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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실의 기록을 남긴 화가 벨라스케스 평가A+최고예요
    왕실의 기록을 남긴 화가 벨라스케스는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세비야에서 1599년 6월 6일 변호사였던 아버지와 하급귀족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로부터 신을 경외할 것과 유능한 직업을 갖도록 교육 받았으며 특별히 언어학과 철학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어렸을 적부터 미술에 대한 재능을 보였고 이탈리아의 화풍을 거부했던 프랑시스코 데 에레라 밑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하였다. 첫 스승을 떠난 뒤 벨라스케스는 프란시스코 파체코 아래서 견습생으로 공부하게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세비야의 화풍과 비례와 원근법 등에 대해 배웠다.벨라스케스가 활동한 시기는 바로크시대이다. 바로크라는 용어는 ‘비뚤어진 모양을 한 기묘한 진주’라는 용어에서 왔다. 바로크라는 용어를 사용한 사람들은 그 당시 16세기 유럽을 지배한 고전주의를 추구한 사람들로서, 바로크 양식을 경멸하는 뜻에서 찌그러진 진주라는 표현을 한 것이다. 비례와 조화를 추구하던 사람들의 눈에는 비정형적이고 과도하게 화려한 양식이 경멸스럽게 보였기 때문에 이런 용어를 쓴 것이다.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하기 시작하면서 그 이전까지 '균형'과 '조화'를 중요시했던 화가들은 변화하여 역동적이고 격렬한 힘을 나타내기 시작했다.화가로서 점점 명성을 얻어가던 벨라스케스는 펠리페 4세의 궁정화가로 활약하였다. 특히 초상화에 능했던 그는 필리페 4세의 궁에 있던 시절 여러 왕족들의 초상화를 그렸다.그는 공부하며 이탈리아의 다양한 작품을 통해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여행 중이던 루벤스의 충고를 받아들여 로마로 가서 그림 공부를 했다.그는 카라바조의 수법을 연구하고 루벤스와 티치아노의 수법을 연구하면서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어 나갔다.벨라스케스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그림은 (1656)이라는 그림이다. 왕실 속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을 그려낸 이 작품은 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준 작품이다. 특히 피카소는 이 그림을 변형하여 비슷한 그림을 모사하기도 했다. 피카소는 이 작품만을 가지고 50여편이 넘는 모작을 그리기도 했다니 이 작품에서 얼마나 많은 영감을 받았던 것일까? 피카소 외에 다른 많은 화가들도 이 작품을 리메이크했다고 한다.높이 3미터에 이르는 이 작품은 그림의 위대함만큼이나 논란을 일으키는 작품이다.의 배경은 국왕 펠리페 4세의 마드리드 궁전에 있는 큰 방이다. 이 그림 속 인물들은 마치 스냅샷 사진의 대상처럼 정지되어 있는 느낌을 준다. 가장 논쟁이 되는 것은 누가 누구를 그리느냐에 대한 것이다. 그림 속을 보면 화가가 공주를 그리는 걸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공주는 화가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보는 듯하다. 다른 인물들 역시 캔버스 밖을 바라보기도하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인물도 있다.중앙의 마르가리타 공주를 비롯하여, 그 옆에서는 그녀의 시녀들과, 호위병, 그리고 두 명의 난장이가 있습니다. 그들 바로 뒤에는 화면 화가인 벨라스케스 자신이 큰 캔버스 앞에 작업 도구를 들고 서 있다,화면 깊숙한 곳에 그려진 거울에는 펠리페 4세와 마리아나 왕비의 모습이 반사되어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공주가 바라보는 시점에 왕과 왕비가 서 있고 그들이 거울에 비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왕과 왕비의 모습이 사실은 그림 속 벨라스케스가 캔버스에 작업 중인 그림의 반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이런 것들이 정확히 의미하는 바는 알 수 없지만 벨라스케스는 그때 당시의 한 장면을 그림 속에 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쉬고 있는 왕과 왕비, 그리고 그 곁에서 놀고 있는 공주와 시종들. 오래전 스페인의 왕실 속 한 장면을 생생히 재현하고 있는 그림이 바로 이 이 아닐까 한다.내가 벨라스케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사진과 같은 섬세한 표현력에 있다. 현대 미술을 전시하는 곳을 보면 라는 이름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을 전시해놓은 경우가 많다. 때로는 점하나가 찍혀있는 경우도 있고, 어떤 그림은 물감을 흩뿌린 듯 물감이 덕지덕지 뿌려져 있는 그림이 있기도 한다. 조각이나 전시품의 경우는 좀 더 경우가 심할 때도 있다. 정체불명의 모양을 하고 라는 이름을 달고 있거나 전혀 그 모습을 연상할 수 없는 이름이 적혀있기도 한다.물론 예술작품이란 작가의 독특한 표현이 존중되고 그런 것들이 인정받는 분야이다. 하지만 결국 예술작품은 대중에게 공개되고 평가 받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작업실 내에서 작업한 뒤 혼자만 감상하는 경우는 무척 드물 것이라 생각한다. 대중에게 인정을 받고 그 가치에 맞는 값어치의 돈을 받는 것이 예술의 세계인 것이다. 정체모를 점과 알 수 없는 형태를 한 조각들이 과연 대중과의 소통을 할 수 있을까?
    예체능| 2015.07.21| 2페이지| 1,000원| 조회(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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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와 과학
    종교와 과학-진화주의적 관점에서 본 종교와 과학-문화변동종교와 과학은 오랜 시간 해묵은 갈등이 이어져왔다. 그 갈등은 아직까지 완벽히 해결 되지 않은 채 갈등의 씨앗을 안고 있다. 형태를 달리할 뿐 종교와 과학의 권력투쟁은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과학은 관찰과 실험 등을 통해 어떠한 사실을 발견하고 그런 사실을 연결해 특정한 법칙을 발견 하려고 시도한다. 이런 지식을 이용하여 과학은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여 다양한 도구를 생산해낸다.종교는 과학보다 복잡한 개념이다. 세계 3대 종교라 일컬어지는 크리스트교, 불교, 이슬람 외에 다양한 종교가 존재한다. 이런 종교들은 교회, 교리, 개인의 도덕률 이라는 세 가지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 세 가지는 종교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로서 물리적인 증거나 증명할 수 없는 사실이 많은 종교를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교리는 성직자들의 권위를 강화시키고 그들의 수입을 증가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만약 교리가 약화된다면 성직자들의 기반은 약해질 수밖에 없기에 그들은 과학자들의 혁명적 가르침을 두려워했다.과학이 발전하기 전엔 종교가 과학의 많은 부분을 대신하였다. 인간이 태어난 이유는 하나님의 창조 때문이고 태양은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으며, 병에 걸린다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이었다.지금은 허무맹랑하고 우습게 들리는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대답이었다. 이런 사실을 믿지 않거나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살인자나 악인을 두둔하는 것과 똑같이 여겼다.그러나 과학이 발달하고 여러 가지 사실들을 과학이 실험으로 증명해보이자 사람들 사이에서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였다.‘왜 종교는 증명을 통해 성경의 말이 사실이란 걸 밝히지 않는 걸까?’그리고 이런 의문과 함께 종교와 과학이 대립하기 시작한 최초의 논쟁은 천문학적 논쟁인 ‘천동설’과 ‘지동설’이다. ‘천동설’은 하나님이 창조한 지구를 중심으로 하늘, 태양, 달 등이 돌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란 것은 인간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것이고 이것은 종교인들이 말하는 교리의 핵심이었다. 지구를 우주의 중심이란 자리에서 끌어내렸을 때 하나님의 권위와 사제들에게 부여된 정당성과 힘은 부정 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창조물인 태양에 흑점과 같은 흠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조차 이단 취급 받았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지동설’은 교회에 대한 도전이었다. 성직자뿐만 아니라 당대의 지식인들조차 ‘지동설’을 비웃고 말도 안되는 사실이라고 매도하였다.하지만 코페르니쿠스를 시작으로 ‘지동설’은 점점 힘을 얻기 시작하였고 갈릴레오 대에는 보다 정확한 수치와 발견으로 ‘지동설’이 증명되었다. 결국 종교계는 ‘지동설’을 이단이자 악마의 이야기로 규정했다. 그리고 200여년동안 ‘지동설’에 관한 모든 서적을 금서로 지정하였다. 하지만 결국 우주의 방대함이 밝혀졌고 ‘과연 지구와 인간이 신이 부여한 우주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에까지 이르게 되었다.‘천동설’과 ‘지동설’의 대립만큼 유명한 종교적 논란은 ‘창조론’과 ‘진화론’이다.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은 ‘지동설’만큼이나 종교계에 큰 타격을 주었다. 다윈의 ‘진화론’으로 인해 신의 창조행위는 부정되었고 신의 섭리로 설명되던 많은 현상들이 동물들의 적응과 자연의 힘으로 밝혀지면서 많은 논증들을 포기해야만 했다. 특히 인간이 원숭이에서 유래되었단 것에 분노하였다. 그들은 분노에 차 다윈을 깎아내렸다.하지만 이제 대중들은 더 이상 교회를 두려워하지 않고 진화를 통해 현재의 생물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학설로 인정받았다.
    인문/어학| 2015.07.21| 2페이지| 1,000원| 조회(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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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화와 칼'을 읽고
    R E P O R T국화와 칼을 읽고...다른 나라에 대해 안다는건 어떤 것일까?그 나라의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유명한 명소를 포함한 숨겨진 곳까지 모두 다니는 것? 그 나라의 음식이나 전통문화 등을 체험하고 다니는 것? 이것들도 그 나라를 아는데 중요한 요소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나라의 인간성에 대해 아는 것 아닐까?은 2차 대전 당시 미국 정부의 의뢰에 의해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쓴, 일본에 대한 연구물이다. 이 책은 저자가 일본에 대한 단순한 기행이나 견문기가 아니고. 문화 인류학이라는 학문적 방법론에 근거해 평균적인 일본인의 행동과 사고의 패턴을 탐구하는 것이다. 은 베네딕트가 2차 대전의 종결을 앞두고 미 국무성 해외전의분석과에 제출한 '리포트25-일본인의 행동패턴'을 토대로 집필됐다. 일본과의 전쟁에서 이전까지의 미국과 싸워온 서양 국가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고 이에 당황한 미국은 태평양 전쟁에서 작전 수행시 필요한 군사적 문제 외에도 그들의 사상과 행동 양식에 대한 연구가 더 중요한 사안으로 떠올랐다. 적의 행동에 대처하려면 그들의 행동을 이해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쓰여진 것이 바로 이 책 이다. 이 책은 ‘일본을 다룬 가장 객관적인 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미국은 당시 일본이 전쟁을 치르고 있는 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을 평가절하하거나 감정적으로 다루기를 원하지 않았다. 저자가 쓰고 있듯이 그들은 ‘적이 어떤 방식으로 인생을 보는지 적 자신의 관점에서 볼 수 있기를 원했다. 전쟁 중인 적을 깎아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승리를 위해서는 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시종일관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에 대해 상당히 예리한 통찰을 보여주는데, 놀라운 것은 정작 저자 자신은 일본을 한번도 방문한적이 없다는 점이다. 당시 미국은 일본과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 현지 방문을 포기해야만 했다. 대신 그녀는 미국에 주재하던 일본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행동 양식과 사고 패서 일본을 바라본 덕분이라는 설도 있다.루스 베네딕트는 연구과제에서부터 시작하여 패전 후의 일본인 이란 항목까지 총 13장으로 나누어 일본인을 분석하였다.각 장을 살펴보면1∼2장에서는 일본인 특유의 모순적 성격, 즉 공격적이며 동시에 수동적이고, 호전적이면서 심미적이며, 무례하면서 공손하고, 충성스러우면서 간악하며, 용감하면서 비겁하고, 경직돼 있으면서 적응력이 뛰어나며, 또한 남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신경과민이 돼 있으면서 타인의 눈이 미치지 않으면 쉽게 범죄의 유혹에 빠져든다는 등등을「국화와 칼」이라는 말로 상징화했다.서양인들에게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전쟁에서의 죽음은 정신적 승리라고 외치며 최후까지 절대로 항복을 하지 않을 듯하던 그들이 국왕의 패전선언이 있자 곧 일사불란한 유순한 태도로 적이었던 미국인에게 복종과 협력을 아끼지 않는 모범을 보인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이중성의 실체를 저자는 위계 서열 의식, 은혜와 보은,그리고 의리에 대한 독특한 도덕체계, 죄와 악에 대한 의식이 결여된 대신 수치심을 기본으로 하는 문화체계 등으로 설명한다.3∼4장에서는 일본인은 모든 사람이 하나의 위계 서열 체계에서「위치」지워져 있으며 각자가 그 위치에 맞는 특권과 의무와 행위규범을 가진다고 한다. 이 위치 또는 서열은 사회계급이나 신분제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적용된다. 남녀성별, 연령, 가장과 가족원, 형제, 선후배, 군신, 지휘자와 부하 등등에 철저하게 간여하는 것으로서 이를 어기는 것은 곧 조롱의 대상이 된다. 더욱이 최하위의 위치라도 하나의 체계 속에 있다는 것이 중요하며, 따라서 이러한 체계로부터 소외된다는 것은 곧 죽음과 다름없다고 믿는다.이 책의 5∼9장은 우리가 일본인을 이해할 때 흔히 거론하는 그들의 독특한 사회적 행위를 지배하는 도덕체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중요한 부분이다. 은(恩)또는 은혜라는 것은 한 사람이 반드시 갚아야 하는 의무감을 동반한 혜택이자 부담이다. 은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도덕률은 일본인들을 끝없는 호혜관계에 들어가게 한속에서 받는 이러저러한 은혜가 있으며, 이러한 은의 개념은 인간상호간의 관계 및 인간과 국가와의 관계에 대한 일본인의 관념의 기초가 된다.10∼12장은 일본인의 인간관과 세계관을 다룬 것으로 베네딕트는 일본인에게 있어서 인간적 감정과 쾌락은 악이 아니므로 수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육체와 정신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성적인 쾌락의 추구가 도덕적일 필요가 없다. 다만 이 쾌락을 보은이나 충(忠)의 실천을 위해 포기하는 것은「의지력」의 표시이며 이는 가장 숭고한 덕목의 하나가 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죄와 악을 극복의 대상으로 삼는 기독교 문화와 달리 일본인들은 죄의식이나 악에 대한 개념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베네딕트의 지적이다. 즉 일본사회는 도덕의 절대적 표준을 설정하고 바른 행위의 내면적 강제력을 계발하는 사회이기보다는 수치에 대한 문화적 기제가 발달해 있으며 따라서 그들은 모든 행위를 수치를 당하는 것인가의 여부에 의해 판단하게 된다.13장에서는 패전 후의 일본인의 미래등에 대해 적었다. 전후의 일본이 나아간 방향을 생각해 볼 때, 베네딕트가 예견한 그대로여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예를 들자면, ‘일본이 만약 재군비를 위해 국비를 할당하지 않는 다면 그들에게는 국민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그리하여 동양의 통상에 있어 필요 불가결한 나라가 될 것이다.’등등 이다.앞으로의 일본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잘 예견하고 있다. 일본의 정치적 정책에 있어서도 베네딕트의 서술한 대로 표출되고 있어서 우리들에게 또한 경고를 하고 있다. 저서의 내용 그대로 인용을 해 보고자 한다. 일본인은 침략 전쟁을 하나의 오류 및 실패한 주장으로 간주함으로써 사회적 변혁을 향한 최초의 큰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다시 평화로운 나라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지위를 회복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 평화가 실현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러시아와 미국이 앞으로 몇 년간을 공격을 위한 군비 확충속에 세월을 보낸다. 일본은 만일 사정이 허락되면, 평화로운 세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구하리라. 그렇지 않게 되면, 무장된 진영으로서 조직된 세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찾게 될 것이다, 등 이다.국화와 칼을 보면 일본이란 민족과 일본 문화의 특성을 국화와 칼이라는 소재로 하여 두가지 극단적인 상징적 표현을 너무나 잘한거 같다.이 책은 국화(평화)를 사랑하면서도 칼(전쟁)을 숭상하는 일본인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해부했다. 즉, 국화와 칼로 상징되는 극단적 형태의 일본 문화를 다각도로 탐색하고 전쟁 중의 일본인, 메이지유신, 덕의 딜레마, 인정의 세계, 자기 수양, 패전 후의 일본인 등으로 나눠 문화인류학적으로 깊이 있게 탐구하였다.‘국화’는 일본의 황실을 상징한다.우리는 일본을 벚꽃으로 생각하지만 다른 꽃들이 피지 않는 차가운 가을에 홀로 피는 국화는 깨끗하고 청결하고 조용하고 엄숙하고 고귀하다는 생각에서 실은 일본인들은 나라꽃인 벚꽃보다도 국화를 좋아한다고 한다.‘칼’은 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그렇게 예의바르고 착하고 겸손하고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일본 사람들 속에 무서운 '칼'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베네딕트는「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을 통해 일본 사람들의 이중적인 성격을 드러냈다. 일본 사람들 스스로도 자신들은 앞에 내세우는 얼굴과 속마음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했다.이 책은 일본 문화의 특성을 이라는 두 가지 극단적인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내용은 아름다움을 사랑하며 배우와 예술가를 존경하며 국화를 가꾸는 데 신비로운 기술을 가진 국민이 동시에 칼을 숭배하며 무사에게 최고의 영예를 돌리는 그들의 이해하기 힘든 일본문화를 다양하게 탐구하여, 쟈크데리다의 철학적 해체기법처럼, 사실과 픽션의 역사성과 대중문화를 텍스트 분석으로 정리한듯하다.국화는 평화 속에 숨겨진 일본인들의 세련됨이라고 한말이 있다. 일본은 두 의식 체제를 내포하고 있는 민족이다.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서구 문명을 수용계를 꿈꾸는 것이 일본인들이다. 그들의 문화와 경제의 뒷받침엔 언제나 배우려고 하는 자세와 조직적인 일사불란한 조직체계와 부드러움이 있다는 것이다. 국화는 부드러움이나 절개도 의미한다. 그것은 일본인의 정신(사무라이)이 함축되어있다. 국화는 평화를 상징한다. 또한 굳은 절개를 상징한다.칼은 물론 전쟁이다. 이중성 같아보이는 이것은 어쩌면 이중성이 아닐 수도 있다. 의식의 껍질 속에 그들이 있는 것이다. 심리수준은 행동의 수준 밑에 있다. 심리 수준에서 알아내려는 것은 행동을 지배하고 인도하는 심층 요소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행동구조에 비해 잠재적인 심리 구조는 더 간단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추리 영역 속에 숨어있다작가는 국화와 칼을 소재로 추리를 하면서 일본을 해체하기 시작했다.그들의 일본정신과 군국주의적 침략적 속성은 봉건 지배 체제를 합리화시킨 이데올로기인 바로 무사도의 사무라이 정신이 일본인의 정신으로 확산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들의 정신은 패전 후 자급자족적 봉건 경제 대신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물질적 조건 위에 무사도가 접목된 것이다.일본의 봉건 지배 계급은 서구 열강의 위협에 의해 문호를 개방한 후 급속한 자본주의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시민 혁명을 통해 봉건 지배 계급을 타도하고 자본주의를 확립한 유럽과는 달리, 봉건 지배층이 산업 발전을 주도한 일본에서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싹틀 수 없었다. 시민 정부 대신에 천 년의 역사를 가진 천황제가 유지되었으며, 의회는 매우 제한적인 권한밖에 가지지 못했다. 따라서 천황제 근대 국가의 군대는 신식 무기와 함께 봉건적 무사도로 무장하고, 봉건 영주들의 내전 대신에 ‘대 일본 제국과 천황 폐 하’를 위한 대외 침략 전쟁에 동원되었다. 일본의 민중은 대부분 민주주의라는 개념조차 인식하지 못하였으며 천황을 신으로 숭배하는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했다.2차 대전에서의 패배는 일순간에 모든 것을 뒤바꿔 놓았다. 도오조 히데끼 [東조 英機]를 비롯한 군부 관료 집단은 전쟁 범죄자로 체포되었되었다.
    독후감/창작| 2015.07.21| 6페이지| 1,000원| 조회(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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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체스네 아이들'을 읽고
    산체스네 아이들을 읽고‘산체스네 아이들’에 대해서 아느냐고 질문했을 때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마 거의 없지 않을까? 아는 사람들도 70년대 ‘안소니 퀸’이 주연한 영화로 알고 있거나 아니면 그 영화의 주제곡으로 유명했던 ‘척 맨지온’의 음악으로 알고 있지 않을까? 우리에겐 생소한 ‘플루게혼’이란 악기로 연주한 ‘산체스네 아이들’은 강렬한 중독성을 띄며 우리 귀를 맴돈다.사실 영화 ‘산체스네 아이들’은 ‘오스카 루이스’가 저술한 민족지를 원작으로 만든 것이다. 이 민족지를 통해 ‘빈곤문화’가 최초로 제시되었고 미국 인류학계에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 책은 일반 독자들에게 읽혀져 중산층에게 빈곤이라는 문제와 빈민들의 문화에 대하여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다. 그들에게 이 책은 민족지라기보다는 소설의 느낌이었다. 이 책이 나온뒤 멕시코 정부에서는 자기네 나라엔 그러한 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빈곤문화’의 존재를 부정하려고 애썼다는 일화가 있다.오스카 루이스가 저술한 ‘산체스네 아이들’은 멕시코 시에 사는 어느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그는 예전에 썼던 ‘다섯 가족’이라는 책의 주인공들 중 한 가족을 선택하여 좀 더 가까이에서 그리고 더 깊숙이 들어가 그들의 생활을 관찰하였다.산체스네 가족은 아버지 헤수스 산체스와 첫 번째 아내가 낳은 두 아들인 마누엘과 로베르또 그리고 두 딸인 콘수엘로와 마르따 이렇게 5명으로 이루어져있다.아버지인 헤수스 산체스는 평범한 일꾼이다. 그는 식당의 식자재를 사는 일을 담당하고 있으며 그 일만으로는 생계를 꾸려나갈 수 없기에 돼지를 사육하거나 복권을 파는 일을 부업으로 하고 있다. 헤수스의 첫 아내가 살아있었을 땐 아니 두 번째 부인이 살아 있을 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가난 했지만 행복했다. 컵은 항상 깨끗했고 집안도 깔끔하였다. 하지만 두 번째 부인이 죽고 아이들이 커가자 아버지와 자식 간의 관계도 형제자매간의 관계도 깨져 버린다. 두 번째 아내 외에도 헤수스 산체스에게는 다른 부인이 있었다. 그리고 점점 첫째 부인.둘째인 로베르또 역시 마찬가지이다. 군대에 입대하기도 하지만 탈영을 하고 나와 건달처럼 지내며 감옥을 들락거린다.큰 딸인 콘수엘로는 그녀대로의 꿈도 있고 자신이 살고 있는 생활에서도 벗어나고자하는 의지가 강하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되는게 없다. 들어가는 직장마다 남자들은 그녀에게 치근덕거리고 결국엔 영화에 출연할 수 있다는 꾐에 빠져 몸을 버리기도 한다.막내 마누엘은 일찍 결혼을 하고 결혼이 자신의 생활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생각은 결혼과 동시에 사라지고 고생과 피곤만이 가득한 삶을 살게된다.이 런 이야기들이 그들의 입을 통해 전해져 꼭 자서전 같은 느낌을 준다. 오스카 루이스는 이런 집단 자서전적인 방법을 통해 자신의 편견을 줄이고 사건을 보는 객관성을 높이려고 노력했다. 같은 사건이라도 각자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좀 더 믿을만한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오스카 루이스는 산체스네 가족들과 계속적인 만남을 통해 우정을 쌓았고 그들과 융화되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 속에 있는 진솔한 이야기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산체스네 가족들은 오스카 루이스를 신뢰하고 필요할 때 그를 찾아 도움을 청하기도 하였다. 인류학조사의 가장 기본인 ‘라뽀’형성이 잘 되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이렇듯 민족지 연구법은 사회나 문화의 한 측면을 깊이 연구하는데 중점을 둔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간에 걸쳐 조사대상과 함께 살고, 그들의 생활을 몸소 체험하며 조사 대상에 대한 삶의 방식을 가능한 있는 그대로 충실하게 표현하려고 애쓴다. 연구자가 참여관찰자가 되는 것이다.민족지 연구법은 조사대상민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관찰하고 질문하고 조사하는 방법론이다.가장 핵심적인 것은 특정 집단을 장기간 관찰하고 참여하면서 주민들과 면접과 대화를 통하여 그 집단이 가지고 있는 환경에서부터 관계망과 구조 그리고 의미구조까지 종합적으로 연계해서 파악하는 것이다.민족지 연구에서 가장 흔하게 쓰이는 연구방법은 참여관찰과 인터뷰가 있다.연구자는 현장에 참여하고 관찰하여 그들의 행동누고 조사하느냐에 따라 왜곡된 정보나 내용을 전달 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한다.참여관찰과 함께 인터뷰는 가장 핵심적인 문화인류학적 조사방법이다. 참여관찰 과정에서도 인터뷰는 이루어진다. 하지만 본격적인 인터뷰는 사전에 질문지를 작성하고 대상자와 면담일자를 성정하여 장시간 녹음을 하며 하는 것이다. 오스카 루이스 역시 자신의 사무실 등에서 인터뷰를 통해 조사하였다. 이러한 조사는 보통 어느 정도 참여관찰이 이루어지면서 대상자들과 안면이 깊어졌을 때 제대로 할 수 있다.인터뷰는 많은 정보, 관계,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인터뷰 대상자는 같은 지역이나 집단 내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풍부한 경험과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선택해야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되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불균등하게 분포되어 있는 지식, 정보의 상황과 그것이 가지는 의미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인터뷰를 할 때는 얻고자하는 정보에 대해 미리 조사를 해야 한다. 그래야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를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터뷰를 하며 몰랐던 사실에 대해 느끼고 질문도 추가해야하며 자신의 질문에 편견이 들어가 있지 않았는지 살펴보는 것도 잊지말아야한다.‘산체스네 아이들’의 경우 생애사 수집에 특히 많은 공을 들였다. 생애사는 그 사람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그리고 그 경험이 그 사람에게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주변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었으며 그 관계가 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이외에도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여야하는데 각종 공식문서나 자료집들은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현대에는 사진기 비디오, 녹음기 등 다양한 도구를 이용하여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진이나 비디오는 자신이 보고 싶은 면만 촬영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 한다.인류학자들은 이렇게 수집된 자료들을 정리하고 올바르게 분석하는데 큰 힘을 쏟는다. 가장 활양식은 다양한 지역에서 유사성을 나타나지만 모든 지역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었을 때 ‘빈곤문화’가 나타난다고 했다. 그 요소로는 빈민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제체제, 핵가족 중심의 친족체제, 개인적 열등감 등을 꼽았다. 그리고 이런 ‘빈곤문화’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되며 아이들은 ‘빈곤문화’에 대한 태도와 가치를 흡수하게 되어 그들이 성장한 후에도 심리적으로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빈곤문화’란 단순한 현상이 아니다. 빈민집단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조건 속에서 삶을 살아나가기 위한 복합적인 적응과정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빈곤문화’는 ‘빈곤’이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빈민지역만의 생존방법으로 볼 수 있다.‘빈곤문화’의 특징으로 지적되는 측면들은 다음과 같다. 참여의지의 부족, 불우한 유년시절, 그들만의 은어, 조직의 미발달, 남존여비 경향, 미래를 대비하고 저축을 하는 모습대신 충동적이고 순간적인 쾌락에 빠진다는 점 등이다.오스카 루이스의 ‘빈곤문화’에 대한 개념은 빈곤계층의 사람들이 사회적·경제적으로 적응하는데 실패하는 것을 모두 그들 자신의 문화적 특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결부시켜 탓하였다.하지만 이러한 ‘빈곤문화’에 대한 주장은 여러 가지 비판을 받았다.첫째 빈곤의 구조적 문제이다. 빈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사회적으로 변화가 있지 않으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두 번째는 타 지역 빈민연구의 부족이다. 오스카 루이스는 라틴 아메리카 특히 멕시코를 중심으로 다루었고 이는 타 지역의 빈민들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배제하였다. 결국 멕시코 빈민가의 특수문화도 결국은 멕시코 민족문화의 한 형태이며, 그것은 외국 빈민들의 문화보다는 멕시코 빈민만의 문화라는 것이다.마지막으로 산체스네 가족 한 가족만 조사했다는 점이다. 한 가족의 생그들은 정부기관을 애초에 믿지 않는다. 이는 로베르또의 이야기에서 잘 드러나는데 로베르또가 잘못한 것도 많지만 그 외에 억울하게 누명을 써서 감옥에 가거나 괜히 경찰로부터 뇌물을 요구받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은 그들이 지배계급의 가치와 제도에 대하여 비판적이고 불신하기에 충분했다. 결국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만의 신앙과 관습을 이용하여 생활양식을 만들어내고 살아가는 것이다.오스카 루이스가 한 가족만 조사하거나 어떤 현상을 보고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했듯이 민족지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민족지는 직접 참여하였기 때문에 정확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조사자가 얼마나 그 문화를 공정하고 정확하게 이해하였는가 라는 문제가 있다. 같은 문화를 조사하였다고 해도 조사자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등 다양한 변수를 가지게 된다. 실제로 오스카 루이스가 조사한 산체스네 마을은 이전 조사자가 30년 전에 조사하였을 당시 오스카 루이스가 낸 결론과 전혀 다른 결론을 낸 적도 있다.또 조사자뿐만 아니라 연구자가 택하는 조사대상자에 따라서도 연구 내용이 달라진다. 굳이 멀리 가지 않고 헤수스 산체스와 아이들 간의 사고 차이에서도 대조를 느낄 수 있다.헤수스 산체스는 멕시코 혁명이 시작될 때쯤 태어났다. 그 시대엔 자동차, TV, 라디오 등 문명의 이기들도 없었고 의무교육이나 자유선거 같은 것도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태어난 각자의 분수에 맞게 커왔으며 고된 노동을 버티는 법도 배웠다. 그 결과 헤수스 산체스는 아이들을 사랑하기도 하지만 독재적이고 가부장적인면을 많이 지니고 있다.하지만 산체스의 아이들은 독재와 권 주의의 영향도 받았지만 혁명 후의 개인주의와 자본주의의 가능성도 맛보았다.책을 읽다보면 헤수스 산체스는 자식들의 게으르고 일하지 않는 모습을 욕하며 자신의 가장으로서의 권위에 반항하는 그들에게 실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반면 산체스네 아이들은 왜 아버지가 그들이 하려는 일에 불만을 느끼고 사사건건 간섭을 하려하는 것인지였다.
    독후감/창작| 2015.07.21| 7페이지| 1,000원| 조회(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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