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5일3월 초, 추운 시기여서 아직 잎지 나지 않은 벚나무 입니다.3월 18일새싹이 자라기 시작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비가 왔으니 이제 예쁜 꽃을 피울것으로 예상됩니다.3월 21일싹이 더 자란 모습입니다.나무의 몸통에서도 싹이 한 두개 자라기 시작합니다.3월 30일(가지가 얇아서 카메라 초점이 잘 인식을 못햇습니다.)싹이 더 자라나 봉오리가 진 모습이고, 나무 몸통에 자라는 꽃은 벌써 색이 핑크빛으로 물들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국립세종도서관책을닮은 건축물국립 세종도서관학과 학번 이름답사일시 : 2016. 4. 8.건립년도 : 2013. 12. 12주소 : 세종특별자치시 다솜3로(어진동 산 114 국립세종도서관)홈페이지 : http://sejong.nl.go.kr/연락처 : 044-900-9114목차1) 국립세종도서관의 소개2) 국립세종도서관의 디자인- 도서관의 외관- 도서관의 내부3) 답사 후기 및 느낀점1) 국립세종도서관 소개국립세종도서관은 전국 도서관 발전의 허브 역할을 할 권역별 분관 건립의 필요성에 따라 2006년부터 기획 및 발전을 거쳐 2013년 완공되었다. 삼우건축설계사무소와 행복청이 공동 설계하여, 시공에는 대림산업, 책임감리로는 희림종합건축사무소가 참여하였다.2) 국립세종도서관의 디자인■ 도서관의 외관감성적인 도서관 콘셉트로 설계되어 공중에서 책장이 나부끼며 살포시 내려앉은 모습을 형상화한 국립세종도서관은 세종시 행정중심타운에서 호수공원으로 이어지는 도시경관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도서관답게 책을 모티브로 한 독특한 외관디자인으로 주목을 받고 있으며 세종호수공원과 더불어 세종시 대표 랜드마크로 손꼽히고 있다.이러한 아름다운 외관디자인으로 2014 레드닷 어워드에서 본상을 수상하였고, 디자인붐에서 선정한 올해의 세계최고 도서관 top10중 가장 첫 번째순서로 선정되었다.건축물의 규모로는 2100sqm 으로 1층~4층 까지 규모로 되어있다.■ 도서관의 내부독특한 외관의 형태를 보고 내부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다. 답사결과 1~3층까지는 자료실 등 주 도서관공간으로 구성되어있었고, 4층을 포함한 옥상공간은 쉴 수 있는, 환기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① 로비← 왼쪽으로 가면 어린이 자료실 ↑건물내부로 가는길로비는 굉장히 넓고 층고가 3층까지 이어져 있어 매우 높다. 로비 천장 중앙에는 천창이 조그맣게 뚫려있다. 이 천장의 빛이 떨어지는 바닥에는 화분이 하나 놓여져 있다. 로비는 다양한 디자인의 소파가 놓여져있어 휴게공간의 기능을 하며 놀라운 것은 바로 왼쪽에 칸막이벽도 없이 1층 일반자료실이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조용해야하는 일반자료실에서 로비의 소음이 다 들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② 어린이 자료실어린이 자료실은 세종국립도서관에서 디자인이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받는다. 어린이 자료실은 제 1문을 지나 지하로 내려가거나 혹은 건물 뒷편의 제 3문을 통하여 외부에서 출입할 수 있다.▷ 천장디자인층고가 매우 높고 천장의 조명 장식물이 심플하면서도 아름답다.▷ 벽면 디자인왼쪽의 벽면은 모두 유리창으로 밖의 세종호수공원이 보이고, 따듯한 햇살이 들어온다. 오른쪽의 벽면은 벽의 색을 따듯한 느낌의 레드, 그린을 사용하고 홈을 파서 전구를 넣어 간접조명을 조성하여 벽에서 은은한 빛이 새어 나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책장 사선배치책장을 사선배치함으로써 통로공간을 더 확보해 동선을 편하게 했고 단순한 일자배치보다 유동적이고, 시각적으로 아름답다.▷ 좌식 좌석공간책상에 앉기보다 바닥에서 책을 읽는 것이 더 익숙한 어린아이들의 특성을 반영하여 좌식 좌석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은 책꽂이부터 시작하여 천장까지 모두 밝은 색을 사용하고, 달, 별, 꽃 등의 shape을 적용한 것을 볼 수 있었다.③ 일반 자료실일반자료실은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발소리를 줄이기 위해 바닥에는 카펫재질의 섬유를 사용하였다. 이처럼 많은 이용자가 사용하는 공간인 만큼 요소요소에서 이용자를 배려한 모습이 보인다.▷ 사운드 마스킹 (sound masking)설치천장에 있는 다운라이트처럼 생긴 것이 사운드 마스킹(sound masking) 이다. 이것은 일정 주파수에서 인공음향을 발생시켜 주변 소음을 덜 인식하게 만드는 소음제어기술이다. 아무래도 도서관은 사소한 책 넘기는 소리나 거슬리는 잡소리가 잘 들리는 조용한 환경이다 보니 이러한 시스템이 굉장히 실용적이면서 적합하게 잘 쓰였다고 할 수 있다.▷ 서가아래 LED조명 가로배치아무래도 천장의 조명이 가장 멀리 닿는 곳 이다 보니 서가 맨 밑줄에 있는 책은 눈에 잘 띄지 않아서 저시력자는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무슨 책인지 잘 안보일 수 있다. 서가아래쪽에 LED조명을 배치함으로써 그러한 불편함을 덜었다.▷ 자료실 내 전화부스 설치도서관 4층을 돌아다니면서 느낀점인데, 아무래도 공간이 크다보니 내부공간과 연결된 곳에 각각 마련된 휴게공간이 많지 않았다. 이 전화부스는 그러한 단점을 해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④ 멀티미디어실멀티미디어실은 외관상 끝이 올라가 있는 천장구조를 반영하여 단차이가 있게 배치되어있었다. 이곳은 가구가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가구 디자인이 너무 미래적인 디자인이 아닌가 싶다. (차라리 파랑색이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⑤ 계단국립도서관을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모두 안쪽 계단에 대해서 말한다. 그만큼 독특하고 아름답다. 계단은 한옥을 닮은 디자인으로 국립무형유산원과 협력하여 중요무형문화재 전승자들이 제작한 전통공예품을 전시하여 복합 열람공간을 마련하였다. 부채로 벽을 장식하거나 맨 위는 한옥의 마루디자인을 차용한 책마루가 있다.(밑에서 3번째, 사람이 있어서 사진을 제대로 못 찍어서 아쉽다.)3) 답사 후기 및 느낀점전공학과가 디자인학과이다 보니 건축물에 대해서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았던 것 같다. 한 전공수업시간에 잠깐 스쳐간 국립세종도서관의 외관사진은 “와 우리나라에 이런 건축물도 있었어?”이 말이 저절로 나오게 했다. 이 과제를 계기로 이곳을 다녀왔는데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사실 이 곳 근처에 정부청사 건물인‘행복청’을 시작으로 도서관과 호수공원의 파빌리온 등등을 함께 조사하려고 계획했다. 막상 가보니 행복청은 공무원 외 민간인 출입이 자유롭지 않아서 조사하지 못했다. 행복청의 외관은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본뜬 것이다. 정말 우리나라에 이런 건축물이 있다는게 신기했고 이런 독특한 디자인의 건축물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도 좀 의아한 부분이었다. 조사한 국립세종도서관은 행복청의 끝자락에 있는 문화체육관광부건물 바로 옆에 위치해있다. 도서관 바로 뒤편에 호수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국립세종도서관은 ‘호수가 보이는 도서관’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고전건축양식이현대건축에적용 재해석 된 예:일시) 5.26.16.학과) 실내디자인학번)이름)[목차]1] 서론- 고전건축으로 회기한 건축양식2] 본론- 고전건축양식이 현대건축물에 적용된 사례들(①②③)- 고전건축양식이 재해석된 사례들(④⑤⑥)3] 결론- 느낀점 및 앞으로의 건축양식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1] 서론 - 고전건축으로 회기한 건축양식서양건축사에서의 르네상스 건축양식은 그리스·로마의 건축양식으로 회기를 발단시켰다. 하지만 이 시대는 ‘비트루비우스 건축서’를 유일한 지침으로 하여서 실제 고전건축의 연구를 등한시 하였으므로 그 정신은 불문하고 그 양식은 고전건축과는 많은 차이가 있게 되었다. 그 후의 고전주의 건축양식(17c~18c)과 신고전주의 양식(18c~19c)은 바로크·로코코 등의 자유 기묘한 건축양식이 18c에 퇴폐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그 반동으로 고전부흥을 모색하게 된 것이 양식의 발생 시초이다. 당시 건축가들은 진정한 고전건축에 복귀하려고 노력하였으며 이러한 사상에 의한 건축들은 그리스 건축을 직접 모사한 것 같은 외관을 나타내게되었다. 신고전주의 양식은 주로 그리스의 고전건축양식을 간결화 하였다.2] 본론- 고전건축양식이 현대건축물에 적용된 사례들수업시간에 고전건축양식을 적용한 현대의 건축물의 대표적인 예로 로마의 판테온신전을 본 따서 만든 현대 건축물인 ‘공립 버지니아 대학교(1819년 설립)’를 보았다. 그 공립 버지니아 대학교를 지은 건축가는 미국의 제 3대 대통령이자 건축가, 원예가, 고고학자, 작가, 발명가, 농장주, 외교관, 음악가, 법률가, 과학자이기 까지 한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다재다능하다고 불리는 ‘토머스 제퍼슨(1743~1826)’이다. 그는 영국으로 부터의 미국의 독립과 인권신장을 위한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것으로 미국인들에게 큰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런 그를 기리기 위한 ‘①토머스 제퍼슨 기념관(Thomas Jefferson Memorial)(1943년 완공)’에 대하여 이야기 하려 한다.‘토머스 제퍼슨 기념관(Thomas Jefferson Memorial)’은 전체적인 외관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측면에서 볼 때는 마치 판테온 신전을 보는듯한 원형, 정면(호수 쪽을 등지고)에서 볼 때는 박공지붕과 높은 기둥이 장엄한 분위기를 내며 그 형태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연상케 했다. 박공지붕의 코니스 부분은 파르테논 신전과 마찬가지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 조각은 파르테논 신전의 말이나 몸이 좋은 남성이 아닌 제퍼슨과 석학 5명이 독립선언서를 작성하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열주에서는 이오니아식 주두를 사용하여 부드러운 느낌을 풍기고 있다. 돔이 있는 공간에 제퍼슨 전 대통령의 청동상(높이 5.8m)이 세워져 있는데 그 천장이 돔 형식으로 되어 있어 높아 보이고 위대해 보이며 시선을 더욱 동상의 머리 쪽에 집중하게 만들었다.토머스 제퍼슨 기념관 바로 앞의‘②워싱턴기념탑(Washington Monument) (1885년 완공)’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워싱턴 기념탑은 미국을 세운 건국의 아버지인 조지워싱턴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목적으로 지어진 건축탑으로 그 권위에 경의를 표하는 목적으로 워싱턴 D.C.에서는 기념탑보다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제하고 있고 한다. 그만큼 엄숙하고 상징적이다. 기념탑의 형태는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와 유사하다. 오벨리스크가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숭배의 상징으로 세웠던 기념비 였던 것으로 보아 그 의미적인 것도 본따 왔다고 할 수 있다. 기념탑의 높이는 총 170m 이며 내셔널 몰(National Mall)(공원)의 안에 위치해 있고 153m 지점에는 전망대도 있다. 오른쪽 사진의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에는 이집트 상형문자 등으로 조각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왼쪽의 워싱턴 기념탑에는 별다른 무늬가 없다. 탑의 맨 윗부분 삼각뿔 모양 부분에 전망을 위한 작은 창 2개가 외관 변화의 전부이다.? 링컨기념관 내부 _이오니아식 주범양식 토머스 제퍼슨 기념관과 워싱턴 기념탑을 지나가면 ‘③링컨 기념관(Lincoln Memorial)(1922년 완공)’이 나온다. 링컨 기념관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본 뜬 건물로 유명하다. 중앙 켈라(고대 그리스·로마 신전 안쪽의 신상 안치소)와 그 양쪽으로 두 개의 작은 켈라를 포함해 길이 57m, 너비 36m 높이 30m의 장대한 크기를 가졌다. 세로로 홈 장식이 난 36개의 도리아식 주범양식의 열주식 회랑이 돋보인다. 이 기둥의 숫자는 그 당시 연방의 36개 주를 의미하고 기둥의 위에는 주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두 건축물의 가시적인 차이점은 박공지붕에 있다. 왼쪽 사진의 링컨 기념관에서는 박공이 매우 낮게 되어있어 눈에 띄지 않고 심지어 평지붕인 것처럼 보인다. 또한 파르테논 신전의 박공에는 남성적인 조각이 되어있고, 링컨 기념관에는 미국의 모든 주 이름이 새겨진 조각이 외관을 장식하고 있다. 신전의 조각까지 그대로 베낀 것보다 더욱 미국적인 이념에 맞게 변형시켜 표현하여서 건축물의 성격이 적절히 잘 반영되었다고 느낄 수 있었따. 또한 파르테논 신전과 동일하게 내부 켈라 부분에는 이오니아식 주범양식이 쓰였다. 특이하게도 미국에서 지은 유럽 건축양식건물에는 이오니아식 기둥이 가장 많았다. 그 결과, 도리아식의 직선적인 느낌보다 이오니아식의 곡선이 좀 더 아름답고 위압감을 완화해주었다고 생각한다.앞서 본 워싱턴 D.C. 의 3가지 건축물들을 전체적으로 정리해보면 첫 번째로 본 토머스 제퍼슨 기념관은 파르테논신전 + 판테온 신전을 합성하여 만들었고, 워싱턴 기념탑은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링컨기념관은 파르테논 신전을 본따 만들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이집트 오벨리스크가 워싱턴기념탑에 적용될 때는 조각이 없어지고 심플해 졌다 라는 것, 파르테논 신전을 본 따 만든 링컨기념관의 박공지붕이 거의 평지붕만큼 작다 라는 것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고전건축양식이 재해석된 사례들(④⑤⑥)과거의 양식으로 회기를 한 고전주의·신고전주의 양식은 그리스의 고전건축양식을 간소화 한 것 이 주요한 특징이었다. 그러한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바로 프랑스의 ‘④라데팡스 개선문(La Grande Arche de la Defense; 라 그랑드 아르슈, 신개선문)(1989년 완공)’라고 할 수 있다. 라데팡스는 미래형신도시로 50여 개의 빌딩이 모여있는 곳이다. 신 개선문은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고 이것은 프리스트레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35층짜리 사무실 빌딩이다. 높이는 110미터에 달하며, 유리, 화강암, 그리고 백색의 카라라 대리석으로 장식됐으며, 이는 지름 100미터 넓이의 광장에 세워졌다. 방문객은 내부 공간에 있는 유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된 지붕과 외부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 전망대는 도시의 독특한 전망과 이 중심지의 새로운모습을 보여준다.이 신 개선문은 구 개선문(에투알 개선문)과 같은 선상에 위치하게 지어졌다. 그래서 신 개선문의 전망대로 올라가면 구 개선문을 볼 수 있게 해놓았다. 그래서 더욱 신과 구가 변화되었다는 것을 명확히 볼 수 있는 것 같다. 매우 크게 지어진 건물이어서 흉물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하늘을 그대로 비추는 유리를 사용하여 자연스럽게 주변환경을 담아낸다. 디자인은 심플한 직선을 사용하여서 매우 현대적이다. 또한 아랫부분에 추상적인 형태의 막으로 구조를 둘렀다.프랑스 사람들은 변화나 튀는 것을 싫어하는 것인지 예전에 에펠탑도 흉물이라고 평가했었던 반면 지금 에펠탑이 파리를 대표하는 건축물이 된 것을 보면 나중에 신 개선문도 ‘현대의 파리’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남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한편 20c의 이탈리아에서는 고전건축을 재해석한 건축가로써 세기를 빛내었다고 평가되어지는 사람이 있다. 근대는 건축이 가벼운 절충주의와 무의미한 역사적 건축요소인 아치, 박공지붕, 장식 등 의 인용 및 적용 상업적 포장술의 건축이 범람하여 결국에는 부정적인 비평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 무분별한 양식의 파도 속에서 기존 도시건축을 재구성하여 현대의 건축 양식에 적용한 건축가가 바로 이탈리아의 ‘알도로시(Aldo Rossi)’이다. 그는 고전건축이 지닌 형태와 공간을 연구하고 이를 현대적 건축물로 재탄생시킨 인물이다. 그는 “건축물은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했고, 극간소화된 도형(삼각형, 사각형, 원, 원기둥 등)을 기본으로 건축물을 디자인 했다. 그가 대표한 건축 사조를 '신합리주의' 라고도 한다. 그의 대표적인 건축물은 바로‘⑤세계의 극장(The Theater of the World)(1979년)’이다. 이는 1979년 11월 베니스비엔날레의 출품작이다. 이 비엔날레에서는‘18c 베니스의 수상극장’이 테마였다. ‘세계의 극장’은 원형극장의 형태이며 물 위를 떠다닐 수 있게 디자인 되었다. 작은 배 위에 높이 25m, 폭이 9.5m인 소극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극장은 역시 알도로시가 기본 디자인형상으로 삼았던 삼각형과 사각형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형태이다. 알도로시가 무엇보다 이론적, 근원적, 과거에 대한 고찰과 회기를 모태로 삼았기 때문에 그의 건축물은 단순한 형태이지만 그 의미가 남다르다.이러한 고전 건축양식을 재해석하거나 투영하여 건축물에 반영한 건축가로 이탈리아에 알도로시가 있다면 미국에는 ‘⑥루이스 칸’이 있다. 그의 건축은 당시의 건축사조와는 사뭇 달랐다. 현대건축의 특징이 유동적이고 명랑했다라면 칸의 건축물들은 대체로 우아하고 진중하다. 그의 건축은 시간과 유행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이 시대 건축의 고전이라고 칭송받기까지 한다. 한 예로 국립현대미술관-과천관을 지은 김태수 건축가는 대학 3년 재학중에 우연히‘PA’잡지를 보다가 루이스 칸의 예일아트갤러리(1953년 완공)를 발견하고 한눈에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그 당시에 루이스 칸은 별로 유명하지 않았는데, 미스 반 데로에, 발터 그로피우스, 르 꼬르뷔제와는 달리 현대적이면서 동시에 과거의 유산, 이집트 시대에서부터 연결되어 지는 휴머니티의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낙태에 관한 생각학번이름낙태라는 것에 기본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다.첫 번째로, 무분별한 낙태는 살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선 태아를 어느 시점부터 생명으 로 취급하느냐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겠다. 낙태 찬성에 대한 기존의 여론 중 몇 개월 이상이 지 난 태아만 생명으로 취급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좀 억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아니더라도 어 쨌든 미래의 아이를 지우기 위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생명이 현재 세포로 존재한다는 이유 로 마치 지방제거 수술을 하듯 제거하는 것은 너무 비인간적이다. ‘낙태’의 인식이 보편적으로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인 것 같다. 과연 누가 낙태를 그저 몸의 세포를 떼어내는 것, 그 이상은 아니다. 라고 생각할까? 물론 성급하게 일반화 하는 것이 아니고, 일정기간 이하의 태아를 생명으로 인정하지 않아서 낙태를 찬성하는 주장들이 당연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라면 그들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을 권유하겠다. 왜냐하면 생명을 인정하는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두 번째로. 대부분 낙태를 하는 이유가 타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생명에 대한 존중을 약화 시키고 인권의 가치를 낮추기 때문이다. 낙태를 하는 이유 중 피임을 하지 않거나, 순간의 쾌락에 눈이 멀어 상대를 가리지 않고 행하는 성관계로 인한 것이 다수 존재한다. 보통 자신이 책임지지 못할 일을 행했을 때 보통 전전긍긍하며 괴로워하지만, 돈만 지불하면 낙태를 해주는 시스템으로 인해 죄책감도 없이 낙태를 그저 가볍게 생각하게 되고, 결국엔 임신과 같은 신중해야 할 문제에 대해서 쉽게 인식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를 출산한 뒤 자신의 아이에게 적당한 애정을 주 거나 키울 수 있을 만한 힘이 없다면 아이를 위해서라도 출산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하 지만, 이런 이유로 낙태를 찬성하게 된다면 또다시 인권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낙태를 찬성하는 것 보다는 출산 후 제도적 지원을 활성화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또한 특이한 경우 예외적으로 낙태에 대한 허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보수적인 종교인들은 대부분 생명의 존중을 주장하며 낙태에 무조건적으로 반대한다. 하지만 현대사회를 반 영한다면 무조건적인 반대가 아닌 예외적인 허용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그들이 산후에 그 아이를 키워주고 보듬어 줄 깜냥이 되지 않는데 그저 “목숨이 소중하기 때문에 낙태는 결사반대”라는 주장을 내세우는 것은 이기적이다.어떤 사람들은 낙태를 극단적으로 페미니즘적인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여자의 권리를 주장 한다기 보다는 사람으로써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낙태가 허용되어야 하는 예외적인 경우의 예로는 성폭행 피해로 인한 임신, 또는 산모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등이 있다. 첫 번째 경우, 누구나 자신과 성폭행범의 2세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추 워도 없을 것이고, 잊지 못할 끔찍한 기억이 아기로 하여금 산모의 우울감을 더욱 야기시킬 수 있 기 때문에 이 경우 낙태를 허용해야한다. 강간으로 인한 임신이 사회적으로 납득이 안되는 중범죄 에 해당되기 때문에 산모는 사회적으로 보호 받아야 하고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현재 낙태가 불법이기 때문에 깨끗한 시설에서 제대로 된 수술을 받을 수 있는가가 가장 큰 의 문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기관을 설치하여 몇몇 병원에 낙태병원을 지정 하고 최적의 공간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수술을 받도록 개선해야 할 것이다.끝으로 이번을 계기로 낙태에 대하여 여러 각도에서 다양하게 생각해 보았고, 아무쪼록 이 사회 에서 낙태를 해야만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게끔 사회적인 보호책을 마련한다던지, 여러 가지 문제 점들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본 영화『혈의 누』학번이름영화의 배경인 동화도는 19세기 조선시대에 마을 사람들 모두 제지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는 작은 섬마을이다. 조정에 보낼 소중한 제지를 실은 수송선이 불에 타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그 범 인을 잡기 위해 수사관 ‘원규(차승원)’가 섬에 오게 된다. 원규는 방화범을 수색하던 중 창에 꽂 혀 죽어있는 시체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 후로 며칠 지나지 않아 거부감이 들 만큼 잔인한 연쇄살 인사건이 일어난다. 그를 밝혀내기 위한 원규의 노력은 계속되고 우연히 원규는 그의 아버지가 이 섬에서 7년 전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참형당한 강객주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게 된다. 7년 전의 강객주는 가난한 마을 사람들 대부분에게 돈을 빌려주며 선심을 베풀었던 사람 이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빌린 돈을 갚지 않기 위해 그를 천주교쟁이라고 누명을 씌 워 능지처참을 당하게 했다.강객주가 죽음으로써 결과적으로 마을 사람들이 이익을 얻었으므로 공리주의적 입장에서는 이 것이 옳은 것이 되버린다. 공리주의가 목적·결과주의적 윤리설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영화 로 읽는 윤리학 이야기’라는 책에서 공리주의의 모순에 대해 본 작품과 엮어 설명한 부분이 있어 언급하겠다. 책의 한 구절에서는 “공리주의가 윤리설로서 비판받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 바로 여 기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얻어진다면 그 희생은 얼마든지 옳을 수 있는가? 공리주의에 따르 면 그것이 옳다고 말해야 하는데, 사실 누가 봐도 그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이 구절처럼 강객주의 죽음은 누가 봐도 정당화 될 수 없다. 하지만 공리주의적 입장에서는 정 당화 된다. 이는 엄청난 모순이 아닌가 싶다. 결과론적인 윤리학이 어느 상황에서나 인정되게 된다 면 그 사회는 심한 집단 이기주의사회로 변질될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공리주의의 모순에 대해서 더욱 심화한 예를 들어보겠다. 눈앞에 기찻길이 있다. 기차가 달려오 지만 다섯명의 인부들은 그것을 모른채 작업중이다. 나는 기차를 멈출 수 없고, 인부들에게 경고할 수도 없는 상황일 때, 갈림길이 눈에 들어왔다. 그 갈림길의 다른 레일에서는 한명의 인부가 작업 중이고, 당신이 레버를 돌릴 수 있다면, 다섯명 대신 그 한명의 희생이 따른다. 지금 당신은 레버 를 돌리시겠습니까?공리주의는 결과적으로써 이익이 더 많은 것을 우위에 둔다. 이 때문에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 생이 정당화 되는가에 대해, 기찻길예시는 공리주의의 대표 이론인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이론의 모순을 잘 꼬집은 예시다. 이는 하버드 마이클센델교수의 강의인 『정의』 에서도 다루었던 문제 이다. 『정의』 강의의 학생들은 대부분 레버를 돌려 1명이 희생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 강의를 볼 당시는 나도 그를 지지했다.하지만 벤담의 공리주의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더들리와 스티븐스 재판-미뇨넷 호 생존자 4명, 그 중 3명이 병들어 죽어가는 1명을 살해하여 그의 인육과 피를 먹고 버텼다. 자신들의 행동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하는 그 3인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을까-’을 예로 들어 학생들이 치열하게 토론을 벌였는데,기찻길 예시와는 다르게 억울하게 희생된 소수의 편을 들었고, 여기서 센델교수는 만약 그들이 30 명 아니 300명이고 그 1명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할 때 과연 그 희생이 옳지 않다고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 인상깊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벤담이 주장한 것처럼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할 것이다.결과적으로 공리를 수로써 측정한다는 것이 부작용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정말 결과만 좋다면 어떠한 행위를 해도 그 결과가 옳다는 이유로 그 것이 윤리적으로 옳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심을 해볼 필요가 있다.다시 영화로 돌아오면, 연쇄살인이 일어나고 두려움에 빠진 마을에서 스스럼없이 닭을 잡아다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아침을 울리는 닭이 귀신을 쫓아낸다는 미신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닭을 죽일 때 산채로 목을 쳐낸다. 잘린 목에서 나는 피는 사방으로 튀고 있지만, 사람들은 연민을 느끼 기는커녕 그저 강객주의 복수가 두려워 닭의 피를 집 기둥에 바르기 급급했다. 여기서도 인간들이 자신들 집단에 해를 끼치는 것을 닭의 희생으로 덮으려는 공리주의의 인식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 다.마지막으로 공리주의의 모순이 잘 나타난 장면은 두호(지성)의 죽음 장면이다. 두려움에 빠진 마 을 사람들은 억울하게 죽은 강객주의 원한이 나머지 밀고자들을 처단했다고 믿어, 마지막 밀고자 인 두호가 살아있으면 강객주의 원한이 위로를 받지 못해 섬마을에 피해를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두호를 제외한 마을사람들이 피해를 입을까 두려워 두호를 낫으로 잔인하게 죽였다. 두호 가 죽어줌으로써 자신들의 마음의 편안함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호의 죽음은 마치 강객주 의 죽음과 같이 억울하다. 사람들은 강객주 귀신의 복수가 아니라는 증거를 눈앞에 두고도 자신들 의 마음이 죄책감으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에 화가 두려워 두호를 죽였다. 두호를 죽임으로써 그들 의 죄책감은 없어졌다. 두호를 죽일 때 낫으로 10여차례 내려찍는 모습을 연출했는데, 아마도 감 독이 그들의 이기심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여기서 기찻길 예시와 같은 공리주의의 문제점이 제기된다. 종종 공리주의는 이기주의 개념과 혼동되는 경우가 많다. 두 사상 모두 모든 행위주체의 이익이 되는 행위가 옳다라고 말하지만, 공 리주의는 공익, 이기주의는 사익추구 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혈의 누』에서는 이기주의처럼 보이는 전체적으로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공리주의 사상이 나타나 있는 것 같다.결국 두호가 마을사람들에 의해 죽자 하늘에서는 피비가 내린다. 약간 판타지적인 요소였지만 마치 마을 사람들의 자신들이 당해야할 저주가 두렵다는 마음으로 추악하게 자신들이 아닌 다른사 람의 희생을 요구하는 더러운 가치관을 비난하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