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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읽고 쓴 독후감입니다. 원전 사고와 과학, 종교와의 관련성을 중점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다시 인간중심으로, ‘종교’에서 찾은 희망체르노빌의 목소리는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로 고통 받은 체르노빌레츠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한 여인은 사랑하는 남편을 잃었다고 한다. 남편은 원인도 알지 못한 채 원전 폭발로 인한 불을 끄러 현장에 갔고 이 주 만에 온 몸이 타서 죽었다고 한다. 다른 노부부는 정부의 말을 믿지 않는다. 군인이 와서 이곳 음식도 먹지 말고 이곳을 떠나야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그곳이 자신이 평생 살던 고향이었고 더 이상 반기는 이도 없기 때문에 갈 곳이 없다. 평화롭게 살던 그들의 고향은 원전 폭발사고로 한 번에 생명이 살 수 없는 땅이 되었다. 어머니는 눈 말고는 구멍이 없는 딸아이를 낳았다.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수술을 통해서 아직은 딸아이가 살아있지만 원전사고와의 관련성을 알 수 없다고 말하며 의사와 정부는 치료를 돕지 않는다. 그들은 외국의 병원에 치료를 구걸하며 딸을 살리려고 노력한다. 과학문명과 수치들은 너무 쉽게 조작되어 그 이후에는 누구도 수치가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의사들은 수십 년이 흘러야 체르노빌과 그 아이의 고통스런 삶의 연관성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 망가진 사람들의 인생은 누가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일까? 비인간적이고 무자비한 재앙 앞에서 우리는 아무도 우리의 삶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는 상기시켰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망가뜨리는 실체를 어떻게 발견할 것이고, 또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책을 읽으면서 필자의 머릿속을 잔뜩 채운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체르노빌레츠들은 명확한 원전사고의 피해자이다. 그러나 가해자의 실체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체르노빌레츠들은 방사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원자로와 가장 무관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들이 왜 피해를 입게 되었고, 그들이 왜 무고하게 죽어나갔는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우선 언론이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사실을 정확히 밝혀 대중의 여론을 형성하고 문제를 가시화시켜야하는 것이 본래 언하지 못했다. 왜 언론이 그런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질문은 곧 원전 뒤의 권력이 누구인지에 대한 힌트가 된다. 원전 사고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간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이념간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아니며 인간 본연의 문제이고 탐욕의 문제이다. 더욱 두려운 것은 탐욕의 크기가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가고 있다는 것이다.탐욕은 과거에도 있었고 역사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극단적인 전쟁 역시 한정된 자원에 대한 탐욕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많은 희생을 요구했던 적은 없을 것이다. 탐욕은 과학과 결합하면서 더욱 위협적으로 변했다. 과학 기술 자체는 결함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학 기술은 인류의 의식 수준에 비해 너무 빠르게 발전했고 강한 힘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과학 기술의 목적은 탐욕에 의해 쉽게 변질되었다. 탐욕은 과학기술을 통해 인류에게 약간의 편리함을 제공하면서 큰 희생을 치르게 했다. 그것도 편리함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이들에게 큰 희생을 치르게 했다. 더군다나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속에서 탐욕은 끝을 모르고 커지고 있다. 이미 문명사회는 너무 익숙해져서 현대인들은 과거에 인류가 어떻게 살아갔는지 잊어버렸다. 과학은 100년도 안 되는 세월동안 인류의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성의 세계가 속의 세계보다 가치 있다고 믿었던 인류가 과학 기술을 통해 자연을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성의 세계를 잊기 시작했다. 종교의 역할은 눈에 띠게 줄어들었고 인류는 성의 세계를 등지고 속의 세계에서 과학의 문명을 누리고 영화로운 삶을 산다고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 역시 언제든지 체르노빌레츠가 될 수 있다는 것뿐이며 그 때가 되면 우리가 누렸던 이익보다 더 많은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국가들이 원자력을 가지고 있다. 원전이 다른 방식보다 에너지를 생산해내는 데에 경제적이라고 말하지만 원전 폐기물 처리나 극단적으로 원전 폭발 사고가 일어났을 때의 피해는 그 논리적인 계산에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체식에는 분명한 변화가 필요하다. 어떤 나라도 탐욕으로 인한 피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에도 불구하고 많은 나라들이 원자력에 에너지 생산을 의존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예만 보아도 하루가 멀다 하고 고리 원전의 위험성이 드러난다. 인류는 위태롭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하루아침에 과학의 발전으로 생긴 것이 아니다. 원전이 세워지기 전에는 원전을 이루고 있는 기술이 발명되었을 것이고 기술이 발전하게 된 데에는 배경이 있을 것이다. ‘공예문화’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한 공예의 변천사를 통해서 기술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하면서 공예의 변화를 통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공예와 미술을 분리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산업시대 이후 기계가 등장하면서 공예와 미술이 분리되었다. 산업시대 이전과 이후의 공예 특성은 확연히 달라졌는데 이 과정에서 일반 대중의 삶 역시 질적 차이를 갖게 되었다. 공예와 미술을 나누는 가장 큰 차이는 실용성이다. 실용성이 있는 것들은 공예로, 그렇지 않은 것들은 미술로 분류되었다. 과거, 그러니까 추악한 것을 아예 만들지 못했던 시기에는 미술과 공예의 구분 자체가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미술과 공예의 구분이 시작된 순간부터 단순 구분뿐만 아니라 차별이 생겨났고 차별은 미술과 공예를 만드는 사람까지 차별하는 것으로 퍼져나갔다. 미술과 구별되기 전의 공예는 전혀 다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우선 수공예는 하나의 일에 전념하는 사람이 생겨나면서 전문성을 갖추었고 각 지역의 특색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공예가 합리성을 띠게 되면서 길드가 등장했고 일과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개인주의가 공존을 모토로 세워진 길드를 위협했다는 것이다. 개인주의는 편리함을 추구했다. 그런데 편리함이 일반 대중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 이미 확인한 바 있었다. 도매상들은 직공을 예속시키고 직공들은 오직 이익을 위해서 물건을 만들게 되었다. 그 와중에 등장한 이루게 했다. 힘과 속도, 정확성, 다량생산, 저렴한 가격 등은 오직 기계만이 이룰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인간은 노동에서의 주체성을 잃기 시작했다. 집과 작업장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수공품과 비교했을 때 기계 공예품이 열등하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는 기계 공예의 단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계 공예는 자본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특색도 없고 창조성도 없다. 그저 경쟁적으로 단순한 목적을 위해 달려갈 뿐이다. 추악한 물건들이 범람하고 있고 사회는 나날이 혼탁해지고 있다. 다시 아름다웠던 세계로 돌아가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미술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미술의 영역은 대중과 멀리 떨어져있어서 세계를 아름답게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따라서 기계 공예의 한계를 극복할 때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 수 있다.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과거 미추의 문제를 초월했던 그 시절에서 해답을 찾아야한다. 그런데 기술 발전과 함께 자연에 대한 인간의 통제력이 늘어나면서 힘을 잃었던 종교는 오랫동안 아름다움의 문제에 대해 논의해왔다. 아름다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아름다움, 신, 마음과 같은 종교적 논의를 거치는 것이 필연적이다. 아름다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과 그 목표설정과정 전체에 종교는 도움을 줄 수 있다. 종교적 특성은 속의 세계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편리나 개인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종교는 여러 논의를 모두 품고 있다. 정의나 인간성에 대한 논의, 구원에 대한 논의, 아름다움에 대한 논의 역시 종교에 속한다. 속의 세계에서 찾을 수 없는 해답은 종교에 있다. 종교는 개인이 이루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이루어가는 것이다. 또한 종교는 그 자체로 섭리에 대해 논하고 있다. 종교를 통해서 인간은 우주의 섭리에 다가갔고 자본 창출과 경쟁을 이유로 기계 공예에서 빠져버렸던 부분 역시 섭리에 대한 부분이었다. 종교는 분명한 힘이 있다. 종교와 도덕, 아름다움은 수치화할 수도 없고 우리가 이미 익숙해진 편리함과 가까운 부분도 아니있는 부분이라는 데에서 의미가 크다. 진정한 예술을 위해서는 종교와 도덕적 뿌리가 바로 서야하고 이런 과정 없이는 현재의 삶을 추하게 하는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간디는 마을 공동체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마을 스와라지에서 해법을 찾은 듯하다. 마을 스와라지란 외부적인 통제로부터 완전한 독립과 경제적 독립을 의미한다. 그는 가내수공업과 집약적인 소규모 농업협동체를 통해 산업주의와 기계로부터의 착취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산업주의는 반드시 착취할 대상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대상은 필연적으로 자본력이 약한 일반 대중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다수의 능력을 착취되지만 한편 일자리는 보장받지 못하고 굶주림은 벗어날 수 없다. 자본에 충성하는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기계 밑에서 기계만도 못한 존재로 전락한다. 이것이 간디가 생각하는 산업 혁명에서 벌어진 비극이다. 그러나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보다는 자본이 주체성을 가질 때가 많다. 간디가 경계했던 부분 역시 이런 부분이다. 자본은 기계와 문명을 앞세워 기본적인 인간의 생존권마저 위협했다. 따라서 간디는 종교적 특성을 기반으로 한 마을 스와라지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 마을 스와라지의 특성은 기본적으로 인간 중심이며 완전 고용을 목표로 한다. 노동은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생계를 보장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노동은 지식이 아니라 땀으로 일군 육체노동이다. 모두가 육체노동을 통해서 각자의 먹을 것을 생산해 내는 사회는 경제적으로 어딘가에 예속되는 사회가 아니다. 그러나 간디가 지식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교육을 통한 지식 전달 및 생산 역시 마을 스와라지의 중요한 부분이다. 교육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수고 없이는 부를 축적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것은 다시 불복종으로 이어진다. 외부의 도움이나 압력에 저항하고 마을 공동체를 지킬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교육과 경제적 독립에서 비롯된다있다.
    독후감/창작| 2015.01.06| 5페이지| 1,000원| 조회(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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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성서 새로운 삶의 희망을 전하다 서평 평가A+최고예요
    예수의 철학과 행복한 삶을 위한 대안으로서의 종교성경에 대한 오해와 해소필자는 기독교인이지만 성경이 실제 현실과 너무 떨어져있어서 현재의 갈등을 해결하는 지침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는 인상을 어린 시절부터 계속 받았다. 오히려 성경에 나온 한 구절 때문에 사회적으로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도 많다. 샘물교회 사건은 사회적으로 갈등을 빚었을 뿐 아니라 기독교 전체 이미지를 실추시켰다. 위험 지역에 선교를 하겠다고 정부가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출국하였고 실제로 피랍되어 많은 사회적 비용을 야기하기도 하였다. 게다가 입국 당시 면세점에서 쇼핑한 것은 물론 물의를 빚을 만한 발언을 해서 ‘개독교’라는 모욕적인 오명을 탄생시키게 했다. 최근에는 동성애자 결혼 합법화 법안에 대해 기독교인들이 성경에 따라 대거 반대하기도 하였다. 사회적 약자인 성소수자들에게 성경의 이름으로, 신의 이름으로 다시 한 번 상처를 받았다. 필자 역시 종교의 이름 아래 사회적 약자를 비방하는 폭력적인 방식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필자는 진정한 기독교와 현실의 한국 기독교 사이에 괴리를 느꼈다. 기독교 내에서 자정운동도 일어나고 있고 기부나 봉사활동 같은 좋은 활동도 기독교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신자들이 종교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있기에 기독교의 이미지는 세속종교로 굳어진 듯하다. 필자는 이런 점에서 한국 기독교뿐만 아니라 성경에 굉장히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다. 으레 상처를 주는 기독교인들은 당당히 성경 말씀을 앞세워 폭력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경책을 펴고 구절을 찾아보면 실제로 그런 구절이 있어서 성경은 그들의 행동에 면죄부가 되거나 오히려 정당성까지 부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신약성서: 새로운 희망을 말하다.’는 첫 부분부터 필자의 잘못된 생각 바로잡아주었다. 성경에 대한 필자의 생각이 불완전했기에 빚어진 오해도 많았다. 이전에는 기본적으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쓰인 책이기 때문에 온전하고 무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이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썼는가에 따라 어투도 달라지고 관점도 바뀐다. 성경의 한계는 바로 이런 점에서 비롯된다. 사람이 기록함에 따라 실수도 생기고 오해의 소지도 생긴다. 따라서 성서를 바르게 보기 위해서는 성서의 핵심에 집중해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말투 하나하나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 구절을 통해서 전달하고 싶은 핵심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전체의 맥락을 살펴야하고 하나의 구절에 집착해서 사족을 덧붙이는 행동은 자칫 잘못하면 자의적인 해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자의적인 해석은 신과 소통하는 것을 오히려 방해하고 초기의 의도에서 우리를 멀어지게 한다. 필자는 이런 해석의 잘못이 현재 기독교의 문제를 야기했다고 생각한다. 성경 구절 하나만 따다가 자신의 자의적인 해석을 덧붙여서 누군가를 억압하는 규율을 만들었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이 성경을 기록했다는 것은 한계이자 독특한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에 의해 탄생된 하나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인간의 욕망과 본성 등을 다루고 있어서 인간 자체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줄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성경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이 성경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임을 알 수 있었다.신약 성서와 예수의 가르침본격적으로 성경의 내용을 다루면, 성경은 주로 핍박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성경의 시대적 배경은 다른 종교 지침서가 그렇듯 핍박과 고난이다. 민중들은 고난에 투쟁하지만 결국 좌절되고 괴로워하며 이 때 민중적 영웅이 등장해 민중을 구원하고 삶의 진리를 전파해 민중을 바른 삶으로 이끈다. 성경 역시 이런 비슷한 포맷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과거 갈릴리 지방 사람들은 종교적 테두리 안에서 도덕적이고 자발적인 계율을 지키며 살았다. 모세 계약은 약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 계약 위에서 공동체를 꾸려나갔다. 그러나 로마제국이 번성하고 갈릴리 지역 역시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에 들어가게 되자 촌락 공동체는 무너졌고 갈릴리 지역 주민들은 경제적인 노예로 귀속되게 되었다. 세금은 살인적인 수준으로 높아졌고 여러 번의 민족적 투쟁 역시 매번 로마 제국의 폭력 앞에서 무너졌다. 예수는 그런 갈릴리 지역 사람들의 비참한 현실을 보면서 자라났다. 예수는 크면서 일종의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고 삶의 기반이 무너지는 상황 속에서 민중 속의 한 사람으로서 민중의 불안감을 정확하게 이해했다. 당시 민중들은 스스로 자신이 지배당하고 착취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정도로 자기 비난에 빠져있었다.예수는 이에 대응해 일종의 회복 운동을 하였다. 사람들에게 가족 공동체로 돌아가고 마을 공동체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공동체를 지탱했던 모세계약의 정신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하며 민족 스스로가 삶의 주인이 되고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예수가 주창한 평등을 위해서는 가장 높은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가장 낮은 사람의 안위를 걱정하고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는 직접 이를 실천하면서 사람들을 가르쳤다. 그 안에는 세상의 문제에 대한 해결 방식이 녹아 있었는데 주로 화해, 자비, 긍정이 그 주 내용이었다. 글자도 모르고 어려운 학문적 이야기를 이해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을 위해 예수는 주로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는 했다. 사회 구성원들의 공존을 위해서는 당연히 용서와 자비, 긍정이 뒷받침되어야한다. 그런데 예수가 주장한 자비의 정도는 보통의 인간적인 기준을 뛰어 넘는 것처럼 보인다. 잃은 아들 비유는 예수가 말하는 진정한 자비정신이 무엇인지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아버지가 죽기도 전에 재산을 갈취해 떠나고 망해서 돌아온 소위 말하는 패륜아를 위해 아버지는 자신의 생명 그 자체까지 나누어주었다. 필자 역시 어릴 적 성경학교를 다니면서 막연하게 그런 패륜아를 둔 부모를 불쌍하게 여겼고 그런 초월적인 인내심은 전능한 신이 인간인 나의 잘못을 용서할 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그것은 신의 영역이 아니라 공동체를 이룩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되어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자식의 잘못을 용서하는 부모의 마음을 공동체 구성원 누구에게라도 베풀 수 있을 때 그 공동체는 비로소 모세 계약 시절의 이스라엘 공동체처럼 이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 이야기를 접한 민중들은 필자와 마찬가지로 한편 경악하면서도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진정한 이상 정신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을 것이다. 또 과거의 민족 공동체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구성원 모두가 그런 정신적인 노력을 해야만 한다는 것 역시 느꼈을 것이다. 물론 예수의 행보는 현재의 시각으로 보더라도 파격적이고 모든 사람들이 그런 성자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 이상이 무엇인지 현실적으로 보여주었고, 최소한 우리도 그렇게 삶의 방향을 바꾸어야한다는 길잡이로는 충분히 기능할 수 있다.예수는 이런 비유를 바탕으로 공동체 회복을 위한 운동을 진행했다. 그는 일종의 인권운동가로 서민들의 인권을 회복하고 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해서 실천하기 시작했다. 예수는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말했다. 이 자체로 가난한 사람들은 많은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발언은 어찌 보면 위험할 수도 있는 사회 구조적인 비판을 담고 있었다. 민중을 위로하면 동시에 민중을 통치하는 율법학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부와 권력을 쌓는 그들의 행동이 무의미하다고 한 번 더 그들을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예수가 민중들이 핍박에 순응하기를 바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민중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인 비폭력 저항을 이끌었고 본인도 그 앞에서 군대를 조직하기 보다는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당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다.예수의 죽음 이후 과정은 기독교를 이해하는 데 더 중요하다. 예수는 죽은 이후에 다시 살아나면서 단순히 전능하신 신의 신앙적 재림만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고생, 상생이 현실화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이스라엘 민족의 공동생활이 가능하게 했다. 여기까지는 이스라엘 민족만의 종교이고 이스라엘 민족만을 이끌기 위한 사상이었다면 바울은 이방인과 이민족까지 신앙의 테두리 안에 받아들이면서 진정으로 모든 사람을 수용하는 종교가 되었다. 바울이라는 인물은 기독교 역사상 엄청난 파급력과 영향력을 미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접하기 전에는 교인들을 핍박했던 전형적인 기독교인의 적이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 바울이라는 사람의 변화는 예수가 가르쳤던 철학에 정확히 부합하는 것 같다. 예수는 줄곧 악한 자도 변화할 수 있고 그들을 용서하고 자비를 베풀어 모두의 공동체를 만들 것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라는 사람은 교회를 완성하는 동시에 그 자체로 기독교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종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독후감/창작| 2015.01.06| 5페이지| 1,000원| 조회(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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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사회문화생활 - 지도 레포트
    북한주민의 문화와 생활 지도레포트북한주민의 문화와 생활 강의를 열심히 듣던 XX대생 안 모양은 열심히 과제를 하다가 지쳐 잠에 들고 만다. 여행을 통한 힐링이 필요했던지 그녀는 꿈에서 파란 눈의 외국인이 되어 북한 관광을 하게 되는데…….첫 목적지는 개성이다. 개성공단도 잠정 중단 된 마당에 개성 관광이라니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여행에 집중하기로 하는 안 모양. 개성에서 보쌈김치가 제일 맛있다는 개성민속여관을 우선 찾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송도보쌈김치를 야무지게 한 입 먹는데, 가이드는 김일성 수령 동지께서 “우리의 문화와 풍습을 잘 보존해야겠다.”라는 지시를 내리셔서 개성지구가 우리 문화를 보존하는 데 앞장섰기 때문에 이렇게 훌륭한 전통한옥들이 지켜질 수 있었다고 한다. 안 모양, 순수한 의도로 “당신네 수령님이 보존하라고 하신거구나.” 한 마디 던진다. 가이드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첫 날부터 영 조짐이 좋지 않다. 개성민속여관에서 맛있게 식사를 한 후에 본격적으로 관광을 시작했다.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이기에 문화유적이 많은 도시로 유명하다고 한다. 만월대와 첨성대, 선죽교 등 고려와 관련된 문화유적이 많았는데, 숭례문, 경복궁 정도의 건물을 기대하고 갔다가 터 밖에 남지 않은 만월대를 보고 크게 실망했다.다음 관광지는 사리원이다. 고속도로는 없지만 1급 도로가 있어서 사리원까지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1급 도로라고 해봐야 남한의 일반국도 수준이고 곳곳에 도로가 포장되지 않은 곳도 있었다. 사리원은 자원이 풍부한 도시라고 설명해주던데 그에 걸맞게 큰 시멘트 공장도 있었다. 가이드는 관광코스로 가장 유명한 곳이라며 경암산과 정방산을 소개했다. 경암산 공원과 정방산 유원지가 조성될 정도로 경치가 뛰어나고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우리는 정방산에 오를 수 있었는데 가이드는 산마루가 정방형을 이뤄서 정방산이라는 지명이 붙여졌고 풍화작용으로 생성된 봉우리와 기암절벽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계곡마다 봉우리마다 이런저런 전설들이 전해져 내려온다고 한다. 북한에 있는 산들은 다 민둥산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꽃나무가 다양하게 심어져있어서 경치가 좋았다. 심지어 작게나마 호수도 있어서 북한 사람들도 삭막하게 사회주의 체계 안에서 자아비판이랑 호상비판만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꽃구경도 하고 산도 오르면서 사는구나. ‘사람 사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는데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울적해졌다.평양을 빼면 북한 관광을 제대로 했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 평양은 그만큼 북한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리원에서 평양으로 연결된 고속도로마저 그런 사실을 반증하기라도 하는 듯 1급 도로보다는 나은 모습을 보여준다. 가이드는 버스 안에서 신나게 평양팔경과 평양형승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평양 팔경은 평양의 아름다운 8가지 경치로 을밀대, 부벽루, 영명사, 대성산 등이 있었고 평양 형승은 만경대, 을밀대, 추남허, 봉황대, 능라도, 청류벽, 춘양대, 추양대,동양대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시간 관계상 능라도 밖에 갈 수가 없었다. 가이드는 그래도 능라도가 제일 유명한 명승지라며 우리를 달랬다. 대동강 가운데 섬 능라도는 섬 전체를 유원지로 만들 정도로 경치가 좋았다. 평양주민들이 나와서 쉬는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을 찍거나 말을 걸고 싶었지만 가이드 눈치가 보여 못했다. 모란봉의 부벽루도 섬에서 볼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 이색의 시에서 나온 부벽루가 바로 그 부벽루라는 게 놀라웠다. 부벽루에서 달구경해보고 싶었지만 외국인도 밤에는 돌아다닐 수 없기 때문에 그건 불가능하다고 가이드는 말했다. 관광이 끝난 후 우린 통일 거리의 평양면옥이라는 식당에 가서 식사했는데 5000명이나 수용할 수 있고 시설도 현대적이었다. 북한에는 외국인이 머물러야하는 곳이 지정되어있는데 그 중 우리가 머문 곳은 양각도 호텔이었다. 높은 층을 배정받았는데 상당히 경치가 좋고 평양 시내가 내려다 보였다.
    사회과학| 2014.07.10| 2페이지| 1,000원| 조회(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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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천둥의 신 토르에 나타난 신화적 상상력
    영화 천둥의 신 토르에 나타난 신화적 상상력영화 토르는 북유럽 신화의 내용을 비교적 충실히 기반하고 있다. 인물의 성격이나 기본 배경, 북유럽 신화의 전반적인 특징까지 토르는 재현해내고 있다. 북유럽 신화의 가장 큰 특징은 불완전성이다. 북유럽신화의 탄생 배경 자체가 춥고 날씨가 나쁜 북유럽이었기 때문에 북유럽 사람들은 자신의 불안정한 미래와 삶에 대해서 고민하고 비관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성향의 북유럽 사람들에게서 탄생한 신화가 북유럽 신화이기에 북유럽 신화 역시 자연스럽게 비관적이고 어둡고 불완전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북유럽 신화를 기반으로 한 천둥의 신 토르 역시 북유럽 신화의 불완전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우선 주인공인 토르 자체가 불완전한 인물이다. 신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완벽한 인격을 가졌다고 볼 수 없다. 아버지 오딘에게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삐뚤어진 성격을 갖게 된다. 음식이 잔뜩 차려진 식탁을 엎으면서 씩씩대며 자신의 분을 참지 못하는 모습은 토르의 성격을 전형적으로 드러낸다. 또 로키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자신의 친구들을 이끌고 행패를 부리러 가는 장면도 나온다. 이렇듯 토르는 인격적으로 완전하지 못한 신이라고 할 수 있다. 토르의 형제로 나오는 로키 역시 불완전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북유럽 신화 속의 로키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 북유럽 신화 속의 로키는 이중적인 인물이며 모순투성이이다. 그는 잔꾀가 많고 지혜로워서 오딘이 곁에 두고 무언가를 결정할 때 질문하기도 한다. 로키는 오딘과 적대적인 관계이면서도 서로 돕는 관계이기도 하다. 오딘과 로키의 관계는 단순하게 정의내릴 수 없다. 후에 신들의 황혼이라고 불리는 라그나뢰크 시기가 오자 로키는 결국 오딘을 배신하게 된다. 영화 속 로키는 이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영화 속 로키는 우선 오딘의 아들로 설정되어있다. 즉 토르와는 형제관계이다. 그러나 친 형제는 아니다. 로키는 오딘과 그의 아내 프리가가 낳은 친 아들이 아니었다. 로키는 전쟁당시에 오튠헤임의 한 사원에서 발견되어 그 이후에 오딘의 손에서 길러지게 되었다. 사실 오튠헤임의 왕이 자신의 아들을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숨겨놓은 것을 오딘이 발견한 것이다. 오딘은 로키를 자신의 아들인 토르와 차별 없이 키우지만 태생적으로 오딘의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로키는 어렸을 때부터 오딘 외의 주위 사람들에게 무시를 받고 자라났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형제인 토르에게 알게 모르게 열등감을 느끼면서 자란다. 주위 사람들의 끊임없는 차별과 무시는 로키의 성격을 결국 삐뚤어지게 만들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자신이 오딘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충격에 빠지고 오딘에게서 제대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방법은 형제인 토르를 몰아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여 토르를 꼬드겨서 아버지의 눈 밖에 나게 한다. 결국 토르는 로키의 잔꾀에 넘어가서 지구에 떨어지게 된다. 전반적인 로키의 성격과 설정은 북유럽 신화 속 로키와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토르를 아버지 눈 밖에 나게 하는 과정이나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서 계략을 꾸미는 부분은 신화 속 로키와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잔꾀를 부리고 지혜를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모습이 신화 속 로키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문/어학| 2014.07.10| 2페이지| 1,000원| 조회(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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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트렌드 분석 - 슈퍼맨이 돌아왔다
    제목: 우리의 슈퍼맨, 아버지- 현대인의 결핍과 소외를 중심으로2008년 미국 發 경제 위기로 지난 몇 년 동안 서점가, 극장가는 어머니 열풍, 힐링 열풍으로 뜨거웠다. 대표적인 사례로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는 경제사정으로 힘든 현대인들이 잊고 살던 어머니의 따뜻한 품과 희생을 상기시켰고 그렇기에 미국 시장에서까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한국 작가가 미국에서 그와 같은 흥행을 거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어머니와 힐링이 지난 5년 동안 흥행코드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경제 위기와 연관이 있다고 분석 할 수 있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현대인들은 자본에 얽매이고 결국 자기 자신은 소외되는 인간 소외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힘들고 지친 현대인들은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보듬으려는 욕망을 품게 되고 그 욕망을 이해하고 탄생한 것이 어머니 열풍, 힐링 열풍이었다. 그런데 요새 문화트렌드를 주목하면 어머니에서 아버지로 흥행코드가 옮겨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 할 수 있다. 필자는 아버지 흥행코드의 원인도 어머니 흥행코드가 그랬듯이 현대사회의 인간 소외와 결핍에서 오고 있다고 보고 어머니 흥행코드의 변형된 형태로서 아버지 흥행코드를 분석하고자 한다.7번방의 선물, 아빠 어디가 등 이미 영화관과 브라운관에서는 아버지가 흥행코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어머니 흥행코드와 마찬가지로 현대 사회에서 받은 상처와 소외를 치유해나가는 것이 그 줄거리의 배경이 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의 특성을 고려하면 어머니 흥행코드와의 차이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이론에 따르면 아버지는 어린 아이에게 동경하고 존경하는 만큼 두려운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아이들은 아버지가 자기 앞에 당면한 문제들을 가뿐하게 해결해주고 위로해 주는 데에서 동경하고 존경하는 만큼 그런 아버지에 대해 경외심을 갖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어머니가 단순히 세상일에 지친 자식들을 위로해주고 품어주는 존재라면 아버지는 직접 세상에 나가서 자식들이 해결하지 못한 세상일을 해결하고 실질적으로 행동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어머니 흥행코드에서 아버지 흥행코드로 변화하고 있는 지금은 위로 받는 것 이상으로 현대인들이 자신이 당면한 문제를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해결해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이휘재가 보여준 행동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휘재는 부인이 집을 비운 사이에 아이들이 아픈 상황에 침착하게 응급실에 데려가고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을 보인다. 아버지가 이렇듯 문제를 해결해주기 원하는 현대인의 욕구가 바로 아버지 흥행코드의 원인인 것이다.자본이 주인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인간은 소외감을 느끼고 자신의 존재감이 커질 수 있는 작은 단위의 형태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러한 작은 단위의 형태가 대표적으로 가족이고,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어머니와 힐링에 대한 흥행열풍이 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폐해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인간 소외가 더욱 심해지는 요즈음 세상에 현대인들은 단순히 위로를 받고 다시 세상에 나아갈 힘을 얻고 싶어 하기보다는 누군가가 대신 자신의 일을 해결해주고 위로해주기를 바라게 되었다. 가족 단위에서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던 사람은 전통적으로 아버지였고,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가 새로운 흥행코드로 등장하여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흥행코드는 계속 될 것이다. 자본주의가 일으키는 인간 소외와 경쟁구도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현대인들은 지속적으로 문화생활을 통해 위로를 얻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형된 형태의 어머니, 아버지 흥행코드는 계속 등장할 것이다. 그것은 신이 될 수도 있고, 자본이 될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현대인들의 결핍을 잠시나마 충족시키기 위한 이러한 흥행코드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사회과학| 2014.07.10| 1페이지| 1,000원| 조회(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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