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뉘엘 르루아 라뒤리, 유희수 옮김서론중세시대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은 암흑기라는 것이다. 르네상스로 인해 인간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교회는 그리스 로마 문화를 철저하게 부정하였다. 신을 사회와 정치 체제의 근본원리로 삼으면서 이 원리로 사회를 구성하였다. 이러한 가톨릭과 교회의 지도 아래 일반 민중들의 삶은 철저하게 통제받는다. 출생, 성장, 결혼, 노동 그리고 죽음까지 삶의 전반적 흐름은 교회 권력 하에서 형성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농민들은 수동적이고, 비활력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일반적 시각에 대한 반박을 제공한다. 이 책은 몽타이유 마을을 중심으로 중세시대 농민들의 삶의 전반을 세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 삶의 전반은 상당히 활력적이고 입체적이다. 흔히 생각하는 중세의 암흑기에 살아가는 농민이 아닌, 그 속에서 하나의 마을 문화를 꽃피우는 농민들이 책에서 묘사되고 있다. 이처럼 몽타이유 마을의 활력적이고 다면적인 이야기가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이야기 하듯이 서술되고 있다.몽타이유 마을은 아리에주 지방의 고지대에 위치하는데 사면이 숲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다. 인구는 250명 남짓이고, 마을 사람들은 혈연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마을의 지배는 교황, 프랑스 국왕, 파미에 주교, 카르카손 재판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이들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지 않았다. 특히 교황과 국왕은 이 작은 마을에 영향력을 거의 발휘하지 못하였고, 사실상 민중들이 마을 전반을 주도하였다. 마을에서 지배층이 존재하긴 하였지만 경제적, 정치적으로 일반 민중과 괴리가 적었기에 신분사이의 벽이 적었다. 때문에 250명 남짓의 몽타이유 마을은 민중들이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생성하였다.이들은 교회가 통제하는 중세시대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롭고 종교에서 벗어난 삶은 살았다. 교회가 가족제도, 성풍속처럼 가장 사적인 것까지 통제하였던 반면 몽타이유 마을 사람들은 자유분방하고 상당히 개방에게 생생한 체험을 가능케 한다. 본론에서는 몽타이유 마을의 특징적인 세속적 문화에 대해 언급하고 이 문화의 의미에 대해서 논의하고자 한다. 또한 세세한 내용의 언급과 더불어서, 책을 읽고 느낀 바를 역사연구에 있어서 정치사의 한계와 민중의 중요성, 그리고 기록의 중대함을 중심으로 자세히 서술하고자 한다.본론1. 몽타이유 마을의 세속적 문화-몽타이유 마을의 사랑과 성몽타이유 마을 사람들의 사랑은 한마디로 말해서 자유분방하다. 가톨릭이 지배하는 사회의 이미지와는 달리 이 지하세계는 상당히 이단적이고 다른 시각으로 보면 음탕한 사랑 문화를 영위한다. 이 마을의 사랑을 피에르와 베아트리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하고자 한다.이 스토리의 주인공인 피에르 클레르그는 이 마을에서 가장 유력한 가문의 지배자이다. 그는 카타르파이지만 몽타이유 마을 본당 신부였고, 그의 동생 베르나르 클레르그는 푸아 백작의 대관이다. 즉, 이 두 형제가 몽타이유 마을의 종교적, 세속적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는 것이다. 피에르 클레르그는 가톨릭 신부이나 카타르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종교적 ‘리비도’를 제어하지 못 하고 오히려 그 종교적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망을 달성한다. 그는 공식적으로 12명의 정부가 있었으며, 근칭상간도 자행하였다. 베아트리스 드 플라니솔은 수많은 정부 중 한명이었다. 베아트리스 또한 애정편력이 대단하였는데 남편이 생존할 당시부터 클레르그 집안의 사생아인 레몽과 외도를 저질렀고, 남편이 죽고 난 후에는 당당하게 동거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진짜 애인은 피에르 클레르그이다. 이 둘은 가장 신성하다고 볼 수 있는 고해실에서 첫만남이 이루어졌는데, 교회 안에서 성관계를 갖는 등 신성모독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의 관계는 베아트리스의 카타리즘이 고발당함으로서 끝이 난다.이처럼 가장 성적으로 고귀하다고 할 수 있는 성직자와 귀족이 오히려 개방적이고 문란하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성관계를 즐겼다. 그렇다면 이러한 개방적인 사랑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들의 개방적 성문화는민중문화라고 볼 수 있다.우선 카타리즘의 축에 관해서는 베아트리스의 생각을 보면 추측할 수 있다. 카타리즘의 사상인 선과 악의 근원에 의하여, 베아트리스는 육체는 악이고 악마에게서 비롯되며, 결국 소멸된다고 보는 이원론에 자신의 사랑에 대한 근거를 두었다. 이러한 카타리즘이 베아트리스가 당당하게 성관계를 가진 전부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조금 더 근원적으로 정당성을 제공해주는 원인이 있다. 그것이 바로 민중문화이다. 몽타이유 마을 사람들은 문맹이나 어느정도의 지식 체계는 갖추고 있었다. 이들은 학교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구전을 통해서 농민들의 사유가 전해졌으며, 화덕을 중심으로 하는 사교의 장에서 이야기와 토론이 계속되었다. 특히 이 마을에서 구전되는 속담 중에는 ‘어느 시대나 남자는 다른 남자의 아내와 잠을 잔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러한 속담이 몽타이유 마을의 성문화에서 민중문화의 요인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해준다. 한마디로, 이러한 연속적인 민중문화가 카타리즘의 이원론과 융합한 것이다.이처럼 민중문화의 연속성이 존재하는 몽타이유 마을의 사상은 자연주의적이다. 그렇기에 가톨릭 교회가 강요하는 초월적이고 신적인 개입이 민중에서 저항을 맞딱드렸고 수정된 것이다. ‘곡물을 돌보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다. 풍년을 가져오는 것은 오직 자연뿐이다’라는 말처럼 몽타이유 마을 사람들은 과거부터 지속되어 왔던 자연적인 우주관을 형성하였던 것이다. 몽타이유 사람들이 만성절에 모이는 유령들을 위해 음식을 차려놓은 것은 퓌스텔 드 쿨랑주가 말한 전기독교적 조상신 숭배의 유습이 아닐까 싶다.-몽타이유 마을의 신분계급과 지배문화몽타이유 마을에서도 당시 여타 봉건 도시처럼 신분계급이 존재한다. 교황과 주교, 국왕과 대관이 이 마을의 지배층이고 일반 농민은 피지배계층에 해당된다. 구체적으로 이 마을에서는 교황, 프랑스 국왕, 파미에 주교, 카르카손 재판관의 4개의 축이 지배를 이루었다. 그럼에도 봉건제가 확실하게 뿌리내리지는 않았고 귀족과 농민의 신분적 벽이 상당히 낮았다. 귀족가문인 베 귀족도 거부감을 느꼈다. 특히 십일조에 관해서 몽타이유 마을은 교회권력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하였던 듯 싶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교회라는 하나의 적을 두고 귀족과 민중은 계급적 동화를 하였던 것이다.더 나아가서 민중문화 또한 이 마을의 지배 문화를 형성하는데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연속적인 민중문화가 개방적인 성문화를 형성하였던 것처럼 지배문화를 형성하였다. 250명 남짓의 이 산간지방의 주민들은 모두 혈연적, 정신적으로 연결되었다는 강한 느낌을 갖고 있었고 이웃 간의 교류가 그러한 연결성을 공고히 하였다. 이러한 민중적 차원에서의 유대감은 지배계급을 동화시켰고 몽타이유 마을에서는 계급간의 심각한 갈등이 일어나지 않게 하였던 것이다.이처럼 일반적으로 중세에서 나타났던 계급갈등이 몽타이유 마을에서만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지리적으로 산간지방의 독특한 형세가 경제적 빈곤을 초래하였기 때문이며, 당시 교회와 귀족간의 괴리때문이었고, 자연적인 민중문화의 영향으로 인한 것이었다. 지배문화는 일반적인 독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급진적인 갈등을 일으키지 않았고 이러한 실제적인 내용이 이 책의 특수성과 세세함을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몽타이유 마을의 세속적 문화를 서술하는 이 책은 독자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역사학적으로도 어떤 의의가 있는지 살펴보자.2. 책을 통해 느낀 바-미시사의 중요성이제까지의 역사 연구는 정치사와 제도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다. 특히 중세시대에 관한 연구는 봉건제라는 제도와 함께 영주, 군주 그리고 교황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연구는 사회를 주도하는 계층의 역사를 복원함으로서 나름대로 과거의 상황을 손쉽게 유추할 수 있다. 역사전개를 주도하는 권력의 지배구조를 분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며 역사연구에서 선행되어야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와 제도를 중심으로 한 역사연구에 있어서 한 가지 간과하지 않아야 하는 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민중의 존재이다. 지배는 민중이라는 전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역사는 민중이라는 존재가 있 몽타이유 마을사람들의 현장을 생생하게 복원함으로서 독자들에게 중세시대 한 마을의 민중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를 나타낸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 상당한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이때까지 교과서적으로 알고 있었던 중세에 관한 정보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충격은 역사연구에서 바람직하며 이 책이 독자들에게 바라는 점이라고 생각한다.나 또한 책을 읽으면서 중세의 암흑기라는 용어에 관한 시각이 달라졌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교과서적인 역사공부에 있어서 이러한 이면적 이야기는 나에게 다층적인 관점을 제공하였다. 1998년 안동시 정상동 택지개발지구에서 주인 없는 무덤을 이장하다가 한 통의 편지와 치마, 저고리 등 의복을 발견한다. 이 무덤의 주인은 고성 이씨의 이응태이다. 이 무덤의 사연은 애절하다. 편지에서는 이응태의 부인인 원이 엄마가 31세의 나이에 요절한 남편을 그리워하면서 쓴 한시가 빼곡하게 쓰여져 있다. 이 편지가 발견된 후 사회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조선시대 일반 양반가문의 부부가 이러한 애절한 사랑을 하였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가슴떨림을 느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조선에 대한 인식은 양반의 나라, 붕당의 나라, 성리학의 나라이다. 나 또한 그러하였고, 한국교과과정을 밟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선에 대한 인식이 매우 정적이다. 그러나 이 편지는 그러한 정적인 인식에 돌맹이를 던진다. 양반, 성리학의 표층구조 밑에 존재하던 일반 사람들은 얼마나 동적인 삶을 살았으며, 풍부한 감수성을 가졌는지 알게 되었다. 이처럼 미시사적 연구는 역사연구에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이 책에서 복원된 몽타이유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자연적인 민중문화를 영위한다. 이 마을 사람들은 일반적인 중세인들과는 ‘다르게’ 살았다. 그것은 카타리즘과 남프랑스의 민중문화 그리고 가톨릭 교리가 자연주의적으로 혼합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은 전체적인 중세를 바라보는데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이러한 미시사의 중요성에도 .
아리따운 몸매의 여성이 안락한 침대에 누워서 창 밖의 경치를 즐긴다. 그러는 동안 서비스 해주는 식사와 와인을 즐기면서 원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한다. 와인바에서는 제공해주는 칵테일과 함께 낯선 사람들과의 사교의 장이 형성된다. 이러한 풍경은 대한항공이 야심차게 준비한 항공기인 A380에 대한 TV광고에서 볼 수 있다. 이 광고에서는 비행기는 하나의 사교의 장, 여가와 휴식의 공간처럼 묘사된다. 비행기가 피로와 여행준비의 공간이 아닌 하나의 여행이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대한항공은 소비자들의 욕망을 부추긴다. 소비자들은 더 상위적이고 고급적인 여행에 대한 욕망을 품게 되고 사실은 불필요한 소비를 하게 된다.이처럼 현대사회에서 나타나는 대부분의 광고는 소비자들의 욕망을 부추긴다. ‘이 전자기기를 쓰면 디지털 사회에 걸맞는 선진적인 시민이 될 수 있다’ 혹은 ‘이 화장품을 바르면 어떠한 커리어 우먼보다 진취적이고 현대에 걸맞는 여성처럼 보일 것이다’와 같이 소비자들이 인식하지 못 하고 있던 특정한 욕망들을 구체화시킨다. 한마디로, 현대사회는 욕망의 사회이다. 기업으로 인해 노골화된 욕망이 소비를 불러일으키고 그 소비가 사회의 생산구조를 유지시킨다. 이와 같이 욕망은 너무 과하게 부각되었지만 현대소비사회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고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그렇다면 이러한 욕망은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누구의 주도로 인해서 자극받았는가? 자본주의와 현대소비사회를 부추긴 장본인 중 하나는 코카콜라 회사이다. 1886년에 탄생된 코카콜라는 지금까지 미국의 자본주의와 운명을 같이 하고 있다. 현대에는 미국을 초월하여 초국가적인 자본주의와 대량소비사회의 흐름에 선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코카콜라라는 검고, 탄산을 가진 단순한 액체가 어떻게 욕망을 부추기고 자본주의를 촉진하였을까?코카콜라와 자본주의코카콜라는 1886년에 매약의 형태로 시작된다. 당시의 남부사회는 남북전쟁의 패배로 인한 좌절감과 더불어 물질적으로도 빈약하였다. 전문적 의학 회복제와 자극제로 홍보되었다.매약이었던 코카콜라는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1800년대부터 미국 전역에 탄산음료매장이 들어서게 된다. 1895년에는 미국에서 5만개의 점포가 들어서게 될 정도로 탄산음료산업은 확대되었고 이 매장은 새로운 문화적, 사회적 의미를 띠게 된다. 미국의 정치적 민주주의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촉진하였고 그러한 경제민주주의를 대중이 실천하는 공간으로 백화점과 더불어 탄산음료매장이 차지하게 되었다. 탄산음료매장은 미국사회에서 새로운 부르주아적 욕망을 분출하는 곳이었고 영국의 펍, 프랑스의 카페나 한국의 80년대 다방처럼 사회적 공간이 되었다.이러한 변화에 힘입어 코카콜라는 그 입지를 다져나간다. 원래 코카콜라의 주된 방향이 매약이었으나 탄산음료로 그 방향을 선회하고 미국의 소비자들에게 탄산음료로서 홍보를 하기 시작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국인들은 노동 사이에 휴식이 필요했고 코카콜라는 자신들의 상품이 그러한 휴식과 안락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광고하였다. 한마디로, 코카콜라는 미국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그로 인해 촉발된 대중의 부르주아적 욕망과 맥을 같이 하였다. 코카콜라는 자본주의의 대유이이자 상징이 된 것이다.욕망의 국가와 미국적 생활방식코카콜라는 남부사회를 중심으로 입지를 다져나갔고 미국 영토 대부분에 상품이 공급되었다. 그럼에도 회사는 만족하지 않고 시장을 넓혀나가기 위한 계획을 착수한다. 광고를 통해서 소비자의 욕망을 부추기는 것이다. 이미 코카콜라는 미국 전역에 보급되었고 미국 내에서는 확장할 수 있는 지역은 없었다. 이처럼 시장의 범위를 넓힐 수 없기 때문에 이미 존재하는 시장 안의 수요를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기업에 의해서 욕망이 노골화되었다.회사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자들의 욕망을 부추긴다. 이미 미국은 과거의 유럽과 프론티어 시대와 비교한다면 상당한 물질적 풍요를 이루었지만 여러 상품회사가 제작한 광고는 미국 시민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미국시민들의 행복은 이웃집에 확보하였던 것이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업들은 상품을 광고하는데 ‘미국적 생활방식’을 결합하였다는 점이다. 미국적 생활방식이란, 자유로운 미국사회에서 여행, 오락, 여가활동 등을 즐기며 기업에의해서 대량으로 공급되는 상품을 끊임없이 사용하는 물질적, 정신적 풍요상태이다. 이처럼 총체적인 ‘행복’과 ‘풍요’의 상태를 포괄적으로 포함하는 것이 미국적 생활방식이다. 기업들은 이러한 세계 최고의 생활수준이라는 슬로건 아래 자신의 상품을 홍보하였다. 이 상품을 사용하면 세계 최고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내용으로 광고를 하였고 사람들의 욕망를 자극한 것이다. 코카콜라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미국적 생활방식과 결합하였다. 이미 코카콜라는 미국인의 삶 곳곳에 침투하였고 코카콜라를 마시는 행위는 미국적 생활방식을 행하는 상징적 행위였다.욕망의 제국의 탄생과 세계화코카콜라 시장은 미국 내에서 포화되었다. 더 이상 미국인들의 욕망을 끌어올려 시장을 확장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세계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에 있는 미지의 국가들은 코카콜라에겐 위험국가가 아닌 매력적인 시장후보였다. 1925년 사장으로 취임한 우드러프는 보다 적극적인 코카콜라의 세계시장 확대 작업에 착수하였다. 병 자체를 미국 내의 공장에서 해외로 수출하는 것이 어렵게 되자 우드러프는 ‘지역 비스니스’라는 형태를 취하였다. 그것은 코카콜라 원액만을 본사에서 제공하고 코카콜라를 완성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머지 작업들은 현지에서 실행하는 방법이다. 본사에서 각 국가나 지역에서 보틀러 공장을 세울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여건이 되는 인물을 선발하여 이들에게 코카콜라의 최종 완성과 판매를 담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코카콜라는 해외로 확장하였고 차츰 지역의 토착 음료를 밀어내고 그 국가의 주요 음료가 되었다.그럼에도 코카콜라는 중요한 원칙을 강조하였는데 그것은 품질과 맛 그리고 광고의 통일이었다. 본사에서 정한 표준에 따라 공급되는 맛과 병의 형태는 는 선진적이고 앞서나가는 음료로 받아들여졌다. 그것은 비록 프랑스의 포도주나 독일의 맥주처럼 지역적 반발을 마주하기도 하였지만 결국에는 세계의 국가들에서 미국화를 주도하는 음료가 되었다. 미국이라는 욕망의 나라에서 세계적인 욕망의 제국으로 확장된 것이다.코카콜라로 인한 미국화의 확장과 더불어서 세계화도 진행되었다. 코카콜라 뿐 아니라 Reebok, 질레트 등의 회사들도 해외로 시장을 확대하였다. 미국의 기업들은 점차 다국적 기업이 되었고 시장에 있어서 국경은 사라져 갔다. 음식, 스포츠, 의복 등 모든 형태에서 미국적인 방식이 전세계로 확장되었고 문화적 단일화와 표준화를 이루었다. 이처럼 미국화로 인한 세계화가 진행되었고 코카콜라는 미국화를 대표하는 회사로서 세계화를 주도하였다. 비록 코카콜라 측에서는 일방적인 세계화가 아닌 각 지역의 문화에 맞는 지역화를 유도한다고 주장하나 이 검은 음료가 문화적 단일성과 소비사회를 촉진하는 하나의 중요한 브랜드임에는 틀림없다.이처럼 코카콜라라는 회사는 미국의 자본주의와 소비사회를 상징한다. 코카콜라는 미국의 자본주의와 그 운명을 같이 하였고,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해 탄생된 여가와 휴식문화 중심에 코카콜라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코카콜라는 미국인들의 물질적, 정신적 욕망을 자극하여 욕망을 나라를 탄생시켰고, 미국적 생활방식이라는 풍요적 문화를 전파하였다. 1900년대에 들어서는 미국을 넘어 시장을 확대, 미국적 방식과 문화를 전세계에 이식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렇다면 이처럼 미국을 대표하는 코카콜라가 진정 미국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지, 현재까지도 우리나라에서 미국화가 유효한지 그리고 코카콜라가 주도한 세계화가 과연 지역화를 촉진하는 ‘다원적’ 세계화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코카콜라? 미국정부?1920년대는 미국에서 자본주의적 대량생산이 본격화된 시기이다. 헨리 포드회사는 조립라인을 처음 도입하여 대량생산을 부추겼다. 이후로 모든 상품들은 컨베이어 밸트를 통해서 생산되기 시작하였고 소비자들은 값싼 가격에 쏟아져 나오는 틀림없다. 그러나 코카콜라가 자본주의를 발전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근대적인 경제체제가 정착하고 있었던 미국 사회와 그것을 주도하는 정부가 있었다고 생각한다.1900년대 초중반의 미국은 시장의 포화상태였다. 코카콜라 회사가 과거에 했던 것처럼 미국인들의 욕망을 끌어올리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1800년대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제국을 건설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것이 대부분 기업들의 추세였고 미국 사회전반의 분위기였다. 미국 정부 또한 그러한 시장 확대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었고 정부차원에서도 자국회사들을 위한 정책을 주도하였다. 이러한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마셜플랜은 미국정부의 시장확대를 위한 거대한 계획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에서 코카콜라는 미국이 유럽에 경제 원조를 하는 시기에 유럽 곳곳에 시장을 확대하였다고 언급되고 있는데, 이는 미국정부의 정책 흐름을 코카콜라가 이용했음을 보여준다. 책에서는 마치 코카콜라가 미국화를 주도했다고 나타나는 데 사실은 미국정부가 미국화의 이면적 존재라고 말하고 싶다.코카콜라의 세계화는 정말 다원적인가이 책에서 저자는 코카콜라로 인해 미국화가 전세계에 이식되었고 미국화를 중심으로 세계화가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코카콜라는 지역의 토착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세계화를 진행했다고 한다. 이는 각지에 보틀러 공장을 설치하여 원액만을 본사에서 지급하고 나머지 판매방식, 서비스와 같은 부가적인 것에는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하였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이를 근거로 코카콜라 회사 측에서는 자신들의 세계화는 단일적 세계화가 아닌 ‘다원적’ 세계화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화를 이식받는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세계화는 결코 ‘다원적’ 세계화가 아닌 ‘침략적’ 세계화이다.코카콜라 회사의 주요 방침은 맛과 이미지의 통일이다. 검은 탄산음료의 톡 쏘는 맛 이면에서 미국의 풍요로운 생활방식과 자유롭고 개성 존중적인 미국의 이념이 들어가 있다. 특히 미국에서 제작한 광고를 다른 국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