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_ 『동양윤리의 담론』 (조현규)1. 천(天)에 대한 이해① 형이상학적·도덕적 의미로서의 천2. 인간의 본성 이해-성선설①기본입장②불인지심③사단지심④인: 사람의 도리⑤의: 행함의 표준⑥사양지심·공경지심⑦인간이 악을 행하는 이유3. 인의(仁義)의 실천윤리①배경②인·의③가족적 도덕관념과 인·의④사회적 도덕규범으로의 확대⑤임금과 신하의 의⑥타인과 인의⑦예4. 왕도(王道)의 정치윤리①기본입장②인정③여론의 존중④역성혁명⑤민본사상⑥결론5. 도덕수양의 방법①기본입장②도덕수양의 방법②-1. 존심양성가. 존심양성나. 군자와 범인의 차이다. 존심의 구체적 방법라. 양성마. 존양하는 첩경바. 양성을 위한 방법: 확충②-2. 전심치지②-3. 양호연지기가. 양호연지기나. 양호연지기의 방법②-4. 자기반성②-5. 호선가. 호선나. 여인동선②-6. 중용지행1맹자_ 『동양윤리의 담론』 (조현규).hwp1. 천(天)에 대한 이해① 형이상학적·도덕적 의미로서의 천▷맹자에 있어 천는 인간 도덕성의 원천으로 형이상학적· 도덕적 의미를 함축한다. 따라서 천도(天道)는 인간 삶의 모범이 된다. 이러한 천이 인간에게 성품(인의예지)을 부여하기 때문에 선할 수밖에 없으며, 결코 악 할 수 없다.(도덕적 천) 그런데 맹자의 있어 천은 바로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다. 우리는 마음을 통해 본성을 알 수가 있고 본성을 알면 그러한 본성을 부여한 천도 알 수가 있다. 천이 준 본래의 마음을 잘 보존하고, 천이 부여한 선한 본성을 잘 기르는 것이, 곧 천을 섬기는 방법이기도 하다.▷맹자에 있어서 천은 인간에게 선한 성품을 부여한 ‘도덕적 천’이며 인간으로 하여금 부여받은 도덕적 성품을 신한 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는 형이상학적 존재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간은 천의 부름에 귀를 기울이고, 참된 자기존재를 반성하고 하늘이 부여한 가치, 즉 인의예지를 당위적으로 구현해야 하는 것이다.2. 인간의 본성 이해-성선설①기본입장▷ 사단은 인간 본성의 근본구조인 사덕이 도덕적 심리작용으로 인해 나타난 단서로서 이는 덕격화됨과 동시에 만물 속에 내재하며, 인간 속에도 존재한다. 이러한 인간 내부에 있는 천을 천성이라 한다면, 인간의 본성은 천이고 선이다.②불인지심▷맹자에 의하면 인간은 생득적으로 ‘불인지심(不忍之心)’을 지녔다고 한다. 즉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하는 것을 보게 되면 모두 깜짝 놀라고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불행을 차마 보지 못하는 인간의 순수한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인지심, 즉 ‘참지 못하는 마음’을 인간이면 누구나 생득적으로 구유하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 이는 결국 사람마다 도덕적으로 스스로 선한 요소를 구유하고 있음을 뜻하며, 그러한 싹(端)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③사단지심▷맹자에 있어 ‘사람이 본성이 선하다’는 단서는 사단지심(四端之心)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즉, 측은한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부끄러워 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측은히 여기는 마음은 인(仁)의 시초요,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의(義)의 시초요, 사양하는 마음은 예(禮)의 시초요,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은 지(知)의 시초이다라고 하여 맹자는 사람은 누구나 이러한 사단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다 하였다. 따라서 만약에 이러한 사단의 마음을 지니고 있지 아니한 사람이 있따면 그를 인간으로 취급지 않았다.▷측은, 수오, 사양, 시비의 사단의 인간 본성은 인, 의, 예, 지의 사덕이 도덕적 심리작용으로 인해 나타난 단서로서 이는 덕행의 시발점이 된다고 보았다.④인: 사람의 도리▷“인(仁)이란 사람(人)을 말하는 것이니 합해서 말하면 도이다.”▷“인은 사람의 마음이다.”▷맹자는 인이란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도리임을 강조한다. 즉, 사람은 차마 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그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씨가 바로 인이라는 것이다.⑤의: 행함의 표준▷“의(義)란 사람의 길이다.”-맹자는 행함의 표준으로 의를 들고 있다.▷“대인(大人)이란 말로나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사양지심과 공경지심(恭敬之心)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사단, 공경의 마음은 선천적으로 인성에 내재하기 떄문에 이를 예(禮)의 단(端)이라고 한 것이다.▷“어려서 손을 잡고 가는 아이는 그 어버이를 사랑할 줄 모르는 이가 없으며, 그 자라남에 미쳐서는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르는 이가 없다.”-어버이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것은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사람의 양지(양지: 생각하지 않고도 아는 것), 양능(양능: 사람이 학습하지 않고도 능한 것)이라 하였다. 이는 인간의 앎에는 반드시 경험이나 교육을 통해서 아는 것만이 아니라,인간으로서 선천적으로 갖는 앎도 존재한다는 것이다.⑦인간이 악을 행하는 이유▷그렇다면 그 본성이 선해야 할 인간이 왕왕 나쁜 짓을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인간에게 놓여진 환경 때문이다.▷그러나, 아무리 외부 환경에 의해서 악에 빠진다고는 하지만, 결국 인간성 가운데에 악으로 향하는 성질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의문이 들 수 있다. 맹자는 이에 대해 대답한 것이 없다. (그렇기에 송대의 주자는 맹자의 성선설을 계승하면서도, 인간의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을 들어 이 문제를 극복하려 했다.)3. 인의(仁義)의 실천윤리①배경▷맹자에 있어서의 인은 공자로부터 전승한 덕목이고, 의는 맹자가 시대적으로 요청한 덕목이었다. 혼란한 전국시대의 상황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힌다면 사회 혼란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②인·의▷인: 따뜻하고 포용적인 사랑(공자와 다를 바 없음)▷의: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사회적 정의▷“인이란 사람의 마음이요, 의란 사람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이다.”-인이 인간의 내면적 심성의 바탕이라면, 의는 인간의 외면적 실천원리.▷“사람마다 모두 하지 못할 것이 있고, 할 만한 것이 있는 법인데, 그 할 만한 것을 잘 해내는 것이 의이다.”-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다하면 떳떳하게 되는데, 그것이 의라는 것이다.③가족적 도덕관념과 인·의▷인: 어버이를 친애하는 마음▷의: 웃어른을 공 가족적 도덕관념을 강조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④사회적 도덕규범으로의 확대▷그런데 어버이를 친애한다는 것은 단지 자신의 어버이만을 친애한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어버이도 친애함을 포괄하는 의미이다. 이는 곧 맹자의 가족적 도덕관념이 가족이라는 범위 내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도덕규범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인자(仁者)는 남을 사랑할 줄 알고, 의자(義者)는 남을 공경할 줄 안다.”-여기서 남을 사랑하고, 남을 공경한다는 것은 모두 사회적 도덕규범이다.⑤임금과 신하의 의▷맹자가 웃어른을 공경한다는 것은 형, 어른들을 존경하고 공경한다는 의미 외에 특별히 임금을 공경해야 한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그러나 임금을 섬긴다고 하여 무조건 순종하는 것은 아니다. 임금에게 공경한다는 것은 임금에게 선을 행하고 의를 행하도록 권유하는 것을 의미한다.▷맹자는 임금이 선정(善政)을 베풀 수 있도록 간해야 함을 강조하며, 이것이 곧 올바른 충성이라 하였다. 또, 올바로 간하였음에도 실행하지 않는 군주가 있을 때에는 결코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군신관계에 있어서 신하는 임금을 공경해야 하며, 이보다 먼저 임금이 신하를 공경해야 한다. 이는 곧 임금과 신하 모두가 의를 지녀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 때 임금과 신하의 의는 상대적인 것이다.)⑥타인과 인의▷맹자의 의는 남을 공경하는 의식을 확장해 자신의 본분을 지키면서 다른 사람의 권리도 존중하는 것을 가리킨다.▷맹자에 의하면 사람은 누구나 남을 동정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를 밀고 나가서 확충시켜 모든 사람의 불행을 동정하는 것이 바로 인이다.▷사람은 누구나 마땅히 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있는데 이를 밀고 나가서 확대해 일체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 바로 의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의는 다른 사람의 권익을 침범하지 말아야 함을 가리킨다.⑦예▷맹자가 예에 대하여 전혀 말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예의가 없으면 상하가 혼란된다.”-이때의 예는 의(義)의 뜻과 예(禮) 위에 놓고, 생활의 최고 도덕이념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4. 왕도(王道)의 정치윤리①기본입장▷통치자는 백성들의 고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① 백성들에게 생업을 마련해 주어 위로는 부모님을 섬길 수 있고 아래로는 처자를 부양할 수 있게 하며 ② 풍년에는 배불리 먹고 흉년에는 굶어 죽지 않게 해야 한다.▷전쟁이란 수단을 통해 천하를 통일하는 것과 법가의 힘으로 인을 가장하는 것을 패도정치라 하여 경계하였다.②인정▷인정(仁政): 통치자가 백성을 동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기초로 하여 그들을 사랑하는 정치의 실현③여론의 존중▷맹자는 현자(賢者)의 등용이나 상현(尙賢) 등의 일을 처리할 때 반드시 ‘온 나라의’(백성의) 여론에 따라 해야한다는 여론정치를 강조하였다. 이것이 바로 인정인 것이다.④역성혁명▷맹자는 역성혁명을 인정하였다. 역성혁명의 정당성은 그들이 인의도덕에 입각한 인정을 하는가 못하는가에 달렸고, 대중의 여망에 부응하는가 못하는가에 따라서 그가 군주인가 범부인가가 결정되며, 범부일 경우 그 사람은 이미 임금이 아니며 그것은 인(仁)의 잔적(殘賊)인 것이다.⑤민본사상▷통치자는 보민(保民)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다. 공자의 보민은 군주의 인예(仁禮)가 기초가 되었으나, 맹자에 와서는 민위귀(民爲貴)로까지 발전하였다.“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요, 임금은 가장 경미하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환영을 받은 자가 천자가 되며, 천자에게 환영을 받은 자가 제후가 되며, 제후에게 환영받은 자가 대부가 된다. 제후가 사직을 위협하면 폐위시킨다.”⑥결론▷맹자의 인정론은 크게 두 가지이다.하나는 통치자는 백성들의 고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으로 백성들에게 생업을 마련해 주어 위로는 부모님을 섬기고 아래로는 처자를 부양할 수 있게 하며, 풍년에는 배불리 먹고 흉년에 굶어죽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또 하나는 전쟁이란 수단을 통해 천하를 통일하는 것과, 법가의 힘으로 인을 가장하는 것을 패도정치라 여겨 경계하였다. 반면에 인을 행하는 정치를 왕도정치 같다.
장자_ 『중국철학사』 상권 (풍우란)1장자_ 『중국철학사』 상권 (풍우란).hwp1. 도(道)·덕(德)·천(天)2. 변화의 철학3. 무엇이 행복인가?4. 자유와 평등5. 죽음과 불사6. 순수경험의 세계7. 절대적 소요8. 장자학과 양주의 비교제 10장. 장자와 도가 중의 장자학1. 도(道)·덕(德)·천(天)▷장자학의 철학은 『노자』와 다르지만, 장자학이 논한 “도(道)”와 “덕(德)”은 『노자』와 같다.▷“동곽자가 장자에게 물었다. ”소위 도(道)라는 것은 어디에 있습니까?“ ”없는 곳이 없습니다.(無所不在)“ ”구체적으로 한정해서 말씀해주십시오.“ “땅강아지나 개미에게 있습니다.”“어찌 그렇게 낮은 데에 있습니까?” “피나 쭉정이에 있습니다.” ”어찌 더욱 낮은 데에 있습니까?“ ”기왓장이나 벽돌에 있습니다.“ ”아니 어찌 자꾸 더욱 심해지십니까?“ ”똥이나 오줌에 있습니다.“ 동곽자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자, 장자는 말했다. ”그대의 질문은 애초부터 도의 본질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관리가 시장 감독에게 돼지를 밟아 살찐 정도를 알아보게 할 때에도 원래 살이 적은 아랫부분을 밟을수록 사정은 더욱 잘 밝혀지는 법입니다. 그대는 도를 절대화하지 마십시오. 사실상 도는 각 사물을 떠나 있지 않습니다. 지극한 도란 그런 것이고 위대한 말씀 역시 그렇습니다. 포괄성, 편재성, 총체성 이 셋은 이름은 다르나 실상은 동일한즉, 그 함의는 똑같습니다.“▷도는 천지만물 생성의 총원리이니, 사물이 있으면 도가 있다. 따라서 도는 “없는 곳이 없다.”“도는 실재가 있고 증표가 있지만 무위(無爲)하고 무형(無形)한즉, 전해질 수 있지만 받을 수 없고, 체득할 수 있지만 보여질 수 없다. 그것은 스스로 독립적으로 존재하고(自本自根), 천지에 앞서서 참으로 영원토록 존재한다. 귀신과 상제를 신령스럽게 하고, 하늘과 땅을 낳는다. 태극에 앞서 있지만 높지 않고, 육극(六極) 아래에 있지만 낮지 않다. 천지에 앞서 있지만 낡지 않고, 아득한 옛날보다 나이가 많지만 늙지 않는다.”▷ 도의 작용은 자연적이다.“기술은 사무에 통섭되며, 사무는 의(義)에 통섭되며, 의는 덕(德)에 통섭되며, 덕은 도(道)에 통섭되며, 도는 자연(天)에 통섭된다.”- “도는 자연에 통섭된다”고 함은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自然) 본받는다’는 의미이다.▷하늘(天)은 즉 자연이라는 의미이다.▷도(道)는 가히 작위하지 않으나 이루지 않는 일이 없다.▷도(道)는 사물이 아니기 때문에 무(無)라고 일컬을 수 있다. 태초에 무(無)가 있었으니, 그 무가 도이다.2. 변화의 철학▷사물의 형체는 한번 이루어진 후에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장자학의 견지에 따르면 천지만물은 항상 변화()가운데에 있다.“만물의 생성은 마치 말이 질주하는 것과 같다. 움직여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잠시도 변천하지 않는 것은 없다.”3. 무엇이 행복인가?▷기본 입장: 모든 사물은 도로부터 각기 그 덕을 얻으며, 저마다 자연의 본성이 있다. 자연의 본성을 따른다면 행복은 바로 그것이므로 달리 구할 필요가 없다.▷“붕새는 남쪽 바다로 옮아갈 때 삼천리에 걸쳐 물길을 일으키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위로 구만 리나 올라가서 여섯 달 동안 날아간 다음에 쉰다. 매미와 비둘기는 붕새를 비웃으며 말하기를 ”나는 팔짝 뛰어 날으면 느릅나무나 다목에 다다르고, 어쩌다 다다르지 못하면 땅에 떨어져도 그만이다. 뭣 때문에 구만 리나 올라가 남쪽으로 가리오?“ 했다.”-즉, 장자는 분수의 합당성을 밝혔다. 만약 각자의 본성에 만족하면 대붕도 뱁새에게 교만하지 않고, 뱁새도 천지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각기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지언정 소요(: 완전한 자유자재, 행복)의 경지는 똑같다. 사람도, 사물도 그러하다.※풍우란 ; 데카르트의 말과 장자의 말을 비교데카르트는 “인간의 온갖 것들 가운데 총명이 가장 균등하게 분배되었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경우에 전혀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도 자기의 총명은 심히 풍부하다고 여긴 나머지 더 이상 추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모든 사람은 그 자신이 하늘로부터 타고난 것에 대하여 극히 만족한다. ※▷정치적, 사회적 각종 제도는 장자학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인간에게 고통을 준다. 사물의 본성은 지극히 상이하여 사물마다의 취향이 존재하므로, 꼭 같을 필요도 없고 강제로 같게 해서도 안된다. 사물이 한결같지 않으니, 한결같지 않은 대로 맡겨두어야 한다. 이른바 ‘한결같게 하지 않음으로써 한결같게 한다’는 말이다. 정치적, 사회적 각종 제도는 모두 하나의 취향()을 정하여 행위의 기준으로 삼아 사람들로 하여금 따르게 한 것으로, 사랑이 오히려 해가 된 경우이다.“물고기는 물 속에 있어야 살지만 사람은 물 속에 있으면 죽는다. 즉 서로 다르게 선천적으로 타고났기 때문에 호오()의 대상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옛 성인은 능력과 직업을 획일화하지 않고, 이름()은 실상()에 부합시키고, 도리()는 적실성()을 띠게 했는바, 즉 조리가 통달하면 행복은 영존한다는 말이다.”▷천하를 다스리지 않아도 천하가 저절로 다스려지는 까닭은 천하의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취향은 다를지라도 다스려지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기 때문이다.“온 세상이 한결같이 태평성세를 소원할진대, 왜 하필 세삼스럽게 순 임금을 들먹여야 하는가?”- 온 세상이 한결같이 태평성세를 소원하므로, 자연에 맡겨두면 저절로 다스려진다.▷각종 제도로 다스리는 등, 인위()로써 자연을 개조하는 것은 안된다.“물오리 다리가 짧다고 해서 늘인다면 괴로울 것이요, 학 다리가 길다고 해서 절단한다면 슬퍼할 것이다. 따라서 천성적으로 길거나 짧은 것은 절단하거나 늘릴 일이 아니다.”“인위(: 작위)로써 자연()을 멸하지 말며, 지모(: )로써 성명()을 훼손하지 말라.”4. 자유와 평등▷기본 입장: 장자학은 인간과 사물은 모두 절대적 자유를 가져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천하의 온갖 사물 중에 좋지 않은 것은 없고 천하의 온갖 의견 중에 옳지 않은 것은 없다.▷논변()으로 시비()를 밝힐 수 없다. 저것도 하나의 시비체계요, 이것도 하나의 시비체계인 만큼, 끝이 없는 둥근 고리처럼, 결말을 지을 수 없다.▷“그러므로 성인은 시비를 조화시키고, 천균()속에서 쉰다. 그것이 바로 양행()이다.”-천균은 모두 만물의 자연적인 변화를 일컫는다.▷“도의 관점에서 보면 사물은 귀천이 없다.”▷양행에 대한 비판과 장자학의 반박혹자는 장자학이 양행()을 옳다고 여기므로 여전히 시비를 따지고 있다고 하나, 장자의 제물론은 양행을 옳다고 여긴 것은 시비를 초월하고자 한 것이므로 사람들이 시비를 따지는 경우와는 종류가 다르다.5. 죽음과 불사▷기본입장:죽음이란 우리가 하나의 존재방식에서 다른 하나의 존재방식으로 옮겨간 것에 불과하다. 현재 우리가 가진 존재방식을 즐겁다고 여긴다면, 사후에 우리가 얻을 새로운 방식 역시 즐겁지 않을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죽음은 삶의 자연적 결과이다. 이것을 비통해하고 고뇌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거역하고 인간의 정념을 배가시키는 일”이다. “자연의 이치를 거역하는”자는 반드시 형벌을 받는데, 그가 애통해할 때 받는 고통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이성으로 정념을 순화해야 한다. 이성으로써 정념을 순화하면 “애락은 개입하지 못한다.”6. 순수경험의 세계▷“심재”란?“뜻을 한 군데로 집중하여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듣고,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운으로 들어라. 듣는 것은 귀에서 그치고, 마음은 부합되는 데에서 그치기 때문이다. 기운이란 텅 비어 만물이 오기를 기다릴 뿐이다. 오직 도만이 텅 빈 것을 모여 듣게 한다. 이처럼 마음을 비우는 것(허심)이 심재이다.”▷“좌망”이란?“안회가 공자에게 말했다. ”저는 진보했습니다.“ ”무슨 말인가?“ ”저는 인의를 잊었습니다.“ ”좋다. 하지만 아직 미흡하다.“ 그후 안회는 다시 공자를 뵙고 말했다. ”저는 진보했습니다.“ ”무슨 말인가?“ ”저는 예악을 잊었습니다.“ ”좋다. 하지만 아직 미흡하다.“ 그후 안회는 다시 공자를 뵙고 말했다. ”저는 진보했습니다.“ ”무슨 말인가?“ ”저는 좌망()했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낯빛을 바꾸며 안회에게 물었다. ”좌망이란 무엇인가?“ ”사지의 존재를 잊고 정신의 총명성을 배척하여 육체를 벗어나고 지식을 폐기하여, 대통()에 합일하는 것, 그것이 좌망입니다.“
노자_ 『중국철학사』 상권 (풍우란)제 8장 『노자』와 도가 중의 『노자』학1. 도(道)2. 덕(德)3. 사물에 대한 관찰4. 처세의 방법5. 정치·사회 철학6. 욕망과 지식에 대한 『노자』의 태도7. 이상적인 인격과 이상적인 사회제 8장 『노자』와 도가 중의 『노자』학1. 도(道)(1) 천(天)에 대한 노자의 입장▷“천지는 어질지 않다”고 하여, 하늘에서 도덕적 의미를 제거했을 뿐더러 유심론적 의미도 제거(2) 도(道)▷고대의 소위 도는 모두 인도(人道)를 일컬었으나, 『노자』에 이르러 도에 형이상학적 의미가 부여됨▷천지만물의 생성(生)에는 반드시 그 생성의 총원리(所以生之總原理)가 있다고 여겨, 그 총원리를 도라고 이름함▷“만물은 각각 다른 원리가 있고, 도는 만물의 총체이니, 따라서 (사물의 원리는 사물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므로 도 역시)변화할 수밖에 없다. 변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영구불변의 조리란 없다.”▷“혼연일체의 어떤 것이 있어, 천지에 앞서 존재했다.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영원불변하며, 두루 작용하여 위태롭지(그치지)않으므로 천하만물의 모체로 삼을 수 있다. 나는 그 이름을 모르는데, 그것의 자(字)를 ‘도(道)’라고 하고, 억지로 ‘위대한 것(大)’이라고 이름한다.”▷“대도(大道)는 광범하여 무소부재하다. 만물이 그것에 의지하여 생존하지만 한 마디의 말이 없다. 공을 이룩하지만 그 명성을 누리지 않으며, 만물을 감싸 양육하지만 주재자로 자처하지 않는다.”1노자_ 『중국철학사』 상권 (풍우란).hwp▷도의 작용은 의지가 있는 것이 결코 아니고 단지 스스로 그러할 따름이다.“사람을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스스로 그러함(自然: 스스로의 본성)을 본받는다.”▷“도는 언제나 작위하지 않으나(無爲) 이루지 않는 일이 없다.”▷도는 바로 만물 생성의 원리이므로, 천지만물이 사물인 것과는 다르다. 사물은 유(有)라고 이름할 수 있지만, 도는 사물이 아니므로 다만 무(無)라고만 일컬을 수 있다. 그러나 도는 천지만물을 생성할 수 있기 때문에 유라고도 일컬을 수 있다. 따라서 도는 유무를 겸한 말인데, 무는 도의 체(體)를, 유는 도의 용(用)을 일컫는다.“도(道)란 일컬을 수 있는 것이면 영구불변의 도가 아니며, 이름(名)이란 호칭할 수 있는 것이면 영구불변의 이름이 아니다. 무(이름할 수 없는 것)는 천지의 시원(始原)이고, 유(이름할 수 있는 것)는 만물의 모체이다. 상무(常無)를 통해서는 천지만물의 미묘성을 관찰하고, 상유(常有)를 통해서는 천지만물의 명백성을 관찰한다. 이 두 가지는 동일한 근원에서 나왔고 이름만 다를 뿐, 다같이 오묘한 것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오묘하고 또 오묘한지라 온갖 미묘함이 비롯되는 문(門)이다.”▷“도에서 하나가 생기고 하나에서 둘이 생기고 둘에서 셋이 생기고, 셋에서 만물이 생긴다. 만물은 저마다 음을 구비하고 양을 함유하는데, 이 음양 2기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화기(和氣)가 생긴다.”▷“천지만물은 유(有)에서 생기고, 유는 무(無)에서 생긴다.”▷풍우란 왈(曰) : 도를 일컬어 무라고는 하나, “무”는 구체적인 사물로서의 “유”와 상대적인 말이지 제로가 아니다.2. 덕(德)▷도(道)는 천지만물의 생성의 총원리이고, 덕(德)은 한 사물의 생성의 원리이다.“도는 만물을 산생하고, 덕은 만물을 양육한다. 물질이 사물의 모습을 형성하면, 자연의 형세가 그것을 완성한다. 따라서 만물 치고 도를 존숭하고 덕을 중시하지 않는 것은 없다. 도가 존숭되고 덕이 중시됨은 누가 명령한 것이 아니고 영원히 그러하다.”3. 사물에 대한 관찰▷『노자』 는 우주간 사물의 변화 속에서 통칙(通則)을 발견할 수 있다고 여긴다. 무릇 통칙은 모두 “영원불변하다(常)”고 할 수 있다.▷상(常)은 보편적이고 영원하다는 의미가 있다. 즉 도는 영구불변의 도(常道)라는 말이다. 상도(常道)로부터 나온 덕을 상덕(常德)이라 한다.“상덕(영구불변의 덕)은 어긋남이 없는 바, 무극(無極: 궁구할 수 없는 진리, 무궁의 원시경지)으로 복귀한다. 상덕이라야 비로소 충족되고, 박(樸: 원초적 소박함, 사물의 질박한 본성)으로 복귀한다.”▷『노자』에 “통칙을 아는 개명(明: 통칙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자주 언급된 것을 보면 개명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통칙(常)을 아는 사람은 관용적이고, 관용적이면 공평무사하고, 공평무사하면 포용적이고, 포용적이면 광대하고, 광대하면 도에 부합하고, 도에 부합하면 영구하고, 종신토록 위태롭지 않다.”▷통칙을 알면, 그에 따라 행하는데, 이러한 행위를 ‘습명(襲明)’ 혹은 ‘습상(習常: 통칙에 익숙함)’이라고 한다.▷사물변화의 최대 통칙 중의 하나는, 한 사물이 발달하여 극점에 이르면 반드시 그 정반대로 일변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이른바 반(反)이고, 복(復)이다.“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운동이다.”“구부리면 온전해지고, 굽으면 곧아지고, 비면 채워지고, 낡으면 새로워지고, 적게 가진 자는 얻게 되고, 많이 가진 자는 미혹에 빠진다.”4. 처세의 방법▷사람의 처세에 반드시 일정한 방법이 있다. 그 요지는 만약 우리가 어떻게 하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그 정반대 측면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장차 움츠리려면 우선 펴주어야 하고, 장차 약화시키려면 우선 강화시켜야 하고, 장차 폐하려면 우선 흥성시켜야 하고, 장차 빼앗으려면 우선 주어야 한다. 지나친 인색은 반드시 크나큰 낭비를 낳고, 많은 저장은 반드시 호된 손실을 초래한다.”▷“지극한 완벽은 흠이 있는 듯하지만 그 작용은 다함이 없으며, 지극한 충만은 비어 있는 듯하지만 그 작용은 무궁하다. 지극한 곧음은 마치 굽은 것 같고, 지극한 기교는 마치 서투른 것 같고, 지극한 웅변은 마치 어눌한 것 같다.”▷성인은 사물의 발전이 극단적이고 지나치면 장차 그 반대로 변할 것임을 알고 있으므로,“성인은 지나침을 배제하고, 사치를 배제하고, 극단을 배제한다.”※풍우란 왈(曰); 헤겔이론의 노자에의 적용헤겔은 역사의 발전은 정(正), 반(反), 합(合)의 세 단계를 거친다 했다. 한 사물이 발전하여 극점에 이르면 반드시 그 정반대로 변하는 것은 “정”에서 “반”이 되는 것과 같다. 오직 굽음을 내포한 곧음, 서투름을 내표한 기교라야 지극한 곧음, 지극한 기교인즉, “정”과 “반”의 “합”이다. 지극한 곧음은 굽은 것이 아니라 굽은 것 같을 뿐이다.5. 정치·사회 철학▷“천하에 규제와 금령이 많아질수록 인민은 더욱 빈궁해지고, 민간에 예리한 무기가 많아질수록 국가는 더욱 혼란해지고, 인민의 기술이 공교로워질수록 유해한 기물들은 더욱 많아지고, 법령이 정비될수록 도적은 더욱 늘어난다.”-사람이 천하를 다스림은 본래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지만, 작위를 통한 목적의 추구는 도리어 목절을 이룰 수 없게 한다. 따라서 말한다.“천하라는 신비한 기물은 결코 작위의 대상일 수 없다. 억지로 작위하는 자는 그르치고, 한사코 집착하는 자는 상실한다.”“인민의 태평성세를 어렵게 하는 것은 통치자의 작위 때문이다. 그 때문에 태평성세가 어렵게 되는 것이다.”▷따라서 성인의 천하통치는 분란을 초래하는 일체의 근원을 없애는 데에 중점을 둔다. 법령과 인의(仁義: 도덕규범)는 모조리 배제한다. 작위하지 않음(無爲)으로써 도모하고, 다스리지 않음으로써(無治) 다스린다. 작위하지 않지만 오히려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고(無不爲), 다스리지 않지만 오히려 다스려지지 않는 일이 없다.(無不治)“내(통치자)가 작위하지 않으면 인민은 저절로 순화되고, 내가 조용함을 좋아하면 인민은 저절로 바르게 된다. 내가 일을 벌이지 않으면 인민은 저절로 부유해지고, 내가 욕심을 없애면 인민은 저절로 질박해진다.”▷또한, 성인은 양생(養生) 역시 양생하지 않음(不養)으로써 양생한다.“무릇 양생을 꾀하지 않는 사람이 생명을 중시하는 사람보다 더욱 현명하다.”6. 욕망과 지식에 대한 『노자』의 태도▷각종 방법을 강구하여 욕망을 만족시키느니 차라리 근본적으로 욕망을 줄이는 것이 낫다. 욕망이 적으면 적을수록 더욱 충족시키기 쉬워서 사람은 그만큼 더 이익을 얻게 된다. (“사물은 항상 감손하면 증익된다”) 욕망을 줄이는 방법은 욕망의 대상을 감소하는 데에 있다.“현자를 숭상하지 않으면 인민들 사이에 다툼이 없어지고, 희귀한 보화를 중히 여기지 않으면 도둑이 없어지고, 욕망을 일으킬 만한 것을 보이지 않으면 인민의 생각이 교란되지 않는다. 그래서 성인의 통치는 인민의 마음을 비워주되 그들의 배를 채워주고, 인민의 심지를 약화시키되 그들의 신체를 강건하게 해주어, 항상 인민을 무지(無知)하고 욕망이 없는(無慾)상태에 있도록 한다.”
법가_ 『동양윤리의 담론』 (조현규)1. 법가의 변법개혁1. 인간에 대한 이해2. 도덕과 법의 관계3. 사회규범과 정치제도1. 한비자의 삶2. 인간에 대한 이해3. 덕보다 법을 중시4. 도덕행위의 기준5. 도덕수양의 방법1. 법가의 변법개혁① 이리(李?)▷전국시대에 최초로 변법을 단행했던 사람은 이리(李?)였다. 그는 군주권 강화의 경제적 기반 확보를 위해 농업생산량의 증가를 도모하고, 산림을 국유화하였다. 과중한 징세를 피하였으며 물가안정을 꾀하였다. 여러 나라의 법을 편집하고 등급지어 『법경』을 저술했는데, 모두 죄목에 대한 제재의 글들이었다.② 오기(吳起)1법가_ 『동양윤리의 담론』 (조현규).hwp▷다음으로 들 수 있는 인물은 오기(吳起)이다. 법령을 정비하고, (당시 빈국약병의 주원인이 무능한 신하와 권문세족에 있다고 보아, 불필요한 관직을 줄여) 국가의 재정지출을 줄이고, 세족들의 지위와 토지세습을 3대로 제한하여 이후 대부터는 국유화하게 하고, 귀족들로 하여금 황무지를 개간케 하여 국력을 증강시켰다. 이렇게 하여 마련한 국가재정을 양병에 투입했다. 이처럼 오기는 귀족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병력을 양성함으로써 결국 군주권과 국력을 강화시켰다.③ 상앙▷이리의 변법사상을 제대로 계승한 사람은 상앙이다. 상앙은 두 번에 걸친 변법개혁을 단행했다. (담론 p.169-170에 변법개혁의 내용이 나와있음)④ 전국시대의 변법개혁▷상왕 이후에 신불해, 오기 등도 변법개혁을 하였으며, 한비자는 상앙, 신불해, 신도 등의 이론과 실천을 종합하여 법가이론을 집대성하였다. 그런데 전국시대 변법개혁의 일반적인 목표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첫째, 봉건적 공동체 질서와 대가족제를 파괴하고 법가적 공리질서와 소가족제로 전환하고자 했다.▷둘째, 관료제에 의한 군현제적 지배의 전제하에 유력 세족의 견제, 약화, 행정체제의 위계질서의 정비, 십오 조직과 연좌제를 통한 지배와 통제의 강화를 꾀하였다. 그것은 군주를 중심으로 하는 일원적, 수직적, 일방적 정치질서 내지 국가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것이다.▷셋째, 농업생산성의 증대, 경지정리사업의 실시, 산림의 국유화, 물가안정, 주요산업의 관영화, 부세의 증대 등을 통해 국부를 극대화 시키고자 했다.▷넷째, 군공(軍功)서열에 입각한 새로운 신분질서를 정립하여 제민(齊民)의 자발적 전투의욕을 진작시키고, 신분상승욕구의 충족을 통해 강병(强兵)을 달성하고자 했다.1. 인간에 대한 이해▷인간을 ‘이해 타산적 존재라 규정’▷도덕과 같은 이념적 가치는 더 이상 고려대상이 되지 못함.▷그런데 인간 각자가 자신의 이익만을 목적으로 삶을 영위하면, 그것은 타인의 이익추구목적과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고, 서로간의 충돌과 쟁탈은 혼란의 무질서상태를 낳는다. 따라서 상앙은 이를 극복하고 자신의 이익을 안전하게 보장받을 수 있는 질서상태를 수립하고자 했다. 이것이 곧 국가적 차원의 공리이다.2. 도덕과 법의 관계▷중국 역사상 최초로 도덕과 법의 관계 역설▷첫째, 덕보다 힘으로 통치해야 된다고 함.▷둘째, 의보다 법을 중시함.3. 사회규범과 정치제도▷상앙은 중국 고대 사상가 중 제일 먼저 인류사회규범과 정치제도의 기원을 고찰함.▷기본 논점: 예법은 시대에 맞게 정해야 한다. (영원불변의 사회규범이란 없다.)1. 한비자의 삶▷한비자는 후비법가의 대표인물로서 법가사상을 집대성하였다. 그의 사상은 유가와 묵가를 비판하는 입장에 있었고, 노자의 사상은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순자의 성악설을 연구하고, 전기 법가의 도덕관을 발전시켜 법가 공리학파의 학설을 완성하였다. 저작으로 『한비자』가 있다.2. 인간에 대한 이해▷인간: 이해 타산적 존재▷인간의 본성을 선, 악의 측면에서 이해한 것이 아니라, 오성(悟性)의 이(利), 해(害)의 측면에서 이해하는 태도.▷인간 모두가 이익추구를 무제한적으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인간 상호간의 충돌과 갈등으로 이어질 것이다. 각자가 가진 무제한적 이익추구는, 대내적으로는 혼란과 무질서로 이어져 결국 각자의 이익과 안전조차 위협 당하는 혼란 상태를 초래하게 될 것이고, 대외적으로는 강화된 국력으로 인해 약육강식의 전쟁상태에서 외침의 위협에 항상 시달리게 될 것이다.한비자는 이러한 혼란과 무질서 전쟁의 상황에 대비하고, 더 나아가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하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익추구의 행사범위에 일정한 제한을 가하고자 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국가의 공리를 해치는 사리추구는 철저히 통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사리추구는 적극적으로 이용하자는 것이다. 즉 국가목적에 합치하는 공리적 사리추구는 상(賞)으로써 적극 장려하고, 국가목적을 해치는 반 공리적 사리추구는 철저히 형벌로써 통제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국가 목적적 사회성과 반사회성의 기준이 바로 공리(公利)이고, 그러한 공리의 명문화된 표현이 바로 법이다.3. 덕보다 법을 중시▷한비자는 ‘덕보다 법에 힘쓰라’라고 하였다.▷덕치설을 주장한 유가를 비판하고 법치의 우수성을 논증하고자 하였다.(아래 ①~③)① 상고시대의 도덕은 오늘날에는 통용될 수 없다.“다사다망한 시대에 살면서 일이 없었던 시대의 방법을 쓴다는 것은 지혜로운 자가 할 일이 못된다. 투쟁이 격심해진 시대에 절을 하는 법도를 따르는 것은 성인의 정치가 아니다.”② 인(仁)과 자(慈)만으로는 자녀를 훌륭하게 교육시킬 수 없다. 자녀를 지나치게 사랑으로 다스리면 자기 신상을 망치는 자식들이 나온다. 이와 마찬가지로, 백성들에게 인의와 자애를 강조하게 되면 도리어 이익을 탐하는 마음을 조장한다. 그러므로 형벌을 엄중히 해야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지금 유가와 묵가는 모두 말하길 ‘선대의 착한 임금들은 천하의 백성들을 모두 한결같이 사랑하여 백성보기를 부모가 자식 보듯이 하였다’고 한다. 그들의 말은 임금과 신하 사이가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와 같으면 반드시 잘 다스려진다는 것이다. 이 말을 미루어 말한다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불화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는 다 사랑하건만 세상의 아들들은 반드시 부모에게 화순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군왕의 사랑이 비록 두텁더라도 그것으로써 어찌 곧 어지러워지지 않겠는가?”③ 인의의 주장은 일종의 헛소리다. 실제에 부합되지 않고, 국가의 민생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한비자는 일의 성취와 무관한 인의의 말은 무당의 주문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박식하고 웅변이 좋고 지혜롭기가 공자나 묵자와 같은 사람이라도 공자나 묵자는 농사를 지을 줄 몰랐으니 국가에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효도를 갖추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 증자(曾子)와 같은 백성들도 그들은 전투에 종사할 줄 몰랐으니 국가에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유가를 비판하고 법치의 우수성을 논증한 것에 대한 조현규의 평)이러한 그의 관점을 살펴볼 때, 실제 효과로서 언행의 선악을 살핀 것은 윤리적 차원에서 상당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덕을 말하거나 인의로써 사람을 교화시키는 것을 하나의 헛소리로 간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법가 공리주의의 한계라 생각된다. 도의와 공리는 대립적이면서 통일된 관계로서 공리를 떠나 도의를 말하는 것은 실로 올바르지 않고, 공리를 중시하고 도의를 소홀히 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4. 도덕행위의 기준▷기본 입장한비자가 유묵의 도덕설을 비판하고 덕치를 반대했다 하여 결코 윤리규범 자체가 필요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도덕문제에 대한 유가와의 논쟁은 도덕이 필요한 지 아닌 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인류의 도덕생활을 이해할 것이며, 어떻게 하면 당시 봉건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윤리규범을 확립하고 실행할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그는 공(公)과 사(私)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선악을 구분하며, 봉건도덕의 준칙을 마련할 것을 주장했다.▷한비자는 법치는 공과 사를 구별하는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생각했다.“군주의 도는 공과 사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법제를 명시하며 사사로움을 버리는 데 있다.”▷범죄행위는 나쁘다. 왜냐하면 공익을 그르치기 때문이다.▷충효, 인의, 예의, 염치 등 도덕규범과 도덕관념은 모두 공을 위해 사를 버리는 기초 위에 수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비자는 「팔설」에서 8가지 행위를 들면서, 일반인들은 도덕적이라고 하나 그가 볼 때는 모두 공을 버리고 사를 구하는 것으로 도덕적인 행위가 아니라고 하였다.“친구를 위해 사(私)를 행하는 것을 불기(不棄)라고 하며, 공공의 재물을 마음대로 나누어 주는 자를 인인(仁人)이라고 하며, 봉록을 가볍게 여기고 자기 몸을 소중하게 다루는 자를 군자라고 하며,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친족을 옹호하는 자를 유행(有行)이라고 하며, 벼슬을 버리고 사교(私交)를 소중히 하는 자를 유협(有俠)이라고 하며, 세상을 버리고 위에서 내려지는 명령을 기피하는 자를 고오(高傲)라고 하며, 사람과 싸우며 위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를 강재(剛材) 라고 하며, 조그만 은혜를 베풀어 대중을 끌어들이는 자를 득민(得民)이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키워드: 질료와 형상 / 목적론적 세계관 / 행복 / 인간 정신 구분 / 중용 / 유덕한 생활을 위한 네가지 조건 /중용(마땅한 때에, 마땅한 일에 대해서, 마땅한 사람들에 대해서, 마땅한 동기로, 그리고 마땅한 태도로 이러한 것을 느끼는 것)☞중요지문, 필기[1.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세계관에 대해 서술하라. ]♥기하학에 영향을 받은 플라톤은, 현상세계의 물질들은 이데아를 향해 나아간다는 목적론적 설명방식을 취함.생물학에 영향을 받은 아리스토텔레스도, 목적론적 설명방식을 취함.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보면, “모든 기술과 탐구, 행동과 추구는 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 -> 목적론적 사고방식♥모든 사물은 질료와 형상의 결합이다.플라톤은 양세계론을 주장했다(감각적 지각이 되는 대상의 세계/이성적 탐구 대상의 세계). 아리스토텔레스는 양세계론을 거부하고, 본질은 그 어떤 것에 들어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본질을 형상이라고 한다.형상은 어떤 사물의 내재적 본질이다.질료는 재료, 물질 정도의 뜻이다.가령 계란->병아리->중닭->어미닭으로 커가는 과정을 보자.각 과정 모두 질료와 형상의 결합이며,이 운동은 본질을 실현하기 위해서 나아가고 있으므로 목적이 있는 운동(목적론적인 운동)이다.목적론적인 운동은 잠세태에서 현세태로, 완성태로 본질을 완성시켜 나가는 것이다.♥운동은 질료와 현상이 결합된 것에서만 일어난다.운동의 원인에는 크게 나누면 두 가지가 있다. 질료인 // 형상인작게 나누면 네 가지가 있다. 질료인 // 형상인// 동력인 // 목적인가령 의자를 만들 때를 예시로 들어보자.질료인: 나무(목재), 형상인: 의자의 모습, 동력인: 목수의 힘, 목적인: 의자이다. 여기서 형상인 자체가 목적인으로 나아가므로 곧 목적인이다.♥목적론적 사고이렇게 나아가다 보면 다른 어떤 것의 목적이 될 수 없는 “순수질료”다른 어떤 것의 수단이 될 수 없는 “순수형상” 이 존재한다.아리스토텔레스는 순수형상을 신이라 생각했다.모든 사물(질료+형상)의 운동은 순수형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순수 형상은 그래서 운동이 없다. (부동)순수 형상은 그 자체로 목적이며 다른 것의 수단이 될 수 없다.순수 형상은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한다. ->부동의 원동자 (The unmoved move)=>이러한 목적론적 사고방식이 그대로 윤리학에도 적용된다.♥ 서로 다른 기술이나 실천에 있어서 좋은 것(good)은 다른 것처럼 보인다.의술-건강 // 학문-지식// 병법-승리그렇다면 윤리학에서 추구하는 좋은 것(good)은 무엇인가?[2.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를 찾아보면 모두 행복으로 수렴된다. 행복은 순수형상과 같은 것인 것이다.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인가?아리스토텔레스는 당대의 행복론을 소개한다.먼저 욕성의 삶이 있다. 향락적 생활과 쾌락이 행복이라 생각하는 자다. 이것은 천박한 행복이다.두 번째로 격성의 삶이 있다. 명예, 인기를 누리는 데에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다. 운동선수나 정치인, 연예인 등이 그 예시다. 그러나 명예나 인기는 상대방이 주는 것이므로, 행복이 내가아닌 상대방에게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셋째는 이성의 삶이 있다. 관조의 삶을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행복을 완전히 누릴 수 있는 자는 순수형상(신)밖에 없다. 이 이성의 삶은 신적인 행복이요, 철학자들이 추구할만한 행복이지 폴리스의 일반 시민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반 시민들의 행복에 대하여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그렇다면 폴리스의 시민의 행복은 무엇인가?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 라고 했다. 이 말은 인간은 공동체를 떠나서는 행복할 수 없고, 이성이 중시되어야 한다는 말이다.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민의) 행복은 “이성적인 삶, 공적인 삶(공동체적인 삶)”을 떠나서는 말할 수 없다.♥인간의 본질은 이성이다. 인간의 덕은 이성을 실현, 구현하는 것이다.소크라테스는 인간은 순수 이성적 존재라고 하였음.이에 대해 플라톤은 격성과 욕성도 있다고 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식물적 부분과 동물적 부분도 있다고 하였음.♥인간의 생명은 중층적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최하층은 식물적 생명, 상층은 동물적 생명, 최상즉은 인간적 생명인간정신은 이성적부분/비이성적 부분으로 나누어진다.이성적 부분은 다시 사물을 인식하는 부분/사료적 부분으로 나누어 진다.비이성적 부분은 부분(적으로)비이성적 부분인 동물적 부분과, 순수 비이성적 부분인 식물적 부분으로 나누어진다.왜 또 비이성적 부분이 부분 비이성적 부분/순수비이성적부분으로 나뉘냐?-왜냐, 예를 들어 분노의 감정을 보자. 분노의 밑에는 ‘판단’이 있다. 어떤 일을 보고 옳지 못하다는 판단이 들면 분노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비이성적 부분이 있는 것.공포도 이성이 작용해야 한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라는 속담을 보면 알 수 있음♥인간적인 덕은 욕정적 부분(동물적 부분)에서 성립한다. 이 부분의 덕을 윤리적 덕이라고 한다.순수 이성적 존재라면 윤리적 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욕정을 유덕하게 하기 위해 조정한다는 것은 과잉과 부족에 빠지지 않게 중용하는 것이다.중용은 모든 윤리적 덕의 요체다.욕정을 기초로 해서 그 발동이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상태를 말한다.1. 중용은 항상 감정과 관련되어 있다.2. 중용은 최고의 가치를 지향한다.이번 중간고사에는 중용해서 20등 정도만 하겠다거나, 약속도 적절히 지키고, 살인도 적절히 하고... 등은 맞지 않는 말이다. 모든 덕목에 다 중용이 있는 것은 아니며, 중용은 감정 통제와 연관이 있다.♥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상대주의자라고 하는가, 절대주의자라고 하는가?무엇이 중용인지는 때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다. 이러한 부분에서 상대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으로 ‘중용’이외에 다른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므로, 윤리적 절대주의자다.♥중용은 결과에 영향을 받는가?건물에 불이 났다. 이 건물에 부부와 아기가 있었다. 남자는 창문에서 자신이 먼저 뛰어내린 후에 아기를 던지면 자신이 받고, 아내까지 받아내겠다 하였다.이 때,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남자가 마땅한 방법을 택하였는지 (중용을 실현하였는지)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예를들어 창문의 높이가 5m인지(뛰어내릴만함), 10m인지(만용, 무모한판단) // 헬기가 1분뒤에 오는게 확실한지(몇 m라도 만용) 헬기가 오지 않아서 뛰어내리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지 (용기. 아기는 받아내고 아내는 죽더라도, 이러한 결과에 관계없이 용기).창문의 높이 예시를 보면 중용은 결과에 (죽음,살아남)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헬기 예시를 보면 중용은 결과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이처럼 중용은 결과에 영향을 받기도, 결과에 관계없기도 한다.결국, 마땅한 때에, 마땅한 일에 대하여, 마땅한 목적을 위해서, 마땅한 방법으로 행위가 이루어 질 때 그것이 중용인 것이다.[3. 중용의 덕목]-중용은 감정의 발동과 관련된 윤리적 덕목.-중용은 사람,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선 만용인 것이 어떤 상황에선 용기일 수 있다)?용기 : 그저 용맹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두려워할지 무엇을 두려워하지 않을지 판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