 등으로 꾸며진 작품등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왜 춘향전이 여전히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일까. 불과 한 세기 전만해도 이렇게 남녀가 쉽게 사랑하고 헤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너무 쉽다. 우리는 어떤 컨텐츠를 소비할 때, 흔하고 익숙한 것을 찾진 않는다. 새롭고 특별하거나 흔치 않은 것을 보길 원한다. 현 시대에는 춘향전 속 이몽룡과 춘향이의 사랑이 주위에서 볼 수 없는, 어쩌면 잃어버린 우리의 모습이기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또 그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을 듯한 신분의 벽을 뛰어넘는 사랑을 표현한 소설이다. 비록 춘향이가 성씨라는 양반의 자녀라고는 하지만 기생이였던 춘향의 모친 월매의 신분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정해져 있던 춘향과 양반집 자제인 이몽룡과의 혼인은 상상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신분을 초월한 사랑, 무척 낭만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어느 시대에나 이러한 상황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지금의 드라마나 소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습에서도 이러한 점을 찾을 수 있었다. 집안의 부나 권력, 세세하게는 직업까지 따져가며 서로의 반쪽을 찾는 현상을 볼 때 춘향이가 살았던 그 시대와 별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이 든다. 문득 춘향이가 순수한 마음에서 이몽룡을 사랑하여 신분까지 극복한 사랑을 보여준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춘향이가 야심이 있었던 여성으로 신분상승의 기회를 노렸던 것인지가 궁금해진다. 춘향전을 내가 지금까지 알고 읽어왔던 순수한 교훈을 주는 소설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이처럼 춘향전도 새로운 시각으로 보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고전을 읽는 것이 무조건 좋을까1. 들어가며이 레포트를 쓰면서 평소에 독서를 즐겨하지 않았던 점이 후회스러웠다. 그동안 독서의 중요성은 언제나 뼈저리게 느껴왔다. 작년 유학을 하고 있는 사촌 언니, 오빠 집에 여행을 갔을 때 외국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책을 구해서 집안 곳곳에 쌓아두고 책을 읽는 모습은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음악을 전공하면서도 역사, 소설, 과학, 시 등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독서를 하고 있었다. 몇 살 차이가 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할 때 느껴지는 대화의 깊이에 나도 독서를 꼭 습관화해야겠다고 절실히 느꼈었다. 그러던 중 2학기 강좌 중에 고전세미나라는 강의를 듣게 되었고 고전이라는 책도 읽어볼 수 있겠구나 하는 부푼 꿈을 안고 학기를 시작했었다. 학기 중에 교수님께서 선정해주신 여섯 권의 책을 읽으려고 여러 번 시도했었다. 하지만 정신없고 바쁘다는 변명 아닌 변명으로 계속 미루다가 우리 조의 책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책을 읽어보지 못한 채 1학년을 마치게 된 것 같다.사람들이 고전에 대해 하는 우스갯소리 중에 하나로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는 말이 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나도 고전이 좋은 글임은 분명하지만 공대생인 나와는 상관없는 어려운 글이라고만 생각해왔다. 그래서 읽기 쉽고 관심 있는 분야의 책들만 골라 읽는 것이 나의 독서 습관이었다. 그러나 고전세미나라는 강의를 들으면서 어렵기만 하고 이 시대와 맞지 않다는 생각은 많이 바뀌게 되었다. 고전이 나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 만큼 나만의 해답을 찾아 정리하기가 막막했지만 꽤 오랜 시간동안 고민해 보았다.2. 본문우선 고전은 글이 쓰인 당시 사회상을 이해하게 해준다. 작자를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으며, 과학자, 지식인, 시민으로써 자신들이 느끼는 생각과 경험을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달해준다. 그 내용을 전달받은 우리는 그 당시 사회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현재 사회에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지에 대해 생각의 환기를 시켜준다. 예를 들어 에릭 홉스 봄의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책을 보면 다양한 사례를 들어 전통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지식인으로써의 날카로운 시각을 제시하였다. 책을 통해 그 시대에 만연해 있던 만들어진 전통에 대해서도 알 수 있으며 현재에 적용하여 우리 곁에 퍼져있는 전통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또한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현재 2013년 대한민국에 속하여 살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한 평생을 살면서도 많은 경험을 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들이 써놓은 여행 기행문이나 SF 공상 과학 소설을 보면서도 얼마든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지만 고전을 읽음으로써 더 폭넓은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조선시대의 춘향이가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주장을 펼치는 과학자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전혀 겪어보지 못하는 시대사상, 문화적 요소를 경험해보면서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고전은 삶의 기준을 제시한다. 고전이 오랜 세월을 견디고 우리 곁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많은 검증과 비판을 견뎌내고 그만한 가치가 있기에 그 긍정성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사회에서의 문제점을 꼬집고, 해결책을 제시하며 인간이 추구해야할 삶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가르쳐준다. 효, 진정한 사랑, 새로운 생각을 제시하는 용기, 정의 등을 다룬 고전들은 기본적인 도덕성,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 꾸지람을 주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고쳐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하나의 작은 사회라고도 할 수 있는 기업을 경영하는 CEO들에게 있어서도 고전이 하나의 지침서 역할을 한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수없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자신들의 결정이 기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CEO에게도 효율적인 역할을 한다고 한다. 고전은 시대를 뛰어넘어 복잡한 문제 속의 본질을 찾게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그렇다면 고전을 읽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일까. 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고등학생 권장도서 100권의 목록을 나눠준 적이 있었다. 반 이상의 책이 처음 보는 책이거나 이름은 익숙하게 들어보았지만 읽어보지 않은 책들이었다. 예전에 큰 맘 먹고 읽어본 박경리의 토지, 읽다가 끝내지 못한 염상섭의 토지,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위대한 개츠비까지... 재미있게 책에 빠져서 읽었던 기억은 없다. 지금도 권장도서 목록을 보면 분명 논술 학원 같은 곳에서 억지로 책을 읽히거나 요약본은 보며 겉핥기 식의 독서를 권장하고 있지는 않을까하는 우려가 든다. 어렵고 방대한 양의 고전을 읽어낸다고 하더라도 고전 문학 자체에 질려서 다시는 고전을 읽지 않거나 요약본 위주의 독서습관을 갖게 만들 수도 있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몇 번 고전문학을 읽으려는 시도는 해보았지만 결국엔 지루하고 따분한 문학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다. 효율적이고 도움이 되는 독서를 위해서는 독자의 상황과 나이에 적합한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조건적으로 고전의 가치와 훌륭함을 되뇌이며 읽기를 강조할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적합한 경험에 맞게 고전읽기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몇 개월 전에 개봉한 위대한 개츠비를 보러 갔었다. 소설로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지만 영화를 보면서 내가 예전에 읽었던 내용에 이런 면이 있었나 생각도 들고 새로운 부분이 많아서 놀랬던 기억이 난다. 영화를 보고 소설을 찾아서 다시 읽어보았다. 예전에는 재미가 없었지만 이번에는 영화를 통해 어느 정도 내용을 이해하고 봐서 그런지 단숨에 책을 읽었다. 짧지만 몇 년의 나이를 먹으면서 여러 경험을 하다 보니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요소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된 점도 있는 것 같다. 사람은 각자의 나이에 따라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는 정도가 정해져 있으며 독서도 그 폭에 맞춰 진행 돼야 한다. 아무리 좋은 고전이라고 할지라도 아무런 배경 지식도 없고, 깊은 의미를 발견 할 수 없다면 그 가치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요즘에 고전을 활용한 다양한 문화가 발전하고 있다. 영화는 물론이고 연극, 각색된 책등을 찾아보기 쉬워졌다. 고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지만 고전을 현대에 맞추어 다루거나 각색한 작품을 통해 우리는 좀 더 쉽게 고전에 다가갈 수 있고 관심을 가질 수 있으므로 다양하게 고전이 활용되었으면 좋겠다. 고전을 영화화한 위대한 개츠비나 고전을 각색한 방자전과 같이 말이다.
오리엔탈리즘이란 단어를 접해본 적은 있지만 정작 정확한 뜻은 알지 못했다. ‘오리엔탈리즘’ 이란 책을 접해보고 나서야 ‘오리엔탈리즘’ 이란 단어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오리엔탈리즘’ 이란 책을 몇 번이나 다시 읽어보았지만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오리엔탈(oriental), 오리엔탈이라는 단어는 해가 뜨는곳, 동쪽, 동양이라는 뜻으로 알고 있다. 이 책에서는 오리엔탈리즘이란 뜻을 쉽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여러 가지, 여러 뜻으로 설명하고 있다. 동양(East)은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의 동쪽을 일컫는다. 그곳은 처음부터 서양인의 흥미주의 내지 상업주의 및 침략주의의 차원에서 인식되었다. 곧 동양이란 곳은 진귀한 물건을 사고 파는 무역과 착취 및 지배의 대상으로서 인식되었다.‘동양’과 ‘서양’ 이라고 하는 장소, 지역 또는 지리적 구분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서양이라는 그 자체를 하나의 관념이라고 생각한다면 마찬가지로 동양도 또한 사상, 형상, 어휘의 역사와 전통을 갖춘 하나의 관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동양이 서양에 포함되어 있는 것과 또 동양이 서양을 대신하는 것으로서 실현되고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은 오랜 역사와 전통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양이라는 사업은 다양한 종파나 철학, 지혜 등 그 목록이 거의 무한대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다. 서양화된 동양사상, 동양종교, 동양철학 등은 오리엔탈리즘의 일부로 간주되고 있다. 동양학은 동양의 탈을 쓴 서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리엔탈리즘의 해명을 통해 동양에 대한 서양의 인식과 지배를 극복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와 서구 중심사상은 우리시대에 해결해야 할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동양인에 관한 적합한 연구야말로 오리엔탈리즘이다. 그것이 동양에 대한 서양의 사고방식이자 지배방식일지라도 말이다. 동양이야말로 무한한 것을 유한한 형태로 구체화시킴에 적합한 장소라고 생각한다. 동양은 동양이란 그 자체에 모든 동양의 나라들이 포함되는 무대이다. 동양은 하나의 폐쇄된 영역 곧 유럽에 부속된 연극무대로서가 아니라 친숙한 유럽세계를 넘어 무제한으로 확대된 넓은 공간의 무대가 되야 할 것이다. 동야이라고 하는 무대의 나락 저편에는 거대한 문화적인 역사가 저장되어 있고 그 동양이라는 곳 하나하나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풍요한 세계를 나타낸다. 동양은 때로는 이름만으로, 반은 상상 속의, 반은 과장된 지식의 산물이었다. 동양이 서양의 과학에 의해 추월되고 시대에 뒤떨어졌던 것은 인정한다. 영국, 프랑스 등 그리고 특히 미국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제국주의적 강국이다. 서양과 동양을 긴밀하게 엮어 놓은 힘 그리고 강력한 사회 ? 경제적인 힘, 그리고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정치적인 여러 제도, 나아가 그 엄청난 지속력을 가볍게 취급하지 말고 서양과 동양은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