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동*
Bronze개인인증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4
검색어 입력폼
  • 목민심서 요약 독후감 및 느낀점 평가D별로예요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맨 처음 과제로 주어진 책들은 국부론, 과학혁명의 구조, 목민심서 이었다. 이 세 가지 책 중에 한 권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는 것이 과제였다. 세 가지 책 중에 목민심서를 고른 이유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책 이어서 익숙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니 아는 내용이 없었다. 창피한 얘기지만 나는 목민심서가 조선시대 실학자 정약용 선생이 저술했다는 것 말고는 목민심서에 대해 아는 내용이 없었고 무슨 내용의 책 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목민심서가 공직자윤리와 공직자가 해야 할 일들을 제시하는 내용인 것을 알고 나는 주저 없이 목민심서를 택했다. 훗날 공직을 꿈꾸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이 올바른 지침서가 될 것 같아 이 책을 읽게 되었다.*책 소개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이 목민관, 즉 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저서이다.이 책은 정약용이 57세 되던 해에 저술한 책으로서, 그가 신유사옥으로 전라도 강진에서 19년간 귀양살이를 하고 있던 중 풀려난 해인 1818년(순조 18)에 완성된 것이다. 전체 책의 내용을 부임, 율기, 봉공, 애민, 이전, 호전, 예전, 병전, 형전, 공전, 진황, 해관 등 총 12부로 나누어서 지방 관리의 부임으로부터 해관(해임)에 이르기까지 목민관은 오직 국민을 사랑하고 나라의 일을 염려하여 관리들의 횡포와 부정을 막고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방법론을 이야기 하고 있다.*목민심서 요약목민심서의 전체 내용을 12부로 나누어 각 부에서 강조하는 내용들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첫 번째는 부임육조 이다. 부임육조에서는 목민관이 발령을 받고 근무지로 부임할 때 유의해야할 6가지 사항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정약용은 다른 벼슬은 구해도 좋으나 목민의 벼슬은 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였다. 이는 목민관이 만백성을 보살펴야 하는 직책인 동시에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또 행장을 꾸릴 때 이부자리 외에 책을 한 수레 싣고 가면 맑은 선비의 행장이 된다고 말해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 하였다. 부임행차를 할 때는 목민관 자신만을 생각지 말고 함께 행차하는 하인의 입장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나라에서 주는 비용 외에는 백성의 돈을 받아서는 안 되고, 일을 처리할 때는 공과 사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두 번째 율기육조 이다. 율기육조에서는 목민관의 바른 몸가짐을 강조한다. 목민관은 일상생활을 절도 있게 하고, 옷차림은 단정히 하며, 백성들을 대할 때 에는 장중하게 하는 것이 옛날부터 내려오는 수령의 도(道)라고 말했다. 또 항상 청렴한 마음가짐을 강조 했다. 다른 사람의 청탁을 받아서는 안 되며, 생활은 언제나 검소하게 해야 한다. 뇌물은 누구나 비밀스럽게 주고받겠지만, 한밤중에 주고받은 것도 아침이면 드러난다고 말하며, 선물로 보내온 물건은 아무리 작아도 은혜로운 정이 맺어지면 이미 사사로운 정이 행해진 것이라고, 뇌물을 경계하라고 말했다. 집안을 잘 다스리는 것도 목민관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말했다. 지방에 부임할 때는 가족을 데리고 가지 말아야 하며, 형제나 친척이 방문했을 때는 오래 머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는 쓸데없는 청탁이 오가고 물자가 낭비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이다.세 번째는 봉공육조 이다. 봉공육조에서는 위로는 임금을 섬기고 아래로는 백성을 섬기는 방법이 적혀 있다. 목민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임금의 뜻을 백성에게 잘 알리는 일이다. 당시에는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 교문이나 사문과 같은 공문서를 각 고을로 내려 보냈다. 하지만 글이 너무 어려워 일반 백성들이 그 뜻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목민관은 이것을 쉽게 풀어써서 백성들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목민관은 법을 잘 지키는 한편 지방에서 내려오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데 힘써야 한다. 공문서는 정해진 기간 내에 완벽하게 처리해야 한다. 또한 공납과 같은 세금을 공정하게 징수해서 아전들이 부정을 저지르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고 말했다.네 번째는 애민육조이다. 애민육조는 백성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목민관은 노인을 공경하는 예(禮)가 폐지된 후에 백성들이 효도를 하지 않으니, 수령이 된 사람은 다시 노인을 공경하는 예를 거행해야 한다고 했다. 또 어린이를 잘 양육하고 보살피는 것은 옛날의 훌륭한 임금들의 큰 정사였으니 어린아이를 잘 보살펴야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또 홀아비, 과부, 고아, 늙어 자식 없는 사람을 4궁이라 하는데, 이들은 궁하여 스스로 일어날 수 없고, 남의 도움을 받아야 일어날 수 있다고 하여, 4궁을 보살피는데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좀 의외인 점은 조선시대에는 과부의 재가를 엄격히 금했는데 목민심서에서는 도읍에 중매를 맡은 이가 있어 홀아비와 과부를 골라 재혼시키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다섯 번째로 이전육조이다. 이전육조에서는 먼저 아전 단속에 대해 강조했다. 아전을 단속하는 일의 근본은 스스로를 규율함에 있다고 했다. 목민관 스스로 자기 몸을 잘 다스려야 아전을 잘 다스릴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목민관은 아전을 은혜로 대하고 법으로 단속해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학문이 뛰어난 목민관일지라도 아전을 단속할 줄 모르면 백성을 다스릴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백성을 잘 다스리려면 인재를 등용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인재를 뽑을 때는 먼저 충성과 신의를 기준으로 삼고, 그 다음 재주나 지혜를 보아야 한다고 했다. 또한 관리가 한 일은 반드시 공적을 따져 상벌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여섯 번째는 호전육조 이다. 호전육조는 전정, 세법, 곡부, 호적, 권농의 6개의 파트로 나누어져있다. 전정이란 밭에 관한 정책을 말하는 것으로, 밭을 측량하고 개간하는 데에 관한 내용이다. 기존의 측량방법과 그에 따른 세금 산출법에 대해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할 사항이라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세법이란 세금에 관한 내용을 말한 것인데 원칙을 엄격하게 지킬 것이며 수령이하의 관리들의 횡포가 개입되지 말아야 할 것을 강조한다. 곡부란 곡물 장부를 뜻하는 것인데 여기에서는 특히 조선 후기에 농민들의 삶을 힘들게 했던 환곡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환곡을 기한을 지켜 반드시 되돌려 받되 아전 등이 고리를 착취하는 일이 없도록 수령이 직접 관리하여야 한다는 점과, 되돌려 받는 시기 등이 농민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경우에 어느 정도의 재량을 보아 줄 것을 당부한다. 호적은 인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호적제도는 조선 후기 전정이나 군정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정보였기 때문에 이에 관한 탈법이 이루어지지 않아야 함을 거듭 강조한다. 평부는 주요 조세수입의 하나였던 부역에 관한 내용이다. 부역을 평등하게 부과할 것을 강조하는 한편, 갖가지 부역을 만들어서 관의 욕심을 채우는 관행을 비판하며, 법으로 정해진 부세만을 거두고 그 밖의 부세는 과감히 없애버릴 것을 권한다. 권농은 말 그대로 농사를 권할 것을 말하고 있는 부분이다. 특히 농사를 짓는데 대한 여러 가지 혜택을 마련하는 한편,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실용적인 기술을 보급할 것을 강조한다.일곱 번째로 예전육조이다. 예전육조에서는 제사, 교육, 신분 제도, 과거제도, 손님접대에 대해 설명 하고 있다. 먼저 제사는 수령이 몸소 행하되, 경건하고 지성스럽게 목욕재계하여 많은 선비들의 선도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 다음 손님접대는 오례중의 하나로 너무 과하지도, 너무 약소하지도 않게 절도에 맞게 해야 한다고 했다. 또 교육을 진흥시켜 백성들을 교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분 제도에서는 무리에는 귀천이 있으니 마땅히 그 등급을 구별해야 하고, 세력에는 강약이 있으니 마땅히 그 형편을 살펴야 한다고 했다. 과거제도는 사람의 마음씨를 흐트러뜨리는 것이지만, 관리를 선발하는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그 공부를 권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여 과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여덟 번째는 병전육조이다. 병전 육조에서는 군대를 키우고 잘 훈련하여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당시에는 병역 의무자가 군대에 가는 대신 옷감을 내고 면제를 받는 군포제도가 있었는데, 여기에는 부정이 많았다. 목민관은 이러한 부정을 가려내어 가난한 백성들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또한 병기들을 수리하고 보충하여 늘 비상사태에 대비해야 하며,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는 목숨을 걸고 지방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평화는 구걸을 통해서가 아닌 이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와 힘이 있을 때 지킬 수 있다"며 "백 년 동안 군을 쓸 일이 없다고 해도, 단 하루 준비를 소홀히 할 수 없다.”고 말하며 늘 군대를 키우고 잘 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아홉 번째는 형전육조 이다. 형전육조는 죄인을 다스리는 방법과 재판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재판을 할 때는 사건의 전말을 모두 파악한 뒤 신중하게 판결해야 하며, 특히 옥에 가두거나 형벌을 내릴 때 잘못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거짓으로 남을 고발한 사람은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하였다. 예로부터 어진 목민관은 형벌을 약하게 했으니 지나친 형벌은 피하는 것이 좋다. 옥에 갇힌 죄수에게는 집과 식량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폭력을 일삼은 흉악한 자들은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말했다.열 번째는 공전육조이다. 공전육조에서는 산림, 수리시설, 관아건물 수리 등 환경 미화 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목민관은 나라에서 벌채를 금한 봉산에서 기리는 소나무는 금령이 있으니 그것을 보호해야 하고, 벌목하려는 자가 있는지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고 했다. 또 수리사업은 농사의 근본이니, 수리시설을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관아 거물을 수리하고 도로를 닦고 성곽을 보수 하는 것과 공업을 육성하는 것 또한 목민관의 책무라고 했다.
    독후감/창작| 2014.05.27| 5페이지| 2,000원| 조회(1,259)
    미리보기
  • 미국사 요약 및 독후감
    먼저 내가 미국사를 읽게 된 계기는 행정학이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미국사를 알면 행정학을 이해하기 쉽고 행정학에 접근하기가 수월할거 같아 관심이 생겨 읽게 되었다.이제부터 내가 읽은 미국사를 주요사건별로 간략하게 요약해 써내려 가겠다. 처음에 아메리카 대륙에는 지역마다 다른 생활 방식을 가진 아시아계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그 후에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500년 전 노르웨이 바이킹이 지금의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 하였고 전 세계가 신대륙의 존재를 알게 된 계기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하고 나서부터였다. 후에 아메리카대륙에 유럽국가들은 관심을 가졌다. 먼저 에스파냐가 라틴아메리카에서 이익을 챙기자 영국도 새로운 아메리카 대륙에 눈을 돌렸다. 영국은 민간차원에서 식민지 정책으로 새로운 아메리카 대륙에서 담배농사를 지었고 많은 영국인들이 신대륙으로 넘어와 수많은 원주민들이 쫓겨나게 되었다. 담배농장의 확장으로 일손이 부족해진 영국은 아프리카에서 흑인노예들을 대려와 일을 시켰다. 후에 추위와 질병으로 식민지경영이 어려워지자 영국은 직접 총독을 파견해 국가차원에서 식민지를 신대륙을 다스리기 시작하였다.영국에서 본격적으로 이민을 시작한 이주민들은 신대륙에서 저마다의 도시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중 하나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매사추세츠에 정착한 청교도 선교자들인데 이들은 자기들의 도시에서 사회계약을 통한 정부의 수립을 선언했다.이들은 비록 청교도 성인남성만 참가할 수 있었지만 총회에서 법률을 만들어 중요한일을 결정했다. 또 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투표로 관리를 선출하고 마을주민과 관계된 일들을 읍민의회에서 스스로 결정하였다. 또 교육에도 열성을 보여 학교를 건립 하였다. 점점 마을이 늘어나자 행정을 책임지는 지사와 의회를 갖춘 자치정부의 모습을 서서히 갖추어 나갔다.또 다른 도시는 펜실베니아인데, 펜실베니아는 퀘이커교도들에 의해 건설 되었다.펜실베니아는 지도자를 뽑아 3그룹으로 나누고 법률을 제정하였고 법률을 선포할 것인지를 투표하며, 그 법을 지키는지를 감시하는 은 1744년 9월에 필라델피아에서 각 식민지 대표 55인의 참석한 1차 대륙회의를 개최했다. 이는 영국정부와 영국정부의 명령을 따르는 식민지 정부에 대한 민주적 권력기구였고 식민지의회 기능을 대신 하였다. 1744년 10월 매사추세츠 식민지협의회는 식민지 스스로가 생명, 재산을 지키기 위해 무장할 것을 강조해 민병대를 창설 하였다. 이에 대해 영국정부는 반란으로 규정짓고 렉싱턴 전투에서 한 발의 총성으로 독립전쟁이 시작 되었다. 1755년 5월에 2차 대륙회의에서 조지 워싱턴을 식민지연합군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그 후 1776년 펜실베니아가 먼저 독립을 선포하고 주정부를 수립하였다. 1776년 7월 식민지인 들은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아메리카의 독립을 만천하에 알렸다. 독립선언서는 프랑스 인권선언서와 함께 민주주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문서이다.식민지 연합군은 강력한 영국군을 상대로 힘든 전투를 치렀다. 영국과 라이벌 관계에 있던 프랑스는 식민지 연합군을 도와 전쟁에 참전 하였다. 프랑스 식민지 연합군은 요크타운전투에서 협공으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로 식민지연합군은 전쟁의 승기를 잡았다. 1781년 10월에 영국은 식민지 연합군에게 항복했고 영국은 본토로 군대귀환을 결정했다. 이로써 전쟁은 식민지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고 1783년 파리조약에서 아메리카 인들은 대영제국의 구성원이 아닌 새로운 아메리카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았다.아메리카인 들은 전쟁에서의 승리 후 자신들이 꿈꾸던 나라를 건설하려고 했다. 그들은 왕정도 귀족정도 아닌 새로운 정부형태인 민주공화정을 만들었다. 이는 최초의 민주공화정 이였다. 아메리카 땅에는 이미 독립적인 나라인 13개의 주가 있었다. 이 13개의 나라는 연합헌장을 채택해 13개 주로 이루어진 연합 국가를 결성했고 정식 명칭을 미국(the United states of America) 이라고 결정했다. 그들은 유럽 강국들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13개의 신생 공화국보다 강력한 중앙 정부가 필요 했고 1787년 5고 볼수 있다. 1800년 공화파인 제퍼슨이 미국의 제3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미국의 땅을 크게 넓혔다는 것이다. 그 당시 미국의 땅은 미시시피 강을 경계로 동쪽 지방에 작은 지역에 불과했다. 미시시피 강에서 로키 산맥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루이지애나라고 불렀는데, 그 지역은 프랑스가 가지고 있던 지역이었다.미국은 프랑스로부터 뉴올리언스를 사려고 결정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프랑스에 대표단을 파견했다. 미국 대표단은 나폴레옹에게 뉴올리언스를 사려고 갔지만 당시 나폴레옹은 국내정세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어 루이지애나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나폴레옹은 미대표단에게 싼 가격에 루이애지나 전부를 팔려고 했다. 미국은 너무나 싼 가격에 본국에 보고도 안하고 바로 거래를 체결했다. 이제 미국은 동부의 작은 나라가 아닌 넓은 영토를 가진 큰 나라가 되었다.1807년, 미국의 상선 한척이 영국함대의 공격을 받는 사간이 생겼다. 미국은 바로 영국과의 전쟁을 선포 했고 양국이 서로 소모전을 계속하다가 결국 협상이 이루어졌다. 협상 조건은 모든 것을 전쟁 이전의 상태로 되돌린다는 것이었다. 이 전쟁에서 미국은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이 더 많았다. 세계최강 영국과의 대결에서 당당히 맞섬으로써 국민들의 자부심이 높아졌고, 국가의 결속력 또한 강화되었다.먼로가 대통령으로 재직할 때 아메리카 곳곳에서 에스파냐와 포르투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립국가를 건설 하려는 운동이 일어났다. 유럽 각국들은 프랑스혁명 이전의 유럽으로 모든 것을 돌려놓고 싶어 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라틴아메리카라는 시장이 꼭 필요했다. 이에 먼로 대통령은 1823년 ‘먼로 독트린’을 발표했다. 먼로독트린은 미국은 유럽에서 일어나는 일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고, 이미 가지고 있는 식민지에 대해서도 간섭하지 않을 것이니 아메리카 대륙에 새로운 식민지를 만들지 말며, 이미 독립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대한 간섭은 미국에 대한 적대행위로 간주한다는 내용 이였다. 하지만 미새로운 연방정부를 세웠다. 미국에는 두 개의 연방국가 두 명의 연방 대통령이 존재하게 되었다. 북부인들에게 연방탈퇴는 반란을 의미했다. 1864년 4월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섬터요새의 포격전으로 남북전쟁의 신호탄이 울렸다. 링컨은 곧 바로 연방군을 소집했다.초기 전쟁은 남부군의 우세로 전개 되었다. 전세에 밀린 링컨은 1863년 노예해방 선언을 발표 했다. 남부의 노예들은 도망쳐 북군에 입대 하였고, 이는 외교적으로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 유럽의 분위기도 북부를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분위기를 몰아 게티즈버그에서 북부군의 큰 승리로 전쟁의 승기를 잡았다. 연방군의 그랜트장군과 남부군의 리 장군이 만나 전쟁을 끝내었다.전쟁이 끝날 즈음에 링컨이 재선에 성공했고 전쟁은 끝났지만 남부와 북부의 사람들은 서로를 증오 했다. 링컨은 서로 미워하지 말고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고 연방을 다시 건설 하자고 주장했다. 후에 1863년 4월 14일에 링컨은 극장에서 남부지지자에게 암살당했다. 링컨이 암살을 당하고 부통령 앤드류 존슨이 대통령자리를 이어나갔다.그는 링컨의 암살로 남부의 증오심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남부인들에게 대사면령을 발표 했다. 반란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반란에 가담했던 주들도 노예제 폐지를 담고 있는 수정 헌법 13조만 비준하고 주민 10%만 찬성하면 주의 자격을 회복해 다시 연방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남부연합은 흑인 규제법이라는 법률을 만들었고 이를 본 공화당 의원들은 분개했고 논란 끝에 14차 헌법 수정안이 제출되어 연방 의회에서 통과되었다. 모든 흑인에게 국적과 시민권을 부여 한다는 내용 이었다.수정 헌법 통과이후 노예들은 선거권과 자유를 찾았다. 그러나 남부는 상황이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연방의회는 강경한 조처로 남부재건계획을 이끌어 갔다. 남부인들의 분노는 상승했고, 그 증오는 KKK단을 결성해 흑인들에게 돌아갔다.흑인들은 공포에 질려 스스로 그들의 권리를 포기했다. 해방노예에게 자유와 권리는 이름뿐인주민들이 직접 투표해 의사를 반영 할 수 있도록 주민투표제가 채택 되었다. 이러한 민주화 바람은 정당에도 불어와 일방당원들이 정당의 후보를 선출할 수 있는 예비 선거제도도 도입 되었다.그즈음 독점기업이나 트러스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기업과 부자들에게 치우쳤던 정부정책의 균형을 잡기위한 정책을 시행했다. 먼저 트러스트 금지법으로 철도기업연합을 해산했고 연방통신위원회를 창설해 기업을 감시했다. 이는 많은 미국인들에게 환영 받는 정책 이였다.혁신주의 운동은 여성의 참정권을 확보하기 위한 운동으로도 이어졌다. 1869년 에는 와이오밍 주에서 여성의 참정권을 처음으로 인정 한 뒤 다른 주들도 잇따라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했다. 마침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920년에 21세 이상의 여성들은 남성과 똑같은 참정권을 가지게 되었다.독립전쟁 이후부터 미국의 영역은 끊임없이 서부로 확대되었다. 더 이상 확장할 땅이 없자 1890년대 미국은 식민지 찾기에 시작했다. 미국의 공산품과 농산품을 팔 새로운 시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에스파냐와의 전쟁으로 필리핀과 괌, 쿠바를 정복 했다.그 후 1914년 사라예보 사건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국은 중립선언을 했다. 하지만 미국 내 분위기는 점차 연합국 측에 호의적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1915년 5월에 독일의 잠수함 작전으로 미국의 상선이 침몰했다. 2년 후 위기에 몰린 독일은 중립국의 상선도 무차별로 공격했다. 윌슨 대통령은 참전을 선언 했고 연합국의 승리로 미국은 큰 이익을 얻었다. 황폐화된 유럽에 군수물자를 팔아 군사적 경제적으로 최강국이 되었다.1차 세계대전 후 1920년대에 미국은 번영과 위기의 징후가 보였다. 자유분방한 문화, 컨베이어벨트로 인한 빠른 생산속도 대중문화의 보급 등등 빠른 번영을 이루었다. 미국은 경제 번영의 상황 속에서 너도나도 주식투자에 매진했고 그 결과는 주식가격의 거품으로 이어졌다. 결국 1929년 10월에 주가가 폭락했고 투자하였다.
    독후감/창작| 2014.02.03| 8페이지| 1,500원| 조회(610)
    미리보기
  • 왕세자의 입학식을 읽고
    *왕세자의 입학식 풍경1817년 3월 11일. 효명세자의 입학식이 성균관 명륜당에서 거행 되었다. 창덕궁을 출발한 왕세자 일행이 성균관 입구에 도착하자, 궁궐에서부터 성대한 행렬을 이루어고 따라왔던 호위대와 의장단은 문밖에 머물렀다. 건물의 안쪽은 성균관 유생들을 위한 공간이었으므로. 왕세자의 수행원들은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가마에서 내린 왕세자는 장막 안으로 들어가 학생복으로 갈아입었고, 시강관 및 성균관 유생들과 함께 대성전 안으로 들어가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신주에 술잔을 올렸다. 대성전에서의 제례 절차가 끝나자 왕세자는 명륜당으로 가서 이날의 스승은 박사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왕세자 한명을 대상으로 한 강의가 성균관의 명륜당에서 시작되었다. 강의 교재는 『소학』의 첫머리에 있는 제사 부분이었다.이처럼 왕세자의 입학식은 성균관에서 거행되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거행하는 의식을 모두 ‘예(禮)’ 라고 표현했으므로 입학식은 ‘입학(入學)례’ 라고 불렸다. 왕세자란 장차 천하를 다스리게 될 국왕의 후계자로서, 국왕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높고도 귀한 존재였다. 그렇지만 조선의 왕세자는 훌륭한 국왕이 되기 위해 수많은 통과 의례를 거쳐야 했다. 책봉례, 관례, 가례, 성균관 입학례, 같은 것이 있었다. 이중 성균관 입학례는 왕세자가 성균관을 방문하여 박사에게 수업을 받는 의식이다.*입학례, 조선 왕실역사의 축소판조선전기의 입학례1401년에 태종은 앙녕대군을 승려에게 보내 학문을 익히게 하라고 명령했다. 당시 양녕의 다이는 8살 이었다. 또한 태종은 승려에게 학문을 배우라고 했는데, 이는 고려시대의 관습이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성행했고 승려는 당대의 최고 지식인이었으므로, 승려에게 배우는 것은 곧 최고의 지식인에게 배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태종의 명령에 대해 지신사 박석명 등이 반론을 제기했다. 승려들이 아는 것은 문장을 짓는 것이나 한문 문장의 구두를 떼는 정도에 불과하므로 특별히 배울 것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박석명은 전으로 가서 술잔을 올리는 작헌례를 거행했다. 작헌례가 끝나자 원자는 명륜당으로 이동하여 속수례를 거행했는데, 이는 학문을 청하는 학생이 스승에게 예물을 드리는 의식을 말한다.세종 대에 들어와서는 입학례의 의식 절차가 완전히 갖춰졌고, 왕실의 남자들은 모두 입학례를 거행했다. 또 세종 대에는 왕자들의 입학례도 거행되었다. 종학을 설립해 왕실의 친척인 종친들을 교육시켰다. 그리고 세종 대에 국왕의 손자인 왕세손의 입학례도 거행되었다. 세종은 1448년 원손 이홍휘를 왕세손으로 책봉하고 이내 성균관 입학례를 거행하게 했다.단종 대에는 수양대군의 맏아들인 도원군 이장의 입학례가 거행되었다. 이때 이장의 나이는 16세 이었다. 단종의 입장에서 볼 때 도원군은 사촌형에 불과했는데, 거의 입학식이 거행된 이유는 부친인 수양대군이 조정의 실권을 이미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이후 조선 왕실은 세종 대에 정비된 의식 절차를 준수하면서 입학식을 거행했다. 다만 세조 대 이후 성균관에서 입학식을 거행하는 주인공은 왕의 계승자로 결정된 인물, 즉 왕세자, 왕세제, 왕세손으로 제한되었고 나머지 왕자들의 입학식은 거행되지 않았다.조선 후기의 입학례16세기 말,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국가의 의식 절차를 기록한 책들이 대부분 불타버리고 말았다. 이에 따라 입학례를 거행하는 데에도 큰 문제가 생겼는데, 상세한 절차를 알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이 끝나자 선조는 입학례의 의식절차를 재정비하는 일에 관심을 두었고, 1597년에 왕세자의 입학례를 거행했다. 하지만 성균관 대성전에서 제례를 거행할 날짜가 임박했는데 국왕이 착용할 면복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할 정도로 전후 피해가 심각했다.광해군 대가 되면서 입학례는 정상적으로 거행될 수 있었다. 전란의 후유증을 극복해나가고 있었고 국가 의식을 제대로 거행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입학식을 거행할 때에는 『국조오례의』의 기록과 선왕 대의 사례를 검토했고, 왕위 계승자가 결정되어 8세에서 10세 정도가 되면 기왕의 황제의 아우이자 황태자인 영친왕은 일본으로 건너가 학습원 중등과 1학년에 입학했고, 유년학교 예과, 육군중앙유년학교 본과, 육군사관학교, 육군대학교에 차례로 입학했다. 일본 땅에서 일본식 교육제도에 의한 교육을 받은 것이다. 고종 황제의 딸인 덕혜옹주는 1922년에 경성학교조합에 입학했고, 이후 쓰시마 섬으로 건너가 도주의 아들과 강제 결혼을 했다. 국가가 멸망하고 학교 제도가 바뀌면서 전통적인 입학례는 사라지고 말았다.*여섯 장의 그림으로 남은 왕세자의 입학식1) 궁궐을 나서다 : 출궁도출궁도는 효명세자가 창경궁 홍화문을 나와 성균관으로 향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행렬의 앞에서 의장을 들고 가거나 왕세자 주변에서 경호를 하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이들은 세작익위사의 관원들 이다. 이들은 왕세자가 행차하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따라가서 세자의 신변을 보호했다. 앞부분에 위치한 의장 행렬의 중앙에 있는 말에는 짐을 싣고 있는데. 이는 행사의 주인공인 왕세자를 상징하는 인(印)이다. 다음으로 왕세자가 탄 가마 앞에 흑단령 관복을 입은 관리들이 여러 명 보이는데, 이들은 세자시강원에 소속된 시강관들이다. 세자시강원은 왕세자의 학습뿐만 아니라 인격형성도 책임을 지고 있었는데, 왕세자 한 사람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20명의 시강관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은 성균관이 아니라 궁궐 안에서 국왕을 키우는 세자시강원이었다.그다음에는 왕세자가 탄 가마가 보인다. 익선관과 곤룡포를 갖춰 입은 왕세자는 홍화문 밖에서 궁문까지는 작은 가마인 여(輿)를 타고 이동했고, 궁문 밖에서 성균관까지는 큰 가마인 연(輦)을 타고 이동했다.2) 공자님께 술잔을 올리다: 작헌도작현도는 효명세자가 성균관 대성전에 있는 공자와 네 성인의 신위에 술잔을 올리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림의 중앙에 보이는 건물이 대성전인데, 대성전에는 모두 네 등급의 신위가 배치되어 있다. 대성전에서 효명세자는 제일 먼저 공자의 신위 앞에서 향불을 피우고 술잔을 올렸으며, 이어서 안자, 효명세자가 스승에게 예물을 드리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예물을 든 집사자들과 함께 온 효명세자는 계단 아래에서 스승을 마주한 다음 서쪽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가고, 스승은 동쪽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간다. 왕세자는 무릎을 꿇은 채 폐백 광주리와 술, 안주가 놓인 상을 받아 차례로 스승에게 올린다.5) 스승에게 교육을 받다: 입학도입학도는 효명세자가 스승에게 교육을 받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이 행사의 핵심적인 장면 이다. 예물을 받은 스승은 공복을 벗고 흑단령으로 갈아 입은 다음 명륜당으로 나아가 동쪽 벽에서 서쪽을 향해 앉는다. 이때 스승은 책상위에 책을 펴놓고 강의를 하며, 왕세자는 바닥에 엎드려 책을 보았다. 이는 스승이 왕세자보다 우위에 있음을 의미하는 의식이다.6) 입학식을 마치고 축하 인사를 받다: 수하도수하도는 효명세자가 입학례를 마치고 궁으로 돌아와 축하 인사를 받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지금까지 6장의 그림을 중심으로 왕세자의 입학식 절차를 살펴 보았다. 이를 보면왕세자는 성균관에 도착하여 학생복으로 갈아입은 다음부터 입학식을 마치고 성균관을 나올 때까지 학생이 스승에게 갖춰야 할 예절을 실천했고, 학생으로서의 대우를 받았다. 왕세자는 격이 낮은 서쪽 계단을 이용하여 오르내렸고, 스승에게 먼저 절을 올렸으며, 수업을 받을 때 책상을 사용하지 못하고 바닥에 엎드려 책을 읽어야 했다. 이러한 의식은 장차 왕위에 오를 왕세자일 지라도 유악을 배우는 학생으로서 스승에 대한 예절을 지켜야 하며, 이런 수련을 통해서 학문과 덕망을 갖춘 성군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왕세자 입학식의 의미1722년 9월 왕세제 영조의 입학식이 끝난 후 경종이 반포한 교서의 요지를 몇 가지로 요약 할 수 있다.-성균관에 도착하여 가마에서 내렸다-문묘에서 공자를 배알 했다.-스승에게 예를 올렸는데 지위가 유생과 같았다.-『소학』의 가르침과 『대학』의 가르침-한 가지 일을 실천하여 세 가지 선을 이룬다.먼저 ‘성균관에 도착해 가마에서 내렸다’는 의미는 왕세자를 비롯리와 유생 들이 모든 권한을 주도하는 특별한 공간이기에 성균관 측에서 제지한 것이다. 입학식이 거행되는 동안 왕세자는 성균관 유생들의 도움을 받아 의식을 거행하고 성균관 소속의 관리에게 교육을 받는 한 명의 유생에 불과했다.‘문묘에서 공자를 배알 했다.’는 것은 스승을 높인다는 의미이다. 조선의 국왕이나 왕세자가 성균관을 방문하면 제일 먼저 대성전에서 작헌례를 거행하여 만세의 스승인 공자에 대한 존경을 표시했다.‘스승에게 예를 올렸는데 지위가 유생과 같았다.’는 것은 스승을 높이는 것과 함께 연장자를 우대하여 자리를 양보하는 예를 실천했다는 것이다. 왕세자나 왕세손은 장차 왕위를 계승할 후계자이지만, 성균관에서는 나이순으로 자리에 앉는 장유유서의 윤리를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야 했다.‘『소학』의 가르침과 『대학』의 가르침’은 교제에 따른 가르침을 의미한다. 조선시대에는 기본적인 생활예절을 강조하는 『소학』의 가르침을 확대하면 결국에는 치국하고 평천하하는 『대학』에 이른다고 생각했다.‘한 가지 일을 실천하여 세 가지 선을 이룬다.’는 『예기』 문왕세자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기서 세 가지 선이란 부자의 윤리, 군신의 윤리, 장유의 윤리를 말하는데, 왕세자는 입학식이라는 의식을 통해 이러한 윤리를 실천하게 된다. 그러면 이를 지켜보던 백성들은 왕세자의 행동을 모범으로 삼아 자신들도 오륜으로 표현되는 윤리를 실천하도록 자극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왕세자의 입학식을 읽고 느낀점먼저 이 책을 읽고 나의 초등학교 입학식이 생각났다. 왕세자들이 성균관에 입학하는 나이는 대략 8세에서 10세 정도라고 한다. 오늘날 초등학교 입학식 나이와 비슷한 것이다. 나의 초등학교 입학식 때는 다들 부모님 손잡고 학교 운동장에서 간소하게 끝냈던 것 같다.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때도 입학식은 늘 간략하게 끝내왔고 중요한 의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왕세자의 입학식이란 책을 보고 조선시대 왕세자의 입학식은 오늘날 우리의 입학식과 달리 성대하고 절차가 많고 매우 .
    독후감/창작| 2014.02.03| 9페이지| 1,500원| 조회(129)
    미리보기
  • 정의란 무엇인가 독후감
    이 책은 군에서 제대할 때 내 담당간부가 선물로 주었다. 나중에 읽을 생각에 책장 한구석에 놓아 놨었는데 우연치 않게 행정학개론 과제로 이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하버드 대학교 Michael J. Sandel 교수의 강의 'JUSTICE(정의)'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벤담, 칸트, 롤스 등의 철학들을 살펴보며 ‘정의’의 개념을 분석한다. 이 책은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을 행복극대화, 자유지상주의, 미덕으로 정치적으로 중요한 결정들과 일상생활에서 고민하게 되는 사건과 같은 구체적 사례들을 살펴보고 정의에 대해 설명 하고 있다.정의를 보는 세 가지 방식 중 ‘행복의 극대화’, 즉 제레미 밴담의 공리주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이론이다. 이 이론을 처음 들었을 때는 꽤나 합리적이고 얼핏 들었을 때 당연한 생각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곧이어 도덕적 측면에서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공리주의는 궁극적으로 결과만 중시하는 경향이 짖은 것 같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해서라면 소수의 행복은 무시되어도 된다는 사실은 공리주의자들의 사고에선 타당해 보일지라도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요시하는 현대사회의 보편적 가치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또 도덕을 비용편익분석을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리주의자들의 입장에서 1명을 죽이고 100명을 살린다면 이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99명을 죽이고 100명을 살린다면 과연 이일도 도덕적 문제가 없는 것일까? 중요한건 사람의 수가 아니다. 공리주의는 도덕을 수치와 통계로 구분한다는 점에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본다.또 공리주의는 개인의 가치와 권리를 무시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 영국선원이야기와 테러범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17살의 영국선원은 자신이 죽음을 택하지 않았고 살 권리가 있었다. 나머지 선원들이 17살 선원의 생명을 박탈할 권리는 없다. 그 선원들이 주관적 판단으로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17살 선원을 살해 한 것이 옳은 판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해 테러범을 고문 할 수 있다는 관점이 아니라 개인의 관점, 즉 아무 관련 없는 시민 개개인의 권리를 테러범 1명이 침해 할 수 없다는 점에서 테러범의 고문을 허용한다는 점에 찬성한다. 시민 개개인의 권리를 위해 테러범 1명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다.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요시하는 관점은 밀의 에서 이야기 된다. 밀은 “사람들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라고 했다. 일반시민들이, 17세 선원이 나머지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으니 그들의 자유와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자유의 원칙이 장기적으로 행복을 극대화 시킨다고 생각한다.그 다음 자유지상주의파트에서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 된다. 미국의 상위 1퍼센트가 미국 전체부의 3분의1을 소유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1퍼센트의 부를 가져다 소득재분배를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라는 논쟁이 제기 된다. 이에 대표적인 예로 농구선수 마이클조던의 얘기가 나온다. 마이클 조던이 1년에 3100만 달러를 번다고 했을 때 소득재분배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마이클 조던이 3100만 달러를 버는 것이 불공평한 소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조던이 큰돈을 벌게 된 이유는 개인들이 자신의 돈을 가지고 경기표를 샀고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한 것이다. 이를 소득재분배 찬성론자들이 공평하니, 불공평하니 말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개인들이 조던을 보기위한 자발적 선택에 의해 돈을 지불하고 조던은 그 대가를 지불 받았을 뿐이다. 3100만 달러든 3100달러든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돈들은 모두 개인의 의지에 따라 모인 것이다. 후에 조던이 경기 수익금 전액을 기부해 소득재분배를 실천하던 안하던 그건 2차적 문제이다. 먼저 조던이 자신의 능력으로 벌어들인 돈, 즉 자신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돈에 대한 소유권은 조던에게 있다.그 다음 장에서 이야기된지 예로 징병제, 모병제, 유급 대리인을 허용하는 징병제(남북전쟁 병역 제도) 중에 어느 것이 더 옳은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 된다. 여기에서는 자원군 옹호를 2가지 이유로 반박한다.첫 번째는 이유는 공정성과 자유, 두 번째는 시민의 미덕과 공공선의 이유로 반박하고 있다. 먼저 이 책에서는 미군에 등록금이 없는 대학생, 저소득층의 비율이 현저히 높다는 이유로 공정성과 자유가 없다는 논리를 펼치고 사회적 분위기가 입대를 강요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이 다른 방법으로 등록금을 마련 할 수 없어 입대를 선택한 것일까?강요란 사전적 의미는 “억지로 또는 강제로 요구함”이라고 나와 있다. 이들에게 입대를 하지 않으면 매국노로 몰아가는 사회적분위기가 있었는지, 아니면 한국처럼 입대를 하지 않으면 사회적 불이익을 주기라도 했는지 궁금하다. 물론 대학등록금을 벌려면 입대가 쉬운 방법일수는 있으나 최후의 방법은 아니다. 다른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수 있지만 시간이 더 걸릴 뿐이다. 이들은 시간대비 고효율로 돈을 벌 수 있는 경제적 선택을 한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이다.두 번째는 시민의 미덕과 공공선의 이유로 자원군을 반박하고 있다. 군 복무는 시민의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에 돈을 받는 자원병 제가 부당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반박은 정말 허황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국방의의무로 대다수 징집에 의해 군대에 입대한다. 국방의 의무로 입대한 사병들은 적게나마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과 의식주를 제공 받는다. 납세자의 돈으로 생활하는 군인들이 고용이 안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말 시민의 미덕과 공공선을 위해 군복무를 해야 한다면 아무 대가없이 군복무를 해야 저들의 주장에 맞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없으리라고 본다.그 다음 나오는 이야기는 대리모 이야기 이다. 여기서도 가난한 대리모들이 돈이 궁해 어쩔 수없는 선택으로 부자를 위해 대리모가 될 확률이 높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이 역시 대리모 말고도 다른 경제그들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다. 어느 누구도 강요 하지 않았다. 이 역시 큰돈을 적은 시간 내에 벌려는 생각에 대리모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효율적 선택을 한 것이다.다음 장에서는 이마누엘 칸트의 이론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칸트의 이론은 개인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그리고 이성에 기초한 자유를 강조 하였다. 타율적 결정, 즉 개인의 선호나 쾌락에 의한 결정이 아닌 자율적결정이 진정한 자유라고 하였다. 또 그는 도덕적 가치를 결과가 아닌 동기에 있다고 말했다. 의무동기에서 나온 행동만이 도덕적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했다. 즉, 어떤 행동이 옳다고 생각해서 행동해야지 감정적이나 동정심을 가지고 행하면 옳은 일은 맞지만, 도덕적 가치가 없다고 하였다. 칸트는 “정언명령에 따른 행동만이 자유로운 행동이다.” 라고 말했고 “자유롭게 행동하기란 도덕적으로 행동하기” 라고 했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살인자이야기에서 칸트의 주장에 궁금한 것이 있다. 칸트는 자신의 친구를 죽이려고 문 앞에 서있는 살인자에게 거짓말 하는 행위는 잘못된 행위라고 하였다. 칸트는 거짓말을 부도덕한 행위의 으뜸으로 꼽는다. 칸트는 위에서 말했다. “정언명령에 따른 행동이 자유로운 행동이다. 자유로운 행동은 도덕적 행동이다.” 이에 따르면 친구를 살리기 위해 거짓말 하는 사람은 거짓말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였고 친구를 살려야겠다는 의무동기에서 거짓말을 했다. 이 행동은 친구를 살리기 위한 자유로운 행동 이였고 도덕적 행동 이였다.그 다음 장에서는 존 롤스의 이론에 대해 다루고 있다. 존 롤스는 자유지상주의, 능력주의, 평등주의에 대해 비판한다. 그는 여기에서 출생과 능력이란 우연적 요소 때문에 불평등한 사회가 된다고 한다. 또 차등의 원칙을 도입해 개인의 타고난 능력으로 생긴 이익을 공동 자산으로 여기고 그 재능을 활용해 이익이 생기면 그 것을 공유 하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출생은 개인이 통제 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가 나오지만 인간이 태어날 때 공장에서 일률적으로 찍어 낼 수 없는 것처럼 불가능 하다고 생각된다. 또 개인의 능력은 지극히 개인의 노력여하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마이클 조던처럼 뛰어난 신체조건을 가졌더라도 그가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을 알아보고 농구선수의 길에 들어섰고 꾸준히 노력하지 않았다면 그 위치까지 도달 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차등의 원칙에 대해 자신의 노력으로 번 돈을 아무 대가없이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줘야 하다면 사람들은 경제활동에 전념 하지 않을 것이고 도덕적 해이 현상이나 북유럽 국가처럼 복지정책 실패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롤스는 노력도 혜택 받은 가정환경의 산물 일 수 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신의 피나는 노력으로 자수성가를 이루거나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능력도 우연적 요소로 부여받은 능력이기 때문에 차등의 원칙을 적용해야 하는지 궁금하다.7장에서는 소수집단우대정책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소수집단우대정책 찬성론자 들은 교육의 불균형을 바로잡고, 과거의 보상, 다양성 증진을 이유로 이 제도에 찬성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반대한다. 그 이유로는 먼저 인종은 자기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는 이유이다. 인종을 마음대로 정할 수 없는 통제 불가능한 요소가 입학기준이 되는 것은 불공정 하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과거의 보상에 대한 반박인데 과거에 흑인들이 탄압받고 희생을 치렀더라도 과거 흑인들의 희생에 대한 대가를 현세의 흑인들이 받을 자격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또 피해자와 가해자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도 내 생각과 다르다. 세 번째 다양성증진의 측면에서는 찬성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도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을 우리 사회구성원의 하나로 여겨야지 소수집단 우대정책을 실시해 이들을 구분하고 혜택을 준다면 인종 간 분열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구성원의 하나로 우리와 다르지 않게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고 경쟁해야 다문화 인종들도 당당하게 그들의 권.
    독후감/창작| 2013.10.16| 5페이지| 1,000원| 조회(200)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1
1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0
  • A좋아요
    0
  • B괜찮아요
    0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1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18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9:24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