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법'을 석가모니의 가르침으로 볼 때는 곧 '석가모니께서 가르치신 글귀'라는 뜻이 되고, '법'을 우주 구극의 진리의 본체로 보고 '구'를 '길' 혹은 '발자국'이라는 뜻으로 볼 때는 곧 '석가모니께서 가르치신 글귀'라는 뜻이 된다고 한다. 불교를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도 않았고, 불교의 불자도 몰랐기에 이러한 어려운 뜻을 모아둔 책인 법구경은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였다.하지만 법구경을 접하고서 든 생각은 이거였다. 법구경은 불법을 서술해 놓은 단순히 어려운 불교경전이 아니다. 삶의 지혜에 대한 내용을 담고있다. 살펴보면, 주된 내용은 붓다와 지위고하를 막론한 여러 사람들과의 문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종 비유를 통하여 불교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그 뜻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놓았다. 자칫 다가가기 어렵고, 난해한 내용을 바로 앞에서 이야기하듯 풀어놓았으니 쉽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쉽게 다가오는 만큼 드는 생각은 내가 지금 처한 상황과의 비교이다. 자고로 감동을 받았던지, 재미가 있던지, 깨달음을 얻었던지는 모두 자기 자신의 상황에 관계되어 있다고 본다. 이러한 관심은 '현대사회에서도 법구경에 나온 붓다의 가르침이 통용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점을 불러일으켰다. 일단 법구경은 26개의 품과, 사십이장경, 불유교경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 품에는 쌍서품, 방일품, 심의품, 화향품, 우암품, 현철품 등이 있는데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몇가지를 골라내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법구경을 읽었던 중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어 가장 오래보았던 장이 현철품(賢哲品)에 나온다. 내용인 즉슨 이러하다.옛날, 한 바라문이 있었는데 총명하고 재주 있어 못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스스로 맹세했다. '한 가지 재주라도 능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그것은 천재가 아니다. 나는 천하의 기술을 두루 통해서 이름을 세계에 떨치겠다.'고. 그래서 사방으로 유학해서 인간의 일이란 모조리 통달한 뒤 천하를 두루 돌아다녔지만, 누구 하나 감히 재주로써 그를 맞서지 못했다. 그 때 부처님은 이것을 교화하시기 위해서 중의 모양으로 그에게 가셨다. 바라문은 물었다. "그대는 어떤 사람이건대, 행색이 보통 사람과 다르구나." 부처님은 대답하셨다. "나는 자기 자신을 다루는 사람이다." 그리고 곧 다음의 계송을 설하셨다. 바라문은 곧 몸을 땅에 던져 예배하고, 몸 다루는 법을 물었다.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발전시키고자 하고 다룰 줄 모르는 것이 없던 한 바라문이 부처님의 말씀에 큰 깨달음을 얻는 구절이다. '자기 자신을 다루는 사람' 이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활 만드는 사람은 화살을 다루며, 물대는 사람은 물을 끌고, 목수는 나무를 다루고, 지혜있는 사람은 자기를 다룬다고 하였다. 결국 인간에게 많은 재주가 있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나, 자신을 다루는 재주에 비하면 한참 모자르다는 뜻이다.이는 비단 법구가 전해지던 서기 1C의 시대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현 시대에는 옛 붓다와 같은 현자도 등장하지 않을뿐더러 성품, 인품보다는 기술과 돈이 중시되고 있다.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명문대학의 졸업 때에도 사람의 인품, 성품보다는 그들의 기술력, 성적등 육체적 가치가 중시되고 대기업 면접에서도 그들의 상황대처력, 성적, 소위 말하는 스펙이 중시되지만 반박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의 사회에서는 이것이 인재로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과 실력이 뛰어나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면 그 높은 곳에서 한순간에 추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부처가 이르길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반석은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어진 사람은 뜻이 굳세어 비방과 칭찬에 움직이지 않는다.' 고 하였다. 뇌물과 알선이 밥먹듯이 오가는 이 사회에서 청렴한 사람들이 살아남기는 쉽지 않겠지만, 반석과 같은 그들은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는 것 만으로도 밝게 빛날 수 있다. 그렇다고해서 신체적, 육체적 재능과 기술을 소홀히 여기고 지금 바로 인격수양에 정진하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가진 것을 중요시하며 자기 자신을 다룰 줄 아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볼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는다면 광연품에 나오는 '마장'과 같은 처지에 놓이고 말 것이다. 잠시 광연품의 내용을 살펴보자.부처님이 '나열'성 죽원에 계실 때에, '기성약'왕은 부처님과 다른 비구들을 청하면서 '반특' 한 사람만을 빼놓았다. 부처님은 모든 비구를 데리고 거기 가서 앉으셨다. 기성은 일어나 청정수를 돌렸다. 부처님은 반특을 빼놓았기 때문에 그것을 받지 않으셨다. 기성은 사람을 보내어 반특을 불렀다. 반특은 이내 왔다. 기성은 그 신통력을 보고 성현을 업신여긴 것을 스스로 뉘우쳤다. 그래서 반특을 특별히 공경하고 다른 비구들에게는 예사로 대접했다. 그 때에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옛날, 마장이 있었는데 말 천마리를 몰고 다른 나라로 가서 팔려고 했다. 도중에 한 말이 새끼를 낳았다. 마장은 그 새끼를 남에게 주고 다른 나라로 가서 그 국왕을 뵈었다. 왕은 말했다. '이 것은 다 보통 말로서 살 만한 것이 못 된다. 이 중에 말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슬피 우는 소리를 들으니, 반드시 준구를 낳았을 것이다. 만일 그 망아지를 살 수 있다면 나머지 말을 모두 사겠다.' 마장은 곧 달려가 말 한 마리를 주고 그 망아지를 사고자 했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 그래서 말 오백 마리를 주고 겨우 그 망아지를 얻었다." 부처님은 이어 말씀하셨다. "이 마장은 처음에는 그 망아지를 업신여겨 이것을 남에게 주었다가 나중에는 오백 마리 말을 주고 이 망아지를 물러 받았다. 아까는 반특을 박대하다가 지금은 도리어 그만을 존경하여 다른 오백 비구를 업신여기니, 너 또한 저 마장과 같구나."부처님은 이야기에서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을 말로 비유를 삼았다. 귀한 줄 모르고 남에게 주었다가 500배 비싼 값으로 다시 사드린 마장을 보면 어리석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 편으로 또한 우리 자신에게 대해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어쩌면 우리도 마장처럼 모르는 사이에 소중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현대 사회는 물질 만능주의적 사회이다. 기술이 없고 무능력하면 천대받으며 지혜와 덕식이 높으면 존경을 받으나, 경제적으로는 힘들 수밖에 없는 그런 사회이다. 당연히 누군가가 '무슨 재주가 있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자기 자신을 다루는 재주입니다.' 라고 말하면 웃음거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다루는 재능' 및 훌륭한 인, 성품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람들은 지혜와 덕식, 자신을 가꾸는 것이 한줌 재에 불과하다. 당장 먹고 살 방법을 찾는 것이 시급하기 때문에 마음의 양식을 쌓거나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보다는 기술을 찾게 된다. 그러므로 이는 경제적으로 성공해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내용일 것이다. 결국 우리는 마장처럼 '준구'를 놓칠 수 밖에 없다. 놓치고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돈, 노력을 투자하여야 다시 그 '준구'를 찾을 수 있다. 이는 과연 누구에게 이득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날 탈출구는 없는 것인가? 다행이도 법구경에 수록된 사십이장경중 제34장에 그 해답이 보여진다.사문이 밤에 가섭불의 '유교경'을 읽는데, 그 소리가 슬프고 바빠서 마치 뉘우쳐 물러서기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부처님은 그에게 물었다. "너는 옛날, 집에 있을 때에 무엇을 직업으로 하고 있었느냐?" 그가 대답했다. "거문고 타기를 좋아했습니다." "줄이 느슨하면 어떻던가?"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줄을 아주 조이면 어떻던가?" "소리가 끊어졌습니다." "줄의 늦춤과 조임이 알맞으면 어떻던가?" "여러 소리가 골랐습니다." "사문이 도를 배움에도 또한 그러한 것이다. 마음이 만일 고르고 알맞으면 도를 얻을 수 있겠지만, 만일 너무 사납게 가지면 곧 몸이 피곤할 것이요, 몸이 피곤하면 마음이 곧 괴로울 것이요, 마음이 만일 괴로우면 행실이 곧 뒷걸음을 칠 것이요, 행실이 이미 뒷걸음을 친다면 죄는 반드시 더해 갈 것이다. 오직 마음과 몸이 맑고 편안해야만 도를 잃지 않을 것이다."이는 몸과 마음의 조화로운 상태가 진리를 알게 되는 길 임을 설명하고 있다.
한·미 FTA의 예상효과와 산업별영향-목차-1. 들어가면서2. 한·미 FTA의 예상효과(1) 한·미 FTA에 대하여(2) 한·미 FTA에 따른 한국과 미국의 예상효과(3) 한·미 FTA에 따른 타국의 예상효과3. 한·미 FTA에 따른 산업별영향(1) 농축산업(2) 자동차산업4. 끝맺음1. 들어가면서최근 몇 년간 모두들 한미 FTA라는 단어를 입으로 말하거나 귀로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국민 모두가 들어봤을 정도로 많은 이슈거리와 화제거리, 찬반논란을 불러온 주제가 아닐 수 없다. 한미 FTA는 많은 매스컴보도와 촛불집회등을 통해 사람들에게 안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식이 정말 맞는 것일까? 한미 FTA가 가져오는 예상효과와 각 산업별 영향에 대해 살펴보아 그 정체를 밝혀보고자 한다. 일단 FTA의 정의와 한미 FTA에 대하여 알아보는 것이 첫 번째일 것이다.2. 한·미 FTA의 예상효과(1) 한·미 FTA에 대하여한·미 FTA에 대해 말하기전 일단 FTA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정확히 알아보자. 들어는 봤지만 확실한 정의를 내려보라고 말했을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FTA란 'Free Trading Area' 의 약자로 회원국 사이에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철폐하되 비회원국에 대해서는 회원국 각자가 원래의 관세를 유지하는 제도를 말한다. 즉 한·미 FTA는 한국과 미국과의 경제적개념(상품 및 서비스무역)의 자유무역협정을 뜻하며 2012년 3월 15일 0시 기준으로 발효되었다.(2) 한·미 FTA에 따른 한국과 미국의 예상효과한·미 FTA로 인하여 농축산업 및 공산품, 서비스시장이 개방하게 되면 기술력과 품질이 우수한 한국제품들이 관세인하를 통하여 가격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아래의 표를 살펴보자.출처 : 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1&gid=801433&cid=233784&iid=15044669&oid=020&aid=0002320006&ptype=021이 표는 한미 FTA 발효 이후 미국의 주요 기업들의 방한일정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에서도 경쟁력이 강한 많은 기업들이 FTA발효이후 구매협의를 위해 방한을 하는 것은 그만큼 한국의 제품이 관세인하를 통한 경쟁력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격경쟁력을 통하여 수출이 늘고 미국의 원자재를 더욱 싸게 수입하게 되어 무역이 활발해지게 될 것이다. 물론 미국에서 수입하는 가장 큰 부분은 아마 농축산물 부분일 것이다. 미국의 막대한 농축산물은 관세인하 및 철폐를 통해 싼 가격으로 수입되어 소비자들에게 제공될 것이다. 소비자들로써는 가격경쟁을 통한 가격인하를 생각할 것이지만 그 소비자들 중에는 농축산업 종사자로써 미국산 농축산물과 가격경쟁을 해야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아이러니하다고 볼 수 있다. 각 산업별 자세한 예상효과는 뒤에서 다루기로 하고 타국의 예상효과를 살펴보기로 하자.(3) 한·미 FTA를 통한 타국의 예상효과일단 일본의 자동차산업이 큰 이익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은 자동차 부품에 따른 가격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미국에 많은 부품공장 및 자동차 제조공장을 세워놓았다. FTA가 발효되면 엔고현상 및 원화약세 및 관세에 쫒기는 일본 자동차회사들은 미국 현지에 있는 공정을 통해 직접 한국시장을 공략할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의 '렉서X', '도요X' 등의 한국에서 인지도 있는 차량들이 관세인하 및 철폐를 통하여 경쟁력을 갖춘 가격으로 수입되게 된다면 소비자들의 부담은 줄어들 것이다. 허나 기존에 FTA를 맺은 인도나 칠레등의 나라같은 경우에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의 등장에 긴장해야함이 분명하다. 농축산물이나 칠레의 와인같은 경우 가격경쟁 및 수출경쟁을 함께 치러야할 것이다. 좀 더 나은 전략으로 한국의 소비자들을 공략할 필요성이 있다.3. 한·미 FTA에 따른 산업별 영향(1) 농축산업아마 가장 문제가 많았고 가장 큰 논란을 불러왔던 것이 이 농축산업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미국은 막강한 농업 및 축산업 부분의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에 비해 막대하게 큰 영토 및 자동화 시스템을 통하여 어마어마한 수출물량을 지니고 있다. 관세인하 및 철폐를 통하여 더욱 싼 가격에 많은 물량이 한국의 시장에 풀리면 어떻게 될까? 일반적인 생각으로 소비자들은 낮은 가격에 많은 물건을 폭넓게 고를 수 있을 것이다. 와인이나 오렌지 같은 경우는 FTA국들 간의 가격경쟁으로 인하여 가격이 내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농축산업은 붕괴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특히 가장 논란거리가 되었던 미국산 쇠고기가 그러하다. 아직까지 한국인의 정서로 소고기 하면 드는 생각이 '비싸다.' 일 것이다. 예전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다. 축산업 농가들이 적자가 나지만 근근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소고기가 값어치를 하기 때문이다. 허나 막대한 영토와 자동화 시스템을 바탕으로 길러진 미국산 소고기들이 다량으로 관세없이 한국에 수입된다면 축산업 농가들은 파산함이 당연하다. 물론 국산 한우를 찾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가격적으로 경쟁력있는 미국산 소고기에 민심을 빼앗길 수도 있다. 이 문제는 소고기 뿐만이 아닌 농업이나 다른 축산업에도 마찬가지의 영향을 가질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양적으로는 미국의 거대한 시장에서 승부를 볼 수 없다. 판매자이면서 소비자이기도 한 만큼 질적으로, 한국적으로, 좀 더 스페셜하게 생존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거대한 시장의 개방으로 인하여 소비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줄어들었을까? 아래의 표를 살펴보자.출처 : 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1&gid=801433&cid=233784&iid=30143820&oid=038&aid=0002248677&ptype=011표에서 볼 수 있듯이 관세는 분명히 인하하거나 철폐하였다. 하지만 상품의 가격은 일부 미미하게 하락하였거나 요지부동인 상태이다. 물론 관세인하 부분에 있어서 단계적인 관세인하를 체택하였고 가격이 내려갈 수 있는 환경은 무궁무진하다.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고 조금 더 기다려봐야 할 부분이다.(2) 자동차산업자동차부분 관세인하로 인하여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곳은 자동차부품공장일 것이다. 완성된 자동차가 아닌 어느 자동차에나 들어갈 수 있는 자동차 부품으로써 미국이라는 하나의 큰 시장을 확보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자동차부품의 경우 관세가 인하된 한국의 부품사들을 통해 타국의 기업들이 미국에 납품하려는 움직임도 보일 수 있다. 자동차산업부분에 있어서 가장 큰 수혜자라고 볼 수 있다. 자동차부분에 있어서 미국은 취약했던 한국의 자동차시장의 경쟁력을 약간이나마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의 그래프를 살펴보자.출처 : http://ourspeak.blog.me/141983685위 그래프는 한국의 내수시장에서 각 국가의 자동차가 점유하고 있는 비율의그래프이다. 확실히 미국의 자동차들은 한국의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다. 한국은 자국의 자동차나 유럽의 이름있는 명차들을 타는 것을 더욱 선호한다. 미국입장에서는 경쟁력은 확보할 수 있겠으나 한국 내수시장의 점유율을 끌어올릴
법 화 경경전. 나와 가장 거리가 멀다 느껴졌던 이 단어가 올해만도 벌써 2번째 인연을 맺었다. 법구경으로 시작한 첫 경전은 법화경으로 넘어갔다. 법화경을 처음 손에 펼쳐들었을 때 느낀 감정은 막막함, 황당무개함 그 자체였다. 이야기로 보기에는 내용이 너무 어려웠고 그렇다고 풀이가 썩 좋게 되어있는 것도 아니었다. 법구경은 구절이 주로 중심을 이루었다고 본다면, 법화경은 세존의 설법하는 내용이 그 주를 이루었다. 쉽게 풀이 해 놓은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법구경보다는 법화경의 내용이 훨씬 어렵게만 느껴졌다. 마치 모르는 나라의 언어를 적어논 듯 생소하게만 느껴지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시피 하였다. 하지만 그 뜻을 곱씹어 보면서 한번 더 읽어보니 새로운 가르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 하나를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법화경 제5장 약초유품을 보면 이러한 구절이 나온다. "가섭이여, 그것은 도공이 같은 흙으로 여러 가지 용기를 만드는 것과 같다. 그 경우 어떤 것은 설탕그릇이 되고, 어떤 것은 기름그릇이 되고, 어떤 것은 발호유나 우유그릇이 되고, 또 어떤 것은 더러운 것을 넣는 막그릇이 된다. 흙에는 차이가 없으나 각기 다른 것을 넣어두기 때문에 그릇의 구별이 생긴다."처음 이 구절이 눈에 들어왔을 때 무릎을 탁 칠만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저 말을 간단히 풀어 말해보자면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은 없다.' 일 것이다. 우리는 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 하나도 없이 태어난다. 자라나면서 그 배움과 주변의 환경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과 가치관등이 결정되는 것이지 처음 날 때부터 잘나고 못난 사람은 없었다. 또한, 그 역할과 그릇이 정해진 채 살아가는 사람 또한 없다. 앞서 말했다시피 그릇은 그 안의 내용물에 따라 그 역할이 달라진다. 예전에 보았던 좋은 글귀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성난 말을 하지 말라. 마음에 괴로움을 안겨줄 뿐이다. 악을 보이면 재앙이 오나니 내 몸에 해로울 뿐이다.'남에게 좋지 못한 말을 내 뱉으면 내 몸이 더 해롭다는 말이다. 한 손가락으로 사람을 가르키면 나머지 세손가락은 나 자신을 가르킨다는 말 또한 있지 않은가. 하지만 요즈음 세상은 이러한 좋은 글귀에 무감각한 듯 보인다. 최근 인터넷과 미디어를 뜨겁게 달궜던 사건을 살펴보자. 모두들 '학생의 언어사용의 실태' 라는 주제로 한창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을 알 것이다. 학생들의 대화를 직접 촬영하여 보여줌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던 사건이다. 학생들은 1분에, 아니 한마디에 거의 한 단어씩 서스럼없이 욕설을 내뱉는다. 허나 이 학생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욕을 내뱉는 사람들이었을까?답은 그렇지 않다가 옳다. 이들 또한 처음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순수한 그릇 자체였을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동기문화, 친구문화등 안좋은 문화들이 들어감에 따라 이들은 쉽게 말해 막그릇이 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이러한 언어실태를 가진 학생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부터 한 번 살펴보자. 일단 나 자신부터가 친구와 대화할 때 욕을 많이한다는 사실을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었다. 말하는 것을 몰래 친구가 동영상으로 찍었는데 다시 듣기에도 상스러운 단어들이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 의지를 가지고 욕설을 뱉는다기 보다는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현실에 가슴이 아파왔다. 하지만 막그릇이라는 단어는 언어실태로만 단정짓기에는 그 범위가 크다. 크게 살펴보자면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 떳떳한 사람은 없다. 모두들 하나씩 마음 속의 막그릇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든, 지금 현실의 문제든, 마음의 병이든 간에 막그릇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막그릇에서 다른 그릇으로 바꿀 수 있는 법은 없는 것일까?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막그릇은 아무거나 막 들어가 있다고 해서 막그릇이다. 그럼 우리 마음속에 아무거나 막 들어가 있는 것을 빼면 그만이다. 마음 속에 아무렇게나 들어가있는 안 좋은 것들을 빼내고 삶에 도움이 되는 좋은 것을 넣어둔다면 우리는 좋은 그릇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막연히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빼놓고 다른 것을 집어 넣으라는 설명은 자칫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무논리로 보일 수 있다. 그렇다면 내자신을 수양하고 고무시키는 구제적인 방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법화경 제2장 방편품을 보면 이러한 구절이 등장한다. "그들 모두 자비심을 지닌 자가 되었고 수많은 중생들을 구제하고 많은 보살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했다. 그들도 모두 깨달음을 얻었다. 또 어떤 이들은 여래의 사리나 탑에 진흙으로 된 상과 불상이 그려진 벽이나 모래 탑에 꽃이나 향을 공양하였다.어떤 이는 거기서 묘한 음색의 북과 소라 고동, 그리고 큰북 같은 악기를 연주하고또 어떤 이는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을 공양하기 위해 큰북을 울렸다. 또 어떤 이는 듣기 좋은 음색의 비파나 바라나 작은 북, 장고나 피리, 일현금을 연주하고또 아주 부드러운 음색의 에코차바 악기를 불었다. 이들 모두도 깨달음을 얻었다. 또 어떤 이는 쇠방울을 울리고 큰북 대신에 물을 두드리거나 손뼉을 치면서 여래들을 공양하기 위해 감미롭고 기분 좋은 노래를 절묘하게 불렀다. 그렇게 여러 가지로 사리에 공양하여 그들 모두 이 세상에서 부처님이 되었다. 여래의 사리에 조금이라도 공양하거나 단 한 악기로 연주하거나 또 벽에 그려진 여래의 상을 단 하나의 꽃으로 공양하더라도 비록 산만한 마음으로 한 공양이었다 하더라도 이런 이들은 수많은 부처님을 차례로 뵙게 될 것이다."부처의 사상에서 깨달음은 곧 부처를 만나는 것, 부처가 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내용은 길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하나라도 열심히 노력하자, 즉 노력의 여하에 따라 깨달음이 달려있다고 본다. 모든 것을 잘 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깨달음의 여부를 좌지우지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얼마나 알고 있느냐 보다 얼마나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노력하고 있느냐가 옳은 말이라고 보여진다. 경쟁의 사회인 현 시대에서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스펙을 위하여 많은 자격증, 많은 경험, 많은 지식등을 쌓으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모두들 두루두루 잘하는 것일 뿐, 한가지씩 바라본다면 그다지 뛰어난 것이 없을 것이다. 여러 가지 능력을 조금씩 지니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밝게 빛나는 유리그릇이 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이것저것 조금씩 수박 겉핥기 지식으로 내면을 쌓아간다면 아는 건 많겠지만 결국 '막그릇'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가지의 전문화?? 아니다. 답은 정해져있지 않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당신이 뛰어남을 가지고 있는 한 분야가 있습니까?? 열에 아홉은 대답을 망설이거나 그럴듯한 답변을 하지 못할 것이다. 모두 현대의 경쟁위주의 '스펙' 사회가 만들어낸 폐단일 것이다. 결국 방편품의 구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자신이 맡은 바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열심히 노력한다면 결국 '부처님을 뵐 수 있다.' 즉 현대의 기준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일리야스일리아스, 트로이전쟁에 관한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처음으로 트로이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 것은 영화 ‘트로이’에서 였다. 패배를 모르는 영웅 아킬레우스와 트로이에서 가장 용감한 장수 헥토르. 영웅의 이야기를 그려놓은 재미있는 영화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일리아스를 읽는 순간 ‘내생각이 안일했구나.’ 라고 느끼게 되었다. 일리아스의 첫장은 트로이전쟁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설명함과 동시에 아가멤논이 아카이아의 장수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염으로써 시작한다. 이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이 첫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카이아 장수들을 이끌고 있는 아트레우스의 아들인 아가멤논과 아카이아 최고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논쟁이 아카이아군의 불행을 알리는 시초가 되고 만다. 아가멤논이 아폴론의 신관을 화나게 하여 아카이아 군에 전염병이 돌자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이 사로잡은 신관의 딸을 돌려 보내어 그의 화를 풀도록 권유한다. 이에 분노한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만다.“아무래도 당신의 전리품을 내가 가져야 할 것 같소. 고귀하신 펠레우스의 아들이여. 내가 듣기로 브리세이스가 제사장의 딸만큼이나 이쁘다고 하더이다. 그래, 그렇지. 내가 심부름꾼을 보내 당신의 막사에서 그 처녀를 데려오라고 하는게 좋겠소!”한 진영을 이끄는 대 장군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저 아카이아 병사들이 영웅처럼 떠받드는 아킬레우스가 아니꼬왔거나,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그에게 평소 적대심을 품고 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그 말로 인하여 아킬레우스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 선언하고 막사에 틀어박히게 된다. 이 대목에서 한 아킬레우스가 한 말은 감정적으로 동요를 일으킬 정도로 가슴에 와닿았고 설득력있는 발언이라고 생각되었다. “입조심 하시오. 아가멤논! 당신이 날 멸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오. 왜냐하면 내가 여기 있는 것은 오로지 당신과 당신 동생을 위해서이기 때문이오. 당신 동생 메넬라오스는 자기 아내를 지키지도 못했으면서,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돌이켜생각해보면 아가멤논이 아킬레우스를 극진히 대접하고 아껴도 모자라는 상황이지만 아가멤논의 행동은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다. 잠시 트로이전쟁의 시작에 대하여 살펴보는 편이 낫겠다. 일리아스라는 이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트로이전쟁이라는 소재를 아주 자세히 다루고 있지만 전쟁의 시작과 끝에 대해서는 상당히 간단히, 아니 거의 다루고 있지 않다고 봐도 무방하다. 간단하게 서술된 이 전쟁의 시작은 이러하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아트레우스의 아들이자 아가멤논의 동생 메넬라우스의 부인인 헬레네의 미모에 반하여 납치하게 된다. 분노한 메넬라우스는 자신의 부인을 되찾기위해 전쟁을 여는 것으로 되어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일 수 밖에 없다. 아킬레우스는 그러한 개인적인 이유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마다 먼저 나서 적을 해치워 공을 세웠지만, 결국 아가멤논에게 조롱당하고 천시당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 부분은 현 사회생활과 다를 바 없다. 많은 공적을 세우며 멋지게 일을 해내지만 능력이 뛰어나면 상사에게 미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경쟁사회가 예전부터 우리 마음속에 정착되어 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가멤논이 아킬레우스에게 왜 그런식으로 조롱을 퍼붓고, 화를 내었는지 책에서도 자세히 알 수 가 없다. 단지 제사장의 딸을 돌려주라는 말로인한 분쟁, 그 사소한 분쟁과 아가멤논의 아집때문에 많은 아카이아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여기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신의 개입이 있었지 않은가 라고 본다. 책에 나와있진 않지만 많은 부분에서 신들은 인간세상의 일에 개입하길 좋아하는 존재이다.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신들은 질투심이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포이보 아폴론과 사이가 좋지 않은 신 중 한명이 혹시 아가멤논을 조종한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 대목에서 아가멤논은 깜짝 놀라고 만다. 아가멤논 자신도 인정하기는 싫로 전쟁에서 이겨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질투심많은 신들의 개입으로 인하여 전쟁의 승패는 시시각각으로 바뀌게 되고, 마지막 결국 자신과 영혼까지 함께 나누었다고 믿는 절친한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으로 인해 각성한 아킬레우스가 전쟁에 참여하게 되고, 트로이의 용감한 장수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의 손에 죽음을 맞게 된다. 헥토르의 시신을 가져간 아킬레우스는 시신을 훼손하고 보다못한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의 막사로 찾아가게 된다. 프리아모스와 아킬레우스는 눈물을 흘리며 서로에게 감동을 하고,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에게 헥토르의 시신을 내어주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프리아모스의 왕이시여. 헥토르의 장사를 모두 치를 때까지 며칠이나 걸릴 것 같습니까? 장례 절차를 모두 끝마치실 때까지 아카이아 병사들로 하여금 전투를 하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아무리 한 나라의 왕이라고 해도 엄연히 프리아모스왕은이렇게 전쟁은 잠시 휴전을 맞게 되지만, 아킬레우스는 한명의 인간과 한명의 신에 의하여 죽게된다는 예언 그대로, 파리스를 조종하는 포이보 아폴론의 화살에 뒷꿈치를 맞아 사망하고 만다. 전반적인 책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난다. 일리아스라는 책, 아니 트로이 전쟁에서 가장 많이 다뤄지고 있는 내용은 바로 이 신들의 개입이라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라나 민족마다 제사를 지내고 신봉하는 신이 다르기 때문에 각 신에게 있어서 같은 편과 다른 편이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 각자나라의 편에 서서 신들은 전쟁에 개입을 하게 되는데 모두 신들의 질투 때문에 이루어진 현상이라 볼 수 있다. 자신을 믿지 않는 나라에 대한 분노, 시기, 질투.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신은 신중의 왕 제우스도, 그의 부인 헤라도, 전쟁의여신 아테나도 그 누구도 아닌 포이보 아폴론 이였다. 처음 아가멤논이 제사장에게 딸을 돌려주지 않자 아카이아군에게 질병과 전염병을 내린 신이 바로 아폴론이었다. 자신을 믿는 제사장의 기도 하나 때문에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융통성 없고 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요, 그런 멍청한 인간들이 이 전쟁을 자기들 힘으로 끝내도록 우리는 그냥 두고보도록 합시다.”어찌보면 인간들을 한 없이 깔아뭉개는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신들은 어떤식으로 이 전쟁을 생각하고 있었는가? 다른 신들은 아마 그들의 힘, 권력을 이 전쟁을 통하여 과시를 하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한 쪽편을 들어주어 그 전쟁을 이기고 다른 쪽 편에 붙은 신을 조롱하고, 괄시하며 그들은 더욱더 큰 힘, 권력을 갖고싶어 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이런 구절이 있다.아프로디테와 아레스를 어찌나 강한 힘으로 내리쳤던지, 그 둘은 땅바닥에 넘어져 먼지 속을 뒹굴었다. “트로이인들을 돕는 자들은 모두 이런 대접을 받을 것이다!” 아테나는 이렇게 거만하게 말한 뒤 그들을 향해 홱 등을 돌렸다.이 속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신들은 유치하다. 그들은 질투가 심하고, 소속감이 강하다고 볼 수있다. 트로이인들을 도우면 나에게 죽고, 트로이인들을 안도우면 나에게 살아 남을 것이다, 전형적인 흑백논리라고 볼 수있다. 이러한 사고를 가진 신들 사이에서 아폴론의 발언은 뜻깊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말은 하였지만 그렇다고 아폴론이 트로이를 버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곤경에서 벗어나고자 였다던지, 핑계라고 생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발언은 상당히 냉철하고 가장 합리적이었던 발언이라고 생각이 든다. 아마도 호메로스는 편을 가르는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다. 지금도 편가르기, 내 편이 아니면 남의 편, 이러한 사고가 사회에 많이 뿌리박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편을 가르는 기준은 특별히 정해져있는 것인가?그렇지 않다. 편을 가르는 기준은 없다. 자신과 마음이 맞나 안맞나, 맞았더라도 나와 기분이 서로 상했던 일이 있었는가? 이러한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편이 갈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 책 속에서도 헤라와 아테나 여신이 트로이를 싫어하는 지극히 간단하고 개인적인 이유이다.헤라와 아테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어버리는 구도로 호메로스는 그 당시에 편이 갈라지던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하고 마지막으로 생각을 해본다.지금까지 일리아스의 전반적인 줄거리와 감상평을 곁들어 설명해 보았다. 줄거리로만 따지고 보면 이 이야기는 트로이의 전쟁을 그린 호메로스의 서사시, 신들의 질투를 비꼬아 풍자한 호메로스의 서사시.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이 일리아스라는 작품은 분명 아킬레우스라는 한 인간을 주인공으로 삼은 전쟁이야기 이다. 작가가 가장 공들여 나타내고 싶었던 것은 전쟁의 구도와 양상도, 전쟁의 계기 및 끝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아킬레우스의 심정의 변화 및 감정의 동요상태를 아주 적나라하게 잘 그려내었다. 주로 아킬레우스의 심리상태가 많이 등장했는데, 이런 부분이 있다.아킬레우스는 숨을 죽이고 해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를 지켜보았다. 함선에서 아주 가까이에 있는 헥토르의 붉은 투구 장식이 눈에 띄었다. 저 끔찍한 트로이의 장수를 막을 수 있는 병사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단지 아킬레우스만이 할 수 있었다. 아킬레우스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 않은가! 아킬레우스는 손으로 칼집을 거세게 움켜쥐었다………..(중략)……….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아가멤논이 자신을 그토록 심하게 모욕한 사실을 용서할 수도, 잊을 수도 없었다.이처럼 아킬레우스는 동료의 모욕에 분노하지만, 아카이아의 병사들을 사랑하는, 하지만 자신의 분노 때문에 그들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에 비통해하며, 친구를 자신의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일반적인 사람이다. 영웅이지만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아킬레우스. 영화 트로이에서 보던 아킬레우스와는 다른, 일리아스에서 나온 아킬레우스는 책을 읽는 내내,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내 자신을 돌이켜 주는 모델이 되었다.호메로스는 일리아스를 통하여 우선 아킬레우스의 심정을 표현하고 싶어했다고 볼 수있다. 주인공으로 뽑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에 싶다.
자발적 인지동의에 대한 생각많은 종류의 약이 새로 만들어지고 있고 임상시험을 통해 새로운 제품으로 고객에게 출시되고 있다. 물론 개인적인 입장으로 봤을 때 사람을 통한 임상시험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동물과 사람은 엄연히 신체의 구조와 약물에 대한 반응이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제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임상시험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영화 ‘Constant Gardener’ 에 나온 것과 같은 종류의 임상시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고민에 대한 첫걸음은 자발적 인지동의의 결여에 있다. 임상시험은 약물이나 새로운 시술 방법, 의료 기기 등을 사람에게 직접 적용하는 과정을 뜻한다. 사람에게 직접 적용하기 때문에 피실험자의 자발적인 인지와 그에 대한 동의는 반드시 필요한 전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나오는 임상시험은 그들의 사회적인 환경과 가난함을 이용하여 강제적인 동의를 얻어 치료의 목적으로 임상시험을 시행한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제약회사들에게 많은 질병을 보유하고 있고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고 생각되는 아프리카나 다른 개발도상국들의 난민들은 좋은 임상시험의 대상이다. 이들에게 있어 치료를 미끼로 내건 임상시험은 거절할 수 없는 매력적인 조건이다. 그들에게는 이미 자발적 인지동의에 관한 내용은 관심 밖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이 약이 무엇인지 아는지,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병이 나을 수 있을 거라는 작은 희망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약의 안전성에 대한 내용, 부작용에 대한 내용을 다 듣고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더라도 약을 먹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무분별하게 실행하는 임상시험은 있어서는 안 된다. 병의 치유보다는 그들의 생명의 존엄성을 생각해 주어야 하고, 실험체로 보는 것보다 한 사람의 환자로 봐야 한다. 즉, 난민들에게 시행되는 임상시험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라고 생각되지만, 임상시험에 대한 자발적 인지동의는 꼭 필요하다고 본다.