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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사리포트] 논산 명재 윤증 고택 답사리포트 A+
    《 명재윤증 고택을 통해 본 선비의 삶과 여성에 대한 배려 》- 논산 명재 윤증 고택 답사기 -목 차Ⅰ. 들어가며Ⅱ. 명재윤증 고택과 선비의 삶Ⅲ. 명재윤증 고택에서의 여성에 대한 배려Ⅳ. 명재윤증 고택과 나Ⅴ. 나가며참고문헌Ⅰ. 들어가며아르바이트와 여러 일정에 맞물려 앞선 두 차례의 답사에 참여하지 못하여 시험기간에 1박 2일 일정의 답사를 가게 돼 마음이 무겁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하였다. 역사학과 학부생으로서 4번의 정기답사에 참여했었음에도 우리의 전통한옥에서 1박 2일 동안 생활하고 자본 적은 없었기 때문과 수업시간 외에는 볼 수 없는 다양한 학과의 사람들과 함께 가는 답사였기 때문이다.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와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새소리와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생각을 하니 기대되었으며 또한, 명재 윤증 고택에 대해서는 박경하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도 여러 번 언급하신 적이 있어서 고택에 대한 기대감과 부푼 마음을 가지고 버스에 몸을 실어 논산으로 향하게 되었다.Ⅱ. 명재윤증 고택과 선비의 삶도심의 아파트와 빌딩숲을 지나 도착한 명재윤증 고택은 충남 논산군 노성면 교촌리에 위치한 중요민속문화재 제 190호인 고택으로, 1709년에 명재 윤증 선생의 제자들이 십시일반 힘을 합쳐 스승을 위해 지었지만, 명재 윤증 선생은 이 집은 자신에게 너무 과하다며 돌아가실 때까지 살고 있던 집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공주이씨(公州李氏)인 어머니와 파평윤씨(坡平尹氏)인 아버지 윤선거(尹舜擧)의 아들로 태어난 명재윤증(明齋尹拯, 1629~1714) 선생은 17세기 조선의 격동기를 보낸 성리학자이로, 백의정승(白衣政丞)이라고도 불리었다. 명재 윤증 선생은 김집의 문하에서 주자(朱子)를 배웠고, 28세가 되던 해 김집의 권유로 우암 송시열의 문하에 들어가 『주자대전(朱子大全)』을 배웠다. 이미 명재 윤증 선생은 20대 후반부터 학문과 행실이 뛰어나 조정에 천거되어 수차례 벼슬길에 제수되었지만 그것을 상징한 산을 축소한 형태여야 했다. 때문에 우리 조상들이 가산의 기본으로 가장 널리 삼은 것은 무산십이봉(巫山十二峯)과 금강산이었다.명재 윤증 고택 사랑채의 누마루 앞에는 연못과 나무가 있고, 갑석에는 석가산(石假山)이 있는데, 이 석가산은 금강산의 1만 2천봉을 표현한 것으로, 이는 금강산의 구름 위에 떠 있는 집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석가산의 돌을 자세히 살펴보면, 마치 실제 금강산의 1만 2천봉을 바라보는 것과 같이 매우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어 놀라웠고 이러한 돌들을 어디서 어떻게 구해온 것인지 궁금증이 생기기도 하였다.▲ 사랑채 누마루 앞의 우물과 나무 ▲ 누마루 앞의 금강산을 형상한 석가산석가산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툇마루 끝의 누마루 쪽에 걸려있는 ‘도원인가(桃源人家)’라는 편액에도 잘 나타나있었다. 여기서 도원인가는 누마루 앞의 석가산과 연못, 집 주변의 소나무의 수려한 경관이 무릉도원과 같다는 뜻을 의미한다.▲ 정선의 ▲ 누마루 툇마루 쪽의 편액 정선의 진경산수화 중 하나인 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조선후기 진경산수화의 주요 소재는 금강산으로, 금강산은 그 당시 많은 선비들의 여행지이자, 명산으로 꼽혔기 때문에 금강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집에서도 오고가며 항상 볼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 정원을 이렇게 꾸몄던 것 같다.석가산 옆 사랑채 앞에는 석가산뿐만 아니라 명재 9대손인 윤하중 선생이 해시계의 영점을 잡아 천체를 관측하기 위해 만든 해시계도 있었는데, 이는 “날마다 쓰는 크고 작은 물건을 다룸에 조금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으며, 자고 일어남에 반드시 일정한 시각을 지키고, 마시고 먹음에도 일정한 분량을 초과하지 않았다.”라고 전해지는 명재 윤증 선생의 생활 모습처럼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한 명재 윤증 선생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서도 두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사진 촬영한 날에는 해시계가 없어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 다음날 해시계를 직접 보여주셔서 좋았었던 것이 기억이 남는다.▲ 사랑채 앞의 해시계 (일영표준)“다도록 되어있어 두 개의 방 사이를 넓게 사용하고 싶을 때 효과적으로 활용되어질 수 있었다.또한, 이 안고지기문을 경계로 주인이 생활하던 큰 사랑방과 주인의 아들이 생활하던 작은 사랑방으로 나뉘게 되는데, 그 사이에는 좁은 공간의 쪽방이 있어 주인의 비서가 그곳에 상주하여 주인의 심부름과 주인이 아들의 방에 갈 때에 아들에게 주인 어르신이 찾아뵐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이는 그 옛날에도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준 것으로, 명재 윤증 고택의 선비들은 손님에 대한 배려뿐만 아니라 부자(父子)간의 관계 등 상하관계 간에도 배려심이 존재하였던 것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이 문은 탈부착이 가능하여 손님이 와서 주무실 경우를 대비하여 방 중간에 그 문을 벽으로 삼아 공간을 분리하는 기능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것은 한옥을 지을 때부터 구상한 것이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일상생활 속에서도 배려의 정신이 상당히 깊었다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안고지기문을 설명하고 있는 13대손 윤완식 선생또한, 큰 사랑방의 문은 바람이 잘 통하게 하기 위함과 강의의 공간으로 쓰일 때 공간을 넓게 사용하여 많은 이들이 학문을 배울 수 있게 하기 위해 고려하여 천장에 철고리(?)를 제작해 문이 위로 올라갈 수 있게끔 하였던 것이 신기하였고 그 옛날에 저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놀라웠으며, 한옥 안에 선조들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노력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천장 쪽으로 올려진 문우리의 전통 한옥은 밖에서 보는 느낌과 안에서 보는 느낌, 밖에서 주는 아름다움과 안에서 주는 아름다움이 다른데, 명재 윤증 고택에서는 방문객에게도 사랑채와 누마루를 개방하여 관람하게 해주어서 한옥의 아름다움을 안과 밖에서 더욱 더 잘 느낄 수 있었다.창문이 활짝 열린 누마루에 올라 창문 너머 계롱산과 교촌리 마을의 풍경, 사랑채 앞에 있는 배롱나무, 소나무 등이 한눈에 보이는 자연 경치를 보니 감탄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마치 창문틀을 프레임으로 삼은 먹는 것으로 그쳤다.”라고 기록에도 나와 있듯이 청빈한 삶을 추구하며 살았던 명재 윤증 선생은 자기 관리뿐만 아니라 집안의 법도에도 철두철미해 후손에게 제사나 가례 등에 낭비하지 말라고 하는 등 검소함을 강조하는 유언을 남기도 하였는데, 명재 윤증 선생의 이러한 청빈 정신은 현대에 까지 이어져 명재 고택에서 현재 제사를 지낼 때에도 제사 비용이 30만 원 선 밖에는 들지 않는다고 한다.Ⅲ. 명재윤증 고택에서의 여성에 대한 배려명재 윤증 고택에서는 여성에 대한 배려가 곳곳에 반영되어있다. 여성에 대한 첫 번째 배려로는 안채로 들어가는 문 안쪽에 판벽으로 내외벽을 두어 바깥에서 남성이나 손님 등의 외부인들에게 여성들의 공간인 안채가 노출되지 않도록 하였다. 이 내외벽은 위쪽과 아래쪽에 작은 간격의 공간이 있어 이를 통해 방문자의 신발을 보고 신분을 파악하여 높은 신분을 가진 이가 오면 안채의 어른이나 안주인이 응대하고, 낮은 신분은 가진 이가 오면 안채의 하인들이 맞이하러 나갔다고 한다.▲ 외부에서 안채를 볼 수 없게끔 막아주는 안채의 내외벽안채로 들어가기 전의 내외벽 뿐만 아니라 안채의 내부 곳곳에서도 여성에 대한 배려가 나타나 있었는데 살펴보면, 먼저 안채의 기둥을 이야기할 수 있다. 한옥에 있어서 원기둥은 왕실에서만 사용할 수 있어 안채의 기둥은 원기둥이 아닌 주로 사각형 기둥이었는데, 마루와 마루가 이어지는 곳에는 여성들이 안채를 오고가며 움직일 때 부딪혀도 크게 다치지 않게 사각기둥이 아닌, 팔각기둥으로 만들어 여성들을 배려하였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왼쪽 순서대로) 안채의 팔각지붕과 사각지붕 또, 안채에 나타난 여성에 대한 배려는 안채 안의 화장실의 위치와 안채의 낮은 담장으로, 화장실을 보통 안쪽에 두지만 담장 쪽에 둔 것은 외부에 잘 나갈 수 없었던 안채의 여인들이 화장실을 오고가며 낮은 담장을 통해 바깥세상 구경과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바라보면서 가사노동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해주기 위해 안채의 담장을 낮게 만들었다고 한다.▲ 안채의 있었던 것이다. 장독대가 안채 뒤 언덕 위에 놓인 것은 햇빛이 잘 들고 바람이 잘 불어서인 이유도 있지만, 시어머니의 시집살이와 가사 노동으로 힘들 때 안채에 뒤편에 나와 바깥의 경치도 보면서 마음을 달래라는 이유도 고려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명재 윤증 고택의 장독대는 질서정연하게 잘 정리되어있고, 고택과의 어울림도 매우 좋아 전국에 사진 좀 찍는다는 사람들이 명재 고택에 오면 꼭 찍어가는 장소 중 하나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 필자도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을 찍던 중 장독대가 있는 곳에 수업 때 배웠던 ‘솟대(짐대)’가 있는 것이 보여 반가웠다.솟대 혹은 짐대는 나무나 돌로 만든 새를 장대나 돌기둥 위에 앉혀 마을 수호신으로 믿는 상징물로, 솟대를 세우는 목적에 따라 세 종류가 존재한다. 첫 번째, 마을의 액막이와 풍농·풍어 등을 기원하여 세우는 일반적인 솟대, 두 번째, 풍수지리상으로 행주형(行舟形)인 마을에 비보(裨補)로서 세운 솟대, 세 번째, 급제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솟대로, 명재 윤증 고택의 장독대 옆에 있는 솟대는 마을과 가족의 안녕을 지키고, 장독대 안의 수백 년 된 씨 간장을 지키며 장이 잘 숙성되기 위한 염원을 담아 세운 것으로 생각되어 첫 번째의 의미로 쓰였던 것으로 보이고, 장독대에서 여성들은 남편과 자식의 일이 잘되게 해달라고 빌었기 때문에 세 번째의 의미로도 사용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장독대 옆의 오리 모양 솟대▲ 장독대와 어울려진 명재윤증고택 명재 윤증 고택의 솟대를 자세히 살펴보면 솟대 위의 새는 오리로, 오리는 물새가 갖는 다양한 종교적 상징성으로 인해 농사에 필요한 물을 가져와 주고, 화마로부터 지켜주며, 홍수를 막아주는 등 마을의 다양한 욕구에 부응하는 마을지킴이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의미의 오리가 마을뿐만 아니라 가족도 지켜줄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만든 것으로 보여 진다.Ⅳ. 명재윤증 고택과 나명재 윤증 고택을 둘러보는 것뿐만 아니라 이번 답사에서는 여러 체험을 할 수 있어 지루하지 않고 웠다.
    인문/어학| 2016.07.27| 13페이지| 4,000원| 조회(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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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포트] 한글문화큰잔치 ARG 프로모션 제안서
    1. 기획의도 및 배경- 2013년 한글날이 공휴일로 재지정- 보다 친근하고 모두가 함께 즐기는 문화 축제- 전국 및 서울 각 지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펼쳐지는 각종 행사의 중심- 대한민국 문화국경일인 한글날을 즐기고 한글의 가치를 되새기는 계기문화체육관광부는 국어기본법 제 20조 제 1항을 기본으로 하여 한글의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2008년부터 한글 주간을 지정하여 매년 새롭고 다양한 주제로 전시, 공연, 학술 대회 등의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해왔다. 한글날이 공휴일로 재지정 된 2013년부터는 보다 친근하고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문화축제로 발전시키고자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글문화큰잔치'를 시작했다. ‘한글문화큰잔치’는 문화국경일로서의 한글날의 위상을 높여 국민의 문화정체성과 자부심을 강화하고, 모두가 함께 즐기는 문화 축제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전국 및 서울 각 지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펼쳐지는 각종 행사의 중심이 될 만한 대표 행사의 기획을 추구하고 있다. 이 기획안은 한글날을 기념하는 축제의 프로모션 이벤트에 대한 것으로, 대체현실게임을 통해 한글날이 오는 것을 기리고 한글문화큰잔치가 청소년과 성인도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다른 축제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프로모션으로 한글문화큰잔치가 한글날 대표축제로 자리매김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왜 대체현실게임(ARG : Alternate Reality Game)이어야 하는가?오늘날 대체현실게임(ARG)는 떠오르는 트렌드 콘텐츠로 각광받고 있다. 외국에서는 대체현실게임이 상품, 영화, 축제 등의 프로모션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으며, 많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는 대체현실게임을 이용한 프로모션, 프로그램이 부족한 상황이고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았다.우리나라는 아직 대체현실게임 도입 초기 단계로, 프로모션 수단으로 대체현실 게임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대체현실게임은 신흥 마케팅 콘텐츠로 해외의 사례를 통해 봤을 때, 모션 효과가 크다는 사실은 당연하다. 때문에 대체현실게임은 게임뿐만 아니라 프로모션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으며, 폭넓은 이용이 가능하다.국내외 대체현실게임의 대표적인 사례는 아래와 같다.▶ 대체현실게임(ARG)의 국외사례1. 최초의 ARG (미국)-시기 : 2001년-목적 : 영화 「A.I.」 프로모션용-게임방법 :①ARG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입구 세 개 설치한다.(영화가 공개되기 전에 배포된 포스터와 트레일러 영상의 크레딧에 ‘로봇 테라피스트’라는 직함을 가진 인물의 이름, 트레일러 영상에 숨겨진 전화번호, 사건이 일어나고 있음을 직접적으로 알린 포스터)②이런 정보를 접한 플레이어가 정보의 내용을 수상하게 여겨 검색사이트에서 조사하기 시작하면 게임이 시작된다.③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미디어를 사용해 배포한다.④정보가 매우 광범위하고 1명의 플레이어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커뮤니티를 만들고 거기서 정보를 공유하고 미션을 해결한다.-성과 :①4개월간 진행된 게임을 통해 플레이어는 영화 「A.I.」에 대해 많은 지식을 얻게 되고 높은 몰입감을 갖게 된다.②300만 명이 넘는 플레이어가 참가했고, 각종 미디어에 노출된 건수는 총 3억 건 이상으로 추측된다.-한계 : 영화 「A.I.」의 미국에서의 수익은 총 7800만 달러로, 해외에서의 수익을 포함하여 9000만 달러를 살짝 상회하는 수익을 냈다. 제작비가 9000만 달러였음을 미루어 볼 때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였다고 볼 수 없다.2. The Lost Ring-시기 : 2008년 3월 ~ 2008년 8월-목적 : 북경올림픽 프로모션-게임방법기억을 잃은 스포츠 선수 6명이 세계 각지에 출현해 그들에게 부과된 미션을 플레이어와 함께 해결하는 스토리, 일본에서는 ‘노리코’라는 캐릭터가 등장해 다양한 이벤트들이 펼쳐진다.-성과 : 유튜브에 공개된 관련 동영상은 재생수 50만 건을 넘었고, 전 세계 위키피디아 사이트는 2,000페이지 이상, 1만 번 업데이트 됐다.3. 명탐정 코난 카드 탐정단 (일본)-시기 : 의 모습이 담긴 달러의 지폐를 배포하면서 마케팅을 시작한다.②그 지폐에는 www.whysoserious.com의 주소가 적혀 있어 사이트로의 접속을 이끌어 낸다.③사이트는 가상현실을 만들어내어 실제 세상의 웹과 동일하게 뉴스를 발행하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가상의 고담시를 만들어 낸 것이다.④실제로 고담시의 시민이 되어보기도 하고, 조커의 부하가 되어 각종 미션을 수행 할 수도 있다.-성과 : 「A.I.」와 달리 영화가 상업적으로 성공을 했으므로 ARG의 상업적 효과를 증명할 수 있다. 영화 개봉 전 전야제 시사회에서 6600만 달러의 수익을 냈고, 전체적 기간으로는 5억 5000만 달러의 수익을 냈다. 영화는 상영 초기부터 붐을 일으켰고, 이 프로모션은 2009년 칸 국제광고제 사이버 부문 그랑프리 수상하였다.7. 크림슨폭스(Crimsonfox)(일본)-시기 : 2010년 3월-게임 방법 :①아이폰용 앱을 앱 스토어에서 다운로드 받은 후 시부야 중심가에서 플레이 시작한다.②앱은 GPS와 컴파스를 활용해서 인근 거리를 구석구석 뒤지면서 "Moonlights" 라는 비밀사 회에 대해서 알아내는 것이다.③화면에 다양한 힌트들은 빨간 색으로 나타나며, 각각의 단계별 목표는 파란색으로 표시가 된다.④힌트는 간판이나 떨어져 있는 종이, 표지판 등에 다양하게 숨겨져 있는데, 아이폰 앱을 통해서 이런 표식을 보면 힌트가 나타난다.⑤이들 과정을 밟아가면 결국에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성과 :이들의 플레이는 온라인 방송을 통해 7,0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생중계 되었고, 그 뒤에 뉴스로 방영되고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마케팅적 성과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대체현실게임(ARG) 국내 사례1. 부산 허왕후 신행길 축제 中 인도공주 허황옥 결혼 대작전-시기 : 2014년-목적 : 허왕후 신행길 축제 프로그램-게임 방법 :①고행길 미션(허왕후가 바다를 건너면서 겪는 풍파를 주제로 한 미션)②김수로를 찾아라(김수로 왕릉에 숨어있 는 김수로 런닝맨007년 2월의 매출률은 일반 광고 전략을 적용했던 전월 대비 20배였다.-단점 : 실종 사건이라는 거짓 정보로 인한 네티즌의 당황과 걱정을 마케팅에 활용한다는 점에서 인터넷에서는 후일담이 무성하였다. 비록 마케팅 성과는 좋았지만, 브랜드 이미지가 좋은 영향을 받지 못하였으며 이 캠페인을 통해서 제품 자체의 정보를 사용자에게 서술적인 체험으로 제공해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국내 ARG의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3. 노르망디의 이방인-시기 : 2007년-목적 : FPS게임 프로모션-게임 방법 :클라우드 메이커들이 ‘김진환’을 도와 오디오드라마파일을 훔쳐간 이방인이 던져주는 단서들을 이용해 잃어버린 오디오드라마파일을 하나씩 찾아내면서 전개한다.-성과 :플레이 과정에서 발견하는 오디오 드라마 파일의 내용을 들으면서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군인의 안타까운 사연에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고, 이는 자연스럽게 FPS게임 에서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군인의 역할을 맡는 플레이어들의 게임 배경에 대한 이해도를 높임과 동시에 게임에 대한 몰입도를 상승시킨다.4. SBS 런닝맨-시기 : 2010년-목적 : 런닝맨들의 끊임없는 질주와 미션, 긴박감 넘치는 대결을 통해 대한민국 랜드마크를 소개한다.-게임방법 :①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모두 약속된 시각에 정해진 장소에 모이고, 런닝맨들은 등판에 자신의 이름표를 부착한다.② 심판은 시작 신호를 울리고 모든 런닝맨은 미션을 수행한다.③ 런닝맨은 미션을 진행하여 스파이를 추리해내 제거하고, 스파이는 런닝맨들을 제거한다.④ 누군가가 아웃 당했을 시 심판은 아웃을 알린다.⑤ 아웃된 사람은 감옥으로 모인다.⑥ 최후의 승자가 속한 팀이 우승을 하게 되고, 상품을 획득한다.-성과 : 2010년 이후 런닝맨의 프로그램 지금까지 유지되어오고 있으며, 중국, 홍콩, 대만, 베트남, 태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런닝맨은 중국으로 수출돼 공동창작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그 노력 덕분에 중국판 은 무려 4%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혹은 게시글 업로드무슨 일이지?9/15~9/30(홍보기간)게임 시작 예고-ARG에 대한 개념 정립-게임 튜토리얼 진행 및 ARG에 대한 설명-게임 오픈 전까지 카운트 다운 시작새로운 게임과 관련된 거구나*****게임을 홍보하고 인증해주시는 분들에게 커피교환권을 드립니다!9/21김현수의 도움 요청.게시글 업로드김현수를 도와줘야겠다.9/21도움을 주는 누군가로부터 찬성 측이 나오는 동영상을 받음김현수가 받은 동영상 업로드,참여자들은 커뮤니티에서 대화를 하면서 추리해야함.서울시 내 어딘가동영상 속 위치가 어디지?9/23동영상 속 위치를 찾아가라새로운 단서 제공동영상 속 위치를 찾아가면 그 곳에는 명함 한 장과 종이 한 장(공용화론에 찬성하는 근거, 회의 장소 등은 안 적혀 있음)이 흘려져 있음9/27도움을 주는 사람이 편지를 보냄‘해외출장을 가게 되서 더 이상 도와줄 수 없다. 이 곳에 너를 도와줄 단서들을 숨겨뒀다.’는 누군가의 메시지.역과 사물함의 정보를 암호화해서 제공trick :역은‘북으로 북악산을 기대어 자리 잡았고 정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가 펼쳐져, 왕도인 한양 도시 계획의 중심이었다.’-> 경복궁 -> 경복궁역사물함 번호는‘ㄱㄴㄷㄹ..ㅏㅑㅓㅕ...’-> 19 + 11 = 40편지편지 내용을 해석하자.사물함을 열어라사물함 번호와 그것의 비밀번호는 알려지지 않음명함에 적혀있는 전화번호 뒷자리 수사물함 번호와 비밀번호를 알아내자usb 파일을 분석하자usb에-공개문서로 의결사안과 숫자 제공.ex)37.438246, 127.005927-암호화된 문서로 회의시간과 회의날짜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음.문서 내용을 해독하자단어 하나가 적혀있는 파일(회의시간)trick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그 단어가 적혀있는 페이지 수가 회의 시간표준국어대사전이 단어가 무슨 뜻일까?영어알파벳과 숫자가 혼합된 암호화된 글자가 적혀있는 파일(회의날짜)trick :ㄱㄴㄷㄹa b c dㅏㅑㅓㅕ0 1 2 3를 통해 회의날짜 제공이게 무슨 뜻일까?9/30모든 단서들을 해석해서 결과가 나옴만들어진 교육성
    인문/어학| 2016.06.01| 19페이지| 4,000원| 조회(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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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감상문] 영화 <아이반호> 감상문
    -영화 《아이반호》 감상문영화 는 영국의 월터 스콧 경이 쓴 동명소설인 『아이반호』를 리처드소프 감독이 영화화한 것으로, 유대인 제작사 MGM사의 자본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영국의 앵글로 색슨족을 정복한 리처드 1세와 앵글로 색슨족의 기사 아이반호가 리처드 1세를 받들며 십자군 원정에 나서게 된다. 제 3차 십자군 전쟁을 마치고 귀국하던 리처드 1세가 오스트리아 공작에게 잡혀 포로 신세가 되자, 영국에서는 리처드 1세의 동생 존을 왕위에 올린다. 전쟁 후, 노르만족에 의한 앵글로 색슨족의 차별은 더욱 심해지게 된다. 유대인의 아이작과 그의 딸 레베카의 도움으로 아이반호는 마상경기에 참여하게 되고, 경기를 잘 해내었지만 상대편을 무찌름과 동시에 자신도 심한 부상을 입게 된다. 존 왕이 아이반호를 잡으려 하자 아이반호는 숲으로 피신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작과 레베카가 붙잡히게 된다. 하지만, 아이반호가 이들을 구해내고, 아이반호는 셔우드 숲의 의적과 연합하여 존 왕을 왕위에서 내리고, 리처드 1세를 왕위에 세우게 된다, 이것이 영화 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영화 는 1952년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로써,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 사회에는 반유대주의가 만연하였다. 이러한 반유대적인 정서는 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비단 미국뿐만 이 아니라,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었고 전쟁 과정에서 박해받았던 많은 유대인들이 미국으로 이주 하였다. 역사 속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심했지만 영화 에서는 유대인과 협력하는 등의 우호적인 장면들이 나오는데, 이것은 유대자본이 영화 제작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유대주의 정서가 만연한 상황 속에서 유대인들은 이러한 정서를 완화시키기 위해 영화 제작에 자본을 투입한 것이 아닌가 싶다.영화의 시대적 배경 당시의 반유대주의는 교리적인 이유와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극심해있었다. 기독교 입장에서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고발하여 죽게 만든 집단이자 불신자들이었다. 이러한 교리적인 이유와 함께 1세기 이후에 십자군 원정이 시작되면서 기독교 중세 사회가 자연 경제에서 상품, 교환, 화폐 경제로 진입하면서 먼 거리 교역이나 고리대금으로 경제적 패권을 잡고 있던 유대인들 앞에 새로운 상업, 경제 집단인 기독교 상인들이 등장하게 되어 양자 간의 이권다툼 등의 경제적인 이유들까지 합쳐지면서 유대인과 기독교인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었고, 이러한 갈등은 십자군 전쟁이 전개되면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독후감/창작| 2016.04.13| 1페이지| 1,000원| 조회(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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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포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배경에 관하여
    《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Israel-Palestine conflict)에 관하여 》팔레스타인에서의 유대인과 아랍인간 갈등은 일반적으로 종교적, 민족적, 영토적, 제국주의 정책과 외세, 그리고 사회변동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상호 작용하여 발생하고 있다. 또한 팔레스타인에서의 분쟁은 오랜 역사성을 가지고 있고 매우 높은 수준의 고강도 분쟁을 경험했기 때문에 상호간의 불신은 극에 달해있다. 따라서 평화공존 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평가되어진다.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을 건국하며 발생한 분쟁을 말한다. 팔레스타인은 오랫동안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다. 오스만 제국 통치시기에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던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은 하나의 지역 사회를 이루어 분쟁 없이 지냈다. 그러던 중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동맹국의 일원으로 참전한 뒤 영국과 프랑스는 전후 오스만 제국을 분할 통치하기로 한 비밀 협정인 사이크스-피코 협정(Sykes - picot Agreement)을 맺었고, 전쟁이 끝난 후 팔레스타인 지역은 요르단 등과 함께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에 편입되었다.19세기 말부터 초반 유럽은 극심한 민족주의 갈등으로 인해 유대인에 대한 공공연한 박해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이에 대한 반발로 유대인 사이에서도 옛 유대의 땅에 나라, 즉 유대인의 고국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국가를 세우자는 시오니즘이 확산되고 있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보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시발점은 바로 이 시오니즘 운동에서 비롯된다. 시오니즘 운동으로 유럽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아랍인들의 반발을 샀다.또한,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은 전쟁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 시오니즘을 지지함과 동시에 아랍인들의 협력을 요청하였고, 양자 모두에게 팔레스타인을 내주겠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전쟁의 불씨를 만들었다. 아랍 측에 대해서는 맥마흔선언(McMahon Declaration), 유대인 측에 대해서는 밸푸어선언(Balfour Declaration)을 한 것이다.영국이 팔레스타인을 지배한 뒤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의 토지를 매입하기 시작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대인들은 1948년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 국가를 수립한다.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들의 독립국에 대한 꿈이 좌절되자 아랍인과 유대인간의 갈등이 시작되어 그 후 네 차례(1947ㆍ56ㆍ67ㆍ73년)의 전쟁을 하여 이스라엘이 시나이반도와 가자지구 및 요르단 강 서안 등을 점령하였다. 이렇게 네 번에 걸친 중동전쟁으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자 이 지역의 팔레스타인인들은 난민이 되어 떠돌게 되었다.이후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살폭탄 공격과 이스라엘의 반격 등으로 양측에서 모두 많은 희생이 잇따랐다. 그렇게 팔레스타인해방기구(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 이하 PL0)를 비롯한 중동지역의 이슬람저항운동단체의 테러와 유혈분쟁이 계속되던 중, 이스라엘과 PLO는 1993년 「영토와 평화의 교환」을 원칙으로 한 '오슬로평화협정'을 비롯한 여러 차례 평화협정이 체결되었으나, 합의안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그 후, 2003년 6월에 미국,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은 2005년까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창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 '중동평화로드맵'에 서명하였고, 마침내 2005년 9월 12일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완전 철수하였다. 이로써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후 계속돼온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점령이 38년 만에 종식됐다.하지만 정착촌 철거를 선언한 이스라엘의 아리엘 샤론 총리가 극우파 리쿠드당의 반발을 사게 되고 2006년 1월 갑작스런 뇌졸중으로 식물인간 상태가 되어 총리 임무 수행이 중단되어 2009년 베냐민 네타나후 이스라엘 총리가 취임하게 되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또 다른 국면을 맞게 되었다. 새로 취임한 네타나후 이스라엘 총리가 유대인 정착촌 건설 중단에 대한 미국과 프랑스의 요구를 거절하는 등 유대인 정착촌 건설문제를 둘러싸고 국제사회와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참고자료논문: 심의섭,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평화협정과 한국의 경제협력방향」, 한국중동학회논총 Vol.14, 한국중동학회, 1999정상률, 「팔레스타인 분쟁」, 중동연구 Vol.20,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동연구소, 2001▲ 중동 내 팔레스타인 분쟁 위치 (출처, 네이버) 사이트: 네이버, 위키피디아, 두산백과▲ 팔레스타인 분쟁 지도 (출처, 네이버)1) 공식적으로 소아시아 협정(Asia Minor Agreement)으로 알려진 사이크스-피코 협정(Sykes?Picot Agreement)은 러시아 제국의 동의와 함께 대영제국, 프랑스간에 맺어진 비밀 합의로,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협상국이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분할을 결정한 협정이었다. 협정에는 프랑스는 시리아·레바논을, 영국은 이라크·요르단을 세력범위로 하고, 러시아에게도 터키의 동부지방을 주며, 팔레스타인은 공동관리로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사이크스 피코 협정의 이름은 협정 당사자인 영국의 마크 사이크스 경과 프랑스의 조르주 피코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2) 1915년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 고등판무관 맥마흔과 샤리프 후세인 간의 서한(書翰)을 발표한 것으로 아랍인의 독립국가 건설을 지지한 선언을 말한다.3)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7년 11월 2일 영국 외무장관 밸푸어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민족국가를 수립하는 것을 지지한 선언으로, 유대인의 여론을 연합국 측으로 돌려 전쟁을 성공적 수행하기 위한 의도였다.
    인문/어학| 2016.04.13| 2페이지| 1,000원| 조회(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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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답사 리포트] 통일신라시대 불교 예술의 절정을 따라서 A+
    『 경주 답사 리포트 : 통일신라시대 불교 예술의 절정을 따라서 』목 차Ⅰ. 들어가며Ⅱ. 본론ⅰ. 불국사ⅱ. 석굴암ⅲ. 장항리사지 오층석탑ⅳ. 기림사ⅴ. 감은사지Ⅲ. 나가며Ⅳ. 참고문헌Ⅰ. 들어가며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 대학교 1학년 때인 2012년도 추계답사, 올해 2016년 춘계답사까지 경주를 총 3차례 다녀왔다. 경주를 3번이나 갔다 왔지만 갈 때마다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보여 진부하지 않고 신선했다. 초등학생 때는 불국사, 석굴암이 중점이 아니라 친구들과 사진 찍고 노는 것에 더 집중 되어있었기 때문에 수련회가 아닌, 수학여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기억에 남은 것은 많지 않았다. 이렇게 아쉬움이 많았던 첫 번째 경주 답사를 보완해준 것은 2012년 추계답사였다. 이 답사의 중점은 경주 남산이었는데, 서울 남산만 알았지 경주에도 남산이 있다는 사실은 그 당시 처음 알았고 답사를 갔다 온 후 경주 남산은 그 자체가 역사유적의 박물관일 정도로 굉장히 많은 불교 예술이 남겨져있어서 놀랬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 2016년도 춘계답사지도 경주였지만, 이번 답사 테마는 “금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로 신라의 왕들을 주제로 그들의 흔적이 담긴 유적지를 중심으로 답사 일정이 진행되었고, 그 외에도 조선시대 유적지들인 옥산서원, 양동마을, 경주 교동 최씨 고택 등도 답사 일정에 잡혀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아쉽게도 아르바이트와 실습수업으로 인해 후발로 참여하게 되어 첫째 날 경주 옥산서원과 양동마을, 둘째 날 최씨 고택, 경주향교, 대릉원, 분황사지, 황룡사지, 국립경주박물관에 가보지 못해 아쉬웠고, 특히, 수업과도 관련이 있는 조선시대의 유적지에 다녀오지 못한 아쉬움이 가장 크게 남았다. 때문에 필자는 답사리포트 테마를 ‘통일신라시대 불교 예술의 절정을 따라서’로 잡게 되었다.Ⅱ. 본론개인적인 사정상 후발로 가게 되어 본격적인 답사를 시작한 날은 셋째 날부터였다. 답사 3, 4일차의 일정에서 통일신라시대 불교와 관련된 유적지는 불국사, 석굴왕 들은 호국신앙(護國信仰)으로부터 왕권의 신성함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불교식 왕명을 사용하였다. 이렇듯 신라시대의 불교는 호국신앙으로, 나라를 지킨다는 것은 곧 나라를 대표하는 왕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왕권을 강화시키는 작용을 하였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라시대 불교는 민간에서부터 왕실까지 불교를 받아들이고, 호국신앙으로 왕권 중심의 지배체제를 강화시키는 동시에 백성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상호작용을 하여 신라가 비록 고구려, 백제에 비해 중앙집권화는 늦었으나 삼국을 통일하는 데 큰 원동력을 주었다. 이렇듯 신라는 불교문화가 번성한 나라로써, 특히 통일신라시대 때 불교 예술이 찬란하게 꽃을 피웠다. 그럼 지금부터 통일신라의 불교의 절정, 경주지역 불교 유적지를 살펴보도록 하자.ⅰ. 불국사(佛國寺)부처의 나라라는 뜻의 통일신라시대의 사찰 불국사는 국보 20호 불국사 다보탑, 국보 21호 불국사 삼층석탑, 국보 22호 연화교 및 칠보교, 국보 23호 불국사 청운교 및 백운교, 국보 26호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국보 27호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등 경내의 건축물 대부분이 국보로 지정되어있을 만큼 많은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어 과연 역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곳이구나를 느낄 수 있는 볼거리가 참 많았던 사찰이었다. 진성규 교수님의 설명에 따르면, 불국사는 경덕왕 때 재상인 김대성에 의해 대대적으로 확장되었는데, 이에 대한 사료로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경덕왕 10년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석굴암을, 현세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를 창건하였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고 한다.▲ 연화교와 칠보교, 안양문 불국사를 둘러보면서 불국사의 가람배치가 다른 절과는 달리 특이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찾아보니 불국사에는 부처님을 모신 공간이 극락전, 비로전, 대웅전으로 나뉘는데, 이렇게 나뉜 것에는 신라인의 불국을 향한 3가지 염원인 『아미타경』에 근거한 아미타여래의 극락세계, 『화염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 세계, 『법화경』에 근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청운교와 백운교를 통해 자하문을 지나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진성규 교수님의 설명에 따르면, 자하문 아래엔 백운교 16계단과 청운교 17계단 총 33계단이 있는데, 33이란 단어는 불교의 도리천을 뜻하고, 도리천 위에 불국토가 있듯이 청윤교와 백운교의 33계단을 오르면 부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다보탑▲ 불국사 당간지주 ▲ 복원 중인 석가탑 10원짜리 동전에서 많이 보던 다보탑은 법화경에 등장하는 과거불인 다보여래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나온 석가탑은 석가모니 부처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탑이다. 다보탑을 보면 정교하면서도 수련한 자태가 멋졌다. 또한 기단 위 사자가 1개 밖에 안 보였는데 원래는 기단 위 4면에 사자상이 4개가 있었으나 모두 도난당하고 지금은 하나만이 남아 있다고 하여 4마리의 사자를 다 보지 못한 점과 석가탑이 아직 복원 작업 중이라 잘 보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쉬웠다.ⅱ. 석굴암(石窟庵)▲ 석굴암 (출처. 네이버)통일신라시대의 석굴암은 팔부신중, 예배공간인 네모난 전실에서 본전불을 모실 원형인 주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금강역사, 석굴암 본존불, 제석천, 범천, 감실 등 굉장히 볼거리가 많지만 문화재 보존 문제로 앞이 유리로 막혀있고, 사진 촬영 또한 금지되어있으며, 관람할 수 있는 공간도 좁아 오랜 시간 보지 못해 아쉬웠다. 때문에 석굴암에서 그나마 유심하게 본 것은 금강역사와 석굴암 본존불이었다. 금강역사는 좌우로 하나씩 대칭으로 있었고, 석굴암 본존불은 머리에 육계가 있었고, 연화대좌 위에 앉아 항마촉지인을 수인으로 취하고 있었다. 석굴암 본전불의 온화한 표정과 매끄러운 면과 부드러운 곡선미는 왠지 모르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고, 이러한 석굴암 본전불의 압도적인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보니 저절로 정숙하게 되었다. 또한 그 안에 있는 모든 악귀가 정말 부처님 손에 다 눌릴 것 같은 강력한 힘을 느꼈다신라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었고, 1층 탑신에는 금강역사(金剛力士) 또한 조각되어있었다.▲ 장항리사지 오층석탑 ? 서탑 장항리사지 오층석탑은 서탑이 동탑에 비해 덜 훼손되었고, 두 탑의 모양은 비슷했으나 문조각에 조각된 금강역사의 모습은 상이하였다. 서탑은 금강역사가 연꽃 위에 서 있고 정교하게 조각되었으나 동탑의 금강역사는 서탑의 금강역사보다 정교함이 조금 떨어지고, 연꽃이 아닌 암석에 서있는 차이점이 있었다. 또한, 서탑 1층 탑신 양쪽에 있는 금강역사 사이에 용머리 문고리가 두 개 있었는데, 이러한 형태는 장항리사지 석탑에서 처음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장항리사지 오층석탑에서 금강역사를 보는 재미는 있었지만, 기단과 덮개돌 일부를 시멘트로 땜질하여 위와 아래 부분의 질감과 색깔이 달라서 국보임에도 불구하고 보수 관리가 잘 되고 있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웠다.▲ 장항리사지 오층석탑 - 동탑ⅳ. 기림사(祇林寺)기림사는 삼세여래를 모신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약사불과 사천왕, 사리왕탱을 모신 약사전과 서쪽에는 관음전, 정광불의 사리각인 삼층전이 있고 남쪽으로 오백나한전, 산신각, 무량수전, 진남루가 있으며 정면에 삼층석탑이 있는 1탑 1금당형의 가람배치를 이루고 있었다. 기림사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 천왕문을 먼저 통과했는데, 천왕문은 불법을 수호하는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外護), 신장(神將)을 모신 전각으로, 동방 지국천왕은 오른손에 검을 들었고, 서방 광목천왕은 오른손에 삼지창, 왼손에 보탑을 들었으며, 남방 증장천왕은 왼손에 여의주를, 북방 다문천왕은 비파를 연주하고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금강역사와 사천왕을 구분하는 법을 잘 몰랐었는데, 이번에는 둘의 차이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금강역사는 앞서 석굴암과 장항리사지 오층석탑에서도 보았듯이, 2명이 상체를 벌거벗고 있으며 근육질의 형태를 가지고 발 밑에 악귀를 누르고 있지 않으나, 사천왕은 4명이 갑옷과 투구를 쓰고 있으며 각각 손에 고유의 무기를 들고 있고 발 밑에 악귀가 있보살반가상인 건칠보살좌상(乾漆菩薩半跏像)도 있었는데, 이 유물은 보물 제 415호로 지정될 만큼 정교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건칠불을 처음 봐서 신선하기도 했고 종이로 만든 후 옻칠을 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또한, 기림사 대적광전의 공포와 창살 모두 모양이 특이했는데, 공포는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창살은 꽃창살을 사용하여 둘 다 화려하고 고운 자태가 압권이었다.▲ 기림사 건칠보살좌상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기림사 대적광전의 다포계 공포와 꽃창살ⅴ. 감은사지(感恩寺址)▲ 감은사지 (출처. 한국관광공사)감은사지는 통일신라 신문왕이 신문왕 2년(682)에 불력으로 왜구의 침략을 막으려 했던 부왕 문무왕의 뜻을 이어나가기 위해 건립하였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 사찰 터이다. 신문왕은 죽어서도 용이 되어 신라를 지키겠다는 부왕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감은사라 명명하였다고 한다.감은사지에는 두 개의 흡사한 모양의 탑이 있어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쌍탑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감은사지는 평지가 아닌 약간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이가 의미하는 바는 신광섭 교수님의 설명에 따르면, 감은사지가 사찰이 평지에서 산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적인 단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Ⅲ. 나가며신라 정치의 몰락과 쇠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포석정지를 끝으로 춘계답사 일정이 모두 마무리 되었다. 신라는 삼국통일을 이룬 주역으로, 불교를 호국신앙으로 삼고 발전해나갔다. 통일신라의 삼국을 통일한 자신감은 거대한 사찰 불국사와 섬세하고 웅장한 석굴암 등의 불교 예술에도 잘 나타나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 답사였음에도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초등학교 6학년, 대학교 1학년 때보다는 보이는 것이 조금은 늘었으나 아직까지는 교수님의 설명과 답사지가 없이 스스로 유적을 보고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이번 답사를 통해서도 답사지, 교수님의 설명 등의 도움을 받아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아 의미 있고 보람 .
    인문/어학| 2016.07.27| 9페이지| 3,000원| 조회(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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