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홍련장화 홍련에서의 음향의 특징은 크게 전형적인 공포영화에서처럼 음향효과의 사용이 뛰어나지만, 전체적으로 고요한 분위기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영화는 일부장면을 제외하고는 정적인 느낌이 강한 영화였다. 그리고 일본식 목재건물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대부분 가족임에도 행복하다는 느낌은 가질 수 없게 한다. 그래서 집안은 행복하고 따뜻한 기운보다는 등장인물사이에는 침묵이나 냉기가 흐르고 고요한 정적이 집안의 주된 분위기인거 같다. 관객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영화에서 정적은 오히려 관객의 주의를 끌게 된다. 그래서 더 집중하고 긴장하고 봤다. 그리고 정적은 작은 움직임에도 놀라고 공포를 느끼게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아버지의 면도장면에서 면도하는 소리가 과장됨으로 해서 관객은 밖에서 수미와 계모가 말다툼하는 긴장된 상황에서 칼로 베어내는 듯한 소리로 순간 섬뜩함을 느꼇다.그리고 영화에 사용된 음향의 가장 큰 특징은 과장되어버린 일상적인 소리들 인거 같았다. 영화 내내 아주 일상적이고 사소할 수 있는 오래된 문과 마루의 삐걱대는 소리, 풍경소리, 의자를 뒤로 빼는 소리, 물건들을 내려놓는 소리, 문을 닫는 소리, 커튼을 젖히는 소리, 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 사람의 숨소리, 새장의 새가 우는 소리, 세면대에 물 떨어지는 소리 등은 실제보다 더 크게, 끼이익 혹은 삐걱 등등의 신경을 긁는 소리로 과장되어 처리되었다. 또한 계모가 아이들을 위협하는 절정부분에서 끓으면 삐-이 소리를 내는 주전자소리와 석고상을 끄는 소리들은 끓는 물과 석고상이라는 수단을 강조해 줌과 동시에 공포감을 극대화시키는거 같았다. 이러한 일상적인 소품들을 이용한 음향효과들은 자칫 지루해 질 수 있는 평범한 모습들에서도 관객들의 시선을 고정시키는 역할과 동시에, 영화 전반에 공포감을 부여해줌으로써 공포영화로서의 장화홍련 이라는 틀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수행 한 것 같다.영화의 음향은 크게 가시음향과 불가시 음향으로 나눌 수 있다. 가시음향은 스크린 내 보이는 것의 소리를 표현하는 것이고, 불가시 음향은 스크린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스크린 밖에서 일어나는 인물이나 사물의 소리를 표현하는 것이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의 공포가 더 크듯이 보이지 않는 것의 소리는 공포감을 유발한다. 따라서 공포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도 불가시 음향이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무의미한 소리의 반복에서 말했던 풍경소리, 새소리 등이 그렇고, 또 마루바닥을 걸어다니는 소리 등이 그러하다. 공포영화의 특징은 소리하나에만도 놀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만큼 음향의 사용이 두드러지고 표현이 뛰어나다. 이 영화에서는 실제적인 귀신으로 보이는 형체의 등장이 세 번 있다.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삐거덕거리는 소리, 귀신이 가까워지면서 깔리는 저음의 효과음 그리고 귀신이 가까워졌을 때의 바이올린이나 기계음 등의 굉음은 눈에 보이는 존재를 더 무서워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의 비명은 주인공과 같이 놀람을 느끼게 하고, 그렇게 한참 높아진 소리를 갑자기 멈추고 정적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또한 예측할 수 없는 뒷이야기에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유난히 많은 비명소리는 수미가 가진 내면의 불안과 공포감등의 무의식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이 영화에서 침묵은 또 다른 효과를 가져 오는 거 같았다. 새엄마가 수연이을 죽이는 환상을 보는 수미의 모습들을 비추는 부분에서 빠르게 흐르던 굉음들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한순간에 끊겨버린다. 점점 고조되는 음향을 통해 극도의 긴장감으로 관객들을 옭아매던 영화는 화면의 긴장도는 높여가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음향효과를 침묵시켜버림으로써, 긴장을 풀라고 말하기보다는 '자, 드디어 숨 넘어갈 시간이 왔어' 라고 말한다.수미가 생리(?)한 수연의 빨래를 널고 수연과 함께 바깥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수미는 엄마가 좋아했다던 노래 자장가를 휘파람을 분다. 이 휘파람은 나지막히 편안한 음색으로 조용조용 들려온다. 이 노래는 엄마에게 수미가 가지는 그리움과 애정 등을 보여주는거 같다.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모든 것들이 설명된 이후 이 휘파람이 한번 더 등장하는데, 이때 이 휘파람 소리는 음산한 바람에 흩날리듯 둔탁하게 갈라지며 끝이 난다. 그리고 계모는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받고 집안 곳곳을 둘러보다가 귀신을 보게 된다. 앞에서 편안하게만 느껴지던 자장가 휘파람소리는 후에는 절대 편안하지 않은, 오히려 불안감을 조성하는 음악으로 사용된 것이다.아버지는 늘 표정 없이 가족들을 관찰하는 존재이다. 가족 간의 불화에 관심이 없어 보이기 때문에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모습이다. 이는 다른 인물에 비해 수연과 엄마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이 적은 것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이고 말투 또한 건조하고 언성을 높이는 일이 거의 없는 차분한 말투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대사에서 특이한 점은 첫 번째로 영화를 볼 때는 잘 느낄 수 없지만 수미와 계모가 동일인물임을 알게되면 아버지는 가족모두가 자리하는 자리일지라도 오직 수미나 계모 둘 중에 한사람과만 이야기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말투 또한 수미의 모습일 때나 계모의 모습일 때나 수미에게 하는 말투로 일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버지는 수미의 병적인 행동을 관찰하고 그 경과가 점점 심해지는 것을 보고 여러 차례 통화를 한다. 그런데 상대방이 계모인 것은 절대로 밝히지 않은 채 혼자 심경을 토로하는 것 같은 독백과 비슷한 상황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설정은 관객들의 궁금증을 유발시키며 끝까지 극적 긴장감을 높여준거 같았다.계모는 폐쇄적인 정서를 자아내며, 이는 영화 전반을 흐르는 공포스러운 분위기와 조성한다. 높은 톤의 부자연스러운 목소리, 빠르게 쏟아내는 말들, 그리고 특이한 웃음소리 등 이는 실제 계모의 모습으로써 보다는 수미가 그리는 계모의 모습을 가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스럽지 못하고, 분노로 부정적인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다. 처음 수미와 수연이 집에 도착했을 때 새엄마는 호들갑스럽게 반긴다. 빠르게 내뱉는 말은 다정한 엄마들이 할 만한 말이지만 그 어투나 톤, 표정 등은 과장되어 있고 어딘지 부자연스럽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족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수미는 양면성을 가진 캐릭터이다. 동생인 수연과는 세상에 둘도 없이 친한 자매지간이고, 항상 지켜주겠다는 말을 한다. 그와 반대로 아빠에겐 더럽다고 욕하고, 계모와는 늘 신경질적이다. 그리고 그들을 대하는 태도는 항상 반말이다. 자신보다 어른에게 반말을 하는 것은 수미의 반항적인 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수미가 자신 대신 그들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 주기도 한다. 한순간의 실수로 동생을 잃은 것이 감당하기 벅차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하는거 같았다.
바그다드 카폐영화가 시작되면 이내 그 곳이 라스베가스로 가는 길목에 있는 미국이 배경임을 알 게 되는데, 왜 하필 제목이 바그다드일까?머나먼 서남아시아의 도시 바그다드라면 우선 아라비안 나이트 계열의 동화를 떠올릴 수 있는데, 바로 이 이국적인 느낌은 마술이라는 영화의 작은 소재와 잘 어울린다. 또한 사막이라는 비슷한 지리적 배경도 이유가 될 수 있겠는데, 이를 통해 동떨어짐, 소외의 느낌을 제시하려 했던 것 같다.독일에서 미국 라스베거스로 여행 온 부부가 광활한 사막에서 다투면서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영화에서 보온병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 했었는데 영화를 다보고 나니 마치 보온병이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보온병처럼 우연히 흘러온 자스민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 보온병이 카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커피메이커를 대신하듯 그녀는 그렇게 바그다드 카페에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그리고 남편이 아내를 버린 것 같지만 나는 그 반대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자신의 덩치에 맞게 뚝심과 인내와 성실함을 지니고 있다. 남편에게 버림을 받아도 다시 사막을 횡단해서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그녀에게선 깊고 쓴 인생의 맛이 느껴진다.그리고 자스민과 정반대인 브랜드는 성격이 너무 불 같은 것 같다. 그녀의 일상은 늘 바쁘고, 짜증의 연속이다. 남편은 가출을 하고 아이들에게 치이고, 생활고에 시달린다. 그녀에겐 커피 맛을 음미할 시간이 없다. 가볍게 마시고, 빨리 목을 축여야 하는 거처럼 무지 급해 보였다. 그런 쟈스민과 브랜다의 소통은 불가능해 보인다. 삶이 그렇게 바꿔놓은 것이다. 그녀는 먼지 덮어쓴 바그다드 카페처럼 세월의 먼지를 덮어 쓸대로 덮어쓰고는 모든 것이 멈춘 듯 고장난 듯 낡은 듯 변함없는 그 곳을 지키고 있기 때문 인거 같다. 그리고 둘이 만나는 첫 장면에서 쟈스민은 남편과 헤어진 후에 덥고 지쳐 흘리는 땀방울과 브랜드는 남편을 내쫒고 지친 자기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흘리는 눈물들은 서로 묘하게 닮아 있다고 생각 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친구가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친해지지는 않았다. 브랜드는 수상쩍고 낯선 출현에 달가워 하지 않았다.자스민이 점차 바그다드 카페에 동화되어 가는데 바그다드 카페와 사람들이 그녀에게 동화는 것이 그저 못마땅할 뿐이다. 그러나 자스민이 바그다드 카페의 가득 덮어쓴 먼지를 청소해주어 그 본 모습을 찾아주는 모습과 카페 사람들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찾아주는 모습이 너무 좋았고 반대로 카페 사람들 역시 자스민의 아름다움을 찾아주는 모습이 좋았다.브랜드 역시 처음에는 그녀를 거부했지만 점점 그녀를 제대로 보게 되고 그녀를 통해 그 자신의 아름다움을 찾아 기뻐다. 사실 제일 변하고 싶었던 사람은 브랜드 일 것이다. 하지만 브랜드는 그 변화가 두렵고 무서운 것이 였나 보다. 나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월래 처음이 힘든 거지 하고나면 이렇게 쉬운 일이 없는데 라고 느낀 적이 있다. 브랜드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일 거다. 깨끗해진 사무실과 바그다드 카페, 낯선 부메랑청년, 자스민 까지 바그다드 카페를 위한 자스민의 마술처럼, 바그다드 카페는 마술처럼 변한다. 마치 고인 썩은 물웅덩이 같던 그곳은 이제 활기와 생기가 넘치는 흐르는 시냇물처럼 느껴졌다. 사실 부메랑 청년의 존재감에는 굉장한 물음표를 달았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길을 가다 쉴 곳이 기댈 곳이 필요한 사람들 그 누구나, 모두가 쉬어갈 수 있는 곳이 바그다드 카페임 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청년의 부메랑은 떠나간 모든 사람이 다시 바그다드 카페로 되돌아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러나 관광비자 기간이 끝나면서 쟈스민은 미국에서 추방된다. 쟈스민을 잃은 카페는 무기력하고, 슬픔에 젖어 있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마치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왔다. 이 영화는 황폐해진 영혼을 치유하는 매직 같은 영화이다. 이 영화가 왜 페미니즘 관점에서 의미 있다 하는지는 이해가 잘 안된다. 이 영화는 여성의 자아가 아닌 나라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나와 너와 우리에 대해 그저 좀 더 적극적이고, 좀 더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을 뿐이다. 사막의 쓸쓸함과 건조함이기도 하며, 사막의 신비로운 빛을 띠는 아름다운 노을 같았다. 이들에게 현재의 삶이란 낯선 세계에 혼자 내팽겨 쳐진 외로움과 두려움의 연속이며 타인과의 관계나 사랑의 시도는 그 좌절로 인해 오히려 고독과 공포를 가중시킬 뿐인 것 같다. 그 모습은 영락없이 건드리기만 하여도 몸을 움츠리는 달팽이와 닮아 보였다.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현재의 시간을 견디며 자신의 내부로 몸을 움츠리거나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이다. 한때 사막의 주인이었으나 지금은 카페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원주민 출신인 카페 종업원, 왕년에 헐리우드 에서 세트 미술을 담당하던 짝퉁 미술가 루드 콕스, 바그다드 카페에 묵는 손님들에게 문신을 새겨주는 데니 등은 문명의 한복판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아웃사이더의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그들은 한결 같이 현실 감각을 잃어버린 채 상실감과 공허감으로 현재를 살아간다. 이들에게 현재의 삶이란 낯선 세계에 혼자 내팽겨 쳐진 외로움과 두려움의 연속이며 타인과의 관계나 사랑의 시도는 그 좌절로 인해 오히려 고독과 공포를 가중시킬 뿐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보면 영화 안에는 모두 8점의 초상화가 보여진다. 캐리커처처럼 단순한 선과 형태의 그림들이다. 이 그림들은 콜럼비아 출신의 화가 레르난도 보테로의 그림들을 패러디 한 것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보테로 또한 자신의 그림들이 르네상스 회화의 유명한 작품들을 패러디 했다는 것이다. 바그다드 카페 전반에 흐르는 음악인 "Calling You"는 작곡 솜씨뿐만 아니라 연주, 노래에도 능한 봅 텔슨의 작품이다. 이 노래는 건조한 사막에 미묘한 표정을 안겨주는 인상적인 모티브가 되어 작품 전체를 감싼안는거 같았다. 바그다드카페하면 영화내용보다도 ‘콜링유’ 음악과 함께 스쳐지나가는 영화속 풍경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라스베가스에서 누구도 갈 수 없는 곳으로 난 사막길, 당신이 머물렀던 곳 보다는 좋은 곳으로, 손 볼 곳이 몇 군데 있는 커피 기계, 굽이를 바로 돌면 있는 작은 카페에서 난 당신을 부르고 있어요. 영화속 콜링유의 가사는 이 영화 장면들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calling you 와 함께 영화 내내 나오는 하모니카 소리 나른한 울림처럼 들렸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만큼 음울하고 조금은 몽환적이기까지 했다. 영화그전까지의 영화에 대한 내 생각을 참 많이 바꿔놓았던 영화인거 같다. 우리도 삶이라 부르는 사막 위를 쉴새 없이 떠돌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족, 연인, 친구, 이웃의 카페에 머물다 갑니다. 변화가 두려워 그저 아무도, 아무 일도 없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닫혀 있던 마음의 창을 열고 따뜻한 말 한 마디, 수고스러운 동작 한 번이면 신비한 마술이 되어 그 곳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나를 부르기 전에 내가 먼저 Calling 하는 건 어떨가 생각한다.
델마와 루이스델마는 가정주부로 남편에게 외출도 허락받으며 나가야하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제도의 희생 여성이다. 반면 루이스는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모든 일에 야무지고, 독립심이 강한 직업여성인데요, 어느 날 루이스는 반복되는 지겨운 일상을 탈출하고픈 마음에 델마에게 여행을 가자고 하지만, 델마의 남편 때문에 그 또한 쉽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결국 두 사람은 델마의 남편에게 간단한 메모만 남긴 후,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고속도로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잠시 휴식을 취하던 중에, 델마가 낯선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한 일이 발생합니다. 겨우 말리고 자리를 떠나려던 찰나, 남자는 델마와 루이스에게 치욕스런 발언을 하게 되고 그때 루이스는 자신도 모르게 총을 쏴 그를 살해하게 된다.이로 인해 여행은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되고, 둘은 계속 도피를 하게 된다. 진퇴양난으로, 도피 길에 숨은 호텔에서는 제이디라는 건달에게 걸려, 돈을 모두 잃게 되고, 이로 인해 델마는 가지고 있던 총으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강도짓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수배범으로 지목되어서 도피 중, 벼랑 끝에서 동반 자살을 하는 내용으로 끝을 맺게 됩니다.델마와 루이스는 절친한 친구사이이지만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우선 델마는 처음에는 가부장적인 남편의 억압과 속박 속에서 살지만 그것에 대해서 반항하지 않고 순응하며 살아가는 수동적이고 나약한 여성이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허락받지 않고 루이스와의 여행을 온 것은 시종일관 불안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행 중에 모르는 남자에게 강간당할 뻔하고 제이드라는 사기꾼에게 속아서 돈을 잃게 됨으로써 조금씩 태도가 변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영화의 초반에는 강인하고 이성적이어서 델마를 위로해주고 다독거려주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었던 루이스를 나중에는 오히려 울면 달래주고 위로해 주게 된다. 또한 돈을 구하기 위해 직접 편의점을 털기도 하고 속도위반 때문에 걸린 경찰에게 총을 겨누어 위협을 하며 트렁크에 감금시키는 등 델마는 점점 더 강인한 모습으로 탈바꿈해 나간다. 델마는 그동안 별로 잘난 것도 없으면서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남편에게 억눌려 집안 일만 하면서 살아왔다. 따라서 자신이 우유부단하고 무엇 하나 스스로 결정내리지 못하는 사회성도 없고 나약한 존재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루이스와 여행을 하는 도중에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과 주체성을 찾게 된 것이다. 이러한 델마의 변화 양상은 지금 현실에서 가부장적인 사회에 순응적이고 유약한 면으로만 드러나 있는 여성들에게 자신의 주체성과 자유를 찾으라는 것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루이스는 처음부터 델마에 비해 이성적이고 꼼꼼한 여성으로 나온다. 그래서 여행을 시작하면서도 루이스는 델마에게 여러 차례 주의를 준다. 그러나 남편에게서의 해방된 데에 대해 너무 들뜬 나머지 델마는 모르는 남자와 술을 마시고 춤을 추다가 결국 폭행을 당하고 강간을 당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여기서 루이스는 총을 겨누어 이를 저지하고 남성 권위의식에 틀여 박혀 있는 자신들을 성적으로 모욕하는 치한을 쏴 살해해 버린다. 또한 경찰이 상황적인 증거를 들어 자신을 살인자로 몰 것이라 판단하고 도피여행을 하게 된다. 또한 멕시코로 도망칠 계획도 차근히 세워서 남자친구로부터 도피자금을 마련하기도 한다. 루이스는 도피여행 중 델마의 부탁으로 제이드와 동승하게 되나 결국 제이드가 돈을 모두 훔쳐서 달아나버리고 절망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이때부터는 델마가 나서서 상황을 주도해 나간다. 영화 전체에서 루이스는 시종일관 이성적이고 침착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가부장적인 사회의 남성들에 대해 불신을 가지고 있으며 조심스러운 모습 또한 보여준다. 이는 루이스가 이전에 남성에게 당한 아픈 기억(텍사스 주에서 강간당한 경험)에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아마도 루이스는 독신녀로 살며, 남자친구가 있고 그가 청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절하고 도피여행을 계속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몬스터영화 몬스터에서 주인공 에일린이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대사가 잇다. ‘잊어버려’ 그말은 내머리속을 파고들어 영화가 끝나고도 떠나질 않았다. 이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에일린은 어렸을 적부터 꿈 많은 여느 소녀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소녀였다. 그러나 불우한 가정 환경 때문에 13살부터 동생들의 뒤바라지를 하기 위해 거리의 창녀로 나서게 된다. 그렇게 망가져 가고 있는 그녀에게 셀비가 다가오고 셀비와 엘일린은 사랑에 빠진다. 에일린은 셀비와 함께 하기위해 몸을 팔며 돈을 마련하던중 어떤 한 남자와 만난다. 그남자는 여자를 해치려하는걸 겨우 몸을 빼내서 차에 있던 총으로 그를 쏴 죽인 후 매춘행위 창산하고 도피하여 일자리를 구해보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라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창녀로 돌아가고 공포스런 기억을 잊지 못해서 또 다시 살일은 저지른다. 그후 에일린의 사랑을 위한 살인은 계속 되고 결국 경찰에게 붙잡혀 사형 선고를 받는다. 에일린의 ‘잊어버려’란 바로 삶이다. 8살 때 강간을 당하고 그사실을 아버지에게 말하자 아버지는 그녀를 믿지 않았다. 13살부터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몸을 팔아 돈을 벌었지만 동생들은 창녀란 사실을 알고 내쫒는다. 그후 그녀는 ‘난 한번도 선택이란 걸 해본 적이 없어’라는 대사가 보여주듯이, 밑바닥 인생을 살아간다.그녀의 과거는 잊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에 ‘잊어버려’야 하는 것이다.셀비는 그런 그녀를 사랑한다. 그녀가 창녀임을 알고도 살일은 한 사실을 알고도 사랑한다.비록 여자이지만 남자들에게 단 한번도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셀비는 준다. 처음으로 느끼는 따듯한 사랑에 에일린도 셀비를 사랑하게 된다. 두 사람의 사랑은 다른 영화에서 볼수 있는 그런 레즈비언의 사랑이 아닌 사람과 사람의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이성애와 동성애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에일린이 셀비에게 말한‘난 해보지 않은 일이없어’라는 것처럼 그녀가 겪어 보지 못한 인간의 탐욕스러움이란 없다. 주변의 시선에 자신을 버린 가족들, 한순간의 쾌락을 위해 치욕스런 행위를 요구하고 강간하는 남자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위해 엘린인을 버리는 셀비....그래서 재판이 끝나고 감옥으로 들어간 그녀의 독백에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영화보는 내내 멍한 상태의 머릿속에 둔탁한 일격을 가했던 것이다. 셸비는 분명히 에일린를 벼랑으로 내몰았다. 투정으로, 그리고 사랑이라는 폭언으로, 그리고 그녀가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방관했고, 부추기기도 했으며 결정적인 순간 에일린를 배신했다. 철부지의 곱게 자란 셸비가 무서운 현실에서 도망치고 평범해지기 위한 선택은 사랑을 사랑했는지 사랑이라 믿은건지 모르지만(?) 버린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나라고 끝까지 에일린의 편이었을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깐 말이다. 그러나 그녀의 이기적임 에는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셸비 역시 범죄자라고 생각한다. 결국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았다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 그녀가 에일린에게 왜 창녀짓을 그만뒀냐고 따지는 그 장면부터 잘 못 됫다고 생각된은 했지만 마지막까지 자신은 에일린의 범행에 동참하지 않았다고 우기는 듯한 얼굴에는 질려버렸다. 분명히 셸비는 직접적으로 범행을 저지르진 않았지만, 보통의 사람이라면 에일린를 설득해서 자수하게 한다거나 또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막거나 했을텐데 셸비는 에일린의 범행을 방관했고 부추겼다. 이런점으로 셸비 역시 범죄를 저질렀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