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카피하다1. 영화의 시놉시스(줄거리)영국출신 작가 제임스 밀러는 자신의 저서(기막힌 복제품)를 출판하게 된다. 출판기념과 출판관련 강연 차 이탈리아 투스카니라는 마을을 방문하게 된다. 강연 도중 그곳에서 자신의 책의 팬인 한 여인(엘르)를 만나게 된다. 엘르는 제임스 밀러에 대해 호감을 느끼게 되고 엘르 자신이 운영하는 골동품 가게에 제임스 밀러를 초대하게 된다. 그렇게 제임스 밀러와 엘르는 작가와 팬의 관계로 단 하루지만 짧은 여행을 떠나게 된다. 엘르의 차를 타고 가는 차 속에서부터 그들의 대화는 순탄치 않다. 각자의 가치관, 결혼, 예술, 관련된 책, 인격 등 모든 면에서 드러나는 개인의 생각 차이로 제임스 밀러와 엘르는 약간은 거친 대화와 토론이 이어졌다. 그렇게 거친 대화와 토론으로 인해 약간은 무거운 분위기 속에 제임스밀러와 엘르는 미술관 관람도 하고 투스카니의 한적한 교외에서 둘이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커피 한잔하기 위해 들어가게 된 어느 한 카페. 그 카페에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시작 됩니다. 카페의 주인은 제임스 밀러와 엘르를 한 치의 의심 없이 부부로 인식하여 버렸습니다. 잠깐 제임스 밀러가 전화를 받으러 간 사이 엘르는 제임스 밀러가 자신의 남편이고, 자신의 남편은 일만 알고 가족은 챙기지 않는다는 둥 많은 불만을 카페 주인에게 털어 놓기 시작합니다. 한 치의 눈빛과 표정의 변화가 없는 엘르의 완벽한 연기에 카페 주인은 그렇게 그들을 부부로 인식해버립니다. 전화를 끝내고 돌아온 제임스 밀러에게 엘르는 자신이 그를 남편이라고 말하였다고 전해줍니다. 제임스 밀러 역시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그녀의 남편이 됩니다. 오늘 처음 만난 제임스 밀러와 엘르는 한 순간에 결혼 15년 차 부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제임스 밀러와 엘르는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이야기를 주고 받다보니 한 광장에 도착합니다. 제임스 밀러와 엘르는 동상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역시 의견차이로 작은 다툼이 생깁니다. 그러자 엘르는 한 노부부에게 물어보자며 그들에게 다가갑니다. 이야기 내내 계속 불평불만을 털어놓는 엘르에 대해 노부부의 남편은 제임스에게 팁을 준다며 옭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아내에 어깨에 손을 얹어 주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들은 제임스 밀러는 엘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레스토랑에 들어가게 됩니다. 노부부의 남편 덕에 관계가 한결 좋아진 제임스 밀러와 엘르는 얼마가지 않아 레스토랑에서 역시 작은 다툼이 일어납니다. 제임스 밀러는 와인 맛이 왜 이러냐며 툴툴 거립니다. 제임스 밀러는 와인의 맛이 이상하다고, 엘르는 그래도 괜찮다며 다툼이 일어나자 결국 그들은 레스토랑을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제임스 밀러와 엘르는 걷다보니 신혼여행 당시 갔던 호텔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역시 제임스 밀러와 엘르의 다툼이 이어 집니다. 15주년 날 엘르가 샤워를 하는 사이 제임스 밀러가 잠든 것에 대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렇게 한 부부처럼 그 호텔에서 그들은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그러다 제임스 밀러는 화장실에 가게 되고 그때 마침 교회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영화는 그렇게 마무리 되며 끝납니다.2. 내용 분석이 영화는 생략을 자연스럽게 사용하여 이야기를 진행 시키는 것 같다.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를 제임스 밀러와 엘르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당연히 관객들은 이야기가 진행 될수록 점점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관객들이 상황을 판단 할 수 있는 장면에서 정보와 힌트를 얻고 영화가 진행 되는 이야기를 이해하고 영화를 보게 되지만, 사랑을 카피하다 이 영화에서는 그러한 방법을 피하려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이러한 모습 대신 감독이 만든 재미있는 진실문제를 낸다. 그 시작은 바로 제임스 밀러와 엘르가 한 카페에 들어가면서 시작 되는데 카페 주인이 제임스 밀러를 엘르의 남편으로 착각한다. 그러면서 카페 주인은 엘르와 대화를 하는데 이러한 대화 까지는 관객들이 충분히 이야기에 이해를 하며 영화를 보게 된다. 하지만 이 이후로가 문제다. 감독은 이 시점부터 영화에 많은 거짓말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이러한 거짓말들은 영화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차 크게 번진다. 결국 거짓말은 더욱 커져 겉잡을 수 없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 신기한 것은 거짓말이 진행되지만 영화를 보는 도중 이러한 거짓말이 사실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생각되게 만드는 장면과 대사를 아주 잘 배치했다는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이야기 는 과거의 이야기를 회상하면서 언급하는 장면에 대해 알 수 있다. 그렇게 많은 거짓말을 첨가하여 영화의 이야기가 여기까지 오게 되면 결국 보는 관객들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제임스 밀러와 엘르는 처음부터 부부일지 아니면 부부인 연기를 한 것인지, 아닌지의 문제와 거짓과 진실 이라는 이분법적 구조 속에서 거짓이든 진실이든 그것 중에 감독의 의도가 어떤 것이든 이 영화는 둘 중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영화 이야기의 장면들이 잘 맞아 진행되는 것에 대해 느껴지는 난해함이지 않나 싶다. 영화의 처음과 끝은 잘 만들어졌지만 영화 속 에서는 어떤 것이 먼저인지 어떤 것이 나중인지 보여주고 알려주지 않는 내용도 보인다. 그렇게 이 영화는 감독이 만들어 놓은 이분법적 거짓과 진실의 구조 속에서 관객들의 각자 느낌에만 의존한 채 영화를 보게 만들어 그 재미를 부각시켜주지 않나 싶다. 적절한 생략을 사용해 크고 작은 배치로 재미를 더해 주고 또 작품에서 등장하는 자동차라는 공간이 가지는 특징을 단순하게 움직이는 이동 수단이 아니라 인물의 성격과 감정이 교차하는 곳으로 표현했다. 감독의 섬세함과 독특함으로 이야기의 재미를 좀 더 부각시키고 사실감을 전달하기 위해 많은 시점을 사용했다. 분수대에서 동상 때문에 벌어진 논쟁에서도 논쟁이 많이 진행되었는데도 절대로 그 분수대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다가 제임스 밀러와 엘르가 이동하고 나서야 거울에 반사시켜 보여준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뒤늦게 보여주는 감독의 센스는 관객들에게 어떤 것이 진짜이며 가짜인지 혼란을 야기하며 거짓이 진실이 될 수도 있고 진실이 거짓이 될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함을 보여준다. 진짜의 가치와 진짜 같은 가짜의 가치에 대한 질문을 관객들에게 감독은 던지는 것 같다. 영화 속에서 어떤 것이 진실인지 진짜인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 결국 이러한 진실을 찾기 위해 다시 관객들을 영화로 끌어들이지 않나 생각이 든다.3. 감독 과 의미 분석이 영화는 제임스 밀러와 엘르가 반나절 여정을 묵묵히 따라가며 느린 호흡의 화법으로 관객과 소통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 두 남녀의 관계이다. 영화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두 남녀의 관계를 모호하게 묘사하면서 관객에게 혼란을 심어준다. 제임스 밀러와 엘르의 관계가 부부인지가 중요 한 것이 아니라 이들이 부부인척 행세하는 그 역할을 보고 관객이 얼마나 어떠한 가치를 느끼는지가 중요하다. 이 영화는 허구가 가지는 가치, 혹은 현실이 가지는 가치, 그 사이에 미묘한 간극에 대해서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허구와 현실의 관계에 대해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하는데 그 첫 번째는 허구이다. 허구는 현실적인 시간을 초월하여 그것만이 불변하는 내재적 가치가 있다는 관점과 두 번째는 허구는 현실에 따라 효용론적인 가치를 지닌다는 관점이다. 그렇게 그 두 관점으로 빚어진 간극에 대한 몇 가지 묘사를 살펴보자면 약간의 거리를 두고 걷는 엘르와 그의 아들에 대한 묘사 이 묘사는 허구와 현실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제임스 밀러는 이 둘의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은 순간은 엘르와 그의 아들이 거리를 두고 걷고 있던 때가 아니라 바로 광장에 다비드상 앞에 함께 있었던 바로 그 순간이다. 복제품인 다비드 상을 보고 엘르는 현실은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엘르의 아들은 복제품을 마치 진짜품[현실]처럼 바라보는 상대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감독은 하나의 복제품[허구]를 보고 여러 가지 감상을 하는 이 순간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말하지 않나 싶다. 그러한 예술을 또 다른 현실이라 생각하던지 아니면 현실을 동경하는 모조품이라고 생각하던지 예술은 계속 존재 할 것이며, 우리 곁에 예술이 있는 그 순간이 바로 아름다운 순간 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허구와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에 대하여 어떠한 판단도 내리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단지 하나의 복제품으로써 현실과 허구에 관한 담론을 담은 영화를 제시하고 관객에게 직접 생각할 여지만을 만들어줄 뿐이지 않나 싶다. 이는 마지막 장면에서 잘 나타나 있다. 이 영화에서 거울 구도는 현실과 허구의 간극을 이야기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장치이다. 초반 골동품 가게에서, 교회에서 신혼부부와 사진을 찍을 때, 분수대 조각상 앞에서의 여인의 모습이 이 거울 구도 안에서 거울 안에 담겨 표현 하는데 이 점은 참 흥미롭다. 엘르는 거울로 포착된 데에 비해 제임스 밀러는 거울 밖에 표현된 것도 말이다. 거울 안의 이미지는 거울 앞에 현실, 원본의 복제품이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그렇게 거울의 시각으로 거울을 바라보는 제임스 밀러의 모습을 담은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지 않나 싶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 그 거울의 이미지, 자신의 복제를 보면서 제임스 밀러는 그 순간 엘르와의 역할극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도 현실에 실존하는 자신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는데, 카피가 된 사랑에서 원래의 감흥을 느낄 수 있다면 이 카피된 사랑도 영화 제목처럼 현실만큼의 가치를 가지는 복제품이 아닐까라는 생각? 아니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그저 자신이 거울 앞에서 사라지면 똑같이 없어져버리는 거울 안에 머무르는 이미지인지 그것이 현실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현실로 돌아와 열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9시까지 역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일까 이렇게 감독은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현실과 허구가 가지는 가치의 우열을 따지기 보다는 현실과 허구 속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고 서로 아주 밀접하면서도 간극도 존재하고 계속 존재해야만 하며 존재 할 것 이라고 말하지 않나 싶다.
델마와 루이스1. 줄거리이 영화의 줄거리는 델마와 루이스 두 친구가 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과 행동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가정주부인 델마는 남편에게 외출도 매번 허락을 받아야 외출에 나갈 수 있는 억압되고 좋지 않은 상황에서 살고 있었다. 반면 루이스는 웨이 트레스로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워져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델마와 루이스는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고 그녀들만의 여행을 떠난다. 가정주부인 델마는 남편에게는 여행 간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저녁준비만 해놓고 떠난다. 남편에게서 떠나 들뜬 델마는 기분이 좋아 술을 많이 마시게 된다. 그때 처음본 남자가 다가와 작업을 걸고 델마는 그 남자와 춤을 추고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그 남자와 델마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게 된다. 그 남자는 갑자기 돌변하여 주차장에서 델마에게 폭력을 가하려고 하고 또 델마를 강간하려한다. 이 장면을 본 루이스는 권총을 가져온다. 가져온 권총으로 그 남자를 제지하고 델마를 구해주는데 그 남자는 루이스에게 좋지 않은 말을 하며 도발한다. 결국 화가난 루이스는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그 남자는 쏴 살해한다. 사람을 죽이게 된 델마와 루이스는 범죄자가 되어 도주한다. 도주 중 루이스는 돈을 구한다. 하지만 델마와 제이디 때문에 돈을 도둑맞는다. 훔쳐가서 그렇게 델마와 루이스는 엉망진창이 된다. 하지만 델마와 루이스는 갈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같이 가기로 한다. 델마와 루이스는 도주 중 집에 전화를 해서 상황을 알아보려고 한다. 루이스는 델마에게 남편과 전화 통화중 이를 눈치 챈 것 같으면 바로 끊으라고 말한다. 남편이 전화를 받자마자 화를 내기는 커녕 다정하게 안녕이라고 말하자 델마는 바로 전화를 끊는다. 이처럼 끝까지 도망을 치려고 했지만 경찰의 끈질긴 추격전 끝에 델마와 루이스는 그랜드 캐넌의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된다. 하지만 델마와 루이스는 자수는 커녕 오히려 벼랑 끝으로 질주하여 죽음의 자유를 선택하면서 영화는 마무리 된다.2. 장면의 분석과 인물의 성격델마와 루이스의 오프닝 시퀀스는 타이틀시퀀스, 어두운 분위기와 큰 황야의 배경이 햇빛으로 밝게 나타내다가 갑자기 어두워지는 씬으로 묘사된다. 광활하고 넓은 배경에서 보여지는델마와 루이스의 여행이 결국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복선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곳 이 영화의 주인공인 델마와 루이스가 앞으로 어떠한 사건이 전개가 되는지 어떠한 결말이 되는지를 중요한 장소를 통해 보여주는 것 같다. 다음으로 인물에서는 가정적이면서 소심한 성격인 델마와 반대로 능동적인 루이스는 남편으로부터 폭력과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델마와 루이스는 주말여행을 떠나게 된다. 떠날 때 델마와 루이스 그녀들이 준비하는 물품과 의상은 보면 알 수 있다. 그녀들은 확연히 차이가 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델마는 여성답게 화려하고 이쁜 옷, 또 아줌마처럼 피크닉가방, 램프, 낚시대 등을 많이 챙겨가고 반면에 루이스는 여자답지 않게 매우 심플하고 간단하게 짐 하나만 싸서 싣고 온다. 델마는 하얀 원피스, 루이스는 활동적인 청바지에 중석적인 셔츠를 입으므로 해서 델마와 루이스의 대조적인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3. 이 영화의 상징적인 물건과 의미일단 첫 번째로 총이 나온다. 총하면 대표적인 남성의 상징물이지 않나 싶다. 총은 강한 무서움과 무력 또 힘을 상징한다. 이러한 남성의 상징물인 총을 여성이 사용하고 총을 소유함으로써 남성과 동일한 힘을 가진다는 의미 인 것 같다. 두 번째로는 자동차가 나온다. 자동차는 여자가 운전하게 되면 남성들은 많이 무시한다. 이처럼 자동차 역시 남성의 전유물로 상징되고 또 영화에서 많은 종류의 자동차가 나오는데 그것은 다양한 성향을 가진 남성을 의미 하는 것 같다. 세 번째는 모자가 나오게 되는데 모자는 남성의 우월감과 권위를 상징한다. 이처럼 영화를 보다보면 루이스는 자신의 시계, 여자의 귀걸이와 남자의 모자를 바꾸는 장면이 있다. 또 델마는 트럭기사의 모자를 갈취하는데 이처럼 두 여인을 통해 남성의 전유물을 탈치 하는 모습들을 물건들을 통해 보여 주지 않나 싶다. 네 번째는 썬더버드 이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컨버터블 차는 코발트색으로 등장한다. 하늘색이 가지고 있는 자유라는 의미와 썬더버드 라는 차의 이름이 결합되면서 자유의지로 하늘을 날라 가려는 두 여인의 의지가 담겨져 있는 것 같다. 또 흥미로운 것이 있는데 이 차의 특징은 중 낮은 차체 이다. 차체를 기존에 남성들의 차들보다 낮게 함으로 써 억압받고 왠지 일부로 누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후반부에서는 이 낮은 차체가 남성적인 차를 반대로 누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지막 추격 씬에서 차체가 낮은 썬더버드만 통과 되고 경찰차는 가로막히는 장면을 말한다. 여기서 경찰차 싸이렌 소리는 권위적인 의미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4. 결말과 마무리결말을 보기 전 델마와 루이스 두 여인의 운명을 예고 한듯 한 장면을 살펴보자면 혼자 담배피고 있는 루이스를 할머니 두 분이 창문 너머로 쳐다보는데 왠지 연민과 정이 느껴지면서 슬픈 감정의 심리상태로 일순간 분위기가 바뀌는 것이 보입니다. 루이스가 할아버지에게 손목시계와 귀걸이, 반지를 주고 허름한 카우보이모자를 대신 가져옵니다. 이젠 루이스에겐 비싼 것은 필요 없다. 남자가 쓰던 모자를 가져옴으로서 여성의 주체성에 조금 더 다가가게 된다. 마치 그녀들을 심판이라도 하는 것처럼 헬기가 갑자기 그녀들의 앞에 나타나는데 이때 그녀들이 뺏고 교환했던 모자가 헬기 바람에 날려 모자가 사라지고 만다. 그녀들은 어쩔 수 없이 항복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이러한 현실은 미국의 남성우월주의에서 벗어 날 수 없다. 라는 의미로 보여 지고 있다. 두 여인에게 조명의 인위적인 빛이 아니라 자연광의 역광을 비추게 함으로써 그녀들의 자유의지가 최고조에 달하게 되고 위대하고 웅자하게 보이는 효과를 나타낸다. 델마와 루이스 그녀들이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찍었던 사진한 장이 이 바람에 휘날려 영원히 그녀들만이 아는 둘만의 추억으로 남겨지고 마치 하늘을 나는 듯, 썬더버드의 색이 하늘색과 거의 흡사해서 썬더버드가 하늘이고 하늘이 곧 썬더버드인 것처럼 흡수되어 하얗게 페이드가 아웃되면서 영화가 마무리 된다. 그녀들의 그러한 행동은 영원한 자유를 찾기 위해서 그랬을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이어져 나오는 그녀들이 행복했었던 모습과 즐거웠던 추억들이 영상으로 다시 나오게 되는데 그녀들이 사람을 살해하고 약탈하고 도망치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델마와 루이스 두 여자의 주체성과 독립성을 돌이켜보고 자유의지를 찾아 떠나는 과정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델마와 루이스를 보면서 참 안타깝고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다. 저대로 자살을 택하지 말고 투항했으면 어땠을 까라는 생각 영화 대부분이 남자는 여자를 지배하려는 모습 거기서 두 여인은 그것을 해방과 자유를 찾으려는 모습이 인상 깊었고 보기 좋았다. - 이상입니다. 한 학기 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 수업 덕분에 많은 영화들을 접할 수 있어서 나름 행복했고, 한국영화 밖에 모르던 저에게 많은 의미와 생각, 또 다른 재미를 안겨다 주었습니다. 한 학기 동안 어려운 수업하시느라 고생 많으셨고 이러한 좋은 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즐거웠고 정말 감사드립니다. 말할 기회가 없어서 여기다가 적어 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피에타김기덕 감독 작품은 항상 잔인함과 폭력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번 피에타 역시 마찬가지로 폭력과 잔인함이 잘 묻어나 있다. 먼저 영화의 시놉시스를 살펴보자면 고리대금업자로 살아가고 있는 강도 그는 사람들이 돈을 갚지 못하면 그 사람들의 신체를 장애 불구로 만들어 보험금을 타내는 잔인한 인물이다. 평소 같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는 강도 앞에 낯선 여인이 나타난다. 그 여인은 강도를 따라다닌다. 그렇게 따라다니는 여인을 보고 강도는 온갖 욕과 구박을 주며 쫓아내려 한다. 하지만 그 여인은 자신이 엄마라며 버려서 미안하다고 계속 강도에게 사죄를 한다. 강도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엄마라는 여인 때문에 혼란을 느끼며 생각에 잠긴다. 강도는 결심하는데 그 엄마라는 여인에게 자신의 살점을 떼어주면서 먹어보라고 한다. 그 엄마라는 여인은 구역질을 참으면서 그 살점을 먹는다. 하지만 강도는 그 말을 믿지 못한다면서 그 여인과 관계를 강제로 갖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강도는 그 엄마라는 여인에게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처음으로 행복을 느끼기 시작한다. 하지만 엄마라는 여인은 진짜 엄마가 아니라 영화 초반에 휠체어에 자살해 죽은 아들의 엄마였다. 그렇게 아들의 복수를 위해 강도와 함께 지낸다. 그렇게 지내면서 강도에 게 복수를 하나, 둘씩 시작한다. 자신이 누구에게 괴롭힘을 받고 있으며 협박을 받고 있다고 혼자서 연기를 한다. 하지만 그 진실을 모르는 강도는 촉박해 하며 두려움에 떨고 엄마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엄마를 찾기 위해 강도는 자신이 괴롭히고 장애로 만든 사람들을 다시 찾아간다. 하지만 범인은 나오질 않고 그 사람들을 보면서 강도는 회의감을 느낀다. 엄마라는 여인은 그렇게 복수를 진행하고 이제 마지막으로 강도를 한 건물의 옥상으로 부른다. 거기서 협박을 받는 척 하며 연기를 하며 강도를 지켜본다. 협박당하는 엄마를 보며 강도는 자신을 대신 죽이라고 울면서 빈다. 그러한 모습을 본 엄마라는 여인은 강도가 불쌍하게 여겨지고 먼저 죽은 아들에 대해 죄책감이 들며 결국 자살을 택한다. 그렇게 죽은 엄마라는 여인을 나무 밑에 묻어주며 강도는 결심한다. 자신의 죄를 사죄 받기 위해 자기가 불구로 만든 부부의 집에 찾아간다. 강도는 그 부부의 트럭에 자신을 몸을 연결하여 끌려간다. 그렇게 영화는 마무리 된다.영화를 보는 내내 상당히 불편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나쁜 남자를 본적이 있다. 그 영화를 보면서도 정말 불편하고 불쾌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막을 알지 못하고 겉만 보아서 그랬던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일단 이 영화는 대출과 보험 / 돈에 관련된 자본주의의 폐해를 그린 영화이지 않나 싶다. 돈 앞에 인간의 도덕성과 인격을 버리는 가치관을 보여주지 않나 생각이 든다. 주인공 강도는 인간으로써 가져야 할 욕구, 성격 그 모든 것이 잘못 되어 있는 외톨이 인 것 같다. 돈을 갚지 못하면 그 사람들의 신체를 가지고 그 사람들의 신체를 불구로 만들어 보험금을 타내는 도구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또 어느 날 엄마라고 찾아온 미선에게 강도는 자신의 살점을 잘라주어 먹으라고 한 후 살점을 먹은 엄마 미선에게 강제로 관계를 맺어 확인을 하는데 이러한 장면을 봤을 때 강도의 욕구는 본능이 아니라 그러한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이라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으로 그것을 확인하여 엄마라고 인정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함과 불쾌함이 들었지만 그래도 몇 장면에서는 정말 안타깝고 충격을 주는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을 몇 가지 살펴보면 건물 옥상에서 울고 빌며 엄마를 살려달라는 장면이 있다. 엄마 미선은 복수를 눈앞에 두고서도 마음은 좋지 않은 장면이 보여 지는데 그 며칠 동안 강도와 함께 가족으로 살면서 강도가 살아온 인생을 알게 되고 그 강도의 인생이 불쌍하게 여겨지고 연민이 느껴지지만 자살한 자신의 진짜 아들에 대한 죄책감에 엄마 미선의 심정이 뒤엉켜져 있는 모습이 정말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그러면서 자살한 엄마 미선을 나무에 묻어주는 장면에서도 안쓰러운 모습이 보였다. 그 나무 아래를 팠더니 자살한 미선 아들이 묻혀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엄마 미선이 자신을 위해 뜨개질 하던 그 옷이 죽은 미선 아들에게 입혀져 있는 것을 발견하자 자신이 그 옷을 입고 그 땅 아래 셋이 같이 누워있는 모습이 있다. 이 장면을 보면서 강도에게 남은 희망은 하나도 없으며 그 희망을 없애버린 엄마 미선을 보면서 꼭 복수를 해야만 하나... 이러하나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충격적 이였던 장면은 자신이 불구로 만든 한 부부의 집을 찾아가 그 부부의 트럭 밑에 자신의 몸을 연결하여 그 트럭에 질질 끌려가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 자신의 죄를 속죄 하듯 마무리 하는 그 장면은 정말 말 할 수 없이 충격적 이였다. 사죄를 꼭 그렇게만 해야 하나 그래도 결말은 좋게 마무리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렇게 끝나는 것을 보니 역시 감독의 연출은 잔인함과 폭력성을 띄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감독이 바라본 시선은 세상은 거칠고 더럽다. 더러운 세상을 더럽게 보는 그런 메시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이 영화를 통해 감독 특유의 폭력성과 잔인함이 잘 들어나 있고 영화의 제목처럼 돈만 바라보는 세상을 향해 구원의 가능성 있을까? 묻기 위한 장치이지 않나 싶다. 복수심과 증오 인해 얼룩지고 더러워진 자본주의 사회를 이 강도라는 인간의 욕구로 표현해 현실적으로 나타내려고 하지 않았을까 라는 감독의 의도가 보이며 자신만의 스타일이 잘 들어나는 영화 인 것 같다.
쉰들러 리스트일단 영화의 줄거리(시놉시스)를 살펴 자면 2차 세계대전 전쟁 당시 독일군이 점령한 폴란드의 어느 마을이 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항상 기회를 엿보는 기회주의자 오스카 쉰들러는 유태인이 경영하는 그릇 공장을 인수하기 위해 유태인들을 모은다. 그렇게 갖은 노력 끝에 오스카 쉰들러는 그릇 공장을 인수 하게 된다. 오스카 쉰들러는 공장을 인수하기 위해 나치 당원이 되고 또 독일군에게 뇌물을 바치고 공장을 가지기 위해 온갖 노력을 쏟아 붙는다. 그렇게 공장을 가지고 난 후 독일군은 유태인을 엄청나게 학살 하고 또 많은 사건들이 일어난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항상 기회를 엿보던 오스카 쉰들러는 유태인 회계사인 슈텐과 친분을 맺고 같이 지내 오면서 독일군이 유태인에게 대하는 잔인하고 냉혹한 학살을 지켜본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력 하던 그였지만 자기 자신의 양심에 대한 소리를 져버리지 못하고 결국 유태인들을 독일군에게서 구해 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 유태인들을 구해내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그는 독일군 장교에게 빼내는 사람 숫자대로 뇌물과 돈을 주면서 유태인들을 구해내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다. 슈텐과 함께 구해낼 유태인들의 명단, 이른바 쉰들러 리스트를 만들게 되고, 그는 독일이 항복할 때 까지 유태인들을 자신의 공장에 데리고 있게 된다. 마침내 독일이 항복하여 전쟁은 끝이 나고 오스카 쉰들러는 1100명의 유태인들을 구하게 되고 영화는 마무리 된다.다음으로 영화의 주제를 보자면 이 영화의 주제는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이 진행되어가는 사회상을 그려낸 작품으로 당시 유대인의 입장이 아닌 독일군의 입장에서 행해온 야만적인 모습과 행동을 부각시키면서 당시 독일군(나치)를 행태를 고발하는 이야기 하고자 하는 그런 영화이지 않나 싶다. 영화를 보면서 많이 특이하고 인상 깊었던 것이 몇 개 있다. 몇 개를 살펴보자면 그 첫 번째로는 영화가 흑백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흑백인 것이 신기해 알아보니 이 영화는 칼라 상태로 영화를 촬영한 다음 프로그램으로 흑백의 색을 일부러 입혀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흑백 덕에 영화를 보는 내내 뭔가 더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보이지 않나 싶다. 이러한 흑백 장면 속에서 신기하게 빨간 촛불과 빨간 코트를 입은 소녀가 등장하는데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빨간 촛불은 유대인들의 삶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지 않나 싶다. 첫 장면에서 흔들리는 빨간 촛불은 유대인들의 슬픈 운명과 암울한 현실상황을 나타낸다. 곧 촛불이 꺼지고 색이 사라짐은 공포의 역사가 시작됨을 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또 중반부 안식일 행사시 다시 타오르는 빨간 촛불은 유대인들의 새롭고 희망하는 미래가 오고 있다는 의미를 말하고 있지 않나 싶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빨간 코트는 유대인들의 희망과 구원을 상징하는 것 같다. 온통 흑백으로 휩싸인 영화화면 속에서 소녀의 빨간 빛은 아름답다기보다 처절하고 안쓰러워 보인다. 마지막으로 엔딩장면에서 오스카 쉰들러 묘에 붉은 장미꽃을 올려놓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 꽃의 의미는 ‘붉은 코트를 입은 소녀는 죽었지만, 쉰들러 당신은 수많은 유대인들을 살리고 구해줬다는 격려와 감사의 의미로 아름다운 빨간색, 즉 장미를 선물로 준 것이 아닌가 싶다. 다음으로는 등장하는 인물들이 인상 깊었는데 먼저 주인인 오스카 쉰들러는 독일인이냐 유대인이냐를 따지기 이전에 그는 자신의 양심을 따른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데 그 점이 정말 인상 깊었다. 다음으로는 잔인한 모습을 보여주던 독일군 장교 아몬 괴트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유대인을 자신의 저택에서 무자비 하게 쏘아 죽이는 것. 그 외에도 툭 하면 이유 없는 유대인 살인을 일삼는 아몬 괴트. 그는 아마 자신의 힘과 권력을 발휘하고 싶은 사람이지 않나 싶다. 누구든 무조건 자신 앞에 굴복하게 하고 그렇지 않으면 죽이는 그 행태 또한 매우 잔인했던 것 같다. 그런 그에게 오스카 쉰들러는 자극을 주었는데 그것은 바로 용서였다. 아몬 괴트는 용서를 실천해보지만 결국 그는 용서를 포기하고 다시 한 소년을 어이없는 이유로 쏴 죽이고 만다. 영화에서 그의 모습은 모두가 무서워하는 독일군 장교지만, 한편으로는 유대인 여인에게 끌리는 자신의 모습에 갈등하고 고민한다. 이러한 면에서 아몬 괴트는 잔인했지만 연민이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마지막으로는 이자크 슈텐 이다. 쉰들러의 유능한 회계사인 슈텐은 유대인이다. 유대인으로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쉰들러를 돕는 것 이었다. 그리고 그를 도우면서 그는 작은 희망들을 품는 모습을 보인다. 쉰들러의 사업은 그로 인해 더 번창할 수 있었고 후에는 쉰들러 리스트를 함께 작성하며 독일인 사업가인 쉰들러를 믿고 따르며 서로를 믿는다. 그렇게 나는 이자크 슈텐을 보면서 독일인과 가장 가까운 관계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은 유대인의 대변자이며 조력자이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비록 그가 어떤 일을 주도 하고 이끌 수는 없었지만 그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많은 의미를 가져다 준 것에 대해 나는 인상 깊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유대인을 아무런 이유 없이 죽이고 학살 하고 괴롭히는 장면은 정말 보기 불편하고 짜증이 났다. 하지만 이 영화는 유대인의 입장이 아닌 독일군의 입장이기 때문에 나도 독일군의 입장에서 보게 되었다. 많은 고통과 희생이 있었다. 주인공인 오스카 쉰들러를 보면서 정말 많은 감동을 받았고 또 감독은 무슨 말을 전하고 싶은지 생각해보니 감독은 악의 면전에서도 인간이 선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선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지 않나 생각이 든다. 긴 시간 이였지만 지루하지 않고 몰입하여 볼 수 있어서 정말 즐거운 시간 이였다.
Dreamgirls(드림걸즈)이 영화는 뮤지컬 영화이다. 일단 줄거리를 살펴보자면 음악을 하고 싶었던 드림멧츠 3명의 소녀(디나존스 / 로렐 / 에피 화이트)는 음악 콘테스트에서 자신들의 노래 실력을 뽐낸다. 그 뛰어난 음악 실력을 확인한 지미얼리의 매니저 커티스는 지미얼리의 백업 코러스가 필요해 드림멧츠의 3명의 소녀가 수상 받지 못하도록 뒤에서 조작 하여 그녀들을 떨어트린다. 수상 받지 못한 드림멧츠는 실망과 좌절에 빠져있는데 이때 커티스는 지미얼리의 백업으로 활동하자며 그녀들을 유혹한다. 처음에 백업은 안한다고 거절하지만 나중에 가수로 데뷔 시켜준다는 말에 그녀들은 승낙하며 지미얼리의 백업으로 활동하게 된다. 당시 지미얼리는 흑인계 쪽에서는 유명한 가수였다. 하지만 백인들과의 인종차별이 심해 성공한 곡도 뺏기고 차별 대우도 심했다. 하지만 커티스는 지미얼리를 백인들과 같은 음악대열에 세우려는 큰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노력한 끝에 커티스의 꿈은 이루어져 지미얼리를 백인들과 같은 수준으로 만들어 놓는다. 하지만 커티스는 흑인음악을 버리지 못하는 지미얼리에게 실망하며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커티스는 드림멧츠를 더 드림즈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그녀들은 데뷔한다. 하지만 이때 커티스는 제안한다. 늘 리더를 맡던 에피는 강한 목소리 때문에 디나존스에게 리드자리를 주자고 한다. 팀을 위해 에피는 리드자리를 양보하고 더 드림즈는 성공하여 정상의 위치까지 가게 된다. 그렇게 더 드림즈의 성공으로 커티스의 음반회사인 레인보우 레코드사는 성공하게 된다. 그렇게 잘 달리던 그녀들에게 문제가 생긴다. 당시 커티스는 디나존스와 사랑에 빠지는데 그런 커티스를 못마땅한 에피는 연습도 늦고 리드도 내주었다는 불평불만과 몸이 아프다는 이유를 가지며 팀에 방해를 준다. 그러자 커티스는 그녀를 빼버리고 새 멤버를 영입한다. 그렇게 드림걸즈는 디나존스와 더 드림즈라는 그룹으로 계속 인기몰이를 한다. 하지만 커티스는 자기 동료들에게 항상 자신의 생각대로 강요하고 하라고 지시한다. 항상 강요받던 지미얼리는 공연에서 자기 멋대로 행동한다. 그런 지미얼리를 본 커티스는 그의 음악이 상업성에서는 별 소득이 없을 거라 판단이 들어 커티스와의 계약을 파기한다. 또 로렐에게 헤어짐을 받은 지미얼리는 마약 과다 복용으로 죽게 된다. 이런 일이 생긴 후 동료들은 커티스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 그때 떠난 씨시역시 다시 동생 에피를 찾아간다. 에피는 작은 마을에서 가수를 하고 있었다. 씨씨는 동생 에피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서 곡을 하나준다. 하지만 그 노래는 커티스 손에 들어가고 바로 편곡하여 디나존스에게 부르게 시킨다. 그 사실을 안 씨씨는 법적 대응을 준비한다. 하지만 그 시기에 디나존스 역시 사랑보다는 상업적으로 자신을 이용하려는 커티스의 마음을 알게 되자 씨씨를 도와 증거를 준다. 커티스를 찾아가 법적대응을 한다고 했지만 에피의 이름으로 앨범을 내는 것으로 합의해 넘어간다. 그렇게 디나존스 마저 커티스를 떠나고 더 드림즈는 해체하게 된다. 마지막 무대에서 에피는 돌아오고 커티스는 에피가 기르던 딸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영화를 본 후 제 3자의 입장은 이 영화는 노래를 이야기 사이에 끼워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하지만 좀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 같아 아쉬웠다. 그런 부족한 부분을 살펴보자면 영화의 이야기는 드림걸즈가 어떻게 하여 성공하고 어떻게 하여 실패하고 해체하는지 그런 모습과 일대기를 나타내려고 하는 것 같은데 영화를 보다 보면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떻게 성공 하는지 어떻게 하다가 실패하는지 그런 성공과 실패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표현이 잘 안되어 있고 그냥 이야기를 진행한다. 이러한 과정의 묘사와 감정적인 표현들이 잘 나타내어 있지 않은 것 같고 드림걸즈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부족한 것 같다. 또 무대 위에서의 묘사는 좋았지만 무대 밖의 묘사에 대해서는 효과적이지 못했던 것 같다. 무대 위에서는 주인공들이 뭔가 화려하고 웅장하지만 정작 무대 밖에서는 심심하고 어설프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쉬웠다. 영화의 사실적인 묘사와 영화의 극적인 화려함 양쪽 모두 조금씩 부족 하지 않았나 싶다. 그 하나를 살펴보자면 영화의 초중반에 진지한 흐름으로 이야기 되고 있던, 흑인 민권 운동이나 흑인 소수 민족 문화의 발전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타나는데 영화 후반으로 넘어가면 이러한 이야기들은 자연스레 없어지고 만다. 그래서 민권운동의 면면이나 망해가는 디트로이트의 정경은 영화와 어울리지 않게 잠시 나타나고 없어진다. 이렇게 영화를 보다보니 진지하지도 웃기지도 않는 그저 노래에 흥을 돋는 영화인가 싶었다. 무대에서는 긴장감과 갈등, 관객의 즐거움, 흥겨움 등이 잘 표현되어 나타나지만 무대 밖과 스토리 면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약간 아쉬웠던 것 같다. 하지만 무대에서 보여주는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즐거움을 안겨주어서 영화를 보는 흥미를 더해주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