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문화유산법]이태리 문화재 환수와이를 통해 본우리나라의 향후 방향 제시: 구체적 사례를 중심으로Ⅰ.머리말유네스코는 1970년도 경 ‘문화재의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을 발표하여 약탈문화재에 대한 단체의 입장을 공고히 했다. 이처럼 문화재 환수 문제는 해당 협약이 체결된 지 40주년을 기념한 특별 회의가 2011년 3월 경 개최되었을 정도로 유네스코 내에서도 주의 깊게 다루고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 금지와 예방 수단에 관한 협약’은 여러 한계점을 지니는데, 이 협약이 강제력이 없는 국제법이며 체결된 1970년 이후 거래된 문화재에 한해서만 적용된다는 것 등이 이에 속한다. 이러한 한계점은 체결된 후 오히려 문화재 불법거래가 증가하였다는 결과마저 낳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협약으로 인해서 약탈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95년도에 들어서는 이전까지의 문화재 반환 조약들을 보완하기 위해 UNIDROIT Principles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는 구속력이 있는 조약이 아닌 단순 재정리의 성격을 띠나 대부분의 계약 당사자들은 준거법으로 이를 선택하곤 한다.최근 들어서 약탈 문화재의 기원국 반환 문제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는데, 특히 이탈리아는 문화재 환수 이슈에 있어 주도적인 지위를 차지한다. 이처럼 이탈리아가 약탈문화재의 반환 문제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올라선 데에는, 『유프로니오스 크라테르』를 비롯하여 메트로폴리탄에 소장되어 있던 약 스물한 점의 문화재를 환수한 사례라던가, 보스턴 미술관에서 열세 점의 문화재를 반환받는 등의 여러 성공 사례들에 힘입은 결과이다. 이탈리아는 타국으로 유출된 자국의 문화재를 반환받는 것 외에도 자국이 소유한 약탈문화재들을 본국으로 반환시키는 운동 또한 함께 전개하고 있어 이 또한 주목해 볼 만한 요소이다. 이태리가 문화재 환수에 성공한 사례 아래에는 이러한 행위를 통해 도덕적인 을 보면 이러한 협상이 전반적으로 매우 타협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는 미국에 위치한 4개 박물관(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보스턴 미술관, 프린스턴 대학 박물관, 폴 게티 박물관)과의 협상을 통해 결국 82점의 문화재를 반환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 가운데에는 메트로폴리탄이 소장한 문화재들 중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닌 것들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 '유프로니오스 카르테르'또한 포함되어 있다. 이는 협약 체결 이후 2년 뒤인 2008년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미국은 이탈리아에서 약탈된 문화재들 중 많은 수를 자국 내에 보유하고 있는데, 그중 일부는 박물관 소유가 아닌 개인 소장품이며, 이탈리아 정부 측은 협상을 통해 박물관뿐만 아니라 Shelby White를 비롯한 여러 개인 소장가가 보유한 약탈 문화재들도 몇 차례 환수한 사례가 있다.유프로니오스 크라테르(Euphoronios krater)의 앞면 유프로니오스 크라테르(Euphoronios krater)의 뒷면(2)성공 요인 분석가. 타협적인 성격의 협정협정의 성격이 타협적이라는 것은 외규장각 도서 반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종류의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찬성 측 입장에서 주로 제시하는 근거에 따르면, 일단 문화재를 자국으로 반환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이러한 타협적인 성격을 가진 협정이며, 이탈리아의 문화재들이 ‘소유권 이전’을 통해 자국으로 반환되는 데에는 한편으로 이러한 타협적 협정이 큰 도움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협정의 타협적 조약들에 의하면 약탈 문화재를 소유한 측은 이러한 문화재 반환 협정을 통해 크게 피해를 입지 않게 되며, 이는 협정에 동의하도록 유인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또한, 본래 소유하고 있던 문화재를 반환하는 대신 다른 문화재를 일정 기간 대여하도록 허가하는 등의 방침 또한 계약 상대방이 이탈리아와의 문화재 환수 협정에 동의하기 쉽도록 만드는 요인 중 하나이다. 이는 문화재 환수에 있어서의 원칙론과 현실론 간의 대립 문제인데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러한 일련의 강경 대응에는 해당 국가의 국력이 불가피하게 반영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국력’에는 경제적인 능력보다도 문화재·박물관 영역에서의 해당 국가의 역량이 더욱 영향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자국 내에서 문화재 발굴을 불허하는 등의 행위는, 해당 국가 내에서 문화재를 발굴하는 것이 박물관 측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할 때에서야 비로소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례들은 왜 우리나라가 이탈리아에 비하여 적은 수의 약탈문화재를 반환받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밑에서 더욱 상세하게 설명하도록 하겠다.이러한 발굴 제재 외에도, 폴 게티 미술관과의 협상 과정에서는 보다 강경한 대응까지도 등장하였다. 이탈리아 측은 거듭된 반환 요구에도 응하지 않은 게티 미술관의 큐레이터를 장물 거래 혐의로 기소하고 현지 변호사를 통해 미술관과 협상에 나섰다. 결국 이 협상마저 중단되자 이태리 정부측은 폴 게티 미술관과의 모든 문화적 교류를 모두 단절하겠다는 압박까지 가한다. 이와 같은 이태리 정부의 문화 제재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의 협상 과정에서도 행해졌다. 이러한 이탈리아의 강경한 대응은 계약 상대측이 협상에 응하도록 강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다. 자국 내의 약탈 문화재 반환을 통한 도덕적 명분 성립전술하였듯, 이탈리아는 자국의 약탈된 문화재들을 다시 환수하는 데에만 힘을 쏟는 것이 아니라, 자국이 보유하고 있는 타국의 약탈문화재들을 본국으로 반환하는 데에도 열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특히 파키스탄과 이란의 경우 여태껏 이탈리아에서 반환한 문화재의 개수만 해도 수백 점에 이를 정도이다. 이러한 문화재 반환 정책은 이탈리아가 문화재 불법 거래 자체를 근절하고자 하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프란체스코 루텔리 전 이태리 문화부 장관은 2007년 열린 ‘이탈리아 환수 문화재 특별 전시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탈리아가 적극적으로 타국의 문화재를 반환하는 정책이 불법 문화재 거래를 묵인하는 기존의 거래행해진 파키스탄 약탈문화재 반환식에서 루텔리 장관이 언급한 바에서는 이러한 성격을 보다 명백하게 볼 수 있는데, 그는 이처럼 이탈리아가 타국의 문화재를 반환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행위가 결국에는 타국에 불법 유출된 이태리의 문화재들을 환수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역설하였으며, 더 나아가서는 세계적으로 퍼져 있는 약탈문화재들이 다시 기원국으로 돌아가는 데에 있어 이탈리아의 이러한 문화재 반환 정책이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이러한 문화부 장관의 발표는 이탈리아 문화재 관리청 당국의 입장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2. 프랑스(1)모나리자이탈리아 정부는 현재 모나리자를 소장하고 있는 영국 루브르 박물관 측에 2011년 정식으로 반환을 요청하고 15만 명 서명 운동을 벌이는 등 주체적으로 모나리자 반환 운동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 측은 이러한 반환 운동을 거부하고 있는데, 반환 선례를 남기면 다른 약탈문화재 기원국들도 잇달아 자국 문화재의 환수를 요구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우리나라가 루브르 박물관 측에 요구하였던 외규장각 도서 반환 요청이 결국 ‘대여’의 형태를 통해 부분적으로 성취된 것과 유사한 사례이다. 이처럼 모나리자의 자국 반환은 아직 그 성공여부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이처럼 결과가 불확실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입장에서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여러 가지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그 중 하나는 모나리자 반환 운동에 있어서 비단 정부뿐만 아니라 자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다는 점이다. 모나리자 환수를 촉구하는 서명 운동에 15만 명의 인구가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것은,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있어서도 모나리자 등의 약탈 문화재가 다시 이탈리아로 환수되는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관심사라는 점을 함축한다. 물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명작이라는 점 또한 국민들의 이러한 관심에 지대한 역할을 했으리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실 한국의 경우에도 해 높은 것으로 평가되어서 이태리의 자국 문화재를 환수 받는 것이 타국의 약탈 문화재를 소유하는 것보다 오히려 합리적이라는 사실 때문일 수 있다. 덧붙여, 이탈리아 정부는 이러한 문화재 환수를 우리나라의 정부와 비교하였을 때 그 중요도를 훨씬 높게 이해하고 있으며 이러한 인식이 반영된 문화재 정책들은 이탈리아의 잇단 문화재 환수 성공 사례에 큰 영향을 끼쳤다.물론 이러한 성공에는 앞서 지적한, 이탈리아의 강경한 대응 방침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또한 한국이 이러한 문화적 제재 면에 있어 이태리의 것만큼의 실효성을 갖추지는 못했다는 것 또한 하나의 배후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비록 이러한 요건들이 존재하더라도 직지심체요절이나 몽유도원도 등의 그 역사적 가치가 높은 작품들이 여전히 해외에 약탈된 문화재로서 전시되고 있다는 것은 국민들의 기본적인 국가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 있어서 장애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나. 문화재 환수 문제의 중요성 인식문화재청은 금년 5월 21일에 발표된 2013년 주요업무 계획을 통해 해외에 있는 한국 문화재들에 대한 태도를 밝혔다. 문화재청은 불법 약탈 문화재는 적극적으로 환수하도록 노력하고 정당하게 반출된 문화재들은 현지에서 한국 고유 문화재의 우수성을 알리는 매개체로 적극 활용해 나가기로 입장을 공고히 했다. 이처럼 문화재청이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의 환수에 관심을 쏟는 것은 향후의 문화재 환수에 있어 매우 희망적이다. 그러나, 2010년 9월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당시 문화재청 내에서 문화재 환수만을 담당하는 인원의 수가 0.3명으로 채 한 명에도 이르지 못한다고 한다. 이처럼 소수점으로 인력이 나온 데에는, 해당 인력이 문화재 환수만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작용한 결과이다. 이는 정부가 문화재 환수 분야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행하지 못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통계 자료이다. 이런 실황에서, 대부분의 문화재 환수는 민간단체에서 담당하게 된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면 매년 문화재구된다.
박노자 『하얀 가면의 제국』을 읽고『하얀 가면의 제국』의 서론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긍정적 옥시덴탈리즘과 오리엔탈리즘을 신랄하게 지적하며 시작된다. 사실, 할로윈을 맞아 클럽에서는 할로윈 파티를 열고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이 어머니가 사준 할로윈 의상을 입고 사탕을 받으며 크리스마스 즈음이 되어서는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이나, 막상 설날과 추석을 뺀 우리의 전통 명절은 크게 쇠지 않는 지금 상황에서는 저런 단어들이 멀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도 몇 차례 우리나라 국민들이 동남아 출신의 외국인들과 ‘서구적’인 외모를 가진 피부 하얀 외국인들에게 각기 다르게 행동한다는 것이 방송된 적이 있었음 감안하면, 타 국가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인식이 얼마나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한국인이 해외에 나가서 인종 차별로 인해 불합리한 대우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크게 분개하나, 사실 시시비비를 따지고 보자면 우리나라에서 거주하고 있는 유색의 외국인들과 백인을 차별하는 것 또한 명백한 인종차별이라는 당연한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저자 박노자는 이러한 단순하고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환상들, 즉 ‘하얀 가면’들을 구체적인 설명을 통해 찬찬히, 인내심 있게 풀어나간다.저자 박노자는 지금의 찬란한 ‘서구 문명’을 이룩하고 있는 기저에 깔린 것들을 우리에게 가리킨다. 이는 비록 피하고 싶은 진실일지더라도 그곳에서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 『하얀 가면의 제국』에서는 Levi’s 청바지나 나이키 운동화처럼 전 세계에 가지를 뻗치고 있고 길을 지나가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입고 있는 바로 그 화려한 브랜드들을 이룩하기 위해서 제 3세계 노동자들은 쉴 시간도 없이 비인도적인 대우를 받아가며 일한다는 것을 독자들의 눈앞에 환하게 조명해낸다. 저자 박노자는 아름다운 겉 표면 아래 눈으로는 보기 힘든 참상이 있는, 가면 뒤의 것들을 볼 줄 알아야한다는 것을 지적하는데, 나는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꼭 서양 국가의 것들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찬양하며 옳은 것으로 믿고 따르는 것의 이면에도 분명 어두운 부분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모두 알고 그럼에도 어느 한 쪽을 택한다는 것은 존중받아야 마땅한 하나의 선택이나, 무지에서 비롯된 맹목적인 신뢰는 모두를 불편하게 만든다.
국내 문화재의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등재 현황과 개선방향Ⅰ. 머리말유네스코에서 행하는 다양한 업무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분야는 세계유산 보호·관리에 관한 것이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는 2012년 사업비 총액의 약 9.7%를 유산 규범 진흥에 활용했으며, 이는 단일 항목으로는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지표는 세계유산 분야가 유네스코 단체 내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해당 단체 내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을 비롯한 단체 외부의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력을 끼친다. 이는 유네스코의 권위와 영향력에서 기인한 것으로, 이러한 사실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국내의 문화유산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고 관리하는 일은 국가적 차원에서 매우 큰 영향을 끼치며 또한 상당히 높은 중요도를 지닌다.그러나 한국은 88.9월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 가입 이후로 7년이 지난 1995년 3건의 등재를 시작으로, 13.10월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지 9건의 문화유산만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으며, 경주 역사지구와 고인돌 유적이 등재된 2000년 이후로 조선왕릉 40기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2009년까지 9년 동안의 공백기에는 어떠한 문화재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지 못했다. 이처럼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의 적은 수는 국내 실황은 같은 동아시아권 국가인 일본과 중국이 가입 이후로 13.10월 현재에 이르기까지 각각 총 13건, 35건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한 것과 단순 수치 비교를 해 보면 더욱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현실은 물론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비교적 좁은 우리나라 국토의 면적과, 과거 다수의 문화재가 약탈·소실되었던 아픈 역사에서 기인한 점이 크다고 볼 수 있지만, 문화재의 보존 및 관리의 소홀 그리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과정 내부에서의 비효율성 또한 하나의 이유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따라서, 본론에서는 우선 국내의 세계문화유산이 어떤 방식으로 관리되고 또한산으로 지정되는 것은 보다 형이상학적인 의의까지도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문화재로는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창덕궁, 수원 화성, 고인돌 유적, 경주 역사유적지구, 조선왕릉, 그리고 하회·양동 역사마을까지 총 9건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유산의 개수는 주위의 아시아·태평양권 국가들이나, 더 나아가서는 스페인이나 그리스, 혹은 프랑스 등의 유럽 국가들처럼 한 국가가 평균 40건 이상의 문화유산을 보유하는 경우에 비교한다면 매우 적은 수치에 해당한다. 더더군다나 현실적으로는 내국인들조차도 국내의 유적지 중 몇 건이 등재되어 있는지, 그리고 어떤 유적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있는지에 대하여 올바르게 알고 있지 못한 경우가 부지기수이기까지 하다. 국내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과 무지는 이 문제와 관련된 정보가 대체로 대중성과 접근성이 낮은 경향이 있다는 것을 그 원인들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물론 국내의 세계문화유산에 대한 정보 자체는 문화재청이나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홈페이지 혹은 그저 포털사이트의 인터넷 백과사전에서까지도 쉽게 접근할 수는 있으나, 사실 일반 대중이 이러한 자료를 자발적으로 검색하게 할 만한 유인이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이는 가지고 있는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아 해당 문화재로 창출할 수 있었던 경제적인 이득을 포기하게 해 사회 전반적인 효율성을 저해하는 요인까지도 될 수 있다. 만일 국민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대해 높은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면, 관광 수익이나 기타 관련된 경제적 가치가 어마어마하게 달랐을 것이다.본론 1.에서는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되어 있는 몇몇 문화재들과, 잠정 유산으로만 이름이 올라와있는 문화재들의 예를 동시에 살펴보는 방식을 통하여 국내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관련된 현황과 그에 따른 개선해야 할 부분들에 대하여 조명해보고자 한다.(2) 석굴암·불국사경주의 석굴암과 불국사는 문화재 복원가 발생하였으며, 이는 교체 시기가 지나치게 길어서 발생한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3) 하회 · 양동마을국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들 중 가장 최근에 등재된 하회·양동마을은 09.01월 등재 신청서가 제출되었고 10.05월에 유산심사 자문기구(ICOMOS: 국제 기념물 유적협회)에서 보류 권고를 받았다. 이는 유산의 일부 제반조건이 충족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등재 보류 사유는 하회와 양동 두 마을의 연속성이 부족해 보인다는 이유 때문이었고, 10.6월에 추가적으로 문서를 제출한 결과 결과적으로는 등재 승인을 받아내는 데에 성공하여 최근에는 등재 2주년을 맞아 기념식을 열기도 하였다. 두 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은 물론 그 역사적 항구성 또한 큰 영향을 했지만, 빠른 근대화와 서구화를 거치면서도 동시에 전통적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촌락사회까지도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수행할 수 있는 역할과는 별개로, 하회와 양동 두 마을은 지역 주민들의 실거주지로서의 역할 또한 담당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여러 문제점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 먼저, 마을을 문화 산업화 하는 데에 대한 주민들의 불편을 꼽을 수 있겠다.이처럼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하회·양동마을은 세계유산 역사마을의 특성상 각종 개발 압력의 위협이 항시적으로 잠재되어 있다는 위험성이 있다. 이는 문화재 등재 시 항상 등장할 수밖에 없는 ‘공적 이익을 위한 개인의 재산권 제한’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처럼 문화유산을 등재하는 과정에서는 주민의 생활권과 국가의 문화재 보호 압력이 충돌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로 인해 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하는 데에 합의를 보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잠정목록 신청에 대한 찬반양론으로 갈라져 갑론을박이 팽팽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서남해안권의 유산 등재를 두고 부안군 등지의 주민들은 재산권을 위협할 수 있는 행위라는 의견을 들어 유네스코 등재를 결국 포기하는 잠정목록에 오른 한양도성의 경우만 보더라도 내년에 있을 등재 신청서 제출 준비를 담당하는 단체가 서울시 산하의, 갑작스레 신설된 두 임시 부서인 ‘한양도성도감’과 ‘한양도성연구소’이다. 두 부서는 2012년 9월 28일 설립되었으며, 13.9월부터 등재신청서 작성을 시작하여 14.6월 작성을 완료하고 15.1월에 등재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할 계획이다. 그러나 한 가지 걸리는 점은, 이런 식으로 하나의 일관된 단체가 아닌 각각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잠정목록에 등재된 유산들을 관리하고 세계문화유산으로의 등재를 추진하다 보니 비효율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일 하나의 통합된 단체에서 이러한 업무를 모두 관장한다면 이전의 등재 신청서와 그 결과 등을 참고하기가 훨씬 수월해지고 등재 업무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인력 또한 마련할 수 있게 된다.덧붙여서 잠정목록으로 등재하는 과정 또한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지금까지 잠정목록 등록 신청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세계유산제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리고 신청된 잠정목록에 대한 세계유산 등재조건을 충족시키는지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상태에서 등록이 되어 왔다. 이러한 실황의 개선을 위해서는 정부와 유네스코 단체, 그리고 국민 모두의 관심이 요구된다.2. 개선 방안(1) 홍보를 통한 국내 관심 유인앞서 본론1. (1)의 소개에서 서술하였듯이, 한국은 자국의 세계문화유산에 대한 국민 의식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또한 이러한 경향성은 문화유산의 등재에도 반드시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만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대한 국민 의식이 높은 상황을 가정해 본다면 그 의미가 더욱 명확하게 느껴질 것이다.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높은 상황 하에서는 세계문화유산의 등재를 위한 금전적·비금전적 지원을 받기가 훨씬 수월해질 가능성이 높을 뿐더러, 잠정목록에 속해 있는 문화재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구체적인 탐구와 연구를 할 인력 혹은 기관을 마련하기에도 이전에 비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유리한 환경이 마련될고들어 일상으로 자리 잡아 거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SNS는 10~30대에서 그 사용률이 가장 높기는 하지만, 사실 최근 들어서는 모든 연령층이 이를 통해 상호간의 의사소통을 하고, 사회적 이슈나 뉴스를 공유하는 동시에 새로운 여론을 형성해 또다시 새로운 사회적 이슈를 만드는 순환을 반복한다.또한, SNS를 이용하는 것의 장점은 바로 인터넷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한 번 이슈를 타게 된다면 검색어 순위에 오르게 되고, 이를 통해 다른 컨텐츠까지 자연스레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접근하자면, 이러한 형태의 홍보가 제대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단순 세계문화유산에 관한 정보 자체만을 SNS에 올리는 정보 알림 식의 무미건조한 활동이 아닌, 최근의 이슈들과 내용을 결합하고 홍보 대상자의 연령대를 고려하여 정보에 대한 흥미를 자연스레 유도하는 융통성 있는 방식으로 행해져야만 그 효과를 발한다.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홍보에 있어 SNS를 사용하는 데에 따른 또 다른 장점은 바로 광고비용 부문에 있다. 이전의 텔레비전 광고나 옥외 광고, 혹은 라디오를 통한 광고 등과 달리, SNS를 이용한 광고는 별도의 광고비용이 전혀 요구되지 않는다고 간주할 수 있을 정도이다. 다른 매체들과는 달리 초기에 대중의 관심을 게시물로 불러들이기가 조금 어렵다는 부작용이 존재하기는 하나, 이는 꾸준히 SNS 활동을 하고 한국 민속촌 계정이나 경기도 고양시에서 운영하는 계정과 같은 타 유명 SNS 유저들과 접촉하려 시도하고 SNS상에서 친밀한 모습을 보인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덧붙여, 전술하였듯이 문화재는 그 자체가 일반적인 대중들에게는 친근하게 느껴지기에 상당히 어려운 이미지를 지니고, 자칫하면 고루하고 답답하여 현대에서는 그리 쓸모가 없어 보인다고 받아들여 질 수도 있기 때문에, SNS를 사용하는 것은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오히려 신선하고 편안하게 환치시킬 수 있어서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첨단의 끄트머리에 .
채프만 형제전에 다녀와서1. 채프만 형제전을 보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사실 생리적인 거부감이었다. 본래 잔인한 것을 보기 힘들어 하는 성격인데다가, 자본주의 문명으로 인해 원시성을 침해당한 아프리카 문화를 나타낸 채프만 가 컬렉션 같은 경우에는 폐쇄적인 공간에 있었던 데다가 주위 조명까지 명도가 낮아 한층 더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차차 처음의 거부감이 사라지자 작가가 의도하고자 한 것이 느껴지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채프만 형제의 작품은 그동안 사람들이 당연히 주어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아 온 것들을 관람자들로부터 박탈한다. 그 방식은 매우 충격적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자극적인 요소가 마치 기업들의 노이즈마케팅처럼 시선을 끌기 위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채프만 형제, Bedtime Tales for Sleepless Nights I40x30cm, 2010, Hand colored etching with watercolored and lithograph print2. 전시회는 주제별로 분류하여 각 공간마다 짜임새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Room 3의, 동화를 그들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이 전시된 곳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원색과 형광색으로 채색된 그림들은 카툰적이어서 아이 같은 느낌을 주었고, 그런 그림체로 괴기스러운 괴물들을 그렸다는 괴리감에서 작품을 보며 받는 인상의 강도가 더욱 증폭되었다. 또한, 전시장의 벽에 쓰여진 설명을 참고하자면 이러한 그림들은 채프만 형제가 아이들이 과연 우리들의 생각처럼 순수한지에 대해 물음을 던지려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작품들을 보면서 아이들이 가해자라기보다는 피해자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나는 전시회를 보면서 작가가 어린 시절에 대해 어떤 트라우마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작품들 중 한 구절에 ‘Your birthday suit Now an ill-fitting garb’, 즉 ‘이제 제대로 맞지 않는 너의 생일 옷’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사실 작품들의 다른 구절에서 살갗을 벗기거나 하는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을 감안하면 전혀 심각하지 않아 보이나, 이는 어찌 보면 우리가 왜 채프만 형제의 동화를 재해석한 작품들을 보며 공포를 느끼는지를 제일 잘 보여주는 문구이다. 한 공포영화에서는 집으로 이사 온 가족들의 아이가 생일을 맞은 것을 축하하는 장면에서 영화가 시작된다. 이는 어린아이의 생일이라는 이벤트가 행복한 가족의 일면을 보여줄 수 있음을 염두에 둔 설정이었음을 단언할 수 있다. 이처럼 완전히 긍정적이고 안전한 ‘생일’에 어떤 비극적인 일이 발생한다면 그 간극으로 인해서 그들의 처지가 한층 더 강조될 수 있다. 채프만 형제의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공포 또한 이러한 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 동화라는 것은 마치 잠잘 때 안고 자는 베게나 어머니의 품 안처럼 아이들이 가장 믿고 안심한 채 지낼 수 있는 ‘안전한’ 대상이다. 그러나 채프만 형제의 작품 속에서는 아기돼지 삼형제처럼 우리가 익히 알아온 친숙한 동화들의 한 장면이 매우 그로테스크하게 변환되어 있다. 이러한 변형을 통해 우리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상마저도 박탈당하는 본질적인 공포를 느끼게 된다. 세상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이 혼자 괴물들과 직면하는 상황은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공포마저도 불러일으킨다.채프만 형제, No Woman No cry215 x 127.5 x 127.5 cm, 2009, Fiberglass·plastic·mixed media
카를 케레니「그리스 신화」요약1장 사물의 기원카를 케레니는 제일 먼저 그리스 신화에서 만물의 기원을 보는 관점 세 가지에 대하여 서술하였다. 첫 번째는 오케아노스와 테튀스의 결합으로 만물이 창조되었다고 보는 관점이고, 두 번째는 밤의 여신 뉙스가 낳은 은빛 알을 창조의 근원으로 보는 관점이다. 마지막 관점은 카오스로부터 탄생한 가이아가 우라노스와 하위 신들을 잉태하는 것으로부터 세계가 창조되었다고 보는 것이다.2장 티탄족 이야기가이아와 우라노스의 결합은 티탄족의 탄생으로 이야기를 이끈다. 티탄족은 그리스 신화 초반기의, 보다 원시에 가까운 신들이다. 우라노스는 가이아가 낳은 그들을 미워해 땅속 구멍에 숨기는 일로 가이아의 미움을 샀다. 결국 가이아는 자식들 중 하나인 크로노스로 하여금 우라노스를 낫으로 공격하도록 유도한다. 그 후로 크로노스는 최고신의 지위를 손에 넣고 자신의 누이인 레아와 결합하여 여섯 자식을 슬하에 둔다. 그러나 크로노스는 그의 아버지를 벌했던 것과 모순되게 그의 아버지와 똑같은 전철을 밟게 되는데, 왕위를 빼앗길 것을 염려하여 아이들을 삼켜버린 것이었다. 그로 인해 레아는 크로노스에게 앙심을 품게 되고 제우스로 하여금 그의 왕위를 찬탈하게 한다. 제우스는 크로노스가 삼켰던 그의 형제자매들과, 우라노스가 과거 가둬두었던 크로노스의 형제들까지도 모두 해방시킨다. 크로노스의 지배기는 흔히 황금시대라고 불렸던 꿈의 시기와 거의 동일시된다.신들의 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그리스신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 중 하나는 제우스가 다른 신들에 의해서 결박되었던 일이다. 또 다른 이야기는 티탄 족과 올림포스 신들 간의 전쟁에 관한 이야기이다. 꼬박 십년간 지속되었던 그 전쟁은 가이아의 조언으로 인해서 올림포스 신들의 승리로 끝이 났다. 티탄 족들은 땅 밑의 타르타로스에 유폐되었다. 제우스와 튀폰 간의 전투에 관한 이야기 또한 남아있다. 또한, 우라노스가 흘린 피에서 탄생한 거인들과 올림포스 신들 간의 이야기도 있다. 이 전투에서는 디오니소스와 헤라클레스가았다. 그들 중 펨프레와 에뉘오는 백발을 지녔으나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다고 한다. 다른 한 그라이아이는 데이노, 혹은 페르소라고 불렸다고 전해진다. 그라이아들은 햇빛도 달빛도 비추지 않는 땅에 살았으며 고르고들에게로 갈 수 있는 길을 관리했다. 그들은 하나의 눈과 하나의 치아를 셋이서 공유하였다.에리뉘에스 또한 모이라들이나 그라이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늙은 여신들이었다. 그들은 머리 위에 뱀들을 두르고 검은 피부를 가지고 회색 옷을 입은 세 명의 신으로 전해진다. 그들은 우라노스가 흘린 피에서 잉태되었거나, 혹은 밤의 여신의 딸이라거나, 땅의 여신의 딸들, 때로는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자식이라고 전해진다. 이들 세 자매는 호통 치는 어머니의 이미지를 나타내며 어머니가 불합리한 대우를 당하는 곳에서 등장했고, 아주 부당한 경우에도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옹호하곤 했다.포르퀴스의 딸들인 고르고네스는 늙은 여인들이라기보다는 헤카테와 유사했으며 그라이아이들의 자매였다. 이들에게 닿기 위해서는 그라이아들을 통해야 했다. 첫째는 스테노로, 힘이라는 단어와 연관성을 지닌다. 둘째는 바다와 연관되어 있는 이름인 에우뤼알레라고 불렸다. 셋째는 메두사이며, 이 또한 바다와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메두사는 죽음의 운명을 지녔으나 나머지 두 자매는 불멸의 존재였다.에키드나는 뱀의 여신으로, 포르퀴스의 딸이다. 그녀는 반수반인의 외양을 지녔으며, 지옥의 사냥개 케르베로스를 비롯한 사냥개들을 낳았다. 그녀의 형제로는 뱀 라돈이 있는데, 때로는 에키드나의 아들로 서술되기도 하며 황금사과가 열리는 나무를 지킨다. 헤르페리데스는 밤의 여신의 딸들로 추정된다. 그들은 세 명 네지 네 명으로 추정되며, 해질녘, 혹은 석양과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세이렌의 아버지로는 포르퀴스 혹은 아켈로오스가 언급된다. 아켈로오스는 황소의 뿔과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세이렌들은 새의 신체와 인간의 머리를 가진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들은 음악적 재능을 지니며 수금 혹은 플루트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른다. 각각의 이름은 다양하출산했을 때 레아는 이데 산에서 해산을 기다렸다. 그 때 그녀가 몸을 지탱하면서 레아의 손가락 수만큼의 정령 혹은 신이 태어났으며 이들은 ‘이데의 손가락들’이라는 뜻의 닥튈로이 이다이오이라 불렸으며 레아의 출산을 도왔다. 닥튈로이의 숫자에 관해서는 각각 달리 서술된다. 카베이로이는 이데의 닥튈로이였다. 그들의 이름은 이방인의 언어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렘노스에서 카베이로는 프로메테우스의 딸이며, 카베이로이를 낳았다고 서술된다. 이들은 원시 민족을 대표하는 성질을 지녔다.프뤼기아 신화에서 위대한 신들의 어머니느 아그디스티스라고 불렸다. 아그디스티스는 바위에서 잉태된 양성적 존재였으며 사납고 야만적이었다. 아그디스티스는 결국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 신들 중 디오니소스에 의해 처벌받는다. 그는 나나에게서 아티스를 얻게 되나, 그가 장성한 뒤에는 사랑에 빠지고 만다.제6장 제우스와 그의 배우자들제우스는 출생 이후 레아에 의해 네다 강의 샘에서 목욕시켜졌다. 세 명의 딕타이오이 멜리아이가 그의 보호자가 되었으며, 그 외에도 암염소 · 암퇘지 · 꿀벌 · 비둘기 등도 제우스의 유모로 전해지고 있다. 크레테 섬의 많은 동굴들이 그의 출생과 유년기 이야기 중에 언급되었다. 다른 전설에서 크로노스는 레아의 속임수를 눈치채고는 제우스를 찾으려 땅을 샅샅이 뒤진다. 그 사이 헤라는 제우스를 크레테 섬으로 옴겼고 아말테이아는 그를 숨기려 노력했다. 이 외에도 제우스의 탄생과 양육을 설명하는 신화는 매우 다양하다. 제우스의 상징물인 독수리는 그의 놀이 친구인 아이토스가 헤라의 질투에 의해 변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헤라는 제우스가 탄생하자마자 그를 남편으로 결정했다. 그녀는 제우스를 유혹하기로 작정하고 아프로디테에서 마법 띠를 얻어내어 황금 옥좌를 가진 여주인으로서 군림한다. 헤라는 결혼 선물로 황금 사과들이 달린 나무를 얻게 된다. 그들의 결혼이 성립하기에 대한 다른 이야기로는, 제우스가 뻐꾸기로 변신해 헤라를 유혹했다거나 납치했다는 신화들이 있다.에우뤼노메는 패배한 옛 신들 헤파이스토스 혹은 프로메테우스가 아테나의 출생을 돕기 위해 제우스의 머리를 도끼나 망치로 때렸다는 신화도 전해진다.아테나의 출생에서는 어머니의 역할보다는 아버지의 역할이 더욱 부각된다. 그녀의 아버지로는 제우스와 팔라스, 퀴클로스 브론테스가 언급된다. 아테나의 양육 과정에서 그녀는 친구나 자매를 전쟁 놀이 도중 살해하게 된다. 그녀는 또한 다른 이름으로 두 측면을 드러내기도 한다.그녀는 보통 처녀로 불렸으나 때로 어머니로 불리기도 했다. 아테나의 출생과 관련된 신화 중 하나는 그녀를 헤파이스토스의 신부로 묘사한다. 다른 신화에서는 그들이 싸움을 벌였다고 설명하고, 또 다른 전설도 존재한다. 아테네는 아폴론의 출생과의 연관성 또한 갖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아테네인들은 자신들의 최초의 왕이 케크롭스였다고 말한다. 그는 아테나를 아티케의 지배자로 판결한 등의 일을 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글라우로스를 부인으로 맞았으며, 세 명의 아글라우리데스를 딸로 두었다. 그들에 관련된 이야기로는, 헤르세와 헤르메스간의 이야기나 에리크토니오스에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아테네의 별명들 중 일부는 페르세포네의 것과 유사한 어두운 이미지를 보여주나, 올리브와 관련된 밝은 측면 또한 보여주기도 한다. 물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이름도 있으며, 헤파이스토스 혹은 아레스 연결되어 있었고 도시를 보호하는 여신으로서의 성격을 지녔다.8장 레토, 아폴론, 아르테미스레토는 제우스의 아내이나 그보다는 아폴론과 가까웠다. 아폴론은 세 번째로 위대한 신으로 그가 활을 들면 레토를 뺀 모든 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한다는 신화에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레토는 딸로 영원한 처녀 아르테미스를 두었다. 레토의 출생에는 여러 가지 설명이 존재한다. 그녀는 제우스의 아이를 잉태하였으며 헤라의 질투를 피해 태양이 비추지 않는 장소를 찾아다녔다. 레토의 출산 신화에서는 늑대가 종종 등장한다. 아스테리아는 레토의 자매 신이며, 제우스의 유혹을 피해 돌로 변신하여 파도 속에 가라앉았다. 그 이후 레토의 출산을 돕기열매가 등장한다. 헤파이스토스는 조산이었으며 매우 불운한 출생을 했다.그리스 신화에서 신적 쌍둥이들에 관한 이야기들은 신화라기보단 영웅 모험담에 가깝다. 이러한 고대의 쌍둥이 중에는 알로아다이가 있다. 그들은 오리온을 제외하고는 가장 아름다웠으며 그 몸집 또한 거대했다. 알로아다이는 올림포스 신들에게 도전하였으나 아폴론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 그들은 실수로 서로의 창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된다. 그들은 아레스를 잡아서 항아리에 가둔 적이 있다. 아레스는 그 일로 거의 죽음에 이르렀다.헤파이스토스는 조산으로 인해 발바닥과 발등이 뒤집힌 채로 태어났다. 헤라는 아이를 바다에 던져버렸고 헤파이스토스는 테티스에 의해 구해졌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헤파이스토스가 헤라 편을 들어 제우스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하루 종일 공중에서 떨어지게 되었다.헤파이스토스는 자신을 수치스럽게 여겨 내던진 헤라의 행동에 분노하여 사슬로 그녀를 옥좌에 묶는 방식으로 복수했다. 아레스는 어머니를 도우려 시도했으나 패배했다. 결국 그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만드는 디오니소스의 계략이 성공하였고 헤라는 풀려날 수 있었다.헤라는 일부일처제를 옹호했으나 제우스는 이보다 원시적인, 한 여자에게 예속되지 않은 아버지의 원리에 속했고 헤라는 제우스의 다른 자식들을 매우 증오했다. 결혼 전 헤라는 한 거인에게 강간당하여 프로메테우스를 잉태하였다.10장 마이아, 헤르메스, 판, 임프들마이아는 제우스와 결합하여 헤르메스를 잉태한 여신이다. 그녀는 동굴 속에 사는 님프였다. 헤르메스는 출생 후 아흐레가 되자 기상천외한 일들을 행하여 신들 사이에서 유명해졌다. 그는 거북이의 껍질과 양의 내장으로 수금을 만들었고 오십 마리의 소들을 훔쳤으며 최초로 불을 지펴냈다. 또한 아폴론에게 수금을 주고 목동의 지팡이와 신분을 얻어내었다. 많은 신화에서 헤르메스는 아프로디테와 연관성을 지닌다.판은 외양에서 염소와의 연관성을 지닌다. 판은 모든 신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가장 젊은 세대의 일원이었다. 판은 어두우나 크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