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가족을 돌아보자.‘가족탄력성’은 어떠한가 역경과 어려움이 있을 때 어떻게 대처하였는가 자신의 경험 중 구체적인 예를 한가지 들고 어떠한 자원을 사용하여 문제를 극복하였는지 서술하시오1. 서론* 탄력성이란 변화나 불운에 쉽게 적응하고 회복해 내는 능력을 말한다 역경에 직면하여 회복하는 능력이자 안녕의 상태로 계속해서 기능적인 삶을 살아 나가는 능력,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가족탄력성이란 무엇일까 가족탄력성은 가족이 위기 상황에 직면하여 이에 적응되고,변화에 직면하여 이를 저항하도록 돕는 가족의 특징,차원,속성이다 현재,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스트레서에 대해 가족이 적응하고 회복,성장하게 되는 경로이기도 하다 요약하면 가족탄력성은 가족 위기와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는 내적,외적 자원을 가진 체계라 할 수 있다 가족탄력성은 순간의 산물이 아닌 가족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형성하고 변화와 발전을 해온 결과 인 것이다 고정된 것이 아닌, 가족의 적응적 노력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변화해 간다는 것을 뜻한다2. 본론(1) 건강가족과 탄력성가족을 연구하는 데 결핍과 병리보다 강점과 자원에 초점을 둔 것이 가족탄력성 관점이다 가족의 어려운 상황 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오히려 건강하고 더 긍정적으로 적응할 수 있다는 것.가족탄력성은 어느 한 순간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탄력성이 위기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나 적응이라기보다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져 온 상호작용의 결과물로 본다 상호작용이란 힘든 과도기를 관리하는 능력에 따라 위협적 상황에 대응하는 것에서부터 즉각적이고 장기적인 여파로 나타나는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다양한 전략이 이르기까지 모두 포함하다 스트레스를 겪어 나가는 과정에서 ‘의미부여’가 중요한데, 불확실한 상황에 의미를 부여하고 명료화하게 되면 보다 쉽게 인내할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비전과 희망을 가지고 변화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신념체계도 어떻게 조직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즉, 가족은 위기와 지속적인 역경을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 자원을 동원하고, 스트레스를 중재하며 변화 하는 조건에 적절하게 재조직해야 한다 건강한 가족이란 문제가 없는 가족이 아니라 위기상황에 함께 대처하고 문제해결 능력이 있는 가족을 의미하며, 가족은 이러한 대처노력의 과정들을 통하여 더욱 강화될 수 있다고 본다예를 들어, 이혼이라는 스트레스와 위기에 대해 어떻게 탄력적으로 적응하고 안정감을 되찾는가? 문제에 영향을 받는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힘든 문제들을 다루고 경험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등 고난의 시간과 적극적인 노력의 과정을 통해 극복해 나가며 탄력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탄력적인 건강 가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의 형태가 아니라 가족 과정과 관계의 질이다 그 어떤 것도 본래부터 건강하거나 병리적인 것은 없다 족이 상호 협력하는 것이 위기와 도전을 극복하는 잠재력을 향상시킨다(2) 가족탄력성의 요인위임, 의사소통, 응집력, 적응성, 연결성, 시간공유, 효율성, 유연한 의미해석, 균형 잡힌 대처, 유연한 상호의존, 공개적 의사소통, 문제해결과 신념체계, 가족형태, 가족스키마, 가족자원, 가족기능, 대처, 사회적지지, 조직패턴, 의사소통과정 등이 있다(3) 나의 가족 탄력성 - 역경과 위기나의 가족을 돌아보았을 때 나의 가족의 탄력성와 어떤 역경과 어려움이 있는지 가족탄력성 모델을 통해 살펴보았다 나의 아버지는 예전부터 가부장적인 성향이 강했었다 아버지를 제외한 나머지 구성원은 모두 아버지 밑의 사람같은 보이지 않은 서열이 존재 했었다 아버지는 정년퇴직 후 다단계에 빠졌고 거기서 알게된 여성의 꼬임에 빠져 도박빚과 카드빛을 떠안게 되었다 본인의 잘못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와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고성과 욕설을 퍼부엇다 빚을 떠안게 되었어도 우리의 말은 잔소리와 조언이고 곧이 듣지도 않았다 그 여성의 말만 철면 그만이지만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카카오톡,메일,전화 등을 통해 허심탄회하게 각자 가족구성원으로써 느낀부분과 서운한 부분을 아버지께 이야기 했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화만 내고 귀담아 듣지 않으셨지만 계속 시도하고 얘기하려고 노력한 끝에 긴긴 시간이 지나 상황이 종료 되었고 아버지가 경솔했고 어머니께 잘못한 행동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셨다 그 당시에는 이러한 이론을 공부하기 이전이라 그저 대화가 부족했구나 정도로만썩같이 믿고 연락을 유지 하려고 했다 어머니는 이혼까지 생각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가정을 유지하는 쪽을 선택하셨다 나와 형제자매들은 그렇게 감정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쳐가고 있었다 꽤나 장기전으로 이어졌고 결국에 그 여성이 사기꾼이라는 것이 거의 들통났을때 아버지는 비로소 본인이 당했음을 깨우쳤다 나와 누나, 여동생 남동생 어머니는 아버지가 남이면 안보 생각했었는데 이제와 되돌아보니 개별가족이 저마다 갖고 있는 가족탄력성의 주요한 자원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앞으로도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여러 위기상황을 잘 극복해나갈 것이다.
노인학대의 위험요인에 대해 설명하시오1. 서론오늘날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몇 년 동안 급속도로 변화되는 사회에서 남자와 여자의 어른 노인 인구의 수가 크게 증가하고 요양원 및 병원이나 의료기술의 발달 등으로 인해서 평균수명이 연장되어 급격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여 접어들고 있습니다.현재 노인들의 인구수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여러 가지 다양한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손꼽히는 가장 큰 문제는 신체적 노인 학대와 정신적 노인 학대가 요즘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령의 노인 학대는 늙은 어른 노인에 대해 경제적으로 착취를 하거나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성적 폭력, 등의 가혹한 행위를 방임하고 유기하는 것을 말합니다.2. 본론노인 학대에는 부양자가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으로 노인어른들에게 말을 함부로 하는 작은 언어폭력에서부터 노인을 무시하는 협박과 비속어, 언어적 욕설을 포함하는 언어학대와 노인에게 육체적 손상, 폭력을 일으키는 신체적 학대, 노인을 불안하고 두렵게 만들어 심리적으로 불편함을 느껴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도록 고통을 주는 정신적 학대, 노인의 재산이나 돈을 노리고 부당하게 착취하여 재정적 어려움에 처하게 하는 재정적 학대, 보호와 서비스나 의무를 감당하지 않고 거부하거나 불이행하는 방임과 타인들과의 외부적 교류를 막고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혀 집에서 내쫓기게 하는 등 이러한 행위들로 인해 노인의 권리가 침해되고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전시키지 못하게 하는 것을 노인 학대라 말할 수 있습니다.주로 노인 학대는 노인을 부양하는 가정과 그 외에 노인관련 시설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며 경제적 요인이나 세대 차이에 따른 서로간의 이해부족으로 노인학대가 발생하게 되어 집니다.육체적, 정신적 노인학대의 피해자는 학대를 당하는 사람으로서 침해받는 노인이며, 노인학대의 가해자는 학대를 행하는 사람들인데 대부분 노인과 매우 가까운 사람들인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 배우자, 자녀, 친척 등의 가족원과 노인요양·양로시설·보호시설·병원 등의 기타 부양자들인데 이와 같이 이들은 노인들이 의지하고 보듬어 주어야할 사람들이 아닌 노인 학대에 주범이 되고 있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이러한 노인학대의 발생의 여러 가지 요인은 학대를 받게 되는 피해자, 학대를 하는 가해자의 개인적, 가족상황적, 사회문화적 요인 등 다양한 원인이 복합되어 나타난다. 개인적 요인에서는 쉽게 폭력을 휘두르고 가족과 어울리지 못하며 다른 사람을 위협하는 공격적인 성격 등으로 인하여 노인 학대를 유발 할 수도 있으며 가해자의 신체적, 정신적 손상, 심리적인 고통, 알콜 중독·등 의해 노인학대가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또한 노인의 의존성과 어르신을 모시는 부양자의 스트레스, 가정 환경적 요인 등 사회의 노인차별, 시대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 사회보장 및 노인복지서비스의 결여 등과 같은 요인들에 의해서도 노인학대가 일어나기도 합니다.이처럼 노인학대가 위험한 첫 번째 이유는, 노인 학대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로 까지 연결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들어오는 예의가 바른 나라라는 말이 무색하게 시대가 변화하면서 노인학대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특히 학대받는 노인들이 늘면서 노인의 자살률도 점차 늘어나고 있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대부분의 노인들의 학대자는 거의 가족들로서, 대부분 부모님을 모시는 아들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노인들을 부양해야한다는 자신도 모르게 느끼는 경제적인 부담감, 어려움 등 이러한 이유 때문에 노인들에게 신체적으로나 정서적 언행적인 폭행, 학대를 가하게 됩니다.신체적으로 노인들을 때리기고, 밀치며 심하게는 발로 노인들을 하고 주먹으로 약한 노인들을 때리는 등 노인들의 몸에 발생한 멍든 상처가 있으며 심각한 영양부족 혹은 탈수현상이 나타납니다. 정서적으로는 부족한 수면장애, 대화를 회피하거나 주저하는 모습, 식욕이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섭식장애 등이 나타나게 되어 이로 인해 노인들은 외로움이나 우울함, 정신분열, 스트레스 등을 유발하고 대인관계에서도 고독과 소외 등 지우기 힘든 상처를 가져다주고 심하면 자살을 택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또한 점차 스스로가 나이가 먹고 고령화가 되어 질수록 은퇴로 인한 역할 상실 등, 으로 인해 고독, 소외, 우울, 자살 등의 감정을 느끼게 되어 극단적인 선택으로도 이어지게 됩니다.노인학대의 위험요인 두 번째는 노인 학대 피해자 쉼터나 입소시설, 법적 대응시설 등과 같이 노인학대의 보호망 및 학대를 당한 노인들에 대한 안전한 울타리가 제대로 지원되고 있지 않으며, 현재 우리 현실은 노인 학대를 예방하기 위한 제도나 정책적인 면, 혹은 노인 학대 문제를 알고 해결책을 모색해 줄 담당부서조차 존재하고 있지 않아 더욱더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학대 피해 노인을 돌봐 줄 수 있는 전문보호기관들이 너무나도 적고 그에 따른 적절한 서비스의 제공도 충분치 못합니다. 또한 경찰 및 의료기관 등 노인 학대에 대한 지원자체가 의무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협조사항으로 구분되어지기 때문에 노인학대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노인 학대 문제에 대해 사회적 제도 및 법적인 면에서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노인들은 나라나 시설로부터 보호받기 어려운 상태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노인 학대에 대한 인식이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금 늦게 대두되어 아직까지 노인 학대를 바라보는 인식과 대책이 부족한 상황입니다.또한 세 번째 이유는 노인 학대를 간단하게 가족의 문제로 보는 우리들의 인식으로 인해 노인학대가 외부로는 보여지 지가 않고 가족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개입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인 혹은 집안에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가 가족이외의 바깥에 알려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을 가집니다. 또한 학대 받는 노인들이 피해 사실을 창피하게 생각하여 숨기기 급급하며 학대사실을 말하면 자신의 자녀들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을까 우려하여 자신의 학대사실을 말하지 않기도 합니다. 노인들은 자신에게 학대를 가하는 사람에게 경제적, 신체적으로 자신이 많이의존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혹여 신고를 하게 되면 자기 자신을 그냥 시설이나 기관에 보내질 것이 두려워 피해사실을 숨기기도 합니다.또한 대부분의 피해노인들은 학대를 집안의 일부분으로 보아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고 신고하지 않는 등 노인 학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겁에 질리거나 노인 학대를 당해본 노인의 경우에는 의사나 전문가와 상담을 할 시에도 상담을 끝까지 하지 않고 치료 중간에 그만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노인 학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문제로 노인 학대가 점점 더 심각한 문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 결혼과 가족 」 배우자 선택의 기준Ⅰ. 서론최근 들어 젊은 세대의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다. (그림1 참고) (그림 1)이것은 젊은 세대의 신중하지 않고 올바르지 않은 배우자선택에서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나이 들어 결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혼할 때도심사숙고하는 흐름이 강해졌다.이것이 15~24세 기준 이혼율의 해답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결혼은 여전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의 하나이다.결혼 생활의 성공 여부는 배우자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과 사회의입장에서도 매우 중요하다.어느 사회에서든지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별거 중이거나 이혼한 부부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런 원인 중 하나는 배우자 선택 과정에도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사회적 문제인 이혼율을 줄이는 이유중 하나인 배우자 선택에 대해 모색해 보고자 한다.Ⅱ. 본론 [배우자 선택의 기준]배우자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고려할것은 그 사람의 인성과 조화성이다. (그림2 참고)조화성은 갈등을 감소시키기 때문에 결혼 생활에 굉장히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서로가같은 방법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조화로운 관계를 성립한다는 것은 자신의 중요한 문제들을드러내고 서로의 견해를 공유하는 배우자를 선택하는것을 의미한다.(그림 2)본론에서는 배우자가 자신에게 적합한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한, 방법으로서두 사람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영역에 관해 서술하도록 하겠다.ⅰ) 사랑배우자 선택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논의된 모든 양립성이 관계를 나타낼지라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사랑 없이 결혼하는 것은 처음부터 발전시킬 수 없는 위험요소를 가지고 관걔를 시작하는 것과 같다.ⅱ) 의사소통자신은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어떤 요구, 가치, 소망, 기대 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그러나 자신의 요구, 가치, 소망, 기대들이 한상 배우자와 같이 일치할 것이라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좋은 의사소통은 숨겨진 협의사항을 밖으로 드러내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차이점들을 협상하는데에 있어 도움을 준다. 이것은 원만한 관계를 유지시킨다.ⅲ) 여가활동결혼하려는 이유 중에 하나로 꼽자면 배우자와 함꼐 즐거운 시간을 지속하기를 원하는 것일 수 있다. 똑같은 것에서 서로가 흥미를 느끼는 정도는 관계유지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좋아서,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 상대방도 즐거울 것d라는 생각은 위험하다.ⅳ) 성적의 조화성적의 조화는 서로 만족하는 성적인 관계라고 볼 수 있는데, 만족하는 성적인 관계란 성교의 빈도와 서로 즐기고 허용하는 것 등에 있어서 동의하는 것들을 포함한다.ⅴ) 직업과 목표배우자가 맞벌이 결혼 생활과 자녀의 수에 동의하는 것이다. 직업과 자녀의 문제를 의논하는 데 실패하는 것은 자신과 배우자가 같은 목표를 가진다는 것에 실패하는 것이다.ⅵ) 역할잠재적인 남편 혹은 아내로서 무엇을 할 것이라 기대하며 그리고 자신과 배우자는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가에 대한 조율은 반드시 필요하다.결혼에 앞서 각종 청소와 양육 또는 재정관리 문제 등에 대한 역할 나누기는 자신과 배우자가 기대하는 각 결혼역할에 있어 중요한 사항이므로 이러한 역할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간의 대화가 중요하다.ⅶ) 가치인생철학은 자신의 관심과 활동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예를 들면 지적철학을 가진 사람은 광범위하게 독서하고, 강연에 참석하고, 학위를 위한 공부를 할 가능성이 높다.이러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가치들에는 종교적 가치, 생활방식의 가치, 정치적 가치, 자아실현의 가치가 있다.논의된 조화성이 올바른 배우자 선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ⅷ) 요구결혼을 한 두 사람 모두 서로를 사랑한다. 하지만 한쪽은 상대에게 자유를 주고자 하지만 다른 한쪽은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구속하고 자신의 옆에만 두려 한다면 그 결혼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배우자 선택 시 자신과 배우자는 서로 함께 있는 것에 대한 요구가 어느 정도 일치 하는지에 대한 조율이 필요하다.
바울의 거침없이 담대하게 누가가 들려주는 바울이야기 - 서평이종철 목사님께서 집필한 바울의 거침없이 담대하게-누가가 들려주는 바울 이야기를 읽고 바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바울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오해를 했었다는 것을 말이다. 사도행전을 누가가 기록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을 비교하며 차이점을 볼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사도 바울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이 책의 제목을 보면 누가가 들려주는 바울 이야기라고 되어있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책을 쓴 저자의 목적은 사도 바울의 삶을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을 비교하며 정확히 알려고 함에 있다. 바울서신은 바울이 직접 기록한 본인의 자서전과 같다고 한다. 사도행전은 사도 바울을 제 3자의 입장으로 기록한 글이다. 저자 본인도 누가와 같은 입장이기에 이와 같은 제목을 쓴 것이 아닐까.사도행전의 핵심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증거가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로마까지 당도함으로 이루어진 공간적 연속성과 예수님으로부터 사도들을 거쳐 바울에 이르는 시간적 연속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연속성을 통해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확실히 신뢰할만한 것이며 또한 교회 확장의 역사가 성령의 인도에 따른 것임을 증거하는 것이다.사도 바울이 사울이었던 시절, 그 누가 그의 삶이 변화 될 것이라고 생각했겠는가. 수많은 유대인들을 핍박하였지만 하나님의 작정하심 속에 사울을 선택하였다. 회심을 통해 바울이 되었고 자신도 예수님의 제자임을 주장했지만 예수님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과, 또 예루살렘으로부터 정식 파송된 사도가 아니라는 사실이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고린도후서에서는 바울에 대한 비난이 고조되어 있다.누가는 왜 사도 바울을 선택했는가? 누가는 이방인들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되고 있는 기독교에 흔들리지 않는 신학적 토대를 제공하고, 로마 제국을 향해 그리스도인들의 무죄함을 보여 주기 위해 사도행전을 기록했다고 하였다. 누가는 하나님의 경외자 출신의 제3세대 그리스도교에 속한 이방인 그리스도인으로 간주된다. 누가가 사도행전에서 무엇보다 바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미루어 누가의 교회는 바울의 선교 지역에 속한 교회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누가 시대의 교회가 바라본 바울은 신앙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누가는 사도 바울의 행적을 기록하였다. 제3자의 입장으로 바라본 바울의 모습을 담아냈다. 또한 누가는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연결시켰다. 누가의 가치는 그가 역사 서술을 신학적으로 인식했던 최초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있다. 누가 이전에는 어느 누구도 부활절 이후에 전개된 사건을 기록한 사람이 없었다. 사도행전의 생성 연대는 80-90년 사이 누가복음이 생성된 직후로 잡을 수 있다.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적”으로 불려왔다. 그런데 “사도행전” 책명이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고, 신약성경의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주후 2세기 무렵에 첨가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사도행전”의 책명이 책의 내용을 잘 나타내지 못하는 부적절한 이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에는 열두 사도의 행적이 중심이 되어 있지 않고, 절반 이상이 바울에게 할애되어 있다. 즉 사도행전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여러 사도의 행적이나 전기가 아니라 주로 바울을 통한 하나님이 활동의 역사를 묘사한다.우리는 성경인물을 직접 만나지 못했기에 성경에 기록된 것을 토대로 알 수밖에 없다. 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하고 원본을 찾아보며 해석을 한다. 사도행전 단락을 나눠보면 1:1-26을 서론이라 하고, 2:1-8:3을 첫째 본론이라 하고, 8:4-15:35을 둘째 본론이라 하고, 15:36-28:31을 셋째 본론이라 한다. 1:8은 사도행전의 전체를 한마디로 요약한 핵심 구절이다.첫째 본론은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가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 사이에 전파되는 과정을 묘사한다. 먼저 성령 강림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했음을 보도한다. 그 후 둘째 본론이 이어진다.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일들이 사마리아와 유대 지방, 안디옥과 소아시아 지방으로 퍼져 나감을 묘사한다. 먼저 빌립이 사마리아 지역에서 선교하며 에디오피아 관리에게 세례를 주는 이야기가 나오고 사울에 대한 보도와 다메섹 사건에 대한 보도가 나온다. 바울은 이 사건을 부활한 자의 현현 사건과 본질적으로 같은 사건으로 이해한다(고전 15:8). 바울은 이 사건의 중심에서 사도로 부름 받았다는 자신의 소명을 강조한다(갈 1:15-16). 누가는 이 사건을 바울이 전환하는 “회개” 사건으로 묘사한다. 이어서 베드로에 의해 본격적인 이방인 선교 이야기가 나온다. 이어서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하고 파송받은 그들의 여행, 즉 제1차 선교여행에 대한 보도가 나온다. 사도행전 15장과 갈라디아서 2장을 보면 일치하는 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으로 갔고 바울의 저항, 바울의 보도 등 일치점이 있다. 하지만 관점에 따른 차이점도 분명 존재한다. 갈라디아서 2:1에는 “디도”를 동반한다고 하지만 사도행전 15장에는 디도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리고 갈라이아서 2:1에는 야고보, 베드로, 요한이 등장하지만 사도행전 15장은 베드로, 야고보만 언급한다. 이렇듯 차이점이 존재한다. 이후 셋째 본론은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가 당시 이방 세계의 중심지인 로마에까지 이르게 된 것을 보도한다. 바나바와의 갈등 후 실라와 함께 제2차 선교여행을 시작한다. 바울의 복음 선포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고린도에서 지속된다. 그리고 제3차 선교여행의 시작은 불분명하다. 바울의 에베소 체류가 이 선교여행의 중심을 이룬다.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교별 설교를 하고, 밀레도를 떠나 가이사랴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감으로써 제3차 선교여행을 끝맺는다. 누가는 사도행전의 마지막을 로마에서 사역하는 바울을 묘사함으로 장식한다.
요약정리※ 청지기 - 설교자의 메시지와 권위1. 설교자는 선지자가 아니다.선지자의 본질적 특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다는 데 있다. 설교자에게는 어떤 직통 계시도 주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일은 진실하게 성령의 힘으로 설교한다 해도, 그는 선지자들과 같은 수준으로 성령으로 ‘영감된’ 사람은 아니다.2. 설교자는 사도가 아니다.칼 하인리히 렝스톨프(Karl Heinrich Rengstorf)는 저 유명한 게르하르트 키텔(Gerhard Kittel)의 「신학 사전」에 실린 ‘사도직’에 관한 해설에서, 예수님의 사도들은 유대교의 ‘샬리아킴’(shaliachim)과 상응한다고 주장한다. 신약의 사도는 “특별한 사명을 위해 선택되어 파송자의 전권을 위임을 받은 대리자로 보냄받은 자”다. 바울은 자신도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직접 임명을 받은 열둘과 동등한 사도라고 주장했다. ‘사도’라는 호칭은 예수님에 의해 그분이 ‘샬리아킴’으로 특별히 임명되어 권위를 부여받은 열둘과 바울에게 국한되어야 한다.3. 설교자는 거짓 선지자 혹은 거짓 사도가 아니다.참 선지자는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은” 자다. 그는 “여호와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은” 자다(18절, 22절). 거짓 선지자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했다(26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꿈을 꾼 선지자는 꿈을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 결국 누구는 “사람의 말”을 듣고 있고, 누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이다(36절). 오늘날에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사도들이 하나님의 말씀 대신 자신들의 말을 선포한다.4. 설교자는 말쟁이가 아니다.‘말쟁이’의 설교는 실로 잡동사니다. 물론 다른 사람의 말이나 글을 설교에 인용하는 것은 결코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 경구를 내 말인 양 써먹는다면 이 말을 기억하라. “한 명에게서 가져오면 사람들은 그것을 ‘표절’이라 부를 것이고, 천 명에게서 가져:7). ‘청지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특권을 가진 모든 자에게 주어진 호칭이다.이 위대한 청지기 은유를 통해 기독교 설교자는, 청지기에게 요구되는 ‘충성’의 다양한 측면을 구성하는 네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다.첫째, 진리는 설교자에게 힘을 주는 자극제의 원천이다.설교자는 종종 낙심에 빠지려는 유혹을 받는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비밀의 청지기였다. 복음은 그에게 맡겨진 성스러운 위탁물이었다. 청지기는 위탁을 받을 만한 사람임을 증명해야 한다.둘째, 청지기 은유는 설교자의 메시지 내용을 지시한다.설교자는 씨를 뿌리는 자며, 그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다(눅 8:11). 만약 우리가 선한 청지기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거나(고후 4:2), “혼잡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고후 4:2).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설교해야 한다(골 1:25).셋째, 청지기직 은유는 우리에게 설교자가 갖는 권위의 성격을 가르쳐 준다.설교자는 모종의 권위를 갖는다. 이 권위는 간접적인 권위다. 권위를 가지고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자도 그 말씀 아래 서야 하며 그도 말씀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넷째, 청지기직 은유는 우리에게 설교자의 헌신의 필요성에 관한 실제적인 교훈을 준다.성경은 너무나 방대하여 일생 동안 전력하여 연구해도 그 풍성함과 다양성을 완전히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말씀의 조직적인 설교는 조직적인 연구 없이는 불가능하다. C.H.스펄절은 “성경의 정기를 먹는 자, 그리하여 그대의 입이 성경의 언어로 말하고 그대의 영이 주의 말씀의 향취를 발하며 그대의 피가 성경혈이 되어 성경의 정수가 그대로부터 흘러나온다면, 그대는 참으로 복이 있도다”라고 말했다. 우리에게 이해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사자 - 설교자의 선포와 호소1. 사도적 케리그마“비기독교 세계를 향한 기독교의 공적 선포”로 정의하면서, “윤리적 지침”으로 이해한다. 사도적 ‘케리그마’는 “원시 기독교 신학의 조직적 진술”이었다고 단언하며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고 제안한다ylor)가 “구속의 목적을 묘사하는 최고의 신약단어”로 꼽는 화목의 관점에서 구원을 다룬다.3. 선포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화목을 주시고, 우리와 화목하신 이,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신 이, 사람들을 권면하시며 그리스도로 하여금 죄로 삼으신 이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화목하게 하는 소망과 생각, 계획, 수단을 포함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다. 우리는 화목의 직책으로 부름받았다. 우리가 선포해야 할 것은 바로 그 화목의 말씀이다. 우리가 사자로서 포고해야 할 것은 ‘복음’이다.4. 호소대사의 호소는 두 가지로 제시된다. 첫째,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이다. 둘째,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다. 첫째 호소를 살펴보면 하나님이 우리로 대사를 삼으신 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대신하기 위해서다. ‘그리스도를 위하여’가 우리의 사역에 변혁을 일으킬 것이다. 두 번째 호소를 살펴보면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간청’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신다고 그는 선언한다. “우리를 위하여”(21절) 일하셨던 하나님이 이제는 “우리를 통하여”(18절) 일하신다. 하나님이 친히 행하신 일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당신과 화목하게 하신 것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하시는 일은 사람들에게 호소하여 그와 화목하게 하고 그리하여 그들이 화목을 향유하도록 이끄는 것이다.5. 선포 없는 호소?선포와 호소의 이 결합으로부터 우리는 상호 보완적인 두 가지 교훈을 배운다. 첫째, 우리는 결코 선행되는 선포 없이 호소를 발해서는 안 된다. 복음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행하신 일의 선언이다. 그레샴 메이쳄(Gresham Machen)이 현명하게 말하듯, 우리는 전력을 다해 사람들에게 왜 믿어야 하는지 설득력 있는 논거를 제시해야 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열어 “그 증거에대한 참된 성경적 이해를 가지기 전까지 제대로 이해되거나 파악될 수 없다. 세상의 임금 또는 지배자는 마귀다(요 12:31,16:11). 세상은 미워하고, 세상은 핍박하고, 세상은 추방하고, 세상은 죽인다. 이것이 세상의 적개심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교회의 증언이 필요한 이유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지 않는 세상의 반대 때문이다.2. 아들기독교적 증언은 아들을 증언한다. 세상의 미움은 그리스도에게 집중된다. 그리하여 성령과 교회의 증언은 그리스도를 증언한다. 따라서 신약성경 전반에 걸쳐 복음은 근복적으로 ‘예수 증언’이다. 사도들은 그들이 증언하는 대상에 대해 아무런 의심이 없었다. 예수님은 죽음과 부활 이전과 이후에 공히 그들이 당신을 증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요 15:26,27) 그들은 그의 명령에 순종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었다. 그들이 가장 먼저 증언한 것은 부활이었다. 참된 증언은 세상 재판장에 서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증언이다.3. 아버지기독교적 증언은 아버지에 의한 증언이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로부터…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을 보내실 것이다. 하늘에서의 성령이 영원한 존재와 땅에서의 그의 사역은 모두 아버지에게서 나온다. 예수님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라고 말씀하셨고, 후에는 “아버지여…아들을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요8:54,17:1). 아버지가 아들을 어떻게 증언하시는지는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아들의 역사적인 말과 행위 안에서 그 대답을 듣고 볼 수 있다. 아들은 자신의 권위로 말씀하시지 않았고 아버지 하나님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요14:10) 예수님을 증언할 때 비로소 우리는 성경이 우리 손 안에 들어와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아들 증언이 발견되는 곳이 바로 성경이기 때문이다.4. 성령기독교적 증언은 성령을 통해서다. 성경 안에서 그리고 성경을 통해 사람들에게 한 아버지의 증언이다. 교구나 지역 교회 전 회중이 이웃을 향해 일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함이 지닐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보여준다. 단지 두세 증인의 증언으로 모든 말이 입증되고 확증된다면, 온 교회의 증언이 가진 파괴력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6. 경험비록 일치된 회중의 증언이 중요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특별한 역할이 설교자에게 주어진다. 이 직무의 완수를 위해 설교자에게 두 가지 특별한 조건이 요구되는데, 경험과 겸손이다. 여기서 의미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적인 경험이다. 그는 결코 풍문에 의지해 말할 수 없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는 ‘증인’이 아니다. 그는 반드시 자기 자신의 인격적 경험으로부터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증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증인이어야 한다. 참된 증인은 위선에서 자유로운 자다. 스스로 주의하고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늘 살펴야 한다. 참된 설교는 설교자가 가진 기독교적 경험에 있다.7. 겸손우리의 증언 사역의 궁극적 목적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만나 그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주도권을 갖고 계시며 성령을 통해 지속되는 위대한 증언이다. 겸손한 증인의 위치에서 아버지의 성령을 통한 아들 증언 사역에 자그마한 역할이라도 참여할 수 있음을 기뻐해야 한다.※ 아버지 - 설교자의 사랑과 온유함설교자는 자녀들의 아버지다.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가 그가 사람들과 누리고 있는 관계의 표현이며 그 관계에 의해 결정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는 그들의 아버지이고, 그들은 그의 자녀다.1. 아버지의 숨겨진 권위아버지는 자녀들이 그에게 의존한다는 이유로 자녀들에게 권위를 행사한다. 예수님께서 “너희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이시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영적 의존은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향해야 한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목적이 그의 자녀들이 사람이 아니라 그들의 진정한 아버지 되신 그분을 바라보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