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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자이야기와 인성 국립중앙박물관 관람후 보고서
    서울 특별시에 위치한 대한민국 문화유산의 보고 국립 중앙박물관에 다녀왔다.국내 최고의 박물관답게 상당히 광범위한 범위의 귀중한 전시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나는 도자기를 보러갔는데 도자기를 전시한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방대했다.역사적 흐름을 타고 전시관을 약 네시간 정도를 둘러보았는데, 정말 경이로운 도자기 유물들이 많았다. 설명과 느낀점을 순차적으로 서술하고자 한다.●구석기시대·신석기시대인류의 역사는 흙의 역사이다. 또한 도자기의 역사이다.토기는 1만년 전 인간이 진흙을 구우면 단단해진다는 화학적 변화를 깨닫고 만든 최초의 발명품이다. 다양한 조리방법이 가능해지고, 먹 수 있는 재료가 많아지고, 보관과 운반도 이전보다 손쉬워졌기 때문에 식생활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사람들은 한 곳에 비교적 오래머물며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토기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당시, 인류는 식량이 상하거나 부패하는 문제로 식량을 보관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떠돌아다니면서 식량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토기가 만들어지면서, 유목생활 대신에 정착생활이 가능해졌다. 토기는 식량을 보관하는 도구이자, 당대 인류의 사상이 담긴 예술작품이었으며, 사람의뼈를 담는 무덤이기도 했다. 한반도 신석기시대 토기 겉면에는 점토 띠를 붙이거나 새기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기하학 적인 무늬가 표현되기도 했다. 신석기시대에는 한반도에서는 시기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토기가 만들어졌다. 기원전 8천 년 경 제주에서 최초의 토기가 출현한 이래, 기원전 6천 년 경 동해안과 남해안에서 덧무늬 토기와 누른무늬토기, 기원전 5천 년 경 중서부 지역에서 빗살무늬토기가 등장하였다. 서북, 동북, 중서부, 중동부, 남부 내륙 남해안 등 지역에 따라 생김새와 무늬에 차이가 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무늬가 점차 줄어드는 공통된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되어있다.▶도토리 저장 구덩이(오른쪽사진은 갈판/*이미지출처는 참고)내가 신석기시대 토기 중 눈여겨 보았던 것은 ‘도토리 저장구덩이’이다.신석기인들은 주로 도토리를 많이 먹었지역과 한반도를 주 무대로 기원전 15세기 무렵 시작 한다. 일상생활에서는 주로 민무늬토기, 간석기, 목기가 사용되었고, 청동기는 권위의 상징물이나 의기로 일부만이 소유할 수 있었다. 벼농사 등 농업이 발달하면서 오늘날 농촌과 비슷한 대규모 마을이 생겨났고 집단 내에서는 사회적 계층화가 이루어졌다. 청동기시대에는 농경을 바탕으로 정착 생활이 본격화하면서 큰 규모의 마을들이 생겨낫다. 주로 움집에서 살았으며 논과 밭, 물길, 우물, 마을 전체를 두른 도랑, 울타리 등이 발견되어 본격적인 농경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청동기시대에는 특히 토기 겉면에 무늬가 거의 없는 민무늬토기를 사용했다. 굵은 모래나 돌가루를 섞어 다소 거친 진흙으로 빚어 한댓가마에 구웠으며 바닥이 납작하고 적갈색을 띤다. 토기의 아가리에는 간단한 선무늬나 구명무늬, 점토띠 등이 있는 경우가 있으며 토기 겉면을 잘 문질러 검은색이나 붉은색을 낸 것도 있었다고 한다.▶가지무늬 토기 덧띠무늬 토기(경기 화성 발안리)◀토기가 전보다는 둥그런 형태로 매끄러워졌지만 아직까지는 원시의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가지무늬 토기는 이렇게 농작물을 토기에 그려 넣음으로 심미적인 효과도 더했다. 내 눈에는 검은 재로 대충 칠해놓은 것 같이 보였는데, 가지무늬라고 해서 다시 보았더니 정말 가지무늬처럼 보인다. 실제로 보니, 표면이 거칠거칠한 것으로 보아. 유약을 바르지는 않은 것 같다.덧띠무늬 토기에는 아가리에 덧띠가 둘러져 있어 아름다움을 더한다▶그 외 토기들●고조선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건국되었다.고조선의 대표적인 토기(미송리식 토기)이다. 평안북도 의주 미송리의 동굴 유적에서 처음 발견되어 ‘미송리 식’이라고 부른다. 이 토기는 납작한 바닥에 아가리가 점차 벌어지는 형태로 통통한 몸체에 띠 모양 손잡이가 마주보게 달려있다. 주로 돌널 무덤에서 출토되어 청천강 이북으로부터 랴오닝, 지린 지역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같은 시기 청천강 이남 한반도 서북 지역에서는 팽이 모양식 물을 끓이거나 데우는 그릇인 동정, 동부등의 기형이 출토 되었다.▶새 모양 토기(경북 경주 사라리)고대 사람들은 새가 봄철에 곡식의 씨앗을 가져다 주거나,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짐과 동시에 죽은 이의 영혼을 천상으로 인도한다고 하는 이른바 조령신앙을 믿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시대부터 새를 형상화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삼한의 유적에서는 오리모양 토기와 새모양의 목기, 새무늬 청동기 등 다양한 형태의 유물이 출토되어 새와 관련된 의례나 제의가 행해졌음을 알수있다고 한다.내가 청동기시대에 정말 신기한 토기라고 느낀 것은 바로 이 토기들이다.오리와 새 모양의 토기들인데 실물크기와 흡사하고 놀랄 만큼 정교하다.어떻게 오리의 부리를 저렇게 예쁘게 조각해놓았을까?▶오리모양토기 (경북 경주 덕천리 포함)오리모양토기도 역시 정말 너무 신기했다. 오리 몸통속이 비어있어 술이나 액체를 따르거나 담는데 사용하였다고 추정한다.●고구려·백제·신라▶글자가 있는 청동그릇 경주 호우총(고구려)▶액체를 데우는 그릇 청동(백제) 양모양 청자(백제)◀백제인들이 벌써 액체를 데우는 그릇을 만들어 국을 웠을것을 생각하니 놀랍다.오른쪽의 양모양청자도 상당히 정교하고 예쁜 모양새를 하고 있다.▶세발접시(백제 4~5세기 서울 물촌도성) 접시(백제 7세기 충남 부여 관북리)◀오른쪽 하얀 접시를 보아하니 당시에도 하얗게 백자토로 만드는 기술이 있었나 보다.실제로 보면, 완전 백색은 아니고 약간 누런빛을 띠는데 아직 완전하게 백색으로 만들지 못하는 한계에 봉착했던 것으로 보인다.●가야가야는 높은 온도의 밀폐 가마, 고속 회전 물레 등 더욱 발달된 토기 제작 기술로 회청색의 아주 단단한 토기를 만들었다. 가야 토기는 곡선적인 다리를 가진 굽다리접시와 다양한 형태의 그릇받침이 특징적인데 높은 온도에서 구워 대체로 밝은 회청색을 띠고 있다.금다리접시, 그리고 두귀가 붙은 항아리가 등장한다.▶두 귀 붙은 항아리 그릇받침◀왼쪽 항아리의 출토품명이 ‘두 귀 붙은 항아리’라고 한다. 진 글이나 연호와 같은 글자를 새기기도 하였다.신라는 중국 등 주변 국가뿐만 아니라 이슬람등 서역의 영향을 받았다.유리그릇, 장식보검, 뿔모양 잔, 상감 유리구슬 등은 지중해주변과 서아시아 지방에서 출토되는 것과 형태나 제작 기법이 비슷하다. 이 유물은 실크로드 또는 바닷길로 신라에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굽다리접시 은잔◀신라의 출토품들은 정교하고 섬세하기로 유명한데 역시 아름답다.▶청자 거북이 모양 주전자거북이가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모양의 주전자이다. 거북이는 음악으로 새겼고, 연꽃은 양각으로 표현하였다. 차분한 비색 유약을 입혔다.●고려고려는 송으로부터 각종 서적과 예악, 의학기술 등을 들여와 고려의 인쇄문화와 의료 및 각종 학문, 사상과 의례를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도자기,비단,약재,악기.차.향료,상아 등 지배층을 위한 사치품을 수입하고, 금,은,구리,마포,화문석,나전칠기,종이,금은 세공품등을 송에 수출하였다. 선진 문물의 수용이 주목적이었으며 송과의 외교 관계를 끊었다 회복하기를 반복하는 외교를 펼쳤다.한국에서 자기가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 초 무렵이다. 그동안 쌓아온 토기 제작 기술과 중국 월주요 자기의 영향으로 청자와 백자 같은 자기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초기의 가마들은 고려의 수도 개경(현재의 개성)에 가까운 중서부 지역에 있었다.11세기에 접어들면서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 두 지역을 중심으로 청자가 제작되었고, 초기에 비해 제작기술이 발달하였다.고려자기는 11세기 중엽부터 눈에 띄게 발전하여 12세기에는 절정의 경지에 이른다.특히 청자는 다양한 무늬로 아름답게 꾸며졌으며, 그릇과 같은 일상용품을 비롯해서 기와나 타일 같은 건축자재까지 만들어진다.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유약이 은은한 비취색을 띠는 '비색청자'의 완성과 도자 예술의 새로운 경지를 연'상감'기법의 개발이다.고려는 13세기에 중국 원나라와 전쟁을 오래 치르면서 나라 안 사정이 매우 어려워 졌는데, 이런 상황은 청자를 만드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비색 청자의 우아한 형태와 아름 재난이 없어지기를 기원 하였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도교는 불교처럼 조직적인 대중 종교로 발전하지는 않았으며, 민간에서 수명 연장이나 복을 비는 도교적 습속을 지켜나가는 정도였다.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도가 사상과 도교적 양생수련법으로 심신을 다스리며 신성과 같은 탈속의 경지를 지향하는 풍조가 많았다.▶도교에 심취한 시인을 노래한 시가 새겨진 청자병신선 세계를 찾아가는 배를 새긴 거울◀왼쪽 출토품은 몸체 양면에 시를 흑상감한 조롱박 모양의 청자 병이다.몸체 전면에 연꽃 넝쿨무늬를 양각하고 굽 위쪽에도 양각으로 두 겹의 연꽃잎무늬를 둘렀다. 시에는 봄날 주흥에 겨운 하지장의 술병을 언급한다. 하지장은 도교에 심취하여 술과 풍류를 즐긴 것으로 유명한 당나라의 시인이다. 시 내용이나 병의 생김새로 보아 술병으로 썼을 가능성이 높다. 영화 ‘취권’에서 사부님이 들고다니는 막걸리병과 흡사하다.오른쪽 출토품은 ‘황비창천’이라는 글이 새겨져있는데 ‘밝게 빛나는 장성한 하늘’이란 의미로써, 신선이 사는 별 천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풀이 된다고 한다.▶흑유병 꽃무늬 접시◀왼쪽의 병은 철 함유량이 100% 일듯 하다. 심플하게 검은색으로 아무런 무늬도 넣지 않았는데 오히려 무늬를 넣은 자기보다 훨씬 아름답다. 곡선이 매끈하게 잘빠진 저 모양이 마치 검은 유리구슬을 연상케 한다.오른쪽은 말 그대로 꽃무늬 접시이다. 저 많고 섬세한 꽃무늬를 새기느라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았을 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조선▶폐비 윤씨의 태자 밥상, 그릇, 숟가락과 젓가락 ◀ 오른쪽 출토품을을 보면, 조선시대에 이르면서 토양 속 철분을 제거하는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순수한 백색의 색깔을 구현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으로 보인다.밥상에 사기가 갖추어진 작은 규모의 상차림이다. 밥상은 60여 종으로 분류되며 각각 명칭과 구조가 다르다. 지역에 따라 명칭 역시 다르다.●발해발해의 토기는 크게 고구려계와 말갈계로 나누어진다. 고구려계는 흑색이나 회색을 띠며 높은 온도에서 구운 것으로, 표면은 매끈하게 있다.
    예체능| 2014.11.06| 15페이지| 2,000원| 조회(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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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자이야기와 인성 레포트
    1. 느낀점 및 핵심줄거리사실 나는 ‘도자이야기와 인성’이라는 강의를 듣기 전까지는 도자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관심이 없었기에 아는 바도 전무했다. 그러나 도자기의 정의에서부터 도기와 자기의 차이점, 도자기가 만들어지는 과정, 유약의 용도 등 도자기에 대해 간단하지만 정확한 지식을 얻은 후로는 도자기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아침점심저녁으로 매일 같이 밥을 먹어도 신경도 쓰지 않던 밥그릇을 들여다보고, 그 모양새를 한번 더 관찰해보게 되었다.특히나 이 강의시간에 다큐멘터리를 본 이후로는 도자기가 단순히 그릇을 담는 용도의 물건이 아니라, 전 세계의 문화권과 생활에 넝쿨처럼 얽혀있는 역사의 총체. 그 자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온 문화의 산물들이 유기적으로 도자기와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 다큐멘터리의 주제는 ‘도자기가 가르치는 문명에 관한 이야기’이다.1편에서는 ‘흙으로부터’로, 이집트, 중국, 중동지역에서 시작된 도자기의 기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인류가 정착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식량을 보관하기위한 용기가 필요했다.‘흙’은 인류가 선택한 최초의 재료로써, 가볍고 단단하며 물이 새지 않는 그릇이였다. 그러나 물을 흡수하기 때문에 쉽게 부서졌다. 그래서 사탕수수즙을 바르고, 표면을 문지르거나 덧바르는 방법과 함께 원시적 노천소성 방식으로 600~800'c에서 구워냈으나, 흙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우르왕묘에서 발견된 돌그릇은 흙의 약점을 극복하고자 돌을 재료로 하는 새로운 시도였으나, 재료가 구하기 어렵고 한꺼번에 많이 만들 수 없는 단점이 있었다.즉, 인류의 고민은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고, 물을 흡수하지 않으며, 가볍고 단단한 토기를 어떻게 만드는가’ 였다. 철분함량이 많아지게 되면, 토기는 더 단단하고 검게 변한다. 히타이트는 이런 특성을 지닌 철을 다룰 수가 있었다. 첫째, 땔감이 풍부했고 둘째, 일반적으로 1100'c 이상의 열이 흙에 가해지면 토기는 무너지기 시작하는데 비해 히타이트는 높은 온도를 견발점이 되었다. 나뭇재는 태토와 화학반응 하여 중동의 소금, 소다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중국은 자기의 기술을 최초로 개발했다.중국에서는 고령토를 발견하게 된다. 고령토는 희고 얇으며 접착력이 강하며, 또한 가장 높은 온도에서 자화(1300'c)가 이루어지는 태토가 된다. 1300‘c를 올리기 위해 가마를 개조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데, 그 전에는 1300‘c까지 올릴 수 없었기 때문에 도기의 단계에서에서 머무르게 된다.그러나 중국인들은 곧 자기태토를 만들어낸다.높은 온도 유약의 화학적 변화로 태토의 성질이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1250'c에서는 흙의 성질이 완전 변하면서 자화현상이 발생한다. 그 과정에서 동아시아의 독특한 발견이라고 하는 ‘자연유 현상’이 인상적이었다.2편에서는 ‘신비의 자기’로 신비의 자기가 대륙과 바다를 건너 세계를 관통한 이야기이다.당시, 중국이 도자기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1300‘c이상의 소성시킬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중국은 송대에 이르러서는 생활환경이 변화한다.2모작이 가능해지면서 쌀 수요가 증가하게 되고 1억 인구를 부양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자기그릇의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이때 가마의 길이가 매우 길며 소성실만해도 10개~12개에 이르며, 한번에 1만 5천개~4만개의 도자기를 구울 수 있었다고 한다.또한 차를 많이 재배하게 되면서 도자기는 점차 대중적으로 변하게 된다. 송대에는 국가의 관리아래 차의 재배가 이루어졌다. 차의 확산과 함께 자기도 대량으로 만들어졌다.당시에 고품질의도자기는 사치품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필수품이 되었다.상류층이 사용하는 자기는 국가가 직접관리 했다. 황실과 국가기관이 만든 자기는 오대관요에서 만들었다.여요자기는 청자의 대표다. 균요자기는 현대자기의 변화를 능가하는 유약의 변화를 추구하였다. 가요는 흙과 유약의 팽창계수를 달리해 불가사의한 무늬를 얻었다.정요는 5대관요 가운데 유일한 백자였다. 우아한 유백색 음각이나 양각을 그려 넣었다., 고려청자는 그 아름다움에 있어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자기를 만들 수 있게 된 고려는 독특한 비색의 청자를 발전시켰다.▲ 상감청자12세기 중엽 세계 도자사상 청자장식법을 개발했다.표면에 문양을 음각한 뒤 백토를 채워 넣는 상감기법을 채택하였다.중국에서의 자기는 실용성에 그 아름다움이 더해져 최고의 명품이 되었다. 또한 청자의 발명이 이루어지면서 당시 국제교역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맡았던 이슬람과 중국의 문명의 거리가 좁혀지게 된다. 마노를 섞은 여요자기, 청자 등 여러 도자기가 교역상품이 되었다.자기는 9세기이후 실크로드의 중요한 상품이었다.자기를 육로로 수송할 때, 안전하게 포장하기위하여 진흙을 사용했다.그러나 육로수송의 대안책으로 바다로 수송할 때는 짚으로 포장하였다.짚은 항해도중 싹을 틔움으로써 충격을 흡수하였다.3편은 푸른색의 청화백자 탄생에 관한이야기이다붓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은 불에 타 사라지지 않는 푸른색 안료덕분이었다.푸른색 물감과 식물의 연속무늬는 중국의 문화가아니라 이슬람 문화의 산물이었다.청화백자는 여러 문명의 요소가 겹치며 700년에 걸쳐 세계 상품이 되었다.원나라는 칭기스칸의 후계자 쿠빌라이 다민족 국가다.몽골인의 흰색을 가장 귀하게 여겼다. 이 세상에서 어머니의 흰 젖보다 더 선한 것은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송에서 원으로 바뀌면서 왕실에서 사용하게 된 그릇 또한 청자에서 백자로 바뀌었다. 특히, 징더젠은 800년간 세계 자기산업의 메카였다.원이 징더젠을 자기의 생산지로 택한 이유는 그 흙이 매우 훌륭하기 때문이다.백자는 고령토(카올린)은 징더젠에서 유래되었으며 징더젠 고령토는 상급 3%만 써도 만년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양이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고령토는 황실 외에는 쓸 수가 없었다. 징더젠 초기백자에는 악간의 철분이 섞여 있어서 은은한 푸른색을 띤다.원의황실은 이 푸른 기를 없앤 백자를 만들도록 명령했다.▲ 초기의 은은한 푸른색을 띠는 백자동시에 백자의 흰 바탕을 푸른색으 그리고 그것을 이슬람으로 가져감으로써, 스스로가 기획, 유통, 소비한 것이다. 이슬람은 징더젠의 흙과 같이 자기를 만들 수 있는 흙이 없기 때문에 중국에 주문했다.▲ 청화백자이슬람이 나타나기 전, 중동지역 사람들은 금,은을 즐겨 사용했다.그러나 이슬이 들어선, 9세기경부터 이슬람은 금과 은의 사용을 제한했다.이에 따라 금 식기 사용이 금해지자, 금, 은그릇 주로 사용했던 상류층은 그것을 대신할 그릇을 찾기 시작했다. 유리나 도기에 금색을 입히는 러스터기법을 사용한 그릇이 그것이다.러스터 그릇에는 푸른색을 넣기도 한다. 그 푸른색 안료의 원료는 코발트이다.▲ 러스터 기법의 그릇자기가 구워지는 1300도 이상에서 견딜 수있는 안료는철과 동 코발트 뿐이다. 페르시아산 코발트가 도입되자 백자표엔에 바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철화백자코발트가 전해지기 전까지는 자기에 어떤 그림도 그릴 수 없었다.하지만, 이슬람 사람들은 중국인들에게 청화백자의 모양과 물감과 무늬를 모두 전해주었다.▲ 이슬람 자기와 중국 자기의 비교사진4편은 청화의 제국에 관한 내용이다.이번 이야기는 콜럼버스, 마르코 폴로와 같이 처음으로 세계로 눈길을 돌린 여행가들로부터 시작한다.15세기 유럽은 아시아로 가는 바닷길을 찾았다. 콜럼버스가 그 첫 시작을 열었다.마닐라에서 스페인배가 돌아오면 시장이 열렸는데. 교역품 중 청화백자의 양이 압도적이었다. 또한, 16세기 청화백자장식은 200년동안 스페인, 멕시코 귀족들에게 열병처럼 번져나갔다.중국에는 평범한 취급을 받던 청화백자는 특히 재력가들의 저택을 장식하는데, 마치 보석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또한 유럽에서 궁전을 설계할 때 마지막 방이 모두 자기로 장식하였다. 북유럽 왕실도 중국자기에 눈뜨게 되고 네덜란드는 중국무역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되자, 인도양의 항로을 하나씩 장악하면서 아시아무역의 주역이 네덜란드로 바뀌게되었다. 특히 동인도회사가 그것을 증명해주는데네덜란드의 인구가 200만명인 것에 비해 17-18세기에 6천만점이상의 어마어마한 도자기5편은 18세기 자기란 보물을 만들려했던 유럽과 아시아에 관한 이야기다.델프트 도자기는 네덜란드의 상징가운데 하나다. 델프트 도자기는 중국의 청화자기를 모방하며 시작했다. 도시를 재건하면서 도기공장을 만들게 되었는데 이윽고 유럽도기 생산의 중심지로 변모하게 되었다. 그러나 도기의 단계에서 머물렀다는 한계가 있었다.▲ 중국자기와 델프트 도기의 비교중국은 전쟁 때문에 자기생산이 불가능해지자 네덜란드 무역상들은 도자기를 사기위해 일본 규슈로 이동했다. 나가사키는 새로운 무역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자기를 만들 수 없었던 일본은 임진왜란을 게기로 만들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은 일본이 조선의 기술과 도공 1000여명을 포로로 데려감으로써, 자기생산기반이 완전히 무너졌다. 일본은 전쟁이 일어난 지 30여년 만에 유럽의 주문을 받을 만큼 커졌다. 곧 채색자기를 만드는 기술까지 도입되어 일본의 자기산업은 꽃피게된다.▲일본의 오채자기한편, 유럽에서는 자기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연금술사가 그 주체다.중국 자기의 비밀이 흙에 있다고 보았다.고령토(카올린)을 발견했으나 장석성분(접착제)이 부족하여 자기를 만들지 못하였다. 이윽고 부족한 것이 장석인 것을 알아냈다. 유럽에서도 자기생산이 가능하게된 것이다. 마이센 자기는 중국자기는 중국자기보다 약 2배 넘는 가격에 팔렸으나, 중국자기를 모방이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그러나, 유럽 세브르에서는 금채장식을 사용한 고유의 자기가 완성되었다. 신고전주의의 여세를 반영하였다. 폼페이 발굴이 유럽이 아시아에 대한 열등감을 벗어나게 해주었으며 새로운 디자인 양식을 만들어냈다. ‘재스퍼웨어’가 바로 그것이다.6편은 문명을 넘어 아시아와 유럽이 서로의 과학과 예술을 주고받으며 발전시킨 현대도자에 관한이야기다.프리스틀리, 제임스 와트, 웨지우드는 영국의 산업혁명을 이끈 대표적 인물들이다.웨지우드는 전기기술을 도기공장에 도입함으로써 도기의 대량 생산을 가능케 했다. 도자기 산업은 산업혁명을 가장 선두에서 이끌었
    예체능| 2014.11.06| 10페이지| 2,000원| 조회(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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