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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3대세습정권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지배유형 - 막스 베버(Max Weber)의 '지배유형론(전통적 지배, 합리적 지배, 카리스마적 지배)'를 중심으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정권의 지배유형 비교막스 베버(Max Weber)의 지배유형론을 중심으로Ⅰ. 서론Ⅱ. 막스 베버의 지배유형론Ⅲ. 북한과 합리적 지배유형Ⅳ. 정권 창시자 김일성Ⅴ. 신정체제 구축자 김정일Ⅵ. 제3대 계승자 김정은Ⅶ. 결론Ⅰ. 서론2016년 6월 22일 오전, 북한은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인 무수단(BM-25)을 2발 발사했다. 이에 한, 미, 일 측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강하게 비판했고, 북한 역시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해야 한다며 반발했다.이처럼 북한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견제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워져만 가는 작금의 안보상황 속에서 북한에 대한 심층적 이해는 더욱 절실해졌다.그러나 북한에 대한 이해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역사상 전례가 없는 특이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미 세상을 떠난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인간적 권위에서 통치권의 근거를 찾는 신정체제다. 2012년 북한이 채택한 새 헌법에서 김일성으로부터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백두가계’만이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을 제대로 지켜나갈 수 있다는 주장은, 이러한 사실을 강력히 뒷받침한다.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이 정권을 물려받은 뒤 북한 체제가 얼마나 더 존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었다. 게다가 계속되는 국제사회의 제제,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90년대 중반 대량 아사사태 등 수 많은 악재가 겹쳤고, 상당수 북한 전문가들조차 북한 내 급변사태를 비롯한 위기 및 붕괴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김정일은 직면한 위기를 극복했고 체제를 다시 안정궤도에 올려놓았다. 2011년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이 권력을 세습하자 국내외적으로 위기론이 다시 부상했으나, 예상과 달리 약 5년이 지난 현재까지 3차 핵실험, 한반도 내 긴장 분위기 조성 등 북한체제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나가고 있다. 북한의 내부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1948년 정권 수립 이후 현재까에 대해 가지는 믿음’이 지배의 구조화의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정당한 지배에는 합리적 지배, 카리스마적 지배, 전통적 지배의 세 가지 지배유형이 존재한다.합리적 지배란 지배자가 선거 등의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한 경우 나타난다. 권력은 규제, 규칙, 선거, 법률 등의 합리적 요소를 통해 정당화된다. 지배자는 명시되어 있는 규범을 준수함으로써 권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바로 그 규범에 의해 권력을 제한받을 수도 있다.‘카리스마’란 초인적이고 비범한 인물의 자질을 의미하며, 천부적 자질, 능력, 계시, 영웅성 등이 대표적이다. 범인(凡人)들과는 구분되는 이러한 개인적 자질에 기반 해 그를 따르는 무리들로부터 지배의 정당성을 인정받게 될 때 카리스마적 지배가 나타난다. 카리스마적 지배는 카리스마적 지배자와 이를 추종하는 무리들로 구성되며, 추종자는 지배자와 전인격적으로 맺어지고 신뢰와 헌신이 생겨난다. 만약 지도자가 추종자들에게 자신의 카리스마를 지속적으로 입증하지 못하게 되면 이는 카리스마적 지배의 약화로 이어진다. 지배자는 ‘카리스마 입증의 딜레마’를 겪게 되는 것이다. 베버는 카리스마적 지배가 개인의 카리스마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불안정하고 일시적인 지배형태라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카리스마적 지배가 상대적으로 더 안정적인 전통적 지배 혹은 합리적 지배로 변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는데, 이것이 바로 ‘카리스마의 일상화’이다.전통적 지배란 지배자 개인의 능력이나 추종자의 지지 등이 아닌, 예부터 타당성을 지녀온 전통에 대한 일상적 믿음에 근거한 지배이다. 전통이나 관습에 대한 ‘당연함’이라는 믿음이 지배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지배자는 부족, 가족, 군주체제 등의 공동체 내에서 세습된 지위에 의해 권력을 부여받는다.Ⅲ. 북한과 합리적 지배유형앞서 살펴 본 베버의 세 가지 지배유형 중 합리적 지배의 경우 북한 정권에 적용할 수 없다. 북한에 선거가 존재하기는 한다. 그러나 지방 당 중간 간부들이나 모범적인 노동자들로 구성는 항일무장투쟁 중에서도 가장 크고 성공적이었던 전투 중 하나였다. 이 전투의 승리 소식이 당시 국내 주요 언론사 등에 집중 보도되면서 김일성이 카리스마적 인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외에도 김일성은 비교적 어린 나이에도 항일투쟁의 주도적 역할을 맡았고, 다른 동료 지휘관들이 일제의 회유에 변절하는 동안에도 성공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1945년 해방 이후 귀국한 김일성은 평양운동장에서 불과 33세의 나이에 소련군 소령의 계급장과 ‘민족의 영웅 김일성 장군’이라는 호칭을 얻는다. 요컨대 20세에 불과했던 김일성은 약 10여년간의 항일무장투쟁을 통해 카리스마적 권위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둘째, 무력기구 장악과 경쟁파벌의 숙청을 통한 카리스마적 권위의 확립 과정이다. 이 시기는 구체적으로 해방 이후부터 1956년 8월 종파사건까지를 지칭하며, 당시 북한 내에서는 갑산파, 연안파, 소련파, 국내파 등 여러 파벌들의 권력투쟁이 계속되었다. 김일성은 북한에 귀국한 후 먼저 자신의 주도로 군 장교를 양성하는 ‘평양학원’을 설립했다. 또한 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을 창군하고 총사령관의 자신의 직속 부하를 임명시켰다. 이로써 김일성은 무력기구를 장악할 수 있었고, 다른 파벌을 압도할 수 있는 무력을 확보했다. 이러한 무력을 기반으로 김일성은 파벌들을 제거해 나가기 시작했다. 1950년 6월 25일 김일성은 자신의 주도로 남침을 일으켰으나 같은 해 12월 인민공화국이 괴멸 직전에 이르자 그 책임을 국내파로 몰아 이들 요원을 대부분 숙청했다. 1956년 8월 연안파와 소련파의 김일성 축출 시도가 불발로 그치자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 즉 8월 종파사건이 발생했다. 약 10년간의 파벌투쟁을 통해 김일성은 자신의 카리스마적 권위를 완전히 확립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셋째, 이론화 작업과 이미지 형상화를 통한 카리스마적 권위의 완성 과정이다. 8월 종파사건 이후 김일성은 자신의 카리스마적 권위를 영속화하기 위해 이를 ‘수령론’으로 이론화한다. 수령론의 핵심은 인간능 혁명위업을 완성할 수 있는 인물, 즉 김정일 자신을 의미한다.진갑이 넘으신 수령님께서 렬차로 그 멀고먼 로정을 이어가셔야 하니 얼마나 피곤하시겠습니까. 한평생 휴식을 모르시는 수령님께서 오늘 이처럼 수만리길에 오르시었는데 내가 어떻게 쉬겠습니까. 지금 나의 마음은 어떻게 하면 수령님의 로고를 덜어드리겠는가 하는 간절한 념원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인민경제 중요부문의 생산을 한계단 높이 올려세워 외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오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크나큰 만족과 기쁨을 드릴 것을 결심하였습니다.이처럼 김정일은 김일성에 대한 건강을 염려하는 방식 등으로 자신의 충효를 드러냈으며, 결과적으로 ‘후계자’로서의 자질을 갖춘 인물이 바로 자신임을 당은 물론 북한 주민들에게까지 각인시킬 수 있었다. 이로써 김일성의 카리스마적 권위를 계승받기 위한 정당성을 확보했던 것이다.둘째, 김일성의 전통적 권위를 기반으로 한 권력 강화과정이다. 이 시기는 김일성으로부터 물려받은 카리스마적 권위를 자신의 것으로 확립하는 과정이다. 이 시기는 대략 김정일이 정식 후계자로 추대된 이후부터 김일성이 사망하기까지의 시기를 지칭한다. 김정일은 22세였던 1964년 당중앙위원회에서 정치생활을 시작한 지 약 10여년 만인 1974년 제8차 전원회의에서 중앙위원회 정치위원으로 선출되어 김일성의 정식후계자로 추대되었다. 이후 김정일은 “우리 당에 있어서 사업은 당 안에 유일적 지도체제를 세우는 사업을 통해서만 성과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당 중앙으로서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당의 유일적 지도체제를 주장했다. 당의 핵심 권력을 장악한 김정일은 이후 “온 사회를 김일성주의화 하는 것이 당 사상사업의 출발점이어야 하며 여기에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를 선언한다. 즉 김일성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강화키면서. 동시에 수령의 후계자인 자신의 권위를 강화시키고자 한 것이다.셋째, 이미지 형상화를 통한 카리스마적 권위의 완성 과정이다. 전통적 권위를 통해 자신의 존재로 형상화된다.요컨대 김정일은 김일성의 카리스마적 권위를 물려받기 위해 ‘전통’이라는 정당성을 사용했다. 이는 ‘전통적 권위’가 ‘카리스마적 권위, 합리적 권위와 함께 지배의 정당성 측면에서 본질적 요소라고 보았던 베버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더 나아가 김정일은 자신이 물려받은 카리스마적 권위를 자신의 것으로 확립하고 완성시켰다. 2011년 사망한 이후에도 김정일은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추앙받으며 카리스마적 권위를 유지하고 있다.Ⅵ. 제3대 계승자 김정은김정은 정권이 공식화되자 김정일 정권이 등장했을 때보다 더 강력한 비관론들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김정일이 1964년 정치에 입문, 1974년 정식후계자로 추대된 후에도 약 20년간 경험을 쌓은 반면, 김정은은 2010년 9월 28일 대장 진급발표 때서야 후계가 공식화되어 이듬해인 28세에 최고지도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어떤 매체도 그 존재를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전까지는 외부에서 김정은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나 실상을 살펴보면 김정은의 권력 계승 과정은 사실 북한 내부에서 치밀하게 전개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2008년 김정일은 자신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자 2009년 초 삼남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부적으로 결정하고 노동당 각 주요 부서에 통보한다. 같은 해 6월 노동신문 등에 후계자 문제와 관련된 논평들이 게제되고, 후계자의 등장을 암시하는 ‘발걸음’이라는 노래가 불려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정은은 ‘청년대장’이라는 호칭으로 주민들에게 불리기 시작했다. 체제정비 역시 김정일의 주도 아래 여러 차례 이루어졌다. 특히 2009년 6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을 국방부위원장으로 승진시킨 것은 김정은의 후계구축을 맡기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사망한지 이틀 뒤인 12월 19일 북한의 5대 주요 권력기관은 공동명의로 발표된 부고를 통해 “오늘 우리 혁명의 진두에는 주체적 혁명위업의 계승자이시며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의 탁이다.
    사회과학| 2016.06.30| 10페이지| 2,000원| 조회(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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