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는 여론 형성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국민들은 미디어를 통해 사회적 쟁점이나 이슈등을 접하게 되며 자연스럽게 미디어가 제공하는 의견을 수용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만큼 국민들이 미디어를 신뢰하고, 사실적인 정보만을 제공하는 매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에 미디어는 현대 민주사회에서 국민의 신뢰감을 바탕으로 하여 대중의 사고를 통제하여 여론을 형성하고, 개인의 정치적인 영역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미디어의 민주화란 특정한 계층이 일방적으로 미디어를 통해 국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과 미디어가 쌍방향적인 소통을 하며 미디어에 대한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활성화 되는 것을 말한다. 미디어의 민주화에 대해 저자 노암 촘스키는 민주주의에서 국가운영에 영향을 주는 권력기관의 힘이 언론기관의 영향으로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표현한다. 미국의 경우를 예를 들자면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미국에서 미디어가 국가권력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으며 이는 정부의 권위를 감소하게 만들고 전통적인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유지를 위해 미디어의 정치참여, 일반 민중의 정치 참여가 배제되어야 하고 미디어의 일방적인 소통구조를 무너뜨리려는 시도에 대한 비판을 한다.만약 국가가 미디어에 대한 민중의 참여를 완전히 배제시킨다면 언론이 국민을 조종하는 대중조작 현상이 팽배한 사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민주주의를 행하는 국가에서 국민의 정치참여는 당연시 되는 일이기 때문에 정치무대에서 국민을 강제로 배제할 수 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민주사회에서 국가가 권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여론을 국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국가는 특정 사실에 대한 해석을 미디어를 통해 국민들에게 알리고 인지시켜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해석을 미묘하게 변형시켜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만드는 것이 언론의 대중조작인 것이다. 때문에 미디어가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일방적인 해석은 대부분 특정한 사회적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제공된다.저자 촘스키는 특정 계층의 조작된 목소리만 전달하는 미디어의 권력구조의 개혁을 위해서는 국민 스스로 변혁하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미디어가 이미 조직화되어 국민들의 개혁 의지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어 나갈 수도 있지만 국민의 저항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미디어의 부정, 부패를 알게 되더라도 사실을 묵인하고 무관심적인 태도로 방관하기 보단 이러한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면 미디어에 의한 희생자를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국민의 이익과 관심을 반영하는 상호 소통의 수단을 개발하고, 국민 스스로 미디어의 의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교육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태도가 필요하다.미디어의 민주화를 통해 보다 의미 있는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정책 결정권을 국가와 기업 연합에서부터 분산시켜야 한다. 하지만 이는 자유주의자들이 의미하는 고전적인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데 이러한 갈등은 공동체 연대, 환경에 대한 관심, 독립적인 사고, 삶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민주적 참여 등의 모든 부분과 관련되어 있는 대중운동에 전망에 따라 전개될 것이라고 예상되며 현대 민주 사회의 언론의 참된 역할의 회복에 대한 저자의 소견으로 마무리 짓고 있다.미디어와 권력이 유착하기 시작한 히틀러의 시대부터 지금까지 정치와 미디어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을 떼어 놓는 것은 불가능한 구조로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미디어가 나아가야 할 미디어의 참된 역할이란 미디어가 정치와는 독립적인 매체로 사회의 정보와 사실들을 꾸밈없이 국민들에게 전달해 주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특정한 계층의 이익을 위해 그들의 사상과 생각을 전달하는 통로가 아닌 국민들을 위한 객관적인 사실만을 전달하여 사실에 대한 해석을 국민 스스로가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국민 스스로도 미디어가 제공해주는 보도를 그대로 수용하기 보단 비판적인 의식을 가지고 미디어를 바라보는 시각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죽음에 대한 철학적 이해Ⅰ. 서론모든 생명체에게 가장 강력한 무의식적인 본능은 죽지 않고 계속 살아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는다는 것은 생명체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이다. 재산이 많든 적든, 머리가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자신이 죽어서 존재가 소멸해 버린다는 두려움은 한 개인에게, 혹은 집단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또, 이러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인간은 죽지 않는 영생을 갖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기도 한다. 사람이 죽은 후에도 영혼이 다시 찾아와 부활하여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미라도 이러한 영생을 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 태어난 생명체는 모두 예외 없이 죽음을 맞게 된다. 문제는 죽음 그 후의 이야기이다. 인간이 죽은 후에 그 영혼은 어떻게 되는지, 사후의 세계가 정말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지금 살아있는 인간들에게는 쉽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다.Ⅱ. 본론1. 죽음의 본질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물리적인 차원에서는 제대로 기능하던 육체가 육체적 조직이 파괴되어 더 이상 그 기능을 하지 못할 때 그 사람은 죽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몸을 움직이고, 심장을 뛰게 하고, 숨을 쉬는 ‘신체적 지능’과 생각과 인식 등을 하는 좀 더 고차원적인 ‘인지기능’이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둘 중 어떤 기능이 멈출 때 죽게 되는 것일까? 이 두 가지 기능은 동시에 혹은 거의 동시에 중단된다. 육체가 기능을 멈출 때 인지도 기능을 멈추게 되고 이 순간이 바로 죽는 때 이다. 하지만 특수한 상황 즉 고차원적인 인지 기능이 마비되는 질병에 걸렸지만 신체적 기능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는 어떨까? 인격적 관점에서 볼 때는 비록 신체는 살아있지만 내 인격을 가진 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때 내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인격을 상실한 순간 죽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육체 관점에서 보면 내가 살아있기 위해서는 나의 육체를 가진 누군가가 존재해야 하며 내 인격은 없어도 상관이 없다. 이러한 육체적 관점에서는 신체적인 기능이 정지하고 완전히 죽었을 때도 내 육체인 시체가 남아있다면 내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나는 죽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육체적 관점에서 나는 내 신체 기능이 완전히 멈춘 후에 죽게 된다. 그러나 그 전에 인지의 기능이 완전히 멈출 때 인간으로서의 나의 존재는 멈추게 된다. 물론 이 때도 나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살아있고 존재하고 있지만 인간으로서 존재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2. 영혼은 영원히 존재 하는가육체가 죽고 나서도 영혼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영혼이 육체적 죽음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으며 불멸의 존재라고 확신할 수 있나?’라는 물음에 소크라테스는 형상의 본질에 기반을 둔 형상은 물리적인 존재가 아니며 이런 사실로부터 우리의 이성은 그 자체로 비물질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형상이 물리적인 존재가 아니라면 육체와 같은 물리적 존재는 결코 이를 이해할 수 없지만 이성은 형상을 이해할 수 있으므로 비물질적인 존재다. 즉 이성은 영혼과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이 주장만으로는 인간의 영혼이 육체적 죽음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영혼이 존재한다고 해서 영원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육체적 죽음과 동시에 영혼도 그냥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일이고 영혼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세상 만물이 소멸 가능한 존재라는 점이다. 반대로 소멸이 불가능한 존재도 있을까? 플라톤은 소멸이 불가능한 존재에 대해 형상을 떠올렸다. 형상은 보이지도 않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는 단순한 존재이기 때문에 변화하지도 소멸하지도 않는다. 또한 소크라테스는 보이지 않는 것은 소멸 가능하지 않고 영혼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영혼은 소멸 가능하지 않은 존재이며 불멸의 존재라고 결론을 지을 수 있다. 영혼은 소멸 불가능하거나 거의 그런 존재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소멸 불가능한 존재이다. 영혼이 소멸 불가능한 존재라는 말은 곧 영혼 불멸의 주장이다.3. 영원한 삶인간은 죽는다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렇다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되는 영생은 과연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박탈 이론에서는 내가 죽지 않는다면 삶에서 더 많은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으므로 영생은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삶이 주는 축복이 하나도 없는 경우를 가정해보면 삶에서 모든 축복이 사라져버렸으므로 죽음으로 인해서 내가 가지고 있거나 누리게 될 어떤 좋은 것도 빼앗아가지 못한다. 즉 죽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앞으로 펼쳐질 삶이 전체적으로 좋은 것일 때만 죽음을 부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앞으로의 삶이 고통스럽기만 하다면 죽음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고통스러운 삶을 끝없이 살게 되는 영생이 더 좋지 않은 것이다.
빈곤에 도전하는 기독교Ⅰ.서론빈곤은 시대와 나라를 불문한 세계 공통의 사회문제이다. 이러한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특히 사회복지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문제이다. 옛날에는 빈곤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파악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국가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의 구빈법을 시작으로 기독교 사회복지 사업을 개혁하고, 실천한 루터와 칼빈 등 빈곤 혹은 가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왔다. 이웃을 가장 잘 섬기는 것이 바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인 사랑이며 복음화이다. 신구약을 막론하고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을 두둔하셨다. 또한 예수의 모든 가르침 속에는 부와 재물에 대한 경계와 하느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 그리고 가난한 자들에 대한 우선적인 관심이 나타난다. 따라서 교회도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야하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나눔을 실천하고 자선을 베푸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크리스천들의 임무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기도 하다.Ⅱ.본론 (요약)1. 빈곤과 가난한 사람들빈곤, 무지, 질병, 부정부패는 20세기 사회적인 문제이며 사회악이라고도 규정된다. 그중 무지는 빈곤에서 오는 것이고 또 빈곤은 무지의 결과라고 본다. 사회에 한 구석에 빈곤이 자리 잡고 있는 한 그 사회는 결코 평등하지 못하다. 또 사회 정의가 무너진 사회에서 평등이나 자유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빈곤이란 생활에 있어서 물질적 필요에 대하여 부족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빈곤은 살아나갈 수단을 영영 갖지 못하는 국민이나 집단을 의미하는 집단적 빈곤, 순환적으로 닥쳐오거나 일시적인 빈곤을 의미하는 순환적 빈곤, 개인이 가진 어떠한 원인 때문에 불우한 처지에 놓인 개인적 빈곤이 있다. 그렇다면 빈곤하다는 것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빈곤이 어떤 유형이든 건강을 유지하고 이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1년 수입에서 보다 낮은 선에 속하는좁혀야한다. 둘째, 그들이 천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는 그들의 외모로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나의 인격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들의 근원적인 것에서 그들에게 응답해야 한다. 셋째, 빈곤한 자들이 갖는 적의심에 대해 우리는 그들이 그런 심리상태에 있을지라도 그들을 사랑해야하고 그들의 적의에 대해 크리스천의 책임들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넷째, 그들이 싫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선 우리는 그들이 싫어지지 않고 사랑할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 사랑을 창조해나가야 하고,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참사랑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2. 현실로서의 빈곤빈곤의 원인은 무엇일까? 빈곤의 원인에 대해 오르나티는 ①동기의 결핍, ②지식의 부족, ③패기와 야심의 결핍, ④특정한 가족구성의 사회적 특징이 빈곤의 원인이 된다고 간주하였다. 또한 가가와 도요히꼬는 일본 노동자들의 빈곤원인을 ①음주, ②병, ③부상, ④생활의 불안정, ⑤사회제도의 결함이 원인이라고 지적하였다.그렇다면 왜 우리나라는 못사는가? 우리나라는 전쟁, 남북분단 등의 여러 사건들이 있었지만 다른 나라들을 살펴보면 이것은 빈곤의 원인이 되지 못한다. 이에 대해 차지철은 “우리의 빈곤의 원인은 없고 부족해서가 아니라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또한 조영식교수는 우리가 못사는 이유는 경제적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상태에서 기인하며 정신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들을 갖추지 않고 육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지 않는 소극적인 삶이 우리의 빈곤의 원인이 된다고 보았다.농촌에서 빈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교회는 어떠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인가? 우선적으로 교회는 예배시간 이외에는 교회를 학교로 생각하고 농민들을 가르치고 교양을 높이는 일에 힘써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의 지도자들은 먼저 실력을 갖추고, 잘 사는 시범을 보여주어 그들이 뒤따를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건 농촌 교회 우리나라가 빈곤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방안을 조영식 박사가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① 국민이 각자 주체성을 확보하여 자활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② 선의의 생활을 바탕으로 관용, 봉사, 협조해야 한다.③사회풍토를 개선하여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사회악을 제거해야 한다.④불리한 자연적 요소 등을 창의성과 기술의 습득으로 극복해야 한다.⑤국가의 부흥을 다짐하는 결의를 가지고 진취적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결국 국민이 잘 살고 부유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국민 각자의 실천력과 국가 지도자들의 지도력, 빈곤으로부터 국민을 구출하기 위한 시책 및 실천력이 요구된다.3. 빈곤과 교회창세기 3장, 4장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가인에게 세 가지 질문을 하셨다.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가인아 네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네가 무엇을 하였느냐?”가 그것이다.우선 첫 번째 질문 “네가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은 하나님이 아담을 향하여 아담이 어디에 있는지 즉, 지리적인 위치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 보면 네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은 네가 어떠한 형편과 처지에 있느냐는 질문도 된다.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어떠한 형편에 있느냐는 질문인 것이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생존의 의미가 있는 것이고 하나님과의 인간과의 관계에서 인간이 가져야 할 존재 양식은 신앙의 자세이다. 즉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 절대적 복종,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두 번째 질문인 “네 동생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는 동생 아벨을 죽인 형 가인에게 한 질문으로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한 인간이 지녀야 할 존재 양식에 대한 질문이다. 타인을 나에게 물으시는 것으로 즉 인간은 타인에 대해 책임이 있고 하나님은 그 책임을 추궁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네 이웃이 지금 어떠한 처지에 있고 너는 네 이웃에 대해 어떠한 책임을 다했느냐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과 같다. 즉 이웃과 나와의 관계에서 나의 존재 방식은 이웃을 사랑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세 번째 질. 하나님은 개인의 영혼을 구원하시는 주이신 동시에 모든 국민, 인종, 제도 등의 일을 주관하신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 또 우리는 복음을 선포하시고 주린자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병자를 고치는 일을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활을 본받아야 한다. 사회의 변혁과 개인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실천한다면 그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봉사이며 그를 증거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웃의 욕구에 부응할 수 있는 행동을 영도하며 구체적 공헌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사회 복음이란 기독교가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후 등장한 용어이며 산업 혁명 이후 사회생활 특히 경제생활에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또한 영국의 사회 복음 운동은 찰즈 킹슬리에 의하여 적극성을 띠게 되었고 20세기 초에 이르러 사회 복음은 미국에 있어서 가장 전형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미국에 있어서 사회 복음 운동의 기초는 하나님의 나라 건설,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왕국은 인류의 자연적 발전에 의해서는 시작될 수 없고 구제의 힘은 하나님으로부터 인류에게 주어지는 것이며 사회를 하나님의 나라로 변혁하는 에너지로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또한 라우센부쉬는 교회는 가족이나 사회의 여러 조직과 병립하는 하나의 사회제도라고 보고 하나님의 나라는 이 가족, 조직, 국가들 중에 있으며 그것들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라고 보았다. 즉 사회 복음은 곧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는 복음이며 그 나라의 생명인 것이다.책임사회란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제 1차 WCC대회에서 크리스천의 사회적 책임의 지침과 목표를 제시하기 위하여 사용한 말이다. 구체적인 규정은 인간은 정치적 목적이나 경제적 목표에 대하여 책임을 진 책임적인 존재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자유한 존재로 창조된, 그리고 그 책임을 위해 부름을 받은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책임적인 활동의 가능성을 박탈하는 국가, 사회의 경향은 하나님이 인간을 향한 뜻과 구원 가지 성서적 신앙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첫째, 천지를 지으신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므로 다른 신이란 있을 수 없고 만일 있다면 그 신들은 우상인 것이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며 자연의 법칙을 질서 있게 하시며 인간과 사회 및 국가 민족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신다. 또한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고 지금도 구원의 역사를 하고 계신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시간적인 순서가 있는 것이 아니며 인간과 우주의 역사를 통하여 시시각각으로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다. 둘째,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과 피조물의 세계에는 등급이 있다. 하나님이 지은 모든 것은 등급이 있는데, 하나님은 인간을 모든 물질과 동물보다 높은 차원에 놓이도록 창조하셨으며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지으셨다. 이는 인간의 윤리적 행위에 성서적 근거를 부여하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 이하의 것들을 섬기면 안 될 뿐만 아니라 인간 이상의 존재에 대하여 불경하거나 훼방해서도 안 된다. 그렇게 할 때 인간은 본래적 성격에서 이탈하는 것이 된다. 셋째, 인간은 공동체 내에서 지음을 받은 것을 우리는 믿는다. 인간은 고립된 개인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며 ‘공동체로서의 인간’이 인간 창조의 원리이다. 즉 사람이 하나로, 홀로 있을 때에는 이미 인간이 아닌 것이다. 넷째, 우리는 인간이 이중적인 요소, 육신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믿는다. 인간의 육신은 정신을 담는 그릇이지만 정신적인 면이 육신적인 것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신적인 것이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이지 가치가 있다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인간의 육신적인 요소와 인간의 생에 있어서의 물질적인 요소도 가치가 있는 것이다. 다섯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죄에서 구원받는다는 것을 믿는다. 인간은 모두 죄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에 의하여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본래적인 상태를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이중적인 존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신앙에다.
..PAGE:12014 세계문화기행 - 프랑스 소개Bonjour France..PAGE:21. 프랑스의 위치2. 프랑스의 기후, 음식, 문화 .3. 프랑스의 역사4. 프랑스의 관광지INDEX..PAGE:31.프랑스의 위치유럽 대륙의 서부, 지중해와 대서양 사이에 위치하며, 유럽에서 3번째로 큰 나라이다.동쪽은 이탈리아·스위스·독일, 북동쪽은 룩셈부르크·벨기에와 접하고, 북서쪽은 영국해협을 건너 영국과 마주하며, 서쪽은 대서양, 남쪽은 지중해와 에스파냐로 이어진다.고지대는 국토의 17.8%에 불과하고 250m 이하의 저지대는 61.8%에 달할 정도로 광대하다...PAGE:42. 프랑스의 기후, 음식, 문화사계절이 뚜렷한 다양한 기후유럽의 기후는 보통 해양성, 대륙성, 지중해성으로 나누어지는데, 프랑스에는 이 세가지 기후가 모두 나타나 다양한 기후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사계절 모두 한국과 비슷하나 장마가 없고 건조해서 여름을 보내기엔 우리나라보다 프랑스가 더 좋다.세계 3대 요리중의 하나라는 프랑스 요리귀족들의 식사에서 발달한 프랑스 요리에는 와인, 치즈, 에스까르고(달팽이요리), 푸아그라(거위의 간), 송로버섯이 유명하다. 프랑스의 요리의 맛은 포도주, 향신료, 소스가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문화와 예술, 지식의 나라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노트르담 대 성당, 베르사유 궁전, 에펠탑 등 다양한 미술관과 박물관, 건축물을 갖고 있는 나라이다...PAGE:53. 프랑스의 역사[중세]봉건시대9세기에서 12세기까지 중세는 왕권이 축소되고, 새로운 정치적, 사회적 조직이 발전되었다. 넓은 영토를 소유한 영주들은 주권자의 권력을 행사하며 왕을 대신하는 일을 수행하였다.백년전쟁왕위계승을 문제로 영국과 프랑스와의 심각한 대립으로 벌어진 전쟁으로 전쟁 1기, 2기 동안 프랑스가 영국군에 밀려 패하고 헨리 5세가 트루아 조약을 통해 7년간 파리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다. 위기에 처한 프랑스는 1429년 잔다르크의 등장으로 영토를 되찾는데 성공했다.[16~17세기]르네상스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은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전국에 확산되었다. 르네상스 시기의 문화재로는 프랑수아 클로에의 목욕하는 여인, 샤토 드 세농코와 피에르 레스코의 작품인 루브르 궁전의 측면 건물 등이 있다...PAGE:63. 프랑스의 역사루이 14세태양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루이 14세는 중앙집권제를 완성하고 강력한 군주 권력을 확립하고, 가톨릭 교회를 프랑스의 국교로 삼았다. 그러나 계속되는 전쟁과 베르사유궁전 건축, 사치스러운 생활은 궁정 재정을 악화시키는 근원이 되었으며 프랑스인들의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18~19세기]프랑스 대 혁명루이14세 부터 일어난 국가재정의 파탄, 귀족계층에 의한 농민계층 착취, 불평등한 사회체제에 대한 불만, 미국의 독립전쟁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 민중의 사회 개혁 의지 등으로 인해 1989년 7월 프랑스에 일어난 자유주의 혁명이다.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의해 수립된 프랑스의 절대 군주 정권이다. 파리의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고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등을 전쟁에서 굴복시키며 번영을 누렸지만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패배, 워털루 전쟁에서의 패배로 나폴레옹은 황제에서 퇴위하게 되며 제국은 붕괴하였다...PAGE:73. 프랑스의 역사http://ebs.daum.net/5minutes/episode/26279*동영상이 안 나올 때 참고해주세요..PAGE:83. 프랑스의 역사[20세기~ 현대]벨 에포크 시대아름다운 시대라는 뜻으로 19세기 말부터 제 1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의 시대이다. 파리가 번성하고 문화가 발전한 황금시대로 인상파 화가, 세계박람회, 소설가 마르셀 푸르스트, 파리의 에펠탑, 지하철 노선의 개통, 첫 영화의 등장 등 다양하고 새로운 예술의 형태가 출현하였다.비시프랑스제 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 독일의 점령하에 있던 남부프랑스를 1940년부터 1944년까지 통치한 정권으로, 파리 남쪽에 있는 비시를 수도로 하였으며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영웅이었던 필리프 원수가 정부 수반이었다.현재1946년부터 1958년까지 프랑스 제4공화국을 거쳐 현재는 프랑스 제5공화국이며 다양한 외교정책을 승인하고 주변국가와의 관계 완화, 유럽 통합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PAGE:94. 프랑스의 관광지1) 파리 루브르 박물관파리의 대표적인 명소 루브르 박물관은 프랑스 왕들의 궁전으로 현재는 인류의 문화예술 유산이 가득 소장된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루브르에는 [밀로의 비너스], [모나리자], [승리의 여신 니케] 등의 유명한 작품과 더불어 대략 30만여 점의 작품이 소장되어있어 한 작품 앞에서 10초씩만 감상한다 하더라도 루브르의 모든 전시물을 보려면 꼬박 35일이 걸린다고 한다. 이 작품들의 절반이상은 그동안 프랑스 왕실에서 모아온 예술작품과 정복전쟁, 특히 나폴레옹이 이탈리아와 이집트 등에서 가져온 전리품이 이 박물관의 주요 전시물로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PAGE:104. 프랑스의 관광지2) 파리 에펠탑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은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만들어졌다. 에펠탑을 세울 당시 파리 시민들은 고층건물이 거의 없는 파리에서 높이 솟은 흉물스런 철탑이 파리의 우아한 이미지를 망친다는 이유로 반대했으나 차츰 에펠탑에 호감을 갖게 되었고, 철거될뻔한 위기를 넘겨 현재는 라디오 방송을 위한 안테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Ⅰ. 저자와 출판사유선호 지음, 하늘기획(2012)Ⅱ. 저자의 의도일반인들이나 기독교에 대한 안 좋은 시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기독교가 편협하고 독선적인 종교라고 생각하며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선입견 때문에 기독교에 대한 것이면 무조건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적대적으로 보고 비난부터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 사람들이 기독교와 기독교의 본질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것이다. 기독교를 믿는 신자들도 또한 기독교의 본질이나 복음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복음과 구원을 받는다는 확신을 얻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 질문하면 당황하여 선뜻 대답을 못 해주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런 두 가지 경우를 위해 기독교가 많이 받는 질문들과 그 질문에 대한 논리적인 답변의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기독교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기독교의 본질에 한 층 다가서며 기독교를 믿고자하는 새 신자들에게 성령이 함께하시어 성숙하고 책임 있는 신자가 되기를 바라는 의도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Ⅲ. 주제이 책의 주제는 “이때에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기독교 복음 진리에 대한 쉽고도 명확한 설명과 변증입니다.” 인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기독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 기독교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 기독교에 대해 좋지 않은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명확한 근거와 성경과 하나님말씀에 대한 정확한 해석 없이 무조건적으로 “기독교인이 되라, 하나님을 믿어라” 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으므로 기독교에 대한 반감만 커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기독교 복음 진리에 대한 쉽고 명확한 설명, 확실한 증거를 통해 기독교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하시며 성령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에 대한 증거를 제시한다면 훨씬 설득력이 있어진다. 또한 이는 곧 기독교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을 바꿀 수 있을 것이며,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도 많아지게 될 것이다.Ⅳ. 내용 요약1.Q:들이 헌금에 대해 강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들의 돈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고 아까워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은 사람들이 아직도 물질의 노예에서 해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영생을 얻으려면 계명을 지켜야하고 네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라고 하셨다. 세상의 소유물은 모두 하나님의 것으로 그러한 소유물에 미련을 가진 사람은 결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헌금의 최저수준인 십일조는 반드시 지켜야 하며 가능하면 헌금을 많이 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두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의 헌금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가운데 양심적으로 검소하고 건전하게 관리되고 있다.3.Q: 우리나라의 미풍양속인 제사를 왜 기독교에서는 반대 합니까? 또 교인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지혜로운 신앙적 자세가 될까요?A: 제사는 우리의 미풍양속이 아닌 중국의 풍습이었다. 우리나라 역사 가운데 제사가 들어온 것은 겨우 500년도 안되었고 중국에서는 훌륭한 황제가 죽었을 때 제사지내던 것에서 유래되어 우리나라 왕실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 뒤로 왕가에서 덕행교육의 일환으로 백성들에게 장려한 것이다. 그러나 제사를 지내는 것은 미신을 조장하는 우상숭배일 뿐이고 진정한 효도가 아닌 불효이다. 귀신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쫓겨난 사탄의 부하들이다. 성경에서는 죽은 조상에 대해 일체 언급이 없고, 사람은 죽은 후 천국과 지옥으로 갈 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차라리 돌아가신 날을 기념하여 가족끼리 모여서 추도 예배를 드리고 가족들과 교제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4.Q: 기독교의 근본정신은 사랑과 관용이라고 알고 있는데, 실망을 주는 기독교인이 많은 이유가 무엇입니까?A: 일단 아무리 기독교인이라도 사람이기 때문에 완벽할 순 없다. 그리고 교회에는 독실한 신앙을 가진 사람도 있는 반면 이제 갓 교회를 나온 사람도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의 행위로 기독교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몇 가지 제시하면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의 만물이 그 증거이며, 하나님이 만들었다고 하지 않고서는 인간의 몇 천 억 개가 넘는 세포와 몇 만에 달하는 혈관의 길이 같은 것이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보기 힘들 것이다. 또한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양심과 종교성이 있고, 영혼이 있어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있다는 것이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생명을 만들 수 있는 존재가 하나님밖에 없다는 생명의 증거,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면 모든 문제가 순리적으로 잘 풀린다는 조화의 증거 등이 있다.7.Q: 성경도 결국 사람이 쓴 책 일텐데 정말 하나의 오류도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틀림이 없는 것인가요?A: 성경이 하나님의 책이라는 가장 큰 증거는 성경 자체에서 아주 분명하게 오류 없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거듭하여 성경의 저자를 하나님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내용에서 천국, 지옥, 천사, 마귀, 하나님의 개성 등 다양하고 놀라운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편집에서는 40여명의 저자들에게서 쓰였지만 마치 한 저자에 의해서 쓰여진 단 하나의 책처럼 단 하나의 주제를 이야기하며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 성경의 유지에서도 그 많은 박해와 말살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보호된 것은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보호하셨다고 볼 수밖에 없다. 또한 성경의 위대함의 최대의 증거는 예언을 성취했다는 것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탄생, 생애, 재림을 예언하고 이러한 예언은 지금까지 정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 외에도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고, 위인들이 성경을 최고의 선물이라고 증언하는 등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여러 가지 증거들이 많이 존재한다.8.Q: 성경이 과학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성경이 정말 진리라면 왜 과학적 사실들과 모순됩니까?A: 성경은 과학적 사실과 모순되지 않는다. 과학적 사실에 의하면 오히려 진화론이 창조론보다 비과학적이라의 값은 사망이며 죄가 없는 사람이 대신 속죄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며 동시에 인간인 존재여야만 인간들의 죄를 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10.Q: 정말 천국과 지옥이 있을까요? 만약 있다면 천국과 지옥들이 있다는 증거도 있다고 할 수 있나요?A: 천국과 지옥은 정말로 있다. 그러나 천국에 가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서는 전혀 갈 길이 없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증거에 대해서는 천국은 꼭 가보지 않더라도 그 존재가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은 확실한 것이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맞고, 성경에 나오는 천국과 지옥 얘기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를 믿는 자가 천국에 갈 수 있고 믿지 않는 자는 지옥에 가는 것이다. 증거가 될 만한 사례를 몇 가지 제시해보면 무신론 철학자 볼테르가 죽어갈 때 “나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버림을 당하였구나, 나는 지옥에 가노라” 라고 스스로 말한 뒤 죽은 것, 토마스 스코트경이 죽을 때 “나는 이 때 까지 하나님도 없고 지옥도 없는 줄 알았노라, 그러나 지금은 그 둘이 다 있는 것을 느끼노라. 나는 전능자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의하여 지옥으로 들어가는구나” 라고 말 하는 등 이러한 사례 외에도 죽음의 문턱에서 하나님과 천국, 지옥의 존재를 깨닫고, 체험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은 자기가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지옥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지옥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확률로 봐도 천국과 지옥이 있을 가능성은 50%이므로 기독교를 믿는 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11.Q: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으면 무조건 병이 낫는 것처럼 말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정말로 병이 치료됩니까?A: 신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에 의한 질병치료의 사례가 너무나 많이 기록되어 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간들은 가난, 불안, 부패한 인성, 질병과 죽음 등 여러 가지 죄의 저주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죄의 있는 현상의 문제인 것이다.13.Q: 교회에서는 왜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세웁니까? 조금 더 따뜻하게 품어 줄 수는 없나요?A: 교회에서 “당신은 죄인이다, 회개해야 한다.” 라는 소리가 듣기 싫은 이유는 당신이 죄인이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에게 아무런 문제도 없으면 아무도 종교를 찾으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정신적, 신체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많기 때문에 인간들은 절대자의 도움을 얻기 위해 신앙을 갖게 된다. 하나님은 죄를 가장 미워하시고 절대 가까이 하실 수 없기 때문에 인간과 하나님이 화목하지 못하고 단절된 이유는 바로 이 죄 때문이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절대로 개선될 수 없다. 만약 당신이 죄인이 아니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될 리가 없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죄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죄를 깨끗하게 해줄 구세주가 필요한 것이다. 병자가 자신을 건강한 사람으로 착각할 때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질 수 없어서 죽어가듯이 사람은 자기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구세주를 찾지 않고 결국은 멸망하여 지옥에 가는 것이다.14.Q: 세상에는 여러 가지 종교가 있는데 꼭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독선이 아닌가요?A: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편협해서가 아닌 오직 예수께서 독선적인 존재이시기 때문이며 실제로 예수를 믿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두 글자만큼 인간에게 고뇌를 안겨주는 글자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죽음의 해결인 구원의 문제만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될 문제도 없다. 우리는 구원을 통해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어 완전한 자유를 누려야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담당하셨고 부활하사 사망 권세를 깨뜨리셨다. 예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라고 말하신다. 이와 같이 꼭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기독교의 주장은 독선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