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Room Nineteen’에 나타난 ‘지성에 대한 집착’과 그 결과가 주는 교훈1. 서론‘To Room Nineteen’의 주인공인 수잔은 누가 보기에도 완벽하고 누구나 부러워 할 만한 연애와 결혼을 한다. 물론 이 둘은 모두 지성에 입각된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외부의 시선과는 달리 행복하지 못했다. 물론 늘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서서히 ‘비이성적’이고 ‘미친’ 사람이 되기 시작했다.수업시간의 토론에서나 다른 연구 결과에서 나타난 작품 분석에서는 ‘자유의 부재’, ‘자아 정체성의 혼란’ 혹은 ‘결혼제도의 불합리성’ 때문에 수잔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 뿐만일까? 그녀는 곳곳에서 ‘지성’에 대한 집착을 보여준다. 언제나 평온해야 하고 점잖아야 하고 언성을 높이는 일은 그녀에게 절대로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고…. 그런 지성적 상태를 늘 유지하는 것은 그녀 스스로의 감정을 억눌러야 하는 매우 힘든 과정이다. 그러나 그런 인고의 시간의 끝에서 그녀는 행복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은 ‘감정에 순응하는 삶의 중요성’이라고 할 수 있지는 않을까? 지금부터 작품 속에 나타난 그녀의 지성에 대한 집착과 그것이 불러온 부작용에 대해서 살펴 보려고 한다.2. 작품 속에 나타난 지성적 집착의 증거와 결과이 작품은 ‘나는 이것이 지성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그리고 로링즈 부부의 결혼은 지성에 입각해 있었다고 말한다. 결국은 이들이 추구했던 ‘지성’이 ‘실패’로 끝났다는 것을 첫 부분 부터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실제로 사랑에 빠졌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라고 여긴 것 중 대부분이 ‘지성’의 눈치를 보는 것 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들은 ‘낭만적 결혼’을 잘못된 것으로 여겼으며 지성을 지키는 것을 최고의 선으로 여겼다. 이 지성에 대한 집착이 모든 악의 근원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처음 그들의 결혼생활은 아주 안정적이었다. 인기있는 신혼부부로 2년을 아파트에서 보내다가 임신을 했고, 수잔은 일을 그만두었고, 그들은 커다란 정원을 가진 전원주택을 가지게 된다. 아들, 딸, 그리고 아들과 딸 쌍둥이를 가진 것 까지 모두가 옳고 적당하다고 느낄 만한 것이었다. 모든 것이 로링즈부부가 소망했던 것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또한 수잔은 삶의 원천을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생각할 만큼 그들 부부는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끝까지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시간이 흐르면서 수잔의 지성에 대한 집착이 서서히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녀는 주위의 커플들이 파경을 맞는 것을 목격하면서 ‘우리는 저래서는 안 되.’ 라며 필사적으로 그녀와 그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한다. 혹은 남들에게 보이는 ‘지적인 그들의 완벽한 가정’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성이 늘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는 자신이 정해둔 ‘지성’의 기준에 늘 부합하는 것이어야 했고, 이것은 결국 그녀 자신을 속박하는 올가미로 전락하게 된다.이러한 그녀의 강박관념은 자신의 생활에 대한 모든 불만들을 합리화하게 하는 데 까지 이르게 된다. 그녀는 의식적으로 ‘모든 것이 좋았다. 모든 것이 정돈되어 있었다. 그렇다. 모두 잘 제어되고 있었다.’ 하고 스스로 주문을 걸 듯이 이야기한다. 이런 과도한 반복은 결국 읽는 이로 하여금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이미지를 주게 된다. 앞으로는 좋고 정돈되고 잘 제어되어 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장치의 역할도 한다. 결국 작가는 그녀의 삶이 그녀의 말처럼 모든 것이 평안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얘기해 주고 있는 셈이다.또 그녀는 ‘아무리 세심하게 고른 상대라도 자신과 같을 수는 없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수잔과 매튜 사이에 크지는 않지만 아주 작은 균열들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도 볼 수 있다. 매튜와의 생활이 100% 만족할 만한 것이었다면, 그녀 자신 혹은 그보다 더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눈에 크게 띄지는 않는 사소한 불협화음이 있다고 여겨지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평안했던 그들의 생활에 먹구름이 끼게 된 것은 매튜의 외도 때문이었다. 사실 매튜의 행동은 지성에 입각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결혼한 남성이 부인이 아닌 여성과 관계를 가지는 것,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 전혀 동요하거나 가책을 느끼지 않고 그 당일에 부인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는 것. 보통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들이다. 그러나 수잔은 자신의 지성을 유지하면서 이성적으로 ‘이해한다’고 얘기한다. 속으로는 그 여자와 남편, 그리고 자신들의 결혼생활에 대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을 가지고 있지만 말이다. 그 일이 결혼생활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지성적 판단이, 그리고 그렇게 생각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그녀의 입을 닫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균열을 충분히 메꿔줄 만한 무엇인가가 없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 그들의 거리감은 커져만 간다.사건 이후 수잔은 ‘인생이 사막이 된 것처럼,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아이들이 자신의 아이들이 아닌 것처럼’ 느꼈다. 삶의 원천이라고까지 생각했던 매튜와의 사랑과 그에 대한 신뢰가 깨어지면서 그 사랑으로부터 파생된 그들의 아이들까지 의미를 잃어버린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렇게까지 그녀의 삶이 황폐화 되었지만 그녀는 그런 일련의 심경변화에 대해서 매튜에게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녀가 정한 ‘지성의 기준’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수잔과 매튜의 마음은 서로에게서 멀어지고 있지만 그 사건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입 밖으로 꺼내거나 티낼 수 없었던 그들은 여전히 겉으로는 행복한 부부처럼 보인다. 한 침대 위에서 가슴을 맞대고 누워 서로를 마주보고 웃는다. 그러나 그 웃음은 진정한 사랑의 감정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행복함이 아니라 아직은 그들이 추구하는 ‘지적 사랑’을 이룰 수 있는 상대가 곁에 있기에 지을 수 있는 안도의 웃음이다.그 일이 있은 후, 다시 그녀는 아이들을 돌보느라 눈코뜰 새 없는 하루를 보내며 10년이 지나면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 자기 자신의 삶을 찾으리라고 결심한다. 아이들에게 헌신해야 하는 하루는 따분하고 때때로 피곤하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들은 아이들의 생활패턴에서 나온 것이 아닌 그녀 스스로의 마음속에서부터 나온 것이다. 삶의 원천인 사랑을 잃었고, 지성적인 그녀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깨어진 사랑을 다시 이어붙일 수 있을 만한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파괴된 사랑의 부산물인 집, 아이들 그 어떤 것이 그녀에게는 의미가 있을 수 있었겠는가.얼마 후 그녀의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들어간다. 이제 그녀에게도 그녀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기보다는 결국 또 가정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자신을 발견한다. 아이들은 이제 그녀의 손길을 많이 요구하지 않고, 파출부도 있기 때문에 그녀가 해야만 하는 그녀의 역할은 극히 축소되었다. 또한 ‘사랑’도 이제는 더 이상 그 집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가 그 곳에 존재해야할 이유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녀가 정원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적’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녀 스스로 가치가 없는 존재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나온다.이러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위해 그녀는 의식적으로 자신의 하루를 일들로 채우고, 그렇게 해야만 정원에 있는 적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를 찾아야만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해야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은 그녀 스스로 존재가치를 인식하게 하는 데는 역부족인 것들이었다. 이제 수잔에게는 남편도, 아이들도, 커다란 집도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삶을 살아가는 데 염증을 느끼게 했던 그 모든 것들에 대한 헌신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니. 이 때부터 수잔은 자신의 생활에 대한 권태와 분노까지 느끼기 시작한다.이러한 분노는 아이들이 방학을 맞으면서 극대화된다. 보통의 엄마라면 기꺼이 아이들과의 시간을 함께 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잔은 이미 그녀가 가진 모든 것에 대한 회의를 느껴버린 상태였다. 이제 아이들은 그녀로 하여금 분노를 일으키는 대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녀가 뭔가를 함으로써 찾을 수 있는 그녀의 존재가치가 그와 그녀 남편 사이의 깨어진 사랑의 부산물들에 쓰여져야만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미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그녀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남은 예전의 가치관이라고는 ‘지성’을 지키는 것 밖에는 없었다.마지막으로 남은 그녀의 자존심인 지성을 지키기 위해서 그녀는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린다. 이전에 그녀와 매튜가 침대에 누워 서로의 일과를 이야기하고 서로에게 거짓이 없었던 그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녀가 하루 종일 느껴야만 했던 공포심을 매튜에게는 결코 털어놓을 수 없지만 그녀는 내내 그것에 사로잡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두려움에 대한 고백은 매튜로 하여금 수잔이 미쳤다고 느끼게 할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녀는 다른 말로 둘러대거나 말을 꺼내지 않게 되었고 이렇게 지성을 지킨답시고 했던 행동들은 그와 그녀 모두를 파멸하게 만든다.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칸트의 이론은 고등학생 때 윤리 시간에 머리가 아프게 듣고 공부했던 부분이다. 물론 수능시험이 끝나고 대부분 잊어버리기는 했지만. 그리고 대학교 2학년이 된 지금 수업시간에 다시 칸트를 만나게 되니 한편으로 반갑기도 하고, 그 때 배운 것과 지금 배운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 지, 그 때 내가 바라본 칸트와 지금의 내가 바라본 칸트가 어떻게 다른 지 알고 싶어졌다. 이 때문에 칸트의 이론을 페이퍼의 주제로 선정하게 된 것이다. 이 페이퍼를 통해서 칸트가 주장한 이론 속의 허점을 찾고 그에 대한 나의 의견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칸트의 이론의 핵심은 세 가지에 있다. 도덕성과 자유와 이성. 이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칸트의 이론을 탐구해 볼 것이다.칸트는 오직 의무 동기에 의해서 한 행동만이 도덕적이라고 주장한다. 즉, 그 일이 옳기 때문에 한 행동만이 도덕적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외에 다른 동기에 의해서 한 행동은 도덕적으로 가치가 없다고 한다. 또한 동기가 선하면 결과는 어떻든지 그 행위는 선한 것이라고도 얘기한다. 과연 그럴까?칸트의 동기에 대한 주장을 보며 나는 두 가지의 의문점이 들었다. 첫째는, 어떤 일의 결과가 어떻든 간에, 그 일을 시작한 동기가 선하면 그 행위는 선하다는 주장에 대한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남들에게 도덕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 자신의 동기를 속여서 말한다면?’ 즉 자신을 도덕적인 사람으로 포장하기 위해서 자신이 한 어떤 행위의 동기를 ‘의무 동기’라고 말할 수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사실 같은 과정을 통해 같은 결과를 낳는다면 그 두 행위는 같은 행위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칸트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즉 똑 같은 행위라도 그 동기가 다르다면 그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허나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자신의 행위를 도덕적인 것으로 포장하기 위하여 자신의 동기까지 왜곡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진실은 본인만이 아는 것이겠지만, 사람들이 보기에 , 아니 칸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어떤 행위를 한 사람이 의무에 의해서, 선의지에 의해서 그 행위를 한 것이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도덕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그 사람은 남들이 보기에는 도덕적이지만 사실은 비도덕적인 사람인 것이다. 어떤 사람이 도덕적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따질 때 자신의 평가보다는 사회의 평가가 더 중요하다. 자신을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사람이 도덕적으로 살고자 하는 데는 적어도 일정 부분 남의 이목을 생각하는 것도 있다고 본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행동을 조심하게 되는 것은 그런 것과 관련있지 않을까. 따라서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 있는 도덕 이론은 현대사회에서 별로 유효하지 않은 것 같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동기와 관련해 또 다른 의문점이 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할 때 단 한가지 동기에 의해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경우 의무 동기와 끌림 동기가 혼재할 수도 있다. 이 때 그 행위는 도덕적인가 비도덕적인가? 그 동기들 각각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 크고 적음을 따질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강의에서는 어떤 일을 할 때 처음 목적 외에 그 일을 지지하는 기분이나 감정이 드는 것을 괜찮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애초에 그 사람의 목적에 두 가지 이상의 동기가 똑같이 양립했다면? 만약 어떤 사람이 봉사활동을 하는 데,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에 50%, 그 활동을 통해 얻을 봉사시간에 50% 의 비중을 두고 한다면 그 행위의 도덕적 가치를 어떻게 따져야 할까? 물론 허점이 있을지언정 쾌락의 양을 계산하는 방법을 제시한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에 비하면 턱없이 추상적인 이론인 것 같다.칸트가 말하는 자유로운 행동이란 자율적인 행동을 의미하고, 자율적인 행동이라는 것은 자연이나 사회적 환경에 영향받지 않고 자기 스스로 부여한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고 한다.칸트는 자율과 타율이라는 대조를 통해서 자유를 설명한다. 칸트의 자율은 자신의 외부에서 영향받은 어떤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자신 내부에서 스스로 정한 법칙에 따라 행동할 때 성립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목이 말라서 음료수를 사 먹는 것은 자기 자신의 자율적인 선택이 아니라 목이 마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음료수를 사게 되었으므로 타율적인 선택이라는 것이다.여기서 이 법칙이라는 것이 사회적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 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만의 법칙을 수립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사회화를 거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 누군가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말도 하지 않았는가. 인간이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그것을 가치있게 여겨 줄 사람들이 있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앞서 언급한 자율과 타율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는 이성이 꼭 필요하다. 이성이 명령을 내리기 때문인데, 이 명령은 정언명령과 가언명령으로 나눌 수 있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행동을 할 때, 그것이 수단으로서만 옳다면 그것은 가언명령이다. 정언명령은 그와 반대로 그 자체로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다른 목적과는 상관없는 명령인 것이다. 칸트는 정언명령만 도덕적 명령으로써의 자격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정언명령에는 공식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보편적 법칙의 공식이다. 어떤 일이 도덕적인 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 일을 보편화 시켜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라는 공식이다. 말 그대로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두 번째 공식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나의 목적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비도덕적이라는 것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데, 나를 위해 나를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도 비도덕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자신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어째서 비도덕적인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도 않고 자신의 원하는 바를 이루었으니 아무도 그에게 손가락질 할 수 없는 것 아닐까? 샌델이 예로 든 자살은 사람들 사이에서 아직도 그 도덕성 문제가 분분하다. 사람들과의 사회적 관계에서 보았을 때, 즉 남은 사람들의 슬픔과 충격 등을 생각해 보면 당연히 그러지 않아야 하지만, 만약에 아주 만약에 세상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으며 어떠한 지속적인 인간관계도 없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극단적 선택을 비도덕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또한 만약에 자살의 이유가 어떠한 목적이 아니라 ‘죽고싶기 때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자살이라는 행위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이지 않은가?목적 그 자체가 선하지 못할 수도 있고, 수단이 없이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칸트는 그 점을 간과한 것 같다.또한 내가 의문이 든 부분은 정언명령이냐 가언멍령이냐 하는 것 보다는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사고의 능력이 성인에 비해 미성숙한 어린 아이들이나 지적 장애인들은 존중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누군가 지적할 만한 사안인 것 같은데 책 속에서는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인간의 범주에 어린 아이들이나 지적 장애인들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인가, 그렇다면 그 부분을 명시하고 근거를 밝혔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칸트의 이론을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살펴본 결과 칸트는 다른 철학자들의 이론을 모두 꿰뚫는 비판을 할 수 있을 것 처럼 잘난 체 해댔지만 결국은 자신의 이론도 완벽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니면, 모든 사람들이 자신처럼 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했거나.사실 칸트는 이상주의자였던 것 같다. 내가 제기한 문제점들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동기를 포장하거나, 선한 의지와 그렇지 않은 의지가 똑같이 존재하는 상황을 가정하지 못했고, 사람이 어떤 법칙을 정할 때 외부에 영향받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이론을 수립할 때의 사회상황은 어땠는 지 잘 알 수 없지만, 확실히 이는 복잡하고 다원화된 현대사회에 어울리는 이론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칸트처럼 살기는 힘들다. 어떤 사람이든 목적을 위해 수단을 선택하는 방법이 더 편리할 것이다. 사실, 목적 자체를 선택한다는 것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 않은가. 모든 일에 일일이 ‘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목적인가? 수단인가?’하는 헷갈리는 질문을 하는 것도 어리다. 지금 내가 페이퍼를 쓰는 것도 ‘영어 공부, 혹은 철학 공부’라는 목적이 되기도 하는 동시에 ‘좋은 성적’을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세상은 칼로 무 자르듯 쉽게 흑 아니면 백으로 나뉘어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칸트의 법칙이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가 간과한 점은 ‘중간’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스포츠 저널리즘에서의 윤리의 필요성과 나아가야 할 방향1.서론2. 스포츠 저널리즘2.1 미디어와 스포츠의 결합2.2 스포츠 저널리즘의 역할3. 저널리스트의 보도윤리3.1 언론윤리 실천의 원칙3.2 언론윤리의 쟁점3.3 언론윤리의 제고방향4.스포츠 저널리스트에게 요구되는 보도윤리4.1 스포츠 저널리스트에게 윤리가 필요한 이유4.2 스포츠 저널리스트의 직업윤리5. 결론1.서론언론윤리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언론윤리란 간단히 언론인과 언론사가 필수적으로 지켜야 할 도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언론의 외적 독립의 근거고 내적 생존의 요건이다(이재진, 2006, 인터넷 언론 자유와 인격권). 그런데, 스포츠 저널리즘에도 언론윤리가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스포츠 저널리즘이 그저 경기 일정이나 내용을 보도하는 것쯤으로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스포츠 저널리즘이란 스포츠와 관련된 이슈를 각색, 편집, 논평하여 수용자에게 전달하는 일련의 활동을 말한다. 즉, 스포츠와 관련된 다양한 이슈를 여러 형태로 기획 편성하여 스포츠에 대한 관심사를 재현하고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활동이다 (권욱동, 2007).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그 범위가 넓다. 경기 일정, 내용, 결과뿐만 아니라 스포츠와 관련된 모든 이슈를 그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스포츠 선수의 이적설을 다루는 기사도 스포츠 저널리즘의 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포츠 저널리즘에 윤리성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히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적설이 회자되고 있다면 그것에 대해서 사실만을 전달할 것인데 왜 윤리성을 운운하는 지 물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수의 입장에서 기사를 쓰느냐, 구단의 입장에서 기사를 쓰느냐 하는 것에 따라 그것을 본 독자가 떠올리는 선수의 이미지는 180도 달라질 수 있다. 계약기간이 만료되지 않았지만 더 큰 리그에 가서 뛰고 싶은 선수 개인과 기량이 뛰어난 선수를 데리고 있어야.2.2 스포츠 저널리즘의 역할많은 학자들의 저널리즘의 역할에 대한 일반적인 사전 연구 기록을 토대로 스포츠 저널리즘을 설명한다면 현대사회에서 스포츠에 관한 지식 또는 의견과 사상을 만들어 일정한 매개체를 통해 수용자에게 전달하며 다음과 같은 역할을 가진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첫째, 스포츠 저널리즘은 개인적, 집단적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메시지를 만들고 구성하고 전달함을 통해 수용자들에게 건전한 휴식과 레크리에이션을 가능하게 한다.둘째, 뉴스, 해설과 논평을 통해 수용자가 필요로 하는 스포츠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개인과 집단, 나아가 국가와 국제환경을 이해하는 인식의 근거가 되도록 함으로써 스포츠 저널리즘은 수용자에게 스포츠 정보를 제공하는 1차적 역할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세계를 이해하는 초석을 다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셋째, 사회화와 교육의 수단으로서 스포츠를 통한 공정한 승리, 패배의 인정 등 개인으로 하여금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규범을 공유하게 하고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개발하고 숙련된 기술을 연마하도록 한다.넷째, 각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스포츠와 제반 문제에 대한 선택과 결정에 필요한 동기를 부여하여 개인이나 공동체의 활동을 원활하게 촉진시킨다.마지막으로 스포츠 저널리즘은 스포츠와 관련한 대중의 관심사를 불러일으키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를 조장하여 수용자로 하여금 공동체가 당면한 스포츠 제반 문제에 대해 논쟁과 토론을 통해 합의를 창출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여론을 형성하게 하는 토론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한다(유미진, 2007)3. 저널리스트의 보도윤리3.1 언론윤리 실천의 원칙언론윤리는 여타 윤리보다 실천적 측면이 더욱 중요한 규범이다. 따라서 스스로 지켜야 하는 자율성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언론윤리 실천의 정당성은 대개 여섯 가지 원리에 근거한다.첫째, 중용의 원리: 언론인이 사안을 서술할 때 양극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할 것, 즉 형평성을 잃지 말 것을 암시한다.둘째, 보편적다섯째, 언론윤리 교육이 부족하다. 실제 한 조사에 따르면 학교에서 언론윤리 법제 관련 강의를 수강한 경험이 있는 기자가 그렇지 않은 기자보다 언론윤리에 대해서 상급자나 데스크와 더 많은 대화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김영욱, 2004, 재인용).윤리적 결정은 개인의 선호나 신조에 따라서 단순하게 판단대상에 대한 ‘좋다/싫다’의 감정이 아니라 필요한 증거와 합리적인 추론을 통한 설득에 근거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취재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판단하기 힘들 때 언론인은 다양한 딜레마를 겪는다. 언론인의 잘못된 윤리적 선택의 결과는 예상 밖의 큰 사회적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3.3 언론윤리의 제고방향언론 윤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중의 첫 번째로는 ‘진실을 전달하기 위한 노력 강화’를 들 수 있다. 기자는 진실을 전달하기 위한 책임이 있으나 실제로 이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오보 발생의 원인은 기자의 불충분한 취재(56.6%), 기자의 부주의(22.4%), 언론사 간의 지나친 경쟁(9.0%) 순으로 나타나서 진실 전달에 무책임한 측면이 가장 큰 요인으로 나타났다(한국언론재단, 2001, 재인용).결국 언론인은 공적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하며 적절한 취재를 통해 오보를 내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다음으로는 ‘속보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말할 수 있다. 언론인이 윤리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속보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보의 주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 독자나 시청자는 어떤 매체가 가장 빨리 보도했는가에 대해 관심을 갖거나 이를 신뢰성의 척도로 이용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독자는 빠른 정보보다는 정확한 정보를 요구한다.세 번째로 ‘정치적 중립 원칙’이 있다. 언론인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정치인과 개인적으로 너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서는 안 되며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를 지키는 것이 쉽지 않다. 언론인은 정치인과의 개인적 친분을 통한 권언 유착적인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 대개 언론인은 안정적제자 또는 문지기의 부재라는 인터넷의 특성으로 인해 인간의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하는 사건들이 손쉽게 발견되고 만들어지고 확산되어 전 세계 네티즌들에게 보도될 뿐 아니라 주 언론기관에 의해 재보도 되기도 한다(안동근, 2001, 재인용).신문기자들이 보도하는 선수들의 사생활, 무분별한 행위, 팀의 착취 그리고 스포츠 비즈니스 등에 대한 최근의 탐사보도 행위는 선수들과 단체들이 어쩔 수 없이 미디어의 인터뷰에 응하는 모습을 동반케 하였다. (유미진,2007)이러한 언론조직과 언론인의 보도행태 때문에 스포츠 보도는 선정적이고 흥미 위주의 기사들로 채워지고 있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스포츠 저널리즘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스포츠 저널리스트에게 강조되는 윤리강령을 실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4.2 스포츠 저널리스트의 직업윤리앞서 나온 스포츠 보도에서의 문제점을 교정하기 위해서 스포츠저널리즘의 주체인 스포츠 저널리스트가 지켜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이 의무에는 정보의 게이트 키퍼로서 명확한 판단을 내릴 것, 추잡하고 부적절한 정보보다는 확실하고 온전한 정보를 전할 것, 판매를 늘리기 위해 추문을 들추는 일을 피할 것, 공정하고 정확하게 보도할 것 등이 있다.스포츠 저널리스트의 윤리적 의무들을 나열해 보면첫째, 자신의 독특한 지위에 맞는 독특한 직업윤리를 지켜야 한다. 저널리스트가 개인의 이기심에 집착하거나 소 집단적 이기주의에 빠질 때 각국 정부는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공익의 요구를 명분으로 언론기관이나 언론인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자유로운 언론은 외부의 간섭에 의해 자존심을 떨어뜨릴 수 있는 위험의 기회를 갖게 된다.둘째, 그들은 다른 직업인보다 훨씬 높은 도덕적 품위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언론은 스스로 정치권력을 비롯한 사회의 제 세력을 거리낌없이 비판할 수 있고 공중의 신뢰를 얻으며 사회 환경을 감시하고 견제하면서 사회통합에 효율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게 된다. 저널리스트가 행여 대중들로부터 도덕적 정당성을 의심받게 되거나 도덕성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스포츠 저널리스트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지침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스포츠가 많은 대중들에게 관심을 받는 분야로 떠오르면서 미디어와의 결합이 가속화되었고 그 결과 스포츠의 위상은 더욱 더 높아만 가고 있다. 그 때문에 스포츠 저널리즘의 저변도 덩달아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스포츠 저널리즘이 사회로부터 받는 영향이나 사회에 주는 영향은 증대되고 있기 때문에 스포츠 저널리즘은 윤리성을 가질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언론윤리란 간단히 언론인과 언론사가 필수적으로 지켜야 할 도리를 의미한다. 여러 가지 원칙이 있지만 중용의 원칙, 보편적 도덕률의 원칙, 무지의 베일 원칙 등 크게 여섯 가지의 원칙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이에 덧붙여 스포츠 저널리스트에게 특화된 언론윤리강령이 있는데 원정 경기 등의 여행에 있어 숙박비, 식비, 교통비 등의 자비 부담 원칙, 선물이나 향응의 거절, 구단과 유착되어 저널리스트 활동과 사적인 활동의 이해갈등이 일어나지 않게 함 등이 있다. 나열하면 세가지지만 뭉뚱그려서 보자면 저널리스트와 구단 간의 유착이 일어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항목이다. 이는 ‘권언유착의 지양’이라는 언론윤리 항목과 같으면서도 다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스포츠 기자에게도 정치부,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같이 많은 유혹이 있을 수 있다. 특정 구단이나 선수를 호도함으로써 독자들이 팀에 대해서 갖는 이미지를 바꾸어 놓을 수 있고, 이는 직접적으로 관중들로부터 얻는 수입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특정 구단의 선수가 ‘얼짱’이라는 띄워주기 식 기사를 보도함으로써 이를 본 독자들이 그 선수를 보기 위해서 직접 경기장에 갈 수도 있고, 그 선수가 마음에 들면 유니폼을 살 수도 있다는 것이다.앞으로의 스포츠 저널리즘의 윤리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공생의 관계에 있는 스포츠와 저널리즘은 양자 모두 본질을 왜곡하지 않으면서 공존의 문화를 형성할 수 있도록 어떤 자구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스포츠에 대한 률출판사
동래 충렬사충렬사 ? 충렬사는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부산지방 순국선열의 위령을 모신 곳이다 . 현재의 충렬사는 1605 년 ( 선조 38 년 ) 에 동래부사 윤훤이 동래읍성 남문 안에 충렬공 송상현을 모신 송공사를 세우고 매년 제사를 지낸 것을 시작으로 1624 년 ( 인조 2 년 ) 에 선위사 이민구의 건의로 『 忠烈祠 』 라는 사액을 받고 부산진성에서 순절한 충장공 정발을 모시게 되었다 . 그 후 1652 년 ( 효종 3 년 ) 에는 충렬사를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선열의 충절과 학행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강당과 동서재를 지어 안락서원이라 하고 사우와 서운으로서의 기능을 갖추었다 . 1709 년 ( 숙종 35 년 ) 에는 충렬공과 충장공이 순절할 때 함꼐 전사한 양산군수 조영규 , 동래교수 노개방 , 유생 문덕겸 , 양조한 , 비장 송봉수와 군관 김희수 , 겸인 신여로 , 향리 송 백 , 부민 김 상 등의 위패를 모신 별사를 옛 송공사 터에 건립하였다 . 1736 년 ( 영조 12 년 ) 별사에 모셨던 분을 충렬사에 합향하였으며 1772 년 ( 영조 48 년 ) 에 다대첨사 윤흥신공을 추배하고 , 임란 때 송상현공과 정발장군을 따라 순절한 금섬과 애향을 위해 충렬사 동문 밖에 사당을 세웠다 . 충렬사는 그 후에도 여러 차례의 중수와 보수를 하여 현재는 93,823 ㎡의 경역에 본전 외 15 동의 건물이 있으며 , 부산지방에서 순절한 93 위의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5 월 25 일 부산 시민 모두의 정성을 모아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 충렬사 홈페이지 (http://cys.busan.go.kr) 발췌오시는 길 일단 ! 부산에 간다 버스 충렬사 , 서원시장 정류소 : 42, 99, 73, 129, 129-1, 148, 183, 189-1, 동래한양아파트 정류소 : 29, 31, 43, 44, 49, 52, 57, 73, 100, 100-1, 129, 129-1, 144, 148, 183, 200, 210, 307( 좌석 , 공항 ), 504, 5144, 183, 189, 506 교대앞역 : 29-1, 31, 43, 52, 129, 129-1, 189, 189-1, 504, 506 연산동역 : 99, 189, 189-1단면 도 1 본전 21 휴게소 2 의열각 22 24 공신공적비 3 정화기념비 23 군관청 4 내삼문 24 동래읍성지 5 기념관 25 동장대 6 소줄당 7 외삼문 ( 충렬문 ) 8 관리사무소 9 송상현 공명언비 10 전통혼례장 11 후문 12 연못 ( 의중지 ) 13 안내소 14 정문 15 충렬사 안내도 16 매표소 17 충렬탑 18 부산관광안내도 19 소의당 20 화장실연혁 1605 년 송공사 전립 1624 년 충렬사 사액 하사 1652 년 현 위치로 이전 1972 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7 호로지정 1978 년 정화사업으로 현 시설로 확장 1991 년 정철 등 13 위 합사 1996 년 박귀희 등 3 위 합사 2003 년 김망내 1 위 합사 2007 년 이응원 1 위 합사 충렬사 홈페이지 (http://cys.busan.go.kr) 발췌충렬탑 안락동 838 번지 충렬사 입구 동쪽에 충렬탑이 높이 서서 그 위용이 늠름하다 . 높이 약 5m 의 화강암 대석 위에 약 10m 의 곧은 외줄기 탑이 높이 솟았다 . 대석 정면 한 가운데는 ‘ 忠烈 ’ 이라는 각자가 힘차게 새겨져 있다 . 대석 위에는 갑옷에 투구를 쓴 장수가 군도를 높이 들고 앞서고 , 그 뒤로 깃발을 든 무사가 따르고 , 활을 쏘는 민간인에 민간인 여인이 화살을 건네주고 횃불과 깃발을 치든 사람이 따르고 있다 . 이 여섯 사람의 동상이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보이고 있다 . 이 탑은 충렬사 정화와 안락로타리 준공이 함께 이루어진 1978 년 6 월 27 일 안락로터리 중앙에 세워졌다 . 그뒤 주위의 교통이 번잡해 갔다 . 안락로타리의 교통대책으로 1989 년 7 월 29 일 오늘날의 자리로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 이탑이 처음섰던 자리는 안락로터리 지하도 위가 된다 . 참고 : 문화재청정문정문전경의중지의중지 원래 작은 연표 때 본 것과 같이 물 속으로 액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외삼문외삼문 ( 충렬문 ) 정문을 들어서서 화강암으로 된 대로를 따라가서 계단을 올라가면 나오는 문 . 문으로 들어가면 왼쪽에는 의열각 , 오른쪽에는 소줄당이 자리하고 있다 .의열각의열각 임진왜란 때 , 벽돌을 던지며 왜적에 맞서 싸운 두 의녀 ( 義女 ) , 그리고 그의 남편과 송상현 공의 첩 금섬 , 애향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 안락서원일 당시에 열녀당 , 의열당이였던 곳이 충렬사로 정화사업을 거치면서 의열각이 되었다 .소줄당소줄당 임진왜란 때 돌아가신 선열들의 호국충절을 기리고 , 이를 후세에 본보기로 삼기 위해 1652 년 ( 효종 3 년 ) 에 세운 강당으로 , ‘ 소줄 ’ 이란 말은 선열들의 충절이 해 , 달보다도 밝고 큰 산보다도 높다는 뜻이다 . 부산의 유림 홈페이지 발췌내삼문내삼문 의열각 , 소줄당을 지나 본전으로 들어가기 위한 문이다 .정화기념비정화 기념비 1978 년 정화사업 때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비이다 . 이 기념비에는 향파 이주홍 선생이 쓴 비문이 새겨져 있다 . 향파는 요산 김정한과 더불어 부산을 대표하는 문인이다 . 그는 특유의 호소력 있는 문체로 원형의 커다란 동판 위에 선열들의 행적을 자세히 묘사하였다 . 글로벌 세계대백과 발췌본전 송상현 공 , 동래부 순절 제공의 신위 등 총 89 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곳이다 . 본전에 걸려있는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쓴 것이라고 하며 , 본래의 현판은 기념관에 보존되어 있다 . 충렬사의 중심이 되는 본당 건물로서 경역의 가장 높은 곳에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 이 건물에는 앞서 기술한 임란공신 , 의병 87 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 본전의 중앙에 3 인의 수위 ( 首位 ) 가 , 동서로 배위 ( 配位 ), 종위 ( 從位 ) 의 순으로 모셔져 있다 .본당에 모셔진 89 개 위패의 위치와 이름이 설명되어있는 안내도 부산의 유림 홈페이지 발췌전통 혼례장 충렬사의 전통혼례는 우리 지원하고 혼례복 , 사진 등 기타준비사항은 혼례 당사자가 혼례대행업소를 선정하여 혼례를 치르도록 하고 있다 . 장소 : 충렬사 경내 전통혼례장 및 소의당 ( 폐백실 ) 시간 : 10:00~16:00 (10 월 ~ 익년 3 월 10:00~15:00), 1 시간 간격 사용료 : 10 만원 ‘ 충렬사 ’ 홈페이지 발췌기념관 동래부 순절도를 비롯한 교지 , 갑옷과 투구 , 고문헌 , 동래성 전투 그림 등 임란 당시의 전황을 살필 수 있는 여러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 ‘ 부산의 유림 ’ 홈페이지 발췌의열각 본당보다 한 단 아래에 동향으로 세워져 있다 . 동래성에서 기왓장으로 왜적과 싸웠던 무명의 두 의녀와 당시 송부사와 정발 장군을 따라 순절한 김섬 , 애향 두 열녀의 4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 ‘ 부산의 유림 ’ 홈페이지 발췌송상헌 공명언비송상현공 명언비 왜적이 동래성을 침공하기 전 취병장에 집결 , 우리의 전의를 타진코자 패목에 “ 싸우고 싶거든 싸우고 싸우고 싶지 않거든 우리에게 길을 빌려달라 ” 고 하자 “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 .” 는 내용의 글을 쓴 팻말을 적중에 던지고 성과 운명을 같이할 결의를 다짐은 호국정신을 잘 나타낸 송상현 공의 명언을 비에 기록한 것으로 1982 년 6 월 10 일에 제막하였다 . 참고 : 문화재청24 공신 공적비24 공신 공적비 임진왜란 당시 동래지방 출신으로 창의모병하여 왜적과 싸우다 장렬히 순절한 선무원충공신녹편에 등재된 공신 가운데 역전토적에 전공이 혁혁한 24 별전공신의 공적비고 1988 년 5 월 14 일 제막되었다 .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원래는 군관청으로 올라가는 길목인데 , 답사를 나간 날 하필이면 공사중이어서 직접 가지 못하고 ,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서 작성한 점 양해해 주십시오 .^^*군관청군관청 1973 년에 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 21 호로 지정되었다 . 조선시대 동래부청사 건물의 하나로 군사 관계를 다룬 군관들의 집무소이다 . 동래구 수안동에 있는 장관청과 함께 국방상의 요충례 수리하였다 . 그 뒤 1709 년에 부사 권이진이 다시 고쳤으며 1812 년 ( 순조 12) 에 부사 조정철이 증축하였다 . 일제강점기에는 관아 건물의 기능을 잃고 오랫동안 방치되었으며 주변의 도시화로 문화재의 훼손과 그 활용의 어려운 점을 고려하여 1982 년 7 월 동래구 수안동 동래시장 부근에 있던 건물을 충렬사경내로 옮겨와 세웠다 . 부산 동래구의 대표적 관아 건물로 정면 6 칸 , 측면 2 칸으로 된 팔작지붕의 단층집이다 . 忠烈祠志 p.128 * 군관청 , 동래읍성지 , 동장대로 통하는 길이 공사로 인하여 막혀있어 부득이하게 인터넷상의 사진자료를 사용하였습니다 .동래읍성지동래읍성지 1972 년 6 월 26 일 부산광역시기념물 제 5 호로 지정되었다 . 충렬사뒷산에서 마안산을 거쳐 동래향교뒷산까지의 구릉지와 동래 시가지 중심 지역인 평탄지일부를 포함한다 . 전형적인 평산성 ( 平山城 ) 형식으로 축조되어 산성과 평지성의 장점을 모두 갖춘 읍성이다 . 성의 둘레는 1,962m, 높이 0.5~3m 이며 , 넓이는 103,647㎡ 이다 . 삼한시대에 건립되었으나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 사이에 수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네이버 백과사전 발췌동장대동장대충렬사 제향 충렬사 제향이란 ? 임진왜란 때 부산지방을 침략해 온 왜적을 맞아 중과 부적이었지 만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자신 의 목숨을 희생한 선열들의 호국정신과 숭고한 뜻을 기리고자 매년 5 월 25 일 부산시민 모두의 정성을 모아 봉행하는 제사이다 . 일시 : 매년 5 월 25 일 10:00~10:50 장소 : 충렬사 본전 및 의열각 제관 : 8 명 ( 헌관 1, 분헌관 2, 축관 1, 집례 1, 집사 3) 진행순서 개제선언→제관 재배→참례자 배례→ 수위전 분향→배 . 종위전 분향→ 수위전 헌작→배 . 종위전 헌작→ 독축 →대통령헌화 분향 ( 시장대행 )→ 추모사 →참례자 분향→제관 재배→참례자 배례→ 폐제 선언→ 분축 http://cys.busan.go.kr/01_cysinfo/06_01.jsow}
지켜야 할 것과 포기해야 할 것(좌우파사전-17.소수자 인권을 읽고)‘소수자’의 인권. 사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말을 듣는 그 순간에는 ‘아 정말 문제가 심각하구나’ 혹은 ‘빨리 개선되어야 할 텐데’ 라고 생각해놓고는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나의 문제가 아니고, 아직은 나에게 크게 와 닿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부분을 읽으면서, ‘여성’도 소수자, 아니 사회적 약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되었고 내가 앞으로 나갈 이 사회에 성적 차별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됐다. 나는 내 스스로를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었지만, 그것은 실제로 그래서가 아니라 아직 내가 피부로 느끼지 못한 것 뿐이였던 것이다. 그것은 한 강연에서 들었던 말을 떠올리게 했다. “모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하는 말이였다. 하지만 오늘, 자의는 아니었지만 이 책을 읽게 됐고, 나의 약자적 면모를 자각하게 되었으므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이 책에서는 소수자를 크게 성적 소수자와 그 외의 여성, 이주민, 장애인 등의 소수자로 분류한다. ‘성적 소수자’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정도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생각외로 많은 성적 소수자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복장도착자, 사디스트, 마조히스트 등도 모두 성적 소수자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동성애자 문제만 해도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고들 하지만 이성은 이해해도 감성은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부터도 그러하다. 비교적 잘 알려진 동성애에 관한 문제에도 이러한데, 앞에서 말한 사디스트나 마조히스트들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보통의 사람들은 그들을 ‘변태’라고 부른다. 물론 나 또한 그들을 ‘성적 소수자’라고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그러나 그들은 그저 남들과 ‘취향’이 다를 뿐 똑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들이 어떻든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우파의 사람들은 이들을 인정하면 사회적 질서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며 반대하고, 좌파의 사람들은 이들이 우리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므로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의 이성은 좌파의 사람들을 지지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유가 있고, 그 자유가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켜져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을 인정한다고 해서 사회적 질서를 파괴한다는 말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들었다. 그들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사람의 성적 취향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므로 성적소수자가 더 늘어나 사회를 파괴한다든지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을 인정해준다면, 음지에 숨어있던 많은 성적 소수자들이 당당하게 사회 활동을 할 수 있게 되므로 더 많은 이들의 능력이 밖으로 표출되는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사회적으로 보아서는 오히려 이득인 것이다. 이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우파의 의견은 그저 변화를 두려워하는 겁쟁이들의 변명에 불과한 것 같다. 사실 나의 이성이 지지한 것에 감정도 동의할 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차차 나의 감정을 설득해가야 할 것이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 신념을 가지기 위해서.다음으로는 여성, 장애인, 이주민 등의 소수자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앞에서 말했듯 나는 여성이고 여성은 소수자(사회적 약자)이다. 그래서 아직도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엄존한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도 그러한 차별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사실 장애인이나 이주민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특별한 장애가 없는 정상인이며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사회에는 엄청난 손실이 될 것 같다.장애인들은 거동의 불편보다도 사회적 시선 때문에 고학력을 가지기가 힘들다. 그러니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워질 수 밖에 없고, 구한다 해도 일반인들이 기피하는 3D업종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사실은 이들이 스티븐 호킹 박사 같은 천재성을 가진 사람들이었는데 우리 사회가 그들의 성장 가능성을 싹부터 잘라버린 거라면? 그들이 세웠을 혁혁한 공을 우리가 스스로 거부한 셈이 되어버린다. 이주민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비록 그들이 이주민이기는 하지만,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 한국인이다. 비록 다른 외모를 하고 있더라도 말이다. 그들이 우리나라를 위해 무언가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수십만명에 이른다. 그 중 대부분은 이주노동자이거나 혼인을 통해 이주한 경우라고 한다. 우리는 이들을 우리와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고,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수상한 눈빛을 보낸다. 사실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배우고 훨씬 더 선량한 사람들일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우파는 이러한 소수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직접적으로 비판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것들을 비판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정당하지 못한 행위기 때문일 것이다. 대신 그들은 ‘재원의 부족’을 이유로 들며 은근슬쩍 발을 빼려고 한다. 지금은 분배가 아니라 성장을 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조치들의 역차별 가능성을 제기하며 우회적으로 부정을 드러낸다.좌파는 소수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번에도 나는 좌파의 의견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 나 스스로를 약자라고 생각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수자들에 대해 오랫동안 행해져 온 차별은 그들의 추격의지마저 꺾어버릴 만큼 커다란 격차를 만들어냈다. 그러므로 역차별에 대한 논의는 소수자와 다수자간에 벌어진 차이가 어느 정도 좁혀졌을 때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분배보다 성장을 해야 할 때라는 의견에도 반대한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은 ‘먹고 살 만한 나라’이다. 꼭 1등이 되어야만 분배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빠른 성장으로 사회 곳곳에 뿌리깊은 부작용을 남길 바에는 조금 늦더라도 곳곳의 그늘에 숨어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손을 건네 모두모두 데리고 올라가야 할 것이다.나는 첫 번째와 두 번째에서 모두 좌파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이런 선택을 한 나조차도 이것이 모두를 만족시키고 모두를 좋게 변화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있다. 좌파의 의견을 선택하며 우파의 근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는 했지만 사실 우파의 의견이 일정부분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내가 선택한 것은 지켜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고, 선택하지 않는 것은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동전에 양면이 있듯 모든 일에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니 ‘더 나은 쪽’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이 책을 읽으며 평소에 생각해왔던 나의 좌파적 성향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맹세코, 좌우를 떠나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지지를 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