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대중의 반역 요약2013 대중예술의이해 : 자신의 학과, 학번, 고유번호, 이름은 맨 마지막장 이면에 자필로 적어주세요.1사회는 ‘선택된 소수’와 ‘대중’으로 구성된다. ‘선택된 소수’와 ‘대중’을 구분하는 기준은 사회 계급과 같이 물질적인 요소가 아닌 인간의 우수성이다. 대중은 평균인이다. 평균인인 대중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낄 때 불안해하고 불편함을 느낀다. 특정한 기준에 의해서 판단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하는 대로 행동할 뿐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반면, 선택된 소수의 경우 이런 대중에 속하지 않은 개인들이 다수로부터 분리되기 위해서 모인 하나의 집단이다. 이 집단은 대중과 구분되는 독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여기 속한 개인들 역시 자기의 개성을 잃지 않는다.오늘날 유럽 사회생활에 나타난 특징적인 현상은 이런 대중이 완전한 사회세력으로 등장했다는 것 이다. 과거 소수들의 분야였던 유희, 정치, 학문 등 보편적인 분야에 대중들이 대중이기를 포기하지 않은 채 참여하고자 한다. 대중이 소수의 자리를 침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대중의 반역’이라고 한다. 이는 굉장히 위험한 현상이라고 필자는 우려한다. 대중의 반역은 정치적으로는 과대민주주의가 실현되게 하고 지적인 분야에서는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해 학문의 발전을 막을 것이라 예측하기 때문이다.사회는 본질적으로 귀족적이다. 귀족적이지 않은 사회는 사회가 아니라고 이 글의 필자는 주장한다. 필자는 지금 현대 대중이 사회를 ‘난폭하게’ 지배하고 있는 현상을 아무런 두려움이나 제재 없이 수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현대 대중의 특징으로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대중이 과거 소수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중대한 역할들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대중이 소수에게 온순하지 않다는 점이다. 현대 대중이 이런 특징을 가지게 된 계기는 평등권, 인간 주권의 보편화이다. 평등권은 처음 제기된 이후 단순한 이념이나 법적 이상을 넘어서서 대중에게 현실로 다가오게 되었다. 이는 대중에게 주인의식과 함께 이상과 열망의 차원을 넘어 무의식적 욕구와 가정으로 바뀌었다. 결과적으로 현대 대중들은 과거 상위 소수의 전유물이던 주요 활동들을 향유하길 원했고 오늘날 향유하고 있다. 즉, 역사 수준이 전반적으로 상승하게 된 것이다. 미국은 유럽에 비해서 다소 빠르게 이런 현상이 발생했다. 이를 두고 유럽이 미국화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나 이는 옳지 않다. 유럽이 변한 것은 진보적인 대중교육과 사회의 경제적 번영이라는 내부적 요인 덕분이기 때문이다.현대 대중은 과거 대중과 다른 성격을 보인다. 현대 대중은 매우 영리하며 다른 시대의 대중보다 지적능력도 더 뛰어나다. 현대의 대중은 이제까지의 대중과는 다르게 어떤 사안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를 가지고 있다. 과거 대중은 다른 사람들의 창조적 견해에 동조하는 데 그쳤지만 현대 대중은 자신만의 견해에 입각해서 판단하고 주장하고, 의견을 교류한다. 하지만 필자는 현대 대중의 견해는 진정한 견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현대 대중은 지성의 폐쇄성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견해는 이성에 입각해 타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하며 다른 사람의 견해가 더 타당하다면 수정도 서슴지 않는 공존의 장이다. 하지만 현대 대중의 견해는 타당한 근거 없이 주장만 하며 이를 강요하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며 이는 오히려 진리를 위협하기도 한다. 즉, 대중은 간접행동보다는 ‘직접행동’이라는 방식으로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폭력은 최후의 이성으로 취급되었으나 오늘날 직접행동에 폭력은 제일의, 유일한 이성이 되었다. 이는 인간 모든 공동생활에서 예의범절이 사라지고 문명의 최고 목표인 공존의 미덕을 해체시키고 있다.-이 책의 저자는 대중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대중은 특정 소수 지성인 집단에 비해서 이성적, 지적인 부분에서 다소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점이 소수 집단이 대중을 지배해야한다는 점을 합리화하기엔 부족하다. 우선, 과거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소수집단이 대중을 지배할 때가 현대보다 낫다고 확신할 수 없다. 과거 정치에는 오히려 현대보다 부정부패가 더 팽배한 적도 있고, 소수가 대중을 기만해 오히려 사회의 정의, 진리를 흐려놓는 경우도 많았다.
제목 : 오타쿠, 그들이 사는 세상2013 대중예술의이해 : 자신의 학과, 학번, 고유번호, 이름은 맨 마지막장 이면에 자필로 적어주세요.1은 현대 시각문화 연구회의 줄인 말로 어느 대학의 한 서클 이름이다. 현대 시각문화 연구회라는 다소 거창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이 서클은 사실 오타쿠들의 소모임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사사하라’라는 신입생이 현시연에 입부함으로써 시작된다. 에는 각각 개성이 넘치는 캐릭터들의 오타쿠들이 등장한다. 오타쿠 뿐만 아니라 코우사케의 연인이자 일반인인 카스카베를 등장시켜 오타쿠의 일상 뿐 아니라 오타쿠와 일반인과의 관계, 관점의 차이 등도 조명한다. 이 애니메이션은 오타쿠들의 일상을 사실적이면서도 재미있게 풀어내 사회 부적응자, 변태 등 음침하고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오타쿠 문화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을 통해서 우리는 오타쿠 문화의 특징을 추론해낼 수 있다. 처음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오타쿠’라는 집단의 특수성이다. 오타쿠는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등을 헌신적으로 좋아하는 일종의 하위문화 집단이다. 하지만, 기존의 여타 집단에서 볼 수 없었던 특이한 부분이 많이 관찰된다. 우선 오타쿠는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마다라메에게 오타쿠가 된 계기를 물었을 때, 그는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되어있었다고 답했다. 카스카베 역시 코우사카에게 어울리는 연인이 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오타쿠가 되어보려고 한 적이 있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난다. 다른 하위문화 예를 들면 히피나 펑크의 경우, 그들에 속하고 속하지 않고는 계급을 바탕으로 개인의 의식적인 선택에 달린 것에 반해 오타쿠가 되는 것은 의식적이라기보다는 무의식에 가깝고 본능적이다. 특정 계급이나 나라를 바탕으로 하지도 않는다. 어설픈 흉내로 오타쿠가 될 수 없으며, 진정으로 대상에 강한 흥미를 느껴야한다. 쿠가하라와 타나카에게 오타쿠 문화를 소개시켜준 친구가 지금은 일반인이듯이 단순히 애니메이션이나 오타쿠 문화를 접하고 처음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오타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타쿠가 일종의 취미 공동체 같지만 오타쿠를 단순한 취미공동체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오타쿠들은 스스로를 오타쿠임을 부정할 수 없다. 오타쿠라는 모종의 본능에 의해서 소비를 하고 그 문화를 즐기고 욕구를 해소할 때서야 비로소 삶의 기쁨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타쿠를 바라보는 부정적 사회적 시선들을 오타쿠들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와 관계없이 스스로 오타쿠라는 사실에 별로 거리낌없어하는 코우사케 같은 유형도 있지만, 사회적 시선을 의식해 오타쿠임을 부끄러워하는 사사하라, 오기우에 같은 유형도 있다. 사사하라의 경우, 현시연에 들어오기 전에도 각종 애니메이션을 섭렵할 정도로 오타쿠 문화를 즐겼지만, 동인지를 사거나 에로게임을 할 용기가 없는 초보 오타쿠였다. 동아리를 둘러볼 때도 오타쿠 문화와 관련된 동아리에만 관심이 있었지만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 욕망에 솔직해지자는 각오와 함께 현시연에 가입한 후, 그는 본격적인 오타쿠의 길로 접어든다.오기우에는 사사하라와는 조금 다른 케이스이다. 사사하라는 본격적인 오타쿠의 길을 택하고 나서는 적극적으로 오타쿠 문화를 즐기고, 더 이상 자신이 오타쿠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반면 오기우에는 처음부터 오타쿠를 싫어한다고 밝힌다. 오타쿠를 싫어하지만 오타쿠 문화를 끊을 수 없는 스스로의 모순에 자기혐오까지 느낀다. 오타쿠 동료들에게 까지 코믹 페스티벌 참석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며 자신의 취향도 최대한 숨기려고 하는 등 스스로 오타쿠임을 부정하려 한다. 나아가 사사하라를 좋아하지만 오타쿠를 혐오하는 자신의 신념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마다라메의 말처럼 오타쿠는 되려고 된 것이 아니라서 마음대로 그만둘 수 도 없다. 오기우에가 왜 오타쿠를 혐오하게 되었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오타쿠 집단 내에서도 이런 관점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오타쿠들의 문화 소비 형태도 특이하다. 오타쿠들은 관심이나 흥미 있는 작품이 있으면 돈을 아끼지 않는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적인 의식주의 욕구를 참아서라도 그들은 동인지를 사고, dvd 세트를 산다. 이들은 오타쿠 외적인 물품에의 소비를 낭비와 사치라고 여긴다. 또한 이들은 코믹 페스티벌 참가에 목숨을 건다. 5시간씩 땡볕에 서서 사람들에게 부대끼면서도 지치고 불평하기보단 코믹 페스티벌에 들어갈 생각에 들떠있다. 심지어 마다라메는 전치 2개월의 부상을 참으면서까지 코믹 페스티벌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었다. 이런 열정적인 소비에서 나아가 오타쿠들은 적극적으로 작품을 재해석하고 참여, 창조하고자 한다. 사사하라가 회장이 되고 제일 먼저 추진한 일이 동인지 발간이다. 동인지를 제작함으로써 자신의 이상형인 캐릭터를 책속에서 내 마음대로 구현할 수 있다. 19금 동인지를 통해서는 자신만의 성적 판타지를 구현하고 다른 오타쿠들에게 판매함으로써 이를 공유한다. 동인지의 발간 뿐 아니라 코스프레 역시 마찬가지이다. 코스프레어인 오오노도 코스프레는 부끄럽다고 인정을 한다. 그럼에도 코스프레를 하는 이유는 직접 그 캐릭터가 됨으로써 자기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타쿠는 작품에 관련된 상품의 소비와 분석뿐 아니라 캐릭터에 자신을 투영함으로써 좀 더 작품에 다가가 자신이 그 주체가 된다.하지만 그렇다고 오타쿠들이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차이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마다라메와 카스카베가 단둘이 동아리방에 남겨졌을 때, 마다라메는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선택지를 만들어가며 상상하곤 한다. 1번과 2번 중 어느 것이 옳은 선택일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마다라메의 상상은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곧 마다라메는 현실은 게임과 달리 복잡하고 다양한 변수가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실제로도 카스카베의 반응은 주먹을 날리는 것으로 마다라메의 상상 속에는 없던 선택지였다. 그리고 오오노와 타나카가 사귈 때도 가상세계와 현실세계 간의 착각 때문에 사귄 것은 아니었다. 오오노는 코스프레어로 가상세계를 현실세계에 가져와 둘의 경계를 드나든다. 그렇지만 타나카가 오오노에게 사랑을 느낀 것은 오오노가 캐릭터를 닮았기 때문이 아니라 오오노 그 자체이다. 오오노 역시 마찬가지이다. 타나카의 성격 등 그 사람의 진짜 모습에 사랑을 느낀다. 오타쿠 커플인 타나카와 오오노 역시 현실과 가상세계를 명확히 구분한다. 심지어 그들이 사귀기 전 상대방보다 부족한 나, 알 수 없는 그 사람의 마음, 고백할까 말까 망설이는 부분 등의 고민은 일반인과 다를 바 없다. 이 뿐만이 아니라 오타쿠들도 평범한 20대들이 겪는 고민을 한다. 취업문제, 팀플에서의 불 화합 등 누구나 한번쯤은 해본 고민을 오타쿠들 역시 하고 있다. 그들은 다른 별 사람이 아니다. 다만 우리와는 조금 취향이 다를 뿐이다.
제목 : 인크레더블과 멈블의 시련 대처법2013 대중예술의이해 : 자신의 학과, 학번, 고유번호, 이름은 맨 마지막장 이면에 자필로 적어주세요.1과 의 사회는 ‘정상성’을 추구한다. 비록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더라도 오히려 정의를 수호하는 역할을 할지라도 그들은 정상에서 벗어나는 괴짜를 용서하지 않는다. 에서 초능력을 가진 슈퍼영웅들과 에서 ‘멈블’은 사회에서 규정한 정상성에서 벗어난 인물들이다. 인크레더블은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초능력을 가진 반면 멈블은 펭귄으로서 타고나야 하는 능력이 결여되었다는 차이점은 있지만 어쨌든 이들은 평범과는 거리가 멀다.두 이야기의 포맷은 비슷하다. 평범함을 추구하는 세계에서 밉보일 수밖에 없는 주인공들은 사회에서 배척당하지만, 결국은 인정받는다. 하지만 버림받고 인정받기까지의 두 주인동의 태도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인크레더블의 경우,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개인적인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 하늘에서 기회가 찾아와 본인을 구제해주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린다. 마치 자신의 능력이 우연히 부여받은 것처럼 이번에도 그런 우연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신드롬이라는 악당의 등장이라는 기회가 찾아오고, 인크레더블은 시련에서 구제된다. 그에 반해 멈블은 스스로 시련을 극복하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자신이 사회에서 추방당한 이유가 그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죽음을 무릅쓰고 모험을 떠난다. 실제로 죽을 위기도 몇 번 넘기면서 멈블은 끝내 자신이 추방당한 사회에 문제점을 해결해줄 방안과 함께 당당하게 돌아온다. 멈블의 극복과정에는 작위적인 우연이 없다. 에 비해서 주인공의 행동이 좀 더 인과관계가 분명하고 주체적이다.또한 조력자의 형태에서도 차이가 난다. 의 경우 조력자는 그의 가족이다. 인크레더블이 위험에 쳐했을 때 그의 가족들은 어디선가 나타나서 그를 위험에서 구해준다. 그리고 같이 힘을 합쳐서 신드롬을 물리친다. 그의 가족들은 인크레더블에게 같이 힘을 합치는 것의 중요성, 혼자는 무리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에 반해 멈블의 조력자라고 할 수 있는 친구들과 러블리스도 멈블의 시련극복 과정을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는다. 다만 멈블의 길에 동행했을 뿐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멈블은 혼자였다. 문제를 해결한 것도 멈블 혼자 힘이었다. 심지어 멈블은 인크레더블처럼 초능력도 없다.와 은 비록 비슷한 포맷을 가지고 있지만 전혀 다른 형태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디즈니 영화인 은 디즈니 영화의 특징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 대표적인 디즈니 영화들은 모두 주인공들이 시련을 우연 즉, 하늘에 의해서 극복해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인공들은 그 시련에 고통스러워 하지만 어디선가 왕자나 요정이 나타나서 주인공들을 도와준다.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디즈니 영화는 관객들에게 일종의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현실성 없는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관객들에게 현실을 잊게 한다. 그럼과 동시에 관객들에게 나에게도 저런 행운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까지 품게 해준다. 디즈니 영화는 디즈니랜드처럼 꿈과 희망의 공간의 역할을 하려한다. 인크레더블의 조력자가 가족이라는 점은 가족의 화합, 안식처의 기능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가족의 형태를 옹호한다.이에 반해 는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우리 현실에서는 디즈니 영화처럼 나의 문제를 다 해결해주는 하늘이 존재하지 않는다. 의 조력자의 역할을 하는 멈블의 친구들도 우리의 현실과 매우 닮아있다. 나의 길을 잠시 같이 가주고 응원해 줄 수는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서 우리는 언제나 혼자이다.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한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누가 대신 해결해 줄 수도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도 없다. 는 시련을 의연하게 이겨내야 한다는 교훈을 제시해준다. 즉, 관객들에게 환상대신 현실적인 삶의 방식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의 가족들의 형태도 고전적인 디즈니와 차이가 있다. 디즈니에서 가족은 가족 구성원 중 누가 어떤 시련이 닥쳐도 보호해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멈블의 아버지인 멤피스는 오히려 멈블을 사회에서 내쫓는 데 일조한다. 가족의 화합과 사랑을 강조하는 디즈니의 아버지와는 사뭇 다르다. 멈블 또한 여기에 별로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일반적인 디즈니의 가족형태와 다른 멈블의 가족은 멈블의 독립성과 주체성을 더 돋보이게 한다. 즉, 디즈니의 애니는 꿈과 환상의 공간을 구축해서 사람들을 대리만족시키고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가치관을 옹호하고 보여주는 반면, 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직면할 수 있는 문제들에 적용 가능한 삶의 지침을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제목 : 대중매체/문화의 이중성2013 대중예술의이해 : 자신의 학과, 학번, 고유번호, 이름은 맨 마지막장 이면에 자필로 적어주세요.1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는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현재 시장경제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폐해에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저항하고 있다. 그들의 저항 방식은 보편적인 저항 방식과 많이 다르다. 신선하기 그지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자연재해에 대비한 방호복을 보험회사들에게 소개하는 장면이다. ‘할리버튼’이라는 회사의 이름을 도용해서 우스꽝스럽게 생긴 방호복을 그럴 사하게 PPT를 만들어 소개하니 사람들은 의심을 하기 보다는 관심을 표했다. 만약 그런 옷을 할리버튼이라는 회사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소개했다면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있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오히려 코웃음 치며 저 우스꽝스럽게 생긴 옷을 보라며 손가락질 했을 지도 모른다. 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권위에 조건적인 반응을 하는 지를 보여준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반응하도록 사회화된 것이다. 영화에서는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조소어린 내레이션을 넣었지만, 그들도 그럴 것을 알았기에 ‘할리버튼’이라는 이름을 가져와서 쓴 것이 아닌가. 그들은 아닌 척하지만 사실 그들도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속았을 지도 모른다.그렇다면 누가 혹은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사회화 시켰는가? 확실히 학교와 같은 정규교육과정은 아니다. 윤리나 도덕교과서만 봐도 언제나 비판의식을 가지고 텍스트를 접하라고 가르친다. 이는 학교보다 더 강력하게 우리를 지배하는 사회화기관이 있음을 암시한다. 그것은 바로 대중매체이다. 어느 프로그램에서나 어떤 현상에 대해서 얘기할 때 전문가가 나오고 그 현상에 대해서 현학적인 말로 설명한다. 그러면 방청객들은 ‘아아~’하면서 수긍하고 전문가의 말을 진리로 받아들인다. 혹은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의문점을 꼭 전문가들이 나와서 전문용어를 사용하면서 해결해준다. 그럼 그 일반인은 직접 한 번 더 생각해보기 보다는 바로 수긍하며 전문가의 지식에 감탄하며 경의를 표한다. 이런 프로그램들의 형식은 전문가들의 견해는 진리이고 감히 의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다. 자꾸 이런 프로그램들을 접하게 되면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권위에 복종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즉, 대중매체를 통해서 우리는 조건화된 반응을 학습한다. 나아가 전문가들이 옹호하는 시장 경제주의 같은 사회의 운용방식에 대한 비판도 스스로 할 수 없게 된다.영화는 고작 한 시간 반짜리 영화로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겠냐는 주인공의 대사로 끝이 난다. 맞는 말이다. 그들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선택한 방법도 궁극적으론 한계가 있었고 고작 한 시간 반짜리 영화로 세상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갖는 가치까지 부정해서는 안 된다. 현재 대중문화는 단순히 문화생활로서 유희로 영위되는 수준을 벗어났다. 대중문화는 선생님이자 신이다. 요새 아이들은 부모님이나 또래 친구만큼이나 혹은 보다 TV를 자주 접한다. TV나 대중매체를 통해서 사회화되고 가치관을 습득한다. 어른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대중문화를 즐김으로써 고달픈 현실에 위로받고 삶의 지침서를 제공받는다. 이렇듯 대중문화가 우리의 삶에 끼치는 영향력이란 실로 막대하다. 이런 상황에서 의 두 주인공은 세미나뿐 아니라 BBC나 CNN등 대표적인 보도프로그램인 TV뉴스에도 나와 방송을 하고 이들의 저항과정을 담은 영화까지 만들었다. 대중문화가 항상 전달하던 메시지와 다른 메시지를 대중매체로 전달한 것이다. 이는 별 생각 없이 대중문화를 즐기던 사람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열어준 것이다.역사는 순환한다. 시대에 따라 가치관 역시 순환하기 마련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모든 사고에 인간이 중심이었다. 중세로 넘어가면서 인간보다는 신 중심으로 모든 생활방식, 사고방식 등이 바뀌었다. 신 중심적 사고에 대한 비판과 반성적 움직임이 끝내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극대화되고, 다시 인간이 중심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이 퍼져나갔다. 그러나 산업혁명이후 현재의 시장경제 사회에서는 다시 인간보다는 기업의 이윤추구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있다. 언젠가는 이런 사고를 반성하면서 다시 인간중심의 가치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지금 상황에서 다시 인간중심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은 과거보다 힘들고 시간도 더 오래 걸릴 지도 모른다. 수정 마르크시즘에서 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도래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이유로 상부구조의 변화 즉, 문화적 요소를 제시한다. 사람들이 문화산업 혹은 대중문화를 소비함으로써 허위욕구를 주입받고,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의 모순점과 문제점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사유하기보다는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산다. 에서 미래의 뉴욕 타임즈를 발간하고 사람들에게 보여줬을 때, 사람들은 이런 세상이 도래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즉, 사람들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나 이를 반성하거나 그 이상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의 두 주인공들을 대중 매체를 통해서 알게 된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그들이 작지만 사회에 자꾸 자극을 가한다면 언젠가는 다시 인간 중심의 가치를 회복하는 날이 올 것이다.
제목 : 언더커버보스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들2013 대중예술의이해 : 자신의 학과, 학번, 고유번호, 이름은 맨 마지막장 이면에 자필로 적어주세요.1TV는 우리 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중매체이다. TV는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가장 쉽게 접하고 즐기는 대표적인 대중문화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TV는 뉴스, 시사프로그램, 예능 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이 중 가장 대중의 취향을 잘 반영해야하며 빠르게 대처해야하는 프로그램으로는 예능프로그램을 꼽을 수 있다, 즉,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 우리는 당대 그것을 즐기고 소비하는 대중들의 욕망이 무엇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이런 관점에서 ‘언더커버보스’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언더커버보스’는 미국 CBS방송국에서 제작한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으로 실제 대기업 CEO들이 자기 회사의 말단 직원으로 들어가서 일하는 일종의 몰래카메라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언더커버보스’의 포맷은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 우선 CEO들은 평범한 집안에서 자신의 노력에 의해 CEO의 자리에 오른 자수성가형이다. 그리고 언더커버보스로 잠입을 해서 만나는 직원들은 각각 자신만의 안타까운 사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맡고 있는 일에 긍정적으로 최선을 다한다. 이를 본 CEO는 감명받고 나중에 자신의 실제 신분을 밝히면서 이들의 노력에 보상을 해준다. 또한 경영 직책이 아닌 실제로 말단 직원으로 일을 하면서 CEO는 회사 노동자들에게 고마움과 이들의 중요성을 느끼고, 나아가 큰 회사 정책을 수정하는 등의 노력도 한다.왜 이런 프로그램이 제작되었고 인기를 얻게 되었을까? 이는 현대 자본주의의 구조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경영과 노동의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 개인이 경영자임에 동시에 노동자였다. 하지만 점점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효율성을 이유로 경영과 노동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그나마 초반에는 노동자와 경영자간의 상호 소통이 쉬웠고, 서로의 얼굴도 사정도 아는 인간적인 면모는 있는 관계에서 점점 노동자와 경영자간의 계급이 생기게 되었다. 노동자와 경영자는 서로의 얼굴도 알지 못하고, 소통은 어려워지고 심지어 서로 불신하고 마는 단순한 계약관계로 전락해버렸다. 특히 이런 불신관계는 언더커버보스 WM쓰레기 처리업체 편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1분 늦어서 봉급이 까일까봐 밥을 먹다가 뛰어가는 샌디의 모습, 여기저기서 감시를 받으면서도 작업시간에 쫓겨 깡통에 소변을 볼 수밖에 없는 제니스의 상황은 노동자에 대한 경영자들의 불신이 반영된 대표적인 시스템이다. 이런 각박한 노동현실은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경영자가 노동자들의 고충을 알 수 없다. 경영자는 오직 회사의 이윤 창출에만 집중해야하고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결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더커버보스에서 경영자가 직접 노동자가 되어보고 이를 시정할 필요성을 느끼고 시정한다. 즉, 언더커버보스는 CEO와 노동자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상호교류, 소통의 중요성을 제시한다.한국에서는 미국판 언더커버보스를 개그맨 박명수씨의 나레이션이 곁들여져서 방송된다. 일요일 밤이라는 불리한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언더커버보스 시즌1은 최고 시청률 8%를 기록했다. 미국 뿐 아니라 한국의 시청자들 역시 언더커버보스에 대한 많은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판이 아닌 한국판 언더커버보스가 만들어지고 방송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개인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언더커버보스로 잠입한 CEO들을 보면 일을 못해서 구박받는 일이 허다하다. 그런데 그들은 이런 취급을 받아도 무시당했다고 화를 내지 않는다. 크게 개의치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일을 철저하게 한다고 기특해한다. 만약 우리나라 CEO이었다면 이런 쿨한 반응을 보일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홧김에 자신이 CEO라고 밝히고 화를 내지 않았을까?우리나라의 경우 대기업 중 자수성가한 CEO의 비율이 낮다. 29일 최고경영자(CEO)·기업 경영분석사이트인 CEO스코어가 금융감독원 자료를 바탕으로 국내 30, 40대 자산가 상위 50명의 자산과 업종을 분석한 결과 41명(82%)이 대기업 창업자의 2, 3, 4세이고 자신이 스스로 기업을 일으킨 창업자는 9명(18%)밖에 안 된다. 자수성가한 CEO의 경우 밑바닥부터 차례차례 나름대로 고생을 하고 그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다. 그래서 방송에서도 CEO들은 노동자들의 사연을 마음으로 이해한다. 왜냐하면 과거에 자기도 겪었고 지나왔던 과정이기 때문이다. 최대한 그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게 기회를 주려고 노력한다. ABM건물용역업체의 켄리는 꿈을 위해서 바쁜 하루 속에도 매일 매일 학교를 나가는 노력을 한다. 이를 보고 감명받은 회장님은 그가 포기하지 않도록 앞으로의 학비를 다 지원해주기로 결심한다. 세븐일레븐 편에서 와카스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가족문제도 최대한 해결해주기 위해서 노력한다. 일 때문에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부족한 직원들을 위해서 여행을 다녀올 수 있게 돈과 시간을 제공해준다. CEO 자신도 일 때문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아픔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들의 사연에 공감한다. 이런 진정성이 이 프로그램을 인기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상속받은 CEO들이 노동자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자랐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애초에 언더커버보스의 필요성을 실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실제로도 한국에서 언더커버보스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지원하는 기업의 수가 너무 작아 실패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