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 Jacobs Tokyo Flagship buildingArchitects: Jaklitsch/Gardner ArchitectsLocation: Tokyo, JapanDesign Team: Jaklitsch/Gardner ArchitectsArchitect of Record (building shell): Creative Designers InternationalArchitect of Record (building interiors): D.Brain Co., LTDLights and Illumination: L’Observatoire InternationalContractors: Kitano Construction Corp.3D Visualization: Jaklitsch/Gardner ArchitectsClient: Marc Jacobs Japan K.K., Veloqx Asset Management, Corp.Project Area: 2,800 sqfProject Year: 2010Photographs: Liao Yusheng도쿄 명품샵 거리로 유명한 아오야마. 이 곳에 뉴욕의 Stephan Jaklitsch Architects에서 설계한 마크제이콥스 플래그쉽 스토어가 문을 열었다.이 건물은 3층으로 두 개의 판매 공간 및 스토리지로 구성 되어있으며 낮은 수준의 공간을 포함하여 약 2,800평방피트로 이루어져 있다. 구역 요구 사항에 의해 건물 높이를 제한하기 때문에 건축가는 건물의 시각적 높이를 두 배로 보이게 할 수 있는 kosaku butsu로 알려진 일반적인 건물 요소를 사용했다.저층부의 글래스 보이드중층부의 스트립 테라코타 돌상층부의 kosakubutsu 라이팅 (kosaku butsu는 건축물의 높이를 높게 보이도록 하는 일반적인 일본 건축기법)이렇게 세가지 층으로 이루어진 건축물로 낮과 밤에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1F첫번째 층의 건물 외관은 완전히 투명하여 거리에 시각적으로 열려 있다.FIRST FLOOR PLANSECOND FLOOR PLANBASEMENT FLOOR PLAN
동화와 꿈의 세계환경디자인과 1111301 황예진GRIMM어린이들의 동화 작가로 유명한 독일의 작가 그림형제의 유명한 동화 ' 헨젤과 그레텔' 에 대한 이야기 이다.우리는 일반적으로 그림형제라고만 알고 있는 이 두사람은 형인 Jacob Grimm과 아우인 Wilheim Grimm 형제이다. 독일 설화 문학의 창시지로 불리는 형 야코프와 동생 빌헬름 두 형제는 모두 언어학자로 게르만 언어학의 선구자 였다. 그러나 낭만파 문학이나 언어, 전설, 설화 등으로 관심을 돌려 이에 전설과 설화를 모아 라고 알려진 를 출판하고, 이 책을 통해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은 동화로서의 역할 외에도 민속학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더 자세히 알아보자면 야콥 그림(Grimm, Jacob 1785-1863)과 빌헬름 그림(Grimm, Wilhelm 1786-1859) 형제의 활동은 훨씬 조용하고 즉흥적이며 균형이 잡혀 있었다. 그들과 더불어 독일의 언어, 문학, 전승의 학문이 시작된 것이다. 낭만파는 이 두 사람에게 애정어린 통찰력과 우주적인 범위를 가진 견해를 갖도록 했다. 사심 없는 학문에 대한 엄격한 에토스는 명석한 통찰력과 방대한 자료 영역을 고심하여 구명하는 능력을 그들에게 갖도록 했다. 이 에토스는, 1837년에 하노버 왕의 헌법 위반에 대하여 두 사람이 항의하다가 달만(Dahlmann, Fried. Chr.), 게르비누스(Gervinus, Georg Gottfried) 등과 함께 괴팅겐의 교수직에서 추방되었을 때에, 그들에게 정치적 자유의 신념에 대한 용기를 주었다.1812년부터 1815년에 걸쳐서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 힘을 합하여 작업을 하며, 서로를 생산적으로 보완하여 〈아동과 가정의 동화집 Kinder- und Hausmärchen〉을 출판했는데, 그 서문에는 이렇게 씌어져 있다. "이 작품의 내부에는 전반적으로 우리들의 눈에 어린이들을 그렇게도 훌륭하고, 그렇게도 행복하게 보여 주고 있는 그와 같은 순수성이 나타나 있다. 이 작품들은 말하자면 모두 똑같이 는 맑은 눈을 가지고 있다. 한편, 다른 부분은 취약점이 있어서 세상에 쓸모가 있기에는 미흡하다. 장면은 거의가 매우 단순하고,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실생활에서 볼 수 있는 것뿐이다.그렇지만 그것들은 실제의 장면이 모두 그러한 것처럼, 역시 언제나 새롭고 감동적이다." 그들은 이 동화를, 서민들의 입을 통하여 나온 말을 듣고, 그 이야기를 간결한 문체 기법을 써서 훌륭한 독일의 민담 형식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런데 제재 중에는 상당한 부분이 외국, 예를 들면 프랑스의 전승물에 의존하고 있다〔1697년 페로(Perrault, Charles)의 동화 〈거위 엄마의 이야기 Contes de ma mère l'Oye〉 속에는 〈장화를 신은 수코양이 Der gestiefelte Kater〉, 〈장미 아가씨 Dornröschen〉, 〈빨간 모자 Rotkäppchen〉, 〈신데렐라 Aschenbrödel〉 등이 들어 있다〕. 그들은 여태까지 꽤 많은 모티브가 잔인하다고 종종 들어 왔던 비난에 대하여 항의했다. "우리들은 부정한 것일지라도 무엇 하나 숨기지 않는 솔직한 이야기의 진실성에 순수성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 어쨌든 우리들은 성서를 선두로 하여 여태까지 민중을 선도해 온 어떠한 건전한 책에서도, 이와 같은 의혹이 상당히 많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단 한 권도 보지 못했다.올바른 사용이란 나쁜 것을 끌어 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교훈적인 말씀이 말해 주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들의 마음의 증거를 찾아 내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자기들을 별세계에다 옮겨 놓고 해석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속신(俗信)에 따라서 천사들을 겁내고, 이것을 모욕하고 있는데도." 1816년부터 1818년에는 〈독일의 전설 Deutche Sagen〉이 나오고, 1819년부터 1837년에는 야콥 그림의 〈독일어 문법 Deutsche Grammatik〉이, 1828년에는 그의 〈법제사 자료 Rechtsaltertümer〉, 1835년에는 〈독일의 신화 Deutsch림에 의하여 〈독일의 영웅 전설 Deutsche Heldensage〉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1852년 이후부터는 1961년에 겨우 잠정적으로 완성을 본 〈독일어 사전 Deutsches Wörterbuch〉이 나왔다.STORY그림 동화 '헨젤과 그레텔 Hänsel und Gretel'은 1813년 1월 15일에 도르트헨 빌트 Dortchen Wild에 의해 빌헬름 그림 Wilhelm Grimm에게 전해졌다. 도르트헨 빌트는 독일 카셀 Kassel의 마르거리 Margasse에서 태양약국 Sonnenapotheke을 경영하고 있던 약사 빌트 Wild씨의 딸이고, 훗날 빌헬름 그림의 처가 되는 여인이다(vgl. KHM 19). 다시 말해 카셀 마르거리에서 빌트씨 집 근처에 세 들어 살고 있던 그림형제는 이웃집 처녀인 도르트헨이 들려준 이야기를 1815년 동화모음집 '어린이와 가정동화 Kinder- und Hausmärchen'에 열다섯 번째로 수록한 것이다.원래 '헨젤과 그레텔'은 이탈리아 동화작가 바질레 Basile의 '넨닐로와 넨넬라 Nennillo und Nennella'라는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이 동화가 프랑스 동화작가 페로 Perrault에게 영향을 미쳐 그의 '엄지동자 Petit Poucet'를 탄생시켰고, 그것이 그림 동화 '헨젤과 그레텔'로 완성된 것이다. 물론 그림형제가 페로의 '엄지동자'와 같은 제목으로 그들의 동화모음집에 열두 번째로 '엄지동자 Däumling'라는 동화를 썼기 때문에, '헨젤과 그레텔'은 페로 동화의 영향은 받았지만, 등장인물 면에서는 사뭇 다르다. 다시 말해 페로와 그림형제의 '엄지동자'는 엄지손가락만한 크기의 남자아이를 주인공으로 그 아이의 모험담을 묘사하는 반면에, '헨젤과 그레텔'은 엄지손가락만한 크기의 아이가 아니라, 정상적인 크기의 아이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단지 바질레의 '넨닐로와 넨넬라' 동화에서는 과자와 사탕으로 만든 집이 나오고 한 마리 늑대가 그 집 안에 숨어서 아이들을 기다리며, 페로의 '엄지동자' 동화 식인귀를 엄지동자가 물리치는 이야기가 언급되기 때문에, 그러한 숲속의 집과 식인귀의 모티브가 그림 동화 '헨젤과 그레텔'과 관련이 있다.'헨젤과 그레텔'에 대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줄거리는 옛날 옛날 먹을 게 없어서 힘들었던 시절에 헨젤과 그레텔 남매가 살던 집이 있었다. 계모는 헨젤과 그레텔의 아버지인 남편에게 먹을 것이 부족하다며 남매를 숲속에 버리자고 남편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을 엿들은 헨젤은 그레텔을 데리고 그날 밤 많은 조약돌을 주워 동생을 안심시켰다. 다음 날 계모와 아빠와 헨젤과 그레텔은 숲속에 나무를 하러갔다. 아이들에게 데리러 오겠다며 두고간 두 부모는 늦은 밤이 될때 까지 데릴러 오지 않았다. 하지만 낮에 숲속에 들어가면서 조약돌을 하나 씩 떨어뜨렸던 헨젤덕분에 둘은 무사히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흉년이 들자 계모는 또 숲속에 버리자고 했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반대 했으나 정말 먹을 것이 없자 할 수 없이 동의했고 이 이야기를 또 들은 아이들은 조약돌을 주우러 나갈려 했으나 계모가 문을 잠그는 바람에 나가지 못했다.다음날 계모는 빵을 하나 씩 주며 또 깊은 숲 속으로 데려갔고 헨젤은 이번에는 빵 조각을 뜯어다가 길 바닥에 떨어 뜨렸지만 새들이 다 주워먹는 바람에 길을 잃고 말았다.몇날 며칠을 하염없이 걷던 아이들은 배고픔에 굶주렸고 몹시 지쳐있던 상태였다. 그러다가 과자로 만들어진 집을 발견하였고 배고팠던 아이들은 그 과자집을 먹기 시작했다. 이 때 나타난 과자집의 주인인 노파가 아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 온갖 음식과 따뜻한 잠자리 까지 주는 호의를 베풀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 노파는 아이들을 잡아먹는 마녀였다. 헨젤을 감옥에 넣은 마녀는 그레텔을 부려먹고 헨젤을 살찌우게 하여 잡아먹을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이였다.그런 생활을 계속 하던 어느날 마녀는 헨젤을 잡아먹기 위해 그레텔에게 물을 끓이라 했고 그레텔은 꾀를 내어 마녀에게 방법을 모르겠다 하여 마녀를 아궁이 아까이 오도독 유인한 뒤 마녀를 밀어 함께 마녀의 집에서 온갖 보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하니 이미 계모는 죽어버린 후였고 아이들을 버린 후 죄책감에 시달리던 아버지와 재회하여 세 가족은 행복하게 살았다던 이야기다.그림형제는 이 이야기를 통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헤쳐나가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ANALYSIS그림 형제의 이 이야기는 작가가 헨젤과 그레텔 설화를 19세기 중산층 고객을 위해 순화된 작품이다. 원작은 중세의 악습을 경고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음식이 부족해서 사람들은 늘 배가 고팠기 때문에, 중세에는 영아 살해가 일반적이었다. 이 이야기에서 헨젤과 그레텔은 양육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숲 속에 남겼을 것이고 그들은 죽거나 실종되었을 것이다. 또한 초판에서는 친어머니가 등장하고 남매를 숲에 버리는 것도 친어머니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후 아이들의 정서를 고려하여 계모로 수정되었다고 한다.제시부시간, 장소 - 옛날 흉년, 어느 숲속등장인물 - 헨젤과 그레텔, 계모, 아빠, 마녀이야기- 가난이 발생하여 아이들은 부모들에 의해 버려졌고 길을 잃었음.과자집 발견중간부사건의 전개 - 마녀의 과자집을 먹은 아이들이 잡힘.헨젤의 감금과 그레텔의 노동위기상황 - 헨젤이 잡아먹힐 위기에 처하고 마녀가 그레텔에게 불을 피우게 함클라이막스 - 그레텔이 마녀를 불구덩이에 넣음종결부문제 해결 - 긍정적인 해결 ---- 헨젤과 그레텔이 과자집에서 보물들을 가지고 빠져나옴아빠의 품으로 돌아감헨젤똑똑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한다.자기 동생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고, 적극적이며,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그레텔지혜롭고 슬기로우며 용기가 있다.다른 사람을 신용할 줄 알고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계모마음이 악하고 이기적이며, 물질적인 가치만 중요시한다.다른 사람을 잘 설득하고 적극적이며, 냉정하다.아버지마음이 약하고 마음이 가볍다.성급하고 정작 급해야 할 상황에도 망설인다.소극적이며 매사에 침착하지 못하다. 우유부단한 성격이다.마녀지혜롭.
행복의 정복 - 사랑 -버트런드 러셀의 은 현대인들에게 행복을 재정립해주는 책으로써 행복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행복하다라는 말이 포용하고 있는 힘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거대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행복과 불행 그 사이에 놓여져 있는 다리에 서있는 우리를 행복 쪽으로 발길을 돌리는 법을 러셀이 말해준다. 행복함은 삶에서 결코 사치스럽고 분수 넘치는 일이 아니라 삶의 원천이고 본질이 되는 요소이다. 은 사회적인 성공을 쫓는 방법을 알려주는 기존의 자기 계발서와는 달리 삶의 본질과 기준들을 제시해주며 그의 글이 뭉쳐 태어난 행복을 더 생동감 있게 느끼게 해준다.이란 책에서는 사랑에 대한 장이 있다. 사랑이란 도대체 무슨 감정이며 행복을 가져다 주는 중요한 요소 일까? 이 장에서 사랑에 대해 정의 하길, "서로 기쁨으로 사랑을 받아들이고,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랑을 주며, 서로가 행복을 느낌으로써 세상이 더욱 흥미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즉, 사랑은 주고 받아야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사랑은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이며 만약 사랑 받지 못한다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면 열의를 잃게 만들 수도 있는 복잡한 감정이다. 반대로 사랑 받고 있다는 감정은 무엇보다도 열의를 촉진시킬 것이다. 사랑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사람들은 만약 자기 자신이 사랑은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불쾌한 사람이라 생각할 수 있고 어릴 적 불행으로 인한 자신감의 상실에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사랑 받지 못한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존감 상실에 빠져 있을 뿐만 아니라 남들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지나친 친절을 베풀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절망적인 노력에 불과하다. 상대편은 쉽게 친절의 동기를 간파할 것이며 또한 인간성은 사랑을 거의 요구하지 않는 사람에게 가장 쉽게 사랑을 기울이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의 감정이 아닌 무언가 바라고 목적이 있는 사랑은 쉽게 깨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자애로운 행동으로 사랑을 사경험하고 환멸을 느끼게 된다. 남자나 여자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랑 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소심한 절망에 빠지고 때때로 시기와 악의에 의해 절망에서 헤어나는 경우만이 있을 뿐이다.안정감을 가지고 삶에 임하는 사람들은 불안감을 가지고 삶에 임하는 사람들보다는 그들의 안정감이 그들을 재난으로 이끌고 가지 않는 한, 훨씬 더 행복하다. 예를 들면 자신이 틈이 벌어진 좁은 판자 위를 걷는다면 겁을 먹지 않았을 때보다는 무서워할 때에 떨어질 확률이 더 크다. 생활상의 행위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자신감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불의의 사고에도 잘 헤쳐 나오는 경우가 있다. 무서워하거나 겁을 먹는 경우와는 확연히 다른 결과를 가질 것이다. 이러한 인생에 대한 일반적인 자신감은 무엇보다도 인간이 필요로 하는 올바른 종류의 사랑을 언제나 받고 있다는 데에서 생긴다는 것이다.안정감을 주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호혜적인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는 하지만 '주는 사랑'이 아니라 '받는 사랑'이다. 즉,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안정감과 자신감을 가지고 삶에 임할 수 있으며 이는 불안감을 지니고 임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한 단서는 이 사랑이 대상을 무조건적으로 보호하고자 하는 사랑이 아니라 탁월함을 지니기를 바라는 그런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랑에 보호적 요소가 없을 수는 없다. 사랑하는 상대방이 불행한 모습은 보기 힘들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류의 사랑은 아픔을 나누기는 해야 하지만 혹시나 불행을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은 최소한으로 가져야 할 것이다. 이런 사랑은 소유욕의 일종으로서 상대방을 속박하는 것 밖에는 안되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서 호혜적인 사랑이란 어떤 필요에 의해 예를 들어 불안함을 없애기 위해 사랑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그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고 서로에게 생명을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공동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랑이라 하는 것이다. 위대한 사랑이 어떤 사랑에는 일종의 보호적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겪는 상처에 무관심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지나친 걱정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지나친 걱정에 비래 크게 나을 것이 없다. 게다가 그것은 소유욕의 위장된 형태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이론은 익히 알고 있지만 주고 받는 사랑을 실천하기 어려운 까닭은 무엇일까. 주고 받는 사랑을 가로막는 심리적 또는 사회적 장애는 중대한 악으로 간주되며 이러한 악으로 인해 세상과 사람들은 피해를 입어 오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을 준 상대로부터 피해를 입거나 배신을 당할 까봐 두려워 사랑을 주기를 주저한다. 서로를 사랑하나 모든 것을 다 주면 떠나갈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원적인 문제는 남자나 여자가 각기 자기 자신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자기의 세계를 버리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할 것이다.베푸는 사랑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삶의 열정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표현으로 서로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두려움을 드러내는 표현으로서의 사랑이다. 첫 번째 사랑은 어떤 사람이 안정감을 느끼고 있거나,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위험에 대해서 무관심한 경우에만 가능한 사랑으로 매우 바람직한 사랑이다. 하지만 두 번째 사랑은 불안감에서 비롯되는, 기껏해야 위안거리에 지나지 않는 사랑이다. 불안감으로 인한 사랑은 안정감으로 인한 사랑에 비해서 훨씬 주관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은 상대방을 본질적인 특성으로 평가하지 않고, 그 사람이 베푸는 봉사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사랑은 모두 두 가지의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다.흔한 것은 아니지만 또 다른 종류의 사랑이 있다. 즉, 어떤 사람이 상대방의 생명력을 흡수하는 즉, 다른 쪽이 주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 대신 거의 아무것도 주지 않는 사랑이 있다. 매우 활력이 넘치는 사람이 이러한 흡혈적 유형에 속한다고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그들 자신의 목적 그 자체로 생각하지만 근 아무런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다만 그들 자신의 활동에 대한 자극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분명 이러한 사랑은 그들의 성격상의 결함으로 나오는 것으로 흔히 거대한 야심과 결부되어 있는 특성이며 무엇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가에 대한 지나치게 일면적인 견해에 근원이 있다고 러셀은 말하고 있다.또한 다른 사랑의 종류로 사랑뿐만이 아니라 찬양도 이러한 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배우, 전도사, 연설가, 정치가 등 직업상 대중의 찬양을 확보해야 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박수 갈채에 의존하게 된다. 대중의 찬동이라는 당연한 보상을 받을 때에 그들의 삶은 열의로 충만하고 그렇지 못할 때에는 불만을 느끼고 자기 본위로 된다. 대중들의 광범위한 호감이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소수의 보다 집중적인 사랑과 같은 효과를 갖는다. 예를 들어 요즘 연예인들은 소위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산다는 말로 알 수 있듯이 그들의 직업상 많은 사람들의 광범위한 사랑이 소수의 집중적인 사랑보다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모든 사랑은 모험심을 고무하는 효과를 갖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람들이 받는 사랑은 그 사랑 자체가 소심하기보다는 오히려 강한 것이어야 하며, 그 사랑을 받는 쪽에서는 물론 안정감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안정감보다는 오히려 어떤 초월을 욕구하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이 구절에서의 나의 생각은또한 많은 사람들은 사랑에 빠질 때 세상을 피할 수 있는 작은 도피처를 찾는다. 이 도피처에서는 존경 받을 만한 점이 없을 때에도 존경을 받고 칭찬받을 만한 일이 없을 때에도 칭찬받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많은 사람들에게 가정은 피난처이다. 공포와 겁을 가라앉혀주는 가정에서의 휴식을 좋아하는 것은 그들이 공포를 느끼고 겁이 많기 때문이다.또한 러셀은 육체적, 성적 사랑은 흔히 진정한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했다. 또한 성적 관계는 보다 가치 있고 깊은 사랑이 성장하는 데에 방해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고 까지 말하고 있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조심성이 참된 행복에 있어 가장 치명적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남녀의 성적 관계에 있어서 조심성과 신중함은 불행을 초래할까? 여기서 러셀이 말하는 진정으로 가치 있는 성적관계 시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지 않은 관계는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확신과 믿음이 있고 진정으로 사랑해서 성적 관계를 원하는 사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성관계에 조심성과 신중함이 따라야 하는 것은 그에 대한 책임이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러셀은 이러한 성행위에 대한 망설임이 '더 높은 가치를 가진 깊은 사랑의 성장을 방해하기 쉽다'는 말을 했는데 신중함이 없는 성관계야 말로 책임질 수 없는 결과를 초래 할 경우, 오히려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고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준비 된 마음에 신중함에 따라 서로 책임 질 수 있는 성관계야 말로 자신들의 사랑을 확인하고 더욱 깊어진 사이를 확인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사랑의 종류 중에 아주 바람직한 것이 있다는데 여기서 그것을 '삶의 열정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표현으로서의 사랑'이라고 표현한다. 이 류의 사랑은 어떤 사람이 안정감을 느끼고 있거나,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위험에 대해서 무관심한 경우에만 가능한 사랑이라고 한다. 과연 현대에는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며 살아갈까. 흔히 현대는 행복에 대한 감각이 마비된 시대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거니와,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사랑하며 살아 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무관심한 사람들이 현대인들이다. 행복이란 인간이 살아가는데 궁극적인 목적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행복을 망각하고 바쁘게 살아간다면 우리는 목적을 상실하고 수단만이 남은 생활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가장 해야 할 시급한 일은 행복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고 일깨우는 일이 아닐까? 사랑은 행복으로 가는 수단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랑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자신의 사랑에 대한 문제를 안다면 더욱더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깨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