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조사1. 기 원배구는 1895년 미국 메사추세츠(massachusetts)주 홀리욕시에 있는 Y. M. C. A의 체육부장 Williams G.Morgan에 의하여 고안되었다.당시 모어간은 과격한 농구보다 좀 유연한 Ball Game의 필요성을 느껴, 흥미 있고 남녀노소가 적당한 운동으로서 함께 즐길 수 있는 대중적 운동을 모색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배구의 초기 명칭은 미노넷(Minonette) 으로 불렸으나 처음에는 테니스에서 힌트를 얻고 테니스 네트를 체육관 중앙에 6피이트 6인치의 높이에 설치하여 시험하였다. 이에 미국 메사추세츠의 spring field의 할스테드(DR.H alstead)씨가 Ball을 네트를 넘겨 날려 보내는 게임을 창안해낸 후부터 "발리볼"(Volley Ball) 이라는 명칭을 붙이게 되었다. 처음 직장인을 위한 레크리에이션 활동으로서 고안되었으나 점차 널리 행해졌었다. 이렇게 실시된 배구는 1900년에 캐나다에, 1905년에 쿠바가, 1922년에 Y. M. C. A 선수권대회가 공인대회로 맨 처음 개최되어 성황을 이루었고, 1946년 프랑스 파리를 주축으로 소련,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체코 등 14개국이 참가한 국제배구연맹(International Volley Ball Federation)이 창설되었다.이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배구 규칙이 통합 제정되고 국제 경기가 개최됨으로써 배구 경기의 열기를 자극시키게 되었다. 배구가 올림픽 종목으로서 채택된 것은 1961년 남자 배구가 아테네에서 열린 I . O. C 총회의 결정에 의하여 채택되었으며, 여자배구는 그 다음해 1962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I. O. C 총회에서 채택, 1964년 日本 도쿄 올림픽대회부터 정식 종목으로 인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2. 팀의 구성과 등록1) 한 팀은 최대한 12명의 경기자와 1명의 감독, 1명의 코치, 1명의 트레이너 그리고 1명의 의사로 구성된다. FIVB 그리고 공식경기에서 의사는 사전에 FIVB에 등록되어 있어야 한다.2) 각 팀은 12명의 선수의 최종 리스트에 한명의 수비전문선수인 "리베로"를 지명할 수 있다.3) 경기기록 용지에 기록된 경기자들만이 그 경기에 참가 할 수 있다. 팀의 주장과 감독이 경기 기록 용지에 일단 사인을 하면 기록된 경기자들은 바꿀 수 없다.3. 득점1) 플레잉 반칙규칙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거나 위반을 했을 때 심판에 의해 휘슬이 불어진다. 심판은 반칙을 선언하고 규칙에 의거 벌칙을 결정한다.① 연속적으로 두 번 이상의 반칙을 범했다 하더라도 첫번째의 반칙만을 취한다.② 두 가지 또는 그 이상의 반칙이 양 팀의 경기자에 의하여 동시에 이루어지면 더블 폴트가 되므로 랠리는 다시 진행된다.2) 반칙의 결과 반칙의 결과 랠리를 잃는다.① 서빙 팀 인 경우 그 팀은 1점을 획득하고 서비스를 계속한다.② 서비스리시빙 팀인 경우 그 팀은 1점을 획득하고 서비스권을 얻는다.3) 세트의 승자세트의(최종 5세트 예외)승자는 최소한 2점을 리드해서 먼저 25점을 얻는 팀이 되며, 24:24 동점인 경우 2점차 리드가 될 때까지 경기를 계속한다.4) 경기의 승자① 경기의 승자는 3세트를 선취한 팀이 된다.② 세트 스코어 2:2가 되어 최종 세트(5세트)는 최소한 2점 리드해서 15점까지 경기한다.5) 부전패와 불완전 팀① 팀에게 경기하도록 요구해도 이것을 거부한 경우 부전패를 선고하며 그 경기에 대해서 각 세트 0:25 경기 결과 0:3으로 그 경기를 몰수한다.② 팀이 정당한 이유 없이 정해진 시간에 나타나지 않으면 부전패가 선고된다.③ 팀이 세트 또는 경기 도중에 불완전하게 되면 그 세트 또는 경기에 지게 된다. 상대팀은 그 세트 또는 경기에 이기는데 필요한 점수를 얻게 되며 불완전한 팀의 점수와 세트는 유지된다.4. 플레이의 구조토스공식연습 전에 주심은 첫 서비스와 첫 세트의 코트를 결정하기 위해 토스를 행한다. 최종세트(5세트)가 될 경우 주심은 다시 한 번 토스를 실시한다.1) 토스는 양 팀의 주장을 불러 토스를 행한다.2) 토스의 승자는 다음의 것을 선택한다.① 서비스권이나 서비스 리시브 또는② 코트의 선택 토스에 진 주장은 나머지를 취한다.3) 양 팀이 별도로 공식 연습을 할 경우 최초 서비스권을 얻은 팀이 먼저 한다.공식 연습1) 경기 개시 전, 공식 경기장 이외에 다른 연습 코트가 있으면 공식 경기장에서 각각 3분간 공식연습을 하고 연습 코트가 없으면 각각 5분간 연습을 한다.2) 만약 양 팀 주장이 함께 공식 연습을 하곘다고 요청하면 6분 또는 10분간 공식연습을 할 수 있다.팀 라인-업1) 각 팀의 경기자는 항상 6인이어야 한다.① 팀의 로테이션 순서는 스타팅 라인-업에 의해 결정되며 그 세트 동안 유지되어야 한다.② 한 팀이 수비 전문인 "리베로"선수를 등록하고자 할 때에는 그 선수번호를 첫 세트 라인업 용지에 6명의 출전 선수 번호와 함께 기재 하여야 한다.2) 감독은 매 세트 개시 전, 라인-업 용지에 팀의 스타팅 라인-업을 기입해야 한다. 그는 이 용지에 사인한 후 부심 또는 기록원에게 제출해야 한다.3) 매 세트의 스타팅 라인-업에 들어 있지 않은 경기자들은 그 세트의 교대 경기자들이다.4) 일단 라인-업 용지를 부심이나 기록원에게 제출하게 되면 정상적인 경기자 교대를 제외하고 라인-업을 변경할 수 없다.5) 코트 안 경기자의 위치와 라인-업 용지간의 불일치① 세트 시작하기 전에 불일치가 발견되면 경기자의 위치는 라인-업 용지에 기재된 대로 정정되어야 한다. 벌칙은 없다.② 세트가 시작되기 전에 그 세트의 라인-업 용지에 등록되지 않은 경기자가 발견되면 그 경기자는 라인-업 용지에 기재된 대로 교체 되어야만 한다. 벌칙은 없다.③ 그러나 그 팀의 감독은 코트에 나온 경기자로 경기를 하려고 한다면 정규의 경기자 교대를 요구해야 한다. 이 경기자 교대는 기록 용지에 기록된다.위치서버가 볼을 치는 순간, 각 팀은 로테이션 순서로 코트 내에 위치해야 한다.(서버는 제외)1) 경기자의 위치는 다음과 같이 배열한다.① 네트에 위치하는 3인의 경기자는 전위로 위치4(좌측), 3(중앙), 2(우측)의 위치를 차지한다.② 나머지 3인의 경기자는 후위로 위치 5(좌측), 6(중앙), 1(우측)의 위치를 차지한다.2) 경기자간의 상대적인 위치① 각 후위 경기자는 각각에 대응하는 전위 경기자보다 네트에서 더 후방에 위치해야 한다.② 각 전위 경기자들과 각 후위 경기자들은 규칙에 정한 순서에 서로 위치해야 한다.3) 경기자의 위치는 그들이 지면에 대고 있는 양발의 위치에 의해 결정되고 통제된다.① 각 전위 경기자의 한쪽 발의 일부는 대응하는 후위 경기자의 두 발보다 센터 라인에 더 가까이 있어야 한다.② 각 우측(좌)경기자의 한쪽 발의 일부는 중앙에 있는 경기자의 두발보다 우측 (좌)사이드 라인에 더 가까이 있어야 한다.4) 서비스가 행해진 후, 경기자들은 자기 코트나 프리 죤의 어떤 위치에도 있을 수 있다.5) 위치의 반칙① 팀 경기자들은 서버가 볼을 치는 순간 자신들의 정 위치에 있지 않으면 반칙이 된다.② 서버가 볼을 치는 순간 서빙 반칙이 되는 경우 그 반칙은 위치 위반보다 먼저 범한 반칙이 된다.③ 만약 볼을 친 후에 그 서비스가 실패했을 때는 위치 위반의 반칙이 먼저 범해진 것으로 된다.④ 위치위반의 결과1- 팀은 반칙에 대한 벌칙으로 랠리를 잃는다.2- 경기자들은 정규의 위치로 돌아가야 한다.6) 로테이션① 로테이션 순서는 팀의 스타팅 라인-업에 의해 결정되고 그 세트의 서비스 순서가 된다.② 리시빙 팀이 서비스권을 얻으면, 그 팀 경기자 들은 시계 방향으로 한 자리씩 이동한다.(2번 위치의 경기자는 서비스 할 1번 위치로 이동, 1번 위치는 6번 위치 등)7) 로테이션 반칙① 로테이션 반칙이란 로테이션 순서에 따르지 않고 서비스를 행하는 경우이다.1- 로테이션 반칙의 결과 팀은 반칙에 대한 벌칙으로 랠리를 잃고 경기자들은 정규의 위치로 돌아가야 한다.2- 또한, 기록원은 반칙을 범한 정확한 시점을 결정해야 한다. 반칙을 범한 사이에 얻은 그 팀의 모든 점수는 무효가 되며 상대편의 점수는 유효가 된다. 만약 경기자가 위치 위반을 했거나 서비스 순서가 틀린 시점을 알 수가 없다면, 기득점의 무효는 없고 오직 벌칙으로 랠리만 잃게 된다.5. 공격1)① 서비스와 블로킹을 제외하고 상대편 코트로 볼을 보내는 모든 동작을 공격이라고 한다.② 공격할 때, 티핑은 허용되며, 잡거나 던져서는 안 된다.③ 공격은 볼이 네트의 수직면을 완전히 통과한 순간 또는 상대편에 의해 볼이 접촉되는 순간에 완료된다.2) 공격제한① 전위 경기자들은 자기편 플레이 공간 내에서라면 코트의 어느 높이에서라도 공격을 할 수 있다.② 후위 경기자는 프론트 존 뒤에서 어떤 높이에서라도 공격을 할 수 있다.1- 도약 순간 한발 또는 두발이 어택 라인을 밟거나 넘어서는 안된다.2- 공격 후에는 프론트 존 내에 착지할 수 있다.3 후위 경기자는 볼을 치는 순간 그 볼이 네트의 상단보다 낮은 위치에 있으면 프론트 존 내에서도 공격을 할 수 있다.4- 어떠한 경기자도 상대편 팀에서 서비스된 볼을 네트 상단보다 높은 위치에서나 프론트 존 내에서 공격할 수 없다.3) 공격 반칙① 상대편 팀의 플레이 공간 내에 있는 볼을 칠 때② 경기자가 친 볼이 아웃되었을 때③ 후위 경기자가 네트의 상단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볼을 프론트 존 내에서 공격했을 때④ 상대편 팀에서 서비스된 볼을 네트 상단보다 높은 위치에서나 프론트 존 내에서 공격 했을 때
『룰루』를 보고이 영화는 어둡고 칙칙한 배경 속에서 한 여인이 흐느끼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처음에는 그 여자가 주인공인 줄 알았으나 단지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내는 효과로 등장한 인물이었다. 곧바로 여주인공 넬리가 무도회장에서 신나게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내가 이렇게 눈 똑바로 뜨고 있는데 어떻게...”라고 하며 그녀를 그곳에서 끌어내어 나간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쉽게 다루는 불륜을 소재로 하는 영화인가? 라는 생각을 가지고 한참 지켜보았다. 장면이 집 안으로 전환되자 남편은 그녀에게 심하게 화를 내며 “네 물건은 모두 싸 가지고 이 집을 나가라.”라는 말을 던진다. 그러면서 남편은 아내를 끌어내려하고 아내는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 격렬한 몸싸움이 시작된다. 그러다 이내 곧 남편이 아내에게 사과를 한다. 매우 어색한 장면 연결이었는데 줄거리보다 표현을 중시하고, 장면을 비약적으로 연결하는 누벨바그의 특징의 하나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결국 그녀는 남편과 화해는 했으나 룰루와의 육체적인 사랑으로 이미 그녀 마음은 룰루에게 빼앗겨 버린 상태였다. 그리고 일정한 직업 없이 그저 방랑객으로 사는 룰루를 위해 모든 생활비를 다 부담하면서까지 그녀는 룰루와 함께 한다. 그런 그녀를 보고 룰루의 어머니가 “마치 사랑에 빠진 어린 애 같구나.”라고 룰루에게 속삭이는 장면과 천진난만한 표정을 띤 넬리의 얼굴이 페이드 인 되는 것이 너무나 잘 들어맞아 보였다. 상류층의 삶을 즐기며 생활하던 넬리가 사랑이라는 것 하나 때문에 안정된 직업, 가정 모두를 버리는 것이 의아했지만, 그녀의 남편에게 “문학 없이는 살 수 있어도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라고 냉정하게 말하는 것으로 보아 그녀가 룰루에게 얼마나 빠져있는지 알 수 있었다.한편 그녀의 남편 앙드레는 처음의 집착을 버리고,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며 보내 주려하지만, 그녀가 없이는 일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느낀다. 첫 장면과는 사뭇 대조되는 태도로 아내에게 재정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는 그를 보니 오히려 그가 안쓰럽고 안타까워 보였다. 그러다가 룰루를 좋아하는 여자 때문에 룰루와 넬리 서로의 관계가 다소 소원해지던 중 넬리의 전 남편이 그녀를 찾아왔는데, 한순간의 기분이었던지 그녀는 남편과의 관계를 가진다. 여기서 난 남편의 사랑을 깨닫고 그녀가 다시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단지 순간의 감정이었을 뿐 그녀는 다시 룰루의 곁을 지킨다. 넬리가 룰루의 아이를 갖게 되자 그녀의 오빠가 등장했는데 전형적인 부르주아계급으로 보였다. 그는 동생을 걱정하며 룰루에게 “원하면 가게 하나는 차려줄 수 있네. 아니면 택시라도 몰아보는 게 어떤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을 단번에 거절하는 룰루를 보면서 계급, 계층 간의 갈등이 사랑 하나로 쉽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반부는 넬리가 아기를 갖게 되자 룰루가 넬리를 자기의 집으로 데려가 가족들과 인사를 시켜주는 장면이었다. 배경은 이전의 적막하고 황량했던 도시가 아니라 자연이 한눈에 들어오는 시골마을이었다. 그 분위기에 맞게 룰루의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화목한 분위기와 따뜻한 정이 느껴지는 장면으로 연출되었다. 하지만 잠시 후 임산부에게 독한 술을 잇달아 권하고 의처증이 있는 사람이 총기로 난동을 피우는 장면이 나오자 왠지 결말이 좋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넬리는 아이를 유산하고 만다. 난 그녀가 다시 전 남편에게로 돌아가 행복하게 사는 장면이 나오고, 역시 계층이 맞는 사람끼리 살아야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전달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예상 외로 룰루와 넬리가 서로를 껴안고 흐느끼다 마주보고는, 눈물을 머금은 얼굴로 웃는 장면으로 끝이 났다.이 영화는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 없이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장면간의 연결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영화보다 많이 부자연스러웠다. 1980년대 만들어졌다는 시대적 배경 외에도 예술영화라는 속성이 있어서 그런 것일까?내용적인 면에선 살아온 환경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단지 서로의 육체적 매력이란 것에 빠져 일상의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매우 극단적으로 보였으나, 표현상으로는 모든 제도적 제약을 뒤엎는 강렬한 감정과 행동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었다.
독도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자일본 시마네현은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통과자와 통과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우익세력들로 단순히 넓은 바다를 차지하겠다는 경제적인 야욕을 넘어서 더 큰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05년 3월 이전에도 일본의 독도에 대한 도발적인 행동이나 발언은 꾸준히 있어왔다. 일본의 자위대 정찰기가 독도 근접 비행을 한 것을 비롯해 일본의 우익 세력이 독도에 상륙하려 했던 일들 등은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나 일시적인 뉴스거리로 밖에 다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주한 일본대사의 독도망언에서부터 해경 초계기의 독도 상공 접근, ‘다케시마의 날’ 조례 통과 등 최근 들어 더욱 가속되는 일련의 사태 흐름을 보노라면 일본 측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우려하게 된다. 이번 독도 사태를 볼 때 조심스럽게, 그러나 점차 가시적으로 근대 일본의 군국주의가 되살아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근대 일본의 군국주의를 가능케 한 것은 국가의 부름에 맹목적이었던 일본의 국가의식이었지만 패전은 이 의식을 급속도로 약화시켰다. 패전 후 경제에만 힘을 쏟을 수밖에 없었던 일본은 이제 우익세력을 중심으로 새로운 교육을 통해 국가 의식을 키우고자 한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바로 군국주의의 미학이다.그렇다면 이러한 일본의 독도 야욕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하는가?우선 정부의 조용한 외교부터 바뀌어야 한다. 그동안의 정부는 일본과의 외교에서 일본 내의 다원화된 목소리로 일본의 우경화 세력이 융화될 수 있다는 낙관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강경 우파는 한국정부의 조용한 외교정책을 이용해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논리를 강화했고, 국제사회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일본에게 빌미를 준 한국 외교정책의 실패를 깨닫고 우리가 조용한 외교를 한다면 일본의 근본적인 태도를 막지 못한다는 인식이 자리잡혀야 한다.
야스쿠니 신사와 현 일본의 정치적 상황일본 보수세력, 즉 유족회원들의 표를 얻기 위해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는 매년 참배를 강행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의 반대 같은 외교적인 사안을 인식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참배를 강행하는 것에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국가에 맹목적인 헌신을 바친, 가미카제 특공대에 관련된 그의 개인적 배경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평소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 특공대원들의 수기집인 ‘아, 동기의 사쿠라’라는 점, 그의 친척 역시 야스쿠니에 합사되어 있다는 것도 이를 뒷받침 해준다. 비단 고이즈미 총리뿐만 아니라 일본의 대표적 우파 정치인의 한명으로 꼽히는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 대리 또한 도쿄TV 녹화프로그램에서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나는 지금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있다"면서 "국가 지도자가 국가를 위해 순직한 분들에게 존숭의 뜻을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자신이 총리가 되더라도 야스쿠니 신사를 계속 참배할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 왜곡 등을 둘러싼 한·중·일 간의 긴장이 극도로 높아지고 있는 지금, 그들은 왜 보란 듯이 야스쿠니신사로 달려가는 것일까?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가운데 하나인 고야스 노부쿠니 오사카대 명예교수가 쓴 ‘야스쿠니의 일본, 일본의 야스쿠니’라는 책을 보면, 말 많은 야스쿠니신사와 일본 우경화의 연결고리를 명쾌하게 알 수 있는데, 특히 ‘전쟁과 제사’의 상관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일본이 최근 부활시키고 있는 ‘국가신도’는 제사체계를 흡수한 국가인 신성황국 일본이 ‘황민 내셔널리즘’을 동원하는 이데올로기 체계”이다. 일본 평화헌법 제정될 때 ‘정교분리 원칙’을 명확히 한 것은 이를 극복하겠다는 선언이자 약속이었다. 현재 일본의 평화헌법은 국가·국가기관이 종교활동에 관여하는 것은 물론, 종교단체의 정치적 권력 행사 개입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국가가 더 이상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헌법원칙과 국가가 더 이상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헌법원칙이 일본 정부에 의해 무너지고 있는 상황을 나타낸다. 야스쿠니신사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치른 전쟁의 ‘영광’을 기념하며 212만 3823명을 제사지내고 있으며, 신사 안에는 1882년 개관한 일본 최초, 최고의 군사역사박물관까지 있다. 그래서 야스쿠니신사는, 과거로부터 미래로 이어지는 황국의 연속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야스쿠니의 영령들이 목숨을 바친 국가는 미래에도 마땅히 헌신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극우 정치인들의 의지를 표상하며, 앞으로도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본인들이 계속 나와야 한다는 이들의 소망을 상징한다. 지은이는 일본 ‘황실’ 선조의 제사를 지내는 오사카의 ‘이세 신궁’ 참배에 대한 세간의 무관심도 꼬집고 있는데, 자민당은 물론 민주당 의원까지 이세 신궁을 참배하는 일은 단순히 일부 극우 정치인뿐만 아니라 일본 정치인 전체가 주술의 힘에 얽매여 있음을 드러낸다.
정보 접근과 공유에 나타난 빈부 격차정보화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이른바 정보격차(digital divide)현상이 생겨났다.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거의 모든 정보가 공유되고 대중들이 고급 문화를 향유 할 수 있는 길도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 덕택이었다. 하지만 모든 개개인이 평등하다고 느끼는 인터넷서도 엄연한 계급은 있다. 먼저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나누어지는데, 정보의 양이나 질을 떠나 정보 자체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노인, 농촌 사람, 노동자 등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지역, 연령 등의 계층차 때문에 정보화 시대의 낙오자로 전락된다. 이는 우리 나라 인터넷 인구가 3000만 명을 넘지만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초고속망을 설치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농어촌지역은 아직도 초고속 인터넷보급률이 20%에 불과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도시지역의 인터넷 보급률은 70%를 넘어섰지만 시장 논리와 정부의 무관심 속에 도시와 농어촌간의 정보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면 전문직 직장인은 일주일에 평균 20.2시간 인터넷을 사용하는 데 비해 농어업 종사자는 5.0시간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는 지난해 2월 발표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보고서에서도 잘 나타난다.한편 정보를 향유할 수 있는 계층은 모두 평등하다고 여길지 모르나 여기에도 엄연한 계급은 존재한다. 이른바 고급 정보를 향유하는 계급과 그렇지 못한 계급이다. 사람들이 인터넷을 사용할 때, 어떤 사람은 인터넷이 가진 정보의 신속한 탐색과 저장, 분배 기능을 잘 사용해 고급 정보를 취합하고 이를 엮어 부가가치가 높은 새 지식을 만들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게임과 오락을 즐기고 음란물을 찾아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둘 다 인터넷에 접속하지만 전자가 지식혁명 시대의 새로운 권력층으로 부상하는 반면 후자는 새로운 종류의 빈민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사용량 면에서도 인터넷 강국이라고 하는 한국에서 상위 5%가 전체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초고속인터넷 종량제 관련 KT 입장’ 자료에 따르면 인터넷 데이터 사용량 기준 상위 5%의 네티즌이 전체 인터넷 데이터 사용량의 약 5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에선 이 같은 불균형 상황이 새로운 정보 격차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인터넷이나 PC를 사용하지 못하는 계층이 문제였던 ‘디지털 디바이드’에 이어 인터넷 사용자 사이에서도 정보 활용 격차가 벌어지는 ‘2단계 디지털 디바이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