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40221호텔경영학과 김범준나는 이번에 영화 ‘블랙(Black)'을 봤다. 블랙은 인도에서 만든 영화로 한국에서는 2009년 8월 27일날 개봉을 했고, 감독은 산제이 릴라 반살리이다. 상영시간은 124분으로 장편영화에 속한다. 사실 평소에는 인도 영화를 볼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서 한번 보게 되었다.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인 미셸은 어릴 때 걸린 병으로 인해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농맹아’ 이다. 절망에 빠져있던 그녀에게 어느날 마지막이 될지도 선생님으로 ‘데브라지 사하이’가 온다. 그의 끊임없는 노력과 정성으로 미셸도 마음의 문을 열고, 결국 나중에는 꿈에 그리던 대학을 졸업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희망적이고, 보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장면들이 곳곳에 있다. 나 또한 영화를 보고 많은 감동을 느끼고 많은 것을 깨달았다.세상에는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것은 선천적일수도 후천적일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그 중에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장애는 바로 앞을 못보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이 넓은 세상을 못보고 평생을 살아간다고 하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그럼에도 이런 것을 이해하고 배려해주지는 못할망정, 일부 철없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낸다.국내 시각장애인의 수는 약 30만명으로 추산된다. 점점 나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장애인 관련 예산은 OECD 꼴찌 수준이고, 생계 또한 위협을 받는다. 우리나라에서 시각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특히 일본이나 미국에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배려를 많이 한다. 공공장소에서도 그들을 위한 시설을 많이 볼 수 있고, 보이지 않게 신경을 많이 써준다. 나도 일본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장애인들을 배려한다는 느낌을 실제로 많이 받았다. 하루빨리 우리나라도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를 더 많이 만들고, 그들에게 ‘살기 좋은 우리나라, 행복한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 목차 ◀1. 선정 이유2. 이순신의 생애와 업적3. 이순신과 그의 해전1. 선정이유▶ 한국인을 대상으로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꼽는 설문조사를 한다면 과연 누가 가장 많은 표를 얻을까? 물론 연령대별, 직업별로 다양한 답들이 나오겠지만, 아마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김구, 세종대왕, 단군할아버지 등 여러 위인들을 얘기할 것이다. 여기, 이 순위에 항상 빠지지 않고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 이다.우리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수많은 영웅들이 있었다. 을지문덕, 연개소문, 강감찬 등. 그 영웅들의 이름만 들어도 우리의 마음 한 구석에서는 뭔지 모를 기운이 샘솟는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능력과 기지를 발휘하여 많은 사람들의 목숨과 나라의 안위를 지켜냈다. 하지만 ‘영웅’ 이라는 칭호가 이순신만큼 잘 어울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위에서 언급한 세 사람 말고도 수없이 많은 영웅들이 있었지만, ‘구국의 영웅’ 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은 아마 이순신 밖에 없을 것이다.나는 이 불세출의 영웅에 대해 어릴 적부터 많은 것을 보고 들으며 자라왔다. 그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들에서, 이순신은 ‘포기를 모르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불가능한 상황을 현실로 이루어내는 인간승리’ 의 전형적인 롤 모델로 표현됐다. 이런 것들을 예전부터 쭉 지켜봐왔던 나는 저절로 그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다.이번 시간을 통해서 그에 대해 좀 더 알아가고, 내가 미처 몰랐던 이순신에 대한 여러 사실들을 알아보고자 한다.2. 이순신의 생애와 업적▶ 이순신은 1545년 인종 1년, 지금의 서울시 중구 인현동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한미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현달했다고도 말하기 어려웠다. 5대조와 증조부까지는 꽤 높은 관직에 올라서 어느 정도 명예도 쌓고 부를 축적했다. 하지만 조부인 이백록 이후로 아버지 이정까지 관직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 결정적인 이유로, 당시 시대상황은 기묘사화 이후였는데, 조부인 이백록이 바로 기묘사림의 추천을 받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던 중 그의 평생 지원자가 되는 ‘서애 유성룡’ 을 만난다. 후에 유성룡의 가장 큰 업적이 이순신을 적극적으로 천거한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둘 사이는 각별했다. 유성룡의 저서인 ‘징비록’에도 이순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 부분이 있는데, 어린 시절에도 이순신은 영특하고 무인의 기개가 넘쳤다고 한다.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그 뒤 이순신은 충남 아산으로 이사를 갔다. 1565년, 이순신은 20세의 나이로 상주 방씨와 혼인을 했다. 그는 혼인 1년 뒤부터 본격적인 무예를 갈고 닦기 시작했다. 5년 뒤 첫 무과를 보았지만 낙방을 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무예를 계속 수련했다. 결국 1576년, 31세의 늦은 나이로 무과에 급제를 했다. 첫 임지와 직책은 함경도 권관이었다. 그는 그 곳에서 3년을 근무한 뒤 서울로 올라와 훈련원 봉사로 재직하게 되었다.아마 이순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성격은 바로 ‘강직함’ 일 것이다. 그는 훈련원 봉사로 재직 당시, 핵심요직인 병조정랑 서익의 부정을 보고 반대를 하다가 충청도 군관으로 좌천이 된다. 종8품에 불과했던 그가 정5품의 뜻에 반대를 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여기서부터 그의 강직한 면모가 보여 지기 시작했다.이 사건이 조정에 알려지자 그는 파격승진을 한다. 1580년 종4품인 전라도 수군만호로 부임한 것이다. 하지만 서익과의 악연은 계속되었다. 서익은 이순신이 무기손질을 제대로 안했다고 조정에 보고를 했고. 그 후 이순신은 다시 강등되어 훈련원 봉사로 들어갔다.1586년, 부친인 이정이 세상을 떠나자 이순신은 3년상을 치르고 1585년, 사복시 주부로 복직을 하는데, 이때 그의 나이 40세였다. 그로부터 1년 반 뒤인 1588년 이순신은 지금의 두만강 하구에 있는 ‘녹둔도 둔전관’으로 부임을 한다. 그는 여진족과의 전투에서 조정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패전을 하게 되는데, 함경도 병마절도사 이일의 잘못된 보고로 명예를 실추 당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 뒤 대규모의 여진족 정벌에 참여해 공을 세우고 명예를 회복하게 된다.이 후 그는 여러 대신들과 대간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유성룡의 전폭적인 지지아래 1591년 2월, 종3품에 해당하는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부임했다. 무과에 급제한지 15년만에 수군의 주요 지휘관 자리에 오른 것이다. 전쟁을 대비해 철저한 준비를 해온 그에게, 1592년 4월 드디어 임진왜란이 닥친다.왜란이 일어난 1년 뒤인 1593년 8월, 그는 삼도수군통제사로 승진해 해군을 통솔하면서 치밀하고 효과적인 작전들을 수행한다. 이순신이 나서는 전투마다 수군은 연전연승을 거두었고, 기울어져가던 국운도 점차 살아났다. 그러던 1597년 1월, 일본군을 공격하라는 국왕의 명을 따르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서울로 압송되어 모진고문을 받고 그해 4월, 백의종군의 명령을 받고 풀려난다.그 해 7월 원균이 이끄는 조선수군은 ‘칠천량 해전’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위기감을 느낀 조정은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했다. 이 때 그에게 남은 함선은 13척이었다. 한 달 뒤 그는 명량해전에 나가서, 133척의 일본수군을 격파하고 기적과도 같은 승리를 얻는다. 여기서 그 유명한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즉 ‘필사즉생, 필생즉사’ 라는 말이 나온다. 그 후 계속 전투를 승리로 이끌다가, 1598년 11월 19일,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였고, 왜란도 종결되었다. 그는 왜란 중 있었던 23번의 해전을 모두 승리로 이끌었고, 조선을 구한 구국의 영웅이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1604년 선무 1등공신과 좌의정, 1793년에는 영의정으로 각각 봉해졌다.3. 이순신과 그의 해전▶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순신은 왜란 중 자신이 지휘한 23번의 해전을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그 중에서 ‘한산도 해전’, ‘명량 해전’, ‘노량 해전’ 이렇게 세 해전을 집중 조명 해보려 한다.한산도 해전 - ‘학익진 전법’의 승리▲ ⇒ 흔히 한산도 대첩으로 잘 알려진 한산도 해전은 진주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전투에서 쓰인 ‘학익진 전법’은 마치 학이 날개를 펼친 듯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전투가 벌어진 한산도는 거제도와 고성 사이에 있어 사방으로 헤엄쳐나갈 길도 없고 적이 궁지에 몰려 상륙한다 해도 굶어 죽기 알맞은 곳이었다. 이순신은 먼저 판옥선 5,6척으로 하여금 적의 선봉을 급습하고 적군이 따라오면 거짓 후퇴를 하며 적을 유인했다.
- The memories of Nailro train travel -200940221호텔경영학과 김범준February 17, 2011, I went train travel which is called "Nail-ro" 2 month before the military service. In fact, this travel was not the first time. In 2009, I already had the travel experince with my friends. So this time, I decided to go travel alone.The last time, I had made a plan with my two friends. But this time, I made a plan for the whole travel by myself for four nights and five days. At first, I didn't care about making an exact schedule. However I figured out that making a plan for the travel is very complicated but important. So, I tried my best to plan the travel perfectly.On the first day, I departed from Daegu and arrived at Choen-an. I was about to look aroud the 'War memorial of Korea' because I was very interested in history. There were so many exhibitions related to the history, especially the war history. I was very pleased and satisfied with it.After that, I visited the birthplace of Ryu Kwan-so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she was one of the leader of the Samiljeol, Independence Movement Day in 1919. The house was quite small and simple. Then, I went to Ryu Kwan-soon Memorial Hall which honor her ideals and spirit of saving the country. I felt grateful for her ultimate sacrifice.The next day, I moved to seoul. In seoul, I went to the 'Bukchon Hanok village'. This place was introduced on 1 night 2 days, amusement program(무슨말인지 모르겠어ㅜㅜ). I was eagerly look forward to the place because I wanted to feel the historical trace of Joseon Dynasty.My goal was to take pictures at the 8-best scenes in Bukchon Hanok village. At the beginning, I got lost and wandered around. Furthermore, the road was quite steep. Finally, I completed my misson. Although I was so hard, but the feeling was great.On the third day, I went to Gongju. In the period of the Three States, Gongju was the capital of Baekje. So the city was full of historical sites and monuments related to the Dynasty.I looked around the Tomb of King Muryong and Gongju mountain fortress. I was extremely excited because I saw the tomb only in a book. Though entering inside of the tomb was prohibited, I could fully feel the grandness of the Dynasty.Gongju mountain fortress was one of the most important fortress in the area. The length was about 2.6km and it was harmonized with the mountain. Also, there was a park in the fortress so people can take a rest.On the fourth day, I went to the 'Jugnogwon' in Damyang. That place was introduced on 1 night and 2 days. There were summerhouses and many bamboo trees. And I went to the 'Metasequoia road'. The road was consisted of hundreds of metasequoia trees. The scenery was brilliant and awesome.The last day, I came back to the Daegu. The travel was very satisfying and fruitful. Through the travel, I gained a lot of things. I learned meticulousness and readiness. When I made a plan alone, a little hard but now that was an interesting experience. I want to go to another travel as soon as possible.
My favorite celebrity is Sir Alex Fergurson. He was a manager of Manchester United foot ball club, but now he was retired. The reason I selected this man, because of his real passion for football and his brilliant achievements during the manager.Sir Alex Ferguson is 73 years old and he is scottish. At first, he made his debut at the Queen`s Park foot ball club in scotland. After three years, he was transferred to Saint Johnston foot ball club. After that, he moved several teams as a player.
< 목 차 >1. 선정이유 및 관람후기2. 다른 박물관들과의 이미지 비교3. 결론 도출1. 선정이유 및 관람후기▶나는 이번 과제의 주인공으로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을 선정했다. 처음 과제 주제를 듣고, 영등포구에 있는 ‘타임스퀘어’와 이 곳 ‘국립중앙박물관’을 놓고 고민을 했지만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하는 것이 디자인 비교를 하기가 더 쉬울 것 같았고, 예전에 박물관에 견학을 가서 즐거웠던 기억이 떠올라 결국에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결정을 했다. 또한 지하철과 버스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국립중앙박물관은 총 면적이 30만㎡에 달하는 세계적인 규모의 박물관으로, 약 30만점의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이고, 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야경을 담기 위해 일부러 야간개장을 하는 토요일에 박물관을 찾았다. 주말임에도 관람객 수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조용한 분위기에서 관람을 할 수 있었다.국립중앙박물관은 크게 상설전시관과 기획특별전시관으로 나눌 수 있다. 상설전시관은 고조선부터 대한제국 시기까지의 유물들을 전시를 하고, 기획특별전시관에서는 계절마다, 그리고 분기마다 전시하는 유물과 그 시대가 다르다. 나는 먼저 상설전시관을 쭉 둘러보고 기획특별전시관을 관람했다. 예전 기억들도 새록새록 나고 새로운 유물들도 있어서 관람에 재미를 더해주었다.박물관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도 볼거리가 있었다. 일단 박물관이 자리 잡은 곳이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라, 전체적으로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는 ‘자연친화적’인 형태였다. 또한 박물관과 조화를 이루며 있는 고즈넉한 정자, 그리고 1000년이 훌쩍 넘은 탑들도 여럿 볼 수 있었다.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길을 따라 박물관 둘레를 천천히 거닐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세계 유명 박물관들도 많지만, 이렇게 자연과 친화적인 박물관은 이곳 국립중앙박물관 밖에 없을 것 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박물관 관람을 마쳤다.2. 다른 박물관들과의 이미지 비교▶국립중앙박물관과 다른 박물관들의 디자인을 비교하면서 주변 환경과의 조화와 함께 엄청난 스케일에 초점을 맞췄다.▲국립중앙박물관의 모습▲덴마크 ‘토르발센 박물관’의 모습▲국립중앙박물관의 모습▲체코 ‘프라하 국립 박물관’의 모습→ 울창한 숲에 둘러 쌓여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비해 프라하 박물관은 주변에 몇 그루의 나무 뿐이다.▲국립중앙박물관의 모습▲스페인 ‘하몽 박물관’의 모습→ 굉장히 자연친화적으로 연못과 산책길이 나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비해 스페인의 하몽 박물관은 웅장한 모습은 있으나 자연과는 어울리지 않고 딱딱한 느낌을 준다.▲국립 중앙 박물관의 모습▲스페인 ‘프라도 박물관’의 모습→ 위 9개의 사진을 비교해 보면, 울창한 나무들과 식물들이 곳곳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과는 달리 울창한 나무들과 식물들이 별로 없는 세계 여러 박물관들의 모습이 나와 있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 주변으로 산책길이 따로 있어, 방문하는 고객들이 박물관 내부 뿐만 아니라 바깥에서도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하고 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국립 중앙 박물관의 모습▲노르웨이 ‘빙하 박물관’의 모습▲국립중앙박물관의 모습▲덴마크 ‘디자인 박물관’의 모습▲국립중앙박물관의 모습▲노르웨이 ‘바이킹 박물관’의 모습→ 위 6개의 사진을 비교해 보면 스케일의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천장의 높이가 상당히 높고, 건물의 규모도 웅장한 반면 나머지 박물관들은 비교적 규모가 작고, 천장의 높이도 많이 낮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이 나오게 하는 웅장함을 지니고 있다.▲국립중앙박물관의 야경▲체코 ‘프라하 국립박물관’과 일본 ‘에비수 맥주박물관’의 야경→ 국립중앙박물관의 야경은 자연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지만, 밑의 두 박물관은 화려한 멋은 있으나, 딱딱해 보이는 감이 있다.3. 결론 도출▶ 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타 박물관들에 비해 국립 중앙박물관의 가장 큰 장점 중에 하나는 ‘자연’ 과의 조화이다. 다른 박물관들은 보통 건물들만 빼곡하게 배치하거나 주변 환경과의 조화에 신경을 덜 쓴 것에 비해, 국립중앙박물관은 건물 외부환경까지 고려를 해서 섬세하게 디자인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