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의 역할 - 비평문--‘공인으로써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가수들이 음주운전을 하거나 연기자가 병역비리를 저지르고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이는 공인은 공인으로써의 행동을 해야 하는데 스스로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죄하는 것이다.공인의 정의에는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것과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공공에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으로 보는 두 가지 시선이 혼재한다. 과거에 우리나라에서는 공인을 주로 전자에 국한하여 생각해서 정치인이나 판사, 검사 등 공무원에 한정하였으나 요즘에는 후자의 정의에서 비롯한 시각으로 연예인이나 언론인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공인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공인의 정의에 대해서 아직까지 논란이 많다. 하지만 연기자 최진실의 자살로 인해 대두되기 시작한, 이른바 ‘최진실 법’으로 불리는 사이버 모욕죄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논의는 연예인도 공인으로 보아야 한다는 시각에 힘을 실어준다. 이렇게 예전과는 다르게 공인의 범위가 넓어진 데에는 미디어의 발달이 큰 역할을 했다. 신문과 라디오부터 TV를 거쳐 인터넷으로 발전한 미디어는 이제 타블렛 PC와 스마트폰으로 이어져 앞으로는 전보다 더욱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될 전망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인터넷의 유명인사까지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공인의 범주에 포함될 지도 모른다. 때문에 현대사회에서 공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공인은 공적으로, 사회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치는 존재이므로 바른 도덕적 기준과 행동을 보여야 한다. 특히 공인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 정치인과 법관은 정책 결정이나 법 집행과 같은 나라의 기초적이고 중요한 일을 도맡아 하며 사회 전체적으로 또는 사회적 구조 자체에 큰 영향을 끼치므로 다른 공인들 보다 더욱 더 높은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 외국인들에게 존경하는 인물을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라의 정치인을 꼽고는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없는 일이다. 이것은 단지 우리 국민들이 정치인들에 대해 낮게 평가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에게는 공인으로써의 덕목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얼마 전 국회 사무실에서 성희롱 발언을 해 물의를 빚은 한나라당의 강용석 의원은 자신의 잘못을 떳떳하게 인정하기는 커녕 발뺌만 하다가 여론의 반발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국회를 떠난 후 얼마 지나지도 않은 며칠 전 다시 국회에 복귀했다. 이것은 공직자 중 비단 강용석 의원 한 사람만의 도덕적 문제가 아니다. 정치인들은 국회에서 싸움을 하기도 하고 법관들은 성접대를 받는다. 시민들은 고위 공직자들의 비윤리적인 행태를 보면서 사회 전체에 불신감을 품게 된다. 국민에 봉사하며 사회의 화합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화합에 해를 끼치고 있다. 조직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협동이 최우선이라고 하는데 불신이 팽배한 사회가 올바르게 발전할 가능성은 없다. 이들은 공인으로써의 역할에 전혀 충실하지 못하고 있다.그렇다면 연예인은 어떨까. 연예인은 공직자들보다 더 많이 공인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또한 그들은 정치인이나 판검사 보다 훨씬 자주 브라운관에 등장하고 인터넷 검색어와 기사에는 오르내린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늘 노출되어 있고 사람들은 그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때문에, 특히 TV를 많이 시청하고 인터넷을 많이 사용하는 저연령층 개개인은 정치인들보다 연예인에게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연예인들은 스스로의 행동에 신경을 쓰게 되고 써야한다. 과거에 연예인들은 각자 직업에 맞게 연기자는 연기에만 전념하고 가수는 노래 부르는 데에만 신경을 썼다. 하지만 요즘의 많은 연예인들은 홍보대사로 활동하거나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사회적인 활동도 많이 한다. 연예인들의 참여는 선거나 정책, 캠페인 등 사회 전반에 중요한 일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높이고 이를 통해 또 다른 참여를 이끌어내게 된다. 이런 면에서 연예인들은 좋은 역할 모델이 된다. 하지만 때로 연예인은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주로 공직자들과 비슷하게 공인의 모습을 잊고 도덕적이나 법적으로 비윤리적인 행동을 할 때 나타난다. 최근 있었던 MC몽의 병역 비리 사건이나 신정환의 도박 혐의, 권상우의 뺑소니 사건 등에서 사람들은 많은 분노와 허탈감을 느낀다. 특히 사람들이 평소 그 연예인에게 친근감을 갖고 있거나 호감을 가지도 있다면 허탈감이 더 커지고, 그 연예인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더 큰 분노를 느끼게 된다. 또한 연예인들과 관련된 사건은 주로 인터넷을 통하여 더 많이 퍼지기 때문에 그 분노와 허탈감이 익명성 속에서 악의적으로 전파될 수도 있다. 그래서 실제 사건보다 더 많은 혼란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 때문에 연예인들이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좀 더 책임을 느낀다면 좋을 것이다.
1. 제1장재설정된 경계선, 재정의된 문제, 세속화된 종교 구스타브 플로벨의 소설인 ‘부바르와 뻬뀌세’의 결말부에서 두 사람은 인류의 미래에 관하여 토론을 하는데 여기에서 뻬뀌세는 비관적으로, 부바르는 낙관적으로 미래를 그린다. 그리고 부바르는 ‘유럽은 아시아에 의해 소생할 것이다.’라는 요지의 이야기를 하는데 이 말의 근원은 낭만주의적인 것이다. 여기에 나타난 낭만주의에는 죽음, 부활, 속죄라고 하는 성서적 형향이 나타나 있으며 이를 통해 오리엔탈리즘은 19세기의 세속적종교의 한 가지 규율이 되었다. 이는 열광적이고 메시아적인 유럽의 과학이었다. 또한 이 속에는 이기적 의지가 숨어있다.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의 재구성속에 있었는데 이러한 동양의 재창조의 기반이 되는 18세기적 조류에는 네 가지가 있다. 제 1요소로서 ‘확대’ 동양은 이슬람을 넘어 양적으로 더 멀리까지, 시간적으로는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서 확대된 결과 성서적인 틀이 완전히 이완되었고 마침내 해체되었다. 제2의 요소 ‘역사적 대결’에 의해 역사 그 자체가 종래보다도 더욱 근원적으로 인식되었음과 동시에 비유럽문화와 비유대-기독교문화를 역사적으로 취급하는 능력도 강화되었다. 마호메트를 악마적인 악당이 아닌, 유럽에 영향을 끼친 역사적 인물로 취급할 수 있었다. 제3의 요소인 ‘공감’을 통해서는 양극구조의 원흉이 된 완고한 자아와 자기인식을 누그러뜨리고, 기독교적인 유럽세계의 경계선이 세계관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게 되었다. 제4의 요소 ‘분류’ 에 의해서는 지시와 전이의 가능성이 세련되어졌고, 인류의 분류법도 체계적으로 유형화했다. 인종, 피부색, 혈통, 기질, 성격과 같은 분류들이 기독교도와 그 외라고 하는 구분을 압도했다. 오리엔탈리스트들은 위와 같은 세속적인 틀에 대응시키기 위해 어휘와 관념을 창조하였고 이를 통해 전문용어의 사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오리엔탈리즘은 정통성을 갖게 되고, 공동체가 생겼으며 마침내 대중적인 신용을 얻게 되었다. 오리엔탈리즘은 결국 처음부터 재구성과 반복된 것이었고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일단면이 이었으며 또한 지적 및 예술적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유효성과 유용성 그리고 그 권위 때문에 옹호되어온 것이다.
요즘 인터넷에서는 ‘곱등이’ 라는 동물이 유명인사이다. 귀뚜라미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등이 굽어있어 곱등이라 불리는 곤충인데 아주 튼튼하고 끈질겨서 웬만한 살충제에는 잘 죽지도 않는다고 한다. 나는 실제로 곱등이를 본 적은 없지만 인터넷에서 사진을 본 적이 있어서 그것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곱등이도 살아가기 위해서 산다. 우리가 공부를 하고 일하는 하는 것처럼 곱등이도 살기 위해서 집안을 돌아다닌다.동물도 사랑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죽는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임을 주장하며 스스로를 동물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생각하지만 결국 우리의 삶과 동물의 삶은 닮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동물이 우리보다 낫기도 하다. 이 책을 읽고서 나의 삶이, 인간의 살아있음 만이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물들의 삶도 의미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삶의 아름다움 중에 제일을 택하자면 역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동물 역시 사랑을 한다. 사람들은 보통 아가페, 필레오, 스톨게, 에로스 이 네 가지로 사랑을 분류한다. 하지만 이 외에도 사랑에는 수많은 형태가 있을 것 이다.그 여러 가지 형태들 중에서 동물들은 어떤 사랑을 하고 있을까? 동물들은 에로스적인 사랑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동물 중에는 일부일처로 사는 동물이 거의 없다고 한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난혼의 경향을 가진다. 동물들은 자신의 남편이나 부인 외에 다른 암컷, 수컷과 성관계를 가진다. 책은 난혼의 이유를 보다 낳은 유전자를 찾아서 유전적으로 다양한 자손을 낳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 난혼 경향이 거의 없고 모든 사회에서 대체로 일부일처제를 지지한다. 다양한 유전적 형태를 가진 후손이 많게 되면 환경이 변화하거나 바이러스가 퍼질 때에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기 때문에 유전적 다양성은 비단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중요한 조건인데 왜 동물들만이 적극적으로 난혼행위를 하는 것 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인간은 복잡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어떤 행동에 대한 이유에서 결국 합헌으로 판결났지만 아직도 이에 대한 이견이 분분하다. 간통죄에 대한 처벌이 존폐논란에 휩싸이는 이유는 어쩌면 인간의 생물학적인 특성과 내면적인 특성 중 어느 쪽에 중요성을 두느냐가 다르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우리가 보기에 동물들은 거의 에로스적인 사랑에만 치우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이 오직 에로스적인 사랑만을 가진 것은 아니고 또한 성적인 사랑이 정신적인 사랑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관련이 깊다.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물들도 인간과 같이 자식이나 부모나 친척들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 옥시토신이라는 물질은 더 즐겁고 유쾌한 기분을 만드는 화학물질이다. 옥시토신은 성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부모에게 자식을 더 사랑스럽게 보이게 하기도 하고 동료나 친구, 친척들과 더욱 사이좋게 지내는 데에도 일조한다. 이 외에도 옥시토신이라는 물질은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게 하고 여러 감정들을 이어주는 역할도 하는 것 같다.출산 몇 시간동안 새끼 양과 떨어져 있다 다시 만난 있다 다시 만난 어미 양은 새끼 양을 돌보지 않는다고 한다. 어미 양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새끼 양들은 잘 성장할 확률이 낮아지기 때문에 양치기들은 어미양이 새끼를 돌보게 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어미 양의 생식기를 자극해 주는 것 이다. 생식기를 자극당한 어미 양은 몇 분 후 바로 새끼 양을 돌본다.이것으로 보아서도 성적 욕구가 정신적인 사랑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인간과 동물은 성 관계를 통해서 세상에 태어나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성 관계는 음란하거나 퇴폐적인 것이 아닌 부모와 자식을 이어주고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통하게 하는 숭고한 일이라고 느껴진다.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이유 없는 무조건 적인 사랑이라고 한다. 대체로 부모들은 아무 이유 없이 자식을 사랑하고 믿고 어른이 될 때 까지 돌본다. 그리고 자식들 또한 자신들을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부모님들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이런 것 들은 매우 당연한 일로 여겨지지만 때때로 어떤 은 조별 과제를 하는 대학생들 에게도 나타나지만 어떤 동물들의 협동 속에는 그보다 더 질 나쁜 어두움이 도사리고 있었다.난쟁이몽구스라는 동물은 하층 암컷들이 상층 암컷의 새끼를 돌보고 심지어 젖까지 물린다고 한다. 또한 하층 암컷은 상층 암컷의 괴롭힘에 스트레스를 받아 임신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몽구스의 사회는 집단적이며 결속력이 높은 사회라고 한다. 그리고 그 속에는 분명 심각하게 착취당하는 계급이 있다. 이렇게 심각하게 어두운 측면을 드러내는 동물도 있지만 어치와 같이 친척들의 새끼를 돌보다가 나중에 그 둥지를 차지할 수도 있는 경우는 낮은 수준의 어두운 측면도 있다. 인간으로 치면 조별 과제를 열심히 하는 대학생이 어치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 사회에는 몽구스 같은 집단이 없을까? 동물사회와 인간사회가 같지는 않지만 둘은 분명 비슷한 점을 가지고 있다. 인간 사회에서도 몽구스와 같이, 어쩌면 그보다 더 한 착취를 하는 곳이 있을 것이다.하지만 역시 인간 사회에서는 보통 부모나 친척사이에는 그런 심각한 착취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동물들도 역시 부모는 대체로 모든 것을 참고 견딘다.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것은 호르몬과 그 호르몬에 반응하는 회로 때문이라고 한다.그 호르몬은 바소프레신과 옥시토신이다. 이 두 호르몬의 작용으로 동물들은 자식을 돌보고 지키는 행동을 한다고 한다. 여기서 바소프레신은 수컷에게 옥시토신은 암컷에게 주로 작용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옥시토신은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오지만 바소프레신은 방어와 공격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옥시토신이 다량분비 되면 충족감과 기쁨은 물론 침착해지는 효과까지 있는 것 같다. 임신한 여성들은 옥시토신이 많이 분비되는데 임산부들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태도에 대해 높은 점수를 받는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옥시토신을 공격적인 사람들이나 ADHD를 가진 아이들에게 치료제로 쓸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본다.또한 바소프레신이 남성들에게 많이 작용하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남성들이 여성들의 세계에서는 외향은 중요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외모 지상주의처럼 동물들도 외향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배우자를 고를 때도 외모는 큰 기준이 된다. 꼬리의 길이나 색깔 깃털모양 등 여러 가지 겉모습을 보고 선택한다. 그리고 균형은 그 중에서도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이는 인간에게도 해당되는데 예전에 한 TV프로그램에서 인물사진을 보여주고 가장 호감 가는 인물을 골라보는 실험을 했는데 사람들이 뽑은 가장 호감 가는 인물은 바로 얼굴 좌우의 균형이 맞는 사람이었다. 균형이 잡혀있다는 것은 성장하면서 환경이 좋았기 때문에 면역력도 우수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동물들은 자연적으로 외모가 균형 잡힌 동물을 선호한다고 한다. 이런 것들로 보았을 때 어쩌면 인간이 겉모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생물학적인 특성 자체가 외모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이렇게 인간이란 시각적인 것에 많이 좌우되어서 예쁘지 않은 동물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전갈과 바퀴벌레, 기생충, 쇠똥구리는 분명 사람들이 좋아하는 동물은 아니다. 그리고 이들이 토끼 같이 귀엽거나 호랑이와 같이 멋진 아닌 것은 사실이다. 또한 대체로 인간에게 이로운 동물인 것도 아니다. 이런 사실들만으로도 충분히 싫어할 수 있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동물들에게도 역시 그들 나름의 가치가 있다.전갈은 지금으로부터 약 4억 년 전에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왔고 이 후로 계속 진화의 과정을 거쳐 살아남았다. 앞에서 보았던 다른 여러 동물들이 협동을 하는 반면 대부분의 전갈들은 협동성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성격도 좋지 못하지만 가진 능력은 상상할 수 없이 대단하다. 그들은 모래위에서 작은 곤충 한 마리가 지나가는 진동까지 느낄 수 있으며 물질대사가 느려 추위와 더위를 잘 견디며 아무것도 먹지 않고 일 년 이상 살 수 있다고 한다. 20세기에 들어서 지구는 기후변화가 심해지고 지진 등 자연재해도 자주 일어나고 있을 느낄 수 있다. 똥을 굴리고 먹고 하는 쇠똥구리가 더럽다는 생각도 할 수 있지만 요즘과 같이 경쟁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남긴다. 쇠똥구리들은 똥을 먹고 산다. 쇠똥구리는 생물 자체가 다른 생물들이 하찮게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는 소중하게 여기고 산다. 또한 쇠똥구리들은 좁은 지역에서도 여러 가지 종이 분포하며 살아가는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좁은 곳에서 내가 나인지 남인지도 모르고 서로 싸우고 경쟁하기 바쁜 사람들과는 다르다. 또한 쇠똥구리들은 힘이 세고 커다란 녀석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책에서는 그 이유를 쇠똥구리가 먹이를 구하는데, 즉 똥이 생산되는 데에 우연적인 요소가 많이 개입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에도 동의하지만 이런 생각도 해본다. 쇠똥구리들이 처음 똥을 식량으로 삼았을 때부터 그들은 경쟁하는 것 보다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을 찾았던 것이고 지금도 여전히 그 작업을 계속 해 나간 것이다. 따라서 쇠똥구리들은 자연이라는 커다란 경쟁 장에서 블루오션을 찾아다니는 여행자들이라 생각한다.쇠똥구리가 여행자라면 바퀴벌레는 인내의 달인이다. 인간이 지구에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바퀴벌레는 이곳에 살아오고 진화해왔다. 핵이 폭발해도 살아남고 지구에 운석이 떨어져도 끄떡없다는 바퀴벌레는 미국 군인과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양 쪽 모두에게 미움을 받는 지구 최고의 악당일 것이다. 크기도 크고 빠른데다 어지간한 약에는 죽지도 않고 곤충학자들이 이 엄청난 악당을 끌어들이고 싶어 새를 곤충도감에 집어넣은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날기도 잘한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집에는 이런 악당을 몇 마리 정도 키우고 있을 것 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바퀴벌레가 이렇게 강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이 오랫동안 살아남은 것은 끊임없는 인내의 결과였다. 얄미울 정도로 재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이제 끈기라는 미덕은 우스운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토끼와 거북이를 보듯이 인내하는 것은 위대하다. 변화에 빠르게 적응해야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끈기 또한 중요하다.다.
< 쿠르드 개황 >- 목차 -Ⅰ. 서론1. 쿠르드족 개요2. 연구의 목적과 의의Ⅱ. 쿠르드족의 역사Ⅲ. 쿠르드족 분리운동Ⅳ. 쿠르드족의 현재1. 경제상황2. 정치상황3. 국제관계Ⅴ. 결론1. 쿠르드족 분리 독립의 전망2. 쿠르드 원유 개발과 대(對) 중동 사업· 참고문헌Ⅰ. 서론1. 쿠르드족 개요우리나라는 보통 단일민족 국가라고 불린다. 이와 다르게 미국이나 중국은 다민족국가의 대표적인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민족이 나라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나라를 가지고 있는 민족도 있지만 나라를 가지고 있지 않은 민족 또한 많이 있다. 유랑민족으로 유명한 집시나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북단의 아체족 등 나라를 가지고 있지 않은 민족이다.나라가 없는 민족들 중, 쿠르드족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가지고 있다. 약 3천만 명의 쿠르드족이 중동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다.쿠르드족은 아리아 계통의 민족으로 터키, 이라크, 이란, 시리아를 걸쳐있는 드넓은 쿠르디스탄 지역에서 살고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이슬람교를 믿으며 이란 어계(語系)의 쿠르드어를 사용한다. 산악지대의 주민은 반(半)유목민이며, 평야의 주민은 농경에 종사한다. 네이버 백과사전 “쿠르드족 [─族, Kurd ]” http://100.naver.com/100.nhn?docid=1524642. 연구목적과 의의2010년 9월 23일, 팔레스타인이 UN에 회원국 가입신청을 했다. 팔레스타인은 현재 자치기구만을 가지고 있고 나라는 없는 상태이다. 쿠르드족 또한 팔레스타인처럼 나라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번 팔레스타인의 움직임으로 쿠르드족 또한 그들만의 나라, 쿠르드 국가를 설립하기 위한 행동을 서두를지 모른다.우리나라는 현재 중동의 여러 국가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쿠르드족의 분리 독립 문제에 관련된 여러 나라들의 입장과 주변 정세, 또한 우리나라는 그에 관하여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쿠르드족과의 관계는 물론 터키와 이라크 이란 등과의 외교상황이 변화할 수 있다.그러므로 이 보고서 독립 국가를 건설할 기회가 왔다. 오스만제국이 포함된 동맹국 측이 패전하고 쿠르드족은 연합국 측에 협력한 대가로 독립국가 건설을 강력히 요구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오스만제국 분할을 위한 1920년 세브르조약은 쿠르드족의 독립을 명시했다. 그러나 이 조약은 터키의 반대와 영국, 프랑스의 배반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후 1923년 있었던, 세브르 조약을 대체한 승전국들과 터키-그리스 사이의 로잔조약에서는 쿠르드족의 국가독립에 관한 조항이 아예 사문화되어 버렸다.이어서 터키 공화국과 이란의 팔레비 왕조가 출범하고 이 두 나라와 이라크, 시리아, 소련령 카프카스, 아제르바이잔 등으로 나누어져 쿠르드 지역 분할점령이 굳어지게 되었다.제 2차 세계대전 직후 1946년 이란의 마하바드에서 카지 무함마드를 대통령으로 하는 쿠르드 공화국(The Kurdish Republic of Mahabad)을 창설했다. 그러나 마하바드를 장악하고 있던 소련군이 철수하자 이 공화국도 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이란 정부군에 의해 궤멸 되었다.Ⅲ. 쿠르드족의 분리운동제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배하자 쿠르드족은 1922년 6월, 독립을 추구하는 봉기를 일으켰다. 그러나 이때 쿠르드족이 거주하고 있던 유전지대였기 때문에 영국이 개입하여 무력으로 봉기를 진압하였다. 이후 쿠르드족은 1930년 6월에는 이란과 터키의 국경지대에서 또다시 봉기를 일으켰으나 두 나라에 의해 쉽게 진압되고 말았다. 2년 뒤인 1932년 4월에도 반란을 일으켰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영국군의 지원을 받는 이라크군에 의해 제압되었다. 이렇게 쿠르드족의 분리운동은 이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당사국들 뿐 아니라 유전지대라는 특성 때문에 강대국의 간섭 또한 피할 수 없었다.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쿠르드족은 계속 분리 독립을 요구하였으나 한 차례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쿠르드족은 분리 독립 운동 과정에서 여러 차례 무자비하게 탄압 당했다. 10년의 한 번씩 쿠르드족 학살 사건이 일어났다고 알려질 정도로 여러 번, 많은 수의 쪽에서도 무력 운동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1977년에 터키에서 쿠르드 민족해방(KUK)라는 과격 조직이 결성되었고, 이들은 또 다른 과격세력인 쿠르드 노동당(PKK)와 충돌을 벌여 많은 사상자를 냈다.PKK는 압둘라 오잘란(Abdullah Ocallan)이 창설한 단체이다. 이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한 독립운동을 벌였다. 오잘란은 이라크와 터키 국경의 보단바디난 지방에 독립 국가를 건설하기로 하고 각국에 거주하고 있는 쿠르드족 세력들에게 협력을 요청하였다. 마르크스-레닌 주의자였던 오잘란은 혁명을 통해서 독립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도시지역에서는 테러와 방화 및 파괴에 치중하였고, 산악 지대에서는 게릴라전을 전개하였다. 이를 통해 PKK에 대한 탄압은 점점 강화되었지만 젊은 쿠르드인들은 PKK에 감화되기도 하였다.이와 같이 터키에서는 PKK가 뚜렷한 활동을 보이고 있었던 1980년대 이라크에서는 KDP와 PUK가 함께 갈등과 협력 사이를 오갔다. 80년대 중반 까지 오랫동안 반목하던 두 단체는 후세인 정권의 화학무기 학살사건을 계기로 화해하였다.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은 이란 측에 섰는데 이러한 사실이 후에 이라크가 쿠르드족 다시금 탄압하게 되는 빌미를 제공하였다. 이후 1991년 걸프전 당시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민중봉기를 일으켜 쿠르디스탄 전 지역의 95%를 장악했다. 그리고 이듬해 1992년 최초의 자치의회를 수립하였다. 이때 의회의 지분은 쿠르드 민주당(KDP)와 쿠르드 애국동맹(PUK)가 반씩 나누어 가졌다.이렇게 1990년대 들어 이라크는 자국 내 쿠르드족과 협상을 재개했으며 터키 정부 또한 온건 및 중도파 쿠르드 세력과는 협상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PKK에 대해서는 철저히 탄압한다는 방침을 계속 견지하였다. 터키와 PKK간의 무장 대립은 1992년부터 더욱 격렬해졌다. PKK는 터키 남동부 지방을 중심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로켓탄으로 공격하였으며 이에 터키군은 그 지역에 15만 명을 증강 배치하 이주한 쿠르드인들이 도시에 슬럼가를 형성하여 도시 양극화를 만들어냈다. 또한 이들은 선거결과에도 영향을 미쳤다.오잘란의 체포 이후 격렬한 항의 시위가 지속되고 이들 시위는 유럽의 여러 국가의 터키 대사관 난입으로 이어졌다. 체포된 오잘란은 PKK 반군에게 무력 투쟁을 종식하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것과 터키 영토 내 철수 및 터키 군에게 항복을 약속한다고 말하였고 남아있는 PKK 에게 이를 명하였다 이에 따라 일부는 항복하였으나 대부분의 PKK는 이라크와 이란의 거점기지로 이동하여 반군활동을 지속했다. 터키 내에서 세력이 약화된 PKK는 새로운 거점을 확보하기 위하여 주로 이라크 북부지방으로 이동하였다. 이 과정에서 KDP와 교전을 치루기도 했다.2000년대 들어 터키의 쿠르드족의 문화적 특성을 인정받고 언어사용 또한 가능해졌다. 이러한 유화조치와 더불어 터키는 PKK와의 교전도 지속하고 있으며 여전히 터키 남동부와 북부 이라크 지방에 쿠르드족 독립국가 건설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는 반응과 이를 허용치 않겠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이라크 또한 터키와 마찬가지 이다. 이라크는 쿠르드 자치정부를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분리 독립에 대해서는 터키와 같이 회의적인 입장이다. 이라크의 쿠르드 자치정부는 이라크 정부와 별개로 독립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등 PKK의 무력적인 방법과는 다르게 정치적인 방법으로 실질적인 국가의 기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Ⅳ. 쿠르드의 현재1. 정치상황현재 쿠르드족은 터키와 이란에서는 특별한 정치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으나 이라크에서는 자치정부를 수립했다.1970년 3월 11일에 쿠르드족은 이라크와의 자치 협정을 맺었으나 4년 후인 1974년 3월에 이 협정은 파기되었다. 1991년 아르빌을 근거로 하여 쿠르드 지방정부(Kurdistan Regional Government; KRG)를 설립했다. KRG에는 선거로 선출되는 의회인 이라크 쿠르드 국립 의회(Iraqi Kurdistan National Assembly)와 쿠주장하고 있으나 날짜는 계속 미루어지고 있다.2. 경제상황정치활동과 마찬가지로 터키나 이란에서 쿠르드족의 경제활동은 주로 산악지대에서의 목축이나 농경과 같은 1차적인 산업에서 그친다. 이와 극명하게 현재 이라크에서 쿠르드족의 경제활동은 완전히 자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이라크의 쿠르드 지역 경제는 석유산업, 농업 및 관광이 주를 이룬다. 이라크 내의 쿠르드족 지역은 오히려 이라크의 다른 지역보다 경제적으로 더 발전되었다. 전쟁 직후인 현재,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보다 안전하기 때문이다.사담 후세인 정권 퇴진 이전, KRG는 이라크의 ‘Oil-for-Food’ 프로그램에서 약 13%의 수익을 배분 받았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KRG는 이 프로그램에서 83억 5천만불 가량을 제공 받았다. 이에 따라 다른 지역 전체 개발비 보다 많은 기금이 조성되었다. 또한 2003년에 이 프로그램 종료할 당시까지 무려 40억불이 사용되지 않고 남아있었다.사담 후세인 정부가 사라진 이후 KRG가 다스리는 3개 지역(KRG가 완전히 다스리고 있는 지역)만이 이라크 내에서 안전한 지역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따라 KRG는 외국 회사들과 수많은 투자계약을 체결하였다.2006년에는 노르웨이의 DNO사가, 전쟁 이후 이라크에서 처음으로 개발하는 유정을 쿠르드 지역에서 시추하였다. 쿠르드 지역에 관한 기초조사 결과 이 지역에는 1억 배럴의 원유가 존재하며 2007년 초까지 5천배럴을 생산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KRG는 캐나다의 Western Oil Sand와 영국의 Sterling Energy사와도 계약을 체결하였다.이라크 내 쿠르드 지역의 안정은 쿠르드족에게 여타 이라크 지역보다 높은 수준의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2004년 통계에 따르면 이 지역의 수입은 다른 지역보다 25% 높게 나타났다. KRG는 지속적으로 이라크 원유 수출이익에서 일정부분을 받고 있어 지속적으로 안정된 수익을 얻을 수 있으며 KRG는 아르빌에 미디어 시티를 건설할 예정을 가지고 있다.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